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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140

홍천 수타사, 공작산 자락에 위치한 영서지방 대표사찰

강원도 홍천군 공작산 자락에 소재한 수타사는 강원도 영서지역을 대표한 이름난 사찰이다. 홍천강을 따라서 형성된 서울과 강원도 주요지역간을 연결해 주는 교통로에 위치한 홍천군소재지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홍천군은 동쪽으로는 백두대간 설악산에 오대산 중간에 위치한 오래된 고갯길인 구룡령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는 홍천강이 북한강과 만나는 가평군 설악면까지 이어지며, 홍천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수타사나 물길리사지는 강원도지역을 여행하면서 여행객들이 잠시 쉴 수 있는 중요한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타사가 위치한 곳은 산세가 공작새처럼 아름다워서 공작산이라 불리는 곳으로 해발 887m로 강원도에서는 아주 높은 산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경치가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수타사 ..

전국 사찰 2013.02.03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41호), 도심 상가지역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철당간

청주 남문로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청주목 관아 및 충청병영이 있었던 행정 중심지로 넓은 벌판을 이루고 있는 넓은 청주벌판이 동쪽끝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 용두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철당간만이 남아 있다. 고려 광종 13년(962)에 청주지역 호족들이 세운 사찰로 보이는 용두사는 인근의 흥덕사나 사뇌사와 함께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금속활자를 비롯하여 금속공예가 크게 발달했던 지역으로 보인다. 당간은 절입구나 법당 앞에 깃발이나 괘불을 거는 것으로, 돌로된 지주대를 마주보게 세우고 그 사이에 철이나 돌로 만든 당간을 세웠다.당간 몸체에는 당간을 세운 목적을 담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글에는 '준풍3년'이라는 광종의 독자적인 연호와 함께 청주호족과 학교 관련 내용이 있..

서울 길상사, 성북동 북악산 자락에 자리잡은 옛 요정 대원각을 시주하여 세워진 공원같은 사찰

서울 성북동 북악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길상사는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70년대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주인이었던 김영한이 송광사에 시주하여 사찰로 바뀐 곳이다. 1만여평의 이르는 넓은 부지위에 옛날 요정으로 사용하였던 건물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최근에 일부 전각들을 신축하여 사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정원이 잘 가꾸어진 사찰경내에는 울창한 수목들로 가득차 있고, 북악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작은 개울이 정원의 풍광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 길상사를 시주한 김영한은 월북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알려진 기생으로 70년대 고급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운영했으며 만년에 법정의 무소유 철학에 감화를 받아서 수차례에 걸쳐 시주의사를 밝혔으나 법정이 거절하였다가 1997년에야 사찰로 바뀌었다고 한다. 법정이 만년을 보낸곳이기도..

전국 사찰 2012.11.14

여수 흥국사, 전라좌수영을 도왔던 승병들이 수행했던 영취산 자락 조선후기 대표적인 호국사찰

여수 흥국사는 원래 고려때인 1195년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현재의 흥국사는 조선중기에 중건된 사찰로 임진왜란때 여수에 있던 전라좌수영을 도와 호남지역 의병과 승병들의 항쟁에 중심이 되었던 사찰이다. 그때의 공적을 인정받아 인조대인 1624년에 계특대사가 크게 중창한 사찰이다. 흥국사는 대표적인 호국사찰로 지금은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사찰입구에 일주문이 세워져 있지만 원래는 읍성의 성문처럼 공북루라는 누각이 있었고 성벽이 있었다고 한다. 한때는 500여명의 승려가 상주했을 정도로 큰 사찰로 다른 사찰에 비해서 요사채 건물이 상당히 많은 편이며, 이들을 대표하는 불전인 부처의 제자들을 모신 나한전이 있다. 흥국사는 구한말 전라좌수영이 폐지될때까지 전라좌수영과 연계한 승병체계를 ..

전국 사찰 2012.11.04

여수 향일암, 남해안의 대표적 일출명소이자 관음성지

여수시 남쪽 큰 섬인 돌산도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향일함은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해안에서도 대표적인 일출명소이다.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실제로는 그 이후에 생긴 작은 암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숙종대인 1715년에 인묵대사가 현위치로 이건하고 향일함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남해안의 대표적인 관음성지로 관음보살을 보신 불전만 3개나 있다.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인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4대 관음성지로도 여겨진다. 현재의 사찰건물들은 대부분 1986년에 중건된 것이리가고 하며, 최근인 2009년에 화재로 대중전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이 소실되었었다. 향일암은 남해안 항구도시 여수시의 대표적..

전국 사찰 2012.10.24

여수 흥국사, 팔상전을 비롯한 불전과 요사채

여수시 명산인 영축산 자락에 있는 흥국사는 고려 중기인 1196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흥국(興國)이라는 절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남해안 세워진 호국사찰이라 할 수 있다. 조선초기 불교탄압과 왜구의 침입으로 폐허화된 것을 조선중기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흥국사의 실제적인 역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전라좌수영 수군을 도와 큰 공을 세워 승병의 중심지로 인조대에 크게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의 규모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팔상전, 불조전, 무사전, 원통전 등의 불전과 심검당, 적묵당 등 요사채, 사찰 강당인 봉황루를 두고 있으며, 사찰입구에는 계곡을 건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홍예를 하고 있는 다리인 보물로 지정된 홍교가 있다. 지금은 화엄사 말사이지만 현재..

광주 망월사, 남한산성 축성을 위해 동원된 승병들을 위해 창건한 사찰

남한산성 동쪽 해발 467m의 망월봉 아래에 위치한 망월사는 남한산성 축성과 방어를 위해 동원된 전국의 승병들을 위해 창건한 7개 사찰 중 하나로 남한산성에 남쪽편 검단산 방향과 함께 방어에 가장 취약했던 동쪽편 벌봉과 망월봉 주변을 방어하며 성벽을 유지.관리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사찰이다. 이 사찰은 남한산성이 축성되기 이전부터 망월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으며, 남한산성 축성과 함께 사찰의 규모가 커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망월사는 구한말 일제에 의해 사찰 전체가 불타버리고 폐사되었던 것을 그 이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사찰 전각 중 원래부터 있던 건물은 하나도 없고, 건물 터를 잡고 있는 축대에서 옛 망월사의 규모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통일신라시대 주장성이 있었던 남한산..

전국 사찰 2012.08.16

남양주 봉선사,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에 위치한 봉선사는 500여년전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선왕의 위엄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있던 운악사라는 절을 크게 중창하고 봉선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원래 운학사는 고려초인 광종대에 세운 절로 세종대 7개 불교 종파를 선종과 교종으로 통합될 때 혁파되었다가 부근에 세조의 능인 광릉이 조성되면서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게 이 절을 크게 중창하여 원찰로 삼았다. 명종대에는 전국 교종을 대표하는 사찰로 경기도내 전사찰을 관창하기도 하였다고 하며, 당시 전국 승려들의 교학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과거시험인 승과가 이곳에서 열렸으며, 서산.사명대사 같은 고승들도 당시 이곳에서 승과에 응시하였다고 한다. 봉선사를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크게 중장할 당시에는 사찰 가람의 규모는 89칸..

전국 사찰 2012.08.02

경주 망월사, 배리삼릉이 있는 계곡 입구의 작은 사찰

신라의 불교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경주 남산 배리삼릉 등산로 부근에 위치한 작은 사찰인 망월사이다. 이 사찰은 보물 63호로 지정도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모셔진 곳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계종에 속해 있는 사찰은 아니고, 1963년에 창건된 '대한불교원효종' 총본원이라고 한다.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으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요사채 건물 몇동과 삼층석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이 곳에 석조여래삼존입상이 옮겨진 이후에 세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에 세워진 사찰로 조계종에 속해 있지 않아서 그런지 일반 사찰에 비해서 격식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천왕문이나 금강문 대신에 삼문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출입문을 두고 있고, 주불전인 대웅전도 간략하게 지어..

전국 사찰 2012.07.05

경주 백률사와 굴불사지,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 계기가 되었던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사찰

백률사는 경주 동천동에 있는 사찰로 삼국시대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던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사찰이다. 당시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잘린 목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진 곳에 세운 절이다. 문헌에는 자추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후에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백률사에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불상인 국보 29호로 지정된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있었고, 통일신라 헌덕왕대에 이차돈을 추모하여 세운 비석도 있었다. 절의 규모는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된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건물은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사찰 주위에는 옛 건물에 쓰였던 건물 초석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백률사 아래에는 보물 121호로 지정된 석조사면불상이 남아 있는 굴불사 절터가 있다. 굴불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전국 사찰 2012.06.23

[부여박물관] 위덕왕과 능산리사지,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이 있는 능산리고분과 백제 나성 사이에 위치한 능산리사지는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된 절터이다. 백제는 사비성을 도읍으로 하던 시기에 많은 사찰들을 건립했지만 그 중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이다. 이 사찰은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지어졌다는 의견되 있지만, 대체로 백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원 원찰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이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여러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중국으로 부터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를 비롯하여, 문서에 해당하는 많은 목간들, 건축자..

지역박물관 2012.06.01

부여 백제문화단지, 능산리절터에 있던 사찰을 재현해 놓은 능사

능산리사지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소재한 백제의 마지막 왕릉이 있는 능산라고분군 옆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성 도성인 부여나성 바깥쪽에 자리잡고 있는 고분으로 다른 왕릉들과 마찬가지로 백제의 큰 위협이었던 신라를 비롯한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주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능산리사지는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능사로 이 곳에서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이 출토되었다.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는 1탑, 1금당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사찰의 규모는 황룡사나 익산 미륵사에 비해서 작은 편으로 선왕들의 명복을 비는 원찰 또는 능사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사찰이라고 할 수..

김포 문수사, 문수산성에 있는 작은 사찰

한강하구와 강화로 들어가는 뱃길을 지키기 위해 세운 문수산성이 있는 문수산 중턱에 있는 작은 사찰인 문수사이다. 이 사찰은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사찰은 주불전인 비로전과 요사채만 있는 암자같은 작은 규모의 사찰로 광해군대와 순조대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문수산성을 크게 개축했던 순조대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산성을 지키는 승병들이 머무는 사찰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수사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문수산성 성곽길을 통해서 올라가거나, 김포시 월곶면소재지에서 산길을 통해 정상부 부근에 있는 암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어서 일반 사찰에 비해 들어가는 길이 험한 편이다. 사찰에는 5층석탑의 잔해와 사찰 서쪽편 언덕에 풍담대사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문수..

전국 사찰 2012.05.09

남한산성 장경사, 산성을 쌓고 지키던 승병들어 거처하던 사찰

병자호란에 대비하면서 조선은 한강이남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였던 남한산성을 크게 개축하면서, 전국의 많은 승병들을 동원하였다. 이 때 벽암각성선사가 조선8도의 도총섭이 되어 승려를 지위하여 남한산성을 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에도 남한산성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 받았다. 남한산성내에는 이때 동원된 승려들을 위해 9개의 사찰이 지어졌다고 하며, 산성내 중심지에 위치한 개원사가 그 중심이 되는 사찰이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에 세워진 9개의 사찰 중 현재는 본영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는 개원사를 비롯하여 망월사, 장경사가 현재까지 남아 있는데, 이 사찰들은 대부분 남한산성 방어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남쪽편 검단산 방향과 외성인 봉암성과 한봉성이 있는 망월봉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그..

전국 사찰 2012.04.25

안양 안양사, 중초사(안양사) 옛 절터 뒷편에 세워진 사찰

안양사는 신라 효공왕 4년(900)에 고려 태조가 삼성산 자락 아래에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로 안양시 지명의 유래가 되었던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안양사는 고려시대 큰 사찰이었던 안양사는 아니고, 한국전쟁 이후 새로 지은 건물들이라고 한다. 실제 안양사는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위치한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중초사지(안양사지) 옛 절터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안양사는 옛 안양사에 소속되었던 작은 암자가 있었던 장소이거나 안양사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새로 건립된 사찰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왕조와 관련된 무학대사가 수도했다는 조선시대 최대의 사찰이었던 양주 회암사와 비슷한 경우로 보인다. 고려시대 안양사는 이 지역의 지명 유래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통요지에 위치한 상당히..

전국 사찰 2012.03.30

강화 전등사 극락암, 향로전을 비롯한 요사채들

전등사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사찰인 까닭에 전통과 역사에 비해서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은편이다. 부처를 모시는 불전으로는 석가모니를 모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를 모시는 약사전, 최근에 많이 볼 수 있는 크게 지어진 지장보살을 모시는 명부전이 있다. 불전들은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면서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편이다. 주위의 우거진 수목들과 잘 어울리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불전에 비해서 사찰에서 수행하는 승려들과 이 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머무는 요사채는 꽤 규모가 크고 많은 편인데, 대체로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왕실과 관련이 되어 있고, 정족산 사고가 있어 이 사찰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라 요사채를 많이 두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최근에도 템플스테이 등을 위해서 ..

강화 전등사 대조루, 사찰로 들어가는 출입문 겸 강당

강화 전등사 출입문 역할은 하는 대조루는 사찰에서 불이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누각이다. 전등사는 정족산성내에서 정족산사고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등 조선시대 국가와 관련된 전통사찰이 전체 영역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과는 달리 일주문, 천왕문, 금강문 등의 출입문을 두지 않고 누각인 대조루가 그 역할을 했다. 전등사 대조루는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잠시 쉬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만든 건물로 대웅전와 같은 방향을 하고 있지 않고, 지금은 수목이 우거져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 염하라고 불리는 강화해협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건물이 세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1932년에 크게 수리를 하였다고 하면, 유리문이 달려 있는 등 당시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

논산 관촉사, 고려초 지방호족 문화를 대표하는 은진미륵이 세워진 사찰

관촉사는 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고려초를 대표하는 '은진미륵'으로 잘 알려진 국내에서 가장 큰 불상 중 하나인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이 사찰은 968년(광종19) 혜명이 창건하였으며, 미륵보살입상과 관련하여 여러 설화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사찰은 낮은 야산이지만 넓은 평야지대 중심에 위치하여 사방이 내려다 보이는 반야산 중턱에 축대를 쌓아서 조성한 부지 위에 세워져 있다. 관촉사라는 이름은 미륵보살상의 이마에서 나오는 빛이 촛불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사찰내 문화재로는 은진미륵 외에서 불상에 걸맞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보물 232호로 지정된 관촉사 석등과 오층석탑, 배례석, 석문, 사적비 등이 있다. 사찰의 내력에 비해서 불전들은 오래된 것은 없고 ..

전국 사찰 2012.02.27

논산 쌍계사, 많은 민간전설을 간직한 논산지역을 대표하는 사찰

논산 쌍계사는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불명산에 있는 사찰로 보물 408호로 지정된 대웅전이 있다. 이 사찰은 고려초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세운 혜명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사찰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지만, 대웅전과 사찰부지의 규모로 볼 때 큰 규모의 사찰로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사찰이었던 것 같다.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나 석탑등은 없고 사찰입구에 오래된 부도군과 쌍계사 중건비가 남아 있다. 중건비의 내용으로 볼 때 현재의 사찰은 조선후기인 1739년(영조15)에 그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 사찰은 공식적인 기록보다는 이 지역 서민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 사찰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편이고, 명산이 위치한 사찰이 아니..

전국 사찰 2012.02.25

논산 개태사,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창건한 사찰

개태사는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사찰로 936년(태조19)에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태조 왕건이 후백제 신검에게 항복받은 황산에 개태사라는 이름으로 절을 창건하였다. 개태사는 초기에는 태조왕건의 영정이 봉안되고 주요 제사를 주관하는 등 중요한 사찰이었으나, 고려 수도인 개경과 거리가 떨어져 있었던 까닭에 주목을 받지 못하고 조금씩 쇠퇴하였다. 조선 전기 세종대에 잠시 중흥기를 가졌지만 그 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폐허가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개태사는 태조 왕건이 창건한 개태사와는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김광영이란 여승이 옛절터에 묻혀 있던 삼존석불을 찾아내 그 자리에 절의 세운 것이라 한다. 현재 사찰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며, 한..

전국 사찰 201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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