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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현실은 미이라를 보관하고 있는 석관과 석관이 들어가 있는 사당이 들어가 있는 방이다. 신왕국시대 왕들의 미이라는 대체로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곳에서 발견된 무덤의 설계도가 그려진 파피루스에서도 알 수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은 도굴이 되지 않아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사당은 실제로 무덤내부에서 조립된 것으로 투탕카멘의 무덤은 4개의 사당으로 되어 있다. 사당 외부에는 푸른색으로 상감해 넣은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데 '안정'과 '보호'를 뜻하는 상형문자로 적힌 부적들이 배열되어 있다. 사당 입구에는 설화석고 항아리와 지팡이, 활과 화살통 등이 놓여 있다.

 현실 외벽에는 이집트인들이 생각한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당시 일반인들의 장례에 사용된 '사자의 서' 내용이 반영된 그림들이다. 출발점이 되는 동쪽편 벽면에는 상여를 운반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북쪽편에는 제사장이 미이라의 입을 여는 의식을 표현한 장면, 투탕카멘이 하늘의 여신 누트를 마나는 장면, 부활의 신 오시리스 앞에 서 있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고, 서쪽편에는 태양의 배가 여행하는 모습과 12달을 상징하는 12마리의 비비 원숭이가 태양의 배를 맞이하는 장면, 태양의 배에서 아침태양의 상징인 풍뎅이가 원기를 회복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은 입구인 동쪽벽에는 지하세계의 여신 하토르고 앙크의 십자가를 투탕카멘의 입에 대고 있고, 그 뒤로 죽음의 신 아누비스와 이시스여신이 서 있는 대표적인 부할의 장면이 그려진 벽화가 그려져 있다.

현실
전신에서 유물을 발굴한 후, 하워드 카터와 카나번경은 1923년 2월 17일 현실을 열었다. 이 방은 하나의 거대한 금박 사당이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당의 덮개를 열자 내부에는 사당이 3개 더 들어 있었다. 4번째인 가장 안쪽의 사당 안에서 발굴자들은 무거운 석관을 발견하였는데, 그 안에 3개의 관이 있었다. 석관과 과나을 열기 위해 사당을 먼저 해체하고 치우는데만 몇 달이 걸렸으며, 비좁은 공간에서의 작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석관 내부에서 카터는 마침내 미라 형태의 관 3개를 발견했으며 이들 관 내부에도 관이 하나씩 더 겹쳐져 있는 것으로 발견했다. 가장 안쪽의 관은 110kg의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 머리에 황금 마스크를 쓴 투탕카멘 왕의 미라가 들어 있었다. 바깥쪽 함과 묘실 벽 사이의 좁은 통로에도 많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의식에 사용되던 것들인데, 왕이 하늘을 가로질러 항해할 때 쓰는 노도 있다. 나머지 것들은 개봉된 사당 앞에 있던 기름 램프 등을 포함하여 이집트인의 일상 생활용품들이다. 램프는 연못에서 떠다니는 연꽃의 꽃봉오리와 잎으로 표현되어 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투탕카멘이 무덤에서 보물이 쌓여 있던 전실을 지나면 투탕카멘의 미이라가 있는 방인 현실로 들어서게 된다. 현실에는 4면에 파라오가 사후세계로 여행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고, 중앙에는 미이라를 보관한 석관이 들어 있는 사당이 방을 가득채우고 있는 형태이다.


파피루스에 그려진 사당이 있는 람세스 4세의 무덤 설계도. 신왕국시대 파라오들의 무덤이 있는 왕가의 계곡에 조성된 무덤들은 대체로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비교적 권력이 약했던 투탕카멘이 무덤은 왕가의 계곡에 있는 무덤들 중에서는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현실, 부활의 장소
투탕카멘의 미라가 있는 무덤의 현실은 목곽 형태의 커다란 사당으로 거의 꽉 차 있었다. 그 안에 세 개의 사당이 더 들어있었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품은 모양으로 숨겨져 있었다. 그 한가운데 투탕카멘의 석관이 놓여 있었다. 사당들과 석관은 고대의 예배당처럼 생겼는데 이것은 영원의 집을 의도한 것으로, 그 안에서 파라오는 왕벽한 보호 아래 쉴 수 있었다. 사당을 이룬 면은 현실 바닥 위에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다. 사당의 각 부분은 분리된 채 현실 안으로 들여 와 하나씩 차례대로 조립돼 제일 바깥쪽 사당으로 마감됐다. 사당의 각 부분은 정확히 조립될 수 있도록 사전에 표시를 해 두었다. 파피루스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후대 왕들의 장례에도 겹쳐진 사당들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거대한 사당들은 이집트 신왕국시대 파라오들에게 표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투탕카멘의 미이라는 현실에 있는 사당안에 모셔져 있는데, 그 안에는 3개의 사당과 석관이 있고, 석관 안에는 여러겹의 관속에 황금마스크를 쓴 투탕카멘의 미이라가 있었다. 사당 바깥에는 매듭모양의 부적이 나타나 있는데 이는 '안정'과 '보호'를 뜻하는 상형문자들이다.


사당 바깥쪽 벽면에 매듭모양의 글씨로 적혀진 부적들. '안정'과 '보호'를 뜻하는 상형문자들이다.


사당 바깥쪽에 상형문자로 적혀 있는 글씨들과 함께 표현된 동물 몸체모양의 그림


사당 바깥쪽 모서리에 적혀 있는 상형문자 기록들과 카트루시


카터가 만든 현실의 도면에는 사당과 석관, 바깥관 등을 포함하여 발견되 모든 유물들이 표시되었다.

사당과 석관, 영원을 위한 집
가장 바깥쪽의 첫번째 사당은 이집트 왕이 기념일을 축하하는 장소인 이중 구조의 예배당 모습을 띠고 있다. 사당의 겉면은 푸른색 파이앙스를 상감해 넣은 무늬로 장식됐다. 여기에는 두 개의 도금된 제드 기둥 모양의 부적과 두 개의 이중 매듭 부적이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각각 '안정'과 '보호'를 뜻하는 상형문자다. 장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를 보면 알 수 있듯, 다른 왕이나 개인들도 또한 이런 식으로 사당을 장식했다. 첫번째 사당의 문을 열면 그 뒤에 설화석고 항아리와 장식 지팡이, 활과 화살통이 놓여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 사당 사이에는 텐트형 구조물이 있었다. 구조물의 기둥 네 개가 금박의 청동 장미로 장식된 아마포 천을 들어 올려 지탱하고 있었따. 이 천은 장미장식의 무게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카터가 오랜 동안 발굴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외부에 그대로 노출돼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세번째와 네 번재 사당 사이의 비좁은 공간에는 활 몇개와 아름답게 장식된 부채가 간신히 놓여 있었다. <출처: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사당은 이집트의 예배당과 같은 모습을 뛰고 있으며, 내부에 3개의 사당과 석관이 겹겹히 놓여 있다. 사당 앞에는 설화석고 항아리, 장식지팡이, 활과 화살통 등이 놓여 있다.


사당 위에는 이집트의 신전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날개달린 태양이 사당입구를 비춰주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 상형문자로 쓰여진 글씨들이 남아 있다.


사당 출입문 안쪽에 상형문자로 적혀진 글씨들


4번째 사당 안에는 투탕카멘의 미이라가 있는 석관이 있다. 석관 모서리에는 날개달린 이시스여신으로 보이는 조각상이 있다.

의례용 모형들, 부활을 돕는 도구
현실 바닥에서 발견된 도구들은 장례용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 도구들 중에는 특정 절차를 상징하는 의례용 모형들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 모형들은 죽은 왕에 대한 영원한 봉사를 약속하는 상징이었다. 왕이 관 속에서 안식을 취하는 동안, 의례의 핵심 요소들은 여전히 이 상징물들을 통해 살아 있었으며, 이런 방식으로 왕에 대한 의례는 무덤속에서도 지속됐던 것이다. 가슴에 머리를 기댄 거위 조각상은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낭독되던 글귀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인이 하늘로 올라가고자 하는 염원을 표현한 것이다. 하늘의 문이 열릴 때까지 고인은 거위의 모습으로 꽥꽥하고 크게 울었을 것이다. 탑 모양의 두 입구 사이에 항아리 모형이 놓여 있는 것이 눈길을 끄는 데, 이는 동쪽의 두 산봉우리 사이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항아리는 정화의식을 상징한다. 태양신은 매년 그의 치세가 새롭게 시작하는 때인 새해 첫날에 승천하기 전에 이 항아리를 사용해 목욕재개를 한다. 오시리스 역시 지하세계의 통치자로 등극하기 전에 정화의식을 치른다. 따라서 이런 모형은 투탕카멘이 사후에 오시리스로 환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바깥쪽 첫번째 사당과 현실의 북벽 사이에는 노가 11개 놓여 있었는데, 손잡이는 서쪽, 몸체는 동쪽을 향해 있었다. 이 노는 밤 사이 지하세계를 가로지르는 태양신의 영행에 필요한 방향키 역할을 했다. 방이 북서쪽 구석에 검은 칠을 한 나무로 만든 두 개의 예배당 모형이 있었다. 그 속에는 미라를 만드는데 사용했던 작은 소금그릇이 들어 있었다. 그 사이에 의례용 칼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으며, 그 끝은 물고기 꼬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칼은 '입을 여는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미라의 입술 사이에 끼워져 있던 것이데, 고인이 음식을 먹고 숨쉬고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입을 여는 의식'을 통해 고인이 부할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개 받침대 위에 놓인 금박의 목제 조각상은 기둥 위의 동물 가죽을 묘사한 것인데, 이는 바로 죽음의 신 아누비스를 상징한다. '이미우트'(싸여있는 남자라는 뜻)라고 알려진 주물 또한 목제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아누비스신을 표현한 것이다. 현실의 남서쪽 모서리에는 네 개의 도금된 목제 공예품이 있었는데 '깨어 있는'이라는 뜻의 상형문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것들은 장례식에서 여러 번 반복해 암송되는 '평화속에 깨어나라'라는 명령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사당 입구에는 사후세계로 부활을 돕는 의례용 모형들이 놓여 있다.


사당 입구에 놓여진 의례용 도구들

영원으로 가는 길

동쪽 벽
보물의 방 입구가 있는 동쪽 벽에는 투탕카멘의 미라가 든 관을 나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12명의 귀족이 상여를 운반하고 있다. 대머리 모습을 한 고관 2명의 앞에서 관복을 입고 걷고 있는 사람들은 소위 '9명의 친구들'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뒤쪽의 인물은 당시 유명한 사령관이었으며, 나중에 왕이 된 호렘헵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장례행렬은 이집트 '사자의 서'에 나오는 묘사가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첫 번째 사례다. 원래 '사자의 서'는 왕족이 아닌 일반인들의 장례의식에 사용되던 문서였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투탕카멘의 무덤 현실 벽면에는 사후세계로 여행하는 모습을 표현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첫번째에 해당하는 해가뜨는 동쪽편 벽면에는 투탕카멘의 장례행렬이 표현되어 있다. 12명의 귀족이 상여를 운반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대머리의 모습을 한 고관 2명의 앞에 '9명의 친구'들로 알려진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다. 제일 뒷편의 사람이 후에 파라오가 된 호렘헵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이라를 실은 관은 배의 형태를 하고 있는 가마에 실려져 끌고가고 있는데 뱃머리에 스핑크스 형상이 올려져 있다.

북쪽벽
장례 행력을 북족 벽으로 곧장 이어진다. 여기서 '아들'로 묘사된, 제사당 아이(Ay)가 죽은 파라오가 입을 열어 그가 내세에서 자신의 감각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입을여는'의식을 행하고 있다. 여기 새겨진 글에 의하면, 아이는 당시 이미 투탕카멘의 뒤를 이어 파라오가 된 상태였다. 다음 장면은 여성스런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하늘의 여신 누트 앞에 투탕카멘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인데, 미라를 감고 있던 붕대는 이미 사라진 상태다. 마지막 장면은 투탕카멘이 부활의 신 오시리스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남쪽 벽의 인물들과는 대조적으로, 북쪽 벽의 인물들은 아케나텐 당시의 아마르나 예술 양식을 좀 더 따르고 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북쪽벽에는 이집트의 장례의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입을 여는' 의식, 하늘의 여신 앞에 투탕카멘이 부활한 모습, 투탕카멘이 오시리스 신 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장면인 죽은 파라오가 입을 열어 그가 내세에서 자신의 감각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입을 여는' 의식을 행하는 장면이다. 투탕카멘에 이어 파라오에 오르는 제사장 세력을 대표하는 아이(Ay)가 죽은 파라오의 입을 열고 있다.


두번째 장면인 투탕카멘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지팡이를 들고 하늘의 여신 누트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이미 부활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세번째 장면으로 투탕카멘이 사후세계를 주관하는 오시리스신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서쪽벽
서쪽 벽의 벽화는 지하세계에 관한 왕실 책자인 '암두아트'의 첫번째 시간 중 한 구절을 묘사하고 있다. 웅크리 비비 원숭이 12마리가 지하세계로 가는 태양의 배를 맞이하고 있다. 맨 위쪽의 태양의 배에서는 아침 태양의 상징인 풍뎅이가 밤 사이에 원기를 회복한 것을 알 수 있다. 붉은색으로 새겨진 글자들은 텍스트의 비밀 암호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서쪽벽에는 12마리의 비비 원숭이가 지하세계로 가는 태양의 배를 맞이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맨위쪽에 있는 태양의 배에는 아침 태양의 상징인 풍뎅이가 원기를 회복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남쪽 벽/입구
남쪽 벽 입구에는 왕이 죽음의 신 아누비스(왼쪽)와 하늘과 지하세계의 여신인 하토르(오른쪽) 두 신 사이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원래 아누비스 왼쪽의 그림에는 이시스가 여성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고 그 뒤로 이어서 지하세계의 세쌍둥이 신들이 웅크리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현실에서 커다란 사당을 꺼내 반출할 때 어쩔 수 없이 파손됐다. 죽은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방의 벽에는 회반죽이 칠해진 작은 틈새가 음각되어 있어 이른바 '마술의 벽돌'을 지탱하고 있다. 벽돌에는 신들이 작게 그려져 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현실이 입구이자 남쪽벽에는 죽음의 신 아비누스와 지하세계의 여신인 하토르 사이에 서 있는 투탕카멘을 볼 수 있다. 원래는 아비누스 뒷편에 이시스 여신이 서 있었는데, 발굴작업당시 파손되었다고 한다.

무덤으로 가는 길, 각종 부장품과 의식
투탕카멘 무덤에 있는 많은 보물들은 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고대 이집트의 오랜 전통을 반영하는 것으로, 파라오가 내세로 안전하게 들어가도록 보장하는 것들이다. 이런 보물들은 왕이 죽으면 즉시 모아졌다. 왕의 생전에 장례를 위해 많은 부장품들을 미리 마련하여 왕실 저장소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의 모든 왕은 왕좌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무덤을 계획하고 장례물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왕이 즉위 후 너무 빨리 또는 갑작스럽게 죽으면 장례식에 쓸 수많은 물품들을 급조하여 만들어야 했다. 미완성된 물품들은 가능한 빨리 마무리지어야 했고 적합지 않은 비문들은 새로운 내용으로 바꾸어야 했다. 숙련공들은 70일 안에 이러한 정교한 작업을 마쳐야 했는데, 방부 처리장에서 시체를 미라로 만들고 관련된 의식들을 치르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 의식들은 죽은 자를 '변형된'모습, 즉 내세에서 갖게 될 새롭고 신성한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제문을 낭송하는 것으로 주로 구성됐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부장품을 만드는 숙련공의 모습을 그린 벽화


예물을 나르는 모습을 그린 벽화

미라를 만드는 과정이 끝나고 부장품들이 준비되면, 장례 행렬은 방부 처리장에서 무덤을 향해 엄숙한 행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로 개인 무덤들에서만 발견되는 그림에 이런 행렬이 묘사되어 있다. 행렬의 맨 앞에는 설매 형태의 장례용 운반기구 위에 올려진 관이 위치하는데, 미라의 내장이 담긴 파노포스 사당이 바로 그 뒤를 따르기도 한다. 다음 줄에는 고인의 하인과 수행원들이 궤를 운반하는데, 궤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그 위에 그려져 있다. 왕권을 상징하는 홀이나 왕족용 킬트, 파라오의 장식용 두건, 심지어 두 종류의 이집트의 왕관 등 왕의 상징물들이 왕족이 아닌 개인의 장례행렬들을 묘사한 것들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를 통해 고위 관리들이 왕의 장례의식에서 행해지던 관습들을 추종하던 정도를 알 수 있다. 초기 왕조 시대에 왕이 내세로 들어갈 수 있는가는 모든 백성에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왕이 사후에 신으로 존재하는것을 보장하려고 복잡한 의식이 생겨났다. 파라오의 궁정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왕실의 전례의식을 채택하기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여유 있는 사람 모두가 그것을 따라 했다. <출처: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오시리스 앞에서 무덤 주인, 장례 행렬과 의식

투탕카멘 무덤이 눈길을 끄는 것은 두가지 이유이다. 첫째, 왕묘 중 장례행렬 장면이 장식된 유일한 무덤이라는 점이고, 뚤재, 개인의 무덤 벽화에 묘사돼 있는 귀종한 장례용품들을 완벽하게 갖춘 유일한 무덤이라는 것이다. 매장의식은 무덤 앞에서 여러 신들의 조각상을 사용해 거행됐는데, 이 조각상들은 의식이 끝난 뒤 미라와 함께 무덤에 안치됐다. 투탕카멘 무덤이 갖는 또 다른 특징은 이 의식에서 사용된 조각상들이 모두 남아 있다는 점이다. 왕의 영혼이 내세에서도 영원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장례의식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각종 봉헌 의식을 통해 사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제공됐다. 매장 전에, 미라뿐 아니라 조각상에 대해서도 '입 벌리기'의식이 거행됐는데, 이는 사자가 매일 봉헌되는 음식물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만일에 대비해 무덤 속에는 특별 제작된 용기들을 갖추고 갖은 제수를 준비해 놓은 것이 수천년 동안 내려온 관습이었다. 살아있는 자들이 더 이상 사자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무덤이 도굴당하더라도, 벽화와 부조에 평면적으로 묘사됐거나 입체적인 모형으로 무덤에 안치된 먹고 마실 것들을 통해 죽은 자들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부장품 확인 목록이 적힌 석회석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