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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돈대, 월미산 정상에 세워진 돈대

인천 월미도 정상 부근에 쌓아 놓은 월미돈대이다. 조선후기 서울 부근 해안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쌓은 많은 돈대중의 하나로 현재에 있는 돈대구조물은 당시에 있던 것은 아니고 문헌을 통해서 그 위치를 추정하고 재현해 놓은 것이다. 월미돈대는 월미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인청항 도크 안쪽의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가 아주 잘 보일 뿐 아니라, 인천 앞바다를 오가는 선박들을 감시하기에 용이한 위치에 설치되어 있다. 월미산 정상 바로 아래에 쌓아 놓은 월미돈대. 산성처럼 일반적인 전투를 위해서 쌓은 것은 아니고, 해안을 지나가는 선박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월미돈대 올라가는 길 월미돈대 내부. 화포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곳 월미산 정상에서는 화포의 사거리 문제로 효용성은 많지 않았을 ..

인천 월미도, 월미산 공원

인천 월미도는 오랜 기간동안 시민들이 찾는 관광지로 그 명성을 유지해 왔으나, 월미도를 이루고 있는 작은 월미산은 인천항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까닭에 오랜 기간동안 군사보호구역으로 민간인을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었다. 2001년에 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월미산 정상에 올라서면 인천항의 전경이 발아래로 펼쳐지면 멀리 영종도와 인천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월미산을 오르는 입구에는 이 곳 분위기와는 잘 맞지 않지만 전국의 유명 고택과 정원을 재현해 놓은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월미산 정상 아래에 있는 전망대. 전망대에서 보이는 인천국제여객터미널. 전망대에 올라서면 인천항 전경과 서해안이 내려다 보인다. 월미돈대에서 내려다 본 인천항 전망대에서 보이는 월미산 정상. 정상부근에는 월미돈대가 있..

한국의 풍경 2010.04.01

인천 월미도 선착장

월미도는 지금은 육지로 변한 인천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열강들의 치열한 각축장이었던 이 곳은 유람선 선착장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바닷가로 변했다. 인천행 전철을 타고 인천역을 거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갈 수 있었던 곳이라서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곳이고, 그래서 유원지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행상들도 많고 약간 지저분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환경이 깨끗이 정비되어서 가족단위로 나들이를 즐길수 있는 곳으로 변신했다. 월미도 해안가 거리. 예전에는 자동차가 많이 더녀서 번잡한 거리였지만 지금은 보행자 전용도로로 바뀌었으며, 보도블럭을 깔아 놓고 있다. 곳곳에 조각상을 세워놓아서 낭만적인 거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며, 지금..

한국의 풍경 2010.04.01

원효로성당, 용산신학교 부속 성당

원효로성당은 이 곳에 세워진 용산신학교 부속 성당으로 명동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했다고 알려진 건물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헤 세워진 이 성당은 앞에서 보면 3층, 뒤에서 보면 2층 건물로 보인다. 언덕에 세워진 까닭에 실제 건물의 크기는 작지만, 상당히 웅장한 느낌을 주는 성당이다. 이 성당은 출입문이 왼쪽편에 있어 전체적으로 비대칭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붉은 벽돌로 쌓은 초기 성당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용산신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는 성심수녀회 소속의 성심여고가 자리잡고 있다. 이 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브라질의 상징인 리오의 예수상을 연상시키는 예수상이 두팔을 버리고 서 있다. 원효로 성당은 출입문이 정면에 있지 않고 왼쪽편에 있는 까닭에 전면 ..

용산신학교,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 (현 성심여고 교정)

용산신학교는 성직자 양성을 목적으로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건물로 1992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조지안양식을 사용한 건물로 명동성당을 비롯하여 초기 우리나라 성당을 설계.건축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했다고 알려진 건물이다. 초기 천주교인이 많이 순교한 한강변 새남터와 당고개가 가까이 보이는 곳이라 한다. 당시에 많이 유행했던 반지하에 지상2층, 또는 3층 건물로 볼 수 있는 건물로 아치형의 창호가 특징으로 당시에 지어진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창문이 큰 편이다. 부속성당인 원효로 성당과 더불어 우리나라 초기 성당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곳에 있던 신학교는 현재는 혜화동으로 이전했으며, 지금은 성심수녀회가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 곳은 현재 성심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성심여고 교정의 일부분으..

광화문사거리를 지겨온 동아일보 사옥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사거리를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건물인 옛 동아일보.동아방송 사옥이다. 지상6층은 콘크리트 건물로 타일로 외장을 장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언론사 사옥으로서는 당시에는 상당히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넓은 광화문 대로를 굽어보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지금은 교보빌딩을 비롯하여 주위의 고층빌딩에 눌려서 왜소한 느낌마져 주고 있다. 언론사 건물로서는 남아 있는 많지 않은 건물중의 하나로 광화문 대로와 함께 현대사를 지켜온 건물이다. 광화문사거리 빌딩숲에 둘려쌓여서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는 동아일보 사옥 동아일보 사옥 출입문. 당시 건축물의 특징은 좁은 출입문을 하고 있다. 1920년대 당시의 모더니즘 디자인의 특징을 보여주는 현관 위에서 옥탑..

부민관, 옛 태평로 국회의사당 (현 서울시의회)

태평로 서울시청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인 서울시의회 건물은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원래는 부민관이라는 현재의 국립극장과 같은 기능을 가진 건물로 조선총독부에서 세운 건물이다. 70년대에 세워진 세종문화회관이 주는 웅장함을 당시에는 주었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다. 해방전에는 각종 공연장으로 사용하였으며, 해방후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면서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건설되기 전까지 일어났던 수 많은 정치적 사건의 현장이기도 한다. 지금은 서울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으며,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조용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서울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로인 태평로에 위치한 서울시의회 건물. 지상3층의 현대식 공연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서울시 의회건물인 옛 부민관 첨탑. ..

서울 정동 구세군중앙회관

구세군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한 개신교로 매년 크리스마스때면 등장하는 구세군 자선남비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한성공회와 함께 영국에 기원을 두고 있는 까닭에 구한말 영국대사관이 정동 덕수궁 뒷편에 생기면서 같이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영국대사관 뒷편에 위치한 구세군 중앙회관은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덕수궁 석조전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한국에 있는 오래된 서구건축물 중의 하나로 크지는 않지만 잘 지어진 건물로 여겨진다. 붉은 벽돌조 외관을 하고 있는 구세군중앙회관. 출입구는 그리스 신전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는데, 영국런던에 위치한 대영박물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좌우대칭을 잘 이루고 있는 건물 외관 구세군중앙회관 오른편에는 최근에 지은 부속건물이 있는데, 실제 예배는 이 곳에는 보..

정동빌딩, 리모델링이 끝나서 건축가 김수근 흔적은 잘 보이지 않지만...

정동길에서 서대문으로 나오는 입구에는 옛날 MBC정동사옥이 현 경향신문 사옥 뒷편에 있었던 낡은 빌딩은 어느덧 리모델링이 끝나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정동빌딩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물로서 한때는 많은 연예인들이 드나들던 방송국 건물로도 쓰였고, 최근에는 '난타' 공연장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건축가 김수근의 특징의 굵지 않은 콘크리트 기둥은 지금은 유리벽 안에 그 흔적을 남겨 놓고 있다. 건축가 김수근 작품이었기에 철거되지 않고 리모델링한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단순한 오피스빌딩을 사용될 예정으로 보인다. 타워처럼 생긴 빌딩과 공연장처럼 생긴 건물로 이루어진 정동빌딩. 예전의 김수근 건축의 특징은 굵지않은 콘크리트 기둥이 주는 70년대 분위기는 없어지고 지금은 유리로 외장을 하고 있다. 리모델링..

정동 구러시아공사관, 하얀 탑만 남은 구한말 아관파천 현장

정동 덕수궁 뒷편 언덕위에 남아 있는 구한말 러시아 공사관이다. 현재는 출입문이 하얀 탑만 남아 있다. 구한말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위협을 느낀 고종이 잠시 피신을 했던 곳으로 역사적인 사건인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덕수궁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구한말의 힘겨운 역사를 말해주는 건물이다. 한국전쟁시 대부분의 건물이 심하게 파괴되었다고 하며, 냉전체제하에서는 비어 있었던 건물터로서 90년대 초 한.러 수교시 러시아에서 돌려달라는 이야기도 있었던 곳이다. 현재 러시아대사관은 배재고등학교가 이전한 자리 일부에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정동빌딩 옆 언덕 위 제일 높은 곳이 위치한 옛 러시아공사관. 현재는 하얀 탑만 남아 있고, 지하실도 남아 있다고 한다. 르네상스풍으로 만든 건물이라고 ..

정동극장, 전통예술 공연 <미소>를 상연하고 있는 무대

정동교회 맞은 편에 위치한 정동극장은 1995년 국립중앙극장 분관 형태로 개관한 공연무대이다. 지금은 10년 이상 장기 롱런하고 있는 전통예술 공연 를 공연하고 있다고 한다. 건물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마도 전통 예술을 공연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는 극장으로 보인다. 구한말 서구세력이 터를 잡었던 정동지역에서 전통예술을 공연하는 무대가 있다는 것을 참 아이러니한 일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정동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정동극장. 정동 분위기에 맞게 붉은 벽돌로 외벽을 장식하고 있다. 현재 공연중인 전통예술공연인 를 안내하는 광고판이 걸려 있다. 건물자체는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낮고 아담하게 지었다. 공연장 외벽에 걸린 부조 조각 명창 이동백. 구한말 고종의 총애를 받아 정3품의 벼..

서울 정동 옛 신아일보 별관

서울 덕수궁 뒷편에 위치한 옛 신아일보 별관 건물이이다. 원래는 지하1층, 지상2층으로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며, 현재는 지상 4층의 건물이다. 1960년대 신아일보사에서 별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구한말에서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열강의 대사관들이 많이 위치하고 있는 이 곳 정동의 서구적 분위기에 가장 맞는 붉은 벽돌로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건물이다. 정동길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옛 신아일보 별관 건물. 장식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건물 출입구. 계간을 걸어서 올라가게 되어 있는 당시 미국풍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직도 신아일보 별관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1930년대에 지­1930년대에 지하1층 지상2층으로 건축된 철근콘크리트 건물. 1969년 신아일보사에서 매입, 별관으로 ..

배재학당 동관, 근대교육의 산실

서울 정동 옛 대법원청사였던 서울시립미술관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배재학당터에 남아 있는 당시의 건물이다. 이화학당과 더불어 1885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 중 하나로 미국인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세웠다고 한다. 정동의 건물배치를 서대문인 돈의문터에서 시작해서 남대문까지는 창덕여중, 이화학당, 정동교회, 배재학당, 서울시립미술관, 상공회의소, 삼성그룹빌딩군 등 공공기관 성격의 건물들이 옛 한양도성 성곽을 허문 자리에 들어서 있다. 아마도 구한말 이 곳 성곽을 허물고 외국인들에게 부지를 내어 준 것으로 보인다. 배재학당의 후신인 배재고등학교는 지금은 강동구로 이전하고 지금은 재단관련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배재학당 건물 중 현재까지 남아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배재학당 동관. 건물상태가..

중림동 약현성당, 최초의 벽돌조 서양식 교회 건축물

중림동 약현성당은 서소문 종로학원 맞은편 중림동 시장 뒷편 언덕 위에 자리납고 있는 성당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어진 벽돌조 교회 건축물이라 한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많이 처형된 '서소문 밖 네거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라고 한다. 초기에 세워진 성당 건축물로서 규모는 크지 않고, 언덕위에서 서소문을 내려다 보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성문밖의 서민주택이 밀집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약간은 얼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으로 서소문과 화려한 서울 시가지 중심을 내려보고 있다. 중림동 약현성당 전경. 약현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한양도성으로 들어오는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어 높지는 않지만, 사대문안이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약현성당 정문과 옆면 출입구. 출입무과 창문은 대부분 아치형..

명동성동 본당,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회 건축물

명동성당 본당 건물은 1898년에 완공된 벽돌로 쌓은 교회 건축물로서 프랑스 선교사 코트스신부가 설계해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명동거리 중심부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건물은 고층빌딩이 들어선 도심에서 아직도 이정표 역할을 할 정도로 눈에 띄는 건물이다. 고층건물이 없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본다고 생각하면, 이 건물이 얼마나 인상적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붉은 벽돌로 쌓았는데 다양한 모양의 벽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카톨릭의 총본산으로 이 성당이 생겨난 이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해 왔던 성당이다. 건물의 형식은 중세에 성당건물에 많이 사용되었던 순수한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실제 건물규모에 비해서 그 위치적 특성과 건물 설계로..

명동입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동입구에 소공동에 자리잡고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은 70년대말 개점한 이후 당시 최대의 백화점은 신세계백화점을 누르고 국내최대의 백화점을 자리잡은 곳이다. 아직도 명동에 인파가 붐비고 젊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롯데백화점이 존재하기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의 백화점 본점건물에 옛 미도파백화점, 그 사이의 명품관을 더해 엄청난 규모의 쇼핑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며,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롯데호텔과 함께 거대한 건물군을 이루고 있다. 70년대말 개관한 롯데백화점 본관 건물.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규모의 백화점이었다고 한다. 신세계백화점과 함께 한때 서울의 쇼핑을 주도했던 옛 미도파백화점 건물은 지금은 롯데백화점 영플라자로 변신해 있다. 가장 최근에 개점한 롯데백화점 명품관 롯데백화점과 함께 붙어 ..

남대문로 한국전력 사옥, 등록문화재 1호

우리나라 등록문화재 1호로 지정된 남대문로 한국전력 사옥이다.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건물 크기도 크지 않고, 디지인인도 특출난 것은 아니지만, 1920년대에 지어진 경성전기주식회사의 사옥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내진.내화 설계가 적용되었으며,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이라고 한다. 지하철2호선 을지로 입구역을 나서서 명동방향 첫번째 건물로 눈에 띄는 건물은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근.현대사에 의미가 있는 건물이어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하철2호선 을지로입구역에 있는 한국전력사옥. 지상7층으로 건물로 원래는 5층이지만 해방후 2개층이 증축되었다고 한다. 건물 출입문.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창문과 출입문이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큰 편이다. 남대문로 한국전력 사옥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유리블럭이 사..

명동예술극장, 명동이란 이름의 근원이 되는 옛 '명치좌' 건물

명동의 중심 도로라 할 수 있는 옛날 미도파백화점에서 명동성당까지 들어오는 길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명동예술극장이다. 이 공간은 원래 1934년 일본이 영화 전용관으로 건립한 바로크 양식 건축의 명치좌 였으며, 해방후 시공관을 거쳐서 국립극장으로 사용하다가, 그 후 오랫동안 금융기관 영업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최근에 명동예술극장은 '옛 명동 국립극장'으로 쓰였던 건물을 복원하여 새롭게 탄생한 연극 전문 공연장으로 우리나라 문화에술의 중심지였던 명동의 역사를 복원하여 '문화가 숨쉬는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옛날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건물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신파극 분위가 물씬 풍기는 명동의 중심에 위치한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 출입문. 옛날 극장 출입문..

광통관, 가장 오래된 은행점포 중 하나인 우리은행 종로지점

광통관은 청계천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인 광통교 바로 앞에 있어서 광통관으로 불린다. 구한말 현재의 재경부격인 탁지부에서 강당격인 집회소로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건물이다. 당시 창립했던 천일은행의 영업장으로 사용할 목적이 더해져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지상2층의 벽돌조 건물로 1층은 은행영업장과 사무실, 2층은 집회실 등을 두었다고 한다. 건물 윗부분에는 바로크식 돔을 얹었다고 한다. 1914년 화재 후 현재의 모습을 많이 바뀌었고, 그 후 수차에 걸친 수리로 인해서 내부의 원형은 남아 있지 않지만, 외관은 화재 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우리은행 종로지점에서 사용하고 있다. 지상 2층의 건물로 양쪽에 돔을 얹어놓고 있으며, 아치형이 많이 강조된 우리은행 종로지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광통관..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분수광장

서울 신세계백화점은 1930년 일본 미쓰코시백화점으로 시작한 지금은 없어진 종로의 화신백화점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이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실시하여 고풍스러운 멋은 없어졌지만,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 신세계백화점이 있는 자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주로 거주하던 남촌의 대표적인 건물로 서울시청의 전신격인 경성부청이 있던 자리이다. 맞은에 위치한 조선은행, 경성우편국과 더불어 행정 및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제일은행 본점과 나란히 하고 있던 이 건물은 현재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장소이다. 리모델링이 끝난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현재 모습. 옛건물은 원형을 유지한채 리모델링을 완료했으며, 뒷편에 새로운 건물을 신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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