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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대웅전, 우리나라 불교의 중심인 조계사 중심 불전

조계사는 한국 불교를 이끌어 가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이 자리한 곳으로 서울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원래 한양도성안에는 원각사 외에는 사찰이 없었으나 일제강점기 만해 한용운 선생을 중심으로 불교 개혁운동의 중심지로서 이 곳에 조계사를 건립하였다. 그래서 조계사에는 불전이 많지 않지만 도심 포교의 중심으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조계사 대웅전은 원래 정읍에 지어진 보천사 십이전을 옮겨온 것으로 1920년대 지어진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사찰 건축양식을 적용해서 대형화한 불전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계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대웅전 앞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우뚝 서 있고, 그 옆으로는 조계사를 찾은 많은 신도들을 위해서 천막을 쳐 놓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웅전 문살과 다포계 공포..

제야의 종소리를 울려주는 보신각 (종각)

한양 도성을 동서로 가로 지르는 큰 도로를 종로라고 부르는데 그 이름으니 근본 내력이 되는 시간을 알려주던 종을 걸어놓았던 곳이 보신각이다. 종각이라는 부르기도 하는 보신각은 고종이 보신각이라는 사액을 내리면서 현재의 이름이 정해졌다. 보신각에 걸려 있던 종은 원래 원각사에 있던 종을 이 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하는데 1985년까지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이 보신각에서 하루에 2번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려주는 역할을 해 왔으로 당시 한양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표준시계와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다. 보신각 누각은 오랜 기간동안 수차례에 걸쳐서 새로 지어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년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앞면5칸, 옆면3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보신각. 2층 누각..

조선 관아 2010.03.21

대원각사비, 원각사지 내력을 적은 비석

종로 탑골공원에 있던 사찰인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대원각사비이다. 조선 성종때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거북모양으로 만든 귀부 위에 대리석으로 비석을 세워 놓았는데, 용이 비석을 휘감고 있는 중국풍의 비석이다. 당시 국가 주도로 만든 비각이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탑비보다는 만든 수법이 떨어지고 약간 성의가 없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원각사지10층석탑과 함께 이 곳의 원각사 옛터였음을 알려주는 대원각사비. 머릿돌을 따로 두지 않고 몸돌과 머릿돌이 하나로 되어 있다. 대원각사비 거북받침돌. 조각수법이 고려시대 탑비들에 비해서 많이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거나 생동감을 많이 주지는 못하고 있다. 비석의 몸돌과 머리돌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고, 두마리의 용이 비석을 감싸는 모양이다. 비문은 당대의 명신들인..

원각사지 십층석탑 (국보 2호), 유리벽에 갇힌 탑골공원 석탑

서울의 중심으로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이래 오랜 기간 역사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던 탑골공원이 원래는 사찰이었음을 말해주는 국보 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십층석탑이다. 경천사지석탑과 더불어 고려말, 조선초를 대표하는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으로 도교사상이 들어가 있는 많은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원나라의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석탑으로 또다른 북방민족이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수도 북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조각상들이다. 이 곳에 원각사라는 절을 세운 사람은 단종을 폐위시키고 무력으로 왕좌에 오른 수양대군, 즉 세조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많은 살생을 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피를 많이 본 민족인 토번족인 티벳인,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라마교를 많이 숭상하고 이런류의 조각상을 많이..

청계천 세운상가, 건축가 김수근 설계한 70년대 대표하는 상가 건축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는 청계천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했던 한때 우리나라 전자산업을 이끌었던 곳으로, 종묘 앞에서 퇴계로에 이르는 4동의 상가 건물을 말한다. 80년대 용산전자상가가 생기면서 그 기능이 많이 퇴색되었고, 지금은 낡고 슬럼화된 건물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물이다. 외부로 드러난 많은 콘크리크 기둥이 김수근 건축작품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건물은 상가 건물을 중심으로 양쪽 도로에 날개처럼 2층에 인도를 만들어 놓고 있다. 서울 도심을 가르는 종로, 청계천, 을지로, 퇴계로 사이를 일관성있게 연결해 놓고 있다. 한때는 조립컴퓨터를 만들어 파는 곳으로, 한때는 불법소프트웨어 복제로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서울 녹지축 건설사업으로 철거될 예정이라고 한다. 유..

[화성 행궁] 북군영, 집사청, 느티나무

수원 화성행궁 입구인 신풍루 오른편에 위치한 건물군으로 수원 화성 장용외영 친군위가 숙직하던 북군영과 행궁의 잡무를 맡아 보던 집사청이 자리잡고 있다. 화성행궁에는 기병으로 구성된 장용외영의 핵심 병력인 친군가 수직근무하던 북군영과 남군영이 신풍루 좌.우에 자리잡고 있으며 각기 100명씩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장용외영 기병들이 숙직근무하던 북군영. 지휘부가 숙식하던 건물로 보이며, 주위에 행각들로 둘러져 있다. 북군영 행각들 북군영 '화성성역의궤'에는 관아건물로 분류해 놓았다. 장용외영의 친군위(화성의 기병)는 처음 좌.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곳이 남.북군영이다. (화성행궁 전체는 동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방위로 볼때 남쪼과 북쪽방향에 군영이 있다.) 1789년 군영 24칸을 지은데다..

조선 관아 2010.03.18

[화성 행궁] 화령전 풍화당(재실), 전사청, 내삼문, 외삼문

화성행궁 화령전은 정조대왕 어진을 모신 운한각을 중심으로 부속 건물로 재실인 풍화당, 화령전 관리들이 업무를 보는 전사청이 있으며, 전주의 경기전과 마찬가지로 외삼문과 내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풍화당과 전사청은 건물이 크지 않으면서 소박하고 경건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내.외 삼문 또한 장식성이 거의 배제된 경건한 분위기이다. 화령전 풍화당은 재실로서 제향이 있을 때 제를 올리는 사람이 미리와서 머무는 건물이다. 풍화는 사회의 풍속과 기강을 교화시킨다는 의미이다. 전사청은 화령전을 관리하는 관리들이 업무를 보는 건물로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복원한 건물로 보인다. 화령전 내삼문 화령전 내삼문 안쪽에는 삼도가 있고, 바깥쪽에는 신도만 있다. 화령전 내.외삼문에는 혼령이 드나들 수 있도록 큰 틈을 두고 있다..

궁궐_종묘 2010.03.18

[화성 행궁] 정조대왕 어진을 모신 화령전 운한각

수원 화성행궁에서 정전격이 봉수당과 각종 연회나 행사가 열리던 화성행궁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물인 낙남헌을 지나면 오래된 큰 목조 건물을 중심으로 한 건물군을 볼 수 있다. 이 곳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건설한 정조대왕 어진을 모신 화령전으로 정조대왕의 아들인 순조가 세운 봉안각이다. 화령전은 정전인 운한각을 중심으로 재실인 풍화당,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비상시 어진을 옮겨놓은 이안청, 내삼문, 외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령전은 1800년대에 세운 건물이 온전히 남아 있는 곳으로 화령전 정전 내부에는 군복을 입고 있는 정조대왕의 어진이 있다. 조선후기에 세워진 대표적인 목조건물이라 한다. 화령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목조 건물로 앞에는 월대가 세워져 있는데, 궁궐 정전 건물과 비슷..

궁궐_종묘 2010.03.18

[화성행궁] 행궁건물 중 유일하게 남은 낙남헌, 득중정과 노래당

화성행궁의 많은 건물 중에서 원래 있었던 건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낙남헌이라고 한다. 행궁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로 화성유수가 사용하는 건물과는 별개로 국왕 자신을 위해서 세운 건물로 보이면, 넓은 마루가 있고 앞 쪽에는 마당이 있어 행사하기 좋았던 장소로 보인다. 이 곳에서 정조의 화성 행차시 과거나 양로연 등 각종 행사가 펼쳐졌던 곳이다. 낙남헌 안쪽으로는 작은 정자건물로 지은 득중정이 있고, 건물 뒷쪽편에는 정조자신이 양위 후 쉴 곳으로 마련한 노래당이라는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이 세건물은 각각 독립된 이름이 있지만 건물들이 연결되어 있고, 화성행궁에서 정조대왕 자신을 위해서 마련한 건물로 보인다. 낙남헌은 앞면 5칸은 대형 건물로 누각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는 건물로 보인다. 건..

조선 관아 2010.03.17

[화성행궁] 장용외영 군사들이 숙식하던 남군영과 서리 사무실인 서리청

화성행궁은 국왕 행차시 머무는 행궁과 화성유수가 근무하던 화성유수부 관청, 그리고 정조의 친위부대라 할 수 있는 장용영 군사들이 머물던 군영의 역할을 같이 하던 곳이다. 수원화성에는 장용외용 군사들이 머물렀던 곳이라 하며 행궁 출입문인 신풍문 좌.우로는 장용영 군사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기병들로 구성된 친군위가 숙식하던 남.북군영이 자리잡고 있다. 이 군영들을 보면 국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정조대왕의 장용영에 대한 의중을 엿볼 수 있다. 남군영과 외정리소 사이에는 화성유수에 근무하던 말단 관리들의 사무실인 비장청과 서리청이 자리잡고 있다. 화성행궁 제일 앞쪽에 위치한 남군영 건물. 앞면 5칸 규모의 건물로 아마도 사무실과 지휘부가 숙직하던 장소로 생각된다. 복원된 건물이지만 당시 화성의궤에 워낙 세밀..

조선 관아 2010.03.17

[화성행궁] 행사를 준비하던 외정리소, 비장청

화성행궁 유여택 앞쪽으로는 화성행궁과 화성유수, 장용영과 관련된 관청인 외정리소, 비장청, 서리청, 남군영 건물이 모여있다. 그중 외정리소는 역대 임금이 화성행궁을 행차할 때 행사를 담당하는 관청으로 당시 화성행차른 준비에서 결과정리까지 모든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화성유수가 그 업무를 겸임했다고 한다. 지금도 정조시절 화성행차 결과를 정리한 원행을묘정리의궤는 화성성역의궤와 함께 우리의 빼어난 기록유산으로 남아 있으며, 수원화성의 의미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화성행궁 유여택 앞에 있는 외정리사. 사람이 근무하던 사무실과 같은 건물도 있고, 행사를 정리하기 위해한 많은 책자 등을 보관하기 위한 다락방으로 행각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많은 물건들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리사가 행사의준비를 위..

조선 관아 2010.03.17

[화성행궁] 유여택, 정조의 집무공간이자 화성유수의 처소

수원화성 유여택은 정전인 봉수당 출입문인 중앙문 왼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이다. 평소에는 화성유수가 업무를 보며 머무는 공간으로 많은 신하들이 도열할 수 있도록 앞에 넓은 마당과 행각을 두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정도의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건물로 오른쪽편에 누각을 두고 있다. 일반 관청건물의 성격에 당시에 유행하던 권문세가 대저택의 사랑채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 앞에는 월대를 두고 있으며, 누각 앞에는 해시계가 있다. 건물 중앙에 마루를 두고 집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마루 양쪽에 방을 있다. 유여택 앞 마당은 궁궐 정전의 마당보다는 작지만 규모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화성행궁에서 정조가 집무를 보던 건물인 유여택. 마당에서 본 유여택..

조선 관아 2010.03.17

[화성행궁] 화성유수 거처인 복내당, 대장금 촬영지

화성행궁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이자 실제 이 곳을 집무를 보던 화성유수 가족이 거처하던 내아이다. 화성행궁의 성격자체가 국왕이 잠시머무르는 행궁의 성격과 수원화성을 책임지던 화성 유수의 집무공간이었던 까닭에 이 곳 화성행궁 복내당은 화성유속 가족들이 거처하던 주택과 행궁을 방문하는 국왕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숙식을 지원해야하는 역할이 있었다. 그래서 복내당은 행각들이 상당히 많고, 국왕이 잠시 거처하던 봉수당과 장락당이 바로 붙어 있다. 아마도 정조대왕 시절에는 화성유수부 가족들이 거처하는 공간이었지만 실제로 거처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국왕을 보필하는 인원들이 이 곳 복내당에 머무러면서 행사를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화성유수 내아인 복내당. 건물자체로는 커지 않고 일반 저택과 비슷한 형..

조선 관아 2010.03.17

[화성행궁] 침전으로 쓰였던 장락당과 출입문 경룡관

화성행궁 장락당은 행궁의 침전으로 쓰였던 건물로, 봉수당 남쪽에 세워졌다. 정조가 화성을 행차할 때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정전이자 편전건물인 봉수당과 연결되어 있으며, 행궁으로써 많은 방을 두고 있지는 않다. 경룡관은 장락당을 출입하는 바깥문으로 2층누각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2층에는 누마루가 있고 그 아래로 출입하는데 지락문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있다. 화성행궁 장락당은 옆면3칸, 앞면 4칸 규모의 크지 않은 건물로 봉수당과 연결되어 있다. 장락궁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장락궁이라는 이름을 짓고 직접 편액을 썼다고 한다. 원래의 건물과 편액은 남아 있지 않고, 복원한 것이라 한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침전에 드는 모습을 재현..

조선 관아 2010.03.16

[화성행궁] 정전인 봉수당과 출입문인 중앙문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이자 화성유수부 동헌건물로 원래의 이름은 정남헌이었다 한다. 정조는 화성행차시 이 곳에 머무르면서 정전으로 사용하였다. 정면 9칸의 대형 건물이지만, 월대는 궁궐건물 전각보다 낮고, 지붕 귀마루에 잡상을 올려놓음으로써 궁궐건물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곳 봉수당에서는 정조대왕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비인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열렸다고하며 이 곳에 그 모습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부터 있던 화성행궁 건물은 아니고 1997년에 복원한 건물이다. 원래 건물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원래대로 고증을 거쳐서 복원했다면 후손들에게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점이 좋아 보인다. 앞면 9칸의 팔작지붕을 한 화성행궁 정전격인 봉수당. 화성행궁의 침전격인 장락당과는 건..

조선 관아 2010.03.16

[화성행궁]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두번째 출입문인 좌익문

수원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임시로 머물던 행궁으로 전국의 행궁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이다. 원래의 목적은 수원유수가 업무를 보던 건물로 그 격에 맞게 출입문인 신풍루는 일반 지방관청의 출입문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신풍루의 원래 이름은 진남루가 하였는데 정조의 명으로 신풍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신풍루는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2층누각을 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관찰사가 있던 감영이나, 목사가 있는 목, 부윤이 있던 부 등 규모가 큰 지방행정 기관의 출입문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화성행궁의 성격이 수원유수부 부윤의 집무장소이기 때문이다. 신풍루 앞 고목과 홍살문 신풍루(新豊樓)는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신풍루는..

조선 관아 2010.03.16

[수원 화성] 동남각루와 남수문터

창룡문에서 시작한 수원화성 동쪽편 성곽 걷기가 끝나는 지점인 동남각루이다. 성곽위에서 보면 작은 누각하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곽 아래에서 보면 웅장하고 위압적인 곳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남각루는 지금은 없어진 남공심돈과 마주보고 있으며, 수원화성에서 방어에 제일 취약한 지역인 남수문을 지키던 방어시설로 특별은 시설로서 적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치성이 점하고 있는 위치의 장점으로 그 기능을 다하던 시설이다. 평지를 걷는것 같던 수원화성 성곽길은 동남각루에서 경사진 길을 내려와 수원화성 상업의 중심지인 팔달문과 지동시장, 남수문터로 내려온다. 상업의 중심지답게 팔달문과 남수문터 사이의 성곽 시설은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 수원화성 동남각루는 치성위에 작은 누각을 올려놓고 있는 형태로 공심돈..

[수원 화성] 동이포루와 동삼치

수원화성 동쪽편 봉수대가 설치된 봉돈을 지나 동남각루를 가기 전에 볼 수 있는 한쌍으로 포루와 치성이다. 동이포루는 성벽에서 많이 돌출되어 있으며, 다른쪽 포루와는 다르게 판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공심돈과 같이 속이 비어 있는 구조도 아니다. 단지 치성위에 정자를 올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봉돈에서 공심돈의 기능을 하기때문에 간략하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수원화성 동이포루. 치성위에 누각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동이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 동쪽에 위하며 1796년 7월 3일에 완공되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

[수원 화성] 봉돈, 봉수대와 돈대 기능이 함께 있는 돈대

수원화성을 성곽 창룡문을 지나서 2개의 포루와 치성을 지나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군사시설인 봉돈을 볼 수 있다. 봉돈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제압하는 돈대의 기능과 수원화성과 다른 지역과의 통신을 담당하는 봉수대의 기능을 같이 하고 있기때문이다. 중국 청나라 건축의 영향을 받아서 벽돌로 쌓아 만든 봉돈은 아래쪽은 공심돈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위쪽에는 5개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수원화성의 봉돈은 용인 석성산 봉화, 서해안 흥천대 봉화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수원화성 동쪽 성곽에 설치된 봉돈. 돈대 위에 구운 벽돌로 쌓은 5개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옆에서 본 수원화성 봉수대 봉화신호체계 수원화성 봉돈 아래쪽은 공심돈처럼 비어 있으며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수원 화성] 동포루, 동이치, 주변 성곽길

동포루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과 남문인 팔달문 사이에 있는 포루로서 치성을 벽돌로 쌓아 공심돈과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된 시설이다. 당시 중국의 성곽 축성 기술을 참조하여 쌓은 것으로 보이며, 창룡문과 팔달문 사이의 방어시설 중에서 화력이 제일 좋은 곳으로 보인다. 동포루를 지나면 동이치가 있고 그 다음 광교산 방향을 보고 있는 봉수대로 연결된다. 동포루는 공심돈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전형적 포루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부는 비어있으며, 3층 구조물과 비슷한 역할을 하며, 여러 방향으로 총포를 발사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많은 병력이 포루 내부에서 적을 방어할 수 있는 시설이다. 동포루는 화성의 5개포루 중 동쪽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7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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