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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탑금당치성문기비, 비뒷면에 스님이 새겨진 비석

창녕읍내 북쪽편 언덕에 위치한 탑금당치성기비는 통일신라시대 부근의 여러 사찰에서 일어난 범종, 탑, 금당 등의 불사에 대한 여러 기록들을 남겨 놓고 있는 특이한 문화재이다. 그 모양새도 후대의 탑비처럼 거북돌받침을 한 웅장한 모습이 아니라 일반적인 바닥돌과 비몸,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돌의 뒷면에는 스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특색있는 비석이다. 탑금당치성문기비, 논밭이었던 곳 한 가운데에 천년이상의 세월동안 서 있었던 비석이다. 머리돌이 어색하게 큰데,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비석의 뒷면에는 스님으 모습이 새겨져 있다. 옆에서 본 모습 논밭 가운데 서 있는 이 비석은 창녕군 청사 동쪽편에 있다. 인양사를 비롯하여 이와 관련이 있는 여러 절의 범종, 탑, 금당 등의 조성연대와 쓰..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 (보물 520호)

보물 520호로 지정된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은 이름으로 봐서는 술정리동삼층석탑과 한쌍의 탑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다. 동삼층석탑과는 같은 술정리 내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고, 석탑의 제작수법이 동삼층석탑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이지만 석탑 제작기술이 많이 쇠퇴한 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층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쌓아 올린 술정리서삼층석탑. 기단과 탑신의 몸돌.머리돌의 비율에서 술정리동삼층석탑보다는 많이 뒤떨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술정리 서삼층석탑 기단부. 한쪽면에 문짝을 새겨놓고 있는데 후대에 새긴 것이라 한다. 탑신은 동삼층석탑에 비해 날렵함이 없어 보이고, 탑의 상륜부에 장식이 남아 있다. 여러 방향에서 본 술정리서삼층석탑..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국보 34호),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탑

창녕 술정리는 창녕읍에서 가장 중심인 재래시장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 비화가야가 있었던 시기부터 지역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으로 생각된다. 국보 34호로 지정된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아마도 현재의 위치에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황룡사처럼 도심지에 있었던 사찰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이 석탑은 불국사 삼층석탑의 양식의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당시 이런 형태의 석탑이 보편화되던 시기, 석탑 제작 기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만들어진 석탑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 예술적, 문화사적 가치가 높아서 국보로 선정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창녕읍 중심부 술정리에 위치한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이 삼층석탑은 이층의 기단부 위에 삼층의 탑신을 얹어놓고 있는 있는데 그 비율이나..

창녕 퇴천삼층석탑, 통일신라 석탑

창녕읍 만옥정공원에 있는 퇴천삼층석탑이다. 원래 민가에 무녀져 있던 것을 해체,보수하여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창녕의 술정리석탑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석탑으로 기단부를 비롯하여 많은 부분이 없어져서 보물급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만든 수법이나 형태로 봐서는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석탑이다. 2층의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것으로 당대의 다른 석탑과 마찬가지로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퇴천삼층석탑의 기단부. 하단부는 낮게, 상단부는 높게 만들어져 있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전형을 보는 듯하면 한쪽면은 없어져 새로운 돌로 수리해 놓고 있다. 3층으로 된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해 놓고 있으며, 몸돌과 지붕돌들의 비율이 잘 배치되어 있다. 여러 방향에서 본 ..

창녕 송현동석불좌상, 통일신라시대 석불

창녕읍 화왕산을 오르는 입구에는 비화가야 고분군이 능선을 따라서 있고, 그 한쪽에는 작은 비각같은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석불을 모시고 있는데, 석불에 비해서 건물이 잘 안어울린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석불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역시 석불은 건물안 보다는 노천에서 맑은 바람과 햇빛을 받을 때 그 느낌이 더욱 살아나 보인다. 이 곳 창녕 송현동 석불 또한 전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는데, 꽉 막힌 입구, 촛불, 어두컴컴한 조명 등 불국사 석굴암에서 보았던 좋지 않았던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석불자체로는 석굴암보다는 많이 떨어지지만 나름 기교도 있고, 품위도 있어 보인다.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크 바위 앞면을 조각해서 만든 마애불로서, 석굴암과 비슷..

해남 녹우당 비자나무숲, 어초은사당, 고산 사당

고산 윤선도 선생 고택인 녹우당 동쪽편으로는 고산선생의 사당과 이 곳에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어초은 서생이 사당이 있고, 그 뒷편으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 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곳의 비자나무는 어초은 선생이 이 곳에 터를 잡을 때 조성한 인공림으로 수령이 500년 이상되는 것이 많고 선조의 유훈에 따라 후손들이 나무를 잘 가꾸어서 대표적인 인공림이다. 어초은 선생 사당 뒷편으로 비자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의 내장산 이남과 일본 등지에서 자란다. 잎은 두껍고 작으며 끝이 뾰족하다. 꽃은 봄에 넓게 피고 열매는 가을에 길고 둥글게 맺는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열매는 구충제 및 변비 치료제나 기름을 짜는데 쓰인다. 해남 연동리의 비자나무 숲은 ..

해남읍 단군전, 팽나무 숲 우거진 공원

해남읍 서쪽편에는 도심 한가운데에 팽나무숲이 우거진 공원 같은 곳에 향교나 서원같은 시설이 있을 것 같은 자리에 단군을 모신 사당인 단군전이 자리잡고 있다. 사당자체는 건물이 크지 않고 전면 3칸의 소박한 건물이지만, 단군전을 둘러싸고 있는 담고, 출입문인 삼문과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느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 고목들로 우거진 숲이 인상적인 곳이다. 단군전 정문. 태극문양을 한 삼문을 하고 있어 서원이나 향교같은 분위기이다. 이 단군전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1950년대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단군전 내부에 있는 사당은 앞면 3칸의 조그만 건물이다. 독립운동 기념탑과 단군상 각종 공덕비들을 이 곳에 모아놓고 있다. 해남읍 단군전 앞에는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 숲을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한국의 풍경 2010.02.28

강진 다산초당 천일각, 다산이 고향 생각날 때 강진만을 내려다 보던 정자

다산초당에서 연못을 지나면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책을 갖추고 손님을 맞던 사랑채 역할을 했던 동암이 있고, 동암을 지나서 조금더 걸어가면 강진만이 내려다 보인는 작은 정자인 천일각이 있다. 천일각에서는 강진만 바다와 바다건너 칠량과 천관산을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보는 강진만은 넓은 바다는 아니고, 다산의 고향이자 생가인 양수리 부근 한강변의 다산생가 뒷동산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아마도 다산은 이 곳 정자에서 고향생각을 많이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산초당의 사랑채격인 동암에서는 다산이 '목민심서'를 비롯하여 많은 책을 저술했던 곳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건물은 다산초당과 같은 시기에 복원한 건물이다. 다산초당 동암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강진만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

조선 관아 2010.02.27

[강진 백련사] 백련사사적비, 고려시대 받침돌에 올려진 조선시대 비석

강진 백련사사적비는 백련사에 있는 거의 유일한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비석이다. 고려시대부터 받침돌만 남은 비석위에 조선 숙종때 비석을 세워서 올린 아주 특이한 비석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비석 받침돌답게 거북형상의 받침돌은 조각이 아주 생동감있고 힘이 넘치게 새겨져있다. 바로 옆에 있는 최근 세운 비석과 비교해보면 조각 수법이나 전체적인 구도에서 차이가 많이 남을 느낄 수 있다. 몸돌과 머리돌은 조선후기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백련사사적비. 이 사적비의 받침돌은 거북 형상을 하고 있는데 고려시대 작품답게 생동감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받침돌 거북의 머리와 발 옆과 뒤에서 본 받침돌. 거북등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만덕산백련사비'라고 적힌 비석. 뒷면에는 불사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강진 백련사, 불전들(명부전, 웅진당, 요사채)

백련사에는 중심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웅진당, 같은 불전들이 있는데 내력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웅진당은 부처님 제자들을 모신 나한전의 다른 이름인데, 나한전이 있는 사찰의 경우는 방문하는 신도보다는 사찰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을 중시한다는 뜻인데, 불전이 약간 낡고 오래된 것으로 봐서는 백련사는 고려말 결사운동의 중심사찰답게 스님들을 중시하는 것 같다. 백련사 명부전. 대웅전 동쪽편에 있다. 웅진당이 있는 언덕. 나한전이나, 웅진전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웅진당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웅진당 옆에 있는 아직 편액이 걸려있지 않는 불전 대웅전 동쪽편 작은 불전. 편액이 걸려있지 않다. 백련사 경내 동쪽편 요사채 서쪽편 요사채

강진 백련사, 주불전인 대웅전

백련사의 중심 불전은 대웅전을 신라시대 창건된 이후 여러 차레의 전란으로 수차에 걸쳐서 중수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효종때 중수된 건축물이라 한다. 그래서 조선후기에 건축된 여러 대웅전 건물과 거의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앞면3칸, 옆면3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공포는 다포계이다. 백련사 중심불전인 대웅보전. 팔작지붕, 다표계, 단층 등 전형적인 조선후기 건축물의 형식을 하고 있다. 대웅전 문살에는 장식을 많이 하지는 않고 있다. 대웅전 편액 전형적인 조선 시대 건축양식인 다포계 공포. 화려한 단청과 함께 하고 있다. 측면에서 본 대웅전.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이 대웅전은 신라시대(新羅時代)에 창건했다고 전하며, 고려(高麗) 때에는 팔국사(八國師)의 도량(道場)이었다고 하..

[강진 백련사] 강당누각인 만경루, 강진만 바다 풍경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흥준씨가 책에서 언급한 바다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는 백련사에서 보는 강진만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백련사 출입문이라고 할 수 있는 강당 누각인 만경루이다. 만경루는 지은 얼마되지 않은 건물로 현재 백련사의 사찰규모에 비해서는 크게 지어진 건물로 축대를 쌓고 바다를 내려보는 약간 위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백련사 자체도 산속에 겸손하게 은거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 산 아래를 호령하는 듯한 형세를 취하고 있는 사찰인데, 책에서도 언급했든시 이 절의 기원이 고려 무신정권 실세였기 때문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 백련사는 강진만을 내려다 보면 가슴이 뚫리면서 없는 기개도 생길 것 같은 곳이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길이 끝나면 웅장한 축대위에 쌓은 백련사를 볼 수 있다. 백련사 누..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들어가는 길

강진만을 내려다 보고 있는 백련사는 고려말 백련결사운동의 중심지였던 사찰로 아름다운 숲과 강진만 바다를 볼 수 있는 매우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사찰이다. 특히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오가는 길 주변에 높이가 평균 7m나 되는 동백나무들이 천그루이상 있는 곳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동백나무숲의 조성에 다산 정약용선생이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알려진바는 없다고 한다. 백련사는 강진만을 바라보고 있는 언덕위에 있는 자동차로 사찰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주차장 안내판에도 써 있듯이 20분 정도만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거리이고, 아름다운 동백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되므로 놓치기에는 아까운 길이다. 백련사 동백나무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구구역임..

전국 사찰 2010.02.27

강진 월출산 무위사, 사찰풍경과 동백나무숲

월출산 자락에 자리잡은 남도답사일번지 무위사는 극락전과 함께 남도 특유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사찰 경내를 둘러싸고 있는 초록의 동백나무를 중심으로 한 상록수 숲은 서울주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아름다움이다. 선운사 동백나무숲이 유명하지만, 남도에서는 그런 종류의 숲이 일상화되어 있고, 어디서는 흔한 풍경인 것 같다. 특히 햇살이 좋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나 고택, 서원 등에서는 가장 인상깊은 것이 뒷동산을 초록빛 숲 일 것이다. 무위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돌계단이 보이고 정면으로 극락전이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왼쪽의 동백나무 무위사 경내로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고목 세그루 우뚝 서 있다. 초록빛을 띠고 있는 요사채 뒷편 숲. 요사채에는 아직도 개가 있는데, 책에서 언급한 그 개는 아니라서 낮선..

전국 사찰 2010.02.26

[강진 월출산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비

무위사 극락전 서쪽편에 위치한 탑비로 통일신라시대 고승 선각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탑비이다. 고려초 광종이 '선각'이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한다. 이 탑비는 비받침돌, 몸돌, 머리돌이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당시에 세워진 탑비 중에서 큰 편은 아니지만, 받침돌의 조각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만들었다. 무위사 선각대서편광탑비. 탑의 받침돌. 몸은 거북이고,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이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을 한 받침돌 머리. 탑비에는 고려초 문장가 최언위가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탑비의 머리돌. 여러 방향에서 본 선각대사편광탑비. 무위사는 전라남도 강진의 월출산 동남쪽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의 명승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관음사’라 하였고, 명종 5년(1550) 태감(太甘)이 4번..

강진 무위사 삼층석탑과 당간지주

무위사 삼층석탑은 경내 서쪽편에 선각대사편광탑비 아래에 위치한 고려초기 석탑이다. 석탑의 전성기였던 통일신라시대를 지나서 만들어진 석탑이라서 예술적인 아름다움이나 웅장함이 없는 평범한 석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돌이 재질이나 조각수법이 많이 떨어져서 지금은 잘 인식하기 힘들지만, 형식에 맞추어서 여러 장식을 새겨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 또한 극락전 앞에 2개가 있는데 다른 절의 당간지주에 비해 크기도 작고, 조각등 장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무위사 삼층석탑은 석탑이 대중화되던 시기인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삼층석탑의 전형을 보여준다. 예술적 가치는 많이 높지 않지만 원형은 잘 보존되어 있다. 삼층석탑의 기단부. 하단은 낮고, ..

강진 무위사, 불전들(명부전, 나한전, 천불전, 산신각)

무위사는 규모가 크지 않은 사찰로 중심불전인 극락전을 제외하고는 오래된 불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월출산 산신을 모신 산신각만이 약간 내력이 있어 보이는 불전이었다. 대부분 최근에 신축한 불전으로 여겨지며, 무위사 사찰 규모에 비해서 잘 어울리게 배치되었다고 볼 수는 없는 듯 하다. 월출산이 워낙 빼어난 산인 까닭에 산신각은 나름 내력이 있어 보였다. 현재 가장 인기가 좋은 명부전이 극락전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무위사 뒷편 경치좋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천불전. 도갑사에도 천불전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 지역에서 천불전을 찾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보이는 나한전 나름 내력이 있어 보이는 월출산 산신을 모신 산신각

[강진 월출산 무위사]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무위사는 월출산 자락에 있는 작은 사찰이라서 극락전 외에는 오래된 불전은 없어 보이고, 최근에 지은 몇동의 불전이 있다. 이 사찰은 불전의 크기에 비해서 스님들이 기거하고 수행하는 요사채 건물은 사찰 규모에 비해서 건물도 크고 많아 보였다. 아마도 이 곳 무위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것 같다. 반면에 누각이나 강당같은 건물은 없고, 오래된 고목 몇 그루가 경내에 우뚝 서 있고, 불전 뒷편으로는 동백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무위사 동쪽편에 있는 요사채. 원래부터 있었던 요사채로 보이며 문앞에 지금은 늙은 개가 엎드려 있었던 곳이다. 무위사 경내 서쪽편에는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전시관이 있다. 천왕문 동쪽편 요사채 무위사 천왕문 서쪽편 요사채, 범종각과 함께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보인다. 무위사에는 꽤 ..

강진 무위사 극락전(국보), 직선적인 단아함이 뛰어난 조선초기 건축물

강진 무위사는 월출산 남쪽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크지 않은 사찰로 남해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으로 남해보살로도 불리는 관음보살을 위해 원효대사가 지은 사찰로 알려져 있다. 무위사는 국보로 지정된 조선초기 건축물인 극락전을 잘 알려져 있는 사찰로 극락전 건물을 보면 무위사가 추구했던 단아함, 간결함, 절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무위사 극락전. 조선 세종때 지은 건물로 앞면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조선초기 건축물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직선적이고 간결하게 만들어졌다. 측면에서 본 무위사 극락전. 사람 인(人)자 모양이 지붕을 하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과 비슷한 모양새이지만 건물전체적으로는 본당으로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전기에 유행한 주심포계 형식의 공포이다. 주심포계란 공포가 ..

[강진 월출산 무위사] 천왕문 (해탈문)

무위사 출입문인 천왕문이다. 국보인 극락전과 함께 무위사를 소개할 때 많이 등장하는 문으로 극락전과 잘 어울리게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무위사는 이 주차장에 내리면 바로 천왕문을 볼 수 있고, 천왕문을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펼쳐지는데 인위적인 면이 있는 듯 하다. 다른 지역의 사찰과는 달리 천왕문을 지나면 강당이나 누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불전인 극락전이 바로 눈앞에 들어온다. 무위사 천왕문(해탈문). 한옥 저택의 출입문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전통적인 무위사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형태이다. 천왕문 안쪽으로 무위사 극락전이 보인다. 무위사 편액과 용의 형상으로 만든 장식 사천왕상 천왕문을 들어서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목조건축물 중 하나인 무위사 극락전이 보인다. 무위사 경내에서 본 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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