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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225

[수원 화성] 서포루, 서이치, 팔달산 성벽 내려가는 길

수원화성 지휘소 역할을 하는 서장대에서 화서문 부근 서북각대까는 거리도 짧으면서, 지휘소인 서장대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받아서 그런지 포루와 치의 간격이 약간 좁은 것 같고, 서포루는 수원 화성 5개의 포루 중에서 가장 중무장했다고 한다. 서쪽문이 화서문과 팔달산 정상 서장대까지는 거리도 짧고, 성벽너머에는 수원역, 경기도청 등 수원의 중심부가 자리잡고 있다. 팔달산 정산 서장대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는 길. 약간 경사가 있는 계단길을 따라서 성벽이 이어져 있다. 서이치. 서포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다. 서이치를 지나 성벽길을 따라서 내려가면 평지와 가까운 지점에 설치된 서포루를 볼 수 있다. 서포루는 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포루로서 수원화성의 5개 포루 중 가장 중무장한 포루라 한다. 서포루는 화성의 5개 ..

[수원 화성] 팔달산 정상 서장대, 팔달산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

수원화성 서쪽편에 위치한 팔달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이다. 연무대라 불리는 동장대와 함께 수원화성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는 지휘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특히, 이 곳 서장대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막힘이 없이 시원하게 뚫린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수원 화성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까지 사람들의 움직임을 잘 감시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서장대 편액은 정조대왕의 친필로 쓴 글씨이며, 직접 군사훈련을 지휘하기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수원화성 팔달산 정상부에 있는 서포루와 작은 암문인 서암문을 지나면, 수원화성에서도 제일 중요한 시절 중의 하나인 서장대를 볼 수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2층 누각으로 사방의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군사를 지휘하는 곳이다. '화성장대'라고 쓴 ..

[수원 화성] 팔달산 정상 서암문, 서노대

수원화성 서포루를 지나면 연무대와 함께 수원화성에서 제일 중요한 시설로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장대를 만날 수 있다. 서장대에 올라서면 수원시내늘 물론이고, 북쪽으로는 광교산, 용인방면이 남쪽으로는 화산, 오산 독산성까지 눈으로 들어오는 경관이 아주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서장대는 정조대왕이 친히 쓴 글씨가 편액으로 걸려있고, 그 아래에는 화성행궁이 자리잡고 있다. 서암문은 아마도 서장대를 출입하기 위해서 만든 암문으로 보이며, 수원 화성에서 설치된 암문 중에서도 제일 교모하게 설치한 것 같다. 서노대는 서장대와 함께 사방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사방으로 쇠뇌를 공격할 수 있는 중요한 군사시설이다. 수원화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 서장대를 가기 직전에 교모하게 설치된 서암문이 있다. 아마도..

[수원 화성] 서삼치, 서포루

팔달산 정상부에 있는 서남암문을 지나면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까지는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연결되어 있는데, 서삼치, 서포루, 서암문의 시설들이 있다. 수원화성 중 산성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부분으로 팔달산 아래 남쪽 방향을 보고 있다. 이 곳 성벽 아래로는 수원의 주요 행정시설과 수원역이 있고, 멀리 사도세자 능이 있는 화산이 멀리 보이는 곳이다. 서남암문을 지나면 성벽길은 평지를 걷는 것처럼 편하게 걸어서 팔달산에서 전망이 제일 좋은 서장대까지 걸을 수 있다. 서삼치. 서포루와 서남암문 사이에 있다. 수원화성 성곽 외부에서 본 성벽. 서포루와 서남암문 사이에는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통로가 있고, 그 아래에는 매점같은 시설이 있다. 원래있던 출입문은 아니고 수원화성 관람의 편..

[수원 화성] 서남각루, 용도동치, 용도서치

수원화성 팔달산 정상부에 위치한 서남암문을 나서면 남쪽 능선을 따라서 '용도'라 불리는 길이 있고, 길 양쪽으로는 화성의 성벽보다 낮은 성벽으로 보호받고 있다. 용도의 끝에는 서남각루라 불리는 누각이 있어서 사방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남각루에 올라서면, 수원 화성 팔달산 남쪽방면 경관을 감상하면서 쉴 수 있다. 서남포사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 용도. 수원화성 서남암문을 나서면 서남각루까지 용도가 이어져 있다. 용도 좌.우에는 '치'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용도동치 '치'는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도록 한 시설물로서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는 꿩을 말하는 것으로서, 능히 자기몸을 숨기고 주변을 잘 살펴보기 때문에..

[수원 화성] 서남암문과 서남포사

수원화성 성벽길 남포루를 지나면 팔달산 정상 부근에 이르면 성벽이 서남쪽으로 돌출된 부분이 있는데 이 성벽길을 용도라고 부른다. 이 용도를 나가는 출입문으로는 서남암문이라 불리는 암문을 설치해 놓고, 그 위에는 병사들이 상주하던 시설인 서남포사가 있다. 암문과 포사가 하나로 되어 있는 특이한 시설물이다. 남포루를 지나서 팔달산 정상으로 성벽길을 계속 오르기 시작한다. 경사가 약간 급해지면서 팔달산 정상부근에 위치한 서남암문과 서남포사에 도착하게 된다. 성벽길에서 본 서남포사의 옆면, 병사들이 상주하던 곳으로 출입문이 있다. 서남포사 아래로는 화성의 5개 암문 중 하나인 서남암문이 있다. 서남암문을 나서면 수원화성 성벽 중 돌출된 부분인 용도와 연결되어 있다. 용도에서 본 서남암문과 서남포사 용도에서 본 ..

[수원 화성] 남치, 남포루, 팔달산 오르는 성벽길

수원화성 남문인 팔달문에서 서쪽편에 있는 팔달산을 오르는 성벽길이다. 팔달문에서 서쪽을 보면 크게 높지 않은 산인 팔달산이 있고, 성벽을 따라서 쉽게 올라 갈 수 있다. 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전체 성벽중에서 경사가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성벽을 오르기에 크기 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성벽을 오르다 보면 방어시설물인 '남치'와 '남포루'를 만날 수 있다. 수원화성 남문인 팔달문과 지동시장에서 끊어졌단 성벽이 다시 시작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팔달산을 오르면서 수원화성 성벽 걷기를 시작한다. 수원화성 동쪽편인 팔달산을 오르는 성벽길. 원래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이동하는 통로와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가 별도로 있다. 팔달산 오르는 성벽길에서 본 팔달문과 부근의 지동시장. 이 곳이 수원지역 재래시장으로서 서울의 남..

[수원 화성] 팔달문, 사통팔달 수원화성 남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능침을 화산 부근으로 이전하고 이곳에 있는 읍성을 현재의 팔달산 부근으로 이전하면서 조성된 당시 최대 규모의 신도시이다. 당대의 실학자 정약용, 채제공 등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로 하여 조성한 수원화성은 지금도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고, 의궤 등에 수원화성 축성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아주 독특한 성곽이다. 그 중 팔달문은 그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사통팔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수원화성의 남문이자 정문의 역할을 했던 성문이다. 서울을 남대문인 숭례문 주변에 남대문 시장이 있듯이 이 곳 팔달문 주변으로는 지동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꿋꿋히 자리잡고 있다. 팔달문은 아마도 북경에서도 제일 유명한 만리장성인 팔달령 만리장성에..

강진 전라병영성지, 네델란드인 하멜이 7년간 머물렀던 곳

남도답사1번지인 전남 강진에 있는 전라병영성지이다. 호남 남해안에서 중요한 군사적 요지로서, 서산의 해미읍성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후기 네덜란드인 하멜이 표류했을때도 이 곳에서 7년간 머물렀다고 한다. 고려말 우리나라를 괴롭혔던 왜구를 제압하기 위해서 쌓은 전국 해안가의 많은 읍성 중의 하나로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했던 곳으로 생각된다. 병영성지가 있는 이 곳 지역명또한 병명면이고, 주위 마을 이름도 성동리, 성남리처럼 전라병영성과 관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지만, 지금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아마도 낙안읍성처럼 관광자원화 할 의도인 것 같다. 병영성 동쪽편에는 하멜표류기를 기념하는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전라병영성 남문. 현재 복원공사가 진행중인데..

부산 동래성 - 동부 경남의 오랜 중심지

일본으로 가는 관문에 위치한 주요 행정중심지였던 동래를 지키던 성입니다. 동래는 지금의 부산항을 포함한 해안에서 1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이 지역을 관장하는 행정적 중심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과의 통상은 부산항 근처에서 이루어지고, 주민 통제는 동래성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동래성은 상당히 큰 규모의 도심을 성벽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규모는 조선후기 정조가 쌓은 수원 화성의 규모와 비슷합니다. 아마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그렇게 쌓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금정산성이 있어 동래성과 협력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동래성에서 부산포를 통제 관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임진왜란때 동래 부사 송상현이 왜군과 혈투를 벌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무너졌는지 의..

진해 웅천 읍성 - 남해안 왜인들을 위한 삼포중 하나

웅천읍성은 남해안의 작은 읍성으로 전형적인 읍성을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왜구의 침입시 주변의 주민들이 읍성에서 2~3일간 피신할 수 있는 소규모 방어기능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적합한 규모로 축성되었습니다. 이 웅천읍성는 조선중기 삼포 중의 하나인 제포를 관리하던 읍성입니다. 아마 왜인들이 언제 말썽을 피울지 몰라서 읍성을 쌓고 관리하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도 네델란드와 무역을 할 때 나가사키 앞에 오란다마을을 만들어 거기에서만 네델란드 사람이 거주하게 하였고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는데 아마 이런 삼포의 사례를 적용한 것 같습니다. 웅천읍성은 오래된 읍성이기는 한데 관리가 잘 안된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읍성에 비해서 성벽이 좀 부실합니다. 삼포: 조선 초기 일본인들의 왕래와 거주를 허가하였던 ..

임진왜란때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던 순천 왜성(倭城)

순천왜성은 국내에 있는 왜성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본래의 모습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왜성입니다. 정유재란 당시 육전에서 패퇴한 왜군이 호남을 공략하기위한 기지로 삼기위해 토석성입니다. 성벽을 쌓은 돌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의 성벽과는 다르고 일본 각 지역에 있는 성들과 비슷합니다. 순천왜성 전체도 내성과 외성의 형태로 여러단계의 방어를 위한 성벽이 있는 것이 전형적인 일본 성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끈 1만 4천여명의 왜병이 주둔 하여 조·명연합군과 두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성에서 동쪽 광양만 쪽을 멀리 보면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신 노량해협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고 광양제철소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고유의 양식으로 쌓은 순천왜..

진해 웅천 왜성

조선시대 일본인 구축한 해안가의 조그만 왜성임, 남해안에 임진왜란때 다수의 왜성이 있음. 왜성은 남해안 곳곡에 산재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남해안을 따라 배가 지나는 곳에 성을 쌓고 수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일본군이 쌓은 조그만 성들이다. 임진왜란 당신 원균은 선조의 명에따라 왜군이 주둔해 있는 부산으로 진격이다가 이런 지역에 주둔해 있는 왜군의 공격을 받아 많은 고생을 했던 것 같다. 이 웅천왜성 앞바다는 임진왜란시 일본 수군의 영웅 와키자카가 한산도 대첩에 패한후 숨어 있던 곳이기도 하낟. 웅천은 조선초 삼포중의 하나로서 통상을 원하던 일본인들을 집단거주하게 하던 곳이다. 아마 이때의 제도를 일본이 받아들여서 나가사키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거주하던 오란다 촌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웅천왜성의 사진입..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현장 강화산성 (고려성)

강화산성은 강화도 내에서 대몽항전을 수행했던 강화읍내에 있는 성입니다. 정식명칭은 강화산성입니다만 산성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읍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성입니다. 북쪽으로는 대몽항전씨 최씨정권이 개성을 생각하며 이름지은 송악산과 남쪽의 고려산을 연결하여 강화읍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으로서 국방상 상당히 중요했던 성으로 여겨집니다. 지금 남아 있는 강화산성은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성(城) 중에서 내성(內城) 역할을 했던 성이고 요지를 연결한 중성(中城)과 해안가의 외성(外城)으로 겹겹히 강화를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몽고와의 화친 후와 병자호란 이후에 강화의 궁궐 건물과 성벽 등 방어 시설을 모두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 강화산성 탐방 1. 강화산성 서문/석수문/연무당 옛터 2. 강화산성 남문 3. 강화산..

[나주목 관아] 나주읍성 남고문(남문)

나주 읍성의 남문에 해당하는 남고문은 나주 시내 중심가 도로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성문이다. 나주 도심부를 중앙을 가로지르는 대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남고문은 읍성 성문 중 가장 먼저 복원된 성문으로 마치 서울의 숭례문을 연상시키다.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점문과는 달리 옹성이 없고, 도로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읍성 밖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옹성은 없고 성문 위에 2층 문루가 있다. 읍성 안쪽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옆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문루에 오르는 계단이 있고, 성벽은 남아 있지 않다. 나주읍성 남고문은 나주시대를 관통하는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나주읍성이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이전 또는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초..

[나주목 관아] 나주읍성 동점문(동문)

나주는 영산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도시로서 호남지역 중심도시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나주에는 읍성이 있었고, 관아 건물 및 향교 등 지방관청이 있는 도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나주읍성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없어지고, 곳곳에 기초석만 일부 남아있는 상태였다가 최근에 남고문과 동점문이 복원되었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읍성 동쪽 방향 출입문으로써 광주지역에서 영산강을 따라서 오던 사람들이 출입하는 출입문이다. 복원이 완료된 나주읍성 동점문. 최근에 복원한 성문이라서 그런지, 실제 읍성에 사용되는 자재를 사용해서 제대로 복원이 이루어진 것을 보인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전면부에 옹성이 있으며, 옹성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자연석을 적절한 크기..

전주 풍남문(豊南門), 전주 읍성에서 남아 있는 유일한 성문

전주를 상징하는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풍남문은 전주한옥마을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성문 너머로 조금만 걸어가면 천연 해자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하천이 흐로고 있습니다. 이 풍남문은 전주읍성에서 남아있는 유일한 시설물로서 현재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원래는 성문만 있던 것을 80년대에 종각, 포루, 옹성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풍남문과 한옥마을 사이에 큰 도로가 있어 한적한 곳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으며 성문 앞과 뒤쪽으로는 옛길로 추정되는 작은 이차선 도로가 있고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

[고창읍성(高敞邑城)]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읍성

읍성은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성곽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이나 일본의 성곽은 지역 유력자의 저택을 중심으로 견고한 성곽을 쌓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읍성은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을 성곽으로 쌓고 있습니다. 이런 일반적은 읍성의 성격과는 달리 고창읍성은 동쪽으로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보입니다. 동문·서문과 정문격인 북문이 있고, 성문사에는 방어를 위한 6개의 치(雉)가 있습니다. 성문은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처럼 견고해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튼튼한 옹성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고창읍성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장기적인 농성을 할 수 있는 견고한 산성이나 지역중심지의 성곽이라고는 보기는 힘들고, 며칠정도 농성이 가능한 읍성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 고창읍성 탐방 1. 고창읍성 성..

[고창읍성(高敞邑城)] 겨울 읍성 성벽길

서산의 해미읍성, 순천의 낙안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읍성입니다. 이 성의 명칭은 고창읍성이라고 불리는데 형태로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던 산성의 형태와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성벽을 쌓은 형태를 보면 읍성의 형태와 비슷해 보입니다. 내부에는 관청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면에서 보면 진주 남강변에 있는 진주성과 형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창읍성은 반등산을 중심으로 산성과 비슷한 형태로 성벽을 쌓아놓고 북문, 동문, 서문에는 옹성을 쌓아 방어의 기능에 충실했던 성으로 보입니다. 고창읍성의 정문이자 북문입니다. 옹성으로 정문을 막고 있는데 다른 지역의 읍성보다 튼튼해 보입니다. 정문인 북문 왼쪽편 성벽입니다. 북문의 옹성안에서 본 옹성 입구와 서쪽편 성벽입니다. 북문 옹성성의 외벽입..

[고창읍성(高敞邑城)] 성문, 옹성, 치(雉), 연못

고창읍성은 동쪽으로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읍성이다. 동문·서문과 정문격인 북문이 있고, 성문 사이에 방어를 위한 6개의 치(雉)가 있다. 성문은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처럼 견고해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튼튼한 옹성을 쌓아놓고 있다. 고창읍성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장기적인 농성을 할 수 있는 견고한 산성이나 지역중심지의 성곽이라고는 보기는 힘들고, 며칠정도 농성이 가능한 읍성과 비슷한 규모이다. 고창읍성의 정문격인 북문. 옹성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옹성의 크기가 전주 풍남문의 옹성보다 크게 보인다. 옹성 출입통로. 통로 길의 넓이가 일반적인 읍성의 옹성보다 크다. 옹성 성벽 북문의 성루인 공북루 성안에서 본 공북루 성의 또다른 방어시설인 치(雉) 고창읍성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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