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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67

안동 도산서원,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인 상덕사 (보물 211호)

상덕사는 도산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으로 퇴계 이황선생과 제자 조목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호계서원에서는 도산의 학풍을 이어받은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이 퇴계 제자로 같이 위패를 모셨으나, 당시 지역민들 사이에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 사이에 그 위상의 높고 낮음을 다투다가 같이 빠지면서 제자로서는 조목 선생만이 남은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상덕사는 앞면 3칸 규모의 크지 않고 소박한 형태의 건물로, 조선 선조때 지은 건물을 도산서원을 성역화하면서 크게 수리하였다고 한다. 당시 문화재로 지정된 토담도 돌담장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

조선 관아 2010.10.20

안동 도산서원, 강학공간의 중심인 전교당 (보물 210호)과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서재

도산서원 전교당은 강당기능을 하는 건물로 보물 210호 지정된 문화재이다. 도산서원 전교당은 퇴계 이황선생을 모신 상덕사를 제외하고는 제일 높은 곳에 있고, 건물 앞쪽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까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구조이다. 전교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1칸인 온돌방 한존재와 3칸인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형태나 구조는 간단하며 아주 소박하고 검소하게 지어진 건물로 여겨진다. 대청의 전면은 문을 두지 않고 개방되어 있으며, 옆면과 뒷면에는 쌍여닫이문이 있어 겨울에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강당 건물은 퇴계 이황선생께서 직접 세운 건물은 아닌 듯하고 선생 사후에 세워진 건물로 보인다. 강당현판에 적힌 '도산서원'이라는 현판은 선..

조선 관아 2010.10.20

안동 도산서원, 책을 보관하던 광명실과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

도산서원 건물배치에서 제일 특이한 점은 강학공간 입구에 누마루를 두지 않고, 진도문이라는 별도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도산서원이 입지한 위치의 가장 큰 장점인 낙동강과 강너머 마을의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산서원에는 정문에서 강당인 전교당까지 계단과 정원을 두고 있을 뿐 누마루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 다만 강학공간인 출입문 양쪽으로 누각식 건물이 광명실을 두고 있으며, 여기에 있는 작은 누마루에 서서 멀리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광명실을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진도문 양쪽에 두개의 건물을 두고 있다. 광명실은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 건물로 지었으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누각의 기능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도문을 들..

조선 관아 2010.10.19

안동 도산서원, 퇴계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던 도산서당

도산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중심영역으로 교학공간인 강당 전교당까지는 계단식으로 길이 조성되어 있고 서쪽편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서원 관리소인 하고직사가 있고 동쪽편에는 퇴계 이황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몸소 지은 도산서당이 있다. 아마도 강당과 기숙인 동.서재에는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퇴계 선생은 도산서당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당은 앞면 3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퇴계선생이 거처하던 '완락재'라 불리는 방과, '암서헌'이라고 불리는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 앞에는 연꽃을 심어 놓은 작은 연못이 있고, 도산서당 동쪽편으로 퇴계선생이 화초를 가꾸던 작은 동산이 있다. 도산서원 정문.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축대를 쌓아서 계단..

조선 관아 2010.10.18

안동 도산서원, 유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서재인 역락서재

퇴계 이황 선생이 세운 안동 도산서원은 계단식으로 건물들을 배치하고 있는데, 그 중 제일 앞쪽에 있는 건물들인 농운정사와 역락서재이다. 농운정사는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로 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서쪽편에 있는 건물이다. 서원 강당인 전교당 앞 마당에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지만, 아마도 이 곳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고직사 건물 앞에 추가로 세운 건물인 것으로 보인다. 역락서재는 서원 바깥에 있는 별채와 같은 건물로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을 위해서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서원 바깥쪽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도산서원을 찾아온 손님들이 묵으면서, 퇴계 선생과 학문을 논하던 장소인 것으로 보인다. 서원 안에 있는 유생들의 공부가 방해 받지 않도록 외부에서 손님을 맞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

조선 관아 2010.10.17

안동 도산서원, 과거시험을 보았던 시사단과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

2010년 가을에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조선시대 양반문화와 유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안동 도산서원을 찾아가 보았다. 주말이기도 하고 예전에 비해서 전통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이 곳 도산서원을 찾는 사람에 예전에 비해서 많이 늘었다는 느낌이다. 도산서원은 병산서원과 함께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경치가 매우 수려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서원이다. 도산서원의 입지가 상당히 좋다는 것은 학문을 수양하는 장소로서 일반인들이 도산서원까지 들어가기는 쉽지는 않지만, 큰길에서 도산서원까지의 길은 낙동강변 언덕을 따라서 나 있는 숲길이다. 하지만 낙동강 건너편으로는 제법 넓은 들판이 있고, 마을들도 많이 보이는 편이다. 이는 수양을 위해 깊은 산중이나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일반 세상과..

조선 관아 2010.10.17

의정부 노강서원, 노량진에서 수락산으로 옮겨온 서울에서 가까운 서원

서울에서 의정부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한 노강서원이다.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노강서원은 숙종때 문신 박태보를 기리는 서원으로 원래 서울 노량진에 있었다가, 한국전쟁시 불타버린것을 지금의 자리에 복원한 것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서원으로 숙종때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이다. 박태보는 숙종때 인현왕후의 폐위에 반대하다 귀향가서 돌아오는 길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곳 수락산 자락 의정부 장암동은 그의 아버지 박세당이 지은 고택이 아직 남아 있는 등 그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노강서원 입구는 수락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곳으로 등산객이 많이 찾는 등산로 입구에 있어서 그런지 계곡에 있는 많은 식당들로 인해서 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서원 건물은..

영주 소수서원, 최초의 서원 '백운동' 현판이 걸린 강학당

소수서원 강학당은 서원의 중요 기능인 학문을 논하는 강학 공간의 핵심 영역이다. 조선 중종때 주세붕 선생에 우리나라에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 선생을 모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울때 강학공간으로 정의한 영역으로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건물 입구에 걸려있고, '소수서원' 편액이 강학당 내부에 높이 걸려 있다. 서원의 구조는 성균관 구조를 축소한 형태로 강학당은 성균관의 명륜당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수서원 강학당은 정면4칸, 측면3칸의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건물이다. 소수서원 강학당 입구에는 '백운동(白雲洞)'이라는 주세붕 선생이 처음으로 지은 이 서원의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소수서원 강학당 내부에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이 걸려..

용인 충렬서원,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신 서원

고려 후기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신 충렬서원입니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에 자리한 전형적인 소규모 경기지역 서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렬서원이 있는 곳은 경기도 광주에서 수원으로 가는 국도 변으로 근처에 정몽주 선생의 묘소가 있는 지역이며 우리나라에서 명당으로 알려져서 많은 묘지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충렬서원은 강당과 사당, 그리고 내삼문/외삼문으로 이루어진 아주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제사 위주의 기능만 하는 곳으로 생각됩니다. 경기도 용인 모현면에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충렬서원의 전경입니다. 사당과 강당 2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경기도 지역의 소규모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렬서원의 출입문인 외삼문입니다. 경기지역의 서원이라서 ..

나주 창계서원, 국도변에 있는 작은 서원

나주 창계서원은 복암리 고분군 근처의 호남선 다시역에서 나주로 들어오는 국도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서원이다. 숙종때 문신인 창계 임영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아마도 이 지역이 나주 임씨 집성촌이라서 그런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후 없어진 서원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어서 복원되어 있다. 서원 입구에는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공덕비가 있고, 서원은 앞쪽에 강당, 뒤쪽에 사당을 두고 있는 형태이다. 나주와 목포사이의 국도변에 위치한 창계서원 전경 서원입구에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공덕비 창계서원 출입문. 보통 서원의 경우 삼문을 형식을 취하는데 이 곳은 솟을대문만 있다. 창계서원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 따뜻한 남쪽지방인데도, 마루를 두고 있지 않다. 뒷쪽 사당으로 들어가는 곳에 내삼문이 있다. 서원..

밀양 표충사(表忠祠)와 표충서원

표충사 입구를 들어서면 좌측면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 서산, 사명, 기허당 대사를 모신 유교식 사당인 표충사(表忠祠)와 표충 서원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을 극복한 후 조선왕실 및 사회에서 세 분 대사의 위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표충사(表忠祠)라는 현판이 크게 보인다. 건물은 전형적인 70년대에 만들어진 사당의 형태를 보는 것 같다. 표충서원과 표충사, 서원 강당 역할을 하는 건물 지금은 팔상전으로 쓰이는 건물이 원래 사명대사를 모시던 표충서원 건물이다. 중심불전인 대광전과 나란히 하고 있는 아주 특징적인 사찰 가람배치이다. 안내 표지판 표충서원은 본래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서산, 사명, 기허당 등 세분 대사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원래는 무안면 중산리 삼강동에 표충사(..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 우리나라에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 선생 위패를 모신 사당

영주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주자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한 고려시대 유학자 안향 선생을 주향으로 안축, 안보, 주세붕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향교와는 달리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분의 위패를 모시고 그 학문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 서원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서원에서 제사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의 핵심 건물이 이 곳 문성공묘이다. 보통 서원은 전묘후학 또는 전학후묘의 건물 배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이 곳 소수서원은 최초의 서원이라서 그런지 사당이 서쪽편에 있고, 강학공간이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특이한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소수서원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문성공묘. 정면3칸, 측면3칸으로 맞매지붕을 하고 있다. 문성공묘 내부는 개방되어 있..

[안동 병산서원] 입교당立敎堂, 서원의 중심영역 강당

병산서원 기능의 중심이 되는 영역으로 유생들이 공부하는 장소인 강당은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로 입교당立敎堂이라 불린다. 병산서원에서 가장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곳 입교당 마루는 정면의 누각인 만대루, 낙동강, 병산이 한데 어우러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 자체는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담한 규모이다. 입교당 건물 양쪽에는 온돌방이 있고 가운데에는 넓고 시원한 마루가 있다. 병산서원 출입문인 복례문과 누각인 만대루를 지나면 정면 5칸으로 이루어진 서원의 중심 영역인 강당을 볼 수 있다. 양쪽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3칸은 유생들이 강의를 듣던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유생들의 기숙사가 있는 마당..

[파주 자운서원] 문성사, 율곡 이이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자운서원 문성사는 율곡 이이선생과 제자들인 김장생 선생, 박세채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어진 것을 60년대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당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전학휴묘의 공간배치에 따라서 자운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반적인 서원이나 향교의 경우 대정전이나 사당들의 출입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 자운서원의 문성사는 아산 현충사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 누구나 참배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율곡 선생이 영정이 같이 모셔져 있다. 자운서원 배향공간 건물인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문성사 내부. 선생의 영정으로 보면 얼굴이 호남형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인기가 좋았을..

[파주 자운서원] 강학공간인 강인당

파주 자운서원은 조선중기 유학자 이이 선생을 모신 서운 중의 하나로 어머니인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선생의 가족묘 부근에 세워진 서원이다. 나지막한 언덕에 세워진 서원으로 자운서원은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수도인 한양과 가까이 있었던 까닭에 서원의 규모도 크지 않고, 경관이 수려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지 않은 까닭에 누각을 비롯하여 정원을 꾸며놓지도 않고 있다. 자운서원 건물은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없어졌고, 건물도 한국동란때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고증에 따라서 복원된 것이라 한다. 자운서원의 강학공간은 강당인 강인당과 마당 좌.우에 배치된 유생들의 기숙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의 크기도 크지 않은 편이다. 자운서원 강학공간 중심건물인 강인당. 유생들의..

[영주 소수서원]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齎), 상위 단계 유생이 공부하던 곳

영주 소수서원 강학공간의 중심인 강학당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안동지역 유지들의 저택 사랑채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인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齎)이다. 2개의 건물이 붙어있어 하나의 건물로 보인다. 원래 하나의 건물을 둘로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문의 단계에 따라 일신재와 직방재로 나누고 있다. 동쪽 구석에 위치한 지라재와 학구재에 비해서 축대도 높고, 건물 자체도 격식있게 꾸면 놓고 있다. 소수서원 건물배치는 하학상달(下學上達), 즉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뜻하며,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일신재, 그리고 깨어 있어 마음을 곧게 한다는 직방재, 이 직방재에 이르면 학물을 크게 이루게 되므로 비로소 명륜당이라 불리는 강학당에 들어 세상의 이치를 밝히게 된다고 한다. 일신재, 직방재는 정면 ..

[영주 소수서원] 지락재(至樂齋)와 학구재(學求齎), 하위 단계 유생이 공부하던 곳

영주 소수서원 강학영역은 지락재(至樂齋), 학구재(學求齎), 일신재(日新齋), 직방재(直方齎), 강학당의 5단계로 구분된다. 그 중 지락재(至樂齋)와 학구재(學求齎)는 1,2번째 단계 유생이 공부하던 곳으로 서원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건물들이다. 소수서원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많은 유생들이 공부했던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젊은 유생들이 이 곳에 머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소수서원 마당 동쪽편 구석에 지락재와 학구재가 위치하고 있다. 학문의 단계에 따라서 건물의 크기와 축대의 높이를 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서 숙식하기는 힘들고 마루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토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학문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지락재. 정면3칸의 작은 건물로 1칸의 방과 2칸의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축대..

[영주 소수서원] 장서각, 정료대와 관세대 등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와 직방재 사이에는 서원이 소장했던 책과 목판을 보관했던 장서각이 있고, 그 앞에는 야간에 불을 밝히던 정류대와 사당 참배시 손을 씻는 대야을 올리는 관세대가 있다. 소수서원 장서각은 전면2칸의 작은 건물이지만, 많은 책들을 보관했던 것 같다. 문성공묘 동쪽편에 위치한 장서각.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 영정을 보관하던 영정각과 하나의 건물군을 이루고 있다. 소수서원 장서각은 전면2칸이지만, 당시 장서각 건물 중에선 큰 편에 속하는 것 같다. 장서각 출입문 장서각 뒷편. 장서각 앞에는 횃불을 밝히던 정류대와 손을 씻을 대야를 올려 놓던 관세대가 있다. 해시계를 올려 놓던 일영대

[영주 소수서원]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과 영정각

서원의 제례영역의 중심인 문성공묘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과 안양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이다. 전사청은 전면3칸의 작은 건물로 특색없이 소박한 건물이고, 영정각은 원래 소수서원에 없던 건물로 1975년에 안양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서 별도로 세운 건물이다. 물론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소수서원 문성공묘 제사를 위한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준비하던 전사청 건물 소수서원 영정각은 안향 선생의 영정을 모시는 건물로 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소수서윈 뒷편에 있는 영정각과 전사청 건물 고려 중기 문신인 회헌 안향(1243∼1306) 선생의 초상화로 가로 29㎝, 세로 37㎝의 반신상이다. 안향은 고려 원종 1년(1260)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하였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원..

[영주 소수서원] 충효교육관, 사료관

소수서원 뒷편에는 7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소수서원 사료관과 충효교육관이 자리잡고 있어, 이 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소수서원 역사와 유학에 대해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충효교육관은 소수서원 뒷편의 선비마을과 연계하여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 곳을 지나면 뒷문을 통해 영주 선비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소수서원 사료관 소수서원 충효교육관 소수서원 관리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이면, 관람객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소수서원 뒷문 소수서원 충효교육관과 사료관을 출입하는 문 소수서원 출입문. 영주 선비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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