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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서울 창덕궁 후원, 비원(秘苑)이라 불렸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younghwan 2010. 9. 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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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세에 맞게 지어진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창덕궁과 창경궁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한때는 '비원(秘苑)'이라고 불리웠던 창덕궁 후원은 가장 한국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조경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존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창덕궁과 후원 타 궁궐과는 달리 출입인원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창경궁 후원처럼 느껴지는 춘당지와 식물원 부근이 합쳐져서 하나의 공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후원의 가장 안쪽 옥류천 부근은 성균관 대학과 담을 경계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균관과 국왕 사이를 가깝게 할려는 건물들의 배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후원에서 남쪽편을 보면 종묘가 있고, 동쪽편에는 대비가 거쳐하던 창경궁, 그리고 그 위쪽으로는 국가대계를 생각하게 하는 성균관이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 창덕궁 탐방
  1. 후원 들어가는 길,         2. 부용지 주변 영화당,        3. 부용지 주변 부용정,           4. 부용지 주변 주합루,
  5. 부용지 주변 풍경,         6. 애련지                          7. 애련지 옆 의두합,              8. 연경당 입구,
  9. 연경당 안채,               10. 연경당 사랑채,              11. 연경당 후원,                   12. 반도지와 관람정
 13. 반월지와 존덕정,         14. 승재정,폄우사               15. 후원 숲속길                    16. 옥류천 취한정,소요정
 15. 옥류천 태극정, 청우정, 농산정              17. 옥류천 어정          18. 천연기념물

※ 주변 탐방
  1. 창덕궁 후원 (비원)          2. 경복궁                 3. 창경궁               4. 덕수궁           5. 종묘
 

창덕궁 후원 위성사진(구글어스)

한국의 정원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특색을 잘 갖추고 있는 예전에는 비원으로 잘 알려진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우선 입구의 성정각 뒷편 느티나무와 주변의 단풍들이 예사롭지 않게 울창하고 아름답습니다. 특히 가을이라서 그런지 형형색색 단풍이 물들어 있어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인지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연연들도 있지만...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 부용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영화당입니다. 주변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건물입니다. 건물은 동쪽편 창경궁을 향하고 있으며 뒷편으로 부용지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국왕의 연회장소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부용지 남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부용정입니다. 북쪽편의 주합루와 함께 정조대왕이 조성한 건물입니다. 이 곳에서 정조대왕께서 낚시를 즐겼다고 합니다. 아마도 주용지의 상당부분이 정조대왕의 손길이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천재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정원입니다.

부용지 북쪽편 언덕에는 정조대왕이 자신 만의 공간을 마련하여 사색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층 누각에서는 문신들과 대화를 하거나 저술을 하고 일층에는 규장각이라 하여 서고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주합루에서 내려다본 부용지의 풍경이 뛰어나고 하나 지금은 출입을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인 창덕궁 후원에서 그 아름다움이 가장 뛰어나고 널리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장면은 아마도 부용정과 그 앞의 부용지일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 장면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부용정 앞의 부용지는 네모난 모양이고 연못의 가운데에 둥근 섬이 있으니 이는 신선들이 논다는 삼신선산의 하나인 방장(方丈)이나 봉래(蓬萊) 또는 영주(瀛州)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연못에는 서북쪽 계곡의 물이 용두로 된 석루조를 채우고 넘치는 물은 연못의 동쪽 돌벽에 있는 출수구로 흘러나가도록 되어 있다.

창경궁과 연결되는 문입니다.

창덕궁 후원 길을 걸어가다보면 부용지를 지나 또하나의 공간인 애련지를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곳은 연경당과 더불어 순조의 아들이 효명세자의 손길이 남아 있는 소박함을 특징으로 한 공간입니다.

애련지의 출입문인 불로문입니다.

애련지를 바라보고 있는 작은 건물은 의두합이다. 이 건물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사색을 하며 책을 즐겨 읽었던 장소라고 전해진다. 일반 민간 한옥에 비해서 아주 작고 서민들이 사는 초가 주택과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외부 장식이 거의 없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연경당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아버지인 순조의 덕을 칭송하기 위한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 졌다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당시의 건물이 아니고 고종때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 합니다. 이 집은 대궐에 있으면서도 단청이 되어 있지 않고, 사랑채와 안채로 남녀의 공간이 구분되어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집을 연상시킵니다. 그렇더라도 입구에는 실개천이 있고 다리를 건너서 들어갈 수 있는 정식 궁궐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낙선재와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연경당 안채는 사랑채와 담으로 분리되어 있고 많은 행랑들이 주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집들과는 달리 안채내에 부엌이 없고 별도의 부엌 기능을 하는 건물이 뒷편에 있습니다. 일반 사대부 집처럼 꾸며졋으며 건물 규모는 크지 않아 보이나 전체적으로 은근히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연경당은 창덕궁 안에 지은 유일한 민가형식의 건물로, 사랑채의 당호가 연경당이다. 사랑채엔 안채가 이어져 있고 사방에 행각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규모는 궁궐 전각으로서는 크지는 않지만 사대부집으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입니다.

연경당은 일반 사대부 한옥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나름대로 궁궐의 형태도 같이 취하고 있습니다. 사랑채 뒷마당에는 정자와 함께 궁궐 특유의  조경을 꾸며 놓고 있습니다. 

애련지에서 반도지 가는 길목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창덕궁 뽕나무입니다.

애련지를 지나서 산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올라가면 반도지를 중심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공간을 만날수 있습니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형형색색의 나무들 그리고 적절하게 배치된 정자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한국적인 정원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반도지 북쪽 조금 높은 곳에 반월지(反月池)가 있습니다. 그리고 반월지와 반도지를 연결해 주는 작은 개천과 돌다리가 있습니다. 반월지는 이름과는 달리 반원형이 아니고 사각형의 작은 연못입니다. 그 반월지 앞에는 육각지붕을 한 정자인 존덕정이 있습니다. 존덕정에는 정조대왕의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반도지 옆길을 따라 올라가다 존덕정 앞 돌다리를 건너면 정면에 작은 건물인 폄우사가 있고, 동쪽편 언덕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는 아름다운 정자인 승재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승재정이 반월지 주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라서 그런지 여러 사람들이 작품 사진 촬영에 열중입니다.

창덕궁은 평소에는 자유관람을 허용하지 않고 매주 목요일에만 자유관람이 허용됩니다. 이때에만 창덕궁 후원에서 옥류천을 포함하여 후원 뒷동산 전체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울창한 숲속길을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호젓하게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옥류천 입구에 위치한 정자인 취한정과 소요정입니다. 옥류천은 샘이 솟아 올라 조그만 개울이 되어 흘러내리는 곳입니다. 창덕궁 구석에 위치하여 조용할 것 같지만 성균관 대학 운동장 바로 아래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꽤나 시끄러운 곳입니다.


옥류천의 어정 안쪽으로는 3개의 정자가 있는데 태극정은 일반적인 형태의 정자이고, 청의정은 제일 안쪽에 위치하며 초가 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청의정 주위로는 국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로 벼가 심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쪽에 일반 민간의 행랑채 모양을 한 농산정이 있습니다.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제일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샘물에서 시작하여 개울이 되어 흘러 내려갑니다. 옥류천 주위로는 태극정, 청의정, 농산정, 취한정, 소요정의 5개의 정자가 있고 샘물이 솟아 오르는 바위에는 인조가 써 놓은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일 한적한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성균관대학 운동장 바로 아래에 있어 약간 소란스럽습니다.

창덕궁 후원에서도 제일 깊은 곳에 자리한 천연기념물인 창덕궁 다래나무입니다. 

창덕궁 후원에서 흘러내려 오는 개울물, 물이 흐르지는 않습니다.

창덕궁 후원 숲속길을 돌아서 나오는 길, 옆에 현대그룹 빌딩이 보입니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뒤쪽 13만 5,200여 평에 조성된 조선시대 궁궐의 정원. 본래 창덕궁의 후원으로 후원(後苑) 또는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禁苑)이라고 불렀으며, 비원(秘苑)이라는 명칭은 일제 때 용어이다. 〈태종실록〉에 1406년(태종 6) 4월 창덕궁 동북쪽에 해온정(解溫亭)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정원은 이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459년(세조 5)에는 후원 좌우에 연못을 만들고, 열무정(閱武亭)을 세웠다. 1463년에는 후원을 확장하여 경계가 거의 성균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창덕궁과 함께 후원도 불타버렸으나 광해군 때 복원되었다. 이때의 모습이 왕조실록의 주해에 기록되어 있는데 "기이한 화초와 괴석들을 늘어놓고 원유의 꽃과 돌 사이의 곳곳에 작은 정자들을 만들어 그 기교하고 사치스러움이 예전에 일찍이 없었다"라고 했다. 1636년(인조 14)에 지금의 소요정(逍遙亭)인 탄서정(歎逝亭), 태극정(太極亭)인 운영정(雲影亭), 청의정(淸漪亭) 등을 세웠고, 청의정 앞쪽 암반에 샘을 파고 물길을 돌려 폭포를 만들었으며 옥류천(玉流川)이라는 인조의 친필을 바위에 새겨놓았다. 1642년에는 취규정(聚奎亭)을, 1644년에는 뒷날 관덕정(觀德亭)인 취미정을, 1645년에는 희우정(喜雨亭)인 취향정(醉香亭)을, 1646년에는 청연각(淸讌閣)인 벽하정(碧荷亭)을, 1647년에는 취승정(聚勝亭)과 관풍정(觀豊亭)을 세웠다. 1688년(숙종 14)에는 청심정(淸心亭)과 빙옥지를, 1690년에는 술성각 옛 자리에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을 세웠다. 1704년에는 대보단을 축조했고, 1707년에는 택수재(澤水齋)를 세웠다. 1776년에는 왕실의 도서를 두는 규장각을 세웠는데 이는 주합루(宙合樓)라 부르는 중층 누각이며, 그 아래 연못 남쪽에 자리잡고 있던 택수재를 지금의 부용정(芙蓉亭)으로 고쳤다. 1828년(순조 28)에는 사대부들의 생활을 알기 위해 후원 안의 개금재 자리에 연경당(演慶堂)을 지었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는 선원전을 지었다. 후원은 크게 네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영역은 부용지를 중심으로 부용정·주합루·영화당(暎花堂)·사정기비각·서향각(書香閣)·희우정·제월광풍관(薺月光風觀) 등의 건물들이 있는 지역이다. 둘째 영역은 기오헌(寄傲軒)·기두각(奇斗閣)·애련지(愛蓮池)·애련정·연경당이 들어선 지역이다. 셋째 영역은 관람정(觀纜亭)·존덕정(尊德亭)·승재정·폄우사(砭愚榭)가 있는 지역이다. 넷째 영역은 옥류천을 중심으로 취한정(翠寒亭)·소요정·어정(御井)·청의정·태극정이 들어서 있다. 그밖에도 청심정·빙옥지·능허정(陵虛亭) 등이 곳곳에 있다. 후원의 구성은 낮은 야산과 골짜기 그리고 앞에 펼쳐진 편평한 땅 등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꼭 필요한 곳에만 인공을 가해 꾸며놓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조원(造苑)의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예이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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