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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상화고택, 근대문화골목에 남아 있는 <뺴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이 살던 집

대구 구도심 계산동성당 뒷편에 위치한 이상화고택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을 대표하는 이상화시인이 만년에 살았던 고택이다. 이 지역은 옛 대구읍성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대구약령시와 가까운 주거지역으로 대구에서도 상류층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대구근대화골목'으로 불리운다. 근처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던 서상돈이 살았던 고택을 비롯하여 여러채의 한옥들이 남아 있다. 이상화고택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한옥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많이 지어졌던 대구지역 도시형 개량한옥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은 ㅁ'자형으로 이루어진 서울 북촌의 한옥과는 달리 '-'자형 한옥형태를 하고 있는 안채와 문간채처럼 대문과 붙어 있는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인근 서상돈고택과 함께 1999년 도시개발로 허물어질 ..

고택_정원 2013.05.20

[대구박물관] 조선시대 남자 복식, 조복과 의관정제

조선시대 남자들이 입었던 옷은 일반평민에서 국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그중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양반계층이 입었던 의복이 그 종류가 많고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며, TV사극 등을 통해 일상적으로 많이 접해보는 조선시대 복식문화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입었던 옷으로는 평상시 집에 머물거나 여행을 할 때 입는 평상복, 관직에 진출하여 일상적인 업무를 볼 때 입는 관복인 공복일 비롯한 관복과 국가적인 행사에 입는 예복이라 할 수 있는 조복 등이 있다. 대구박물관에서는 많은 복식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중 남자의 의복으로는 조복과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의관정제를 대표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복식에서 모자라 할 수 있는 의관은 그 종류가 다양하며 공..

지역박물관 2013.05.16

북한산 태고사, 고려말 원증국사 보우가 창건한 사찰

북한산성내 행궁 아래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태고사는 고려말 공민왕때 국사를 지낸 원증국사 보우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이 절은 북한산에 있던 중흥사 주지로 있던 원증국사 보우가 개인적으로 수도하기 위해 세운 작은 암자로 그가 입적한 이후 태고암이라 불렀다. 북한산 봉우리들과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태고사는 고려말 이후 거의 폐사되었다가 병자호란 이후 북한산성을 쌓고 관리하기 위해 승병들이 거처할 도량으로 중흥사와 함께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131칸의 비교적 큰 규모로 중창되었는데 한국전쟁 때 소실된 이후 대웅전과 요사채만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태고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북한산성내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신도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 사찰..

전국 사찰 2013.05.15

가족주말농장(5월2주), 고추와 토마토를 심다.

4월까지 쌀쌀했던 날씨가 5월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움츠려있던 식물들이 갑자기 빨리 자라기 시작하면서 밭에서 조금씩 잡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년보다 약간 늦었지만 금주에는 밭에 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올해도 밭에 심을 작물들은 작년과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올해들어 주말농장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작년과는 달리 요령이 약간 생기면서 작년보다 일을 하는 것이 수월해진 반면, 속도는 약간 빨라진 것 같다. 올해 주말농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지난주에는 밭에 거름과 비료를 뿌려주고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주었고, 상추와 열무씨를 처음으로 뿌려주었다. 이번주에는 주말농장에서 제일 중요한 작물인 고추와 토마토, 참외를 심었다. 작년까지의 경험으로 작물들..

기타 2013.05.15

대구 계산동성당(사적 290호), 대구지역에서 처음 세워진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

사적290호로 지정된 대구 계산동성당은 카톨릭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서울, 평양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1902년에 지어진 서양식 성당건축물이다. 원래 이곳에는 1899년에 지어진 강화 성공회성당처럼 한옥형태의 성당이 있었는데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로베르신부가 설계하고 명동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중국기술자 등이 참여하지 지었다. 1911년 대구대교구가 설립되면서 이 성당이 대교구 본당으로 바뀌면서 총탑을 높이는 등 증축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대구에서 한약재가 거래되던 큰 시장이었던 약령시에 가까운 도심에 위치한 성당으로 두개의 탑이 우뚝 솟아 있어 '뾰족집'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건물은 첨탑이 있는 고딕양식이 가미된 전통 로마네스크 양식을 하고 있다. 건물의 평면은 좌.우 익랑을..

[대구박물관] 섬유의 역사와 염색

대구는 경북 내륙의 교통.행정의 중심지이자 섬유산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섬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지만,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던 70년대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종사했으며 수출 주력상품으로 국가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산업이다. 대구박물관에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섬유산업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고대 이래로 우리나라 섬유와 복식 등을 보여주는 전시실을 마련해 놓고 있다. 전시유물들은 실을 짓고 직물을 제조하는 가락바퀴 등 고대의 도구들과 주로 조선시대 사용했던 다양한 복식과 직물, 장신구 등들 전시하고 있다. 인류가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옷을 만들어입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터 실과 직물을 만들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석기시대 고대문명 발생..

지역박물관 2013.05.15

장충동 남산자유센터, 건축가 김수근의 초기 대표 작품

남산 동쪽편 서울 성곽 안쪽에 장충동 언덕에 위치해 있는 자유센터는 해방 이후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현대 한국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의 초기 작품으로 노출콘크리이트 기법과 목조건축물의 특징을 조화시킨 웅장한 건축물이다. 1950년대 일본에서 공부한 후 귀국하여 첫작품으로 워커힐 호텔 힐탑바(현 피자힐)을 지은 이후 당시 대표적인 관변단체인 반공연맹을 위해 지은 대형건축물로 자유센터라 불린다. 이곳에서는 대형 컨벤션센터라 할 수 있는 자유센터 본관과 고위층들의 사교클럽인 서울클럽, 외국인들을 위한 호텔인 타워호텔이 세워졌는데 김수근이 설계한 작품들로 6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주로 결혼식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컨벤션센터 개념의 자유센터는 웅장한 기둥과 ..

북한산 중흥사지, 북한산성 승군을 총지휘한 승대장이 머물던 사찰 절터

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있던 중흥사는 북한산성을 지키던 승군들이 머물던 사찰 중 가장 큰 사찰이었다. 중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원증국사가 머물때 중수하면서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리 크지 않았던 사찰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의 방어를 위해 숙종이 북한산성을 쌓으면서 산성을 지키고 수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승군들이 머물 수 있도록 크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사찰이 1915년 대홍수로 무너지기전까지 136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중흥사에는 북한산성을 지키던 승군들이 머물던 11개의 사찰을 지휘하던 승대장이 머물던 승영으로 승대장은 전국 승병을 지휘하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고 한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로 호국불교로서 ..

절터 2013.05.13

대구 제일교회, 대구.경북지역에 처음 설립된 개신교회

대구 약령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대구제일교회는 대구.경북지역에서 처음 설립된 개신교 교회이다. 1898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이곳에 남성정교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하였다. 이 교회를 설립한 사람은 대구 최초의 서구식 중등교육기관인 계성교회를 설립한 선교사 아담스(James E. Adams, 한국명 안의와)이며 한약재를 거래하는 큰 시장이었던 약령골목에 자리잡으느 것도 의료선교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모태가 되었던 선교사 존슨(Woodbrige O. Johnson)이 설립한 서구식병원이 제중원도 있었다고 한다. 아담스를 비롯한 이들 선교사들은 계명.신명.희도 등의 서구식학교를 설립하여 교육활동을 벌였으며, 동산병원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의료선교활동을 하며 대구지역에 많은..

[대구박물관] 대구.경북의 유교문화, 사림과 서원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한 이후 중앙관료로 진출하지 않고 지역에서 영향를 갖고 있던 향리세력들은 점차로 중소지주로서 경제력을 축적하면서 학문적인 역량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성종대에 길재의 학문을 이어받은 김종직을 필두로 김굉필.정여창.김일손 등의 영남출신 사림들이 중앙에 진출하면서 기존의 중앙 훈구세력을 충돌하여 여러차례 사화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명종대에 이르러 사림은 조선사회의 주도세력으로 자리잡게 된다. 16세기 명종대에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들은 다양한 학파를 형성하면서 성리학에 대한 논쟁을 생겨났다. 이런 농쟁의 결과로 서경덕.이황.조식.이이와 같은 탁월한 학자들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조선시대를 이끌 성리학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게 된다. 영남지역은 김종직을 비롯하여 사림들의 출신지로 다른 ..

지역박물관 2013.05.11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와 절터 출토 유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주세붕 선생이 세운 소수서원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에 위치한 당간지주이다. 이 곳에 서원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숙수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문화재이다. 서원과 마찬가지로 사찰도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이 곳도 사찰이었다가 어떤 사연에 의해서 절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서원을 세운 듯 한다.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은 영주 순흥지역에서도 경치가 좋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의 요지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인근 부석사 못지않게 큰 절이었던 숙수사가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부근에 출토된 많은 유물들로 볼 때 숙수사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숙수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부근 소수중학교 건립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모두 25구의 불상들이 출토되었..

대구 선교사블레어주택, 청라언덕에 남아 있는 미국식 주택

대구 계명대학교 부속 동산의료원 뒷동산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3동의 선교사 저택 중 하나인 블레어주태택이다. 다른 선교사 저택과 함께 1910년경에 지어진 건물로 선교사인 블레어(Blair)와 라이스(Rice)가 살던 집으로 지금은 동산의료원에서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쌓은 2층 양옥 건물로 전형적인 북미지역 중산층 저택의 형태를 하고 있다. 청라언덕의 약간 경사진 지형을 활용하여 남쪽편에 반지하실과 베란다를 두고 있고 건물 북쪽편에 벽돌로 쌓아 올린 굴뚝이 있다. 1층에는 베란다.응접실.거실.침실.식당.부엌이 있고 2층에 침실.욕실을 두고 있다. 이 건물은 1910년 처음 지어진 이래로 최근에 박물관으로 바뀌기 직전까지 선교사 사택과 동산의료원 사택..

여의도 국회의사당, 대한민국 국회가 열리는 70년대풍의 웅장한 건축물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건축물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국회의 회의가 열리는 건물이다. 여의도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국회의사당읜 본회의가 열리는 본관을 중심으로 10만평의 부지 위에 남쪽에는 의원회관, 북쪽에는 국회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다. 국회의사당 앞쪽에는 북경 천안문 광장 등을 모방해서 만든 넓은 광장이었으며 지금은 여의도공원으로 바뀐 5.16광장이 자리잡고 있고, 예전에는 군사퍼레이드를 비롯한 관제 집회가 많이 열렸던 곳으로 1970년대의 권위주의적인 도시계획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국회의사당 건물은 단일 국회의사당 건물로는 세계적으로도 큰 편에 속하는 건물로 지하2층, 지상 6층의 건물이다. 24절기를 의미하는 24개의 석조기둥이 지붕..

가족주말농장(5월1주), 2013년 주말농장을 시작하다.

올해로 주말농장을 시작한지 5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작물을 재배하는 특별한 지식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데로 심고 가꾸다 보니 발전된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약간은 요령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올해는 봄이 늦게 와서 4월까지 쌀쌀한 날씨를 보이는 날이 많고 벚꽃을 비롯하여 꽃이 피는 시기도 조금씩 늦어진 것 같다. 주말농장 준비를 위하여 작년보다 약간 늦은 4월초에 작년 가을에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던 비닐들과 고추지지대를 제거하고 밭을 트랙터로 갈기전에 거름과 비료를 뿌려 주었고, 5월초에 들어서야 밭을 고르고 다시 밭고랑을 비닐로 덮어주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장마가 오기전에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작물을 포기하는 사태가 전국적으로 발생했지만, 지금 주말농장을 하고..

기타 2013.05.08

대구 선교사 챔니스 주택, 청라언덕에 남아 있는 미국식 주택

대구 동산동 동산의료원 뒷동산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남아 있는 구한말 선교사들이 세운 주택 중 하나인 선교사 챔니스 주택(House of American Christian Missionary Chamness) 주택이다. 건물은 미국식 주택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대구읍성을 철거하면서 나온 성돌로 기초를 다지고, 붉은 벽돌을 쌓아 지은 단독주택이다.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동산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물과 함께 다양한 정원수들이 심어져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는 주택이다. 건물은 긴 네모형의 2층 건물로 1층에는 거실.서재.부엌.식당 등이 있고, 2층에 침실과 욕실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북미지역 중산층 주택이라 할 수 있다. 이 집은 대구지역에 선교사 아담스와 함께 선교활동을 시작하..

[대구박물관] 조선 양반사회, 유교 경전과 학습교재

조선은 불교가 국가와 사회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던 고려시대와는 달리 관료.유학자 등 신진사대부세력이 무장세력과 함께 세운 국가이다. 조선왕조를 건국한 세력은 전제개혁 등을 통해 권문세족과 불교사원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려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고, 신흥 사대부 세력이 받아 들인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다. 조선은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로서 유학을 공부하여 과거를 통해 진출한 사대부를 중심으로 관료체제가 정비됨으로써 점차 양반은 계급적 의미를 갖게 된다. 조선초에는 지배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계급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없으나, 점차 과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관료를 역임한 집안의 후손들이 양반으로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원래 조선시대에는 양반이라는 계급은 법제도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양인은 모두 과..

지역박물관 2013.05.08

북한산성 행궁터, 산성에 마련한 국왕의 임시 거처

조선시대 행궁은 왕이 임시로 머무는 별궁이다. 행궁은 전쟁 등 국가 비상상황시 왕이 잠시 피난할 때 머물거나 지방 순시나 휴양 등을 위해 지방관아에 설치한 임시 처소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행궁으로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서 조성한 강화행궁, 남한산성 광주행궁 등이 있고, 왕이 온천에서 휴양을 하기 위해 설치한 온양행궁과 이천행궁, 왕이 능묘에 참배를 하기 위한 화성행궁, 전주행궁 등이 있다. 행궁은 기본적으로 지방관아 기능을 유지하면서 국왕의 침소, 수행원을 숙소, 임시정부를 유지하기 사무실용도 건물 등을 추가하여 일반적인 관아보다는 건물규모가 큰 편이다. 또한 강화행궁의 규장각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서나 서적 등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두기도 한다. 서울 북한산성내 동장대가 바라 보이는 상원봉 아래..

조선 관아 2013.05.08

대구 선교사 스윗즈주택, 청라언덕에 남아 있는 구한말 선교사 저택

대구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뒷동산은 박태준 가곡 '동무생각'의 무대로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곳에는 지금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선교사 주택 3동이 남아 있고, 크고 작은 정원수, 최근에 신축한 대구제일교회 등이 있다. 이곳은 대구에서 최초로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 제일교회를 비롯한 크고 작은 교회들, 계성중.고등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들을 설립한 미국인 선교사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1890년대 선교사 아담스(한국명 안의와)가 처음 대구로 들어와 선교를 시작한 이래로 구한말.일제강점기 초기에 서구인들이 한국에서 자리잡고 살았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청라언덕에 있는 3동의 선교사 주택 중 동산병원 바로 뒷편에 위치한 스윗즈 주택은 미국인 선교사 스윗즈(Miss Marttha Swit..

[대구박물관] 불교공예품, 불교의식과 신앙생활에 사용된 공예품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유형의 문화재로는 삼국시대 이전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껴묻거리, 불교가 전래된 이후 석탑을 비롯한 불교문화재, 고려시대 이후 유학과 관료사회를 대표하는 다양한 고문서, 책자, 그림과 서화, 고려시대 이후 상류층 사람들이 사용했던 도자기를 비롯한 생활용품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 불교 관련 유물들은 사찰건축물을 비롯하여 부처와 승려의 사리를 모시는 탑과 탑비, 통일신라시대 이후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불상과 탱화, 불교의식에 사용되었는 의식구 등이 있다. 불교의식구는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도구들로 소리를 내는 종과 같은 범음구, 공양을 드리는데 사용되는 촛대, 향로 등의 공양구, 부처의 세계를 표현하는 사찰전각에 사용되는 번, 당, 사리갖춤 등의 장엄구, 고려말 이후 전래..

지역박물관 2013.05.03

고양 북한산 태고사 원증국사 승탑(보물 749호)과 탑비(보물 611호)

북한산성 계곡에서 중심이 되는 행궁터 아래에 위치한 태고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승탑과 탑비가 있다. 승탑의 주인은 고려말.조선초에 중흥사 머물면서 공민왕의 왕사를 지내는 등 큰 영향을 미쳤던 승려 보우이다. 그는 어린나이에 양주 회암사에 출가하여 여러 사찰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중국에 유학을 하기도 하였다. 공민왕때 신돈의 뒤를 이어 왕사가 되었으며, 고려 우왕때 이곳 태고사에서 입적하였다고 한다. 태고사는 원래 원증국사가 머물렀던 중흥사에 딸린 작은 암자로 지금도 불전과 요사채를 갖춘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원증국사가 머물렀던 사찰은 태고사 아래쪽에 위치한 중흥사로 고려말에 크게 중수하였다고 하며, 병자호란 이후 북한산성이 축조.보강되면서 승병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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