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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215호), 사모바위 아래 바위에 새겨놓은 불상

서울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은 북한산 봉우리들 중 진흥왕순수비가 있었던 비봉과 사모바위 아래 바위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마애불상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으로 고려초 지방의 호족세력이 그들의 권위를 표현하게 위해 대형 석불이나 철불을 조성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마애불상으로 평면적인 형태를 보여주지만 동시대에 만들어진 대형 석조불상들에 비해서는 조각수법이 뛰어난 편에 속하는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석굴암 본존불이나 하남동 춘궁동사지에서 발굴된 철조불상을 참조하여 조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마애불상은 중국 당나라 고승은 승가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인 북한산 승가사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불상 아래에는 보물 1000호로 지정된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상이 있으며, 승가..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과달키비르강을 건너는 로마다리 (Puente Romano)

코로도바 도심 남쪽을 흐르는 과달키비르강을 건너는 로마 다리는 오랜기간 동안 남쪽지방에서 코르도바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이었던 다리이다. 이 다리는 로마시대부터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수차례에 걸친 리모델링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다리의 모습은 로마 도심에 건설된 로마시대 다리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약 331m 길이에 16~17개의 아치와 교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리 남단에는 14세기 탑인 칼라오라의 탑(Torre de la Calahorra)은 현재 로저 가르디 박물관인데, 이슬람 문명 당시 3개 문화(이슬람, 기독교, 유대교)의 지적 성취를 엿볼 수 있다. 칼라오라의 탑을 지나서 다리를 건너면 코르도바의 중심인 옛날 이슬람 사원이자, 현재는 카톨릭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메스키타와 궁전요새..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Mezquita), 이슬람 사원과 카톨릭 성당 건축물이 공존하는 곳

알함브라 궁전과 함께 스페인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이슬람 문화의 흔적인 코르도바의 이슬람 사원이었던 메스키타(Mezquita)이다. 스페인을 통치했던 후기 우마이야를 세운 알라흐만 1세가 서고트족 교회부지에 785년에 건설하기 시작해서 10세기까지 계속 확장하였다. 전체 면적이 약 23,000㎡ 규모로 약 2만5천여명의 신자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 중의 한곳이었다. 내부 기도실에는 1,293개의 기둥이 있는데 일부는 서고트족 교회, 코르도바의 로마시대 건물, 고대 카르타고의 건축물 자재들로 만들었다고 한다. 메스키타의 주 출입문은 북쪽편 종탑 아래 스페인 특유의 양식인 무데하르식 성문이며, 정문 이외에도 여러곳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이슬람 사원 건물로 세워진 이 곳 ..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 오렌지 나무가 있는 안뜰 (Patio de los Naranjos)

코르도바의 중심인 메스키타(Mezquita)는 8세기 스페인을 통치한 우마이야 왕조가 세운 세계 최대의 이슬람 사원 중 하나이다. 이슬람 통치기간 코르도바는 콘스탄티노플과 함께 그리스.로마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왔던 학문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메스키타는 코르도바를 상징하는 장소로 2만5천명 이상의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이슬람 사원이었다. 메스키타(Mezquita)에는 많은 출입문을 두고 있지만, 다른 이슬람 사원과 마찬가지로 사원 북쪽편에 무데하르식으로 만든 정문이 있고, 정문을 통과하면 이 사원의 규모에 걸맞는 오렌지나무가 심어진 넓은 안뜰이 있다. 이슬람 사원의 안뜰은 원래 기도를 하기전에 세수를 하는 곳으로 이 곳이 카톨릭성당으로 바뀐 뒤에도 없어지지 않고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 이슬람 사원 기도 공간

스페인에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알라흐만 1세가 8세기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10세기에 완공된 메스키타는 2만5천명의 신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사원 중 하나였다. 코르도마를 점령한 스페인의 카톨릭 군주가 이슬람 사원이었던 메스키타의 중앙부분만 허물고 대성당을 건설했기때문에 메스키타는 이슬람사원 건물과 르네상스 양식의 카톨릭 성당건물이 합쳐져서 약간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공간 배치를 보이기도 하지만 상당이 넓은 공간임에도 웅장한 느낌은 배제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메스키타에서 기도를 올리기전 세수를 하는 공간인 안뜰을 지나서 출입구를 들어서면 안쪽의 첫 12개의 복도와 기둥들, 아치들이 8세기 이슬람사원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850개의 둥근 기둥들은 줄무늬..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에 세워진 대성당

스페인의 카톨릭 왕조가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을 축출한 후 많은 남아 있던 많은 이슬람 사원들은 없어졌지만, 주요 도시에 존재했던 일부 이슬람 사원들은 건축물로서 규모가 크고, 웅장하게 지어졌기때문에 카톨릭 성당으로 개조한 경우도 있었다. 이슬람 사원을 카톨릭 성당으로 개조한 대표적인 곳이 세비야 대성당과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이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중세 스페인을 통치한 우마이야 왕조가 건설한 신자 2만5천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당대 최대의 이슬람 사원이었기때문에 성당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세비야 대성당과는 달리 이슬람 사원의 원형이 많이 남아 있다. 코르도바 메스키타에 세워진 대성당은 기존의 이슬람 사원을 허물지 않고 거대한 사원 중앙부분을 철거하고 르네상스 양식으로 대성당을 세웠다. 메스..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 주변 거리

코르도바를 동서로 흐르는 과달키비르강 북쪽편은 중세 스페인을 통치한 아랍 왕조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이 도시는 과달키비르강을 남쪽 경계로해서 북쪽편에 성곽을 쌓아서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도시의 중심에는 이슬람사원인 메스키타가 있고, 메스키다 주변에 궁전인 알카사르와 여러 공공기관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북쪽편으로 유대인 지구를 포함하여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도시의 중심인 메스키타 주변은 중세 아랍인들언 건설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좁은 골목길과 중정을 가진 크고 작은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현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도로는 거의 없는 편이며 대부분은 마차 1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형성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이지만 오래된 중세풍의..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를 건설하기 사용된 로마시대 건축 유물

메스키타는 8세기 이슬람 왕조에서 건립하기 시작하여 9~10세기에 이르는 동안 끊임없이 확장되었는데 그 규모는 당대 최대의 이슬람사원 건축물이 되었다. 전체면적은 23.000 m²로 한꺼번에 2만5천명 이상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었다. 건축자재로는 옛 서고트족의 성당, 코르도바의 로마시대 건축물,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유적지에서 가져온 건축자재를 포함하고 있으며 기도실에는 1,293개의 기둥을 만들었다. 현재 메스키타 내에는 이 거대한 이슬람 사원을 건축하기 위해서 사용한 옛 건축물들이 박물관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 기둥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한 로마시대에 만든 신전건축물의 석재들을 많은 것으로 보인다. 전시된 유물들은 대리석으로 만든 코린트식 또는 이오니아식 기둥의 머리들과 사원 바닥에 깔았던 ..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중세 읍성 성곽

코르도바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존재했던 도시로 지금도 로마 신전과 다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후 서고트왕국의 지배를 거쳐서, 8세기 이슬람왕조가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으면서 번성을 누렸다. 코르도바는 콘스탄티노플과 함께 중세 학문으로 중심지로서 고대 그리스의 학문적 성과들을 유럽인들에게 남겨준 스페인에서도 가장 유서깊은 도시이다. 스페인 동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을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을 끼고 있는 코르도바는 거대한 이슬람 사원인 메스키타를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하고 있으며, 오래된 유적들이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다. 코르도바는 과달키비르 강변을 중심으로 사방에 성곽을 쌓은 중세 읍성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중세시대에 쌓은 성곽들이 도시 곳곳에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요새화된 도시인 톨레도나 그라나다와는 달리 코..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유대인지구 (Juderia)

중세시대 스페인은 아랍과 카톨릭 세력이 공존했던 지역으로 로마에 의해 고향인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되었던 유대인들 북아프리카를 거쳐서 많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서칼리프라고도 불리었던 이슬람왕조가 수도로 정한 코로도바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도심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오래된 도시에는 유대인들이 살았던 유대인지구가 있는데, 코르도바의 유대인지구는 그 규모도 크고 오랜 기간동안 존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코르도바의 유대인들은 이슬람 문명 하에서 우수한 사람들에 속했던 것으로 보이며 코로도바 출신 유대인 철학자인 마이모니데스를 비롯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역사에 그 흔적을 남겨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르도바의 유대인지구는 메스키타 북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좁은 골목길에 꽃들로 장식된 흰..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로도바 도심의 로마신전 유적

코르도바는 안달루시아지방을 지나서 지중해로 흘러드는 과달키비르 강 유역에 있는 오래된 도시이다. 이 도시는 카르타고인들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짐작되며 로마제국하에서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아마도 지중해에서 강을 이용해서 작은 배가 들어올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었기때문에 교통의 중심지로서 도시가 번성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코로도바는 카르타고, 로마, 서고트왕국, 이슬람, 스페인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동안 번성했던 도시이다. 코르도바는 로마시대에 스페인을 통치하는 중심지역으로서 크게 번성했던 것 도시로 로마시대 유적들이 여러곳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슬람 세력이 코르도바에 당대 최대의 사원을 건설할 때 옛 로마 유적들에 남아 있던 석재들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코르도바 도심 한 가운데..

스페인(Spain) 2013.07.08

[부산박물관] 조선통신사, 일본 에도막부에 파견되었던 사절단

통신사란 조선시대 일본에 파견되었던 외교사절로 왜구가 창궐하던 고려말에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기 위한 필요성으로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일본 막부와의 협상 창구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태종대인 1403년 일본 아사카정권이 명나라와 외교관계가 성립되자, 이듬해 조선과 일본은 상호 외교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사절을 파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전기까지는 통신사의 규모가 크지 않았으며 그 명칭은 보빙사.회례사 등 다양한 이름이 쓰여졌다. 조선전기에는 세종, 세조, 성종대에 통신사가 파견되었다가 그 이후 임진왜란 직전까지 중단되었는데, 이는 일본이 오랜 기간 내전이라 할 수 있는 전국시대였기때문에 집권세력이 불투명하여 외교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기때문이라 할 수 있다. 조선전기에 일본을 다녀..

지역박물관 2013.07.08

문경 진남교반과 토끼비리, 옛사람들이 오가던 영남대로 옛길

조선시대 영남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육상교통로 중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길을 영남대로라고 하는데 대체로 동쪽편 죽령을 넘어가는 길을 영남좌로,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길을 영남중로, 추풍령을 넘어가는 길을 영남우로라 일컫는다. 그 중 문경새재(조령)을 넘어서 음성, 이천, 광주를 거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이 가장 가까워 많이 이용되었다고 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14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영남대로 옛길은 여러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 중 잘 알려져 있으며 옛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길이 조령을 넘어가는 문경새재와 토끼비리라고 불리는 고모산성 남쪽 벼랑길에 잔도로 지어길이 있다. 고모산성과 토끼비리 옛길이 있는 문경 영강 일대를 진남교반이라 부르며 경북지역 언론사에서 선정한 경북팔경 중 제1경으로 손꼽히는..

한국의 풍경 2013.07.02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보물 1000호), 당나라 고종대에 활동한 서역출신 승려의 조각상

서울 구기동 북한산 비봉과 사모바위 아래에 위치한 승가사는 통일신라시대인 756년에 창건한 사찰로 당나라 고종대에 활동한 서역출신 승려 승가대사를 기리기 위해 이름 지어진 사찰이다. 승가사는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불전을 비롯한 전각들 중에 오래된 것은 없지만 사찰 뒷편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시대 승려의 조삭상인 승가대사 석좌상과 사모바위 아래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 남아 있다. 사찰 뒷편 석굴 안에 모셔진 보물 1000호로 지정된 승가대사 석좌상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승려의 모습을 불상처럼 조각상으로 만들 것이다. 조각상은 고려초기 현종대인 102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상제는 길고, 하체는 넓게 표현하고 있어 당시의 불상 조각 경향을 잘..

[부산박물관] 임진왜란 당시 무기와 부산지역 사람들의 항쟁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전쟁이다. 당시 조선은 개국이래로 큰 전쟁이 없었고, 중종반정 이후 지배계층은 정통 성리학을 주창한 유학자들 중심의 관료주의 사회로 바뀌어 있었다. 반면에 일본은 오랜 세월에 걸친 내전을 종식하고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였으며, 왜군은 내전동안 쌓은 전투경험이 많은 무장세력들이 국가적으로 잉여자원화되어 외부로의 분출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임진왜란은 고니시가 이끄는 병력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부산지역에서는 정발장군이 지키던 부산진성, 동래부사 송상현의 동래읍성, 다대진첨사 윤흥의 다대진에서는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함락되었고 경상좌수영은 수사 박홍이 도망가면서 큰 저항없이 궤멸되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과 조선의 군사력..

지역박물관 2013.06.28

서울 풍납동토성(사적11호, 일명 '풍납토성'), 성벽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남쪽과 동쪽 성벽

풍납토성은 서울 송파구 풍납동 일대 한강변에 남아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토성이다. 백제가 한강일대에 도읍을 정한 이래 수백년간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을 이루고 있는 도성 성격의 토성으로 인근에 있는 몽촌토성과 함께 초기 백제 토성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풍납토성은 둘레가 4km에 이르는 성곽으로 조선시대 읍성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지 않은 편이다. 고조선과 삼한시대 한반도 서남해안에 촌락을 이루면서 형성되었던 읍성국가들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편으로 강을 끼고 있어 물류가 편리하고 적으로부터 방어에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풍납토성 주변에 주택들이 들어서 있지만, 원래는 토성바깥쪽으로 물이 흐르면서 자연적인 해자구실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풍납토성은 1925년 홍수 한강변쪽 일부자..

문경 고모산성, 옛 영남대로(토끼비리)와 진남교반이 내려다 보이는 남쪽편 성벽

문경 고모산성은 삼국시대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을 꾀하기 시작한 5세기경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영남과 중부지방을 연결하는 영남대로가 백두대간 문경새재 입구 조령관문에서 12 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의 오정산, 서남쪽 어룡산 등이 길을 막고 있으며, 산성 서쪽으로는 문경시 가은읍에서 흘러내려오는 영강이 문경새재에서 흘려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하여 흐르고 있다. 산성있는 고모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길을 막고 있는 병목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관문성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산성은 전체 길이 약 1.6km에 이르며 작은 봉우리 사이에 약간의 평지가 있고, 영강이 흐르는 서쪽으로 작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어 전체적으로는 포곡식산성처럼 보인다. 허물어진 성벽에서 작은 돌을 촘촘하게 쌓..

[부산박물관] 임진왜란과 부산

부산은 고려말 이후 왜구가 한반도 해안지역에 출발하여 약탈하면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국방상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조선이 개국한 이후 왜구를 토벌하는 등 강.온 양면으로 여러 조치를 취하면서 일본과의 교역을 위해 부산포, 염포(울산), 제포(진해)에 왜관을 설치하였다. 이후에 한반도 남해안은 일본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중종대에 일본이 삼포왜란을 일으키는 등 긴장관계가 조성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임진왜란 전 조선수군의 전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무기의 개발 등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중기 내력의 산성이나 읍성 등은 전쟁에 대비하지 못하였으며, 각 지방의 군사체제와 전쟁에 대한 준비는 미흡했던 반면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던 수군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것으로 보이..

지역박물관 2013.06.26

문경 고모산성, 남문터에서 서문터까지 성벽

문경 고모산성은 영남지역과 서울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내륙교통로에 해당하는 영남대로에 위치한 삼국시대 산성으로 주요한 길목을 지키는 관문성에 해당하는 산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산성은 백두대간 문경새재 부근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조령천과 문경시 가은읍에서 흘러내려오는 영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는 고모산을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고모산성이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조건은 영남지방에서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교통로인 문경새재(조령) 관문과 남쪽으로 약12km 정도 떨어져 있다. 고모산성 동쪽으로는 해발 810m의 오정산을 비롯하여 높은 봉우리들이 백두대간과 연결되어 있고 남서쪽으로는 해발617m어룡산 등의 봉우리들이 산맥을 이루고 있어, 문경새재에서 남쪽으로 지나가기 위해서는 산성옆을 흐르는 영강과 마찬가지..

[부산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석조유물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부산박물관은 시립박물관으로 부산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국립박물관이 없고 시립박물관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는 부산.경남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은 대부분 삼국시대 가야연맹체의 유물이 주를 이루기때문에 인근 김해와 서부경남지역의 중심도시 진주에 국립박물관을 두고 있다. 부산은 가야연맹체의 일원으로 김해와 함께 금관가야의 중심지였을때 가장 번성했고, 그 이후 조선시대 일본과의 교류창구역할을 하면서 국제도시로서 역할을 했던 도시로 부산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대부분 삼국시대와 조선중기 이후의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부산박물관 또한 다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야외박물관을 두고 있으나,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의 ..

지역박물관 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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