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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산병원 구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식 병원 건물

대구 동산병원 구관은 계명대학교 부속 동산의료원 건물로 1931년에 미국인 선교사 플레처(Archibald G. Gletcher)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규모의 건물로 가운데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구조이다. 원래는 중앙 현관이 돌출되어 있는 형태였으나, 대구지하철 3호선 공사로 2010년 현관부분을 철거하여 선교사 주택들이 남아 있는 동산의료원 뒷편 청라언덕으로 옮겨놓고 있다. 이 건물읜 2차대전에는 일본군 경찰병원으로, 한국전쟁때는 국립경찰병원 대구분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대구 동산의료원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1999년에 대구 약전골목에 설립한 서구식 진료소였던 제중원을 모태로 하고 있다. 제중원은 미국예수교 북장로파 대한선교회에서 설립한 경북지역 최초의..

[대구박물관] 사리갖춤, 부처님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기와 공양물

사리갖춤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찰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스투파(탑)에 모셔졌던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기와 공양물을 일컫는다. 사리는 부처의 유골인 진신사리와 부처의 정신을 상징하는 법신사리를 통칭해서 일컫는데 실제로는 법신사리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사리갖춤은 시라를 담는 그릇, 그릇속에 넣는 불상, 작은탑, 경전과 구슬, 장신구 등의 공양물을 뜻한다. 사리를 담는 그릇인 사리기는 유리 또는 수정으로 만든 그릇과 이 그릇을 금,은,철,동,돌 등 다양한 재질의 용기에 차례로 넣어 사리에 안치한다. 부처의 사리는 불상이 신앙이 중심이 되었던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었기때문에 사리를 담는 그릇과 공양물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정성이 들어간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최근까지 석..

지역박물관 2013.04.30

국민대학교 캠퍼스 둘러보기, 해방직후 임정요인들이 설립한 대학

서울 성북동 북악산 동쪽 자락 정릉터널 입구에 있는 국민대학교이다. 이 학교는 해방 직후인 1946년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이 지도자 양성을 위해 설립한 대학이다. 임시정부 주요 각료를 지냈으며 국회의장과 야당 대통령후보를 역임한 신익희가 초대 이사장과 학장을 지냈다. 서울에 있는 종합대학 중에서는 그 위상이 그리 높지 않은 편으로 해방 이후 임시정부의 정치적.사회적 위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설립초기 출신 인사로는 부총리를 지낸 남덕우를 비롯하여 명망있는 인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경제력을 앞세운 다른 사립대학에 비해 캠퍼스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졸업생을 많이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임시정부 요인들이 설립한 대학답게 법학대학 중심으로 발전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

한국의 풍경 2013.04.30

대구 계성학교 핸더슨관(Handerson Hall), 고딕양식의 북미식 교사 건물

대구 계성고등학교 본관 건물에 해당하는 핸더슨관이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개신교 계통의 학교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식이며, 북미지역 학교 건물의 건축양식을 적용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2층건물로 당시 교장이었던 핸더슨(H. H. Henderson)과 학생들이 기초공사를 하였고,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인 벽돌공과 일본인 목수들이 건축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서양의 다른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바닥과 천정이 목재로 지어졌을 것으로 보이는데, 1964년 3층으로 증측하면서 철근콘크리이트 기둥을 세우고 바닥을 슬라브로 개조하였다고 한다. 현 계성 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계성학교는 영남지역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여주 영릉(사적 195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합장릉

여주 영릉은 조선 4대 임금 세종과 정비 소헌왕후의 능으로, 조선시대 최초의 합장릉이다. 1469년 여주로 이장하면서 세조 때 만들고 예종 때 선포된 『국조오례의』에 따라 병풍석과 석실제도를 폐지하고 회격으로 하는 조선 전기 능제의 기본을 이루었다. 능의 석물은 난간석에서 영저(靈杵), 영탁(靈鐸), 지초문양(芝草紋樣)을 배제하고 구름 문양과 십이지신상만 조각해 조선 왕릉 난간석의 기본을 확정하였으며, 혼유석을 받치는 북모양의 석물인 고석을 기존의 5개에서 4개로 줄였다. 또한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하여 십이지간 문자로 표현하였다.입지를 보자면 풍수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했으며, 좌우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

[대구박물관] 삼국시대 불교 조각,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국보182호)와 금동보살입상(국보 183호, 184호)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4세기 고구려 소수림왕 때 전진에서 승려와서 불상과 불경을 전하면서 부터이고, 백제는 고구려와 별개로 4세기에 동진에서 온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서이다. 신라는 삼국 중 늦은 시기인 5세기 눌지왕때 고구려에 의해서 전파되었다. 신라는 토착신앙이 강해서 실제로 불교가 공인된 것은 6세기 법흥왕때 이차돈의 순교에 의해 이루어졌다. 신라가 국가적으로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부터 경북지역에서는 불교가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경주에 비해서 이른 시기에 사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에 비해 불교가 먼저 전파된 경북지역에는 이른시기부터 불상을 만드는 조상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영주, 봉화, 안동, 군위 등 여러지역에서 삼국시대 금동불과 마애석불 등이 남아 있다. 특히, 우리나..

지역박물관 2013.04.27

대구 계성학교 아담스관, 대구읍성 성돌이 남아 있는 영남지방에서 처음 세워진 서양식 학교건물

대구 계성고등학교 교정에 남아 있는 20세기초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인 아담스관이다. 이 건물은 영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학교 건물로 대에 처음으로 들어왔던 선교사인 아담스(James E. Adams, 한국명 안의와)가 지은 교사로 지은 건물이다. 강화도에 있는 성공회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초기 교회건물처럼 한옥형태로 지었지만, 붉은 벽돌을 비롯한 석재를 사용하여 한옥과 양옥의 건축양식이 절충된 건축물이다. 외관은 일반교회건물처럼 중앙에 돌출된 종탑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형태이다. 석재로 대구읍성을 철거하고 남은 성돌을 사용하여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계성학교는 대구 계성중.고등학교의 전신으로 1906년 선교사 아담스가 선교사 자택을 임시교사로 하여 창설된 영남 최초의 근..

부암동 서울미술관, 흥선대원군 별장 석파정과 이중섭, 박수근 화가의 명화를 볼 수 있는 미술관

서울 부암동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 언덕아래 있는 사설미술관인 '서울미술관'이다. 한 기업가가 석파정 일대를 구입한 후 세운 미술관으로 자신이 소장한 이중섭, 박수근 등의 걸작들을 중심으로 상설전시, 특별전시가 열린다. 대원군별장이었던 석파정은 최근에 공사를 하느라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공사하는 모습을 볼 때는 약간 우려스러웠던 점도 없지는 않았는데, 공사가 끝난 지금 석파정도 깨긋하게 수리가 되었고, 미술관도 언덕 아래에 석파정의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적절하게 잘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설미술관으로 운영의 편의를 위해 바로 옆에는 면세점이 있는데 미술관의 경관을 해치지 않고 관광객이 미술관을 찾을 수 있도록 적절히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석파정은 원래 구한말 세도가였던 영의정을..

지역박물관 2013.04.26

여주 신륵사, 들어가는 길과 사찰 풍경

여주 남한강 북쪽 강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신륵사는 고려시대 남한강변 뱃길과 육로를 부근에 있었던 고달사를 비롯한 많은 사찰들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들 사찰들이 경제적 기반의 상실과 숭육억불정책으로 대부분 폐사되었지만 신륵사는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사찰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찰이다. 신륵사는 남한강 뱃길에서 중요한 나룻터 중 하나였던 조포나루를 끼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말.조선초 명망이 높고 조선왕실과 인연이 많았던 나옹선사가 입적한 사찰로 조선초기 여주로 옮겨진 세종대왕 영릉을 지키는 원찰로서 왕실의 보호를 받았기때문 크게 번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여주 신륵사 일대는 여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남한강 풍경을 감상할 수 있..

전국 사찰 2013.04.26

[대구박물관] 신라와 가야의 꾸미개 (금동관, 관장식, 장신구 등)

대구박물관에서는 대구.경북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유물들을 주로 전시해 놓고 있는데 주요 출토지역으로 원삼국시대에 쌓은 토성으로 달구벌국의 중심지였던 대구 달성을 비롯하여 경산, 김천, 의성, 상주 등 신라의 지방세력을 비롯하여 고령, 성주지역의 가야연맹체 세력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신라 지방세력의 무덤에서 출토된 꾸미개들은 그 구성이나 형태에 있어서 경주의 고분에서 출토된 것들과 비슷하며, 경주와는 달리 금관은 출토되지 않고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신라금과과 비슷한 '出'자 모양의 장식을 한 금동관과 깃털모양의 금동관, 날아가는 새의 날개 모양을 하고 있는 관장식, 원삼국시대 중국과 서역의 영향을 받은 동물모양 허리띠와 신라와 비슷한 북방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허리띠.드리개..

지역박물관 2013.04.26

대구 계성학교 맥퍼슨관, 일제강점기 계성고등학교에서 두번째로 지어진 교사

대구 계성학교 교사 중 아담스관에 이어 2번째로 지어진 교사인 맥퍼슨관이다. 이 학교 2대 교장이었던 라이너(Reiner)선교사가 미국인 맥퍼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지어진 건물로 일제강점기인 1913년 지어진 것이다. 건물은 현재 기준으로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한옥 기와를 얹어 놓은 건물이다. 당시로서는 거금을 들여서 지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 서양건축물이 도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대구에서 교회와 개신교 선교사 주택이 많은 계명대부속 동산부근 일대에 위치한 계성학교는 대구의 근대문화를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 이전인 1906년 대구에 처음 설립된 사립 근대교육기관으로 현재 계성중.고등학교의 전신이다. 미국인 선교..

안산 시화호방조제와 조력발전소

시화호는 경기 서해안의 큰 섬인 대부도와 시흥시 오이도를 방조제를 연결하여 만든 인공호수이다. 방조제는 길이 11.km 로 대부도를 육지와 연결해 주는 도로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중동건설붐 쇠퇴 이후 건설장비와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추진한 토목 사업 중 하나로 1987년에 시작해서 1994년에 방조제 건설이 완공되었다. 시화호는 농어촌공사 주도로 안산일대 공업용수를 확보하고 간척사업을 통해 농경지와 수도권 공업용지를 공급하기 위해 추진한 사업이었지만, 시화호로 유입되는 강이나 하천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오염된 담수의 공급으로 물이 썪어가는 환경재앙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호수이다. 이후 용수공급을 위한 담수호의 기능을 포기하고 수문을 열어 바닷물을 끌어들임으로써 조금씩 자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

한국의 풍경 2013.04.25

여주 조포나루, 여주 신륵사 부근 남한강 4대 나룻터 중 하나였던 곳

여주 신륵사가 위치한 곳은 삼국시대 이래로 남한강 뱃길을 통해 물자를 운반하던 조운에서 중요한 나룻터로 여주 이포나루, 서울 광나루, 서울 마포나루와 함께 한강의 4대 나룻터로 불리던 곳이다. 고려시대 남한강 뱃길과 육로 주변에서 여행객들에 숙소를 제공해 주던 큰 사찰들이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쇠퇴하고 대부분 폐사되었음에도 신륵사만이 오늘날까지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말 영향이 있었던 나옹선사가 입적한 유서깊은 사찰이고, 세종대왕의 능인 여주 영릉의 원찰 역할을 했던 부분도 있지만, 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중요한 나룻터에 위치하고 있었던 점도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포나루는 신륵사 입구 강둑아래 유람선인 황포돛배 선착장 자리에 있었던 큰 나루터로 남한강 건너 여주읍 연양리를 연결했다고 ..

한국의 풍경 2013.04.25

[대구박물관] 고대인의 장송의례

사냥과 채집생활을 하던 인류가 농경생활과 함께 한곳에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계급이 생겨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제사의식이 생겨나고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 중 죽음은 여러 제사의식 가운데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삶의 일부분으로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의식이 생겨나게 된다. 죽은이의 시신을 묻는 무덤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이는 죽은이가 사후세계에서 살아야 할 집과 같은 성격을 갖기 때문으로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모습 중 하나이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게 된 이후 삼국시대까지 무덤에는 죽은이를 위해 다양한 껴묻거리를 같이 묻었는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은 이들 껴묻거리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무덤에선 죽은이가 생전에 사용했던 의복, 그릇을 비롯한 다양한 ..

지역박물관 2013.04.25

대구 달성 (사적 62호), 원삼국시대 대구지역 토착세력이 쌓은 토축성

대구시 중심부에 위치한 달성공원은 작은 동물원이 있고, 조선시대 경상감영 출입문이었던 관풍루가 있는 대구의 오래된 도심공원이다. 달성공원은 원래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읍성 바깥쪽에 있던 오래된 토성으로 조선초기에는 달성내에 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이곳엔 고려시대에는 달성서씨가 살던 사유지였으나 전국적으로 국방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읍성을 쌓던 세종대에 국가소유로 바뀌어 읍성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대도시에 공원이 처음 세워지기 시작했던 1905년에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1967년에 오늘과 같은 모습의 현대식 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구 달성은 대구시민이 많이 찾는 유서깊은 도심공원이지만,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는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곳 중 하나이다. 이곳은 원삼국시대 대구지역 지방세력..

옹진 영흥도, 육지와 연결되는 영흥대교가 건설된 후 서해안 관광명소로 바뀐 작은 섬

영흥도는 대부도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원래는 인천에서 여객선으로 통행이 가능한 외딴 섬이었으나 2001년 선재도와 영흥도를 연결하는 연육교인 영흥대교가 건설됨으로써 지금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바뀌었다. 영흥도는 해발 127m의 국사봉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비교적 평지가 발달하여 원래는 주민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육지와 연결되는 영흥대교가 건설됨으로써 서울과 수도권이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영흥도를 찾게되면서 낚시배 운행이나 횟집, 펜션 등 어업과 관광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영흥도 동쪽으로는 작은 섬인 선재도가 있고, 서쪽으로는 자월도, 덕적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열도를 이루고 있다. 먼바다의 큰 바도가 들어오는 서쪽과 북쪽해안에는 장..

한국의 풍경 2013.04.24

여주 신륵사, 주불전인 극락보전을 비롯한 불전과 요사채, 강당

여주 신륵사는 남한강 수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조포나루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이다.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고달사를 비롯하여 고려시대에 남한강변 교통로에 존재했던 많은 사찰들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륵사는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를 지냈으며 보제존자라는 시호를 받은 고승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입적함으로써 그의 제자들과 후원자들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남한강변에 위치한 많은 사찰들처럼 쇠락하기는 했으나 세종대왕의 영릉이 여주로 옮겨짐에 따라 능을 지키는 원찰의 역할을 부여받아 크게 중창하였다. 신륵사는 성종대에 크게 중창하면서 대리석으로 만든 다층석탑을 중심으로 불전들이 배치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신륵사 가람배치는 아..

[대구박물관] 삼국시대 무기

대구.경북지역은 고령의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연맹체 세력이 존재하다가 신라가 강력한 세력으로 주변지역을 통합함으로써 신라의 지방세력으로 점차 바뀌었다. 신라는 마립간시기에는 군사력이 강하다고 할 수 없었으나, 고구려의 지원을 받아 왜를 물리친 마립간시기 이후에는 동북아시아에서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던 고구려의 군사와 무기체제를 받아들임으로서 판금갑옷을 비롯하여, 철제투구, 환두대도 등을 갖추게 됨으로써 가야를 병합하고 진흥왕대에 한강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에서 사용한 무기들은 다양한 종류들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매장풍습이 죽은자가 사후세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생전에 사용했던 많은 무기들과 생활용품 등을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었기때문이다. 출토된 유물들은..

지역박물관 2013.04.23

대구 옛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건물

대구 중심부 조선시대 경상도 관찰사가 근무했던 경상감영 관아가 있던 경상감영공원 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대구 근대역사관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경상감영 관아가 해체되면서 도청을 비롯하여 많은 공공기관 건물들이 옛 관아건물터에 들어설때 세워졌던 건물 중 하나로 1932년 구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대구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조선식산은행은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지방농공은행 등을 합병하면 세운 금융기관으로 일제 식민지 경제정책에서 금융지배를 담당했던 기관이다.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은 기존의 경상농공은행이 합병되면서 세워진 지점으로 지역 산업자금 공급 창구로서 대구.경북지역 금융을 전반적으로 지배한 곳이라 한다. 1931년에 ..

옹진 영흥도 장경리해수욕장, 1.5km에 이르는 긴 백사장을 자랑하는 서울 근교 해수욕장

대부도 서쪽 연육교로 연결되어 지금은 육지처럼 가까워진 작은 섬 영흥도 서해에 위치한 장경리해수욕장이다. 서해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어 거센파도를 맞으면서 형성된 약 1.5 km에 이르는 긴 모래사장과 그 뒷편으로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모래사장이 발달되어 있으며,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이곳에서는 멀리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가 아름답다고 하며,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 남단 무의도가 수평선 너머로 보인다. 장경리해수욕장이 있는 영흥도는 경기도 서해안의 큰 섬인 안면도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인천에서 배를 이용하여 통행이 가능했으나 최근인 2001년에 연육교인 선재도와 영흥도를 연결해주는 영흥대교가..

한국의 풍경 201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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