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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186

[창덕궁] 궐내각사 검서청, 규장각 검서관들이 근무하던 관청건물

조선시대 궁궐 건물배치에 있어서 남북을 축으로 외조, 정전이 있는 외전, 국왕의 일상 집무공간인 편전, 국왕과 왕비, 왕실가족의 처소인 내전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궁궐 중심축의 정전을 중심으로 동쪽편은 세자의 거처 및 집무공간인 동궁을 비롯하여 그 뒷편으로는 궁궐에 거주하는 후궁들을 비롯하여 왕실가족 거처공간이 마련되고, 서쪽편으로는 국왕을 보좌하는 직속관청들이 들어서 있는 궐내각사가 형성되어 있다. 창덕궁도 마찬가지로 정전인 인정전 동쪽편으로 궐내각사들이 들어서 있는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이 정전 바로 옆에 있고, 바깥쪽으로는 정조가 세종대의 집현전을 참조하여 만든 규장각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창덕궁 궐내각사 중 금천 서쪽편에는 규장각 부속건물로 출판될 서적의 교정과 서..

조선 관아 2012.09.24

경주 안압지, 야경이 아름다운 옛 신라의 궁궐 후원 연못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처음 만든 안압지는 경복궁 경회루 연못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궁궐 연못이다. 주로 사신을 접대하거나 신하들과 연회를 즐길 목적으로 조성한 안압지는 서남쪽은 직선적인데 비해 동북쪽은 자연스러운 멋을 강조하여 들쭉날쭉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은 연못으로 동쪽에 무산 12봉을 상징하는 언덕을 조성해 놓고 연못에는 삼신도를 본 떠서 만든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조성되어 있다. 안압지에는크고 작은 동물들과 새들을 길렀다고 한다. 신라가 멸망한 후 건물잔해들을 연못에 버리고 폐허가 되어 연못에는 갈대밭에 기러기와 오리가 노니는 전형적인 옛 도읍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옛 신라의 영화를 생각하며 이곳을 안압지라 불렀다고 한다. 안압지는 의도적으로 ..

조선 관아 2012.07.11

연꽃이 아름다운 부여 백제 궁남지 (사적 135호)

경주에는 안압지가 있다면, 백제의 수도 부여에는 궁남지가 있다. 궁남지는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백제 무왕의 서동과 선화공주의 전설이 담겨있다. 궁남지는 규모나 아름다움으로는 안압지에 못지 않고 호젓한 산책을 하기에 아주 좋다. 안압지에 비해 왕궁건물 터 같은 인공적인 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지만 연못자체 만으로도 매우 아름답다. 궁남지는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 사비성의 별궁 연못으로 사적 135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 무왕때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에 따르면,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여들였으며,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도교적인 사상이 반영된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을 조성한 전형적인 정원의 연못으로 비교적 이른 시지에 조성된 것으로 신라 임해전지를 비롯하여 후대 궁궐 정원 연못 조성에 큰 영..

조선 관아 2012.06.19

홍주목 관아 여하정

홍주목은 충남 서해안 내포평야지대를 관장하던 정3품의 목사가 다스리던 상당히 큰 고을이다. 옛 결성현과 홍주목이 합쳐진 지금의 홍성군은 작은 군단위 행정구역이지만, 옛날에는 상당히 규모가 있었던 고을이었다. 홍성군청이 소재한 곳은 옛 홍주성의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동헌인 안회당, 아문, 뒷편의 정자인 여하정과 연못이 남아 있다. 옛 홍주목 관아 후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 안에 있는 작은 섬에는 여하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 정자는 1896년 홍주목사가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육모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지은지 100년 정도되어서 문화재로서는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방 관아 정원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잘 보여 주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뒷편으로는 옛 홍주..

조선 관아 2012.04.08

서울 삼군부 청헌당, 육군사관학교 경내로 옮겨진 조선시대 관아 건물

서울 공릉등 육군사관학교 경내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인 삼군부 청헌당이다. 삼군부는 조선초 군사관련 업무와 군령을 통합관리하던 관청으로 종래의 십위군을 중.좌.우군의 3군으로 나누고 자체 감독권과 지원권을 갖는 중앙 군사체제였다. 삼군부 체제는 후에 오위체제로 개편되기까지 중앙부대인 동시에 왕권과 수도를 방위하는 병력을 지휘.감독하는 최고 군부로 자리잡았다. 조선중기에는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하다가 군사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비변사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국가 최고합의 기관으로 비대화되었고, 이에 따라 국가 최고기관이었던 의정부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졌다. 고종대에 흥선대원군은 의정부의 기능을 회복하고 조선개국초의 정신을 되찾는다는 의미로 삼군부가 다시 설치되었다. 삼군부는 1880년 근대적인 ..

조선 관아 2012.03.22

강화 정족산사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던 곳

사고(史庫)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당대의 역사를 기록한 실록과 국가적으로 중요한 서적이나 문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고려는 개국 직후부터 사관을 두고 실록을 편찬했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모두 소실되고 고종대인 1227년부터는 개경 이외에 한부를 해인사에 보관하였다. 조선은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개경의 사고는 한양으로 옮겨 춘추관으로 개칭하고, 충주에서 실록보관소를 두었다. 세종대에는 사고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경상도 성주, 전라도 전주에 별도의 사고를 설치하여 충주와 함꼐 3대사고를 두었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자 고려의 전례를 참조하여 묘향산,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의 4곳에 두었다. 청나라의 위협이 증대했던 인조대에는 묘향산 사고를 강화 정족산으로 옮겼다. 이는 실록 등 중요한..

조선 관아 2012.03.05

논산 연산아문, 옛 연산현 관아 출입문

연산현은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중 동쪽 5개면을 포괄하는 조선시대 행정구역이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멸망하기전 마지막 큰 전투라고 할 수 있는 황산벌 싸움이 벌어진 곳이며, 지역내에 계백장군의 묘라고 전해지는 무덤이 있다. 이 지역은 황산벌 싸움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조선후기 유학의 학파 중 율곡의 제자로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김장생의 세거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소론의 영수 윤증이 세거지인 노성현과 함께 조선후기 정치와 사상을 이끌어온 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산현 내에는 김장생을 모시는 서원인 돈암서원을 비롯하여 서원과 사당, 재실 등 유교와 관련된 문화유적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연산현 관아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관아출입문인 아문만 남아 있고, 객사와 동헌을 ..

조선 관아 2012.02.12

충주 관아공원, 도심공원으로 변모한 옛 충주목 관아터

충주 지역은 삼국시대에 중원경이 설치되었고 고려 태조 23년(940) 충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984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이 설치되면서 충주목이 설치되어 구한말 행정구역개편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 조선시대 행정단위인 목(牧)은 정3품의 외직문관이 고을 수령으로 있었던 큰 고을로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2목을, 조선시대에는 전국의 20목을 두었으며, 감영인 설치된 지역에서는 관찰사가 겸직하기도 했다. 충주지역은 남한강 중류에 위치해 있으면서 한강조운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으며, 조령과 죽령을 통해 영남지방과 한양을 연결해주는 육상교통로의 중심이기도 했다. 충주 관아공원은 충주시 성내동 옛 충주읍성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터에 조성한 도심공원으로 충주목 동헌인 청령헌과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제금당이 남..

조선 관아 2011.11.03

삼척 죽서루 (보물 213호), 관동팔경 중 최고의 누각으로 일컫어 지는 곳

관동팔경은 강원도 동해안 여덟곳 명소로 금강산 유람과 연계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한번은 가고 싶어 했던 곳으로 많은 그림과 시로서 관동팔경의 아름다움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관동팔경은 금강산 너머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을 일컫는다. 이 곳들은 대부분 해안, 석호, 하천의 경치좋은 곳에 세워진 누정과 함께 하고 있다. 실제로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주변에 충분히 넓은 농지가 있어서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는 부호들의 저택이나 관아가 가까웠던 곳으로 여행의 편의성도 고려했다고 할 수 있다. 삼척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에서도 첫번째로 꼽히는 누정으로 태백산 부근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

조선 관아 2011.11.02

충주 제금당, 조선시대 관아 건물 중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동헌 별관

충주 도심에 위치한 옛 충주목 관아공원에 동헌인 청령헌과 함께 남아 있는 별관 건물인 제금당이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 건물 중 동헌 별관으로 지어진 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3칸으로 규모가 큰 편이며, 팔작지붕을 하고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새날개 모양의 익공양식이다. 영빈관이 관아 건물로서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서 동헌이나 객사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면 7칸 중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하고 있으며, 오른쪽 2칸과 왼쪽 3칸을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꾸며 손님들이 묵었던 것으로 보인다. 충주목은 고려시대에 처음 전국에 지방행정단위인 목(牧)이 설치된 이래로 구한말까지 유지되었다. 남한강 조운, 영남 내륙..

조선 관아 2011.10.25

충주 청령헌, 충주목 관아 동헌

충주시 성내동 옛 충주목 관아터에 조성된 관아공원에 남아 있는 건물 중 충주목사가 근무하던 동헌인 청령헌이다. 이 건물은 구한말인 1870년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다시 세운 건물로 건물 자체로는 오래된 건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구한말에 지어진 관아 건물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앞면 7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지방 관아 건물 중에서는 그 규모가 큰편이다. 왼쪽 2칸은 온돌방,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오른쪽 1칸과 왼쪽끝 1칸은 누마루 형식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중원군 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던 것을 1983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기존의 관아 건물 형식을 유지하면서 누마루를 비롯하여 세부적으로 구한말 건축양식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

조선 관아 2011.10.23

경주 사마소, 젊은 유림들이 지역 여론을 형성하고자 조직한 자치기구

사마소는 조선 중기 지방의 생원.진사들이 설립한 자치기구로 사마시 출신의 젊은 유림들이 지역 여론을 장악하고자 세웠다. 원래는 고려시대 사심관제도에서 시작하여 지방의 유력인사들이 조직한 유향소라는 자치조직이 있었으나 주로 중앙에서 고위관직을 지내다 낙향한 인사들 위추로 구성되어 지방 수령보다 그 직위가 높아서 수령을 능멸하는 일이 잦아서 오랜기간동안 혁파되었다가 다시 생겨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마소나 유향소 모두 지방수령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 조직되었지만, 실제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조직 모두 공권력을 능멸하거나, 탐관과 합작하여 백성을 착취하고 사적인 처벌을 하는 등 많은 민폐가 있어서 오랜 기간 동안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기도 한 지방자치기구이다. 대표적으로 이들은 대동법을 반대했던 세력으로 ..

조선 관아 2011.10.05

강화유수부 이방청, 유사시 행궁 역할이 부여되었던 관아 건물

고려시대 대몽항전기간동안 궁궐이 있었던 강화 고려궁지에는 조선시대 강화유수부 관아와 행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있었던 건물로는 행궁, 동헌, 이방천, 만녕전, 외규장각 등의 건물이 세워졌었는데 지금은 강화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건물만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강화에는 국방상 중요한 곳에 설치되었던 유수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강화유수는 종2품의 상당히 높은 관직에 해당된다고 한다. 강화유수부 관아는 강화지역을 다스리는 행정관청이기는 하지만, 병자호란 이후 비상시 국왕이 대피할 수 있는 행궁이 설치되어 있으며, 기존의 동헌이나 이방청 등의 건물도 비상시 중앙부처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규모를 상당히 크게 지었다고 할 수 있다. 1654년(효종5)에 강화유수 정세규가 세운 강화유수부 이방청은 다른 지방의 이방청이..

조선 관아 2011.09.11

강화유수부(江華留守府) 동헌, 국가 비상시 행궁(行宮)의 역할을 기대했던 관청 건물

강화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몽고와의 항쟁 기간동안 궁궐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강화유수부 관아에는 여러 관청건물이 세워졌다고 한다. 광해군 14년(1622)에는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는 봉선전이 세워졌다가 병자호란때 소실되었고, 인조 9년(1631)에는 행궁이 건립되었고, 그 이후 유수부 동헌, 이방청, 만녕전 등에 세워져 궁궐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정조 6년(1782)에는 왕실 의궤를 보관하던 외규장각이 세워졌다. 행궁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들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불태웠다고 한다. 조선후기 강화에는 수도 이외에 군사적 요지나 행궁에 있던 곳에 유수부라는 관직을 두었다. 조선초기에는 고려의 옛 수도인 개성과 태조의 고향인 전주에 유수부를 두었고, 조선후기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에..

조선 관아 2011.09.10

현풍 원호루, 관아 후원에 세워졌던 작은 정자

달성군 현풍면 소재지 현풍석빙고 뒤편 언덕에 있는 옛 관아의 정자인 현풍 원호루이다. 이 누각은 원래 현풍현 관아 후원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최근에 이전 복원한 것이다. 구한말에 처음 세워진 원호루는 정원에 세워진 2층 누각 형태의 작은 정자였으나,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치면서 옛 모습과는 달리 전통적인 2층누각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건물로 우리나라 정자의 정형화된 모습을 하고 있다. 문화재로서 가치는 거의 없는 공원 휴식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정자이기는 하지만, 현풍현 관아에 속했던 건물이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풍면 소재지 동쪽편 언덕 위에 보원된 옛 현풍현 관아 후원 정자인 원호루. 전국 각지 ..

조선 관아 2011.09.08

인제 합강정, 오대산 발원 내린천과 설악산 발원 인북천이 만나는 합강에 세워진 정자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 강변에 세워진 정자인 합강정이다. 이 정자는 조선 숙종 때인 1676년에 처음 세원진 것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정자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소실된 이후 세워졌던 콘크리이트로 만든 정자를 최근인 1998년에 전통 목조 건축물 누각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합강정이 위치한 언덕은 오대산과 방태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내린천과 설악산에서 발원하는 인북천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합강나루터인 홍진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설악산을 자동차를 타고 여행할 때 인제를 지나면 보였던 번지점프대와 함께 있던 정자로 많은 사람들의 눈에 익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합강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목조 누각으로 평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정자이..

조선 관아 2011.08.30

대구 달성 하엽정, 연꽃으로 가득찬 전통 정원을 잘 보여주는 삼가헌 별당

삼가헌은 사육신 중 한명으로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달성 묘골마을 인근에 있는 저택이다. 이 곳은 원래 박팽년을 비롯하여 사육신을 모셨던 낙빈서원이 인근에 있으며, 낙동강이 근처에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박팽년의 11대손인 삼가헌 박성수가 1769년(영조45)에 사랑채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삼가헌이라고 불렀다. 하엽정은 이 가옥의 별당으로 삼가헌을 지은 이듬해에 별당을 세우고 주변과 연못에 국화와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원래는 파산서당이라는 작은 서당 건물로 지었던 것을 구한말인 고종때 별당건물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하엽정은 건물의 크기나 마당은 그리 넓지는 않으나 연못과 수목들을 잘 배치하여 절제된 듯 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는 조..

조선 관아 2011.08.22

대구 달성 하목정(霞鶩亭), 낙동강변에 세워진 오래된 정자

경북 성주에서 달성으로 들어가는 국도 30호 도로가 낙동강을 건너는 성주대교 인근에 위치한 오래된 정자인 달성 하목정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었던 낙포 이종문이 1604년에 세운 건물로 저택의 사랑채로 사용할 목적으로 세운 정자이다. 달성과 하빈의 경계가 되는 낙동강변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이 정자는 이 곳에 낙동강을 건너서 성주로 연결하는 나룻터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인조가 반정이전에 일반인의 신분으로 여행을 하면서 이곳에 묵었던 적이 있어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정자 건무로 앞면 3칸은 대청마루로, 옆면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온돌방이 있는 곳은 측면이 4칸으로 되어 있어 '丁'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인조가 이 ..

조선 관아 2011.08.19

진해현 관아 및 객사유지, 창원 진동면 소재지에 남아 있는 관아 건물

진해현은 마산시 합포구 진동면.진북면.진전면 일대에 있었던 조선시대 지방 행정 단위이다. 진해라는 명칭은 지금은 대부분 해군 군항이 있는 옛 진해시로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까지는 마산시 서쪽편 고성, 진주 사이에 있는 지역의 고을 이름이다. 진해현은 고려시대에 처음 현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계속 유지되어 왔다. 진해시는 옛 웅천현에 속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농토가 넓은 편이며, 남해안 연안 해로에서도 중요한 지역이었기때문에 고대 이래로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진해현 관아가 있던 진동면 소재지에는 청동기시대 최대의 집단 묘역인 진동리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다. 또한 진해현 관아에서 관리했던 조선시대 호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진해현 관아 건물은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건물로 지금은 ..

조선 관아 2011.08.19

성주 성산관, 성주목 관아 동헌

경북 성주군은 삼국시대 가야연맹체 중 하나인 성산가야국이 있었던 신라시대에는 벽진군 또는 본피현이 설치되었다가 후삼국시대 지방 호족인 이충언이 태조왕건을 도운 공으로 경산부가 설치되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성주목이 설치되었으며, 경상감영인 대구와 가까이 있었던 까닭에 성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도 많았다. 조선시대 큰 행정단위인 목이 설치되었지만 고을의 규모가 크지 않고 대구의 감영과 가까이 있었기때문에 실질적으로 작은 고을 인 현이 설치된 곳으로 볼 수 있다. 성주 성산관은 고을 수령이 근무하던 동헌이다. 조선시대 큰 고을의 수령인 목사가 근무했던 곳이라고는 하는 다른 지역의 목사가 근무했던 동헌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은편이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조선 관아 201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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