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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142

남원성, 정유재란때 왜군과 큰 전투가 있었던 읍성 (사적298호)

정유재란 당시 남원전투는 당시 왜군이 전북 남원성을 공격해 조.명 연합군과 전투를 벌린 것으로 각지의 의병들과 군민들이 합세해 벌린 큰 전투였으며, 결국 왜군에 패해 모두 살했당했으며, 그당시 살해당한 관민 일만명의 무덤이 남원에 있는 만인의총이다. 당시 왜군은 칠전량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격파하고 육군도 구례를 함락시키고 남원성으로 총진격하였으며 왜군의 수가 오만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남원성은 경상도에서 호남지역을 거쳐서 서울로 북상할 수 있는 길목에 해당되기 때문에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3,000명이 파견되었고 각지제서 관군들과 의병들이 모여서 일만이 넘는 민.관이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5만이 넘는 왜군의 주력부대와의 싸움에서 작은 읍성으로는 지키기 어려웠기때문에 남원성에 있었던..

[서울 성곽] 홍지문, 오간수문, 탕춘대성

홍지문은 서울 성곽 북서쪽 출입문인 창의문을 지나서,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홍제천 계곡에 있는 성문이다. 조선중기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시 반란군이 반정을 모의한 세검정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반군이 경복궁으로 들어온 길에 있는 성문이다. 이 지역은 서울 성곽과 북한산성 사이에 있는 사각지대를 방어하기 위해 조선 숙종때 쌓은 북한산성과 인왕산 성곽을 연결해주는 탕춘대성의 출입문이다. 홍지문은 숙종때 쌓은 성문과 홍제천을 막아 놓고 있는 오간수문이 연결되어 있으며, 홍지문이 있는 길만 평지이고 성문 좌.우로는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쌓아 놓고 있다. 현재의 성문과 오간수문은 일제강점기에 홍수로 떠 내려간 것을 1977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서울 세검정 상명대학앞 홍제천가에 세워진 홍지문. 1921..

서울 북한산성, 북한산을 둘러싸고 있는 성

북한산성에는 지금은 고양시쪽 입구에만 일부 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남쪽의 대남문은 아주 높은 지대에 성문이 있다. 북한산성 성벽을 따라서 서울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으며, 삼국시대 한강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유용했으나 고려시대 이후에는 군사적으로는 별로 유용성을 보여주지 못한것 같아 보인다. ☞ 북한산성 주요 유적지 1. 대남문, 청수동 암문, 문수봉, 2. 성벽을 따라 걷는 대성문, 대동문 3. 북한산 계곡에 자리잡은 중성문, 4. 진흥왕순수비가 있었던 비봉 북한산성의 남문인 대남문입니다. 문수봉 아래 구기동으로 가는 고갯길을 막고 있습니다. 멀리 비봉 근처에서 바라본 대남문 북한산 동쪽의 대동문 주위 북한산성의 정문격인 대서문의 취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계곡 한가운데 세운 중성문 북한산성이란 이름은 삼국..

단양 적성산성, 남한강변 죽령길을 지키는 신라의 산성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금석문이 있는 비석 중 하나인 단양 신라적성비가 있는 적성산성이다. 조령과 더불어 영남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중요한 통로 중의 하나인 죽령을 지키는 산성으로 남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성재산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적성산성은 남한강 북쪽에서 쳐들어 오는 적을 제압하는 목적으로 쌓은 산성으로 신라에게 유용했던 산성으로 보인다. 대부분 성벽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라 하며, 성을 쌓은 방법과 형태를 보면 보은의 삼년산성 비슷한 신라계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단양 적성산성 정상 부근. 이 성벽위에 서면 발아래로 남한강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적성산성에서 내려다 본 남한강 단양 적성산성 성벽위에는 흙이 깔려있지 않다. 단양 적성산성 내부 성벽적성산성 성문. 남한강 방향으로 성문이 있..

여주 파사산성, 신라 파사왕이 쌓은 남한강변을 지키는 산성

우리나라 역사에서 조선시대까지 중요한 교통로 중의 하나였던 남한강 수운을 지키는 여러 산성중에서 하나인 여주 파사산성이다. 이 성은 삼국시대 신라 파사왕때 쌓은 산성으로 당시 고구려와의 투쟁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산성이다. 그 후로도 한강 수운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성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강에 있는 많은 나루터중에 하나인 이포나루를 지키는 이 성은 조선시대 수도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성들 중의 하나였지만, 이 곳 주민들은 이 성을 쌓고 유지하는 데 비협조적인 것으로 여러 기록들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산성의 형세를 보면 북쪽은 산악지대이고 남쪽은 여주와 이천의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파사산성을 쌓은 파사왕의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북쪽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고자 하..

서울 아차산성, 백제 수도 위례성이 내려다 보이는 산성

서울의 동쪽 경계인 지금의 워커힐 호텔이 있는 뒷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다.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아차산에 쌓은 산성이다. 백제가 수도 위례성을 방어하기 위해 처음 쌓았으며, 이때는 토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구려가 아차산성을 점령하고 이 일대에 군사시설인 보루를 건설함으로써 백제 위례성에서 물러나 공주지역으로 수도를 옮길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성곽은 중간크기 돌을 촘촘하게 쌓고 있는데, 고구려 산성축조법의 영향을 받은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하면서 쌓은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아차산성에서 백제 개로왕이 전사하였다고 하며,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후 고구려의 온달장군 또한 이곳에서 전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아차산성에서 거의 유일하게 산성임을 눈으로..

단양 온달산성, 온달장군 전사한 장소라는 전설이 남아있는 곳

온달산성은 단양에서 남한강을 따라서 상류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소백산자락 아래 남한강변 성산에 자리잡고 있는 산성이다. 삼국시대에서 신라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고구려와 신라 간에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있었던 장소로 고구려 온달장군이 전사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산성의 이름은 온달산성으로 고구려 산성으로 여겨지는 곳이지만, 산성이 위치한 장소가 북쪽으로부터의 적을 제압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아서 신라의 산성으로 여겨진다. 성을 쌓은 방법을 보면 작은 돌로서 촘촘하게 쌓은 것이 아차산성 등 고구려 산성과 비슷하기도 하며, 신라가 쌓은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고구려, 신라 간에 주인이 여러번 바뀌었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 온달산성에 올라가면 남한강..

연천 당포성, 임진강 나루를 지키는 고구려성

연천 당포성은 연천과 파주 사이를 가르면서 흐르는 임진강변에 있는 고구려 성 중의 하나이다. 4~5세기 무렵 고구려가 남하함에 따라 백제와의 전선이 형성되었으며, 그후 신라 진흥왕이 한강을 장악하면서 자연스럽게 신라와의 국경선이 되었던 지역이다. 임진강을 따라서 북단에는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등 고구려의 요새들이 발굴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백제의 육계토성, 오두산성, 신라의 칠중성 등이 자리잡고 있다. 수백년동안 고구려와 백제 또는 신라와의 접전이 일어났던 국경지대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남북의 휴전선이 이 임진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당포성을 보면 산성축조에 있어서 고구려인의 뛰어난 점을 느낄 수 있는데, 고구려 산성을 보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소수의 인원으로 방어할 수 있는 산..

용인 처인성, 몽고침입때 명장 김윤후가 몽골 장군 살리타이를 사살, 몽고 침입을 물리친 곳

용인시와 남쪽 안성시, 평택시와 경계가 되는 지점에 위치한 남사저수지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처인성입니다. 전체 둘레 425m의 작은 평지성으로 성벽은 토성으로 쌓았으면 별로 높지도 않고 견고해 보이지도 않은 성입니다. 이 곳이 몽골의 고려 침입시 가장 유명한 전투인 처인성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고려시대 명장 김윤후가 몽골 자군 살리타이를 사살함으로써 당시 세계 최고의 군대인 몽골 기마대를 물리친 곳입니다. 처인성의 전략적 위치는 용인 이남에서 서울방향과 연결해 주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중요해 보이기는 하지만 성벽의 규모로 보아 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만 역사적으로 고려가 몽골군을 격퇴한 장소로서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처인성은 용인 남사에서 서울 방향으로 들어오는 길목의 교통 ..

나주 자미산성, 고대국가 마한의 중심

나주 영산강 남쪽에서 영암 월출산까지의 넓은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 지역은 고대국가 마한의 중심지이고, 그 중심에 해발 100m도 되지 않는 낮은 야산에 자리잡고 있는 자미산성이 있다. 이 자미산성은 백제 테뫼식 산성으로 백제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산성의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자미산성은 영산강 이남 하류지역을 관장하는 곳으로 마한시대부터 후백제 견훤과 고려 태조 왕건과의 투쟁, 삼별초 항쟁 등 다양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 주변 지역은 반남 박씨의 본향이기도 하다. 물론 자미산성은 지금 이름만 산성이고, 성벽이나, 성문지 같은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상태로 산성이었다는 의미만 간직하고 있다. 자미산성 입구 자미산성 오르는 길. 자미산성은 해발 100m가 되지 않는 낮은 ..

부여 부소산성

부소산성은 부여의 금강산변 낮은 야산인 부소산성에 쌓은 성을 말한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산성 형식을 보여주며 자연적인 능선을 쌓아서 산성의 형태를 만든 것으로 돌을 쌓은 흔적을 찾기는 약간 힘들다. 그렇지만 산성이 백마강을 끼고 요새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공략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 부소산성 내 유물/유적: 1. 계백, 성충, 홍수 3명의 충신을 모신 사당: 삼충사 2. 3천궁녀가 떨어진 낙화암, 백마강 그리고 고란사 부소산 정상부근의 반월루 입니다. 부여시내와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입니다. 부소산성내에 있는 누각인 영일루 입니다. 부소산성내에 있는 숙영지인 군창지입니다. 부소산성의 성벽이었던 것 같은데 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경주의 반월성이나 행주산성도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백제성인 토..

[서울 북한산성] 대남문, 청수동 암문

북한산성은 서울의 북쪽에 자리한 북한산을 둘러싸고 있는 성이다. 그래서 북한산성의 성벽들은 대부분 해발 500m이상의 능선을 따라서 쌓았고 그 중 구기동을 통해서 올라가면 문수봉 옆 고개길에 있는 대남문을 만날 수 있다. 북한산성 성문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대남문입니다. 문수봉 바로 아래에 있는 고개에 있습니다. 성문을 통해 등산객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대남문 성문 대남문 문루와 현판 문수봉 방향으로 성벽이 계속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동문에서 대남문으로 연결된 성벽, 이 쪽 성벽이 제일 완벽하게 북한산성 성벽을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북한산성 성벽 대남문 성벽 위의 풍경입니다.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북한산을 감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먼곳에서 바라본 대남문입니다 문수봉과 비봉 사..

[서울성곽] 남산 동쪽 장충동 일원

한양도성을 이루고 있는 성곽중 남동쪽 소문에 해당되는 광희문을 지나서 남산으로 연결된 성곽이다. 광희문에서 다시 시작된 성곽은 옥수동 방향 도로가 있는 부근에서 끊어 졌다가 장충체육관 뒷편에서 시작되어서 남산 동쪽 능선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양도성의 동쪽에 자리잡은 낙산 능선에 남아 있는 성곽과 함께 도심에서는 성곽이 꽤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성곽 안쪽에는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주택이나 마을은 거의 없고 장충체육관, 신라호텔, 자유센터, 국립극장, 동국대학교 등 관변단체나 시설 등에 그 기원이 있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성곽 바깥쪽에는 일반 서민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전형적인 서울 성곽주변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중 그 상태가 양호하게 남아 있는 장충동 일대의 서..

[서울 성곽] 이간수문과 주위 성벽 흔적, 동대문운동장에 묻혀 있던 조선시대 수문

최근에 철거된 동대문운동장은 일제가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의 성곽을 허물어서 만든 운동장으로 최근에 철거가 완료되었다. 철거과정에서 남산과 장충동에서 흘러내린 물을 성 밖으로 빼내기 위해 만든 조선시대 수문이 이간수문이 발굴되었고, 주위 서울 성곽의 성벽도 조금씩 복원해 놓고 있다. 이 곳은 조선시대 병영이 있던 곳으로 현재 서울의 용산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성밖 청계천으로 빼내는 조선시대 수문이 이간수문. 오랜 세월 동대문 운동장 아래 묻혀 있었던 까닭에 원형이 거대로 남아 있다. 아치형으로 만든 거대한 수문. 우리나라 석조구조물 중에서는 상당히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수문 안쪽에서 본 모습. 거대한 돌이 돌출되어 있다. 서울 성곽에서 유일한 ..

[서울 성곽] 혜화문, 한양도성 동소문에 해당하는 성문

사직터널에서 산능선을 따라서 인왕산을 거쳐 북악산을 지나 창덕궁과 성균관대학 뒤쪽 능선을 지나서 의정부 방향 도로와 만나는 곳에 있는 혜화문이다.한양도성의 동소문에 해당하는 성문으로 의정부, 양주를 거쳐 함경도 방향으로 연결된 도로들이 한양도성으로 들어오는 혜화동 고갯길에 있던 성문으로 지금은 원래의 위치에서 동쪽편 언던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성문과는 달리 원래부터 있던 성문이 아니라 90년대에 복원한 성문이다. 혜화문 안쪽으로는 혜화동 대학로가 있으면, 성곽은 다시 낙산 능선을 따라서 계속 이어진다. 한양도성의 동소문은 원래 의정부방향 도로 중앙에 있었는데, 도로 확장 등으로 현재의 위치인 동쪽편 언덕에 복원해 놓고 있다. 복원된 혜화문. 아치형 성문과 성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래 있었는 성루가 1..

[서울 성곽] 성북동 경계가 되는 창덕궁 뒷편 와룡공원 성벽

한양 도성을 이루고 있는 서울의 성곽 중에서 북악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이 사람들이 사는 공간과 만나기 시작하는 지점인 와룡공원 부근의 성벽이다. 오랜 기간 동안 국왕이 거처했던 창덕궁, 창경궁과 종묘로 이어지는 녹지공간과 북한산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 곳 성벽을 넘으면 성북동이 시작된다. 성의 북쪽이라는 성북동은 이 성벽너머의 마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성벽 바로 아래에는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에서 묘사한 성북동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 달동네라고 불리는 동네가 있고, 그 너머로 요즈음의 부의 상징이라는 성북동 고급 주택가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궁궐이 지키던 성벽답게 거의 전역에 걸쳐서 아주 크고 튼튼한 돌을 쌓은 성벽이 있으며, 성벽위에는 또한 아주 튼튼한 흉벽이 있..

[서울 성곽] 서대문에서 인왕산 아래 (사직동 부근)

서울의 성곽은 인왕산, 북악산, 남산, 낙산 등 서울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적인 장애물에 오랜 기간 동안 성곽을 쌓아 형성되어 있고 4대문과 4소문을 두고 있습니다. 서울의 서쪽 방면을 막고 있는 성곽은 서대문을 중심으로 인왕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숭례문과 서대문 사이의 성벽은 도심으로 변해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서대문에서 시작해서 능선을 따라 쌓은 성벽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 성곽 여행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사직단 근처 사직터널위 능선에 설치된 성벽을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인왕산 능선을 따라서 쌓은 서울 성곽을 탐사할 수 있습니다. 사직단과 독립문이 있는 무악재 사이의 능선을 따라 형성된 성벽 주위 마을 주민을 위한 도로에 잘려나간 성벽입니다. 독립..

[남한산성] 서문(우익문)에서 북문(전승문)까지, 석양이 아름다운 곳

남한산성 서문에서 북문까지는 산성의 서북쪽으로 솟아있는 능선을 따라서 성곽을 쌓은 곳으로 한강이 흐르는 서울시내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남한산성 축성의 목적인 한강 수운을 제압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가장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곳으로 적들이 남한산성을 제압하지 않고는 이 곳을 지나서 남한강 상류 방향으로 진격하기 힘들고, 한강 이남 지역으로의 진출이 어렵기 때문에 삼국시대 초기부터 이 곳에 산성이 존재한 이유가 되는 곳이다. 이 곳은 또한 서울에서 일몰 풍경이나 야경을 촬영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며, 실제로 이 곳을 찾았을 때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일몰장면과 야경을 촬영하기 위해서 오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서문에서 약간 위쪽에 있는 능선에서 서울 한강이남과 한강이 흐르는 모습이 가장 가까이서 ..

[만리장성 거용관] 천하제일웅관, 북경의 관문

만리장성에서 팔달령 장성과 함께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북경의 관문인 거용관이다. 거용관은 천하제일웅관이라고도 불리며 물이 흐르는 계곡과 팔달령에서 이어진 산길이 평지로 들어오는 입구에 설치된 옹성이다. 이 곳은 중국 황제가 자주 찾았던 곳으로 보이며, 성 안에는 행궁과 같은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거용관 옹성에는 3층의 문루가 설치되어 있어며, 만리장성에서 가장 웅장하다는 의미로 '천하제일웅관 天下第一雄關'이라는 현편이 걸려 있고, 옹성내부에는 작은 사당이 설치되어 있다. 옹성 주위에는 여러 망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동쪽편으로는 계곡을 가로목은 수문도 설치되어 있다. 만리장성 너머에서 북경으로 들어오는 길은 이 길이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보이며, 팔달령에서 이 곳 거용관까지 웅장한 성벽으로 둘려싸여..

중국(China) 2010.07.07

중국 만리장성 - 북경 팔달령 장성 서쪽 능선을 오르는 입구

중국 만리장성에서 가장 유명한 팔달령 장성 서쪽 능선은 동쪽에 비해서 많은 사람이 오르지 않는 곳이라서 조용히 만리장성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팔달령 장성 입구에서 서쪽편으로 오르면 휴게소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어 만리장성을 올라 갔다 온 후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만리장성 팔달령 장성 서쪽편 능선으로 오르는 입구. 옛날 병사들이 출입하는 통로를 통해서 장성 위로 오를 수 있다. 팔달령 장성 서쪽편 능선을 오르는 출입구. 계단을 통해서 장성 위로 올라갈 수 있다. 팔달령 장성은 돈대와 연결된 외부계단을 통해서도 올라갈 수 있다. 팔달령 장성의 돈대. 아래부분은 화강석으로 쌓고, 윗부분은 벽돌로 쌓았다. 팔달령 장성에 설치된 배수구. 장성 안쪽으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팔달령..

중국(China) 201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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