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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170

안동 퇴계종택, 도산서원 인근 퇴계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집

도산서원 주차장에서 북쪽 언덕길을 넘어서 자동차로 조금 더 들어가면, 퇴계 선생의 종손이 사는 종갓집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퇴계선생 종택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후손인 하정공이 옛 종택의 규모를 짐작하여 세운 집이라고 한다. 종택은 낙동강과 가까운 앞.뒤로 작은 산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종택 앞 들판은 그리 넓지 않은 편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종택 건물은 앞면 6칸의 'ㅁ'자형 살림집과, 앞면 5칸의 추월한수정이라는 정자, 솟을대문과 행랑채,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으로 구성되어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구한말 경북 안동지역에서 유행했던 건물 양식들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종갓집에는 퇴계 종손이 아직도 집을 지키고 살고 있으며, 항상 손님들..

고택_정원 2010.10.20

봉화 닭실마을, 삼남지역 4대 길지로 손꼽히는 마을

봉화 닭실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안동 화회마을,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삼남지역 4대 길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이 닭실마을은 조선 중종때 문신 충재 권벌선생이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면서 외가쪽 집안이 있던 이 곳에 입향하면서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게 된 마을이다. 닭실마을은 봉화읍에서 울진과 태백방향으로 약 1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아늑한 마을이다. 마을 앞쪽으로는 2개의 시냇물이 마을 둘러싸고 있으며, 뒷편으로는 나즈막한 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마을 안쪽으로는 충재 선생이 거북바위 위에 세운 청암정과 종가집이 있다. 지금은 도로가 남쪽편 철로쪽과 연결되어 있어서 청암정과 종가집이 제일 안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닭실마을을 들어..

고택_정원 2010.10.16

봉화 닭실마을 충재 권벌선생 종택

봉화 닭실마을은 안동 천전마을,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이중환의 택리지에 삼남지역의 4대 길지로 꼽는 마을이다. 이 곳 닭실마을은 조선중기 문신 충재 권벌선생이 사화로 파직당하여 외가인 봉화 닭실마을에 들어오면서 안동권씨 세거지를 형성한 곳으로 그 중심이 되는 집이 이 곳 종택이라 할 수 있다. 충재 권벌선생의 종택은 저택 오른편에 있는 넓은 거북바위 위에 세운 청암정으로 유명하다. 청암정에서 작은 문을 들어서면 충재선생의 종택이 보이는데 살림집은 경북 북부지역의 전통적인 양반집 저택 형태인 'ㅁ'자형 구조로 하고 있으며, 바깥쪽에 사랑채가 있고, 대문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이다. 보통 경북지역 고택의 경우 사람이 찾아오면 종택 내부를 잘 보여주는데, 이 곳 닭실마을은 유명세가 있..

고택_정원 2010.10.14

선정릉 제사 준비를 하던 재실

선정과 정릉 중간에 위치한 재실은 두 왕릉의 재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원래는 선릉과 정릉에 각각 재실이 있었으나, 구한말에 통합되어 하나의 재실만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실은 왕릉 입구 낮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나 이 곳을 침수피해가 많은 곳이라서 언덕 위에 재실을 조성해 놓고 있다. 재실은 중앙에 제사에 참석한 왕이 휴식할 수 있는 사랑채같은 건물이 있고, 여러개의 방과 창고로 이루어진 행랑채가 담장을 이루고 있다. 숲손 언덕에 위치한 재실. 여러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행랑채와 사랑채처럼 생긴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재실은 제사준비를 하는 곳으로 실제 제사를 이 곳에서 지내지 않는다. 재실 중앙에 있는 건물. 앞면4칸의 건물로 왕이 왕릉에 제사를 지낼때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재실은 일반 민..

조선 관아 2010.10.06

안동 천전마을 의성김씨 종택, 사랑채와 행랑채

임하댐 아래 천전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안동 의성김씨종택의 사랑채는 다른 주택과는 달리 안채의 왼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행랑채 대문을 통해서 출입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왼쪽편을 돌아서 들어갈 수 있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연결해 주는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서재로, 아래층은 헛간으로 쓰인다. 사랑채는 바로 옆에 있는 사당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정실과 경묘각을 바라보고 있는 구조이다. 사랑채 내부의 마루가 상당히 넓어서 많은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것 같아 보인다. 이 곳 천전마을 의성김씨 종택은 학봉 김성일이 지은 것이라고 하며, 기존 이지역의 양반 저택인 'ㅁ'자형 주택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학봉선생이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오면서 중국 상류층 주택을 참고하여 지었..

고택_정원 2010.09.11

안동 의성김씨종택 안채 (보물), 임하댐 아래 천전마을 종가집

안동 임하댐 아래 영남 4대 길지 중의 하나라는 천전마을에서도 중심이 되는 의성김씨종택이다. 학봉 김성일 선생이 지었다고 하며, 보물로 지정된 고택이다. 학봉 김성일 선생의 고택은 안동 봉정사가는 길에 별도로 있지만, 원래는 이 곳 마을에서 살았던 것 같다. 이 의성김씨 종택은 안동지역 주택의 특징인 'ㅁ'자형 주택이지만 사랑채ㄱ와 안채가 붙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외부에서 보는 이 종택의 느낌과는 달리 내부는 검소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안채와 사랑채는 내부에서 작은 문을 통해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안동 천전마을 의성김씨 종택을 안채를 출입하는 문. 이 종택에는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권의를 상징하는 솟을대문은 없고, 저택 주위로 담장만 ..

고택_정원 2010.09.11

안동 구봉종택, 임하댐 아래 천전마을 두번째 고택

안동 임하댐 아래 천전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구봉종택은 보물로 지정된 의성김씨 대종택 옆에 있는 고택이다. 원래는 현종때 지은 건물이지만, 고종때 중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당시에 지은 건축양식등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고, 지금 내부는 낡았지만 외관상으로 상당히 화려하고, 출입문으로 솟을대문을 갖추고 있다. 아마도 구한말 법제도가 느슨해진 시기에 건물을 크게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임하댐 아래 의성김씨가 모여사는 천전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구봉종택. 건물이 웅장해 보이길래 목적지인 보물로 지정된 의성김씨 대종택인 줄 알았는데, 이 마을에 있는 또다른 종택이었다. 출입문이 솟을대문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권세가 있었던 집으로 보인다. 대문밖 담장에서 들여다 본 구봉종택 마당에서 본 솟을대문. ..

고택_정원 2010.09.11

안동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낙동강을 내려보고 있는 화려한 저택

안동 신세동칠층전탑을 앞마당의 장식품처럼 사용했다고 할 수 있는 안동댐아래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이다. 안동지역에 있는 많은 고택들 중에서 건물의 크기나 구성,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위치 등으로 보아 가장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고택이다. 지금은 그 앞으로 중앙선 철로가 지나가서 낙동강을 내려보고 있는 위치상의 장점이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마당도 넓고, 건물들도 상당히 화려하다. 이 곳에 옛날에 삼국시대의 유명한 사찰인 법흥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틀린말은 아닌듯하다. 안동 법흥동 고성이씨탑동파 종택 출입문인 솟을대문. 상당히 권위가 있어 보이는 출입문으로 그 앞에는 국보로 지정된 신세동칠천전탑이 자리하고 있다. 안동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은 별당, 사랑채, 안채, 사..

고택_정원 2010.09.11

안동 의성김씨 학봉종택, 한옥과 현대화된 정원이 조화로운 고택

안동 임하댐 아래 반변천가 천전마을 의성김씨 대종택을 세운 학봉 김성일 선생이 분가하여 세운 저택으로 보이는 안동 의성김씨 학봉종택이다. 안동에서 봉정사 가는 길에 자리잡고 있는 고택으로 본가인 의성김씨 대종택에 비해서는 약간 화려해 보이는 면이 있다. 물론 후손들이 번성해서 그런지 이 학봉종택은 한옥을 어떻게 현대화해서 살기 좋게 만들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학봉 김성일 선생의 권위를 잘 보여주고 있는 저택의 솟을대문, 솟을대문 양쪽으로는 문간채가 있고,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방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동 의성김씨 학봉종택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양쪽으로 2칸씩의 방이 있는 문간채가 있다. 보통 고택을 들어서면 마당에는 텃밭이 있는 경우가 많으나 최근에 마당을 새로 꾸며서 그런지 넓은 잔듸밭 정..

고택_정원 2010.09.11

강릉 오죽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유서깊은 집

강릉 오죽헌은 개인이 살던 집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집으로 퇴계 이황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이 스승으로 여기는 율곡 이이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그의 어머니인 신사임당과 함께 지폐에 그 인물이 들어갈 정도로 모든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며 존경하는 사람으로 강릉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찾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개인이 살던 가옥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보존이 잘 되어 있어 보인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이 건물을 간결하면서 단정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이다. 율곡 선생이 태어난 몽룡실이 있는 건물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나머지 주택들은 후대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오죽헌 건물이 성역화되어 있어 후손들이 사는 집을 별도로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을..

고택_정원 2010.09.11

강릉 심상진가옥

강릉 오축헌에서 경포대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전통한옥인 심상진가옥이다. 지금은 초당두부를 파는 식당과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 해운정과 나란히 있는 가옥으로 조선후기에 지어진 주택이다. 서울이나 경북지역의 한옥처럼 'ㅁ'자형 주택형태를 하고 있는데 원래는 'ㄱ'자형으로 된 안채만 있었던 집이 당시 유행을 따라서 바깥쪽에 사랑채를 증축하면서 자연스럽게 'ㅁ'자형으로 변한것으로 보인다. 가옥옆에는 해운정이 있고, 해운정 앞에는 언제 조성했느지 알 수은 없지만 작은 연못이 있다. 강릉 심상진가옥은 농촌지역에 있는 주택이지만 대문을 별도로 두지 않고 도시형 주택처럼 'ㅁ'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사랑채는 외부로 드러나 있다. 지금은 이집 앞은 농경지로 바뀌었지만 원래는 경포호수가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랑..

고택_정원 2010.09.11

강릉 선교장, 강릉지역을 대표하는 99칸 대저택

강릉 오죽헌에서 경포호수로 가는 길에 있는 강릉지역을 대표하는 99칸의 대저택인 선교장이다.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시킨다고해서 집주인인 조선시대 이내번이라는 사람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원래는 안채만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집이었으나, 그 후로 계속 증축이 이루어져서 지금의 99칸 대저택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 선교장은 일반적인 대저택과는 그 구조가 다른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강릉지역을 찾아오는 많은 고위층과 선비들을 접대하기 위해서 방이 많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원의 별당인 활래정을 비롯하여 중심이되는 사랑채인 열화당을 비롯하여 사랑채가 여러동 있고, 그것도 부족해서 인지 안채와 별당, 행랑채에도 많은 방을 두고 있다. 보통 대저택의 경우 하인들이나 집안일을 돕는 사람들을 위해서..

고택_정원 2010.09.11

강릉 선교장 동별당, 안채

강릉 선교장은 경포호수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대저택으로 선교장 건물 구조나 배치로 봤을 때 상당부분이 이 곳을 찾는 손님을 배려하여 만든 공간이 많다. 99칸의 대저택 중에서 선교장 주인이 실제 거주하는 영역으로는 안채와 안채 앞쪽에 위치한 동별당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인을 위한 공간이지만 안채와 동별당에도 많은 방을 두고 있어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지체 높은 여자 손님인 경우 안채 쪽에 묵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부분이다. 선교장 동쪽편은 주인이 주로 거주하는 영역으로 안채주옥과 부속건물, 동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교장 안채 앞쪽에 위치한 동별당. 'ㄱ'자형 건물 배치를 하고 있고, 집안의 잔치나 손님 맞이에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선교장 주인이 일상..

고택_정원 2010.09.11

강릉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 중사랑

강릉 선교장에서 외부 손님이 묵을 수 있는 공간인 사랑채 영역이다. 선교장 안채 동쪽편에 위치한 이 곳은 선교장 주인의 거처인 열화당을 중심으로 지체가 높은 인사가 묵을 수 있는 중사랑과 마치 콘도를 연상시키듯이 늘어서 있는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열화당은 구한말에 건립된 건물로 이 곳에 러시아 공사관 인사도 많이 묵었던지 공사관에서 러시아식으로 테라스를 선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강릉지역을 포함하여 관동지역이 많은 선비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피서지 또는 여행지였던 까닭에 선교장은 개인 저택이지만,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상당히 많은 손님들이 묵을 수 있도록 작은 방들을 많이 배치해 놓고 있다. 선교장 사랑채인 열화당. 1815년에 건립된 건물로서 선교장 주인 남자의 거처로 앞면 4칸에 누마루와 테..

고택_정원 2010.09.11

강릉 선교장 외별당, 서별당, 연지당

강릉 선교장은 99칸의 대저택으로 조선시대 민간가옥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것으로 보인다. 서울 안국동의 윤보선가도 같은 크기인 99칸이지만, 실제 크기에 있어서는 강릉 선교장이 훨씬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선교장은 안채, 3동의 별당, 행랑채, 사랑채, 열화당과 정자인 활래정을 두고 있는데 구한말 규제가 느슨할 때 많은 증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이 저택에는 독립된 가옥으로 외별당과 서별당을 두고 있는데 서별당은 집안의 어른이 거처하던 곳이고, 외별당은 바깥쪽에 독립된 가옥으로 자식들이 분가하기 전에 임시로 거처하던 곳으로 보인다. 강릉 선교장 외별당. 동쪽편에 별도의 출입문을 두고 독립된 가옥을 형성하고 있다. 맏아들의 신혼 살림이나 작은 아들의 분가 분가 이전에 사용하던 건물이며 손자들도..

고택_정원 2010.09.11

서산 김기현 가옥과 정순왕후 생가, 서산지역 양반집 저택

서산 김기현 가옥은 조선후기 정조대왕 관련하여 유명해진 정순왕후의 생가와 바로 붙어있는 저택이다. 정순왕후 생가는 화재로 소실되어 새로 건립한 까닭의 문화재로 가치가 높지 않은 반면, 생가와 이웃하고 있는 이 저택은 19세기에 지은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주인이 대문을 열어 방문하는 사람을 반겨주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나라 각처에 있는 복원한 고택과는 달리 이런 저택들은 사람이 살고 있어 저택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서산 김기현 가옥의 사랑채. 경북 안동지역의 사랑채와는 확실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랑채에는 '계암당(溪巖黨)'이라는 편액을 걸어놓고 있다. 사랑채에는 대청마루가 없는 대신 처마처럼 지붕만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기현 가옥 안채로 들어가는 출입문. 창고와 방..

고택_정원 2010.09.11

예산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아름다운 한옥

추사 고택은 중부지방 도시 주택 형태인 ㅁ자형의 한옥구조로 안채를 만들었 사랑채는 일반적인 ㄱ자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추사고택은 건축물의 규모는 그렇게 크지는 않고 일반 가정집과 비슷한 규모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사랑채, 안채 외에도 별도의 다른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안채로 들어가는 출입문. 안채는 ㅁ자형으로 되어 있고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대청마루가 보인다. 가운데에 있는 마루 내부 마루 좌우측으로 방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엌위로 연결된 다락이 별도로 있다. 좌우측으로 부엌이 있고 부엌 위에는 다락방이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또다른 출입문.

고택_정원 2010.09.11

예산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외부, 사랑채) - 아름다운 한옥

충남 예산에 자리한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입니다. 중부지방의 ㅁ자형 한옥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추사고택은 원래 서울에 있던 집을 뜯어서 옮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방의 주택 형태라기 보다는 도시에 자리한 한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 80평 정도라고 하는데 권세에 비해서는 집의 규모가 크지는 않습니다. 추사 고택이 입구 대문입니다. 도시지역의 대문을 연상시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남자들의 공간이자 손님을 맞는 공간인 사랑채입니다. 가족 생활의 중심인 안채로 들어서는 문입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공간입니다. 안채의 뒷편 마당입니다. 외부에 굴뚝이 있습니다. 사랑채 뒷편 마당입니다. 안채 뒷편에 자리한 사당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안채 뒷편에 자리한 김정희 선생의 사당입니다. 영정이 내부에 모셔져..

고택_정원 2010.09.11

양평 이항로 선생 생가

양평군 서종면 벽계구곡 깊은 계곡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이항로 선생의 생가이다. 이 집은 지은지 약 250년 된 양반 가옥으로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야가 발달하지 않은 이 곳 양평 벽계구곡 계곡 속에 자리잡은 별장 같은 저택이다. 이항로 선생은 구한말 주리철학을 재건한 사람 중의 하나로 조선 말기 위정척사 이론을 세운 사람이다. 이른 나이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산중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살아 왔으며, 저택 바로 옆에는 후학을 가르치던 벽계강당이 있다. 서원이 아닌 개인 저택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까닭에 이 저택은 일반 양반집의 저택에 비해서 방이 많아서 배우던 학생들이 많이 머물 수 있고, 계곡을 찾아서 온 손님들도 이 곳에서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고택_정원 2010.09.11

남양주 여유당, 다산 정약용 유적지

남양주 팔당댐 부근에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 중에서 살던 집인 여유당이다. 'ㄱ'자 형 안채와 대문과 행랑채와 붙어 있는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 이 저택은 중부 지방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랑채는 앞면 5칸의 '-'자형으로 생긴 크지 않으면서 앞,뒤로 문이 있어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안채는 'ㄱ'형으로 되어 5칸규모이다. 건물 자체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정한 느낌을 주고 있다. 현재의 여유당 건물은 당시의 건물은 아니고 1986년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다산 선생이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지은 집이라고 하는데 생가가 맞는지는 설명이 잘 되어 있지 않아 헷갈리는 부분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높은 벼슬을 했던 사람이지만 이 건물은 그런 느낌은 주지 않는 평범하면서 잘..

고택_정원 201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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