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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259

속초 향성사지삼층석탑(보물 443호), 외설악으로 들어가는 도로에 외로이 서 있는 통일신라 석탑

속초시 설악동 설악산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 옆에 외로이 서 있는 향성사지삼층석탑이다. 보물 443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2층의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높이 4.33m로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석탑이 정형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만들어진 석탑이다. 인근에 있는 국보 122호로 지정된 진전사지 삼층석탑에는 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부조상이 새겨져 있지만, 이 석탑 몸돌이나 기단부에는 조각상이 새겨져 있지 않고 간결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석탑이 있는 자리는 설악산 신흥사의 전신인 신라고승 자상이 653년에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는 향성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 향성자시삼층석탑은 설악켄싱턴스타호텔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아마 호텔이 있는 자..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보물 250호), 통일신라 후기의 정형화된 양식의 석탑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은 보물 250호로 지정된 통일신리시대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이층의 기단부에 3층 탑신을 쌓아 올린 석탑으로 석탑이 정형화되어가던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북내륙지역 3층석탑에서 볼 수 있는 기단부나 탑신에 새겨진 팔부중상 등의 부조상은 보이지 않고 간략하게 안상만 새겨 놓고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 1개의 돌에 기둥 등을 새겨놓고 있다. 제작수법이 간단하면서도 정형화된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초기의 석탑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부산 금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범어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전국 화엄십찰 중 하나로 남해안 침략하는 왜(倭)를 물리치고하고자 하는 바램으로 세운 사찰로 국왕을 보위하는 화엄종 사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찰로 임진왜란 때 ..

제천 청풍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보물 546호로 지정된 제천 물태리석조여래입상이다. 이 불상은 원래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읍리에 있었던 불상인데,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서민적인 모습의 미륵불상들과는 달리 통일신라 불상의 세련되면서도 힘이 있는 조각수법이 남아 있는 불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 형식적의 주름 등의로 볼 때 통일신라 불상 조각수법의 영향이 남아 있는 고려초기의 불상이라고 한다. 삼국시대 이래 영남지방의 관문격인 죽령길에 위치해 있었던 청풍지역의 번성했던 과거를 잘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주요 교통로나 경관이 좋았던 지역에는 큰 사찰들이 많이 있었는데, 청풍 지역에는 큰 사찰이 보이..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463호)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섬강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흥법사 옛절터에는 고려시대에 세운 삼층석탑과 진공대사를 기리는 탑비의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고, 절터 대부분은 경작지로 바뀌어 옛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다. 흥법사가 있었던 절터는 원주와 여주, 양평을 연결해주는 주요 교통로이며 섬강과 문막읍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진공대사는 통일신라말 고승으로 당나라에서 유학을 했으며,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냈다고 한다. 절터에는 진공대사 탑비의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고, 비석은 파손되어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탑비의 귀부는 짧은목에 비늘을 새긴 용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거북 등에는 卍자와 연꽃무늬가 장식으로 새겨져 있다. 머릿돌인..

공주 마곡사, 극락교와 범종루

차령산맥 아래 태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마곡사는 충남지역 조계종 사찰을 관장하는 큰 사찰이다. 마곡사의 가람배치는 주불전인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경내가 좁아서 그런지, 경내 태화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중심으로 사찰이 반분되어 있으며, 영산전을 중심으로 요사채건물들과 강당이 바깥쪽에 자리잡고 있다. 사찰설명에 의하면 대웅보전이 있는 영역은 부처님의 영역이고,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바깥쪽은 승려들의 수행공간이라고 하며, 개천을 건너는 다리는 부처님의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극락교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웅보전이 있는 경내에도 다른 사찰에 비해서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를 두고 있으며, 바깥쪽에도 영산전과 명부전을 두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꼭 그런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마곡사에..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보물 464호)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위치한 흥법사는 에 신라때 세워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찰이다. 이 곳에는 염거화상탑, 진공대사부도, 진공대사탑비와 삼층석탑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의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만이 남아 있다. 고려를 건국하던 시기에 주로 활동한 진공대사와 관련된 사찰이며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후 중건되지 않고 폐사지로 변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흥법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 46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얹어놓은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을 계승한 전형적인 고려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후기부터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삼층석탑으로 기단과 몸돌간의 비례에 있어서 조형미가 뛰어나 보이지는 않고, 3층으로 세원짐 몸돌의 높이가 낮아서 웅장한 느낌을 주지..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보물799호),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고려말 석탑

마곡사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서 주불전인 대광보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서면 고려말에 세워진 오층석탑을 볼 수 있다. 이 석탑은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서 세워진 탑으로 다보탑이라고도 부른다. 이 오층석탑은 높은 이중 기단 위에 오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으며 탑의 끝부문에는 라마탑과 비슷한 장식을 세워놓고 있다. 경천사탑, 원각사탑과 함께 원나라 탑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마곡사오층석탑은 통일신라나 고려초에 만들어진 석탑에 비해서 각 구성요소들의 비례가 안정적이지 못하며, 조각수법 또한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2층으로 쌓은 기단부는 전체 탑을 받치고 있는데 안정감이 많이 떨어지며, 5층으로 쌓은 탑신의 몸돌에는 부서, 보살 등을 조각해 놓고 있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머리장식은 라마탑..

양양 낙산사 동종(옛 보물 479호)과 범종루

2005년 낙산사에서 발생했던 큰 화재로 소실되었던 옛 보물 479인 낙산사 동종이 복원되어 현재 낙산사 사천왕문 옆 종루에 걸려 있다.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옛 동종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낙산사는 대부분의 전각이 지난번 산불로 소실되어 지금은 옛스러운 멋을 찾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3대 관음도량으로서의 그 위치와 지리적 장점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상은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낙산사 동종은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범종으로 세조의 아들인 예종이 불교를 숭상했던 그의 아버지 세조를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며, 당대의 문신들이 쓴 글이 종의 명문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비록 원래의 모습은 아니지만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범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 같다. ..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귀부 및 이수 (보물 446호)

양양에서 구룡령을 넘어가는 56번국도 근처에 있는 미천골자연휴양림 내에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옛 절터인 선림원지가 있다. 선림원지는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표적인 선종의 수행도량이었다고 한다. 선림원지에는 3층석탑과 석등, 부도, 홍각선사탑비 등이 남아 있으며, 신라범종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이다. 이 곳 선림원지에 남아 있는 유물 중 홍각선사탑비는 신라 정강왕때인 886년에 홍각선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탑비이다. 이 탑비는 조선시대 이전에 파손되어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 몸돌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귀부는 용의 머리가 직립한 모습이고, 비좌에는 구름무늬가 둘러져 있다. 이수에는 "홍각선사비명"이라는 전액을 양각으로 새기고 주위에는 구..

양양 선림원지 석등 (보물 445호)

선림원지는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절터이다. 선림원지가 있는 미천골은 강원도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어서 홍천으로 들어가는 구룡령 아래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이 곳 구룡령을 지나는 여행객들이 하룻밤을 묵어가야만 하는 장소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찰이다. 이 곳에서 많은 사람이 묵어서 그런지 쌀씻은 물이 개천으로 흘러들어 하얀물이 흐른다고 해서 미천골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선림원지 옛절터 한쪽편에 있는 홍각선사탑비 앞에 있는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인 88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석등으로 석재의 재질이나 조각수법이 뛰어나서 아직도 원형에 가까이 보존되어 있다. 팔각으로 이루어진 하대에는 안상이 음각..

부여 무량사석등 (보물 233호)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있는 무량사는 신라시대 범일국사가 창건한 절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초 생육신이자 당대의 천재로 잘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조선 인조때 크게 중건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무량사 가람배치는 통일신라시대 금당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극락전과 그 앞에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닮은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오층석탑과 석등이 극락전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무량사 오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을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 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느낌을 주고 있기는 ..

보령 성주사지석등

보령 성주사지 절터에서 중심 영역이 되는 금당터 앞 오층석탑과 같이 있는 석등이다. 성주사의 사찰규모와 역사성, 오층석탑의 조형미와 완성도 등을 고려해 볼 때 원래 석탑을 만들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후대에 석등을 추가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는 석탑 앞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던 것을 이 곳 석탑들을 해체 수리할 때 같이 수리한 것이라고 한다. 지대석 아랫돌에는 여덟잎의 연꽃이 새겨져 있는 받임이 놓여 있고 옥개석은 처마가 약간 위로 올라가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솜씨가 뒷편의 석탑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지는 것으로 봐서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주사지 오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 석등의 화사석이 크기가 작고 세부적으로 조각이 잘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연꽃잎이 새겨진 받침돌 성..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보물 439호), 선종을 들여온 도의선사 승탑으로 추정되는 부도

설악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진전사지는 우리나라에 선종을 들여온 도의선사가 창건한 절로이다. 도의선사는 당나라에서 유학한 후 우리나라에 선종을 소개한 분으로 염거화상과 보조국사로 이어져온 선종계열로 현재 학국불교의 주류인 조계종의 원류가 되는 분이라 할 수 있다. 진전사는 구룡령 아래에 있는 선림원과 함께 대표적인 선종의 수행도량이라고 할 수 있는 사찰로 지금은 그 절터에 국보 122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부도만 남아 있다. 진전사지 도의선사탑은 진전사 옛절터 중에서 안쪽편에 있는 절터에 위치하고 있다. 이 부도의 탑신부는 8각형으로 전형적인 승탑인 부도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기단부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2층으로 만들어진 기단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기단부에는 각면마다 중앙과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두고 ..

양양 선림원지 승탑(보물 447호)

양양 선림원지는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어서 서울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인 구룡령을 넘어가기 직전에 위치한 절터이다. 선림원은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가 창건한 사찰로 부근의 진전사와 함께 우리나라에 처음 선종을 도입한 사찰 중의 하나로 보인다. 선림원으니 10세기경에 산사태로 매몰되었던 것을 1960년대에 발굴 복원한 것이라 한다. 선림원지 부도는 일제강점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1965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복원한 것으로 지금은 기단부만 남아 있다. 원 위치는 뒷산 중턱의 50m 쯤 올라간 곳이었다고 한다. 이 부도의 네모난 지대와 8각의 아래받침돌은 같은 돌로 2매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받침돌 8각의 각 면에는 각기 안상이 1구씩이 있으며, 안상안에 교대로 사자 1쌍씩 4쌍이 새겨져 있다. 아래받..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보령 성주사지에 뒷편에 위치한 강당터 옆에 있는 석불입상이다. 현재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상당부분이 마모되어 있고, 코을 비롯한 얼굴부분은 특히 심하게 훼손되어 일부는 시멘트로 메꾸어 놓고 있다. 원래부터 성주사지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 곳 성주사지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 석불입상은 처음 만들때부터 크게 잘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기는 힘들고, 어떤 연유로 인해 효험이 좋다는 미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석불입상에 비해서 얼굴의 훼손이 상당히 심하여, 시멘트로 메꾸어 놓은 현재의 모습은 부처님의 얼굴이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인물처럼 변해버렸다. 이 또한 부처님이 변신한 모습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희극적인 느낌을 주는 석불입상.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투박한 모습을 ..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과 탑비

송광사 관음전 뒷편 언덕에 세워진 보조 국사 지눌의 감로탑이다. 보조국사 지눌은 오늘날 한국 불교의 중심이 되는 조계종의 정신적 지주이며, 고려말 무신정권기에 불교 개혁운동인 '정혜결사'를 일으킨 분으로 이 곳 송광사에 자리잡음으로써 송광사가 승보사찰로서 한국 불교의 중심이 되게 한 분이다. 이 감로탑은 고려후기에 만들어진 사리탑으로 2층의 대촤위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둥근공모양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사리탑은 둥근 공모양의 몸돌 등 고려후기 사리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만들어진 석재나 조각수법, 전체적인 비례 등의 조형미에 있어서는 통일신라나 고려전기의 사리탑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리탑은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조계종 불교를 대표하는 보조국사 지눌의 역사적 의미..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상, 동해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관음성지의 상징

양양 낙산사는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이자, 기도도량으로 불리는 사찰이다. 이 사찰에는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고, 의상대를 비롯한 명승들도 많지만 그래도 이곳 낙산사를 상징하는 상징물로는 동해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해수관음상이 가장 대표적인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해수관음상은 낙산사 경내에서 바다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신성봉 정상에 자리잡고 있으며, 낙산사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77년에 당시 동양최대 규모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 이 관음상은 남해 보리암의 관음상과 함께 동해의 거센 파도를 다스리는 듯한 관음보살의 상징적인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관음보살은 기도를 하면 그 소리를 듣고 소원을 들어주려고 하는 존재로 대승..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 (보물499호)

낙산사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보물 499호인 칠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세월때 만든 3층석탑을 조선초 세조가 중건하면서 7층석탑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불교중심의 고려 사회에서 유교사회 조선으로 변화함에 따라 불교미술의 수준은 크게 위축되었다고 하며, 이 석탑은 고려시대 양식이 적용된 대표적인 석탑이라 할 수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의 양식을 많이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기단부는 정사각형으로 지대석이 놓여 있는데 윗면에 겹연꽃 무늬를 장식한 것 고려시대 이후의 양식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탑신부는 조선시대 다층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며, 상륜부에는 청동 복발.보륜 등을 장식하고 있다. 상륜부의 형식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라마탑과 닮은 장식들의 거의 ..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국보122호), 통일신라 걸작 조각상이 새겨진 석탑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이절은 우리나라 선종을 크게 일으킨 도의선사가 오랫동안 은거하던 곳으로, 염거화상이나 보조선사와 같은 고승들이 이곳에 배출되었고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도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진전사 절터는 설악산 자락 아래에 있기는 하지만 깊은 계곡에서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산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진전사지가 있는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은 물치천이라고 하며 이 하천을 중심으로 약간 넓은 벌판이 형성되어 있고 마을도 동해안에서는 많은 편으로 보인다.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의 평지사찰과 비슷한 성격을 가졌던 사찰로 보인다. 진전사지 절터는 아래쪽과 윗쪽 두곳이 있는데 아래쪽 절터에는 국보 122호인 진전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은 지대석 위에 이층..

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 (보물 444호)

양양 선림원지는 강원도 동해안 양양과 속초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자 지금은 56번국도가 지나가는 구룡령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큰 사찰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9세기에 홍각선사가 지었다는 이 사찰은 수행사찰로서보다는 고려시대에 이 곳을 지나서 구룡령을 넘기전에 잠시 머물던 숙박지로 유명했던 것으로 보이며, 많은 승려들과 여행객들어 묵어서인지 쌀씻은 물의 끝없이 흘러내린다고 해서 미천골로 불리는 지역이다. 지금은 주변에 민가가 있지만, 옛날에는 민가가 거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림원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건립된 높이 5m의 신라 석탑의 전형적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기단석에는 각면에 2매씩 8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여 8부중상을 새겨 놓고 있다. 탑신은 몸돌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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