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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37

[창덕궁] 낙선재 부속 건물들과 승화루, 상량정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위치한 낙선재 일원은 1846년(헌종 12)는 창건된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와 후원의 취운정.한정당.상량정, 승화루, 삼삼와, 칠분서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이었던 경빈을 사대부 저택처럼 지어진 건물로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경복궁 건청궁과 마찬가지로 국왕이나 왕비들이 궁궐에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집처럼 꾸며놓은 처소라고 할 수 있다. 낙선재 건물들은 대체로 구한말 유행했던 사대부 저택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창살문양이나 정자 등에서 당시 상류층들이 선호했던 청나라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창덕궁 낙선재 일원에는 국왕의 처소인 낙선재, 왕비의 처소인 석복헌, 대비의 처소인 수강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강재 바깥쪽에는 수행원들의 처소로 보이는 건물과 창..

궁궐_종묘 2013.01.09

[창덕궁] 낙선재 일원 (보물 1764호), 마지막으로 왕족이 거처하던 곳

창덕궁 낙선재는 일제강점기 이후 1989년까지 마지막 이씨왕조 후손들이 살았던 공간을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국왕의 침전이다. 구한말인 헌종 13년(1847)에 지어진 낙선재는 기존의 궁궐전각 형태가 아닌 사대부 저택처럼 지어진 국왕의 침전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이 처음부터 궁궐에서 태어나 세자를 거쳐서 왕위에 오른 경우도 있지만, 일부 국왕들은 사저에 태어나 일반인처럼 살다가 왕위를 이을 세자가 없어서 대신 왕위에 오른 경우가 많다. 이런 왕들은 민간인으로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여 궁궐내에 사대부 저택 형태로 전각을 짓고 거처하는 경우가 있었다. 낙선재와 마찬가지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경복궁 후원의 건청궁이 이런 연유로 궁궐내에 사대부 저택 형태로 지은 전각들이다. 낙선재는 먼저 국왕의 ..

궁궐_종묘 2012.11.18

[창덕궁] 성정각과 관물헌, 세자가 거처하던 동궁

창덕궁 성정각과 관물헌은 왕세자가 머물던 동궁으로서 국왕의 처소인 희정당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성정각은 원래는 동궁이었으나 한때는 내의원으로 쓰였기 때문에 내의원으로 많이 알려진 장소이며, 관물헌은 구한말 갑신정변 때 고종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국왕과 왕비가 주로 거처했던 편전과 내전인 선정전과 대조전에서 대비를 비롯하여 왕실가족들이 많이 거쳐했던 창경궁과 후원으로 연결되는 길목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동궐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잘 내려다 보이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있어서 행동하기에 약간 불편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정각 안쪽에 작은 행각에는 이곳에 내의원이었음을 말해주는 '보호성궁', '조화어약'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성정각과 관물헌은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일반..

궁궐_종묘 2012.10.12

[창덕궁] 인정전(국보 225호), 창덕궁과 동궐의 중심이 되는 정전

창덕궁 인정전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 버린 이후 구한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조선후기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창덕궁의 정전이다. 인정전은 태종 이방원이 상왕이 되었을 때 거처할 궁전으로 창덕궁이 건립될 때 정전으로 세워진 건물로 당시에는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규모였다. 임진왜란때 경복궁과 함께 불타버린 것을 궁궐 정전의 형식에 맞게 현재의 규모로 앞면 5칸의 2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순조대에 화재로 불타버린것을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인정전은 일제강점기에 순조가 거처하는 궁궐의 정전으로 바뀌면서 내부에 마루를 깔고 전등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인정전은 궁궐 정전으로 인정문과 회랑으로 둘러져 있어 조정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원래 상왕이 머무는 이궁으로 건립한 까닭에 경복궁에 ..

궁궐_종묘 2012.10.09

[창덕궁] 인정문 앞 외조(外朝),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 거행되던 곳

동아시아에서 궁궐은 크게 국가적인 공식행사 및 외교사절의 접견등을 하는 통치의 중심이 되는 정전, 국왕이 평상시 집무를 보는 공간인 편전, 국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내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궁궐 바깥쪽에서 궁궐 정문사이에는 국왕직속 관청들이 모여 있는 궐내각사 등이 배치되었다. 궁궐에서 외조(外朝)라 함은 궁궐 정문과 정전 출입문 사이의 공간을 말하며, 좁게는 궁궐 정전 출입문 앞 마당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행각들을 일컫는다. 이 공간에서는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 이루어지기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 중에 하나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국왕의 즉위식은 선왕의 장례식 절차 중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에 실제로 성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장소 또한 정전 바깥쪽인 외조(外朝)에 이루어졌다..

궁궐_종묘 2012.10.02

[창덕궁] 구선원전(보물 817호), 역대 국왕의 초상화를 모시는 궁궐내 건물

창덕궁 궐내각사 뒷편에는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모시는 건물인 보물 817호로 지정된 선원전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은 전체 9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종묘나 일반적인 사당건물과는 달리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 앞쪽에 양쪽으로 진설청과 내찰당을 달아내어 붙였으며, 앞쪽에는 행각이 있다. 선원전은 종묘와 함께 선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건물을 웅장하거나 화려하게 짓지 않고, 단정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건물 앞쪽 행각끝에는 억석루라는 역대 왕들의 어필 현판을 보관하는 건물이 있고, 동쪽편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인 양지당이 있다. 건물 뒷편에는 의풍각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제기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선원전은 역대 임금의 초상을 봉안하는 건물이다...

궁궐_종묘 2012.10.01

[창덕궁] 궐내각사 내의원, 국왕의 건강을 보살피던 궁궐내 의료기관

조선후기 국왕이 거처하는 정궁으로 사용되었던 동궐 창덕궁 궐내각사에는 학문을 관장하는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 등과 함께 국왕의 건강을 관리하던 내의원이 있다. '약방'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행각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정부에서 요직이라고 할 수 있는 홍문관 등과는 달리 궁궐내 병원으로 작은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을 짓는데 있어서 격식을 차리지 않고 좁은 공간을 활용해서 많은 방들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작은 행각들이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왕의 말과 글을 대필하던 예문관과 함께 국왕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모실 수 있도록 공간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내의원은 왕의 약을 조제하는 일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전의원.혜민서와 함께 삼의원..

조선 관아 2012.09.28

[창덕궁] 궐내각사 예문관, 국왕의 말과 글을 대필하는 국왕 보좌기관

궐내각사는 규장각을 홍문관, 예문관, 내의원 등 국왕을 직접 보좌하는 관청들인 모여있는 곳으로 창덕궁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이다. 경복궁에서도 경회루 앞의 수정전을 중심으로 같은 기능을 하는 관청들인 모여 있었다고 한다. 이들 건물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철거되고 없어졌던 것을 2005년 창덕궁 궐내각사가 먼저 복원되었다. 궐내각사는 정전인 인정전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예문관과 내의원이 위치하고 있고, 그 앞쪽에 국정을 자문하는 홍문관이 자리잡고 있다. 예문관, 내의원 등은 정전 옆 작은 출입문을 통해 정전으로 출입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문관은 국왕의 말이나 글을 대필하는 기관으로 세조대에 집현전이 혁파되면서 도서출판의 기능은 홍문관으로..

조선 관아 2012.09.27

[창덕궁] 궐내각사 옥당, 조선시대 국왕 자문을 담당하던 홍문관 건물

창덕궁 궐내각사는 크게 금천을 기준으로 동쪽편에는 홍문관, 예문관, 내의원 등이 있으며, 서쪽편에는 규장각이 자리잡고 있다. 규장각이 숙종대에 지어진 국왕의 어제와 어필 등을 보관하던 건물에서 출발하여 정조대에 그 기능이 크게 확장되어 국내외 도서의 수집, 왕실 도서의 출판 등 학문의 중추지관으로 변모하였다면, 홍문관은 원래 왕실을 서적을 관리하고 국왕을 자문을 대비하는 기관으로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한 이래로 학문을 관장하는 기능을 해 왔던 기관이다. 홍문관은 국왕의 건강을 살피는 내의원, 왕의 말과 글을 대신 짓는 예문관과 함께 정전인 창덕궁 인정전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어, 국왕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기관이다. 경복궁에서 집현전이 근정전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국왕을 보좌하던 것과 같은..

조선 관아 2012.09.27

[창덕궁] 궐내각사 규장각, 조선 왕실의 도서관이자 학술연구기관

창덕궁 궐내각사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 왕실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규장각이다. 조선초기 세종이 창설했던 학술 연구기관인 집현전의 예를 본받아 정조가 즉위하던 해인 1776년에 창설된 기관이다. 창덕궁 외조 출입문 앞을 흐르는 금천을 기준으로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규장각은 책을 보관하던 주 건물인 규장각을 비롯하여 검서관들이 근무했던 검서청, 역대왕들의 글과 그림을 봉안하던 봉모당, 입구의 행각, 뒷편의 책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장각은 원래 숙종대에 왕이 지은 글인 어제와 왕의 글씨인 어필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작은 건물이었으나, 정조대에 규장각을 확장하여 창덕궁 후원에 2층건물을 짓고 1층에 규장각 현판을 걸고 정식 정부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정조는 규장각에 기존의 어재.어필..

조선 관아 2012.09.25

[창덕궁] 궐내각사 검서청, 규장각 검서관들이 근무하던 관청건물

조선시대 궁궐 건물배치에 있어서 남북을 축으로 외조, 정전이 있는 외전, 국왕의 일상 집무공간인 편전, 국왕과 왕비, 왕실가족의 처소인 내전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궁궐 중심축의 정전을 중심으로 동쪽편은 세자의 거처 및 집무공간인 동궁을 비롯하여 그 뒷편으로는 궁궐에 거주하는 후궁들을 비롯하여 왕실가족 거처공간이 마련되고, 서쪽편으로는 국왕을 보좌하는 직속관청들이 들어서 있는 궐내각사가 형성되어 있다. 창덕궁도 마찬가지로 정전인 인정전 동쪽편으로 궐내각사들이 들어서 있는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이 정전 바로 옆에 있고, 바깥쪽으로는 정조가 세종대의 집현전을 참조하여 만든 규장각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창덕궁 궐내각사 중 금천 서쪽편에는 규장각 부속건물로 출판될 서적의 교정과 서..

조선 관아 2012.09.24

[창덕궁] 금천교 (보물 1762호),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

창덕궁 금천교(보물 1762호)는 태종 11년인 1411년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돌다리이다. 창덕궁 앞을 흐르는 시냇물은 경북궁과는 달리 자연 그대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고, 금천교는 정전인 인정전 정문인 인정문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조 바깥족 진선문 앞에 위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궁궐에 들어갈 때는 꼭 시냇물을 건너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이는 시냇물이 풍수설에 의한 명당수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면 궐내각사 앞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금천교를 지나서 외조 출입문인 진선문 앞에 이르게 된다. 이는 기존의 법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에 적절히 순응하는 창덕궁만의 건물배치를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 금천..

[창덕궁] 돈화문, 가장 오래된 궁궐의 정문

임진왜란 이후 국왕이 주로 머물렀던 창덕궁 출입문인 돈화문이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바깥세상에서 궁궐로 들어오는 첫번째 문으로 경복궁의 광화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보물 385호 지정된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412년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이후 중수된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은 광화문과 달리 정전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고, 동궐 서쪽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정전인 인정전 정면으로는 조선초기부터 존재했던 종묘가 있었기때문이다. 이는 경복궁과는 달리 법도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연지세를 적절히 맞추어 건물을 배치한 동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돈화문은 문루가 있는 2층으로 이루어진 출입문으로 석축으로 쌓아 성문과 ..

궁궐_종묘 2012.09.22

[서울 고려대 박물관] 동궐도 (국보249호),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그림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식으로 그린 궁궐도로서 현재 고려대 박물관과 동아대에서 각각 1점씩 소장하고 있다. 이 동궐도는 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두개의 동궐도 모두 같이 그려진 그림이라고 하며 원래는 천.지.인의 세벌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화첩을 모두펼쳐 연결하면 평행사선 구도에 의해 그려진 두 궁궐의 모습이 장대하게 전개된다. 창경궁과 창덕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으므로 '동궐'이라고 불렀다. 동궐도는 궁궐 건물뿐 아니라 담장, 계단, 연못 우물 등의 시설물과 자연을 실제의 모습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그림으로서의 가치도 높지만 창덕궁, 창경궁의 건물배치와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궁궐 건축과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림에 있는 건물의 건물..

지역박물관 2010.11.16

서울 창덕궁 후원, 비원(秘苑)이라 불렸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세에 맞게 지어진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창덕궁과 창경궁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한때는 '비원(秘苑)'이라고 불리웠던 창덕궁 후원은 가장 한국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조경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존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창덕궁과 후원 타 궁궐과는 달리 출입인원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창경궁 후원처럼 느껴지는 춘당지와 식물원 부근이 합쳐져서 하나의 공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후원의 가장 안쪽 옥류천 부근은 성균관 대학과 담을 경계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균관과 국왕 사이를 가깝게 할려는 건물들의 배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후원에서 남쪽편을 보면 종묘가 있고, 동쪽편에는 대비가 거쳐하던 창경궁, 그리고 그..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후원이 아름다운 유네스코문화유산

창덕궁은 경복궁과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궁궐로서 조선시대 가장 오랜 기간동안 국왕이 머물렀던 궁궐이다. 경복궁은 동양의 궁궐 예제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엄격하게 지어진 반면, 창덕궁은 자연 지세에 맞게 지어진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궁궐입니다. 또한 창덕궁을 빛나게 하는 것은 '비원'이라고 불리는 창덕궁 후원이 가장 한국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조경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존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창덕궁과 후원 타 궁궐과는 달리 출입인원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 창덕궁 탐방 1. 돈화문, 가장오래된 궁궐 정문 2. 금천교, 가장 오래된 돌다리 3. 인정문, 숙장문, 진선문, 행랑 4. 인정전 앞 마당, 품계석 5. 인정전, 창덕궁의 중심 6. 선정전, 국왕이 집무를..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희정당, 국왕의 침전

희정당은 원래는 국왕의 침전이었던 장소였으나, 구한말 이후 일제 시대에 서양식으로 개조되 조선의 궁궐이 주는 본래의 멋은 없으졌으나 구한말 이후 서양식으로 궁궐이 개조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라서 건축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한다. 구한말에 개조해서 그런지 중국 북경 건물의 양식을 많이 차용한 듯 하다. 희정당 입구입. 구한말의 서양식 건축양식이 추가되어 약간은 중국식 건물과 비슷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희정당 본래의 건물. 보통 조선의 궁궐 건축물에는 이런 형태로 폐쇄된 마당은 거의 없고 서양식으로 개조하면서 이런 형태의 건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희정당의 측면과 뒷편에서 본 외관. 희정전 내부 응접실에는 서양식 가구가 놓여져 있다. 내부의 양쪽 벽에는 해강 김규진이 그린 , 가 걸려 ..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대조전, 왕비의 침전

대조전은 창덕궁 내전의 으뜸 전각으로 왕비의 침전으로 1917년 화재로 소실되어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 지었다고 한다. 내부는 일부 서양식으로 꾸며졌고 건물 전체적으로 구한말 이후의 생활상을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다. 창덕궁에서 국왕 들이 많이 거쳐 했기 때문에 구한말 이후 많은 개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조전 출입문 안쪽으로 보이는 대조전 대조전 편액 왕비의 침실인 대조전입니다. 대부분 왕비가 거처하는 장소는 국왕이 거처하는 장소의 뒷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복궁 건물을 뜯어다가 일제시대에 새로 만든 건물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왕비가 거처했던 건물인데, TV사극에 나오는 궁궐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모습이다. 대조전 내부는 거실처럼 꾸며져 있으며 바닥에는 쪽널마루를 깔았으며 중국풍의 의자가 놓여 ..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경훈각, 대조전 뒷편 후원

경훈각은 대조전 뒷편에 있는 대조전의 부속건물 처럼 보이는 건물로 경훈각에서는 난방을 위한 아궁이가 있으며 굴뚝은 건물과 조금 떨어져서 구성된 화계에 배치하였다. 굴뚝은 벽돌로 쌓아 지붕을 열리고 굴뚝 각 면에는 학, 사슴, 불가사리, 봉황 등을 부조한 단아한 방형 전이 끼워져 있다. 경훈각 뒷편으로는 아담하게 정원을 꾸며 놓고 있다. 선정전 뒷편 후원 마당. 가을이라 꽃들이 시들어 있습니다만 운치있는 정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창덕궁 전각 중 제일 뒷편에 있는 경훈각 뒷마당. 좁은 공간이지만 계단식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놓고 있다. 경훈각 뒷편 굴뚝. 사슴과 백로가 노는 모습의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창덕궁에는 곳곳에 수석을 수집해서 장식해 놓고 있다. 창덕궁 대조전 뒷편에 위치한 경훈각. 또다른 부..

궁궐_종묘 2010.09.07

[서울 창덕궁 후원] 부용지 주변 영화당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 부용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영화당은 부용지 주변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건물이다. 건물은 동쪽편 창경궁을 향하고 있으며 뒷편으로 부용지를 감상할 수 있으며 국왕의 연회장소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부용지 부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건물인 영화당. 영조대왕이 썼다는 영화당 편액 영화당 건물의 복도 마루 영화당 앞에 위치한 해시계 후원을 들어오는 길에서 본 영화당 측면 부용정에서 바라본 영화당 주합루 앞에서 바라본 영화당 영화당은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현재 건물은 숙종 2년(1692)에 재건한 것이다. 왕족의 휴식공간이자 이 건물의 앞마당인 춘당대에서는 친히 임금이 참석한 가운데 인재등용을 위한 과거를 실시하였다. 영화당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영화당은 서쪽에..

궁궐_종묘 201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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