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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 사직터널에서 인왕산 범바위까지

인왕산은 서울을 둘러싸고 4개의 진산 중 서쪽편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으로 해발 338.2m로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산전체가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암반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기차바위,선바위, 범바위 등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바위들이 있다. 서울도심에서 백색의 화강암 바위산 경치가 아름다우며 그 풍경은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많은 그림에 볼 수 있다.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능선을 따라서 성곽을 쌓고 있는데, 서대문에서 사직터널과 인왕산 정상을 지나 북소문에 해당하는 창의문까지 성벽이 이어지고 있다. 인왕산 성곽은 사직터널 부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가가 없는 지역이라 현재 남아 있는 서울 성곽 중 그 모습이 제대로 남아 있는 편이다. 서울을 지키는데 있어서 주요..

[중앙박물관 특별전] "다산 정약용 - 하늘을 받들어 백성을 보듬다.", 유배지 강진에서 생활과 사후 평가

다산 정약용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이자 석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28세때 문과에 급제한 이후 초계문신으로 발탁되고, 수원화성 축조에 서양식 축성법인 거중기를 제안하는 등 관료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다산의 관료로서의 업적도 매우 뛰어났지만, 그는 정조 사후에 집권세력의 공격을 받아 전남 강진에서 18여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를 대표하는 많은 저술을 남기고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다산이 유배생활을 보낸 강진은 그의 외가인 윤선도와 윤두서 일가가 터를 잡고 있는 지역으로 외가 친척의 도움을 받으며 다산초당에서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유하고 학문을 익힐 수 있었다. 그는 강진에서 대표적인 저술인 형사사건 처리 지침서라 할 수 있는 , 양전..

중앙박물관 2012.12.07

구리 동구릉, 조선 21대 영조 원릉과 인조 계비 장령왕후 휘릉

동구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을 중심으로 9개의 왕릉의 조성된 조선 최대의 능역이다. 서울과 태조의 출신지라 할 수 있는 함흥간 교통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동구릉에는 태조를 비롯하여, 5대 문종과 왕후, 14대 선조와 왕후, 16대 인조의 계비, 18대 현종과 왕후, 20대 경종의 비, 21대 영조와 왕후, 추존 문조와 왕후, 24대 헌종과 왕후의 무덤이 한 지역에 모여 있다. 동구릉이 태조의 무덤이 있는 풍수지리상 명당이기는 하지만, 이곳에 왕릉을 조성한 왕은 영조를 제외하고는 강력한 왕권을 가지지 못했던 왕들이었으며, 대체로 당쟁 등이 심했던 시기의 왕들로 왕릉 조성에 대한 책임과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서 이곳 동구릉에 왕릉을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구릉 안쪽에는 21대 영조..

[중앙박물관 특별전] "다산 정약용 - 하늘을 받들어 백성을 보듬다.", 관리로서의 업적과 대표적인 저술

다산 정약용은 조선후기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정조대에 활약한 실학자이자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벼슬길에 오르기전에는 서울에서 이가화, 이승훈 등과 교류하면서 실학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성균관 유생이었던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었다. 28세때 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되었다. 관리로서 여러지역에 고을 수령으로서 업적을 쌓았으며, 거중기를 이용한 서양식 축성법을 이용하여 수원화성 축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가 제안한 서양식 축성법은 에 도면으로 자세히 남아 있다. 정조 사후에는 천추교와 연루되는 등 집권세력의 공격을 받아 외가가 있던 전남 강진에서 18여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유배기간 동안 그의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저술인 , , 를 ..

중앙박물관 2012.12.05

서울 혜화동 골목길 걷기

한양도성 성안에서 동북쪽 출입문인 혜화문 안쪽으로는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을 중심으로 조선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혜화동 로터리 동쪽편 성곽 안쪽 언덕으로는 혜화동성당을 비롯하여 카톨릭 관련 시설들이 많이 들어서 있고, 혜화동 로터리북쪽에서 성북동으로 연결되는 큰 길에는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크고 작은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도 양반들이 살았던 큰 마을이었고, 성균관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동네였던 것으로 보인다. 혜화동로터리 남쪽편으로는 서울의 대표적인 젊은이들의 공간이 대학로가 들어서 있는다. 대학로가 원래 서울대학교가 있던 자리이며, 아마도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속해있던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성북동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풍경 2012.12.02

청주동헌, 조선시대 청주목사가 근무했던 관아 건물

청주목은 삼국시대 서원경이 설치되었던 청주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기구로 고려가 국가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기 시작한 광종대에 전국에 12개 목(牧) 중 갑오개혁으로 전국의 행정체제가 개편되기까지 유지되어 왔다. 청주에는 병자호란 이후 해미읍에 있던 충청병영이 옮겨와 상당산성을 중심으로 내륙의 군사적 거점이 되어왔다. 청주 구도심으로 대부분의 행정기관이 모여있는 상당구 남문로에는 객사가 있었던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관아 건물들 중 일부가 남아 있다. 중앙공원 뒷편에는 원래 충주목 관아 동헌이 있었던 자리에는 지금은 청원군청이 소재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KT지사가 들어서 있는데, 대체로 충주목과 충청병영에 속했던 많은 관아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원군청 본관 뒷편에 남아 있는 청주동..

조선 관아 2012.12.02

안동 하회마을 영모각, 임진왜란 극복 과정을 기록한 징비록(국보132호)과 류성룡 종가문적(보물160호)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인 서애 류성룡 종가인 충효당에는 영모각이라는 별도의 전시관을 두고서 국보 132호로 지정된 을 비롯하여, 보물 160호로 지정된 과 보물 460호로 지정된 을 전시하고 있다. 류성룡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김성일과 동문수학을 했으며, 선조대에 중앙의 여러 요직을 거칠 정도로 학식도 높았지만, 관리로서 업무능력도 뛰어났던 인물이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서 선조의 피난길을 수행하였고, 외교적 성과로 명나라 원병을 끌여 들일 수 있었다. 또한 임진왜란 이전에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하여 임진왜란 중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동안 일어난 일들을 세세하게 기록하였는데, 이는 국보 132호 지정된 을 비롯하여, 보물 160호로 지정된 에 남아 ..

지역박물관 2012.12.01

안동 하회마을 영모각, 서애 류성룡 종가 유물 (보물460호)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은 보물 414호로 지정된 고택으로 서애 류성룡이 살았던 집으로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곳이다. 하회마을 종택으로 그의 형 류운룡이 살았던 양진당(보물306호)과 이웃하고 있다. 원래 류성룡은 낙향하여 이곳에서 작은 초가를 짓고 살면서, 번잡한 마을에서 벗어나 낙동강 건너편 부용대 아래에 작은 정자인 옥연정사를 짓고 그곳에서 징비록을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현재의 충효당은 그의 증손자인 류의하가 17세기에 크게 중건하여 지은 것으로 조선후기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충효당 뒷편에는 불천위 조상에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 있고, 사당 앞쪽에는 류성룡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영모각이 있다. 류성룡 종가에는 많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극복과정을 손수 ..

지역박물관 2012.11.29

청주 망선루, 청주목 관아에 있던 공식 행사를 위해 세운 누각

충청북도 도청소재지가 있는 청주시는 삼국시대에 상당현과 서원소경이 설치되었으며, 가야가 멸망한 이후 김유신 장군으로 대표되는 가야후손들이 세력을 잡았던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서원경이 설치되었고, 고려시대 이후로는 지방관제 중에서는 높은 직급이라고 할 수 있는 정3품 목사가 수령인 청주목이 설치되었다. 청주는 동쪽으로는 상당산으로 비롯하고 크고 작은 산들이 있고, 서쪽과 남북쪽으로는 금강 지류인 무심천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청주 구도심으로 상업의 중심지인 상당구 남문로 일대에는 조선시대 읍성 안 관아가 있던 지역으로 조선후기에 충청병영이 청주로 옮겨오면서 청주목 관아와 충청병영 관아가 모여있던 지역이다. 그 중 관아의 중심건물인 객사가 있었던 장소인 중앙공원에는 관아 건물 중 충청병영 ..

조선 관아 2012.11.29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 24대 헌종의 경릉과 20대 경종 비 단의왕후의 혜릉

구리 동구릉(사적193호)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무덤을 중심으로 후대 왕들이 무덤이 계속 조성된 대표적인 왕릉이다. 동구릉에는 태조의 능인 건원릉을 중심으로 총 9곳의 왕릉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태조가 죽은후 풍수지리설에 따라 하륜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후에도 5대 문종을 비롯하여 선조, 영조 등 여러 왕과 왕비들이 계속해서 이곳에 능을 조성하였다. 시기에 따라서 동오릉, 동칠릉 등으로 불리다가 철종대에 헌종의 능이 조성됨으로서 9곳의 왕릉이 있는 동구릉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왕릉의 터를 잡는 것은 넓은 지역을 능역으로 조성하고, 풍수리지리상 길지가 적합한지는 이론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후대에 경쟁 정파의 공격을 받기 쉬운 까닭에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동..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게임보드를 비롯한 생활용품과 가구들

이집트 룩소르의 나일강 서안 바위계곡에 위치한 투탕카멘의 무덤은 전실의 일부 부장품들이 도난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20세기초 이 무덤을 발견했을때 무덤의 각 방에는 수많은 보물들이 남아 있었다. 이집트인 왕이 죽은후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사용할 다양한 생활도구들을 무덤에 같이 묻었는데, 여행에 필요한 전차를 비롯하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릇, 생활에 사용할 가구와 각종 일상용품도 같이 묻혀 있었다. 이런 유물들을 통해서 각종 벽화에서 표현된 다양한 생활용품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에는 오늘날 사람들의 관점에서 흥미를 끄는 많은 유물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죽은왕이 사후세계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보드게임이다. 여러 벽화등에 묘사되어 있는 이..

지역박물관 2012.11.27

청주 충청병마절도사 영문, 조선후기에 세워진 병영 출입문

충청북도 도청소재지인 청주시는 삼국통일에 큰 기여를 한 김유신 장군의 출신지역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5소경 중 하나인 서원경이 설치된 곳이다. 고려초에는 호족세력이 강했던 지역 중 하나로 청주목이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조선후기에는 충청도 내륙지역의 국방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서산 해미에 있던 충청병영이 이곳으로 옮겨졌다. 충북도청과 청원군청이 있는 청주 구도심 중앙공원은 조선시대 청주목 관아 객사가 있던 곳으로 객사건물은 남아 있지않고, 객사 누각 건물인 망선루, 충청병영 출입문을 비롯하여 척화비 등이 남아 있으며, 뒷편 청원군청내에는 동헌 건물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병영은 각도의 육군을 지휘하는 책임을 맡은 종2품 무관인 병마절도사가 머무르는 곳으로 충청도, 경상좌.우도, 전라..

조선 관아 2012.11.27

서울 성북동, 골짜기 북쪽 언덕 성북동길 걷기

서울 성북동은 북악산 동쪽편 한양도성 성벽 바깥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한양도성을 수비하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며, 도성 북쪽에 있어 성북동이라 불렸다고 한다. 성북동은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기 좋은 동네라 할 수 있다. 도성바깥쪽 성밖마을에는 지금도 낡은 주택들과 좁은 골목길이 60년대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1960년대 시인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에서는 골짜기 채석장 하얀먼지로 황폐화된 도시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표현했던 성북동 북쪽편 언덕은 지금은 서울을 대표하는 고급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다. 원래부터 서민들이 살았던 성밖의 북향을 하고 있는 언덕과 성북천 주변은 60년대 풍의 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지..

한국의 풍경 2012.11.26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화장품과 연고 보관용 돌그릇

고대 이집트에서는 화장이 보편화되어 있었으며, 지금의 기준으로도 화장 기술은 상당히 세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인이 화장한 모습은 현재 남아 있는 다양한 고분 벽화, 파피루스 그림 등에서 묘사한 인물들에서 알 수 있으며, 화장품을 담았던 그릇들과 화장품, 화장도구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 편이다. 이집트에서 화장은 신의 대리인이라는 왕의 권위를 강종하기 위한 화장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눈 주위를 짙게 칠해주는 눈화장과 몸에 향유를 바르는 것이 많이 알려져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도 화장품을 보관하던 화병들이 여러점 남아 있는데 귀금속인 은으로 만든 화병은 도굴꾼들이 훔쳐가고 몇개만 남아 있다. 또한 용기에 담아 함께 묻었던 오일과 같은 화장품 또한 매장 직후에 대부분 도굴당한것으로 보..

지역박물관 2012.11.26

부여 무량사에 모셔진 매월당 김시습 부도

부여 만수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무량사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했던 생육신 중의 한사람이자 당대의 천재로 널리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보내고 돌아가신 사찰이다. 이 사찰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으로 그가 직접 그렸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사실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영정이 보관되어 있고, 사찰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에는 그가 죽은후 남김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 모셔져 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반대하여 젊은 나이인 21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다 간 그의 삶이 아쉬워서 그런지 후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그래서인지 그가 만년을 보낸 무량사 또한 그의 명성과 함께 크게 번창한 사찰로 보인다. 무량사 입구 마을에서 서쪽편 언덕에는 여러기의 부도들이 모여 있는 부도군이 있는데, 그 중에서 ..

서울 인왕산 국사당과 선바위, 서울에 남아 있는 전통신앙 관련 사당

국사당(國師堂)은 국수당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 뒷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동신을 모시는 마을 제당이다. 국사는 한자로 國師로 표기하는 하지만 한자에 담긴 뜻과 같지 않고 단순히 한자로 기록하기 위해 음을 취한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국사당이라는 말보다는 국수당, 국시봉, 국수봉 등 다양한 형태의 발음으로 나타난다. 국사당은 우리나라 중서부 해안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천신이 하강한 장소라는 의미의 천신사상과 관련되어 있으며, 산신당이나 서낭당 등 신당보다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 위상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남아 있는 전통신앙과 관련된 사당인 인왕산 국사당은 원래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선바위가 있던 인왕산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산에 국..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파라오의 전차와 휘장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황금마스크와 황금관 등 많은 보물이 묻혀 있었다. 무덤에 묻힌 보물 중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신왕국시대에 사용한 마차가 실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무덤에서는 모두 여섯대의 전차가 해체된 상태로 전실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 중 3대는 행진용, 3대는 사냥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에서 전차는 힉소스시대 이후에 근동지방에서 들어온 새로운 기술이다. 전차를 타면서 쏘는 강력한 복합궁과 함께 전쟁의 혁신을 가져왔던 기술적인 진보라 할 수 있다. 힉소스로부터 전래된 전차와 복합궁은 강력한 왕의 무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집트 벽화의 다양한 전투장면에서 전차를 탄 왕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무덤에는 전차를 비롯하여 인상적인 유물로는 왕..

지역박물관 2012.11.22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41호), 도심 상가지역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철당간

청주 남문로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청주목 관아 및 충청병영이 있었던 행정 중심지로 넓은 벌판을 이루고 있는 넓은 청주벌판이 동쪽끝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 용두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철당간만이 남아 있다. 고려 광종 13년(962)에 청주지역 호족들이 세운 사찰로 보이는 용두사는 인근의 흥덕사나 사뇌사와 함께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금속활자를 비롯하여 금속공예가 크게 발달했던 지역으로 보인다. 당간은 절입구나 법당 앞에 깃발이나 괘불을 거는 것으로, 돌로된 지주대를 마주보게 세우고 그 사이에 철이나 돌로 만든 당간을 세웠다.당간 몸체에는 당간을 세운 목적을 담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글에는 '준풍3년'이라는 광종의 독자적인 연호와 함께 청주호족과 학교 관련 내용이 있..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왕의 부활을 돕는 장례용 조각상

투탕카멘의 무덤 보물의 방과 전실에는 많은 조각상들이 남아 있었다. 당시 투탕카멘의 무덤은 전실을 비롯하여 일부 도굴이 있었지만 도굴꾼들은 나무에 금박을 칠한 이런 조각상들은 귀금속이 아니라서 가치가 낮아서 가져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각상들은 왕의 미이라와 장기를 수호하고 왕이 죽은 후 내세로 들어가는 것을 돕는 신들인 창조신 프타를 비롯하여 타타, 슈, 네프티스, 아로에리스 등 다양한 신들을 비롯하아여 신이 된 왕의 형상을 표현한 여러 조각상들, 내세에서 왕을 돕고 생활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우샤티브 등이 있다. 무덤에 다양한 조각상들을 같이 묻는 것은 왕의 무덤뿐만 아니라 고위관리를 비롯하여 일반인들에 무덤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이는 이집트뿐만 아니라 세계각처의 무덤에서도 볼 ..

지역박물관 2012.11.21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 낙동강 12경 중 하나로 하회마을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하회마을 부용대는 마을 북쪽편 낙동강 건너에 있는 해발 64m의 절벽으로 마을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낙동강이 하회마을을 휘감아 돌면서 깍은 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부용'이라는 이름은 연꽃을 뜻하며 마을형상이 물위에 떠 있는 연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졌다. 부용대는 하회마을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한참을 돌아서 풍천면소재지에서 다리를 건너 화천서원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다. 부용대는 하회마을 낙동강변 만송정 솔숲에서 바라보는 절경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부용대에서 마을과 낙동강 경치를 내려다 보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마을에서는 부용대를 감상하기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부용대 아래에서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 겸암정사와 옥연정사가, 마을 ..

한국의 풍경 201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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