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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보물989호), 고려초를 대표하는 석조불상

조선시대 죽산도호부가 설치되었던 죽산면 소재지에 위치한 봉업사 옛절터에 남아 있던 고려초 불상인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이다. 이 불상은 높이 1.57m로 불상과 광배가 같은 돌로 만들어졌다. 눈,코,입 등은 심하게 닳았으며, 옷주름은 여려겹으로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어 있다. 고려초기에 만든 다른 석불입상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신체비례가 적절한 편이다. 불상의 뒷면에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가 있다. 이 불상은 고려초기에 유행했던 이 지역의 불상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원래는 오층석탑, 당간지주와 함께 봉업사 옛절터에 있던 것을 죽산면에 소재한 오래된 사찰인 칠장사 대웅전 옆으로 옮겨 놓고 있다. 이 불상이 있던 봉업사는 고려시대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던 큰 사찰로 고려 태조의 진..

[육군박물관] 임진왜란의 기록, 부산진순절도(보물391호)와 동래부순절도(보물392호)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25년)부터 7여년간 왜군의 2차에 걸친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을 말하며, 중국을 중심으로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던 조선시대에 일어난 가장 큰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를 오다노부나가와 토요토미히데요시가 통일한 직후로 전국시대로 통해 많은 전투경험과 잉여병력, 힘이 넘치는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이 침략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사회전체적으로 기강이 해이해졌기때문에 실제로는 전쟁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충무공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수군은 조선초부터 오랜 기간동안 왜구의 침입을 제압하기 위한 기본 목표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이며, 훈련과 기강 또한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임진왜란 개전초..

지역박물관 2012.03.15

[맛집] 용인 백암면 제일식당, 백암순대로 잘 알려진 식당

병천순대, 아바이순대와 함께 토속음식인 순대를 대표하는 백암순대는 조선시대 이래로 중부내륙지방인 충주,청주,진천 등에서 서울로 향하는 교통로에 있었던 큰 고을이었던 죽산도호부가 있었던 죽산을 중심으로 만들어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구한말 이후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교통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잃었던 죽산을 대신하여 용인에 가까운 백암5일장을 통해서 현재가지 그 명맥이 이어오고 있다고 하며, 오늘날도 전국각지에서 백암순대라는 이름의 식당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백암순대는 깨긋하게 손질한 돼지창자에 돼지고가,선지,당면, 야채 등을 넣어서 삷은 순대로 일반적인 순대에 비해서 야채가 많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현재의 백암순대는 함경도 출신 사람이 50년 전 쯤에 백암5일장에 순대와 국밥을 만들어 팔..

맛집 2012.03.14

안성 죽산향교, 조선시대 죽산도호부 중등교육기관

죽산향교는 안성시 죽산면 소재지 뒷편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이다. 죽산향교는 조선초인 태종 13년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하며, 여러차례 중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죽산향교가 소속되었던 죽산도호부는 종3품 부사가 고을 수령이 큰 고을이었기때문에 원래는 현재보다 큰 규모였다고 하며, 임진왜란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길때 그 규모가 작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뒷편에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위치한 전학휴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조선후기 지방의 교육기능이 서원으로 옮겨짐에 따라 제향을 중심으로 그 기능이 바뀐 것으로 보이며, 현재도 대성전의 규모는 큰데 비해서 강학공간인 명륜당은 작은 규모를 하고 있으며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서재는 남아 있지 않..

[육군박물관] 조선시대 무관 임명장인 조흡 왕지(보물1226호) 外, 군사지도와 병법서

무관(武官)은 조선시대 군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관원을 가리키는 말로 대체로 전쟁등 군사관련 일로 승진하거나 무반직에 제수된 사람, 과거시험인 무과 합격자로 관직에 진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서반(西班)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궁중에서 조회때 무신은 서쪽에, 문신에 동쪽에 줄을 서는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문관, 무관을 법제화하여 중추부가 정1품의 최고위직이며, 정2품 오위도총부와 오위, 조선후기의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등의 정1품 관직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고위직들은 대체로 문관들이 겸직하였기때문에 실제로는 무반으로 최고위직은 정3품이라고 한다. 반면에 지방 각도의 군영.진에는 외관직으로 병마절도사.수군방어사 등 다양한 형태의 관직이 있었으며, 군사상 중요한 지역의 고을 수령은 무신이 겸..

지역박물관 2012.03.14

안성 죽주산성, 북치성.포루에서 서문까지

안성시 죽산면 비봉산 아래에 위치한 죽주산성은 고려시대 대몽항쟁기에 송문주 장군이 몽골군의 공격을 격퇴한 것으로 잘 알려진 산성이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중부내륙지방의 중심지역인 충주, 청주와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산성으로 신라가 처음 쌓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산성은 내성, 중성, 본성의 3겹으로 성곽을 치밀하게 쌓고 있으며, 치성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있는 점 등으로 볼 때 몽골군의 공략을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전쟁 경험이 많았던 송문주 장군이 죽주산성을 새로 고칠때 많은 부분을 보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주산성은 작은 계곡을 끼고 있는 포곡식 산성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방이 경사가 심한편으로 방어가 용이한 테뫼식 산성의 지형적 특징도 ..

안성 죽산리 오층석탑(보물 435호), 고려시대 큰 사찰 봉업사 옛 절터에 남아있는 고려초기 석탑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보물 435호로 지정된 죽산리오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고려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부근에서 '봉업사'라 적힌 청동제 반자가 발견되어 봉업사지 오층석탑이라고도 부른다. 이 석탑은 단층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는 정형화된 고려시대 5층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기단부가 단층인 대신에 탑신 1층 몸돌이 다른 층에 비해서 크게 만들어져 기단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가 왜소한 편으로 전체적인 균형미는 통일신라의 석탑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기단부나 탑신의 몸돌에 특별한 장식을 하지 않고 있으며,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고 1층 몸돌에는 불상 등을 안치하는 작은 감실이 있을 뿐이다. 석탑의 조각수법이나 비례 등 전체적인 조형미..

[육군박물관] 조선시대 화약무기들, 세총통(보물845호), 대완구(보물857호), 블랑기자포(보물 861호)

조선시대 화약무기는 고려말 최무선이 처음으로 화약과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만드러 사용한데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화약과 화포가 전래된 것은 14세기 전반 이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실제로 화약을 제조한 것은 최무선이 왜구를 물리치는데 화약무기가 적절할 것으로 생각하여 오랜 노력끝에 중국 강남의 상인으로부터 흙에서 화약의 원료인 염초를 얻는 기술을 배움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377년(우왕3년) 화통도감이 설치되면서 화약을 이용한 다양한 총포와 화기, 전함 등을 개발하여 전라도 진포, 남해의 관음포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조선초 태종이 즉위하면서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화기가 개발되어 세종대에는 명나라의 모방에서 탈피한 독자적인 수준까지..

지역박물관 2012.03.11

안성 죽주산성, 동문에서 북치성.포루까지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에 소재한 죽주산성은 고려시대에 죽주성이라 불렸던 곳으로 대몽항쟁기에 몽고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죽주산성이 있는 죽산면 일대는 지금은 안성시에 속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안성과는 별개의 지역으로 종3품의 부사가 고을수령으로 있었던 제법 큰 규모의 고을이다. 죽주산성과 죽산도호부가 있는 이 지역은 지금도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청주에서 진천을 거쳐서 서울로 향하는 길과 충주에서 장호원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큰 길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러한 지리적, 전략적인 중요성으로 인해서 이 곳에 산성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신라나 백제가 한강이남 주요지역에 국방을 위해서 처음 쌓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죽주산성..

[이탈리아여행] 피사(Pisa)의 르네상스 시대 읍성 성곽과 성문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지중해 바닷가에 위치한 피사(Pisa)는 고대 로마시대 해군기지였던 곳으로 아르노강을 끼고 있어서 이탈리아 중부지방에서 교역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중세에서 르네상스시대까지는 상업으로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중세에는 피사인들이 제노바인들과 함께 이탈리아 서쪽에 있는 사르데냐 섬에서 이슬람세력을 몰아냈으며, 시칠리아섬의 팔레르노 섬을 약탈하여 모스크 기둥들을 가져와 피사대성당을 내부를 장식하고 있다. 십자군원정에 참여하여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의 번영했던 모습이 피사의 사탑, 대성당, 세례당의 유적으로 남아 있다. 피사는 상업의 중심지로 피렌체, 제노바 등과 경재했으나 15세기 이후에는 아르노강에 토사가 쌓여 배가 운항할 수 없게되자 교역의 중심지로서 그 ..

이탈리아(Italy) 2012.03.10

강화 장화리 낙조마을, 북일곶돈대와 장곶돈대 사이에 위치한 일몰 명소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 서쪽편 해안에 위치한 장화리마을은 강화도 서남단에 위치한 많은 일몰명소들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낙조 명소이다. 이 마을은 강화도 서남단의 돌출된 지형인 북쪽의 장곶과 남쪽의 북일곳 사이에 간척을 위해서 쌓은 제방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이다. 실제로 돌출된 지형에 쌓은 조선시대 해안 방어시설인 북일곶돈대나 장곶돈대에서 보는 해가 넘어가는 장면과 강화도 서남해안 너머로 있는 불음도, 주문도, 석모도 등의 경치가 더 나은 것 같지만, 강화도 해안을 따라서 나 있는 해안도로와 가까운 접근성때문에 이 곳을 많이 찾는 것으로 보인다. 장화리마을이 낙조의 명소로 잘 알려지면서 펜션같은 숙박시설들이 많이 들어서 있고, 이 마을도 낙조마을이라는 명칭으로 테마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해안..

한국의 풍경 2012.03.10

[육군박물관] 조선시대 기본 무기인 칼(도검), 활(각궁), 노(弩)

조선시대 개인이 휴대한 기본 무기로는 칼과 활, 창 등을 들 수 있다. 한반도는 역사 이래로 북방유목민들이 침입에 대처해야 했기때문에 들판에서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산성에서 적을 방어하는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들판에서의 싸움도 대체로 세계적으로도 용맹스러웠던 몽골, 여진족을 상대해야 했기때문에 일반적인 개인무기인 칼이나 창보다는 먼거리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활을 주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내려와 유학을 공부하던 유생들까지도 평상시 활을 쏘면서 정신수양을 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은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복합활인 각궁은 세계적으로도 사거리나 명중율 측면에서 우수했으며, 유라시아 초원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복합활의 전통을 잘 계승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병사들이..

지역박물관 2012.03.09

강화 후포항, 선수포구라고 불리는 마니산과 가까운 작은 포구

강화군 화도면에 소재한 후포항은 선수포구라 불리는 곳으로 작은 규모의 시골어항이다. 강화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기는 하지만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업이 발달한 고장은 아니고 오히려 넓은 벌판을 자랑하는 농업이 발달한 고장이다. 그래서 강화에는 고기를 잡는 어선이 정박하는 포구가 발달하지는 않았다. 강화도에서 제법 규모를 갖춘 포구는 석모도를 연결하는 페리선착장이 있는 외포리와 교동도 가는 페리선착장이 있는 창후리와 이 곳 후포항을 들 수 있다. 후포항 또한 석모도를 왕복하는 페리선착장이 있다. 세 곳 모두 공통적으로 강화도 본섬과 서쪽편 큰 섬인 석모도, 교동도 사이의 해협에 위치하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에서도 물이 많이 빠지지 않는 지형적 특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포항은 강..

한국의 풍경 2012.03.09

[이탈리아여행] 피사(Pisa), 피사대성당(Duomo di Pisa)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대성당(Duomo di Pisa)는 이탈리아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으로 기존의 대성당 건물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외형을 하고 있다. 이 성당은 5회랑의 회랑과 좌우에 익랑을 두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대성당은 팔레르모 해전의 승리를 기념해서 부스케투스(Buschetus)설계로 1064년에 착공해서 1118년에 완공하였으며, Santa Maria Aussunta에 바쳐진 성당이다. 1272년에 회랑부가 서쪽으로 확장되었으며, 출입문이 있는 전면부 파사드(facade)는 13세기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외관은 여러가지 색의 대리석으로 꾸며 놓고 있으며, 외관은 장식적인 고딕풍을 하고 있다. 대성당의 부속건물로 종탑인 '피사의 사탑', 세례당(Batistery), 회랑식의 묘지..

이탈리아(Italy) 2012.03.08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우크라이나의 장식예술

유라시아대륙의 광대한 초원지역에는 고대 기마유목민으로 화려한 황금문화를 스키타이를 비롯하여 사르마트, 훈족, 아바르족, 고트족, 페체네그족, 폴로비츠족, 몽고의 킵차크 한국 등 다양한 유목민족들이 활동했다. 고대로 로마를 멸망시킨 훈족의 대이동 이래로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그 존재감이 급속히 높아진 민족은 슬라브민족이다. 슬라브 민족은 흑해에서 발트해, 동유럽, 발칸반도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스키타이가 활동했던 흑해북안의 초원지대에는 오늘날 동슬라브인이라고 일컫는 민족들이 키예프공국이라고도 부르는 키에프 루스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키에프 루스는 882년에 건국되었으며, 동로마 제국과 교역 등을 통해 10세기에 동방 정교를 받아들임였다. 번영을 누리던 키에프 루스는 몽골군의 공격으로 몰락되었고, ..

지역박물관 2012.03.07

강화 북일곶돈대, 일몰이 아름다운 장화리마을에 위치한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해안 방어를 위해 강화유수 윤이제의 주도로 승병과 어영군을 동원하여 40일만에 완공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인 강화도 서남부 해안을 감시하던 북일곶 돈대이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에 소재한 이 돈대는 검암돈, 장곶돈, 미곶돈과 함께 장곶보 소속으로 강화도의 서남쪽으로 돌출한 지형인 북일곶에 위치하고 있다. 북일곶돈대는 강화 서남해안으로 돌출한 북일곶 언덕 위에 세워진 돈대로 석축의 높이는 높은 곳이 2.4m이고, 전체 둘레는 120m 규모로 직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돈대 내부에는 대포를 장착할 수 있는 포좌가 정면에 2개, 남.북 방향으로 모서리에 1개씩 4개의 포좌가 설치되어 있다. 북일곶이 위치하고 있는 장화리마을은 강화에서도 해넘이 풍경이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

강화 전등사 약사전(보물 179호),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통사찰에서는 흔치 않은 유서깊은 불전

강화 전등사에는 중심 불전인 대웅전 외에 서쪽으로 명부전과 약사전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 처럼 죽은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명부전이 있고, 특이하게 전등사에는 약사여래를 모신 보물로 지정된 약사전이 있는데, 오래된 불전답게 규모가 적고 아담한 건물이다. 보물 179호로 지정된 약사전은 조선중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주불전인 대웅보전과 거의 비슷한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기둥에 공포를 설치하고 기둥사이에 하나의 중간포를 설치한 간략한 형태의 다포계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고려말이나 조선초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다. 약사여래는 모든 질병 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도 고쳐주는 부처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둥근 약단..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슬라브민족과 키에프 루스(키예프 공국)

슬라브는 현재 동유럽과 유라시아대륙 북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로 러시아.폴란드.체코.세르비아 등에 살고 있다. 이들 민족이 살아온 역사적 과정, 종교, 언어 등에 따라서 카톨릭 신자가 많은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을 서슬라브인, 유라시아대륙 북부의 러시아,우크라라이나, 벨루로시인들을 동슬라브인, 발칸반도 주변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마케도니아인 등을 남슬라브인이라고 한다. 슬라브인은 고대 로마가 멸망하고 훈족의 대이동에 따른 연쇄적인 민족이동이 있었던 3세기까지는 역사에 전면에 등장하지 않다가, 유라시아 초원에서 훈족을 비롯한 유목민 세력이 약화되던 6~10세기 유럽역사에 급격히 드러났던 민족이다. 키예프공국이라고 불리는 키에프 루스는 880년경부터 12세기까지 흑해북안 현재의 우크라이나 키..

지역박물관 2012.03.06

강화 선수돈대, 석모도 앞바다를 지키던 돈대

조선은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패배 이후 북방민족으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기 조선 숙종대에 강화도 전역을 요새화하여, 강화유수부가 소재한 지역에 강화산성을, 그 바깥쪽에 외성을, 해안에는 돈대를 구축하여 해안경비를 강화하였다. 강화 해안의 돈대는 숙종대인 1679년 병조판서 김석주가 건의하고, 강화유수 윤이제의 주도로 전국의 승병들을 동원하여 해안 주요 요지 49곳에 돈대를 설치하였다. 이후 보강을 통해 구한말까지 53돈대를 운영 했다고 한다. 돈대는 해안을 감시하기 좋은 위치에 50명 이내이 병력이 머물면서 적을 감시하고 방어하던 요새로 그 형태는 원형, 사각형 등으로 다양하다. 돈대는 병자호란이전에는 거의 없었던 방어시설 형태로 화포와 총을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강화군 화도면 내리 후포항 뒷..

[이탈리아여행] 피사의 사탑(Torre di Pisa), 기울어짐으로 유명한 피사대성당 종탑

르네상스시대 갈릴레이가 자유낙하운동 실험을 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피사의 사탑은 이탈리아 서해안 피사 대성당에 딸린 종루이다. 이 탑은 1173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1372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서 공사가 이루어졌고, 공사기잔 중인 13세기에 탑의 기울어짐이 발견되어 이를 보강하는 공사를 함께 진행하였다고 한다.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지게 된 것은 이 탑을 세운 지반의 토질이 불균형하기 때문이라고 하며, 북쪽에 비해 남쪽의 지질이 상대적으로 부드러워 건물자체가 기울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탑이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약품을 투입하거나 북쪽지반을 깎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기울어지는 현상은 계속되었다고 하며, 1990년대 이후에 범세계적으로 아이디어를 모아서 개선공사를 하여 현재는 기..

이탈리아(Italy)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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