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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계룡돈대, 강화도 서북쪽 제방 남쪽끝 작은 섬에 세워진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쌓은 53돈대 중 강화도 서북쪽 해안에 쌓은 제방 남쪽 작은 언덕위에 세워진 계룡돈대이다. 계룡돈대가 위치한 곳에 원래 갯벌위에 있던 작은 섬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북쪽 무태돈대가 있는 창후리선착장까지 길게 쌓은 해안 제방이 시작되는 지점을 북쪽편으로는 별립산, 봉천사, 고려산까지 이어지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는 곳으로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고인돌이 주로 분포하고 있는 지역이다. 남쪽편으로는 국수산과 황청리, 외포리 선착장이 있고, 석모도의 넓은 간척평야와 마주하고 있다. 갯벌위에 있었던 작은 섬에 쌓은 계롱돈대는 길이 30m, 너비 20m, 석축높이 3~5m로 작은 규모의 돈대이다. 북쪽편으로는 망양돈대가 있고 남쪽편으로는 지금은 남아 ..

[이탈리아여행]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의 4마리 청동 말조각상(La quadriga)과 모자이크 벽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산마르코의 유골을 모신 산마르코 대성당은 2명의 상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에서 훔쳐온 산마르코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829~832년에 처음 세워졌다고 한다. 이 대성당 처음 세워진 것과 같는 과정으로 이 대성당에는 동방 비잔틴 제국이나 그리스, 이집트 등지에 수많은 유물들이 약탈하거나 훔치는 과정 등을 통해서 이 대성당을 장식하고 있다. 이런 유물들을 대표하는 것이 대성당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시대에 만들어진 4마리의 말청동조각상(La quadriga)일 것이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청동으로 만든 4마리의 말 청동조각상은 1254년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 것들은 한때 트라야누스 개선문(Arc of Trajan)을 장식했었다고하며 오랜기간 동안 콘스탄티노플의 히포드럼에 전시되었다..

이탈리아(Italy) 2011.11.21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 사상,종교와 문자

고대국가에서 국가나 집단간의 교역을 위한 경제적인 동기와 지배계층의 권위를 나타내거나 통치를 위해서 문자의 사용이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자의 기원 또한 길흉화복을 점치는 행위에서 그 내용을 기록하는 갑골문자 등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종교적인 행위가 당시에는 지배계층의 통치를 위한 정치적인 활동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고대국가에서 통일신라까지 시기의 문자 기록 중 상당수는 종교적인 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은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며, 가장 오래된 문서 또한 붓으로 쓴 사경이다. 삼국시대에는 종교적인 내용이 담긴 목간이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중국의 능묘제도가 받아들여진 이후에는 개인의 업적을 칭송한 묘지비..

중앙박물관 2011.11.20

강화 망월돈대, 바다를 막은 제방에 쌓은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쌓은 53돈대 중 강화 서북쪽 해안에 쌓은 제방에 위치한 망월돈대이다. 이 돈대가 위치한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일대는 남쪽편 외포리 부근 국수산와 북쪽편 별립산 주변을 긴 제방으로 연결하여 간척한 곳으로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간척지는 조선후기 강화도 국방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자체적인 식량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토목공사였다고 한다. 망월돈대는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고려저수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내가천 수로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보통 돈대는 해안가 높은 언덕에서 사방을 감시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반면에 이 곳 망월돈대는 해안가 평지에 약간의 둔덕을 만들어 그 ..

강화 무태돈대, 교동도 입구 바다를 감시하던 돈대

강화도 해안에 구축한 53돈대 중 교동도와 강화 본섬 사이의 해로를 지키던 무태돈대이다. 돈대는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접경지역이나 해안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 방어시설로 총포와 화포가 전쟁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병자호란 이후에 나타난 방어시설로 강화도의 돈대는 숙종때 강화유수 윤이제가 승군 등을 동원하여 40여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무태돈대는 인화돈 등과 더불어 인화보 소속으로 삼도수군통어영이 있었던 교동도 남산포의 경기수영 외곽수비를 담당하는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던 돈대이다. 석축으로 쌓은 직사각형의 돈대로 길이가 44m 정도이다. 돈대에는 바다방향으로 포좌4문과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무태돈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교동도와 강화본섬을 오가는 카페리호가 정박하는 창후리 선착장 북..

[맛집] 강화 더리미집, 장어구이로 유명한 더리미마을에서 제일 오래된 집

강화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인삼, 순무, 병어회, 꽃게, 장어구이 등이 있는데 그 중 강화도와 육지 사이를 흐르는 염하에 자리잡고 있는 더리미마을은 장어구이집이 모여 있는 마을이다. 초지진에서 시작하여 문수산성 아래 연미정까지 이어진 염하에서 거의 유일하게 어선 정박하는 작은 포구가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염하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어를 잡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곳이다. 더리미마을에는 장어구이를 하는 식당이 여러곳 있는데 그 중 제일 오래되었다는 더리미장어구이를 찾아가 보았다. 더리미마을에서는 파는 장어구이는 일반적인 양식장어와 갯벌에 양식한 장어가 있는데, 갯벌에서 키운 것이 약간 비싸다. 장어는 초벌구이를 한 것을 숯불에 구워먹는데 보통 장어구이와 큰 차이는 없어보이지만 괜이 맛있다는 느낌을 준다...

맛집 2011.11.18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 글자가 새겨진 토기와 기와

삼국시대 사람들이 문자를 사용했던 흔적들은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돌에 글을 새긴 비석일 것이다. 비석에서는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후대에 만들어진 역사서 등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반면에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한 문자는 화물이나 물건의 꼬리표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던 목간이나 그릇, 건축에 사용한 벽돌이나 기와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기와나 토기는 전국적으로 많이 발견되는편인데, 주로 제작연도나 제작자, 제작경위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런 유물들 중 지명이나 마을이름 등이 적혀 있는 것에서 당시 이런 물건들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집..

중앙박물관 2011.11.18

강화 교동도 화개산 봉수대와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강화도 서북쪽 한강이 서해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교동도의 주산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개산은 해발 269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서 북한의 연백평야를 비롯하여 서해안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아주 좋은 산이다. 화개산은 한강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특징때문에 삼국시대 이래로 국방상 중요한 요지였으며, 광개토대왕이 한성 백제를 제압하기 위해 산성을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고려시대에 쌓은 화개산성의 석축들이 일부 남아 있다. 화개산 정상 동쪽편에 있는 연봉 정상에는 조선시대 비상통신수단이었던 봉수대 석단이 남아 있다. 이 봉수대에 올라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강화 본섬의 덕산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동쪽편 하점면에 있는 봉천산 봉수로 응한다고 되..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 목간과 글자가 새겨진 생활용품

목간은 글을 적은 나뭇조각으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문서라고도 할 수 있으며 책(冊)이라는 한자의 어원이 된다. 대개 나무를 폭 1cm, 길이 20~30cm, 두께 3mm 정도로 끈으로 묶어서 사용했는데, 지금의 책과 비슷한 크기라고 할 수 있다.논어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저서들이 적혀 있는 목간들이 중국에서도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목재가 잘 부패하지 않는 사막이나, 뻘에 묻혀 있던 상태로 많이 발견된다. 목간은 우리나라에서 여러지역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경주 안압지를 비롯하여 삼국시대에 적혀진 목간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목간은 고조선때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중.일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에서는 교역을 위한 경제적인 목적으로 한자..

중앙박물관 2011.11.17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70년대 시골장터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

교동도는 강화도 북서쪽의 한강 하구에 자리잡고 있는 섬으로 북녘땅인 연백평야와 마주하고 있는 큰 섬이다. 주산인 해발 260m의 화개산을 중심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섬들을 제방으로 연결하여 간척한 농지가 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교동도를 들어가는 길은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선착장에서 교동도 월선포를 연결해주는 카페리호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며, 지금은 강화 인화리와 교동들을 연결해 주는 연육교가 한창 공사중이다. 교동도는 조선시대에는 강화도와는 별개로 교동부라는 독립된 고을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 관아와 경기수영이 있었던 남산포와 읍내리가 이 섬의 중심지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넓은 간척지 평야와 가까운 화개산 서쪽편 대룡리에 면사무소와 학교, 시장 등이 들어서면서 섬의 중심지가 옮겨졌다. 교동도는 북녘땅인..

한국의 풍경 2011.11.17

[이탈리아여행] 베네치아 두칼레궁전, 베네치아 총독 관저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궁전으로 산마르코대성당에서 베네치아 석호방향으로 나란히 있으며, Piazzetta광장을 사이에 두고 산마르코 도서관과 마주하고 있다. 이 궁정은 679년부터 1797년까지 120명에 이르는 베네치아의 총독이 머물렀던 곳으로 현재의 외관은 1,309년에서 1,424년까지 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 궁전은 1,577년에 일보 소실되기도 했으나 원래의 모습인 고딕양식을 유지해 복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궁전은 총독의 관저이기도 하지만 베네치아 공화국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서 역할이 중시되었던 곳으로 재판을 담당하던 '10인 평의회의 방', 투표실, 접견실 등을 두고 있다. 베네치아 총독은 선출되기 힘들었던데 비해서 실질적인 권한은 그리 많지 ..

이탈리아(Italy) 2011.11.16

강화 교동도 남산포, 삼도수군통어영이 있던 포구

조선시대에는 각도 수군을 지휘하기 위해서 정3품 외관직인 수군절도사를 두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경상.전라.함경도에 각 3명, 경기.충청.평안도에 각 2명, 강원.황해도에는 각1명을 두었다고 한다. 대부분 관찰사와 병마절도사가 겸임했기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경상.전라에 각2명, 경기.충청에만 각 1명씩 독립된 정직의 수군절도사가 있었다. 수군절도사가 머물던 곳에는 수영이 설치되었는데 동래, 거제, 여수, 교동, 보령, 옹진 등이 유명한 수영이었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각도의 수군을 통괄 지휘하기 위한 수군통제영이 통영에 설치되었으며, 병자호란 이후에는 한강하구를 지키기 위해서 강화도 교동도에 경기.황해.충청 수군을 총괄지휘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었고, 교동도호부 부사가 이를 겸임하였다. 한강이 서울을 지나..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의 비석

비석은 어떤 인물이나 사건 등을 기념하기 위해 돌.목재.철재 등에 글자와 조각 등을 새겨 넣은 기념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주로 돌에 글자와 조각상을 새겨놓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이를 통해 오늘날 사람들이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비석과 같은 형태의 기념물로는 고대 메소포타미의 함무라비법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할 수 있게 단초를 제공해 준 로제타스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석들이 남아 있다. 동양에서 비석은 주로 돌에 글자를 새긴 석비의 형태로 중국 주나라부터 시작되어 한대와 당대를 거치면서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을 갖춘 전형적인 석비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비석 중..

중앙박물관 2011.11.16

[서울성곽] 숙정문, 한양도성의 북문

한양도성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한양의 도성으로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 남쪽의 목멱산(남산), 동쪽의 인왕산을 석축으로 연결한 도시성곽이라고 할 수 있다. 한양도성은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이래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서 축성한 성곽으로 석성가 석축성이 혼재되어 있다. 출입문으로 4대문과 4소문을 두고 있으며, 청계천이 빠져나가는 동쪽으로 석수문을 두고 있었다. 한양도성은 조선이 개국한 이래로 오 랜 세월동안 개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양한 시대의 축성방법을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양도성의 4대문 중 북문에 해당되는 숙정문은 1396에 처음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숙청문이라고 하였으나, 16세기에 숙정문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숙정문은 한양 도심의 북쭉편 경복궁이나 창덕궁에서 도성밖 ..

서울 운현궁 양관, 일제가 흥선대원군 손자 이준용에 지어준 서양식 저택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운현궁 양관은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의 저택으로 일제가 한일합방 이전인 1907년도에 지어준 건물이라한다. 원래 이 곳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의 뒤뜰에 해당하는 곳으로 별당격인 아재당과 정자인 영화루, 은신군.남연군의 사당이 있었던 자리로 이들 건물들을 헐고 일제가 한일합병에 앞서 왕실인사를 회유하기 위해서 만들어 준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그후 의친왕의 차남이 이우의 소유가 되었다가 해방후인 1946년부터 덕성학원에서 소유하게 되어 현재는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의 건축양식은 한국은행, 총독부청사 등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건축했던 많은 현대식 건축물들과 비슷하게 바로크 건축양식을 모방해서 만든 건물로 외형적으로 화려하면서 곡선이나 타원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의 건..

강화 교동읍성, 삼도수군통어영 겸 교동도호부 관아가 있던 읍성

교동도는 강화도 서쪽에 주산인 화개산을 중심으로 여러 섬들을 연결하여 넓은 간척지로 이루어진 섬이다. 북쪽으로는 북녁땅인 연백평야와 마주 보고 있으며, 한강이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한강조운과 군사적인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삼국시대와 고구려때에는 고목군현이라 불렀으며, 광개토대왕이 이 곳 교동도에 화개산성을 쌓고 한성백제를 압박했었다고 한다. 신라 경덕왕때 교동현이 설치되었으며, 병자호란으로 청의 압박이 심했던 인조때 남양에 있던 경기 수영을 교동도로 옮기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이와함께 경기.충청.황해도 삼도의 수군을 총괄하는 삼도통어사가 설치되면서 교동도호부 부사가 이를 겸직했다고 한다. 삼도 통어사는 관직으로 경기도 수군절도사가 겸임하였다. 교동읍성은 1629년 교동도..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의 문방구

한자가 한반도에 전래된 이래로 문자생활을 사용했던 문방구로는 기본적으로 종이,붓,먹,벼루가 구한말 이후 새로운 필기도구들이 등장하기까지는 사용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의 문방구가 이후와 다른점은 글자를 적는 필기도구로서 목간, 죽간 등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목간은 종이가 발명대기 이전인 진한(秦漢)시대와 그 이후에도 종이와 함께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간은 끈으로 엮은 얇은 나무판에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으로 책(冊)이라는 글자의 어원이 되며,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도 상당히 오랜기간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도 문자가 도입된 이래로 목간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창원 다호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붓과 지우개 역할을 했던 칼에서 알 수 있듯이 교역을 위한 실무적인 목적에서 먼저 사용되었던 것으로..

중앙박물관 2011.11.12

강화 교동향교, 교동도호부의 공립 교육기관

한강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교동도는 섬의 규모가 크지 않아 지금은 강화군에 속한 마을이지만 삼국시대때부터 한강유역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강화와는 별개로 고목근현이라 불렀으며 신라경덕왕때 교동현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국방상의 중요성으로 병자호란 이후에는 수영이 남양에서 이 곳으로 옮겨지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633년에는 삼도통어사가 설치되어 경기도.황해도.충청도의 수군을 총괄하던 고장이다. 교동도에 지금은 옛 교동부 관아의 흔적은 읍성을 쌓았던 성곽 일부를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고, 교동도의 주산인 화개산 남쪽 기슭에 관아에서 운영하던 교육기관이 향교가 남아 있다. 교동향교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에서 공자의 초상화를 가져와 모셨던 유서깊은 향교 중의..

[이탈리아여행] 베네치아 탄식의 다리 (Ponte dei Sospiri)와 주변 석호

베네치아의 중심인 산마르코광장에서 선착장이 있는 석호쪽으로 입구에는 베네치아 공화국 청사라고 할 수 있는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과 공공도서관인 산마르코 도서관(Biblioteca Marciana)이 있다. 운하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베네치아에서는 실질적으로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이다. 두칼레 궁전에서 동쪽으로 가면 지중해 해상무역로를 장악했던 베네치아 해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갤리선을 건조하던 베네치아 조선소 (Arsenale di Venezia)가 섬의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고 그 주변은 아마도 베네치아 해군과 관련된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산마르코광장 주변의 넓은 길이 있는 선착장 또한 갤리선들이 정박할 수 있도로 만들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베..

이탈리아(Italy) 2011.11.12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문자의 수용

한반도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로 중국과 비슷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고조선은 전국시대부터 중국 연나라와 교역이 활발했으며, 명도전이나 오수전 등의 화폐들이 중국과의 교역통로에 위치한 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 또한 전국시대나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많은 연나라지역 사람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조선으로 망명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조선으로 망명했다는 기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고조선은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문자를 사용했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문자 사용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고조선시대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발굴되고 있는 문자와 관련된 유물들은 주로 한.중.일 해상교역로에 분포해 있는 삼한지역..

중앙박물관 20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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