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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교동도 화개산과 화개산성 터

강화 교동도의 주산인 화개산에는 고려시대 산성인 화개산성지가 있다. 이 산성은 고구리산성이라고도 하며, 광개토대왕이 한성 백제를 제압하기 위해 한강입구인 교동도를 점거한 후 쌓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의 산성은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쌓은 것이로고 하며 주위는 약 2km이고 석축의 높이는 5m 정도이다. 이 산성은 교동도 남쪽편에 위치한 교동읍성을 보완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보이며,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많은 문헌에 이 화개산성을 쌓은 기록들이 남아 있다. 지금은 내성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화개산을 올라가는 길에 산성을 쌓은 석축은 잘 보이지는 않고, 옛 산성을 쌓았던 석축의 일부로 보이는 돌무지들이 여러 군데 보이는 편이다. 해발 269m의 화개산은 그 높이는 그리 높지는 않..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명필 김생과 명문 최치원의 글과 글씨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문자, 그 이후:한국고대문자전"이라는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진행하는 "초상화의 비밀"에 비해서 관심도는 낮아 보이지만, 전시하고 있는 유물들은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통일신라시대까지 한국인의 문자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광개토대왕비 탑본, 다라니경,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볼 수 있었던 역사적인 유물들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고 있다. 실제 이런 유물들은 그 내용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접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으며, 통일신라시대까지 문자의 사용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전시회라고 여겨진다. 한반도에서 문자를 사용한 이후 통일신라시대까지는 한국인이..

중앙박물관 2011.11.10

강화 교동도 화개사, 고려때 창건된 작은 사찰

강화 교동도의 주산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개산은 해발 269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이 섬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서해에서 한강으로 들어가는 뱃길과 북녁땅 연백평야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오고, 사방이 뚫려있어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매우 수려한 산이다. 이 화개산은 한강을 지키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광개토대왕이 한성에 도읍을 하고 있던 백제를 제압하기 위해 점령하여 산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화개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있는 화개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오래된 사찰로 서울 조계사의 말사로서 나름 내력이 있는 사찰이다. 고려말 목은 이색이 이 절에 머물렀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이 절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는 않지만, 교동도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이..

전국 사찰 2011.11.10

가족주말농장(10월4주), 알타리무를 수확하다.

가을도 막마지에 접어들고 있는 10월의 마지막 주이다. 이제 밭에 남아 있는 것들은 겨울철 김장을 준비하기 위해 심어두었던 김장채소들만 남아 있다.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주위에서 무성했던 잡초들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고, 밭에는 김장채소들만이 녹색의 생생함을 보여주고 있다. 8월말에 심었던 김장채소들은 어느덧 많이 자라서 조금 있으면 김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 것 같다. 이번주에는 김장 채소 중에서 제일 먼저 알타리무를 수확했다. 김장을 하기전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들깨는 열매가 매달린 것이 별로 많지 않아서 버릴려고 하다가 그래도 아까워서 들깨를 털어 봤더니니 한 주먹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올해를 돌이켜 보면 여름 한철 동안 너무 많은 비가 쏟아져서 고추를 비롯하여 제대로 ..

기타 2011.11.09

[이탈리아여행]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 종탑 (Campanile di San Marco)과 베네치아 석호 주변

산마르코 광장에 우뚝 솟아 있는 종탑인 Campanile di San Marco(영어:St Mark's Campanile)은 높이 98.6m에 이르는 거대한 구조물로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이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직육면체 기둥 형태의 이 종루는 베네치아 대성당과 두칼레궁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이 종탑은 1514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1902년에 지반 침하로 붕괴되었던 것을 1912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베네치아는 지반침하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 도시로 새로 세워진 이 종탑도 지반침하 현상때문에 지금도 수리를 하고 있어 내부 관람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종탑에는 5개의 종이 있다고 한다. 산마르코 대성당 종탑과 두칼레궁전 사이 광장을 Piazzetta라고 하는데 산마르코 광장과 ..

이탈리아(Italy) 2011.11.09

강화 교동도 들어가는 길, 창후리 선착장에서 월선포까지

교동도는 강화도 본섬 서쪽편에 있는 큰 섬으로 북족으로는 황해도 연백군의 넓은 평야지대와 가까이 있으며, 남쪽편으로는 석모도가 있다. 교동도는 지금은 넓은 섬이지만 원래는 작은 섬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북쪽편에 제방을 쌓고 관개용 저수지인 고구저수지가 만들어짐으로서 여러 섬들을 연결하여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교동도는 고도가 0~10m 정도인 간척기가 대부분이며 가장 높은 산은 해발 260m의 화개산으로 이 산에 올라가면 서해바다와 북한의 연백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교동도는 강화군 하점면에 있는 창후리 선착장에서 카페리호를 타고 월선포 선착장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지금은 강화 인화리에서 교동도를 연결해 주는 연육교가 건설되고 있어 이곳 선착장 통해서 카페리호를 타고 교동도를 들어가는 것도 얼마..

한국의 풍경 2011.11.09

[경주박물관 미술관] 황룡사지 출토 기와와 전

황룡사는 신라 칠처가람의 하나로 규모나 위상에 있어서 신라 최고의 사찰이었다. 황룡사는 진흥황 14년(553)에 월성 동쪽 지금의 구황동에 짓기 시작하여 17년만에 완성한 사찰이다. 현재 남아 있는 절터의 면적은 약 2만5ㅍ천여평에 달하며, 절터에는 당시 건물이 들어섰던 초석이나 불상이 있었던 석불대좌 등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일열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황룡사에는 신라 삼보 중 장륙존상과 경주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구층목탑이 있었고, 화가 솔거가 그린 금당벽화도 있었다. 또한 원효대사가 이 곳 황룡사 강당에서 강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 진흥왕때 처음 세워진 황룡사는 신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고려 고종 23년(129..

지역박물관 2011.11.08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 환선굴, 입구에 만물상 지역까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동굴지대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환선굴이다. 대이리 동굴지대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카스트르 지형인 삼척 오십천 일대의 해발 1,080m 덕항산 자락 아래 위치하고 있다. 대이리 동굴지대에는 환선굴, 관음굴, 대금굴 등 여러 석회암 동굴들이 산자락에 흩어져 있다. 그 중 환선굴이 그 규모가 가장 크고 잘 알려져 있다. 환선굴이 있는 이 계곡은 강원도 산간지역의 주거형태인 굴피집, 너와집과 계곡에는 마을 방앗간인 통방아가 있어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다. 환선굴은 굴길이가 3.3 km 정도이고 전체는 약 6.5km로 다른 동굴에 비해서 내부 공간이 상당히 넓다는 것이 특징이다. 노년기에 속하는 환선굴에는 유석.종유석.석순.석주.동굴산호 등 다양한 동굴생성물들이 있고 바닥에 ..

한국의 풍경 2011.11.08

충주 탄금대, 가야사람 우륵과 신립장군의 이야기가 담긴 남한강변 명승지

충주는 중앙탑이 충주에 소재하고 있듯이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남한강 물줄기를 통제하고, 조령,죽령을 통한 영남지역과의 관문역할을 하던 곳이다. 탄금대는 남한강 물줄기의 중심인 충주에서도 경치가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나 또한 많은 아픈 사연을 가진 곳이다. 충주 탄금대는 남한강이 충주댐을 지나서 속리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큰 하천인 달천과 만나는 지점에 있는 대문산이라고 부르던 작은 야산을 말하여 남한강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남한강 하류 방향으로는 고구려비, 중앙탑, 장미산성, 누암리고분군 등 삼국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충주시 가금면 지역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가야사람 우륵이 터를 잡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가야금을 타던 장소라 하여 탄금대라고 부른다. ..

[경주박물관 미술관] 황룡사 구층목탑 사리갖춤과 지진구

경주 황룡사는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에서 으뜸가는 사찰로 진흥왕때 짓기 시작하여 선덕여왕 때 완성되었다. 황룡사에는 신라의 삼대 보물 중 두가지인 금당에 안치된 금동장륙존상과 구층목탑이 있었다고 한다. 황룡사구층목탑은 선덕여왕 때인 645년에 승려 자장의 권유로 세운 높이 80여m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로 몽고의 침입으로 1238년에 불타버리기까지 약 600여년의 세월 동안 경주 도심에 우뚝서 있으며 경주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웅장한 구조물이었다. 탑(Pagoda)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쌓은 구조물로 스투파라고도 한다. 탑은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에서 유래했으며, 인도나 서역에서는 반구를 뒤집어 놓은 형태가 일반적이었으나, 중국을 거치면서 목조건축물 형식으로 바뀌었고 이후 중국에서는 벽돌로..

지역박물관 2011.11.07

강화 석릉(사적 369호), 최충헌 정권에 의해 폐위된 고려 21대 희종의 능

석릉은 고려 21대 희종의 능으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이 능은 조선시대 이후 방치되어 있다가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이 찾아내어 다시 봉분하였다고 한다. 희종은 신종의 아들로 무신정권 최충헌 집권기에 신종의 양위를 받아 1204년에 즉위하였고, 1208년 당시 내시 왕준명 등과 함께 정권을 휘두르던 최충헌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개성으로 돌아와 살기는 했는데, 복위 음모가 있다는 무고로 다시 교동도로 유배되어 죽었다고 한다. 석릉은 무신정권에 의해 폐위된 국왕의 능이라서 그런지 넓은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조성되지 못하고 강화도에서도 깊은 산중에 속하는 양도면 진강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석릉을 찾아가는 길은 양도면 카톨릭대학 인..

[이탈리아여행] 베네치아 산마르코광장(Piazza San Marco)

산마르코광장(Piazza San Marco)는 베네치아에서는 도심의 중심부이며 산마르코 대성당을 중심으로 'ㄷ'자형이루어진 회랑 안쪽 넓은 마당을 일컫는다. 나폴레옹은 이 곳을 세계에서 가장아름다운 홀이라고 불렀다. 베네치아에서는 광장(Piazza)은 이 곳을 말하며 도시내 크고 작은 광장들에는 Piazza라는 명칭 대신 Campi(영어로 Field)라는 명칭을 부친다. 광장의 중심에는 중세시대 2명의 베네치아 상인이 이집트 알렉산드라아에서 훔쳐온 성마르코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서 세워진 산마르코대성당과 그 앞에 우뚝 솟아있는 종탑이 있고, 베네치아 석호 방향으로는 베네치아 공화국 정부건물이었던 두칼레궁전과 이 도시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날개달린 사자상과 성테오도르상이 우뚝 서 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

이탈리아(Italy) 2011.11.06

강화 삼암돈대, 석모도 앞 해로를 지키던 돈대

병자호란 이후 국방을 강화할 목적으로 강화도 해안에 구축한 53돈대 중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해로를 지키던 삼암돈대이다. 돈대는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접경지역이나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도로 쌓은 소규모 방어시설로 조선후기에 나타난 방어시설 형태이다. 조선 숙종때 강화유수 윤이제가 어영군가 승군을 동원하여 40여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삼암돈대는 숙종때 쌓은 53돈대 중 건평.망양.석각돈대와 더불어 정포보 관할하에 있었다고 한다. 이 돈대는 둥글게 쌓은 돈대로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가 4곳 설치되어 있고, 성위에는 여장이 55개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출입문은 북쪽 1군데만 두고 있으며 내부에는 화약고를 설치했던 터가 남아 있다. 석모도를 오가는 카페리가 정박하는 외포리 선착장 서쪽편 ..

가족주말농장 (10월3주), 고구마를 수확하다

2011년 가을도 중반으로 넘어가는 이번주에는 봄에 심었던 고구마를 수확했다. 지난봄에 고구마 모종을 사다가 꽤나 힘들게 심었고, 여름을 지내는 동안 제대로 자라고 있는지 궁금했었는데, 이번주에 그 결과를 보았다. 고구마를 심을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고구마들이 별로 자라지는 못했다. 여름동안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아니면 가을에 비가 오지 않아서 그런지 고구마를 캐는데 힘만 들었지 제대로 뿌리를 내린 것이 별로 많지 않았다. 올해는 다른 집들도 고구마가 별로 크지 않다고 하는데 심을때 정성이 부족해서인지 손가락만하게 조그만 고구마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지금 밭에는 가을 김장배추들만 남아 있고, 잡초들도 무섭게 자라던 기세는 간 곳이 없고 황량한 느낌을 주면서 말라가고 있다. 생기있게 뻗어가던 고..

기타 2011.11.06

[경주박물관 미술관] 신라의 금석문, 석경과 이차돈 순교비

삼국시대에는 진흥왕순수비, 남산신성비 등 국가정책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글자를 새겨 놓은 비석을 많이 활용하였는데, 이는 경주를 비롯한 특징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라의 영역에서 고루 분포되고 있어 비석이 통치의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비석에서는 당시의 관직, 인물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서 사회 체제가 안정됨에 따라 국가 통치를 위한 비석의 필요성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며, 이때부터는 왕이나 특정 인물의 업적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세운 비석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며, 비석의 이런 특징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면서 부처의 사리를 모신 석탑의 건립은 점차 줄어드는 경..

지역박물관 2011.11.06

강화 곤릉 (사적 371호), 고려 대몽항쟁기 고종의 어머니 원덕태후의 능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마을 뒷편에 위치한 곤릉은 고려 강종의 부인인 원덕태후 유씨의 무덤이다. 고려의 대몽항쟁기의 대부분을 보낸 고종의 어머니로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고려가 강화로 천도했던 시기에 사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에는 곤릉 이외에도 희종의 능인 석릉, 희종의 비 순경태후의 능인 가릉, 고종의 능인 홍릉이 남아 있는데, 홍릉을 제외하고는 강화군 양도면 일대에 고려귀족들의 무덤들과 함께 분포하고 있다. 곤릉의 봉분은 붕괴되어 각종 석물들은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고 '고려원덕왕후곤릉'이라고 적혀 있는 표석만 남아 있다. 능앞에는 고려시대 능제의 특징인 3단의 장대석단을 설치해 놓고 있으며, 조선왕릉의 정자각처럼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가 남아 있다. 강화군 양도면 길정..

[이탈리아여행] 베네치아 골목길과 수로, 아카데미아다리에서 산마르코광장까지

베네치아 도심을 가로지르는 대운하(Grand Canal)을 따라서 수상버스인 바포레트를 타고 귀족들의 궁전과 미술관들이 모여 있는 아카데미미술관 앞에서 내려 베네치아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다리인 아카데미아 다리를 건너서 도심의 중심부인 산마르코광장이나 리알토다리를 향해서 골목길을 걸어서 찾아갈 수 있다. 이 지역은 베네치아 석호에 세워진 수상도시의 중심지답게 활기차며 번화한 느낌을 주는 거리와 주택들을 볼 수 있다. 아카데미아다리를 건너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Campo Santo Stefano 광장이 나타난다. 이 광장은 Santo Stefano 성당을 앞에 형성된 광장으로 베네치아에서는 상당히 넓은편에 속하는 광장이다. 귀족들의 저택들과 가까이에 위치한 이 광장에는 옛날부터 베네치아에 열리는 여러 축..

이탈리아(Italy) 2011.11.05

강화 철종 외가, 경기지역 사대부 저택

철종은 전계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사도세자(장헌세자)의 아들인 은언군의 손자이기도 하다. 1844년 그의 형 회평군의 옥사로 가족이 강화도로 유배되어 '강화도령'이라는 별칭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철종은 헌종의 뒤를 이어 1849년 19세로 즉위했으나 재위기간 14년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절정기로 삼정의 문란이 극심했고 민란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국왕으로서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병사했던 왕이다. 강화도에는 그와 관련된 유적이 몇곳있는데, 그가 강화유배기간 동안 살았던 강화유수부 관아부근의 용흥궁과 그의 외가가 남아 있고, 잠시 교동도에 피신했던 철종잠저소 등이 있다. 강화군 선원면에 소재한 철종외가는 철조이 즉위한지 4년후인 1853년에 지어진 철종의 외삼촌 염보길의 집이다...

고택_정원 2011.11.05

[경주박물관 미술관] 신라의 금석문, 글자가 새겨진 비석, 임신서기석(보물 1411호)

기원전 57년경에 건국된 신라는 한반도 동남부세력을 장악하여 백제, 고구려와 함께 삼국시대를 이루는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 신라는 내물왕 때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왜(倭)를 격퇴하면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중앙집권 국가로서의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지증앙 때에 이르러서는 정치제도가 더욱 정비되면서 국호를 신라로 바꾸고 왕의 호칭도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쳤다. 이후 법흥왕대에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반포하는 등 통치질서를 확립하면서 중앙집권체제을 완비하고, 김해지역 금관가야을 정복하여 한반도 동남부지역에서 그 세력을 확고히 하였다. 신라에서 문자를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는 크게 알려진 것은 없지만, 삼한시대 출토 유물에서 한자를 사용한 흔적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한자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

지역박물관 2011.11.05

삼척 대이리 산촌마을, 환선굴 입구에 남아 있는 너와집과 굴피집

환선굴을 비롯하여 여러 석회암동굴이 있는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산간지역 주거형태였던 굴피집과 너와집이 남아 있는데, 환선굴이 동굴체험을 할 수 있는 관광자원화될 때 이 곳 환선굴 입구 골짜기에 있던 산간지역 민가들 중 일부를 보존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환선굴 매표소 바깥쪽으로는 옛 주택이 남아 있지는 않고, 매표소 안쪽 계곡에 몇 가구만이 옛 산촌 주택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100여년전에 만들어진 마을 방앗간인 통방아가 계곡에 남아 있다. 너와집은 소나무, 전나무 등 큰 나무를 쪼개어 기와처럼 쌓아 올린 너와지붕을 하고 있으며, 굴피집은 너와대신 참나무, 떡갈나무 껍질을 벗겨 지붕으로 사용하는 주택의 형태이다. 이 곳 산촌마을의 너와집과 굴피집은 온돌방,..

고택_정원 201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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