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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장항리사지 (사적 45호), 토함산 동쪽 자락에 자리잡은 옛 절터

경주 토함산 불국사에서 석굴암을 지나 감은사지와 대왕암이 있는 감포해안으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 45호로 지정된 장항리 절터이다. 사찰의 내력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지 것이 없어서 양북면 장항리라는 지명을 따서 장항리사지라고 부른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동쪽편 기슭에서 있으며, 토함산에서 발원하여 감은사지 앞을 지나서 동해로 흐르는 대종천 상류 계곡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데,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은 계곡 사이의 좁은 공간에 두개의 탑을 세우고 그 뒤쪽 중앙에 금당을 배치한 쌍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으며, 감은사지와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석조불대좌가 있는 금당터는 확인되고 있으나, 강당과 회랑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절터에는 국보 236호로 ..

절터 2011.10.17

가족주말농장(10월1주), 가을 느낌을 주고 있는 김장채소들

이른 봄 지난해 심었던 자리를 치우고 새로운 밭농사를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가을도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여름 동안 기세좋게 자라던 잡초들도 그 성장이 한풀 꺽이고 조금씩 가을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봄에 심었던 작물 중에는 고구마와 들깨를 제외하고는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지금 밭에는 김장을 준비하기 위해 심어둔 채소들만이 때를 만난듯이 잘 자라고 있다. 작년에 고전했던 배추를 비롯한 김장채소는 가을에 맑은 날이 많아서 그런지 제대로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작년에는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조그맣게 자랐던 배추로 김장을 했었는데, 올해는 벌써 김장배추만큼 크게 자라고 있다. 지난번에는 열무와 무우청을 뽑아다 김치를 해서 먹었는데, 이번주에는 중간에 먹을려고 씨를 뿌렸던 배추를..

기타 2011.10.16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토용과 십이지신상

신라의 유물은 삼국시대 내물마립간대부터 시작한 황금문화시기에 조성된 경주도심 대릉원 일대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후 불교를 받아들이고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서는 사찰건립 등에 많은 자원을 쏟아부었기때문에 이전 시대에 비해서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은 유물은 많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무덤에서 껴묻거리로 출토된 유물 중 대표적인 것 사람이나 동물을 본떠서 만든 토용과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역할을 기대했던 십이지신상일 것이다. 토용에서는 당사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이나 복식 등을 알 수 있으며, 함께 출토되고 있는 수레 등 생활용품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주 용강동에서 출토된 여인상과 문인상은 통일신라 복식에 대해서 알려주는 대표적인..

지역박물관 2011.10.16

충주 누암리 고분군 (사적 463호),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장악하고자 이주시킨 귀족들의 무덤

충주시 가금면 누암리 일대에 남아 있는 누암리고분군은 신라 진흥왕이 한강일대를 장악하면서 이 지역을 경영하고자 했던 의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적지로서 이 일대에는 약 230여기의 고분이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신라와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던 지역으로 누암리고분군들의 주인은 진흥왕이 이 지역으로 이주시킨 신라귀족들로 추정하고 있다. 그 중 앞쪽에 위치한 고분은 그 규모나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진골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암리고분군이 있는 가금면 일대에는 고구려가 쌓은 산성인 장미산성을 비롯하여 충주 고구려비 (국보205호), 충추 탑평리 칠층석탑(국보6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다고 전해지는 탄금대 등의 유적지들이 남아 있다. 현재 사적 463호로 지정된 누암리고분군..

경주 노서리 고분군, 금관이 최초 발견된 금관총을 비롯하여 서봉총, 호우총이 있는 경주 도심의 고분군

삼국시대 신라 궁성이었던 월성 서북방향으로는 신라 황금문화 절정기인 마립간 시기에 조성 된 것으로 보이는 고분군을 들어서 있다. 마립간시기는 내물왕에서 왕이란 호칭을 처음사용한 지증왕 이전까지인 4~5세기를 말하며, 돌무지덧널무덤과 화려한 황금문화 등 신라문화를 대표하는 특징들이 나타났던 시기이다. 예전에는 노서리, 노동리, 황오동, 미추왕릉지구 등으로 구분하여 사적지로 관리했는데 이들 고분들은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출토유물이나 무덤의 조성방식에서도 동일한 특징을 보이기때문에 지금 대릉원으로 일괄하여 부르고 있다. 노서리고분군은 신라왕릉에서 최초로 금관이 발견되어 세상을 깜작 놀라게 한 금관총을 비롯하여, 스웨덴국왕이 황태자 시절 경주를 방문하여 무덤발굴에 참여하여 금관을 ..

경주 서출지 (사적 138호), 남산 기슭에 위치한 삼국시대 연못

경주 남산 동쪽 기슭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연못인 서출지이다. 이 연못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유수지이지만, 안압지나 궁남지처럼 인공적으로 조성된 연못에 비해서 경관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서출지가 있는 남산마을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마을로 삼국유사 기록에도 남아 있다. 연못 한쪽에는 조선 중기 (1664년)에 세워진 옛 정자가 남아 있어 연못에 핀 연꼿, 마을, 남산과 더불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주고 있다. 이 정자는 임정이라는 사람이 세웠다고 하며, 팔작지붕에 누마루를 두고 있는데 석조기둥을 연못에 박아서 세웠기때문에 연못에 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건물이다. 경주 서출지 전경. 연꼿이 한창 피어난 시기에는 장관을 이룰것 같은데, 연꽃이 진 이후지만 남아 있는 연두빛의 ..

고택_정원 2011.10.12

[경주박물관 고고관] 4~6세기 신라토기, 독무덤, 수레모양토기

신라토기는 4세기 후반에 다리에 엇갈린 구멍을 뚫은 굽다리토기가 출현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게되는데 회전하는 물레를 사용하여 형태를 빚은 뒤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밀폐된 가마에서 구워서 얇고 단단한 그릇을 만들게 된다. 신라토기는 그릇 종류로 큰 항아리, 굽다리접시, 잔, 그릇받침 등 다양한 종류가 출토되고 있으며 가야 토기에 비해서 직선적인 것이 특징이다. 4~6세기에는 경주 월성 북서쪽으로 많은 왕이나 귀족층 등의 무덤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들 고분에선 금관을 비롯한 금속세공품과 더불어 상당히 많은 양의 토기들이 같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황남대총에는 4천여점의 토기들이 껴묻거리로 묻혀 있었다. 고분에 묻힌 토기들은 다량의 껴묻거리를 만들기 위해 대량생산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 사용하..

지역박물관 2011.10.11

경주 노동리 고분군, 신라 최대의 고분인 봉황대와 식리총,금령총

경주 노동리고분군은 신라의 궁성이었던 월성 북서쪽으로 조성되어 있는 마립간시기의 신라 왕과 귀족들을 무덤인 대릉원의 끝단에 위치한 고분군이다. 원래는 여러지역으로 나뉘어 관리되어 노동리고분군이라고 했지만, 대릉원 주변 고분들은 시기적, 지리적으로 동질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대릉원의 일부로 분류하고 있다. 이 곳은 경주도심과 제일 가까이 있는 까닭에 가장 빠른 시기인 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노동리고분군은 왕릉으로 추정되는 신라고분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봉황대와 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현재 봉분은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 있는 금령총과 식리총이 있다. 금령총은 봉황대 남쪽에 있는 작은 봉분으로 1924년 일본인에 의해 조사발굴이 되었었는데 구조는 ..

[맛집] 연희동 이화원, 최근 연희동에서 인기가 좋아지고 있는 중국음식점

서울에서 화교중학교가 있어서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연희동에서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연희동 이화원이다. 이 음식점은 식당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큰 길에 있는 단독주택을 개조한 음식점인데, 이 곳에 자리를 잡은지는 그리 오래되는 않은 것 같다. 예전에는 화교가 운영하는 중식당으로 중국원이 요리솜씨가 좋아서 인기가 많았었는데, 지금 중국원은 중국 관광객 위주로 영업을 하기 때문에 요즘은 한국인의 입맛을 잘 맞추지 못하는 것 같고, 대신 이화원과 그 옆에 있는 중국 음식점이 한국인들에게는 인기가 좋은 것 같다. 예전 중국원만큼은 음식을 잘하지는 않지만, 나름 중국음식점 중에서는 요리를 괜찮게 하는 곳이다. 특히 단독주택을 개량하고 내부 분위기를 깨긋하게 해서 그런지 손님들이 많이 ..

맛집 2011.10.11

경주읍성 (사적 96호), 고려시대 경주 도심에 쌓은 읍성

경주읍성은 경주도심부에 있는 석축성으로 축조연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려 우왕때 고쳐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축성된었던 것으로 보고 있으며 1012년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읍성은 임진왜란때 파과된 것을 중수했다고 하며 동문인 향일문, 서문인 망미문, 남문이 징례문 북문인 공진문이 있었다고 한다. 남문인 징례문 문루에는 성덕대왕 신종을 걸어놓고 시간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경주의 다른 건축물등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축성에 사용한 돌 중 상당수가 인근 절터 등지에서 가져온 건축자재나 석탑 등의 부자재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읍성 석축 대부분이 헐리고 동쪽편 약 50m의 성벽과 치가 남아 있다. 신라천년 고도인 경주는 통일신라가 멸망한 고려, 조선시..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무기, 판금갑옷과 말갖춤

신라는 고구려의 광개토왕과 장수왕에 해당되는 마립간(내물~지증왕)시기에 고구려와 교류를 하고, 광개토왕의 도움을 받아서 왜(倭)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게 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군사력을 비롯하여 문화.기술 등 모든 면에서 고구려가 신라를 앞섰던 것으로 신라가 고구려와 협력하던 이 시기에 신라는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며, 이 시기의 화려한 황금문화가 천마총, 황남대총 등 당시 고분의 발굴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고분들에서는 금관을 비롯한 장신구와 함께 고분 주인이 사용했거나, 사용할 무기류나 말갖춤 등을 껴묻거리로 함께 묻어두어서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무기의 형태나 수준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신라는 마립간시기에 동북아시아에서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고구려의 철기병 체제를 받아들인 것으로 ..

지역박물관 2011.10.10

경주 교동 최씨 고택, 최부자집으로 불린 독립유공자 최준선생 생가

신라의 궁성이었던 월성 서쪽편 남천을 건너는 월성교 다리 주변에 위치한 경주 교촌에서도 향교와 함께 랜드마크가 되었던 경주 최부자집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택이다. 이 가옥은 1700년 대에 건립된 가옥으로 구한말 대부분의 대지주 저택과 마찬가지로 99칸 규모의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랑채와 안채, 문간채와 큰 광이 남아 있다. 그 중 사랑채는 70년대에 불타버린 것을 복원한 건물이라고 한다. 경주 최부자집은 영남일대에서 손꼽히는 부호이지만 저택의 건물규모가 크거나 화려하게 꾸며놓고 있지는 않고 일반적인 양반촌의 저택 정도 규모를 하고 있다. 지금도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많은데, 조선시대에도 경주를 찾아 유람을 떠나왔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지위가 높은 사람 대부분은 이 집에서 묵었다고 하..

고택_정원 2011.10.08

[경주박물관 고고관] 금관총 출토 유물, 금관총 발굴 90주년 기념 특별전

경주 도심 노서동에 위치한 노서동 고분군은 월성 북쪽이 넓은 평야에 자리잡고 있는 마립간시기에 김씨 귀족층의 무덤으로 보이는 대릉원 주변 고분들 중에서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고분이다. 이 지역 고분들은 돌무지덧널무덤이라는 신라 특유의 무덤양식으로 하고 있는에 나무로 넓은 고간을 만들어 그 안에 주검과 껴묻거리를 넣고 그 위에 돌을 쌓아 오린뒤 흙을 덮은 구조로 도굴이 상대적으로 어려워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가장 큰 무덤은 높이가 22m로 봉분의 규모가 이전이나 이후의 고분에 비해서 상당히 큰 편이다. 노서동과 노동동은 도심과 가까이 있었기때문에 이른 시기에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대표적으로 금관총과 서봉총 등이 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되어 있다. 그 중 금관총은 지금으로 부터 90년전인 1921년에 ..

지역박물관 2011.10.08

경주 황남동고분군, 계림 서쪽편 이름없는 4기의 고분

경주 황남동고분군은 신라의 황금시대라 할 수 있는 내물왕에서 지증왕까지의 마립간시기에 조성된 신라 지배층의 무덤이 다수를 이르는 경주 대릉원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고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고분들은 금관을 비롯하여 화려한 금.은을 비롯한 금속세공품, 화려한 토기와 서역에서 수입한 유리잔 등 오늘날 남아 있는 삼국시대 신라를 대표하는 유물들 상당수가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이 지역고분들은 월성북쪽 계림 앞에 있는 내물왕릉을 비롯하여, 김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른 미추왕릉, 화려한 유물들이 출토된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무덤들이 평야지대 들판에 분포하고 있다. 황오동의 쪽샘지구나 대릉원 입구처럼 왕릉 사이에 주택가가 형성된 곳도 있고, 고분 주변을 논밭으로 경작하던 곳도 있었다...

경주향교, 신라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이 있던 곳에 자리한 조선시대 경주부 중등교육기관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로 많은 문화재와 유적지가 남아 있는 고도이다. 또한 신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영남지역의 중심도시로 동경 또는 경주라고 불려왔던 고장이다. 조선시대 경주는 종2품의 외관직인 부윤이 고을 수령인 지금의 직할시에 해당하는 큰 고을이었다. 조선시대에 부(府)가 설치된 도시는 한성과 평양,경주에 먼저 설치되었고 함흥과 전주, 큰 도시였던 의주, 경기도 광주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경주는 조선시대에도 큰 고을을 유지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흔적으로는 성벽 일부만 남아 있는 경주읍성과 월성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경주향교를 들 수 있다. 현재 경주향교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경주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던 최부잣집을 중심으로 반촌이 형성되어 있는교촌마을로 신라 궁궐이었던 월성 동쪽편에 자리잡..

[이탈리아 여행] 밀라노 거리 풍경, 패션과 명품으로 잘 알려진 거리

밀라노는 이탈리아반도 북부 롬바르디아 평야지대에서도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이탈리아 최대의 도시이자 경제적인 수도라 할 수 있는 도시이다. 밀라노는 르네상스시대부터 직물공업이 발달했던 것으로 보이며 산업혁명 이후에는 교통의 편리함과 함께 알프스의 수력발전을 이용하여 전통적인 섬유공업과 함께 중화학공업도 발달한 이탈리아 최대의 도시로 발전했다. 밀라노 도심은 유럽 3대 고딕성당 중 하나인 밀라노대성당과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 프랑스, 독일과 철도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답게 항상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도시이기도 하다. 밀라노 도심은 대성당,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과 명품의 도시이기도 하다. 밀라노 거리는 젊은이들이 ..

이탈리아(Italy) 2011.10.06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금.은 그릇, 유리잔, 청동자루솥

신라의 고분에서는 많은 껴묻거리들이 출토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금관총과 서봉총에서도 많은 유물이 출토되기는 했지만, 70년대에 시범적으로 발굴한 천마총과 황남대총에서는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는 당시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것들을 금.은으로 만들어서 무덤의 껴묻거리로 묻은 화려한 금.은 그릇들과 서역에서 수입했을 것으로 보이는 유리잔, 제사의식에 사용하는 청동제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이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주로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으며, 천마총을 비롯한 여러 고분들에서 출토된 것들은 경주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현재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그 중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유물 중 금..

지역박물관 2011.10.06

경주 오릉 (사적 172호),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과 박혁거세의 왕후 알영부인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경주 오릉은 궁성이었던 월성 서쪽편으로 자리잡고 있다. 5개의 봉분이 같은 지역에 모여 있는데 대릉원 지역에 있는 다른 봉분들과 마찬가지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 봉토분으로 실제로는 이런 형태의 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에 등장한 무덤의 형태라고 하며, 후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앞쪽에 있는 1호 무덤은 높이 10m로 큰 편이며, 뒷편에는 봉분 2개가 같이 표주박형이다. 각 무덤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경주 대릉원의 미추왕릉이나 김해의 수로왕릉 처럼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씨 시조의 무덤으로 제단이 설치되는 등 성역화되어 있는 무덤이다. 경주 오릉이 ..

경주 불국사 연화교.칠보교 (국보 22호), 극락전을 오르는 계단

불국사 극락전을 오르는 아름다운 계단인 국보 22호로 지정된 연화교와 칠보교이다. 연화교.칠보교는 다리형태로 계단을 만들었는데 청운교.백운교보다는 규모가 작고 소박해 보이는 형태이다. 연화교의 층계마다 특이하에 연꽃을 새겨 놓았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닳아서 지금은 이를 인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불국사 불이문에서 숲속길을 걸어서 올라서 경내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이 연화교.칠보교와 청운교.백운교이며 많은 사람의 인식속에 남아 있는 장면일 것이다. 불국사 불이문에서 걸어서 올라오다 보면 처음으로 보이는 국보급 문화재인 연화교.칠보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 아래로 물이 흐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전체 18계단으로 이루졌는데 아래 10단은 연화교이고 위 8단은..

경주 사마소, 젊은 유림들이 지역 여론을 형성하고자 조직한 자치기구

사마소는 조선 중기 지방의 생원.진사들이 설립한 자치기구로 사마시 출신의 젊은 유림들이 지역 여론을 장악하고자 세웠다. 원래는 고려시대 사심관제도에서 시작하여 지방의 유력인사들이 조직한 유향소라는 자치조직이 있었으나 주로 중앙에서 고위관직을 지내다 낙향한 인사들 위추로 구성되어 지방 수령보다 그 직위가 높아서 수령을 능멸하는 일이 잦아서 오랜기간동안 혁파되었다가 다시 생겨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마소나 유향소 모두 지방수령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 조직되었지만, 실제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조직 모두 공권력을 능멸하거나, 탐관과 합작하여 백성을 착취하고 사적인 처벌을 하는 등 많은 민폐가 있어서 오랜 기간 동안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기도 한 지방자치기구이다. 대표적으로 이들은 대동법을 반대했던 세력으로 ..

조선 관아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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