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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화려한 장신구

신라는 마립간시기인 내물왕대에서 지증왕때까지 중앙아시아 문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황금문화를 남겨놓고 있다. 천마총, 황남대총, 금관총, 서봉총으로 대표되는 금관과 금제관식을 비롯하여 수많은 귀금속 장신구들을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어두고 있다. 이 시기의 고분들은 신라 도심부의 대릉원을 중심으로 넓게 펴져 있는데, 특히 돌무지덧널무덤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들 고분들은 봉분 조성양식의 특성으로 인해 도굴이 상당히 어려웠기때문에 오늘날 많은 유물들을 우리에게 남겨 놓고 있다. 신라의 왕과 귀족들은 화려하게 반짝이는 금과 은으로 만든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를 하고 살았다고 하며, 얇은 금판으로 만든 달개를 달아 움직일 때마다 흔들려 더욱 빛났을 것으로 보인다. 마립간 시기의 신라는 금을 비..

지역박물관 2011.10.05

경주 진평왕릉 (사적 180호), 수.당 교체기 신라를 안정적으로 이끈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은 신라 26대왕 (재위 579~632)으로 진흥왕의 손자이자 선덕여왕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신라 중흥기를 이끌었던 진흥왕 이후 신라가 삼국간 경쟁에서 승리하고 통일을 이루는 과정이었던 선덕여왕대까지의 과도기를 이끌었던 국왕으로 재위 기간이 52년에 이른다. 고구려의 장수왕, 조선의 영조에 비견할 만큼 오랜 기간 왕위에 머무르면서 국가의 안정을 꽤했던 왕이다. 진평왕 재위기간동안에는 수나라와 고구려간의 전쟁으로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서는 등 국제적으로 격변기였다고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진평왕은 국내젹으로 여러 관청을 설치하는 등 내정을 안정시키고, 명활산성과 남산산성을 쌓는 등 경주 방위에 많은 신경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수나라.당나라와의 외교에 힘써 삼국통일이 기틀을 마련하고 불..

[이탈리아 여행] 밀라노 두오모광장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이탈리아 밀라노의 중심 밀라노 대성당 앞 광장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 특히 르네상스 시기에 번성했던 도시들은 건물 지하에 식당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식당 또한 광장에서 밀라노대성당을 마주보고 있는 상가 건물에 위치하고 있는데, 점심때가 되었고 간단하고 쉽게 점심을 해결할 생각으로 이 식당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고 이탈리아 도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 식당은 1층은 빵과 거피를 파는 커피숍 또는 베이커리점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지하를 식당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스파게티를 비롯한 파스타와 피자가 주메뉴인 것 같은 식당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인 밀라노 대성당 앞에 위치해서 그런지 상당히..

이탈리아(Italy) 2011.10.05

가족주말농장 (9월5주), 배추를 비롯한 김장채소들은 제대로 자라고 있는 것 같다.

늦여름과 초가을의 늦더위가 한풀 꺽이고 맑은 하늘이 계속되고 있는 9월도 끝나가는 마지막 주이다. 여름동안 내린 너무 많은 비에 적셔진 땅도 이제는 마른 느낌을 주고 있다. 지난달 말에 묘종을 심고, 씨앗을 뿌렸던 김장채소들이 이제는 제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열무는 지난번에 수확에서 김치로 맛있게 먹고 있고, 이제는 김장채소들 중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들을 솎아주면서 가을 식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묘종을 심었던 배추는 속이 차지는 않았지만, 그 모양새가 배추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김장무와 열무도 조금씩 뿌리가 자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올해 가을에는 햇살이 좋아서 그런지 대체로 김장채소들이 예년에 비해서 잘 자라는 것 같다. 올해는 고추를 제외하고는 김장때 배추가격이 그리 높지는 않을..

기타 2011.10.05

경주 도봉서당, 서원 형식의 재실

태종무열왕릉과 진흥왕릉이 위치한 경주 서악동 마을에 소재한 도봉서당이다. 서당이라는 이름에서 조선시대 초급 교육기관을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서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서원은 원래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선현들을 모시기 위해서 후학들이 세운 사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립교육기관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초기 서원들은 학덕과 지역에 기반을 갖춘 인물이 운영하던 서당에서 출발해 그를 모신 사당을 설립하고 국왕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발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학문적 업적보다는 문중 인물을 모신 사당을 중심으로 서원이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이런 서원에서는 문중사람들이 모여 지역 여론을 형성하고 붕당정치의 지역기반이 되기는 폐단을 낳기도 한 것이다. 조선후기 서원의 남설로 세금의..

[경주박물관 고고관] 마립간의 등장, 금관을 비롯한 왕의 관식

신라에서 임금을 뜻하는 말은 시조인 박혁거세때는 거서간, 2대 남해왕때에는 차차웅, 3대 유리왕에서 김씨가 왕위를 세습한 내물왕 이전까지는 '임금'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사금이라고 불렀다. 내물왕때부터는 마립간이라 불렀는데 으뜸이라는 뜻의 '마립'과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왕을 부를때 사용하는 '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내물왕때 시작된 마립간이라는 칭호는 22대 지증왕 이전까지 사용하는데 이 마립간 시기에 신라는 화려한 황금문화를 남겨 놓고 있다. 경주 도심 역사지구의 대릉원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는 수많은 고분들에서 오늘날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데 1921년 처음 발견된 금관총 금관을 비롯하여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교동 등지에서 6개의 금관이 발견되었는데 이른..

지역박물관 2011.10.04

경주 선덕여왕릉 (사적 182호), 경주 낭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최초 여왕의 능

선덕여왕은 신라 27대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다. TV드라마를 통해서 잘 알려진대로 이름은 덕만이고 진평왕의 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선덕여왕은 내정에서는 선정을 베풀어 민생을 향상시키고 구휼사업에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자장법사를 중국에 보내 불법을 들여여고 많은 유학생들을 파견하여 당나라 문물을 받아들이는데도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경주의 대표적인 유적인 첨성대를 건립하였고, 분황사를 비롯한 많은 사찰들을 창건하고 황룡사 목탑을 세우는 등 불교를 크게 진흥시켰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백제와 신라의 적극적인 공세를 김유신과 김춘추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당나라와는 외교적 협력관계를 유지하였다. 선덕여왕의 능은 경주 남쪽 낭산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낭산은 남북으로 길게 누에고치..

[이탈리아 여행] 밀라노 기차역, 철도교통의 중심지

밀라노는 이탈리아반도 북부의 알프스산맥 아래에 형성된 롬바르디아 평야지대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이탈리아 최대의 도시이다. 이탈리아산 명품들을 비롯하여 산업혁명기에 알프스산맥으로 수력발전을 기반으로하여 산업이 크게 발전한 도시다. 지금도 밀라노는 도시의 상징으로 실과 바늘을 꼽을 정도로 옛날부터 섬유공업이 발달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밀라노는 이탈리아반도와 유럽을 연결해주는 대부분의 철도노선이 있은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기차를 이용해 배낭여행을 즐기는 많은 관광객들이 잠깐씩 들러는 도시이기도 하다. 밀라노는 지중해를 통해서 프랑스와 연결되는 제노바, 독일 및 동유럽과 연결되는 베네치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알프스를 통해서 스위스와 유럽각국들과 철도로 연결해 주고 있다. 관광안내 책자에서는 대부분의 관광객들 ..

이탈리아(Italy) 2011.10.03

경주 괘릉 석상 및 석주 일괄 (보물 1427호), 후대 왕릉 조성의 모범이 되었던 사실적인 표현의 석상들

경주시 외동읍에 소재한 괘릉은 신라 38대 원성왕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는 왕릉으로 신라왕릉 중에서는 형식적인 면을 제일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받아들여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괘릉은 토함산자락이 들판과 만나는 낮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으며, 봉문은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둘레석으로 둘러져 있고 그 바깥쪽에는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만든 난간을 설치해 놓고 있다. 정면에는 서구의 신전 제단처럼 생긴 웅장한 상석이 놓여져 있다. 봉분에서 떨어진 입구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4마리의 사자상, 1쌍의 문.무인석과 석화표가 세워져 있다. 후대에 조성되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왕릉 구성에 있어서 모범이 되었던 왕릉이라 할 수 있다.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받아들이고 후대 왕릉조성의 모범이 ..

경주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국보 23호), 경주 수학여행을 대표하는 장면

석굴암과 더불어 경주와 불국사, 그리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한국에서 초.중.교를 다녔다면 반드시 이 곳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남아 있을 것이다. 불국사 중심영역인 대웅전 경내로 오르는 계단인 청운교.백운교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건축물 중 그 원형이 제대로 남아 있는 많지 않은 유물 중 하나이다. 이 다리는 속세의 영역과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물을 건너는 돌다리의 아치를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이 청운교.백운교는 통일신라때 만들어진 다리임에도 불구하고 원형을 간직하고 있은 아주 아름다운 다리로 연화교.칠보교에 비해 아주 웅장하고 불국사의 권위를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불국사 청운교 아치 아래로 흐르는 물을 상상하고 하는 곳이기도..

경주 신무왕릉 (사적 185호), 통일신라 후기 왕위쟁탈전을 통해 왕위에 오른 신무왕의 능

신무왕은 원성왕의 증손으로 흥덕왕 사후에 희강왕과 상대등이었던 균정의 왕위쟁탈 싸움에서 패하여 청해진대사 장보고에 숨어 있다가, 민애왕 2년(839)에 장보고의 지원을 받아 대군을 이끌고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같은해 병사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 문성왕과 동생 헌안왕이 뒤를 이었다. 왕족간의 왕위쟁탈전을 통해 왕위에 올랐던 신무왕.문성왕.헌안왕대의 통일신라는 장보고의 난을 비롯하여 끊임없는 귀족들의 반란이 있었던 시기로 신문왕의 왕릉은 문무왕대 이래로 왕릉이 주로 조성되었던 일본과의 교통로가 할 수 있는 경주와 울산간의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지만, 문성왕과 헌안왕의 능은 지방호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내륙과의 교통로인 경주.대구간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신무왕릉은 높이 3m, 지름 16m로 흙으..

[경주박물관 고고관] 무늬토기와 토우, 토우장식장경호(국보 195호)와 서수형토기 (보물 636호)

토우(흙인형)란 보통 흙으로 만든 인물상인데, 넓은 의미로 동물이나 생활용구.집 등을 본떠서 흙으로 빚어 만든 것을 일컫기도 한다. 토우는 주로 고대국가에서 조성한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많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무덤의 껴묻거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토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메소포니마아,에게해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중국 앙소문화, 일본 조몬시대에도 토우가 출토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와 가야에서 토우가 주로 출토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토우는 신라 토우를 일컫는 경향이 있다. 토우에는 간략하게 표현된 인물상, 동물상,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말을 탄 무사, 집모양 토기, 짚신모양토기, 등잔모양 토기 등 형태와 양식에..

지역박물관 2011.10.03

경주 성덕왕릉 귀부, 생동감이 넘치는 거북받침돌

신문왕의 둘째아들이자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손자인 성덕왕릉 앞에 세워졌던 비석의 받침돌이다. 비몸과 머릿돌은 남아 있지 않으며 거북머리 또한 남아 있지 않다. 비석으로서 전체적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조각수법이나 돌의 재질이 상당히 뛰어난 걸작으로 보인다. 거북은 모양은 근육질이 있어 보이는 크고 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발은 앞으로 나아 가련는 형상이다. 비몸이 없어져서 비석에 적힌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경덕왕때 만들었다고 삼국사기 기록에 남아 있다. 성덕왕은 신문왕의 아들로 통일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으로 일명 '에밀레종'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성덕대왕신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성덕왕은 당나라와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이끌었으며 유교를 적극적으로 ..

경주 효소왕릉 (사적 184호), 통일신라 전성기를 이끈 효소왕의 능

신라 32대왕(재위 692~702)인 효소왕은 신문왕의 큰 아들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의 손자이기도 하다. 삼국통일 후 신라의 관제를 정비하고 당.일본 등과 수교하였다. 이학 교육기관인 의학을 설립하여 의학박사를 두고 중국 의학서를 교수하게 하고, 서시전과 남시전을 두어 경주의 시장을 활성화 시켰다. 동생인 성덕왕과 함께 통일신라 전성기를 이끈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효소왕릉은 경주 남쪽 불국사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생인 성덕왕릉과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은 밑둘레 57m, 지름 15.5m, 높이 4.3m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봉토분으로 자연석으로 둘레석을 쌓았으나 지금은 몇개만 드러나 있다. 당나라의 능묘제도가 도입되기 직전에 조성된 자연석으로 둘레석을 쌓은 고분에서 비슷하게 ..

[이탈리아 여행]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Castello Sforzesco), 이탈리아 도시국가 성채

이탈리아 최대의 도시인 밀라노 도심 중앙에 공원과 함께 자리잡고 있는 스포르체스코 성(이탈리아어: Castello Sforzesco)이다. 밀라노대성당, 스칼라극장 등과 함께 방사형으로 되어 있는 도심 중앙을 형성하고 있으며, 밀라노대성당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유적지이다. 이 스포르체스코 성채는 14세기에 현재의 부지에 처음 건설을 시작했으며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이후 복구되었으며, 2차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크게 파괴된 것을 복구하여 현재는 도시박물관과 예술품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성채는 외벽을 붉은 벽돌로 쌓은 것으로 보이며, 성벽 바깥쪽으로는 해자를 파고, 모서리와 중요한 곳에는 망루를 세워 놓고 있다. 성곽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며, 피렌체를 비롯하여 르네상스시대에..

이탈리아(Italy) 2011.10.01

경주 서악동귀부 (보물 70호),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묘비

보물 70호로 지정된 경주시 서악동 태종무열왕릉 앞 족에 남아 있는 서악동 귀부이다. 이 귀부는 비석을 받치는 거북받침돌로 태종무열왕릉비와 함께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초기 비석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조각상이다. 네발로 땅을 힘차게 디디고 있는 이 거북받침돌은 조각수법이나 기교면에서 태종무열왕릉비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사실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거북받침돌은 후대에는 용의 머리로 바뀌는데 거북머리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비석은 서악서원에 출토된 비몸에 기록된 글과 삼국사기 기록으로 볼 때 김인문의 공적을 새겨놓았던 비의 받침돌로 추정하고 있으며, 머리부분인 이수는 남아 있지 않다. 김인문은 태종무열왕이자 문무왕의 친동생으로 삼국통일전쟁에서 당과의 외교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죽..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성립, 무덤의 변천과 껴묻거리용 와질토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삼국시대 이전의 유물들은 대부분 지배층의 무덤인 고분 발굴을 통해서 출토된 것들이다.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삼한, 가야, 삼국의 고분들은 그 형태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이며 가야를 제외하고는 초기에는 대부분 평지에 무덤을 조성하고 있으며, 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구릉에 무덤을 조성하고 있다. 무덤은 초기에는 현재와 비슷한 나무로 된 널무덤이 주를 이루었으며 후대에 들어서면서 돌무지 덧널무덤,굴방을 만드는 석실분으로 변했으면 특이한 형태로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독무덤의 형태를 한 곳도 있다. 후대에 화장이 성행하면서 뼈항아리를 묻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유물들은 대부분 무덤의 껴묻거리 형태로 매장되었는데 묻힌자들이 권위와 지위를 말해 주고 있다. 금관을 ..

지역박물관 2011.10.01

경주 성덕왕릉 (사적 28호), 에밀레종으로 잘 알려진 통일신라 전성기를 이끈 성덕대왕의 능

성덕왕과 효소왕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손자이자 신문왕의 아들로 통일신라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으로 경주에서 불국사로 가는 국도와 철도가에 토함산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구릉 말단이 평지와 만나는 곳에 나란히 능을 마련해 놓고 있다. 문무왕대에는 왜(倭)의 침입에 대해서 상당힌 긴장했던 것으로 보이며, 문무왕의 능을 동해 대왕암에 수중능으로 마련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 아들인 신문왕과 손자인 효소왕, 성덕왕은 일본이 침입할 수 있는 예상 통로라고 할 수 있는 울산과 경주를 연결하는 큰 길가에 나란히 마련하고 있다. 성덕왕은 당나라와 외교문서를 전담하는 통문박사를 설치하고, 당나라에 약43회에 걸쳐 사신을 파견하는 등 당나라왕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이끌었으며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였으며 왕권 강화를 위해 노..

경주 계림 (사적 19호),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 탄생 설화를 간직한 숲

경주 궁성인 월성(반월성)의 정문격이 북쪽 출입문을 나서면 서쪽편에 작은 숲을 볼 수 있다. 특별히 문화재로 분류할 수 있는 유적,유물이 발굴된 장소는 아니지만 신라 천년을 이끌어온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 탄생 설화가를 간직하고 있는 계림이다. 계림 내부에는 아주 오래된 고목들이 많아 하나의 독특한 숲을 이루고 있고 계림 끝부분에는 경주김씨 세습 체제를 구축한 내물왕릉이 자리잡고 있는 점은 우연이 아닌듯 하다. 이 숲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금궤속에서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발견되었다는 전설이 역사기록에 남아 있다. 경내세워진 비석은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현재 언덕처럼 보이는 곳이 신라의 왕궁이었으며, 계림과 첨성대가 있는 궁성 뒤편..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국보 25호), 후대 비석의 모범이 된 조각수법이 빼어난 걸작

국보 25호로 지정된 신라 29대 태종무열왕릉 앞에 세워진 비석이다. 김춘추라는 본명도 같이 잘 알려져 있는 태종무열왕은 김유신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는 등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왕릉이 입지한 지역은 경주 형산강 서쪽 선두산 아래 대구와 영천으로 연결되는 옛 국도가 지나가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통일을 염두에 두었던 당시 경주를 위협할 수 있는 한반도 내륙 한강유역과 경주를 연결하는 교통로에 그의 능을 둠으로써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그의 능을 잘 볼 수 있게 하고, 신라 내부적으로 경주 서쪽의 방어에 크게 신경을 써야 한다는 왕릉 조성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태종무열왕릉비는 현재 비몸은 일부 파편만 남아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는 비각안에 거북모양의 받침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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