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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여행] 제노바 도심의 Starhotels Presdent.

이탈리아 제1의 항구도시인 제노바 신도심 기차역 부근에 위치한 Starhotels President이다. 이 호텔은 르네상스시대에 건설된 구도심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20세기 초에 건설된 신도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호텔이다. 이탈리아 다른 도시들에 있는 고풍스러운 호텔들과는 달리 신도심 복판에 빌딩처럼 우뚝 솟아 있는 호텔로 관광객보다는 업무상 제노바를 찾는 비즈니스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숙소에서부터 좁은 골목길과 오래된 건물을 연상시키는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과 차별화되는 제노바만은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호텔은 제노바 신도심에 위치한 기차역인 Genova Brignole역 광장 앞에 있어서 찾기기 쉬울것 같았는데 실제로 이 기차역과 연결된 도시가 많지 않아서 관광객이 ..

이탈리아(Italy) 2011.09.26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 (보물 122호), 통일신라때 만들어진 마애석불

경주시 율동 벽도산 자락에 바위를 깎아 만든 마애여래삼존입상이다.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한많은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는 경주시가지 서쪽편 선두산과 마주보고 있는 벽도산에 이 마애불이 위치하고 있다. 선두산과 벽도산 사이의 골짜기는 경주와 영천을 비롯한 경북 내륙지방을 연결해주는 주요한 교통로로서 건천읍의 금척리 고분 등 많은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이 마애불의 원래이름은 두대리마애석불이었것으로 보아 이 불상이 있는 마을입구의 원래 명칭이 두대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삼존불 입상은 서방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미래불로 여겨지는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하고,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있다. 후대에 세워진 마애불에 비해서 돋을새김을 한 형태가 입체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신분을 뛰어넘고자 했던 중인들, 웃대에서 청계천으로

조선시대 중인은 경국대전에 정확하게 그 신분에 대해서 명시한 바가 없으며, '경국대전'에 정의된 '한품사용조'라는 규정에 의하여 그 적용범위가 기술직을 비롯한 하급관리에 관례적으로 적용되었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한품사용자'란 2품이상을 지낸 자의 서얼들을 기술직이나 하급직으로 진출하게 해주는 제도로 과거진출에 제한이 있었던 당시 고위직의 서얼들에게 특혜를 주는 조항이었으나, 조선중기 인조대에 의관이 세습직으로 변하면서 관례적으로 계층화되면서 일반 기술직에도 일괄적으로 이 조항이 적용되면서 이들은 관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홍문관 등 삼사관직에 오를 수 없도록 왜곡하여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영.정조대 이후에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청원 등을 통해 신분을 한계를 뛰어 넘고자 했다. 이들은 구한..

지역박물관 2011.09.25

경주 태종무열왕릉 (사적 20호),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무열왕 김춘추 무덤

경주시 서쪽편에서 경주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서악동 동쪽 언덕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5기의 고분 중 제일 앞쪽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 20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능이다. 무열왕릉의 위치는 약간의 언덕위에 있어서 경주시가를 굽어보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 또한 대구 등 경북지역에서 경주로 들어오는 국도 입구에 태종 무열왕릉이 있는데 아마 이는 중국의 사례를 참고한 듯 하다. (적의 침입이 있을때 왕실이 물러서지 않고 선조의 능을 지킨다는 의미로 가상의 적이 가장 먼저 오는 곳에 대부분의 왕릉이 있고, 서울의 경우도 1번국도로 신의주로 가는 통일로에 서오능, 서삼능 등 가장 많은 왕릉이 있다.) 무열왕릉 봉분은 밑지름 36.3m, 높이 8.7m로 원형봉토분 형태를 하고 있으며 발굴..

경주 금척리 고분군(사적 43호), 경주 외곽에 소재한 삼국시대 신라 귀족의 무덤

사적 43호로 지정된 금척리고분군은 대구와 경주를 연결해주던 옛 국도가 지나가는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에 소재한 삼국시대 신라의 고분군이다. 건천읍소재지에서 경주방향으로 약 2km 정도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 이 고분들은 경주 시내 평지에 위치한 고분들보도 그 규모가가 작아서 삼국시대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척리 고분군은 박혁거세왕이 병을 고칠 수 있는 하늘로 부터 받은 금척을 숨기면서 40여기의 봉분을 조성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금척리 고분군은 모두 50여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현재 봉분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32기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1950년대에 국도를 개설하면서 동서로 나누어져 있으며, 당시 훼손된 2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다고 한다. 그 뒤 몇차례 조사기 이루어지기는 했..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조선시대의 중인, 음양관과 도화서 화원 그리고 관청 서리

조선시대 중인계층 중 외교문서작성과 통역을 맡았던 사역원 하급관리인 역관과 더불어 이들 중인계층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직종은 관상감에 소속되었던 음양관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천문을 관측하고 일식과 월식의 예보, 역서의 간행을 맡았던 상당한 수준의 과학적 지식을 가진 계층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남긴 많은 천문도와 실록에 나타난 천체현상에 대한 기록 등으로 보아서 상당한 수준의 천문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경아전에 속했던 하급관리로 서리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양반들이 가지기 힘들었던 행정업무 능력으로 관아를 끌어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관아서리들이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많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까닭에 오늘날 중인계층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못한 편이며 이런 인식이 오늘날 ..

지역박물관 2011.09.23

부산 금정산 범어사, 의상대사가 왜(倭)를 물리치기 위해 창건한 전형적인 호국사찰

우라나라 최대의 항구도시 부산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할 수 있는 금정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범어사는 삼국시대 의상대사가 전국에 창건한 화엄십찰 중의 하나이다. 범어사의 창건연대는 대체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678년(문무왕18)으로 보고 있으며, 삼국시대에 신라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왜(倭)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국가의 지원을 받았던 전형적인 호국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범어사는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때 묘전화상을 비롯한 여러 고승들이 크게 중건하였으며, 정조때 백암선사가 크게 중건하여 현재 범어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범어사의 가람배치는 부석사를 비롯한 화엄십찰에서 볼 수 있는 산중사찰의 가람배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일 상단에는 사찰의 주불전인 대웅전을 그 아..

전국 사찰 2011.09.23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조선시대 중인계층, 전의감 의관과 사역원 역관

조선시대 중인은 양반 사재부와 일반 평민인 양인의 중간 신분에 속하는 계급층이나 실제로 경국대전을 비롯한 조선시대 법전 등에는 중인신분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으며, 조선의 법제도에 따르면 양인이면 누구나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기때문에 법률적으로 속박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을출신은 관직진출 등에서 제한이 있었기때문에 이들을 일반 양인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중인이라는 관습적인 명칭이 생긴것으로 보이며, 서울 인왕산 자락 웃대에 살던 관아의 서리, 역관, 의관, 음양관, 화원 등 기술직에 종사했던 하급관리들과 지방의 향리.아전 등 중간계층을 통칭해서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사회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장자상속에 따른 토지겸병에 따른 계급의 고착화에 따라서 이들 중간계층..

지역박물관 2011.09.20

강화 정수사, 마니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고찰

강화도 마니산 남쪽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화정선사가 처음 세운 사찰로 보문사, 전등사와 함께 강화도에 있는 오래된 고찰이다. 사찰을 세운 내력은 오래되었지만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고 보물 161호로 지정된 법당을 중심으로 요사채가 있는 작은 암자같은 사찰이다. 창건이후 고려시대까지의 내력은 알려진 바가 많지 않고, 조선 세종 5년 (1423)에 함허대사가 중창하면서 맑고 깨끗한 물이 법당 옆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정수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정수사가 위치한 곳은 지금은 숲이 우거져서 잘 볼 수는 없지만, 강화도 남쪽 바다와 영종도가 한눈에 내려도 보이는 강화도의 명산이자,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첨성단이 있는 마니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사찰의 가람은 중앙에 ..

전국 사찰 2011.09.20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웃대의 시사, 중인들의 시모임

조선후기 중인들이 모여살았던 웃대라 불렸던 인왕산 자락 아래 마을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한시를 향유하는 모임인 시사를 들 수 있다. 이들 시모임은 17세중반 삼청동 일대 의관,역관 등이 중심이 된 6인의 시모임에서 시작되어 관청 서리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들은 중인이지만 통역을 하던 역관이나 의관, 중앙부처의 서리들로 오늘날의 견해로 볼 때도 의사,중앙부처 공무원, 외교관 등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요하는 전문직에 속하는 직업군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이며, 시사 이외에도 이들의 계모임이 상당히 활성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인들의 시모임은 18세기 옥계시사를 통해 절정을 맞았는데 이들은 공..

지역박물관 2011.09.19

[이탈리아 여행] 제노바 기차역과 콜럼버스 석상

이탈리아반도 북서부 해안에 위치한 제노바는 이탈리아 제1의 항구도시로 중세 이래로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면서 부를 축적했던 도시로 지금은 밀라노, 토리노와 함께 이탈리아 북부 공업지대의 중심도시이기도 하다. 제노바는 항구도시로 해상교통은 발달한 편이지만, 육로는 그리 발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를 통해서 이탈리아 전역과 철도로 연결되며, 지중해안을 따라서 연결된 철도로 프랑스와 연결되어 있다. 제노바 구도심 북쪽편에 주요 철도와 직접 연결되는 기차역이 있고, 그 앞 광장에는 제노바를 대표하는 인물로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제노바는 항구도시이기는 하지만 오랜기간 부유했던 과거가 있었고 지금도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이 되는 도시라서 그런지 다른 항구도시와는 ..

이탈리아(Italy) 2011.09.19

강화 분오리 저수지, 자연 빙판에서 한겨울 얼음 썰매를 즐길 수 있는 곳

강화도는 많은 농토가 간척으로 조성된 곳이기 때문에 곳곳에 커다란 저수지가 많고 깊은 수로가 발달된 고장이다. 그래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항상 낚시꾼을 볼 수 있고, 한겨울에 많은 저수지들과 수로들이 꽁꽁 얼기때문에 자연의 빙판 위에서 얼음썰매를 강화 어느 곳에서든지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약간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처량해 보이기도 하기때문에 특정한 장소에 얼음썰매를 타려는 사람들이 이는데, 강화도 남단 동막해변 인근에 있는 분오리 저수지는 강화도 남단 동막해수욕장을 가기 조금전에 위치해 있고 바다가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장소이다. 강화에는 많은 저수지와 수로가 있어서 겨울철 얼음썰매를 즐기기 좋지만 이 곳 분오리 저수지가 제일 안전한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강화에서 가..

한국의 풍경 2011.09.19

강화도 남단 갯벌, 끝없어 펼쳐진 생태의 보고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여차리.동막리 및 길상면 선두리 일원에 펼쳐진 약 1,800만평에 이르는 강화도 남단의 갯벌이다. 강화도와 영종도 사이에 펼쳐진 이 넓은 갯벌은 서해안에 남아 있는 광대한 갯벌 중 하나이다. 이 갯벌에는 세계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노랑부리백로, 저어새, 큰고니 등이 시베리아에서 추운 겨울을 피해 남하하면서 잠시 쉬어가는 철새도래지로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갯벌이다. 갯벌은 어류생산의 기능은 물론 오염물질의 정화 기능 등을 감안할 때 경제적가치는 농경도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화도 남단에는 지금도 많은 갯벌이 남아 있지만, 간척사업을 하기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넓은 갯벌이 있었으며 지금은 강화도가 전체가 하나의 섬으로 되어 있지만 오래전에는 강화도 남단의 마니산 부근..

한국의 풍경 2011.09.19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웃대 사람들, 조선시대 중인들이 살았던 인왕산 아래 마을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한양의 중인들이 살았던 모습을 '웃대사람들'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했다. 웃대라 인왕산 기슭 아래 지금의 종로구 사직동.통인동.옥인등의 지역으로 경복궁 서쪽에서 인왕산 아래까지의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북한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경치가 좋은 곳으로 정선의 대표작 '인왕재색도'에 나타난 지역을 말하며, 실제로 겸재 정선은 이외에도 이지역 풍경이 담긴 작품을 여러점 남겨놓고 있다. 중인들이 살았던 웃대는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옥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지역의 실제 면적은 여의도의 절반정도로 조선시대 이지역에는 궁궐과 육조를 비롯한 관아와 가까웠기때문에 관아의 하급관리인 서리나, 궁궐의 신부름 등 잡일을 보던 별감 등이 주로 많이 살았다. 이 들 중인들은 조선후..

지역박물관 2011.09.18

[이탈리아 여행] 제노바 도심 광장 (Piazza della Vittoria) 개선문

제노바 구도심 남쪽으로는 20세기 초기 정비된 것으로 보인는 신도심이 형성되어 있다. 프랑스 파리의 도시계획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넓은 대로를 바둑판처럼 잘 정비된 크고 작은 도로를 중심으로 깨끗한 도시를 구성하고 있다. 이 제노바 신도심의 중심에는 기차역을 앞쪽으로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승리의 광장 (Piazza della Vittoria)'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아의 오래된 도시인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베로나 등은 좁은 골목길과 오래된 저택들로 구성된 구 도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곳 제노바처럼 도시계획에 따라서 도심이 잘 정비된 곳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탈리아 제1의 항구도시로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리적,문화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곳 '승..

이탈리아(Italy) 2011.09.18

북한산성 대서문, 산성 정문격으로 제일 낮은 곳에 설치된 문루

북한산성에 설치된 14개의 성문 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대서문이다. 이 성문은 고양시 북한산계곡을 통해서 북한산을 등반하는 가장 쉬운 코스 중 하나로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서울 북쪽 험준한 북한산 능선을 따라 쌓는 북한산성 중에서도 방어상 제일 취약한 곳으로 여겨졌으며, 일상적으로 북한산성을 출입하는 통로이기도 한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서문에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면 중성문을 만들어 놓고 있다. 대서문은 잘다듬은 크고 튼튼한 화강석으로 석축과 홍예를 쌓고 그 위에 문루를 올려놓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성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홍예좌우에는 동물머리 모양의 빗물을 빼내는 석누조가 설치되어 있고, 문루 앞쪽에는..

강화 초지진과 초지돈대, 강화해협 입구를 지키는 신미양요 현장

강화해협 입구에 위치한 초지진은 임진왜란 이후 비상시 수도역할을 해야 하는 강화도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조직인 5진 7보 중 하나로 원래 안산 초지량에 있는 수군을 병자호란 이후 강화로 옮기고 진(鎭)으로 승격시킨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초지진은 강화도 동남해안의 제물포에서 염하를 지나 서울로 향하는 수로를 지키던 군사조직으로 종4품이 만호를 수장으로 산하에 성암돈, 장자평돈, 초지돈을 관할하고 있다. 북쪽으로 덕진진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선두보와 경계를 이룬다. 초지진은 북동해안의 월곶진과 함께 강화도와 한양으로 향하는 수로를 지키는 중요한 지역으로 구한말 신미양요 때 미군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되었고, 그후 일본이 일으킨 운양호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초지진은 산하에 초지돈대를 포함하..

[이탈리아 여행] 제노바항, 이탈리아 제1의 항구도시

이탈리아 제1의 항구도시 제노바는 이탈리아반도 북서부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제노바는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산업의 중심지인 밀라노.토리노와 함께 공업지대를 이루면서 배후 항만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이다.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던 시절부터 있었던 옛 항만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도심과 같이 있으며, 지금은 요트나 유람선 등 관광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수출입 관문을 하는 항만은 옛 항구의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제노바는 한국의 부산, 프랑스의 마르세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일본의 오사카 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항구도시이지만, 예전의 번영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런지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 비해서 상당히 깨끗하고 사람들..

이탈리아(Italy) 2011.09.17

강화 분오리돈대, 드넓은 강화 갯벌과 서해안 낙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

조선후기 병자호란 이후 국방을 강화할 목적으로 강화도 해안에 구축한 53돈대 중 강화도 남쪽 해안을 지키던 분오리돈대이다. 강화해안의 돈대는 조선 숙종대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어영군 4,300명과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의 승군 8,900명을 동원하여 40여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돈대는 조선후기에 나타는 방어시설로 원형 또는 사각형으로 석축을 쌓고 크고 작은 포구나 총구, 여장을 설치하여 적을 방어하는 시설로 기존의 성곽과는 다른 개념의 방어시설이다. 분오리돈대는 강화도에 설치된 5진 7보의 군사조직에 속하지 않고 별도의 돈장을 두어서 관리하였다고 한다. 이는 서쪽의 송곶돈대와는 3 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삼면이 바다와 접하고 있는 절벽에 세워진 요새로서 작은 성곽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이탈리아 여행] 제노바항에 정박한 갤리선, 14세기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제노바 갤리선

갤리선은 페니키아 이래로 지중해 해상교역에 사용된 범선으로 바람으로 움직이는 돛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주로 사람이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범선이다. 갤리선은 선박의 측면에 노를 달아서 배를 젓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2단.3탄의 대형 선박으로 발전하였다. 이 배는 주로 타원형이며 갑판을 넓게 사용한다. 아래층에서는 노예나 전쟁포로가 노를 젓고 갑판에 병사들이 전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갤리선의 최전성기는 십자군 전쟁과 그 이후인 14세기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대형갤리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배는 길이가 35m가 넘고 양쪽에 각각 30개 이상의 노젓는 자리가 있었으며, 상단부에는 화포를 설치하였다. 속도가 아주 빨랐으며, 기동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지중해 해상권력을 장악하..

이탈리아(Italy) 201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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