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전체 글 3936

달성 현풍 석빙고(보물 673호), 조선시대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

달성군 현풍면 상리에 위치한 현풍 석빙고이다. 이 석빙고는 현풍현 관아에서 운영하던 것으로 현풍면 동쪽 비슬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현풍천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석빙고는 현풍 사직단이 옮겨져 있는 작는 구릉 아래쪽에 남북 방향으로 만들었는데, 출입구는 바람이 통하지 않는 언덕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길이 9m, 너비 5m, 높이 6m의 크지 않은 규모로 영조때인 173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석빙고들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빙고는 조선시대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로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 경주 석빙고, 청도 석빙고, 창녕석빙고, 안동 석빙고, 영산 석빙고가 있으며, 안동을 제외하고는 공교롭게도 서로 인접한 지역들이다. 서울에는 동빙고동.서빙고동이란 지명으로만 옛 석빙고의 흔적..

인제 합강정, 오대산 발원 내린천과 설악산 발원 인북천이 만나는 합강에 세워진 정자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 강변에 세워진 정자인 합강정이다. 이 정자는 조선 숙종 때인 1676년에 처음 세원진 것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정자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소실된 이후 세워졌던 콘크리이트로 만든 정자를 최근인 1998년에 전통 목조 건축물 누각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합강정이 위치한 언덕은 오대산과 방태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내린천과 설악산에서 발원하는 인북천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합강나루터인 홍진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설악산을 자동차를 타고 여행할 때 인제를 지나면 보였던 번지점프대와 함께 있던 정자로 많은 사람들의 눈에 익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합강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목조 누각으로 평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정자이..

조선 관아 2011.08.30

울주 언양읍성(사적 153호), 평지에 네모꼴로 쌓은 평지성

언양읍은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속한 읍소재지로 고려, 조선시대에는 울산에 설치된 울산도호부와 여러차례 분리되었다가 통합되기도 하였다. 대체로 100~200m의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있으며, 남북으로는 양산과 경주가 연결되는 교톨로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가지산을 넘어 밀양과 동쪽으로는 울산과 연결되는 교통상 주요 길목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삼국시대 이래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고을이다. 지금도 경부고속도로가 이 곳을 지나가고 있으며, 울산방향 분기점 또한 언양에 위치하고 있다. 선사 유적지인 울주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 언양읍에서 약 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언양읍성은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았던 전국의 읍성 중 하나로 처음에 흙으로 싸았던 것을 150..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길이 아름다운 남해안 전통마을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에 소재한 학동마을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학동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전주최씨 집성촌으로 마을 중심에 있는 고택인 '최영덕씨 고가'를 중심으로 규모가 큰 가옥과 작은 농가들이 고루 섞여있는 전통적인 시골마을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학동마을이 있는 학림리는 푸른 바다가 있는 해안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으로 남해안 다른 지역에 비해서 약간 넓은 농토가 있는 살기 좋은 마을이다. 인근에 학림리 지석묘가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사시대 이래로 주민들이 거주해 왔던 곳이기도 하다. 등록문화재로 선정된 고성학동마을 옛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과 황토를 결합하여 바른층으로 쌓은 것으로 정겨운 시골마을의 정취와 잘 어울려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고택_정원 2011.08.29

가족주말농장(8월3주), 올해 고추는 포기하다.

유난히 많은 비가 내린 한해였다. 6월부터 시작해서 지난 여름에는 밝은 햇살을 본 날짜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햇빛을 못봐서 그런지 대부분의 작물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많은 비에 잘 자라는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란 것 같다. 실제로 일할 수 있었던 시간도 별로 많지 않아서 그런지 도저히 자라는 잡초는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탄저병이 돌기 시작했을때부터 농약을 주기 시작했는데, 계속 내린비로 씻겨내려가 이제는 완전히 포기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고추는 시들했지만 줄기와 잎은 살아 있는 듯 했는데, 이번주에는 줄기와 잎까지 완전히 말라버리고 있는 것 같다. 토마토는 늦게나마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데 크기도 작을뿐더러 그 숫자 또한 작년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 같다. 봄에 비가 오지 않아서 잘 자리지..

기타 2011.08.28

고성 육영재, 학동마을에서 세운 재실

아름다운 담장으로 유명한 고성학동마을의 전주 최씨 집안에서 세운 재실인 고성 육영재이다. 원래는 초가 건물로 1723년에 세운 것을 184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재실은 본관, 사랑채, 곳간채와 솟을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작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재실로서는 부지가 넓고 건물 규모도 큰 편에 속하는 건축물이다. 재실은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집으로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숙식을 하고, 음식 장만을 하기 위한 공간이다. 조선시대 왕릉에서 국왕이 제사 준비를 하기 위해 숙식을 하던 산을제도가 권문세가를 비롯한 사대부 집안으로 확산하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주로 시제를 준비하거나 끝난 후 음복을 하거나 문중회의를 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고성 소을비포성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조선전기에 쌓은 남해안 성곽

고성군 하일면 동하리에 소재한 소을비포성이다. 이 곳에는 조선전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연 전국적으로 방어체제를 구축할 당시에 쌓은 성곽으로 왜구의 침입이 줄어들고 안정화되었던 시기은 성종대에서 선조대까지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남해안 해상교통로인 통영과 삼천포 사이의 해안에 위치한 이 성곽은 조선시대 군사적인 목적으로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인 소을비포진이 있었던 곳이다. 이 성은 만(灣)을 형성하고 있는 내해에서 해안으로 돌출한 구릉 정상부에 둘레 200m, 높이 3m 규모의 성으로 주민들이 거주했던 읍성과는 달리 군사들이 주둔했던 주둔지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군사적인 필요에 따라 설치된 행정구역인 진(鎭)은 북쪽 국경지대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해안가에 많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의 진은 절도사(종..

고성 학림리 최영덕씨 고가, 학동마을의 오래된 고택

아름다운 옛 담장으로 유명한 고성 학림리 학동마을에 있는 오래된 고택인 '고성 학림리 최영덕씨 고가'이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이 가옥은 전형적인 남부지방 부농의 가옥으로 구한말인 고종 6년(1869)에 지어진 한옥이다. 이 가옥이 있는 학동마을은 해안과 가까운 곳에 남해안에서는 넓은 농토가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에 학림리지석묘가 남아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 이래로 사람이 거주했던 살기 좋은 고장이다. 이 가옥은 약간 경사진 지형에 대문채, 사랑채, 익랑채, 안채가 나란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로 건물의 규모는 약간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구한말에 유행했던 건축양식인 난간이 있는 누마루가 사랑채 양쪽에 있고, 안채는 특이하게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다. 건축양식은 전통적인 남부지방 가..

고택_정원 2011.08.27

고성 상족암과 제전마을 공룡발자국 화석산지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해안가에 남아 있는 중생대 백악기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산지이다. 이 곳에 남아 있는 화석은 양적으로난 다양성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다양한 퇴적구조와 1억2천만년 전 생물의 생활흔적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공룡의 생활상, 자연환경, 퇴적한경 등을 알 수 있는 학술적으로도 귀중한 화석지라고 한다. 공룡발자국 화석은 공룡뼈 화석과는 달리 공룡이 살았던 시절의 생활모습이나 공룡의 행동을 연구해 볼 수 있는 귀중한 흔적이다. 이 발자국을 통해서 공룡이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를 계산할 수 있으며, 공룡이 걷거나 싸울떄의 발가락고 발바닥을 사용하는 하는 방법과 그 생김새를 알 수 있게 해 주고 있는 중요한 화석이다. 이 화석들은 공룡이 호숫가 진흙층에 남기 발자국이 마른 후 홍수..

달성 묘골마을, 사육신 박팽년 후손들이 모여사는 전통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소재한 순천박씨 세거지인 묘골마을이다. 이 마을은 사육신 중 한명으로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마을이다. 원래 이 마을은 박팽년의 2남인 박휘순의 처가이 있었던 곳으로 그의 부인이 친정인 이 곳에서 아들을 낳고 숨어살다가 성종대에 사면을 받고 외가의 재산을 물려 받아서 오늘날에 이르고 이르고 있다고 한다. 묘골마을은 상당히 부유한 마을로, 달성지역에서는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씨가 이 마을을 대표하는 인사라 할 수 있으며, 삼성그룹 창업자 부인인 박두을 여사가 이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묘골마을은 조선시대에 양반가문으로 크게 번성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사육신을 모신 사당인 육신사를 중심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고택_정원 2011.08.27

창원 진동리 선사유적지(사적 472호), 국내 최대 청동기시대 집단 묘역

진해현 관아가 있었던 창원 진동면 진동리 일대에서 최근에 발견된 국내 최대의 청동기시대 집단 묘역인 사적 472호로 지정된 진동리유적이다. 이 지역에서 토지정리사업 과정에 발견되었다고 하며 대형지석묘와 석관묘가 집단으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길이 500m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지석묘와 석관묘과 군집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출토유몰로는 마제석검, 돌화살촉, 무문토기편 등이 있으며 41기의 석관묘가 조사되었다고 한다. 진동리유적은 사적으로 지정되기는 하였지만, 택지 정비를 하던 상태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곳이 유적지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창원시에서 이곳을 공원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근 진동면 소재지에는 진해현 관아건물들이 남아 있으며, 창원에서 통영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달성 삼가헌, 낙빈서원 인근 박팽년 후손이 사는 고택

삼가헌은 사육중 한명이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세거지인 묘골마을과 낮은 산을 경계로 하여 자리잡은 주택으로 11대손인 삼가헌 박성수가 1769년에 사랑채를 짓고 자신의 호인 '삼가헌'을 현판으로 걸었다. 삼가헌은 원래 초가였으나 19세기초에 안채와 사랑채를 현재의 모습을 지었다고 한다. 별당인 하엽정은 원래 서당으로 사용했던 것을 누마루를 붙여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삼가헌은 2009년 화재로 안채가 불타버렸다고 하며, 현재의 안채 건물은 최근에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삼가헌이 있는 마을은 주민이 많이 살지 않는 곳으로 사육신을 모신 서원이 낙빈서원이 있는 곳으로 낙동강에 수백m 정도 떨어진 곳에 낙동강 경치를 즐기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달성 삼가헌은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이며, ..

고택_정원 2011.08.25

달성 도곡재, 사육신 박팽년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 고택

달성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쪽 칠곡군과 경계가 되는 하빈면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중 한분인 박팽년 후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사육신 후손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가문을 이루었다고 한다.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재력이 풍부했던 마을답게 사육신을 모신 사당인 육신사를 중심으로 대부분 큰 한옥으로 마을이 이루어져 있다. 달성 묘골마을은 양반들이 모여살았던 마을로 큰 한옥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오래된 한옥은 잘 보이지 않고, 사당인 육신사 근처에 있는 재실로 사용되었던 건물인 도곡재가 눈에 띄게 오래되어 보인다. 이 건물은 대사성을 지낸 박문현이 1778년(정조2)에 주택으로 건립하였던 것을 19세기에 도곡공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였다고..

고택_정원 2011.08.24

속초 조양동 선사유적(사적 376호), 청초호가 내려다 보이는 선사시대 주거 유적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10세기경 집터인 속초 조양동 선사유적지이다. 동해안 대표적인 석호인 청초호 서쪽편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 이 유적지에는 7채의 움집터와 고인돌 2기가 발굴되었다. 고인돌에서는 부채꼴 모양의 청동기가 출토되었으며, 집터에서는 토기조각 및 석기, 반달모양돌칼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농업과 청초호를 기반으로 고기잡이를 하면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집터는 대부분 사각형 모양의 움집으로 벽면에서 기둥구멍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인근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지나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는 해안이 가까운 평지에 자리잡고 있으나 이 주거 유적지는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속초시 조양동 주민센터 뒷편 주택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이 유적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청초호의 ..

달성 태고정 (보물 554호), 사육산 박팽년 종가에 있던 별당 건물

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 후손들이 모여사는 세거지인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 안쪽에는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가 있다. 사육신을 모신 사당은 원래 낙빈서원에 있었으나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서원강당만 일제강점기에 복원되었고, 사당은 70년대 전국적인 '충효위인유적화사업'으로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고 한다. 사육신을 모신 사당 동쪽편으로는 한옥건물 2동이 있는데, 하나는 보물 55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이라는 정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재실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물로 보인다. 달성 태고정은 조선 성종때인 1479년에 박팽년의 손자가 건립한 것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1614년(광해군 6)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일명 '일시루'라..

고택_정원 2011.08.23

[맛집] 속초 학사평 콩꽃마을 순두부촌, 미시령을 넘어서 첫번째 만나는 마을

설악산 관광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속초 학사평 순두부촌이다. 인제에서 험한 미시령길을 넘어와서 첫번째로 만나는 동네로 순두부가 맛있었던지 지금은 순두부촌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미시령에서 내려오는 국도변에 순두부를 파는 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많은 여행객들을 맞아주었던 대포항,아바이순대와 함께 속초와 설악산을 대표하는 먹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은 인제와 속초를 연결해주는 미시령터널이 생기고 서울에서 속초를 오가는 46번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고, 서울.춘천고속도로가 개통되어서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면 속초에 도착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오전에 출발하더라도 저녁은 되어야 속초에 도착할 수 있었던 먼 여행길이었다. 실제로 맛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워낙 먼 여행길을 달려와..

맛집 2011.08.22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지(사적 426호), 동해안 신석기시대 유적지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지는 지금까지 러시아 아무르강과 동북3성,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서 형성된 동북아시아 신석기 유적 중 최남단에 위치한 유적이라고 한다.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으로 알려져 있는 양양 오산리 유적이 형성된 시기인 B.C.60,00~3,000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초기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사람이 정착했던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암리 유적이 있는 고성 죽왕면 일대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석호인 영랑호와 송지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해안에서는 농토가 넓은 지역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어로와 농경생활을 같이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적지는 해안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작은 항구인 백도항이 있고, 내륙쪽으로는 백두대간 아래로 넓은 농지가 펼..

대구 달성 하엽정, 연꽃으로 가득찬 전통 정원을 잘 보여주는 삼가헌 별당

삼가헌은 사육신 중 한명으로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달성 묘골마을 인근에 있는 저택이다. 이 곳은 원래 박팽년을 비롯하여 사육신을 모셨던 낙빈서원이 인근에 있으며, 낙동강이 근처에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박팽년의 11대손인 삼가헌 박성수가 1769년(영조45)에 사랑채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삼가헌이라고 불렀다. 하엽정은 이 가옥의 별당으로 삼가헌을 지은 이듬해에 별당을 세우고 주변과 연못에 국화와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원래는 파산서당이라는 작은 서당 건물로 지었던 것을 구한말인 고종때 별당건물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하엽정은 건물의 크기나 마당은 그리 넓지는 않으나 연못과 수목들을 잘 배치하여 절제된 듯 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는 조..

조선 관아 2011.08.22

고성 송학동고분군 (사적 119호), 가야연맹체 소가야의 고분

고성읍 중심가에 있는 작은 구릉인 무기산 일대에 있는 송학동 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은 고성일대에 존재했던 소가야의 고분군으로 현재는 약 7기의 고분이 남아 있으며, 북쪽으로는 기원리 무덤들이 있고, 동쪽으로는 송학동 조개더미가 남아 있어 이 곳이 소야가국이 있었던 자리임을 말해주고 있다. 소가야는 중국 문헌 위서 동이전에 변한 12국 중 하나였던 고자미동국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삼한시대 무역중개항 역할을 했던 사천 늑도 등과 함께 한반도 연안을 따라서 형성되어 있던 한.중.일 해상교역로에서 중요 거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상무역에 있어서 가야연맹체의 주도국가였던 금관가야와 경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가야는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6세기 중엽 이전에 신라에 합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성..

대구 달성 하목정(霞鶩亭), 낙동강변에 세워진 오래된 정자

경북 성주에서 달성으로 들어가는 국도 30호 도로가 낙동강을 건너는 성주대교 인근에 위치한 오래된 정자인 달성 하목정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었던 낙포 이종문이 1604년에 세운 건물로 저택의 사랑채로 사용할 목적으로 세운 정자이다. 달성과 하빈의 경계가 되는 낙동강변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이 정자는 이 곳에 낙동강을 건너서 성주로 연결하는 나룻터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인조가 반정이전에 일반인의 신분으로 여행을 하면서 이곳에 묵었던 적이 있어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정자 건무로 앞면 3칸은 대청마루로, 옆면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온돌방이 있는 곳은 측면이 4칸으로 되어 있어 '丁'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인조가 이 ..

조선 관아 2011.08.1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