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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반구대 암각화 인근 대곡천변에 있는 선사시대 암각화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대곡천변에 있는 국보 147호로 지정된 천전리 각석은 인근에 있는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와 함께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암각화라고도 부르는 바위그림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을 커다란 바위 등에 그린 그림으로 전세계적으로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이다. 보통 암각화는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주로 발견된다. 울주 천전리 각석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유적으로 바위에 각종 동문문양과 동심원을 비롯한 기학학적인 문양이 상부에 새겨져 있고, 하부에는 돛을 단 배, 말, 용 등의 그림과 글씨들이 가는 선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상부에 그려진 암각화는 인근의 반국대 암각화, 고령 알터마을의 암..

진해현 관아 및 객사유지, 창원 진동면 소재지에 남아 있는 관아 건물

진해현은 마산시 합포구 진동면.진북면.진전면 일대에 있었던 조선시대 지방 행정 단위이다. 진해라는 명칭은 지금은 대부분 해군 군항이 있는 옛 진해시로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까지는 마산시 서쪽편 고성, 진주 사이에 있는 지역의 고을 이름이다. 진해현은 고려시대에 처음 현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계속 유지되어 왔다. 진해시는 옛 웅천현에 속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농토가 넓은 편이며, 남해안 연안 해로에서도 중요한 지역이었기때문에 고대 이래로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진해현 관아가 있던 진동면 소재지에는 청동기시대 최대의 집단 묘역인 진동리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다. 또한 진해현 관아에서 관리했던 조선시대 호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진해현 관아 건물은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건물로 지금은 ..

조선 관아 2011.08.19

가족주말농장(8월2주), 계속된 비로 엉망이 되어 버린 밭

올해는 유달리 비가 많이 왔던 한해라고 할 수 있다. 봄부터 의욕적으로 고추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작물들을 심었었는데, 제대로 자라는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고추는 오랜비로 탄저병이 돌아서 이제는 남아 있는 열매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나름 농약을 뿌려주기는 했는데,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피망도 여름까지는 열매들이 많이 열렸었는데 지금은 탄저병때문에 말라서 죽어버렸다. 그나마 토마토는 처음에는 병이 생긴것 같더니 지금은 그나마 조금씩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고 있다. 주말에 나와서 건강도 챙기고 맑은 공기도 쐴수 있어서 시작하기는 했지만,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처음 시각했을때에는 병도 별로 안걸리고 쉽게 수확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작년과 올해에는 너무 많은 비로 심었..

기타 2011.08.17

달성 현풍현 사직단, 사직에 제사를 올리던 공간

사직단은 사직에 제사를 드리는 공간으로 사단과 직단의 두단이 있는데, 토지의 신을 모시는 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을 모시는 직단은 서쪽에 둔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으며, 신라 선덕왕 4년(783)에 사직단을 세웠고, 조선시대에는 태조 4년(1395)에 사직단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한양의 사직단은 경복궁 서쪽편에 세워졌으며, 북경에는 자금성 서쪽편 지금의 중산공원에 세워져 있다. 사직단은 전국의 주.부.군.현에 설치되었는데, 도심에 자리하고 있었고 왕조가 멸망해서 그런지 일제강점기에 전국에 있는 사직단은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는 남원과 산청 단성의 사직단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풍 사직단은 1450년에 현풍 현감이 고을 백성들과 함께 토신과 곡신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만든 제..

궁궐_종묘 2011.08.17

고성 학림리지석묘(鶴林里支石墓), 남해안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지석묘

담장이 아름다운 마을로 유명한 고성 학동마을 인근 학림리 마을 앞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인 학림리 지석묘이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으로 중국의 요동반도, 한반도, 일본의 규슈, 인도네시아, 인도, 러시아에서 발견된며 그 중 절반이상인 4만여기가 한반도에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강화 고인돌로 대표되는 북방식인 탁자형 고인돌과 고창 고인돌로 대표되는 남방식인 탁자형이 있다. 주로 해안가나 큰 강 주변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남해안 고성반도에는 학림리, 오방리, 석지리 등 해안가에서 지석묘가 발견되고 있으며, 이 곳 학림리 마을 앞 들판에는 8기 정도의 지석묘가 남아 있다고 한다. 해안가에 가까운 이 곳에 지석묘가 있다는 것은 청동기시대에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세력이 이 곳에 정착하고 있..

성주 성산관, 성주목 관아 동헌

경북 성주군은 삼국시대 가야연맹체 중 하나인 성산가야국이 있었던 신라시대에는 벽진군 또는 본피현이 설치되었다가 후삼국시대 지방 호족인 이충언이 태조왕건을 도운 공으로 경산부가 설치되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성주목이 설치되었으며, 경상감영인 대구와 가까이 있었던 까닭에 성산현으로 강등되었던 시기도 많았다. 조선시대 큰 행정단위인 목이 설치되었지만 고을의 규모가 크지 않고 대구의 감영과 가까이 있었기때문에 실질적으로 작은 고을 인 현이 설치된 곳으로 볼 수 있다. 성주 성산관은 고을 수령이 근무하던 동헌이다. 조선시대 큰 고을의 수령인 목사가 근무했던 곳이라고는 하는 다른 지역의 목사가 근무했던 동헌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은편이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조선 관아 2011.08.16

[맛집] 언양읍 언양불고기 거리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역 특색 음식 중 하나인 울산 언양읍의 향토음식인 언양불고기이다. 쇠고기를 얇게 썬 후 양념하여 석쇠에서 구워서 요리한 것으로 음식의 모양새로는 담양 떡갈비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는 음식이다. 언양불고기는 담양 떡갈비와 함께 쇠고기를 구운 요리 중에서는 석쇠에 구운 음식으로 햄버거스테이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는 음식이다. 이 음식의 유래에서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은 없는 것 같고 이 음식이 유명해진 것은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모여들었던 근로자들이 즐겨 먹으면서 유명졌다고 한다. 실제 음식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 시절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양이라는 고장이 경부고속도로에서 울산으로 진입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고, 공업단지인 울산을 왕래하던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어..

맛집 2011.08.15

경남 고성 수림서원, 고려 개국공신 배현경을 비롯한 달성배씨 조상들을 모신 서원

경남 고성군에서 함안이씨의 위계서원, 허씨의 도연서원, 달성배씨의 수림서원이 모여 있는 마암면의 서원 중 고려 개국공신인 배현경을 비롯하여 달성배씨 조상들을 모시고 있는 수림서원이다. 이 서원은 구한말인 철종7년(1856)에서 새워진 서원으로 배향기능을 위주로 한 문중재실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서원이다. 서원은 원래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사람의 업적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는 목적으로 그 학풍을 따르는 제자나 지역 유림들이 뜻을 설립되었는데, 조선후기 들어서면서 학문을 계승한다는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문중인사들이 모이는 장소로서 서원이 남설되었으며 그 폐해가 크서 영조대 이후에는 많은 규제가 있었고, 구한말에는 대원군이 전국 대부분의 서원을 철폐하였다. 이곳 수..

고성 내산리고분군(사적 120호), 남해안 당항포에 자리 잡은 해상세력 소가야 유적지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에 있는 사적 120호로 지정된 내산리고분군이다. 내산리 고분군이 있는 이 지역은 진주, 사천, 고성반도의 남해안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소가야가 있었던 지역이다. 소가야는 고대 동아시아 주요 해상교통로였던 남해안 일대 요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교역으로 발전하였으며, 가야가 멸망하기 직전인 6세기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해지역의 금관가야을 중심으로 한 가야연맹체의 일원이었으나 금관가야와는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다투는 대립적인 관계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후기에는 해상무역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시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유적지로는 무역항이었던 사천 늑도 유적지가 있으며 고성읍에 소재한 송학동 고분군과 동해면에 소재한 내산리고분군이 소가야를 대표..

경남 고성 위계서원, 이인형을 비롯한 함안이씨 조상들을 모신 서원

경남 고성군 마암면에는 함안이씨의 위계서원, 허씨의 도연서원, 달성배씨의 수림서원이 가까운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세곳의 서원은 모두 지역 유림들이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 아니라 문중에서 뛰어난 분을 모신 후대 양성이 아닌 배향을 목적으로 세운 서원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구한말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대원군의 서원철페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복원된 서원이다. 임진왜란 유적지인 당황포와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마암면은 농지가 그리 넓다고 볼 수는 없지만 유력문중에서 세거지로 정할 정도로 경제력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마암면 석마리에 함안이씨 선조들을 모신 위계서원이 마을 뒷편 조용한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구한말인 1844년에 세워진 이 서원은 연산군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대사..

양산 신기리 고분군 (사적94호), 신라 지방귀족의 무덤

사적 94호로 지정된 양산 신기리 고분군은 북정리 고분군과 얕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는 신라의 고분군이다. 북정리 고분군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고, 출토 유물에 있어서 큰 차이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정동 고분군과 구분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신기리 고분군으로 지정된 고분은 약 10여기가 못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쪽에 있는 고분이 다른 고분에 비해서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다고하며 무덤형식이 변모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 고분군에서는 통모양의 토기와 독모양의 토기로 만든 합구식옹관이 발굴된 것이 특이하다고 한다. 무덤의 형태는 구덩이식돌방무덤과 앞트기식돌방무덤이 같이 발굴되고 있으며, 구덩이식 돌방무덤에서는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

가족주말농장(8월1주), 오랜 비로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유난히 많은 비가 내린 올해에는 거의 대부분 작물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 같다. 올해에는 나름 많이 심었던 고추에 탄저병이 돌아서 매달렸던 고추열매 대부분이 병이 들었다. 작년에는 약간 일찍 심어서 한번은 수확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이마저도 수확할 수 없었다. 작년의 경험으로 나름 농약을 열심히 뿌려 주었는데, 너무 자주 왔던 비로 어찌할 수가 없는 것 같다. 토마토와 오이는 꽃이 제대로 피지 못해서 그런지 열매도 잘 매달리지 못하다가 요즘들어서 토마토만 약간씩 열매가 매달리기 시작한다. 한번 심어두면 끊임없이 줄기를 뻗어 나가던 호박조차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나마 참외는 열매가 제법 열렸고, 고구마는 줄기를 뻗어나가고 있는데 이 또한 제대로 자랄지는 미지수이다. 올해에는 잡초..

기타 2011.08.13

대구 달성 도동서원강당사당부장원(보물 350호), 담장이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강당과 사당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소재한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굉필 선생을 모신 도동서원이다. 낙동강 동안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서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서원 중 하나로 건축물로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어서 강당과 사당, 강당을 둘러싼 담장이 보물 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서원은 선조 원년(1568)에 쌍계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어졌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것을 중건한 것으로 선조 40년(1607)에 선조가 직접 도동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린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제외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도동서원은 문루인 수월루, 한주문, 강당인 중정당, 사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과 서원 관리인 숙소인 ..

양산 북정리 고분군(사적 93호), 5~6세기 신라의 고분

양산 북정리 고분군은 양산 도심에서 동북쪽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길 옆 성황산에서 뻗어내린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5~6세기 신라의 고분이다. 능선 위쪽에는 대형 고분이, 아래쪽에는 소형고분이 20여기 분포되어 있다. 이 고분군은 이른 시기인 1920년대에 일본인에 의해 부부총에 처음 발굴조사되었다. 1990년대에 동아대 박물관에 의해 재조사되었다고 한다. 부부총에서 출토된 금동관 등 다수의 유물들은 현재 일본 도쿄박물관에 전시되있으며, 동아대에 발굴한 금조총에서도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김해지역과 가까운 이 고분은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던 시기의 지역 유력자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정리 고분군이 있는 지역은 양산시가 도시화되어 가면서 주택가로 변하고 있는 지역으로 보이며, 실제로는 현재 ..

대구 달성 이양서원, 청백리 곽인방을 모신 서원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 소재한 이양서원이다. 대구 인근 낙동강변 경치가 아름다운 현풍면에 있는 김굉필을 모신 도동서원을 찾아 가는 길에 있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서원이다. 조선 세조때 청백리인 곽안방을 모시는 서원으로 조선 숙종때 사당인 청백사에서 출발하여 서원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을 해방 이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지역유림들이 명망이 높은 학자를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일반적인 서원과는 달리 문중에서 조상을 모시기 위해 설립한 조선후기에 건립된 서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양서원은 지금은 숲으로 가려져 있지만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서원으로 마을과는 약간 떨어져 있다. 서원의 건물배치는 동쪽에 사당인 청백사를 두고, 서쪽에 강당..

대구 달성 육신사, 박팽년 후손들이 사육신을 모시는 사당.

대구광역사 달성군 하빈면 묘리는 낙동강 동안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사육신 중 한명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이라는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 후손은 단종복위를 꽤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가문으로 사육신이 복권되면서 조선후기에는 관직에도 많이 진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잡은 달성군 하빈면에서도 양반들이 모여살았던 마을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묘골마을 안쪽에 위치한 육신사는 세조 때 사육신인 여섯분을 모시는 사당으로 원래는 인근에 있던 낙빈서원내 있던 하빈사에서 모셨는데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0년대 전국적으로 실시된 '충효위인 유적화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원래 하빈사에는 박팽년만을 모셨으나 ..

김해 양동리 고분군(사적 454호), 5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된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에 이르는 고분군

김해시 주촌면에 위치한 양동리 고분군은 가야 고분군 중에서도 가장 많은 5천여점의 유물의 발굴된 유적지이다. 기원전 2세기 삼한시대부터 원삼국, 삼국시대에 이르는 기원후 5세기까지의 무덤 500여기가 산재해 있는 곳으로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양동리 가곡부락 뒷산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고, 그 면적은 3만여평 정도이다. 현재 양동리 고분군은 유적 발굴이후 봉분들을 복원해 놓고 있지 않아서 유적지가 아니라 동네 뒷산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양동리 고분군에서는 한식청동거울과 폭이 넓은 투겁창 등 중국 및 일본계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이 고분의 주인들은 지역의 유력집단으로 중국, 일본과의 해상교역으로 부를 축적한 집단으로 여겨진다. 또한 대형 목곽묘와 외래계유물, 수정..

대구 달성 낙빈서원, 박팽년 후손들이 사육신을 모신 서원

낙빈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소재하고 있는 서원이다. 이 곳은 사육신 중 한명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정착한 달성군 묘골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낙동강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본래 이곳에는 박팽년을 모신 사당이 하빈사가 있었으며, 현손인 박계창이 사육신이 나타난 꿈을 꾼 후 사육신 여섯분을 함께 제향했으며, 인근에 강당을 건립하여 낙빈서원을 세웠고 1694년에는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낙빈서원은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것을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강당만 복원하였다고 하며, 사당인 육신사가 1970년대에 후손들이 집성촌인 묘골에 건립됨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낙빈서원은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에서 출발한 초기의 서원들과는 달리 문중에서 ..

성주향교 대성전과 명륜당(보물 1575호), 동묘서학의 특이한 공간 배치

대구광역시와 낙동강을 경계로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경북 성주군은 가야연맹체 중 하나인 성산가야가 있었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이다. 고려초 지방호족인 이총언이 태조왕건을 도운 공으로 경산부로 승격되기도 했으며, 조선초 태종대 전국적인 군현제 개편때에는 성주목이었으나, 인근 대구에 경상감영이 있었던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작은 규모의 고을인 성산현으로 존속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성산현 관아 소재지는 성산가야 고분군이 인근에 있는 성주읍 경산리로 옛 관아 건물로 동헌인 성산관과 관아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성주향교가 남아 있다. 옛 성산현 관아가 있던 성주군 경산리는 읍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읍성 북쪽 낮은 구릉에는 이지역 중등교육기관이 성주향교가 있다. 성주향교는 조선 태조 7년에 세워진 향..

성주 성산동 고분군(사적 86호), 가야연맹체 성산가야 유적

성산가야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가야연맹체 국가 중 하나로 한반도 동남부 변한 12국 중에 하나에서 발전하였다고 한다. 벽진가야라고도 하며, 성주읍과 인근의 벽진면 일대를 영토로한 고대국가였다. 낙동강 서안의 현 성주읍 주변 지역으로 농업생산성 양호하며, 낙동강 수로를 이용할 수 있어서 고대국가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쪽편에 있었던 가야연맹체의 중심국가 중 하나였던 고령의 대가야와는 출토된 유물에서 다른 특징을 나타나며 오히려 신라의의 유물과 유사점이 많아서 신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지역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성주읍 중심부를 휘감으면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 남쪽편인 성주읍 성산동 산자락에 소재한 성주 성산동 고분군은 고대 국가로 가야연맹체 중 하나인 성산가야가 남겨 놓은 유적이다. 성산동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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