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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건축(불전_요사) 184

안동 천등산 봉정사 - 일주문, 들어가는 길

안동 서후면 천등산에 자리잡고 있는 봉정사는 안동 시내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상당히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과 대웅전이 남아 있다. 봉정사를 들어가는 길은 물이 흐르는 계곡길을 걸어서 올라가는 일반적인 산중 사찰과는 달리 부석사나 수덕사처럼 언덕길을 따라서 올라가는 숲속길을 조금 걸어올라가면 사찰의 입구인 만세루을 만날 수 있다. 어떤 특징적인 아름다운면을 표현할 수 있지는 않지만 봉정사를 올라가는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호젓한 산길을 걸어올라 간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안동 천등사 봉정사가 시작되는 일주문. 봉정사 주차장에서 봉정사까지의 길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봉정사 오르는 길 옆으로 계곡물은 흐르지 않지만 적당한 경사의 숲속..

[부안 능가산 내소사] 조사당, 삼성각, 무설당

내소사 전각의 배치와 전체적인 형태를 보면 원래 전각들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대웅보전과 설선당, 봉래루를 제외하고는 유서깊은 건물은 많지는 않다. 그래고 지금도 많은 전각들이 신축되고 있는데, 조사당을 비롯하여 대웅보전 서쪽편에 있는 건물들이 먼저 복원되고 서쪽편의 전각들은 최근에 복원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소사에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 반드시 있는 명부전이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내소사에는 대웅보전과 설선당을 제외하면 전각이 많지 않았으나, 조금씩 새로운 전각을 만들어서 규모가를 키우고 있다. 내소사의 건물배치로 보아서는 원래 전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조선후기 이후에 많은 건물들이 없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대웅보전 우측편에 조사당을 비롯하여 여러 전각들이 있다. 대웅..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大雄寶殿), 화려한 꽃무늬 문살로 장식한 불전

내소사의 중심불전인 대웅보전입니다. 내소사 대웅보전에는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내소사는 원래 규모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부터 있는 불전으로는 대웅전이 거의 유일한 것 같고 스님들이 거처하던 설선당과 지금은 조사당으로 쓰이는 삼성각, 그리고 경내를 출입하는 봉래루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웅보전은 조선중기에 세워진 목조건물로 규모는 아주 크지 않지만 꽃무늬 문살 등 화려한 장식이 많이 들어가 있는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내소사의 중심불전인 대웅보전입니다. 보물로 지정된 목조건물로 조선중기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문살과 처마가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뒷산의 봉우리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쪽편 아래쪽에서 ..

[부안 능가산 내소사] 봉래루(蓬萊樓), 범종각, 보종각

내소사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내소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눈앞에 커다란 고목이 우뚝 서 있고 뒤로는 내소사의 전각들과 뒷편의 능가산의 풍경이 적절하게 배경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커다란 고목을 지나면 내소사의 실질적인 경내인 대웅전 앞 마당을 들어가는 통로인 봉래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봉래루는 오래된 건물같지는 않은데 채색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봉래루 기둥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적어서 걸어둔 쪽지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내소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가운데에 아주 오래된 고목이 우뚝 서있고 양편으로는 두개의 범종각이 있으며 뒤로는 능가산 봉우리가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소사의 오래된 고목입니다. 겨울이라서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내..

[부안 능가산 내소사(來蘇寺)] 천왕문, 입구의 벚나무 길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500여m 정도 걸어오면 숲길이 끝나면서 확 트인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숲길 끝에 놓여진 다리를 건너면 앞으로는 아름다운 벚나무 길이 조성되어 있고 끝에는 사철의 실질적인 출입구인 사천왕문이 보보인며, 사천왕문 너머로 아름다운 능가산의 절경이 보이고 그 아래로 아늑하게 내소사가 자리잡고 있다. 입구 서쪽편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너머로 내소사와 관련된 부도전이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라보는 내소사의 전경이 꽤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넓직한 벚나무길이 약 50m 가량 있고 그 앞에는 실질적인 출입문인 천왕문이 있다. 들어오는 전나무 숲길도 좋았지만 이 길도 꽤나 정겨운 길로, 봄에 벚꽃이 활짝피면 무척이나 아름다울 것..

[부안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 전나무숲 길

부안 능가산 내소사가 시작하는 일주문과 전나무숲 길입니다. 내소사 일주문 앞에는 커다란 고목나무 하나가 서 있고 전형적인 한국의 관광지의 모습을 한 상가가 있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앞으로 울창한 전나무숲 길이 방문객을 맞이해 주고 있습니다. 전나무들은 수령이 한 130년 정도되었다고 합니다. 호젓한 산책길로서 손색이 없는 이 전나무길을 걸으면서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부안 내소사가 자랑하는 전나무숲 길입니다. 평규 수령은 130년 정도라고 하며 입구인 일주문에서 500m정도로 전나무 숲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능가산 내소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내소산 일주문입니다. 문화재로 의미있는 문은 아니고 최근에 관광지마다 있는 평이한 일주문입니다. 우리나라 관광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조계사 대웅전, 우리나라 불교의 중심인 조계사 중심 불전

조계사는 한국 불교를 이끌어 가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이 자리한 곳으로 서울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원래 한양도성안에는 원각사 외에는 사찰이 없었으나 일제강점기 만해 한용운 선생을 중심으로 불교 개혁운동의 중심지로서 이 곳에 조계사를 건립하였다. 그래서 조계사에는 불전이 많지 않지만 도심 포교의 중심으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조계사 대웅전은 원래 정읍에 지어진 보천사 십이전을 옮겨온 것으로 1920년대 지어진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사찰 건축양식을 적용해서 대형화한 불전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계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대웅전 앞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우뚝 서 있고, 그 옆으로는 조계사를 찾은 많은 신도들을 위해서 천막을 쳐 놓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웅전 문살과 다포계 공포..

가야산 해인사 장경판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

해인사 장경판전은 사찰경내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전각으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다. 해인사를 살펴보면 중심불전을 제외하고는 별로 내세울만한 전각이나 석탑 등의 문화재는 별로 없는 편이고, 요사채와 부속암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해인사를 법보사찰이라 불리며 우리나라 3대 사찰에 포함되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판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경판전은 해인사에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경내 많은 건물들이 화재로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 장경판전은 오늘날까지 전란이나 화재의 피해를 입지 않고 팔만대장경을 지켜왔다. 이 장경판전은 15칸 건물 두동을 나란히 배치하고 있는데, 장식이나 모양새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대장경을 온전히 보전하고자하는 기능적인 면만 ..

가야산 해인사, 불전들(대비로전, 웅진전, 명부전, 독성각, 국사단, 학사대 전나무)

해인사는 신라시대부터 존재해 온 아주 오래된 사찰이지만,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 판전을 제외하고는 유서깊은 사찰전각이 별로 없는 편이다. 현재 중심불전인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비로전, 웅진전, 명부전이 있다. 토속신앙과 관련된 전각으로 사찰입구에 국사단이 있는데 이는 보통 사찰의 산신각에 해당하는 전각이고 뒷쪽에는 또다른 민간신앙의 대상인 독성각이 있다. 대부분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 불전이다. 해인사 국사단. 국사단은 국사대신을 모신 단으로서 국사대신은 도량이 위치한 산국을 관장하는 산신과 토지가람신을 가리킨다. 가람을 수호하는 신을 모셨기 때문에 도량입구에 배치되어 있다. 해인사 웅진전. 오래된 전각으로 보이지는 않고, 해인사에 상주하는 스님들이 많고, 수행을 중시한다는 의미로 웅진..

가야산 해인사, 중심불전인 대적광전

법보사찰인 가야산 해인사 중심불전인 대적광전이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 중심불전인 일반 사찰과는 달리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적광전이라 부른다. 건물은 수차례의 화재로 인한 소실과 중수를 거듭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 순조때 새로 지은은 것을 1971년대 대폭 수리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을 토대로 과거 건물을 모습을 추론해 보면 구례 화엄사 각황전과 비슷한 통일 신라시대 금당의 모습을 했을 것으로 보이며, 그 규모 또한 후대의 대웅전 건물에 비해 규모가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의 건물도 그 크기가 상당히 큰 편이고, 조선시대 이후 우리나라 건물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치미를 사용하고 있다. 해인사 중심불전인 대적광전은 앞면 5칸, 옆면 4칸의 상당히 ..

[가야산 해인사] 스님들 수행공간인 요사채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사찰로 대장경과 장경판전을 제외하고는 문화재는 많지 않은 편으로 각 불전이나 요사채들의 내력또한 깊지 않은 편이다. 해인사에는 원래 이 불경들을 지키기 위해 많은 스님들이 기거했던 것으로 보이며 또한 해인사가 깊은 산중에 있었던 까닭에 이 곳을 방문하는 신도들 또한 이 곳에서 묵고 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해인사에는 많은 요사채들이 있으며, 대부분 건물 규모도 크고, 건물을 지은지 오래되 보이지는 않았다. 해인사 첫번째 출입문인 봉황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보이는 요사채인 우화당. 두번째 출입문인 해탈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있는 건물인 사운당. 1984년도에 를 중수된 건물로 그 내력을 잘 알려지지 않는다. 종무소와 요사채를 겸해서..

[가야산 해인사] 누각 강당인 구광루와 보경당

구광루는 가야산 해인사 경내에서 강당 역할을 하는 누각을 근래들어서 아주 크게 지은 건물로 현 해인사 중수 결과 중 보경당과 함께 혹평을 많이 받는 부분이다. 누각은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설법을 듣거나 잠시 앉아서 쉬는 곳으로 누각에서 사찰의 풍경을 조용히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의 해인사 구광루는 전혀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보물을 보관하는 보관장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건물의 규모도 사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서 너무 크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충남 예산 수덕사의 황화정루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는 건물이다. 해인사 누각.강당인 구광루. 구광루 앞으로는 대웅전 앞 경내처럼 별도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보통 사찰의 대웅전이 있는 경내 마당으로 들어가는 출입통로는 강당누각 아래..

[가야산 해인사] 봉황문, 해탈문

가야산 해인사는 우리나라 3대사찰답게 2단계의 출입문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출입문을 지키는 의미로 천왕문격인 봉황문을 지나문 국사단을 지어놓고 있다. 해인사 첫번째 출입문은 봉황문으로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는 천왕문격이며, 그 안에는 조각으로 만든 사천왕상이 아닌 탱화로 사천왕상을 그려놓고 있다. 봉황문을 지나면 계단을 올라 두번재 출입문이 해탈문을 지나서 첫번째 경내 마당에 들어서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 첫번째 출입문인 봉황문. 봉황문 편액 봉황문에는 사천왕상을 그린 탱화가 그려져 있다. 해탈문에서 내려다 본 봉황문 봉황문을 지나서 계단을 걸어 두번째 출입문이 해탈문에 들어선다. 해탈문 편액들 해탈문에서 내려다 본 모습 해인사 경내에서 본 해탈문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들어가는 길

해인사는 법보사찰로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들을 보관하고 있는 사찰로 가야산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전란에 피해가 적을 것으로 보이는 곳이 이 곳 해인사라고 많은 생각되어 이 곳이 법보사찰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해인사는 다른 사찰에 비해서 입구에서 많이 떨어져 있고, 들어가는 길은 수목이 우거진 숲길로 산사라는 의미가 깊게 다가오는 사찰이기도 하다.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에는 산길도 있고 맑은 계곡물도 흐르는 자연이 살아 숨시는 길로 숲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해인사 들어가는 입구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가야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고 이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해인사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해인사는 남쪽지방이지만 깊은 산중이라서 2월말인데도 눈이 녹지 않고 있다. ..

강진 백련사, 불전들(명부전, 웅진당, 요사채)

백련사에는 중심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웅진당, 같은 불전들이 있는데 내력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웅진당은 부처님 제자들을 모신 나한전의 다른 이름인데, 나한전이 있는 사찰의 경우는 방문하는 신도보다는 사찰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을 중시한다는 뜻인데, 불전이 약간 낡고 오래된 것으로 봐서는 백련사는 고려말 결사운동의 중심사찰답게 스님들을 중시하는 것 같다. 백련사 명부전. 대웅전 동쪽편에 있다. 웅진당이 있는 언덕. 나한전이나, 웅진전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웅진당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웅진당 옆에 있는 아직 편액이 걸려있지 않는 불전 대웅전 동쪽편 작은 불전. 편액이 걸려있지 않다. 백련사 경내 동쪽편 요사채 서쪽편 요사채

강진 백련사, 주불전인 대웅전

백련사의 중심 불전은 대웅전을 신라시대 창건된 이후 여러 차레의 전란으로 수차에 걸쳐서 중수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효종때 중수된 건축물이라 한다. 그래서 조선후기에 건축된 여러 대웅전 건물과 거의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앞면3칸, 옆면3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공포는 다포계이다. 백련사 중심불전인 대웅보전. 팔작지붕, 다표계, 단층 등 전형적인 조선후기 건축물의 형식을 하고 있다. 대웅전 문살에는 장식을 많이 하지는 않고 있다. 대웅전 편액 전형적인 조선 시대 건축양식인 다포계 공포. 화려한 단청과 함께 하고 있다. 측면에서 본 대웅전.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이 대웅전은 신라시대(新羅時代)에 창건했다고 전하며, 고려(高麗) 때에는 팔국사(八國師)의 도량(道場)이었다고 하..

[강진 백련사] 강당누각인 만경루, 강진만 바다 풍경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흥준씨가 책에서 언급한 바다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는 백련사에서 보는 강진만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백련사 출입문이라고 할 수 있는 강당 누각인 만경루이다. 만경루는 지은 얼마되지 않은 건물로 현재 백련사의 사찰규모에 비해서는 크게 지어진 건물로 축대를 쌓고 바다를 내려보는 약간 위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백련사 자체도 산속에 겸손하게 은거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 산 아래를 호령하는 듯한 형세를 취하고 있는 사찰인데, 책에서도 언급했든시 이 절의 기원이 고려 무신정권 실세였기 때문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 백련사는 강진만을 내려다 보면 가슴이 뚫리면서 없는 기개도 생길 것 같은 곳이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길이 끝나면 웅장한 축대위에 쌓은 백련사를 볼 수 있다. 백련사 누..

강진 무위사, 불전들(명부전, 나한전, 천불전, 산신각)

무위사는 규모가 크지 않은 사찰로 중심불전인 극락전을 제외하고는 오래된 불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월출산 산신을 모신 산신각만이 약간 내력이 있어 보이는 불전이었다. 대부분 최근에 신축한 불전으로 여겨지며, 무위사 사찰 규모에 비해서 잘 어울리게 배치되었다고 볼 수는 없는 듯 하다. 월출산이 워낙 빼어난 산인 까닭에 산신각은 나름 내력이 있어 보였다. 현재 가장 인기가 좋은 명부전이 극락전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무위사 뒷편 경치좋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천불전. 도갑사에도 천불전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 지역에서 천불전을 찾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보이는 나한전 나름 내력이 있어 보이는 월출산 산신을 모신 산신각

[강진 월출산 무위사]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무위사는 월출산 자락에 있는 작은 사찰이라서 극락전 외에는 오래된 불전은 없어 보이고, 최근에 지은 몇동의 불전이 있다. 이 사찰은 불전의 크기에 비해서 스님들이 기거하고 수행하는 요사채 건물은 사찰 규모에 비해서 건물도 크고 많아 보였다. 아마도 이 곳 무위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것 같다. 반면에 누각이나 강당같은 건물은 없고, 오래된 고목 몇 그루가 경내에 우뚝 서 있고, 불전 뒷편으로는 동백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무위사 동쪽편에 있는 요사채. 원래부터 있었던 요사채로 보이며 문앞에 지금은 늙은 개가 엎드려 있었던 곳이다. 무위사 경내 서쪽편에는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전시관이 있다. 천왕문 동쪽편 요사채 무위사 천왕문 서쪽편 요사채, 범종각과 함께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보인다. 무위사에는 꽤 ..

강진 무위사 극락전(국보), 직선적인 단아함이 뛰어난 조선초기 건축물

강진 무위사는 월출산 남쪽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크지 않은 사찰로 남해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으로 남해보살로도 불리는 관음보살을 위해 원효대사가 지은 사찰로 알려져 있다. 무위사는 국보로 지정된 조선초기 건축물인 극락전을 잘 알려져 있는 사찰로 극락전 건물을 보면 무위사가 추구했던 단아함, 간결함, 절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무위사 극락전. 조선 세종때 지은 건물로 앞면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조선초기 건축물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직선적이고 간결하게 만들어졌다. 측면에서 본 무위사 극락전. 사람 인(人)자 모양이 지붕을 하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과 비슷한 모양새이지만 건물전체적으로는 본당으로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전기에 유행한 주심포계 형식의 공포이다. 주심포계란 공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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