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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152

[서울 성곽] 이간수문과 주위 성벽 흔적, 동대문운동장에 묻혀 있던 조선시대 수문

최근에 철거된 동대문운동장은 일제가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의 성곽을 허물어서 만든 운동장으로 최근에 철거가 완료되었다. 철거과정에서 남산과 장충동에서 흘러내린 물을 성 밖으로 빼내기 위해 만든 조선시대 수문이 이간수문이 발굴되었고, 주위 서울 성곽의 성벽도 조금씩 복원해 놓고 있다. 이 곳은 조선시대 병영이 있던 곳으로 현재 서울의 용산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성밖 청계천으로 빼내는 조선시대 수문이 이간수문. 오랜 세월 동대문 운동장 아래 묻혀 있었던 까닭에 원형이 거대로 남아 있다. 아치형으로 만든 거대한 수문. 우리나라 석조구조물 중에서는 상당히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수문 안쪽에서 본 모습. 거대한 돌이 돌출되어 있다. 서울 성곽에서 유일한 ..

[서울 성곽] 혜화문, 한양도성 동소문에 해당하는 성문

사직터널에서 산능선을 따라서 인왕산을 거쳐 북악산을 지나 창덕궁과 성균관대학 뒤쪽 능선을 지나서 의정부 방향 도로와 만나는 곳에 있는 혜화문이다.한양도성의 동소문에 해당하는 성문으로 의정부, 양주를 거쳐 함경도 방향으로 연결된 도로들이 한양도성으로 들어오는 혜화동 고갯길에 있던 성문으로 지금은 원래의 위치에서 동쪽편 언던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성문과는 달리 원래부터 있던 성문이 아니라 90년대에 복원한 성문이다. 혜화문 안쪽으로는 혜화동 대학로가 있으면, 성곽은 다시 낙산 능선을 따라서 계속 이어진다. 한양도성의 동소문은 원래 의정부방향 도로 중앙에 있었는데, 도로 확장 등으로 현재의 위치인 동쪽편 언덕에 복원해 놓고 있다. 복원된 혜화문. 아치형 성문과 성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래 있었는 성루가 1..

[서울 성곽] 성북동 경계가 되는 창덕궁 뒷편 와룡공원 성벽

한양 도성을 이루고 있는 서울의 성곽 중에서 북악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이 사람들이 사는 공간과 만나기 시작하는 지점인 와룡공원 부근의 성벽이다. 오랜 기간 동안 국왕이 거처했던 창덕궁, 창경궁과 종묘로 이어지는 녹지공간과 북한산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 곳 성벽을 넘으면 성북동이 시작된다. 성의 북쪽이라는 성북동은 이 성벽너머의 마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성벽 바로 아래에는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에서 묘사한 성북동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 달동네라고 불리는 동네가 있고, 그 너머로 요즈음의 부의 상징이라는 성북동 고급 주택가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궁궐이 지키던 성벽답게 거의 전역에 걸쳐서 아주 크고 튼튼한 돌을 쌓은 성벽이 있으며, 성벽위에는 또한 아주 튼튼한 흉벽이 있..

[서울 성곽] 서대문에서 인왕산 아래 (사직동 부근)

서울의 성곽은 인왕산, 북악산, 남산, 낙산 등 서울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적인 장애물에 오랜 기간 동안 성곽을 쌓아 형성되어 있고 4대문과 4소문을 두고 있습니다. 서울의 서쪽 방면을 막고 있는 성곽은 서대문을 중심으로 인왕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숭례문과 서대문 사이의 성벽은 도심으로 변해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서대문에서 시작해서 능선을 따라 쌓은 성벽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 성곽 여행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사직단 근처 사직터널위 능선에 설치된 성벽을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인왕산 능선을 따라서 쌓은 서울 성곽을 탐사할 수 있습니다. 사직단과 독립문이 있는 무악재 사이의 능선을 따라 형성된 성벽 주위 마을 주민을 위한 도로에 잘려나간 성벽입니다. 독립..

[실크로드 투루판] 교하고성, 중앙 도로 주변 유적들 (성문~전망대)

교하고성은 북쪽 산악지역에서 흘러내리는 두개의 강이 만나는 협곡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폭은 좁고 길이는 길게 생긴 타원형 형태이다. 성문을 들어서면 교하고성 내 안쪽에 위치한 사찰인 대불사까지 그리 폭은 넓지만 않지만 대로가 있고 동쪽편에 관청을 비롯하여 주택, 상가 등이 밀집해 있는 형태이다. 대로 서쪽편에는 건물터가 동쪽 보다는 많지 않아 보이고 전망대 또한 서북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교하고성에 남쪽과 동쪽은 사막지역과 투루판 분지내 주민들이 살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지역이고, 서북쪽으로는 천산산맥이 있고 그 주변에는 유목민들이 살던 초원지역이 북쪽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교하고성을 중심을 가로지르는 대로는 성문에서 주민들이 사는 지역과 대불사까지로의 통로 역..

중국(China) 2010.07.24

[남한산성] 서문(우익문)에서 북문(전승문)까지, 석양이 아름다운 곳

남한산성 서문에서 북문까지는 산성의 서북쪽으로 솟아있는 능선을 따라서 성곽을 쌓은 곳으로 한강이 흐르는 서울시내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남한산성 축성의 목적인 한강 수운을 제압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가장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곳으로 적들이 남한산성을 제압하지 않고는 이 곳을 지나서 남한강 상류 방향으로 진격하기 힘들고, 한강 이남 지역으로의 진출이 어렵기 때문에 삼국시대 초기부터 이 곳에 산성이 존재한 이유가 되는 곳이다. 이 곳은 또한 서울에서 일몰 풍경이나 야경을 촬영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며, 실제로 이 곳을 찾았을 때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일몰장면과 야경을 촬영하기 위해서 오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서문에서 약간 위쪽에 있는 능선에서 서울 한강이남과 한강이 흐르는 모습이 가장 가까이서 ..

[실크로드 둔황] 만리장성 옥문관, 한나라때 서역으로 출발하는 관문

둔황시 서북방면으로 약 1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옥문관을 한무제때 흉노와 한나라간 투쟁의 중심지로써 한나라때 쌓은 만리장성이 있었던 곳이다. 옥문관은 투루판을 지나 천산산맥을 따라 중앙아시아로 뻗는 오아시스 북로의 첫번째 관문으로 이 옥문관을 벗어나면 중국땅을 떠나서 서역으로 나가는 것이자,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이 관문 바깥이 세상밖이라 여겼던 곳이이기도 하다. 옥문관은 '옥이 들어오는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옥의 산지인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에 위치한 허텐이라고 곳에서 중국의 은.주 시대부터 옥을 수입해 왔다고 한다. 이는 중국이 서역과 무역을 하고 서역을 경영하고자 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한무제때는 이 곳에 '옥문관도..

중국(China) 2010.07.14

[만리장성 거용관] 천하제일웅관, 북경의 관문

만리장성에서 팔달령 장성과 함께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북경의 관문인 거용관이다. 거용관은 천하제일웅관이라고도 불리며 물이 흐르는 계곡과 팔달령에서 이어진 산길이 평지로 들어오는 입구에 설치된 옹성이다. 이 곳은 중국 황제가 자주 찾았던 곳으로 보이며, 성 안에는 행궁과 같은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거용관 옹성에는 3층의 문루가 설치되어 있어며, 만리장성에서 가장 웅장하다는 의미로 '천하제일웅관 天下第一雄關'이라는 현편이 걸려 있고, 옹성내부에는 작은 사당이 설치되어 있다. 옹성 주위에는 여러 망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동쪽편으로는 계곡을 가로목은 수문도 설치되어 있다. 만리장성 너머에서 북경으로 들어오는 길은 이 길이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보이며, 팔달령에서 이 곳 거용관까지 웅장한 성벽으로 둘려싸여..

중국(China) 2010.07.07

중국 만리장성 - 북경 팔달령 장성 서쪽 능선을 오르는 입구

중국 만리장성에서 가장 유명한 팔달령 장성 서쪽 능선은 동쪽에 비해서 많은 사람이 오르지 않는 곳이라서 조용히 만리장성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팔달령 장성 입구에서 서쪽편으로 오르면 휴게소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어 만리장성을 올라 갔다 온 후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만리장성 팔달령 장성 서쪽편 능선으로 오르는 입구. 옛날 병사들이 출입하는 통로를 통해서 장성 위로 오를 수 있다. 팔달령 장성 서쪽편 능선을 오르는 출입구. 계단을 통해서 장성 위로 올라갈 수 있다. 팔달령 장성은 돈대와 연결된 외부계단을 통해서도 올라갈 수 있다. 팔달령 장성의 돈대. 아래부분은 화강석으로 쌓고, 윗부분은 벽돌로 쌓았다. 팔달령 장성에 설치된 배수구. 장성 안쪽으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팔달령..

중국(China) 2010.06.12

수원 화성, 조선의 성곽 축성 기술이 집약된 유네스코 문화유산

수원화성은 조선후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그 무덤을 현재의 융건릉으로 옮긴후 인근에 건설한 신도신인 화성을 건설하면서 세운 성곽이다. 기존에 화강암으로만 쌓던 축성양식에서 벗어나 석축으로 쌓은 석성과 구운벽돌로 쌓은 전성의 형태를 지형과 용도에 맞게 적절하게 섞어서 축성하였다. 축성 공사에는 다산 정약용이 서양의 것을 응용한 거중기가 사용하였으며,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는 성곽으로 그 축성과정이 의궤 등 다양한 자료에 상세히 남아 있고, 조선의 성곽 축성 기술이 집약된 것으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인정되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원 화성는 서남쪽의 팔달산과 동장대가 있는 낮은 구릉을 연결한 평지성에 가까운 읍성이다. 성곽의 축성기술은 ..

공주 공산성, 백제 두번째 수도 웅진

공주 공산성은 백제의 두번째 수도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한 후 부여로 다시 옮길때까지 64년 동안 그 역할을 했던 곳이다. 금강변 남쪽의 약 110m 정도의 구릉에 석축과 토축으로 쌓은 천혜의 요새와 같은 성이다. 북쪽으로는 한강이 막혀있고, 동.서.남쪽으로는 높지 않은 구릉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백제의 성곽은 주로 흙을 다져서 쌓은 토축성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 곳 공산성은 조선시대에 다시 석축성으로 고쳐 쌓은 까닭에 사비성이나 몽촌토성 등 백제 성곽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의 공산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산성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으로 생각된다. 공산성 중심인 금강변에는 지금은 민가도 없고, 아무도 살지 않는 곳으로 약간 삭막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 곳은 금강나루와 ..

[수원 화성] 동남각루와 남수문터

창룡문에서 시작한 수원화성 동쪽편 성곽 걷기가 끝나는 지점인 동남각루이다. 성곽위에서 보면 작은 누각하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곽 아래에서 보면 웅장하고 위압적인 곳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남각루는 지금은 없어진 남공심돈과 마주보고 있으며, 수원화성에서 방어에 제일 취약한 지역인 남수문을 지키던 방어시설로 특별은 시설로서 적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치성이 점하고 있는 위치의 장점으로 그 기능을 다하던 시설이다. 평지를 걷는것 같던 수원화성 성곽길은 동남각루에서 경사진 길을 내려와 수원화성 상업의 중심지인 팔달문과 지동시장, 남수문터로 내려온다. 상업의 중심지답게 팔달문과 남수문터 사이의 성곽 시설은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 수원화성 동남각루는 치성위에 작은 누각을 올려놓고 있는 형태로 공심돈..

[수원 화성] 동이포루와 동삼치

수원화성 동쪽편 봉수대가 설치된 봉돈을 지나 동남각루를 가기 전에 볼 수 있는 한쌍으로 포루와 치성이다. 동이포루는 성벽에서 많이 돌출되어 있으며, 다른쪽 포루와는 다르게 판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공심돈과 같이 속이 비어 있는 구조도 아니다. 단지 치성위에 정자를 올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봉돈에서 공심돈의 기능을 하기때문에 간략하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수원화성 동이포루. 치성위에 누각을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동이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 동쪽에 위하며 1796년 7월 3일에 완공되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

[수원 화성] 봉돈, 봉수대와 돈대 기능이 함께 있는 돈대

수원화성을 성곽 창룡문을 지나서 2개의 포루와 치성을 지나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군사시설인 봉돈을 볼 수 있다. 봉돈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제압하는 돈대의 기능과 수원화성과 다른 지역과의 통신을 담당하는 봉수대의 기능을 같이 하고 있기때문이다. 중국 청나라 건축의 영향을 받아서 벽돌로 쌓아 만든 봉돈은 아래쪽은 공심돈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위쪽에는 5개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수원화성의 봉돈은 용인 석성산 봉화, 서해안 흥천대 봉화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수원화성 동쪽 성곽에 설치된 봉돈. 돈대 위에 구운 벽돌로 쌓은 5개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옆에서 본 수원화성 봉수대 봉화신호체계 수원화성 봉돈 아래쪽은 공심돈처럼 비어 있으며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수원 화성] 동포루, 동이치, 주변 성곽길

동포루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과 남문인 팔달문 사이에 있는 포루로서 치성을 벽돌로 쌓아 공심돈과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된 시설이다. 당시 중국의 성곽 축성 기술을 참조하여 쌓은 것으로 보이며, 창룡문과 팔달문 사이의 방어시설 중에서 화력이 제일 좋은 곳으로 보인다. 동포루를 지나면 동이치가 있고 그 다음 광교산 방향을 보고 있는 봉수대로 연결된다. 동포루는 공심돈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전형적 포루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부는 비어있으며, 3층 구조물과 비슷한 역할을 하며, 여러 방향으로 총포를 발사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많은 병력이 포루 내부에서 적을 방어할 수 있는 시설이다. 동포루는 화성의 5개포루 중 동쪽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7월 1..

[수원화성] 동일포루와 동일치, 창룡문 남쪽 성곽길

수원화성 동쪽방면 성곽은 약간 경사진 언덕위에 위치하고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았던 곳 위치한 까닭에 동문인 창룡문과 남문이 팔달문까지의 거리는 다른 곳에 비해 긴편이고 평이하게 치성과 포루가 반복되고 있으며 중간에 봉수대 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동일포루와 동일치는 창룡문에서 남쪽방향으로 있는 방어시설이다. 동일포루. 창룡문에서 남쪽으로 걸어가면 첫번째로 보이는 방어시설이다. 다른 포루와 다른 판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고, 정자처럼 보인다.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동일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7월 10일 완공되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되었으며 ..

[수원 화성] 동문격인 창룡문

창룡문은 수원 화성의 동문으로 군사지휘소 역할을 했던 동장대와 인접해 있는 성문이다. 보통 성곽 출입문의 경우 북쪽에 통행이 많지 않고 동.서 문이 출입이 많은 것이 보통이다. 수원 화성의 경우 서울 방향의 출입문인 북문격인 장안문이 정문역할을 하는데다 창룡문 주변에는 군사훈련을 하는 동장대가 위치하고 있어 일반인이 출입을 꺼렸을 것으로 보이는 출입문으로 장안문이나 팔달문에 비해 성문의 높이도 낮고 단층 문루가 설치되어 있다. 옹성에도 별도의 출입문을 두지 않고 통로만 만들어 놓고 있다. 수원 화성 동문이 창룡문. 군대가 주둔하고 훈련하던 동장대 주변에 위치한 까닭에 창룡문을 드나드는 도로가 발달해 있지 않고, 주위에 치성같은 방어시설을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창룡문 문루는 팔달문이나 장안문처럼 2층 누..

[수원 화성] 동북공심돈, 동북노대

수원화성 동장대을 지나면 1번국도에서 수원화성 안으로 들어오는 제일 넓은 길이 있고, 그 위를 지키는 모양을 하고 있는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를 볼 수 있다. 자동차가 많이 지나 다니는 1번국도 옆에 있기때문에 수원화성이 있는 많은 시설물들 중에서 사람들 눈에 가장 많이 익숙한 구조물일 것이다. 공심돈은 중국 청나라 수도 북경을 지키는 성곽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벽돌로 쌓아 올린 돈대로서 내부가 비어 있어 공심돈이라 불리며 화포로 중무장한 많은 병사들이 내부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시설이다. 또한 동북공심돈과 창룡문 사이에는 동북노대가 있는데 서장대가 있는 팔달산 정상의 서노대와 함께 수원화성에서는 2곳에 설치된 시설로 아마도 동장대를 호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

[수원화성] 각건대라 불린 동북포루와 동암문

동북포루는 수원화성 동북방면에 위치한 포루로서 팔달산을 제외하고는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가장 눈에 많이 띄는 포루이다. 그래서 이 포루는 화홍문에서 동장대까지 엄호할 수 있는 중요한 시설물이다. 이 동북포루의 형태는 성벽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치성위에 누각을 세웠으며, 치성은 속이 비어 있는 공심돈과 유사하다. 동북포루를 지나면 동암문이 있는데, 북암문과 거리는 짧은 편으로 아마도 동장대를 보좌하기 위한 출입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동북포루는 방화수류정 다음에 위치한 포루로서 각건을 닯아 각건대라 불리기도 한다. 큰 돌을 쌓아 올린 치성과는 달리 벽돌로 쌓아 올렸으며 공심돈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북각루에서 동북포로 사이의 성곽 담당 부대가 적힌 표지석 동북포루 누..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이라 불리는 동북각루와 북암문

수원화성의 동북각루는 그 아래에 있는 용연, 화홍문과 함께 경관이 가장 빼어난 곳으로 수원화성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조선후기 건축기술의 뛰어남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그래소 동북각루는 방화수류정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여져 있으며, 꽃을 쫓고 버드나무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정자라는 뜻이다. 건물은 앞면3칸, 옆면3칸으로 팔각지붕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흔히 볼 수 없는 건물구조를 하고 있다. 아마도 중국 건축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동북각루 위쪽으로는 구운벽돌로 쌓은 작은 암문이 있고, 암문을 통해서 용연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용연, 방화수류정, 화홍문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동북각루는 우리나라에서 볼수 있는 정자의 건축양식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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