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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39

포천향교, 옛 포천현 관아 공립교육기관

경기도 북부지역에 위치한 포천시는 조선시대 포천현과 영평군이 합쳐서 이루어진 지역이다. 현 포천시의 북쪽은 영평군, 남쪽은 포천현이었다고 한다. 양주와 가평 사이의 넓은 평지에 위치한 포천현은 조선시대 금강산과 관동팔경 유람을 떠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유명인사들이 많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도 포천에는 2곳의 서원이 남아 있다. 포천향교가 위치한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는 고구려가 쌓은 산성인 반월산성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포천현 관아가 소재하고 있었던 지역이다. 포천현 관아 건물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포천향교만이 이 지역에 관아소재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포천향교는 고려초에 세워진 향교로 설립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에 중건한 것..

공주향교, 충청감영에서 운영하던 향교

옛 충청감영과 공주목이 있었던 공주의 공식 교유기관인 공주향교이다. 옛 감영이 있던 공주사대부고에서 금강방면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주택가 위치하고 있다. 금강 중류에 위치한 백제의 옛 수도인 공주는 조선시대 충청도의 중심지이자 금강 수운, 호남지역과 서울간의 교통로에 위치한 아주 큰 고을이자, 충청도 관찰사사 근무하던 충청감영이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공주라는 큰 고을에 위치한 공주향교는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작았다. 나주향교나 전주향교는 그 규모에 있어서 한양의 성균관에 비길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이 곳 공주향교는 웬만한 군현에 소재한 향교와 비슷한 규모로 보인다. 공주향교는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뒷쪽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다. 유생들이 ..

홍성 홍주향교

홍성군은 충남 서해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충청 서해안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인 홍주목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중 정3품의 높은 관직인 목사가 다스리던 고을인 목(牧)은 지방행정단위 중에서는 가장 큰 곳에 속하며 대부분 이름끝에 주(州)를 달고 있다. 아마도 충남서해안 지역 대부분의 고을이 직속은 아니지만 관할지역과 비슷한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홍성군은 옛 홍주목과 결성현이 합쳐진 것이라고 하면,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인근의 공주와 일본어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홍성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홍주향교는 홍주목 관아가 있었던 읍성인 홍주성에서 북쪽편에 위치한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서 목사가 근무하던 동헌과는 많이 떨어져 있다. 홍주..

홍성 결성향교

결성현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과 결성.서부.구항.은하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이다. 결성현 읍치는 현재 결성읍성이 있었던 자리인 결성면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다. 결성현은 천수만에서 홍성군과 예산군을 포함하는 내포평야를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초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을 때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던 고을이다. 결성현에서 관장하던 교육기관이었던 결성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존재해왔었던 지방교육기관으로 현재의 위치로는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결성읍성을 현재의 결성면 소재지에 세우게 되면서 이전하였다고 한다. 향교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결성면 소재지에서 북쪽편으로 약간 떨어진 구릉지에 세워진 이 향교는 공자와 성현들을..

남원향교, 남원도호부 관할의 큰 향교

남원향교는 조선 태종때 처음 창건된 남원지방의 향교로 처음에는 남원성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잦은 홍수로 인해서 세종 때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남원성 동북쪽 약간 언덕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향교는 향교의 학규를 비롯하여 유생들들 내무생활규범 등 많은 책을 보관하고 있어 조선시대 지방사회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남원향교는 향교 중에서 면적은 넓지 않지만, 건물로는 공자와 제자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무.서무, 강당인 명륜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사마재와 전사청, 그리고 웅장한 문루를 두고 있는 규모가 큰 향교이다. 남원향교는 대성전이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재건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고종때 중건한 명륜당이 약간 내력이 있는 건물로 보인다. 나머지 ..

정읍 태인향교, 조선시대 고현동 향약으로 유명한 태인현의 중등교육기관

전북 정읍시 태인면은 주변의 신태인읍.웅동면.산외면.감곡면.칠보면.산내면을 포함하고 있던 조선시대 태인현의 소재지였다.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호남선 철도가 신태인지역을 지나감에 따라서 행정과 교통의 중심으로서 그 기능을 잃고, 지금은 시골의 작은 면소재지가 되어 있는 곳이다. 태인면은 김제평야를 비롯한 전북지역의 넓은 벌판과 동쪽의 산악지대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주나 정읍과 비슷한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고을이다. 태인면 소재지에는 보물로 지정된 정자인 피향정과 태인동헌, 태인향교가 이 곳이 태인현 관아가 있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 중 태인향교는 태인현감이 관리하던 조선시대 공립 중등교육기관으로서 근처의 무성서원과 함께 이지역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왔던 곳이다. 태인향교는 작은 현..

김제향교, 김제군 관아 가까이 있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김제평야가 있는 지역으로 농업사회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중의 하나이다. 김제 향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인 대성전, 강당인 명륜당과 문루인 만화루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사당인 대성전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물이고, 강당과 문루는 일제강점기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인근에 옛 조선시대 김제군 관아 건물이 남아 있으며, 관아와 향교를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관청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김제향교는 김제관아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위치한 김제향교.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은 벌판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김제평야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향교이다. 호남지역 벌판에 있는 향교는 땅이 넓어서인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명륜당 앞..

양천향교 유예당

양천향교 앞에 있는 작은 정자인 유예당은 향교 앞에 있는 조그만 정자이다. 앞면 3칸 규모의 작은 정자로 원래부터 향교 앞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향교 앞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이다. 현재는 양천향교에서 실시하는 전통문화와 관련된 행사들을 진행하는 작은 노천극장과 함께 있는 건물이지만, 향교를 복원할 때 이 정자를 세운 것으로 볼 때 원래부터 있었던 정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의 정자는 앞면이 공연을 위한 작은 놀이마당을 향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정자의 형태로 볼 때 원래의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양천향교가 바라보고 있는 들판을 주변의 주택들이 막고 있는 형태이지만, 옛날에는 양천향교는 김포공항 주변의 넓은 들판을 내려다 보고 있는 형태이고, 이 정자 또한 들판을 내..

조선 관아 2010.11.10

양천향교, 서울에 남은 유일한 향교로 조선시대 양천현 중등교육기관

양천현은 동쪽으로 양화도, 서쪽과 남쪽으로는 부평부, 동남쪽으로는 금천현, 서북쪽으로는 김포현과 경계를 하고 있는 조선시대 현단위 행정단위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강서구와 양천구가 옛 양천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높은 산은 없고 김포공항 주변으로 넓은 평야가 들어서 있으며, 조선시대 소금창고였던 염창이 주변에 있다. 양천향교는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향교로서 현재의 건물은 옛터에 1981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조선시대 향교는 각 고을마다 수령이 설치.관리하였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수도인 한양의 동.서.남.중에 설치한 성균관의 부속기관인 사부학당이 있었고, 서울 주변 토지는 서울의 권문세가의 땅이었기때문에 향교에 대한 수요는 별로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고 법령에 정한바가..

김포향교, 김포현의 중등교육기관

김포공항 서쪽편에서 강화도가 있는 서해안까지가 현재의 김포시이다. 조선시대의 김포현과 통진현이 합쳐진 곳이 현재의 김포시이고, 현재 김포시청을 중심으로 김포현이 존재했었다. 김포현은 남쪽으로는 부평부, 북쪽으로는 통진현, 서쪽으로는 서해안, 동쪽으로는 양천현과 경계를 이루는 영역이다. 옛 김포현의 흔적인 관아 건물들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관청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김포향교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김포향교는 원래 김포장릉 부근에 있었다고 하며, 장릉의 조성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가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고 한다. 건물들은 그 내력이 적혀 있지 않는 것으로봐서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건물또한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구한말에 세워진 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물..

양주목 관아, 양주향교

양주목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동북쪽 관문으로 지금은 경기북부지역에 있는 작은 도농복합시이지만 현재의 양주시, 동두천시, 의정부시, 구리시, 남양주시, 서울 동북쪽 노원구, 강북구, 중랑구, 도봉구 일대를 포함하는 상당히 큰 고을이었으며, 정3품에 해당하는 목사가 고을의 수령이었던 곳이다. 양주목의 규모에 맞게 양주목 관아는 서쪽편 객사자리가 있었던 유양초양학교부터 시작하여 동쪽편 양주향교까지가 관아가 있었던 지역으로 그 넓이가 상당히 넓다. 양주목 관아지 동쪽편에 자리한 양주향교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양주목 관아를 구성하던 건물 중 제일 먼저 복원되었는데, 고을 규모에 걸맞게 향교 또한 넓고 규모가 있어 보인다. 양주향교는 앞쪽에 강학공간..

나주목 관아, 나주향교 대성전

나주향교는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으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우리나라 지방 교육기관이다. 서울문묘의 성균관과 비슷한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서울 성균관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크고 웅장하다. 그 중 대성전은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앞면 5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다. 물론 서울 문묘의 대성전과 마찬가지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앞며5칸 옆면 4칸의 웅장한 나주 향교 대성전 나주향교 출입문인 외삼문. 나주향교라 적힌 돌기둥과 하마비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나주향교 내삼문 내삼문 담장 너머로 보이는 대성전. 궁궐 건물을 연상시키는 규모이다. 대성전 편액 나주향교 대성전 월대 대성전 부속 건물. 강학공간인 명륜당 월대에서 본 대성전 건물 안쪽에서 본 ..

나주향교 명륜당, 강학공간

나주향교는 제사공간인 대성전이 앞쪽에 있고,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뒷쪽에 위치한 전형적인 전묘후학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나주 향교의 강학공간은 중앙에 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명륜당이 있고, 마당 동.서로 유생들의 기숙인 동무.서무가 배치되어 있으며, 향교를 관리하는 건물이 명륜당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나주향교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무.서무는 서울 성균관의 명륜당과 기숙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규모가 크다. 그래서 전국에서도 교육시설 규모로는 성균관 다음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나주향교 강학 공간의 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명륜당. 서울 성균관 명륜당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나주향교 명륜당은 정면 중앙에 앞면 3칸의 건물이 있고, 좌.우에 3칸 건물이 날개처럼 달려 있다. 명륜당 가운데 건물 ..

강릉향교

강릉 도심 뒷쪽편 화부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강릉향교는 지방에 남아 있는 많은 향교들 중에서도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하는 향교이다. 이 강릉향교는 명륜고등학교 교정 동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향교의 교육기능이 없어진 현대에도 고등학교를 설립하여 향교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곳 향교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서무가 있고 교육공간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재.서재가 있다. 이 향교의 명륜당은 다른 지역의 명륜당에 비해서 상당히 규모가 큰 누각형태의 건물인데, 아마도 전국에서 피서를 겸해서 관동팔경을 유람하면서 들리던 선비들이 많았던 까닭에 그 규모가 큰 것으로 보인다(?). 명륜고등학교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강릉향교. 뒷편에 대성전이 있고, 앞쪽에 누각형태의 명륜당이 있..

파주향교, 고을 크기에 비해 규모가 작은 향교

파주는 고려 수도인 개성과 서울을 연결해주는 넓은 지역에 담당하던 곳으로 지역으로 지금은 군사지역이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서울과 중국으로 향하는 평양, 의주간 도로에 위치하고 있고, 임진강이 흐로고 있으며, 교통의 중심인 임진나루가 있었던 곳을 사람의 왕래가 많았던 지역이다. 파주향교가 있는 파주읍은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지 않는 까닭에 금촌이나 문산에 비해 도시화가 뒤떨어진 곳이지만, 조선시대 육로상에는 교통의 중심지였을 것이다. 파주목 관아가 있던 곳은 지금의 파주초등학교로 바뀌었고, 파주향교만이 군부대 뒷편 언덕에 남아 있다. 파주향교는 목사가 다스리던 파주목 규모에 비해서 그 크기는 일반 현이나 군에 있는 향교와 비슷한 규모로 보인다. 앞면 3칸 규모의 파주향교 대성전. 이 곳에서 유일하게 오래된 ..

인천향교, 인천도호부 청사와 함께 있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향교

인천향교는 인천 문학경기장 맞은편에 위치한 인천도호부청사와 같이 있는 향교이다. 조선시대 인천의 규모는 도호부가 있을 정도로 크거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은 아니었지만, 세조의 비인 자성왕후의 외향이기때분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 인천향교는 인천도호부 관할 구역이 크지 않았던 까닭에 건물의 규모도 크지 않고 학생 수용인원도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향교는 대체로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있어 외지인이 방문하기는 쉽지 않으나, 이 곳 인천향교는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으며, 관광지겸 역사체험장으로서 도호부청사가 유지되고 있는 까닭에 방문객이 향교를 쉽게 둘러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특히 관리인이 상주하는 까닭에 건물이 깨끗하다고는 볼 수 없으나, 항상 사람이 오가는 살아있는 듯한..

고양향교, 벽제관지 근처에 있는 지역 교육기관

고양향교는 전국에 있는 수많은 향교 중의 하나로 큰 특색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이는 향교이다.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자리잡고 있고, 뒷편에 배향공간인 대성전이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고 지금의 건물은 최근에 새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문화재로서 가치는 높지 않은 향교인데도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있다. 고양은 군수가 다스리던 크지 않은 고을이었던 까닭에 향교 규모도 큰 편은 아니다. 고양향교의 강학공간인 명륜당. 앞면 5칸의 건물로 지역출신 사람들의 유학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배향공간인 대성전이 향교 뒷편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구조이다. 대성전 앞에는 제사 준비를 하던 전사청이 있다. 고향향교 출입문인 외삼문과 홍살문 향교는 공자..

아산 온양향교

온양향교는 온양온천역이 있는 현재의 온양시가지 남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향교이다. 근처에 옛 온양군 관아 건물인 온주아문과 동헌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현재 온양향교가 있는 지역이 온양군의 중심지였다가, 철도부설에 따라 행정중심지 역할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지역이다. 온양향교는 조그만 산자락 아래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는 평균적인 향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으며, 명륜당은 앞면5칸, 대성전은 앞면 3칸 규모를 하고 있는 중간규모의 향교이다. 기숙사건물로는 동재만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서재를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옛 온양군 관아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향교 전체 면적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약간 경사진 길 입구에 향교임을 알려주는 홍살문이 서 있..

평택향교, 조선시대 공립교육기관

평택시 팽성읍은 옛 평택현 청사가 있던 곳으로 현재 평택시에서 남쪽편 안성천이 아산만과 만나는 넓은 곡창지대의 중심지였고, 아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팽성읍에는 지금 옛 평택현의 흔적으로 객사와 향교가 남아 있고, 다른 관청건물들은 대부분 없어졌는데 아마도 팽성읍사무소에 관청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택향교는 이 지역의 공립교육기관으로 평택현이 큰 고을이 아니었기때문에 향교의 규모또한 크지 않은 편이다. 이 향교는 전학후묘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앞쪽에 강당인 대성전과 기숙사인 동.서재가 있고, 뒤쪽에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다. 향교입구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보통 홍살문 옆에 하마비가 있다. 향교와 관련된 공덕비. 향교 정문인 외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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