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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낙산사 홍련암, 동해안 바닷가 작은 암자

양양 낙산사에서 동해안 경치가 가장 뛰어난 곳에 의상대와 함께 자리잡고 작은 암자인 홍련암이다. 홍련암은 바닷가 절벽위에 세워진 작은 암자로 통일신라 고승인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장소에 세워진 암자로 현재의 건물은 1975년에 중건된 것이라 한다. 의상대가 바닷가 절경을 보며 앉아 쉴 수 있는 작은 정자라면,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것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암자이다. 동해안 바닷가 절벽위에 세워진 홍련암. 1975년에 중건된 건물로, 바닷가 절벽위에 세워졌지만 아슬하거나 고풍스러운 멋은 보이지 않는다. 의상대와 함께 동해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사색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바닷가 갯바위에 세워진 홍련암 홍련암 현판 추녀마루 단청에 있는 용머리 장식 주련과 문살 벽면에 그려진 ..

[부여 무량사] 천왕문, 일주문, 당간지주

무량사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있는 사찰로 옛날에는 이곳이 홍산현 관할 지역이었기때문에 홍산 무량사라고 옛 기록에 많이 남아 있다. 조선초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했던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부여 무량사는 외산면 소재지에서 자동차로 5~10분 정도 들어가면 있는데, 산중에 위치한 산사이지만 마을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사 입구의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마을을 알려주는 산문인 일주문을 나타나고, 일주문을 지나서 개울을 건너면 호젓한 산사의 느낌을 주는 길이 나타난다. 개울을 건너서 2~3분 정도 걸어들어가면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천왕문이 나타나고 천왕문 옆 숲속에 옛날에 사찰입구임을 알려주는 당을 걸어놓았던 당간지주가..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귀부 및 이수 (보물 446호)

양양에서 구룡령을 넘어가는 56번국도 근처에 있는 미천골자연휴양림 내에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옛 절터인 선림원지가 있다. 선림원지는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표적인 선종의 수행도량이었다고 한다. 선림원지에는 3층석탑과 석등, 부도, 홍각선사탑비 등이 남아 있으며, 신라범종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이다. 이 곳 선림원지에 남아 있는 유물 중 홍각선사탑비는 신라 정강왕때인 886년에 홍각선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탑비이다. 이 탑비는 조선시대 이전에 파손되어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 몸돌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귀부는 용의 머리가 직립한 모습이고, 비좌에는 구름무늬가 둘러져 있다. 이수에는 "홍각선사비명"이라는 전액을 양각으로 새기고 주위에는 구..

양양 선림원지 석등 (보물 445호)

선림원지는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절터이다. 선림원지가 있는 미천골은 강원도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어서 홍천으로 들어가는 구룡령 아래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이 곳 구룡령을 지나는 여행객들이 하룻밤을 묵어가야만 하는 장소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찰이다. 이 곳에서 많은 사람이 묵어서 그런지 쌀씻은 물이 개천으로 흘러들어 하얀물이 흐른다고 해서 미천골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선림원지 옛절터 한쪽편에 있는 홍각선사탑비 앞에 있는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인 88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석등으로 석재의 재질이나 조각수법이 뛰어나서 아직도 원형에 가까이 보존되어 있다. 팔각으로 이루어진 하대에는 안상이 음각..

부여 무량사석등 (보물 233호)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있는 무량사는 신라시대 범일국사가 창건한 절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초 생육신이자 당대의 천재로 잘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조선 인조때 크게 중건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무량사 가람배치는 통일신라시대 금당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극락전과 그 앞에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닮은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오층석탑과 석등이 극락전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무량사 오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을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 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느낌을 주고 있기는 ..

속초중앙시장, 싱싱한 해산물과 먹거리가 싸고 풍부한 시장

속초 도심에 위치한 중앙시장이다. 설악산 여행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싱싱한 횟감이나 수산물을 찾아서 대포항, 동명항, 물치항 등 크고 작은 항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속초는 동해안의 큰 항구이기때문에는 어느곳을 가던지 싱싱한 횟감을 사서 먹을 수 있고, 해안가 백사장, 작은 어선들이 정박하는 포구 등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설악산과 산속에 있는 여러 사찰들을 찾아서 한가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꽤 유익하고 다양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관광지이다. 속초의 먹거리는 싱싱한 수산물,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아바이순대, 콘도가 밀집한 미시령 아래의 순두부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꼭 찾고 싶은 곳은 아마도 싱싱한 횟감을 살 수 있는 포구일 ..

한국의 풍경 2011.01.07

홍성 결성현 관아 형방청

충남 홍성군 결성면 소재지는 옛날에는 홍성군의 전신인 홍주목과는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결성현이라 불리었던 곳이다. 결성현은 홍성 서남쪽 천수만과 인접한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크지 않은 고을로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큰 변화가 많이 없었던 지역이라서 그런지 옛 관아 건물들이 남아 있다. 결성현 관아 건물 중 남아 있는 건물로는 고을 수령이 근무하던 동헌과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던 부속기관인 형방청과 근처의 결성향교가 남아 있다. 결성현 형방청은 구한말 행정구역 개편 이후에는 살림집으로 사용되면서 오늘날까지 그 모습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ㄱ'자형으로 생겼으며 각각 앞면 4칸으로 되어 있는 형태이다. 출입문쪽은 온돌방과 3칸짜리 대청마루가 있으며, 안쪽으로는 온돌방 3칸과 부엌으로 이루..

조선 관아 2011.01.07

보령 성주사지석등

보령 성주사지 절터에서 중심 영역이 되는 금당터 앞 오층석탑과 같이 있는 석등이다. 성주사의 사찰규모와 역사성, 오층석탑의 조형미와 완성도 등을 고려해 볼 때 원래 석탑을 만들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후대에 석등을 추가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는 석탑 앞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던 것을 이 곳 석탑들을 해체 수리할 때 같이 수리한 것이라고 한다. 지대석 아랫돌에는 여덟잎의 연꽃이 새겨져 있는 받임이 놓여 있고 옥개석은 처마가 약간 위로 올라가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솜씨가 뒷편의 석탑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지는 것으로 봐서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주사지 오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 석등의 화사석이 크기가 작고 세부적으로 조각이 잘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연꽃잎이 새겨진 받침돌 성..

부여 홍산현 관아 형방청, 조선시대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던 관청

부여 홍산면소재지는 백마강 서쪽편 고을인 옛 홍산현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동헌, 객사와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던 형방청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관아 건물들은 구한말 대한제국을 선포할 때 행정개편으로 작은 규모의 고을들의 객사는 초등학교로 바뀌면서 많은 건물들이 사라졌고, 동헌과 내아 등 부속건물들 또한 면사무소 등 관청 건물로 사용하면서 없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 곳 홍산현 관아 건물들은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다. 지도에서 보면 홍산양조장이라는 표시가 나오는데, 아마도 동헌을 비롯하여 관청 건물 전체를 양조장을 경영하는 지역유지에 팔았던 것으로 보이며, 양조장에서 건물들을 사용하면서 지금껏 그 형태가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중 동헌 북쪽편에 있는 형방청은 'ㄷ'자형 형태로 만들어진 ..

조선 관아 2011.01.06

부여 홍산현 관아 아문

부여군 홍산면 소재지에는 옛 홍산현관아 건물들이 남아 있다. 홍산현 관아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동헌, 객사, 형방청 건물이 같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 관아의 모습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홍산현은 부여의 서남쪽 백마강 건너편에 있는 평야지대로 고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나름 경제력이 있었던 고을로 보이는 곳이다. 홍산현 관아 건물 중 동헌 출입문인 아문은 옛날부터 있었던 건물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홍산현이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복원된 관아 아문 문루로 보인다. 홍산현은 현감이 고을 수령인 작은 고을이지만, 경제력이 있었기 때문에 문루가 있는 아문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문으로 이루어진 관아 출입문 위에 문루를 세운 전형적인 아문의 형태를 하고 있어 ..

조선 관아 2011.01.06

백두대간 구룡령(해발 1,013m), 강원도 양양과 홍천을 연결해 주는 고갯길

구룡령은 해발 1,013m 높이에 위치한 강원도 양양과 홍천을 연결해 주는 고갯길로 지금은 56번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강원도 영동지역과 영서지역을 연결해 주는 주요 고갯길로는 강릉의 대관령과 진고개, 양양의 구룡령과 한계령, 속초의 미시령, 고성의 진부령이 가장 잘 알려진 길이다. 그 중 한계령과 함께 해발 1,000m간 넘는 높은 고개이지만, 강원도 영동지역에서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길 중에서는 산세가 가장 평탄해서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던 길이다. 구룡령길은 평탄하지만 그 이름처럼 구불구불하고도 먼길이라서 "아홉마리의 용이 고개를 넘다가 지쳐서...."라는 의미를 붙일정도로 하루에 넘기 힘든 먼길이다. 그래서 양양쪽에서는 선림원이라는 큰 절이나 마을에서 고개를 넘기전에 하루를 쉬어가야만 했고,..

한국의 풍경 2011.01.06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보물 439호), 선종을 들여온 도의선사 승탑으로 추정되는 부도

설악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진전사지는 우리나라에 선종을 들여온 도의선사가 창건한 절로이다. 도의선사는 당나라에서 유학한 후 우리나라에 선종을 소개한 분으로 염거화상과 보조국사로 이어져온 선종계열로 현재 학국불교의 주류인 조계종의 원류가 되는 분이라 할 수 있다. 진전사는 구룡령 아래에 있는 선림원과 함께 대표적인 선종의 수행도량이라고 할 수 있는 사찰로 지금은 그 절터에 국보 122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부도만 남아 있다. 진전사지 도의선사탑은 진전사 옛절터 중에서 안쪽편에 있는 절터에 위치하고 있다. 이 부도의 탑신부는 8각형으로 전형적인 승탑인 부도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기단부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2층으로 만들어진 기단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기단부에는 각면마다 중앙과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두고 ..

예산 가야산 남연군묘,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는 명당 (?)

충남의 대표적인 평야지대인 내포평야가 있는 예산지역 서쪽편에는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과 그 북쪽으로 보원사와 가야사라는 큰 절이 있었던 가야산이 있다. 그 중 가야산은 내포평야 중심이 위치한 산으로 북쪽으로는 보원사지, 서산마애석불이 있고, 서쪽으로는 해미읍성과 개심사가 자립 잡고 있는 지역의 명산이다. 이 가야산 동쪽편 기슭인 덕산지역에는 구한말 풍운아인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을 이장할 명당자리를 찾다가, 이 곳 가야사 자리가 '2대에 걸쳐서 왕이 나올 자리'라고 하여 절을 불을 질러 없애버리고 그 부친의 묘소를 이장했다고 하는 명당자리라고 한다. 가야산 동쪽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뒤편과 좌.우에는 산능선이 있고 앞쪽인 동쪽 방향으로는 틔어져 있는 전형적인 명당자리하고 한다. 실제로 그 자리에 올라서서..

겨울 도봉산 등산로 (~도봉서원까지)

도봉산은 북한산 국립공원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서울과 의정부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있다. 최고봉인 자운봉(739.5m)을 비롯하여 만장봉(718m), 선인봉(708m) 등이 깍아지른 듯 솟아 오른 바위가 인상적인 산이다. 도봉산에는 천축사, 원통사, 만월암 등 크고 작은 사찰과 도봉서원 등의 명소가 있다. 등산을 위해서 이 곳 도봉산을 찾았던 것은 아니고, 이번에는 단지 이 곳 계곡에 위치한 도봉서원을 찾기가는길이라 도봉산 등산로 초입부분을 한번 걸어 보았다. 도봉산 등산로는 지하철1호선 도봉산역에서 출발하거나, 도봉산이 종점이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등산로가 시작된다. 도봉산 등산로는 다른 등산로에 비해서 크게 번잡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도심근교에 있어서 그런지 찾는 사람은 ..

한국의 풍경 2011.01.04

양양 선림원지 승탑(보물 447호)

양양 선림원지는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어서 서울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인 구룡령을 넘어가기 직전에 위치한 절터이다. 선림원은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가 창건한 사찰로 부근의 진전사와 함께 우리나라에 처음 선종을 도입한 사찰 중의 하나로 보인다. 선림원으니 10세기경에 산사태로 매몰되었던 것을 1960년대에 발굴 복원한 것이라 한다. 선림원지 부도는 일제강점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1965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복원한 것으로 지금은 기단부만 남아 있다. 원 위치는 뒷산 중턱의 50m 쯤 올라간 곳이었다고 한다. 이 부도의 네모난 지대와 8각의 아래받침돌은 같은 돌로 2매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받침돌 8각의 각 면에는 각기 안상이 1구씩이 있으며, 안상안에 교대로 사자 1쌍씩 4쌍이 새겨져 있다. 아래받..

홍성 조양문, 홍주성의 동문

홍주성은 조선시대 홍주목 관아가 있던 읍성으로 지방 읍성 중에는 규모가 제법 크고, 잘 보존되어 있는 읍성 중의 하나이다. 홍주성 내에는 홍주목 관아와 주요 행정시설들이 있었는데, 정3품이 목사가 다스리던 고을로 관아의 규모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홍주성에는 남쪽과 서쪽의 성벽, 동헌, 아문과 동문인 조양문이 남아 있다. 홍주성은 구한말 고종때 대대적인 수리를 한 성곽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가장 최근에 축성한 성곽이라고 할 수 있다. 홍주성에는 동문인 조양문, 서문인 경의문, 북문인 망화문으로 3곳에 문루를 세웠었는데 지금은 도심 한가운데에 조양문만이 남아 있다. 조양문은 구한말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일으킨 의병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로 상당부분 파괴되어 있던 것을 1975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홍주성의..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보령 성주사지에 뒷편에 위치한 강당터 옆에 있는 석불입상이다. 현재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상당부분이 마모되어 있고, 코을 비롯한 얼굴부분은 특히 심하게 훼손되어 일부는 시멘트로 메꾸어 놓고 있다. 원래부터 성주사지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 곳 성주사지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 석불입상은 처음 만들때부터 크게 잘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기는 힘들고, 어떤 연유로 인해 효험이 좋다는 미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석불입상에 비해서 얼굴의 훼손이 상당히 심하여, 시멘트로 메꾸어 놓은 현재의 모습은 부처님의 얼굴이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인물처럼 변해버렸다. 이 또한 부처님이 변신한 모습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희극적인 느낌을 주는 석불입상.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투박한 모습을 ..

홍성 결성현 동헌 아문과 책실

결성현은 충남 홍성군 서남쪽지역으로 충남지역의 넓은 평야지대인 내포지역의 서해 바다쪽 입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홍성군인 홍주목과는 별도로 현감이 수장이 고을이었다. 지금도 전해내려오는 중요한 농요 중 하나인 결성농요가 이지역에서 불렀던 농요이다. 결성현은 군사적, 교통이라는 측면에서는 중요했던 곳으로 보이지만 고을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던 곳으로 보인다. 결성동헌은 현재 결성면 소재지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을의 규모를 말해주듯이 동헌의 규모도 크지 않은편이만, 동헌 건물과 책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결성동헌의 출입문인 아문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문의 형태인 문루를 설치해 놓고 있지 않으며 단순히 서원이나 향교의 출입문처럼 삼문의 형식으로되 솟을대문이 아문 역할을 하고 있다. ..

조선 관아 2011.01.01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과 탑비

송광사 관음전 뒷편 언덕에 세워진 보조 국사 지눌의 감로탑이다. 보조국사 지눌은 오늘날 한국 불교의 중심이 되는 조계종의 정신적 지주이며, 고려말 무신정권기에 불교 개혁운동인 '정혜결사'를 일으킨 분으로 이 곳 송광사에 자리잡음으로써 송광사가 승보사찰로서 한국 불교의 중심이 되게 한 분이다. 이 감로탑은 고려후기에 만들어진 사리탑으로 2층의 대촤위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둥근공모양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사리탑은 둥근 공모양의 몸돌 등 고려후기 사리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만들어진 석재나 조각수법, 전체적인 비례 등의 조형미에 있어서는 통일신라나 고려전기의 사리탑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리탑은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조계종 불교를 대표하는 보조국사 지눌의 역사적 의미..

부여 무량사 극락전 (보물 356호), 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불전

부여 무량사는 통일신라 말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조선초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 선생이 말년에 이 사찰에 머물다 세상을 떠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량사는 부여군에 속해 있는 만수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지만 실제로 부여읍에서는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보령시와 경계를 이루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사 극락전은 우리나라 사찰 불전 중 삼국시대 지어진 황룡사나 미륵사에 있었던 큰 불전인 미륵불을 모신 장륙전과 비슷하게 외부에서는 2층, 내부는 단층으로 이루어진 불전이다. 남아 있는 불전 중 비슷한 형태로는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대웅전을 들 수 있다. 이런 사찰들은 대부분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대형사찰들로 전란과 조선시대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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