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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검정터, 조선중기 인조반정을 모의했던 곳

세검정은 서울 성곽 북서문에 해당되는 창의문 바깥에 위치한 작은 정자이다. 서울 도심과 가장 가까운 아름다운 계곡인 백사실계곡에서 흘러내려온 홍제천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중기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옹립한 반군세력들이 거사를 모의한 장소로 잘 알려져 있으며, 거사 후 이 곳에서 칼을 물로 씻었다는 것에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정자가 언제부터 처음으로 세워졌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가장 최근의 기록으로는 영조때인 1748년에 새로 고치면서 세검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다고 한다. 그 뒤 1941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옛 기록을 참조하여 복원하였다고 한다. 세금정 부근 홍제천은 옛날 종이를 만드는 조지서가 있었다고 하며, 실록의 편찬이 끝난 뒤 사초들을 모아서 이 곳에서 씻는 세초작업이..

조선 관아 2010.10.23

[서울 성곽] 홍지문, 오간수문, 탕춘대성

홍지문은 서울 성곽 북서쪽 출입문인 창의문을 지나서,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홍제천 계곡에 있는 성문이다. 조선중기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시 반란군이 반정을 모의한 세검정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반군이 경복궁으로 들어온 길에 있는 성문이다. 이 지역은 서울 성곽과 북한산성 사이에 있는 사각지대를 방어하기 위해 조선 숙종때 쌓은 북한산성과 인왕산 성곽을 연결해주는 탕춘대성의 출입문이다. 홍지문은 숙종때 쌓은 성문과 홍제천을 막아 놓고 있는 오간수문이 연결되어 있으며, 홍지문이 있는 길만 평지이고 성문 좌.우로는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쌓아 놓고 있다. 현재의 성문과 오간수문은 일제강점기에 홍수로 떠 내려간 것을 1977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서울 세검정 상명대학앞 홍제천가에 세워진 홍지문. 1921..

[맛집] 안동댐 아래 까치구멍집, 안동 헛제사밥과 간고등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안동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헛제삿밥과 간고등어를 들 수 있다. 헛제사밥은 제사상에 올려졌던 음식을 제사가 끝난후 먹는 밥을 제사와 상관없이 먹었다는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안동지역에는 유교적 전통에 자부심이 상당히 강한편이며, 지역마다 종갓집들과 고택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전통적으로 종갓집에는 제사가 상당히 많은 편이며, 한때 큰 권세를 누렸던 종갓집의 경우 불천위 사당에 제사를 올리기때문에 제사의 횟수는 더욱 늘어난다. 게다가 집성촌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기때문에 동네에서 제사는 거의 일상적인 일이 되었기때문에 제삿밥이 일상적인 먹거리가 되었고, 그 향수가 남아 있어 제사횟수가 줄어들어도 제삿밥을 만들어 먹는 경향이 생긴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

맛집 2010.10.21

안동 도산서원, 서원 관리인 살림집인 고직사

안동 도산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살림집인 고직사는 강당인 전교당 옆쪽의 상고직사와 유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 뒷편의 하고직사가 있다. 건물 규모는 유생들의 기숙인 농우정사나 동.서재봐다 약간 큰 것 같고, 도산서원 내에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약간 규모가 있어 보인다. 아마도 도산서원이 위치한 장소가 일반 민가와 상당히 떨어져 있기때문에 관리인들이 주변 민가에 살면서 출퇴근할 수 없어서 서원내에 항상 상주했었기때문인 것 같다. 또한, 고직사가 상.하에 따로 있는 것은 도산서원의 출발자체가 퇴계선생 생전에는 도산서당, 농운정사, 하고직사만이 있었는데, 선생 사후에 위쪽에 전교당과 사당인 상덕사가 건립되면서 제사 기능이 더해지고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의 숫자가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원 상고직..

조선 관아 2010.10.21

안동 추월한수정, 퇴계종택에 있는 정자

추월한수정은 안동 도산서원 인근에 있는 퇴계선생의 종갓집 오른편에 있는 정자이다. 보통 사대부저택과 같이 있는 건물은 별채 형식의 사랑채로 불리는데 이 곳 퇴계종택에서는 용도를 정자로 정한 것 같다. 건물은 앞면 5칸의 제법 큰 규모로 대청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주택의 형식과는 약간 다르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는데, 서원의 강당이나 관청건물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는 건물로 일반 주택의 살림집과는 그 모양새가 완전히 다르다. 지금도 퇴계선생의 종손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라서 그런지 건물 앞쪽에 비닐로 바람막이를 설치해 놓고 있다. 앞면 5칸의 큰 규모로 지어진 정자인 '추월한수정'. 온돌방이 왼쪽편에 1칸, 오른쪽편에 2칸이 있고,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추..

조선 관아 2010.10.20

안동 퇴계종택, 도산서원 인근 퇴계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집

도산서원 주차장에서 북쪽 언덕길을 넘어서 자동차로 조금 더 들어가면, 퇴계 선생의 종손이 사는 종갓집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퇴계선생 종택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후손인 하정공이 옛 종택의 규모를 짐작하여 세운 집이라고 한다. 종택은 낙동강과 가까운 앞.뒤로 작은 산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종택 앞 들판은 그리 넓지 않은 편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종택 건물은 앞면 6칸의 'ㅁ'자형 살림집과, 앞면 5칸의 추월한수정이라는 정자, 솟을대문과 행랑채,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으로 구성되어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구한말 경북 안동지역에서 유행했던 건물 양식들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종갓집에는 퇴계 종손이 아직도 집을 지키고 살고 있으며, 항상 손님들..

고택_정원 2010.10.20

안동 도산서원,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인 상덕사 (보물 211호)

상덕사는 도산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으로 퇴계 이황선생과 제자 조목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호계서원에서는 도산의 학풍을 이어받은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이 퇴계 제자로 같이 위패를 모셨으나, 당시 지역민들 사이에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 사이에 그 위상의 높고 낮음을 다투다가 같이 빠지면서 제자로서는 조목 선생만이 남은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상덕사는 앞면 3칸 규모의 크지 않고 소박한 형태의 건물로, 조선 선조때 지은 건물을 도산서원을 성역화하면서 크게 수리하였다고 한다. 당시 문화재로 지정된 토담도 돌담장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

조선 관아 2010.10.20

안동 도산서원, 강학공간의 중심인 전교당 (보물 210호)과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서재

도산서원 전교당은 강당기능을 하는 건물로 보물 210호 지정된 문화재이다. 도산서원 전교당은 퇴계 이황선생을 모신 상덕사를 제외하고는 제일 높은 곳에 있고, 건물 앞쪽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까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구조이다. 전교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1칸인 온돌방 한존재와 3칸인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형태나 구조는 간단하며 아주 소박하고 검소하게 지어진 건물로 여겨진다. 대청의 전면은 문을 두지 않고 개방되어 있으며, 옆면과 뒷면에는 쌍여닫이문이 있어 겨울에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강당 건물은 퇴계 이황선생께서 직접 세운 건물은 아닌 듯하고 선생 사후에 세워진 건물로 보인다. 강당현판에 적힌 '도산서원'이라는 현판은 선..

조선 관아 2010.10.20

안동 도산서원, 책을 보관하던 광명실과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

도산서원 건물배치에서 제일 특이한 점은 강학공간 입구에 누마루를 두지 않고, 진도문이라는 별도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도산서원이 입지한 위치의 가장 큰 장점인 낙동강과 강너머 마을의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산서원에는 정문에서 강당인 전교당까지 계단과 정원을 두고 있을 뿐 누마루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 다만 강학공간인 출입문 양쪽으로 누각식 건물이 광명실을 두고 있으며, 여기에 있는 작은 누마루에 서서 멀리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광명실을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진도문 양쪽에 두개의 건물을 두고 있다. 광명실은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 건물로 지었으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누각의 기능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도문을 들..

조선 관아 2010.10.19

안동 도산서원, 퇴계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던 도산서당

도산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중심영역으로 교학공간인 강당 전교당까지는 계단식으로 길이 조성되어 있고 서쪽편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서원 관리소인 하고직사가 있고 동쪽편에는 퇴계 이황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몸소 지은 도산서당이 있다. 아마도 강당과 기숙인 동.서재에는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퇴계 선생은 도산서당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당은 앞면 3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퇴계선생이 거처하던 '완락재'라 불리는 방과, '암서헌'이라고 불리는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 앞에는 연꽃을 심어 놓은 작은 연못이 있고, 도산서당 동쪽편으로 퇴계선생이 화초를 가꾸던 작은 동산이 있다. 도산서원 정문.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축대를 쌓아서 계단..

조선 관아 2010.10.18

안동 도산서원, 유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서재인 역락서재

퇴계 이황 선생이 세운 안동 도산서원은 계단식으로 건물들을 배치하고 있는데, 그 중 제일 앞쪽에 있는 건물들인 농운정사와 역락서재이다. 농운정사는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로 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서쪽편에 있는 건물이다. 서원 강당인 전교당 앞 마당에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지만, 아마도 이 곳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고직사 건물 앞에 추가로 세운 건물인 것으로 보인다. 역락서재는 서원 바깥에 있는 별채와 같은 건물로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을 위해서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서원 바깥쪽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도산서원을 찾아온 손님들이 묵으면서, 퇴계 선생과 학문을 논하던 장소인 것으로 보인다. 서원 안에 있는 유생들의 공부가 방해 받지 않도록 외부에서 손님을 맞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

조선 관아 2010.10.17

가족주말농장 (10월2주), 고구마를 수확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고..

10월 2주에 들어서면서 올 봄에 심었던 고구마를 수확했다. 작년에 비해서 절반 정도인 약 200여개를 심었던 것 같은데, 수확이 신통치 않았다. 올해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아니면 묘종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고구마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자라는 동안 고구마 줄기는 그럭저럭 잘 뻗어 나가길래 그럭저럭 수확은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주 좋지 않았다. 고구마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않은 것이 절반 정도가 되고 나머지도 적당한 크기로 자란 것이 드물 정도였다. 올해 수확한 고구마의 일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뿌리를 내린 것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였다. 고구마를 캐기 전.후의 고구마밭. 줄기는 제대로 뻗어 나가는 것 같은데 뿌리를 제대로 못 내린 것 같다. 배추는 어느덧 형체를 갖추기 시작..

기타 2010.10.17

안동 도산서원, 과거시험을 보았던 시사단과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

2010년 가을에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조선시대 양반문화와 유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안동 도산서원을 찾아가 보았다. 주말이기도 하고 예전에 비해서 전통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이 곳 도산서원을 찾는 사람에 예전에 비해서 많이 늘었다는 느낌이다. 도산서원은 병산서원과 함께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경치가 매우 수려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서원이다. 도산서원의 입지가 상당히 좋다는 것은 학문을 수양하는 장소로서 일반인들이 도산서원까지 들어가기는 쉽지는 않지만, 큰길에서 도산서원까지의 길은 낙동강변 언덕을 따라서 나 있는 숲길이다. 하지만 낙동강 건너편으로는 제법 넓은 들판이 있고, 마을들도 많이 보이는 편이다. 이는 수양을 위해 깊은 산중이나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일반 세상과..

조선 관아 2010.10.17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보물 628), 금제 굽다리접시 (보물 626호)

삼국시대 고분의 부장품들은 당시 사람들의 사후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다. 신라 천마총, 황남대총을 비롯한 고분들과 백제 무령왕릉, 그리고 가야의 고분들에서는 엄청난 수량의 부장품들이 발굴되었다. 그 중 무기류와 함께 가장 많이 출토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릇류이다. 고분을 조성할 때에는 그릇을 비롯하여 직물류나 다른 종류의 부장품들도 있었겠지만, 귀금속류와 함께 썪지 않기때문에 그 부장품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경주 황남대총에서는 다량의 그릇류가 출토되고 있는데 그 중 잘 알려진 것은 보물 626호로 지정된 금으로 만든 굽다리접시와 보물 623호인 금은으로 만든 그릇이다. 이 외에도 당시에 많이 사용되었던 칠기 그릇도 온전하지는 않지만 파편이 남아 있으며, 청동으로 만든 솥, 은으로 만..

중앙박물관 2010.10.17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국보 201호)

봉화군 북지리는 봉화읍에서 십여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백산에서 발원한 큰 개천이 봉화읍으로 흘러 들어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을 나와서 봉화읍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서쪽편 개울가에 국보인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은 교통의 요지로서 신라시대에 500여명의 승려들이 있었던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북지리 여래좌상은 자연암벽을 파서 만든 석불로서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국보 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침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법회가 있어서 세부적으로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크고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이 석불을 중심으로 사찰이 들어선 것 같은데, 내력이 깊어 보이지는 않아 보였다. 북..

봉화 닭실마을, 삼남지역 4대 길지로 손꼽히는 마을

봉화 닭실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안동 화회마을,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삼남지역 4대 길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이 닭실마을은 조선 중종때 문신 충재 권벌선생이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면서 외가쪽 집안이 있던 이 곳에 입향하면서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게 된 마을이다. 닭실마을은 봉화읍에서 울진과 태백방향으로 약 1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아늑한 마을이다. 마을 앞쪽으로는 2개의 시냇물이 마을 둘러싸고 있으며, 뒷편으로는 나즈막한 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마을 안쪽으로는 충재 선생이 거북바위 위에 세운 청암정과 종가집이 있다. 지금은 도로가 남쪽편 철로쪽과 연결되어 있어서 청암정과 종가집이 제일 안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닭실마을을 들어..

고택_정원 2010.10.16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말갖춤, 비단벌레 장식

신라를 포함하여 가야, 백제, 고구려 고분에서는 말과 관련된 벽화와 각종 말갖춤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중세 유럽의 모습을 표현한 철기병과 판금갑옷, 화려한 말갖춤들을 보면서 조선시대의 갑옷과 말갖춤의 단순함때문에 기술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는 겉보기에서만 그럴뿐 실용적인 면에서 조선시대의 말갖춤이 상당히 실용적일 것이다. 삼국시대의 말갖춤은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상당히 발달된 것으로 이는 북방 기마유목민과의 투쟁에서 나온 결과로 보이며 이후의 가벼운 갑옷과 말갖춤으로 변하것도 기마민족과이 투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황남대총에서 동시대의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말갖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세련되고 화려한 말갖춤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그 수량 또한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고분에서 출토된 것은 부장..

중앙박물관 2010.10.15

봉화 닭실마을 충재 권벌선생 종택

봉화 닭실마을은 안동 천전마을,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이중환의 택리지에 삼남지역의 4대 길지로 꼽는 마을이다. 이 곳 닭실마을은 조선중기 문신 충재 권벌선생이 사화로 파직당하여 외가인 봉화 닭실마을에 들어오면서 안동권씨 세거지를 형성한 곳으로 그 중심이 되는 집이 이 곳 종택이라 할 수 있다. 충재 권벌선생의 종택은 저택 오른편에 있는 넓은 거북바위 위에 세운 청암정으로 유명하다. 청암정에서 작은 문을 들어서면 충재선생의 종택이 보이는데 살림집은 경북 북부지역의 전통적인 양반집 저택 형태인 'ㅁ'자형 구조로 하고 있으며, 바깥쪽에 사랑채가 있고, 대문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이다. 보통 경북지역 고택의 경우 사람이 찾아오면 종택 내부를 잘 보여주는데, 이 곳 닭실마을은 유명세가 있..

고택_정원 2010.10.14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팔뚝가리개 (보물632호), 환두대도

황남대총 부장자와 함께 묻힌 부장품 중 당시의 무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환두대도가 있다. 환두대도는 한나라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삼국시대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기이다. 고구려 벽화나 실크로드 우즈베키스탄에서 발견된 벽화에 보이는 고구려 사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증거로 이 환두대도와 조우관을 들고 있다. 환두대도는 고구려 뿐만 아니라 신라에서도 많이 사용되었기때문에 신라 사신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은제 팔뚝가리개는 명칭과는 달리 정강이가리개로 추정되고 있는 보물 632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이 것을 당시 갑옷을 구성하는 구성요소로 판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시대 이후의 갑옷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이다. 가슴꾸미개와 허리띠 또한 이런 무기류들과 함께 갑옷을 장식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유물이다. 황..

중앙박물관 2010.10.14

서울 석관동 의릉, 조선 20대 경종과 선의왕후 왕릉

서울 석관동에 위치한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의 능이다. 왕릉으로서는 한양도성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의릉은 장희빈의 아들로서 숙종 다음 왕인 경종의 능으로 선의왕후의 능과 앞.뒤로 나란히 있는 특히한 구조인 상하이릉봉이다. 이는 풍수지리설에 따라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의령의 능역이 되는 천장산은 남쪽편이 옛 홍릉지역과 함께 서울 동북지역에서 가장 넗은 녹지를 제공하고 있는 곳으로 주변에 많은 국책연구소와 대학들이 자리잡고 있다. 의릉이 있는 곳을 사용한 정부기관은 옛 중앙정보부로 의릉영역내에 있는 중앙정보부 강당은 70년대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지금은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정원이 내곡동 헌인릉 부근으로 이전함에 따라서 옛건물들과 부지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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