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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궁박물관] 조선 왕실의 가구

경복궁을 관람해 보면 느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조선의 궁궐에는 가구가 많지도 않고, 크게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 궁궐 중에서 국왕이 거처하는 곳에는 가구를 경호상 문제로 가구를 많이 두지 않으며, 간단한 책상류 만 놓여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왕실의 가구는 국왕과 왕비의 처소가 아닌 다른 곳에 잇었던 것으로 보이며 크기가 크고 붉은 옻칠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왕실 가구 중 농이나 문갑 같은 여성용 가구의 경우 붉은 주칠 바탕에 자개 문양을 박아 장식한 것들이 주료를 이루며 화각 기법으로 제작된 것들도 상당수 있다. 가구의 장식 문양으로는 용, 봉황, 십장생, 박쥐 등 부귀와 수복을 상징하는 것들이 많이 이용되었다. 고궁박물관에는 가구도 있지만 음식을 차리더 상이나 소..

지역박물관 2010.11.09

김포향교, 김포현의 중등교육기관

김포공항 서쪽편에서 강화도가 있는 서해안까지가 현재의 김포시이다. 조선시대의 김포현과 통진현이 합쳐진 곳이 현재의 김포시이고, 현재 김포시청을 중심으로 김포현이 존재했었다. 김포현은 남쪽으로는 부평부, 북쪽으로는 통진현, 서쪽으로는 서해안, 동쪽으로는 양천현과 경계를 이루는 영역이다. 옛 김포현의 흔적인 관아 건물들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관청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김포향교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김포향교는 원래 김포장릉 부근에 있었다고 하며, 장릉의 조성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가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고 한다. 건물들은 그 내력이 적혀 있지 않는 것으로봐서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건물또한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구한말에 세워진 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물..

[고궁박물관] 조선의 도량형 제도와 의료기관

도량형는 국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 되는 제도로 시간을 통일하는 천문학과 함께 실제 생활을 통제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고대 이래로 음악과 함께 유교의 정치이념에서 예악으로 중시된 것이다. 서구에서 전국시대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던 여러 도량형을 하나로 통일한 것을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 간주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태종대에서부터 세종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많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시간의 기준이 되는 천문학, 물시계, 역법을 정비하였으며, 음률의 기준을 제시한 각종 악기의 제작과 국민생활에 밀접한 도량형을 제도화하였고, 그 내용들이 법전인 '경국대전'에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세종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계속 사용하다고 숙종에서 영.정조 시기에 기존의..

서울과학기술대(서울산업대) 교정 둘러보기, 공릉동 옛 서울공대 건물들이 남아 있는 캠퍼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얼마전까지 서울산업대로 불리웠던 학교이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가 있었고, 해방후에는 서울대학 공과대학이 사용하던 장소이다. 서울과학기술대는 구한말 일제에의 우라나라가 강제 병합되었던 1910년대에 직업학교로서 출발한 전통이 있는 학교이다. 오랜기간동안 국립 공업전문학교로서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0년대 서울대 공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 그 교사 건물들을 이어 받았고, 1988년에는 4년제인 국립산업대가 되면서 확장되어 현재는 4개의 단과대학과 6개의 대학원이 있는 종합대학이 되었다고 한다. 이 학교는 서울대 공대 캠퍼스를 그대로 받아서인지, 학교부지가 15만평으로 서울에서는 상당히 규모가 큰 대학캠퍼스이다. 넓은 대학캠퍼스 ..

한국의 풍경 2010.11.07

[서울 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천문학, 천상분야열차지도각석(국보228호)

동아시아에서 천문학은 국왕의 권위와 대외관계에 관련된 정치와 외교에서 아주 중요한 학문이었다. 그래서 서양의 천문학에 비해서도 상당히 발달되었던 학문의 한 분야였다. 천문학은 해와 달의 움직임, 계절의 변화에 따른 별자리의 이동을 기본적으로 하고, 천문학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였던 행성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 하늘의 뜻을 살피는 중요한 행사였던 일식과 월식의 예측 등의 천문학 연구가 국가 통치에서 국왕과 나라의 권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는 한나라 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위상을 강화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특히, 조선전기 세종때에는 조선을 건국한지 얼마되지 않았기때문 국가의 위상을 정립하고, 국왕의 권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천문학 연구가 활발히 일어..

서울과학기술대(서울산업대) 건축관과 무궁관, 옛 서울공대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

서울과학기술대학교(옛 서울산업대) 교정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로 시작해서 서울공대가 1970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까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곳이다. 이 대학 교정에는 옛 서울공대의 흔적으로 'ㅁ'자형 건물인 본관과 전기전자관이 있고, 남쪽편에는 가장 권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작은 건물인 광산학고 교사였던 대륙관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물의 권위적인면과는 달리 해방 이후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에 세워진 학교 교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도 몇동 남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건축관과 무궁관 건물일 것이다. 이 건물들은 단층건물로 해방 이후에 세워진 많은 학교 교사건물과 비슷한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들은 지금도 이 대학의 건축과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

한국의 풍경 2010.11.06

[고궁박물관] 조선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 간평일구와 혼개일구, 신법지평일구

조선시대에는 천문학은 제왕의 학문으로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그 중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는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세종때 만들어진 정밀한 시간측정 도구인 물시계는 그 원형이 남아 있지 않고, 그 일부인 자격루가 덕수궁 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왕권의 상징으로 시간의 동기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시계는 시간의 근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인데 반해 해시계는 태양의 그림자를 가지고 시간과 절기를 측정할 수 있는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시계이다. 고궁박물관에는 세종때 만들어진 오목해시계인 앙부일구(보물845호)를 비롯하여,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간평해시계와 혼개해시계 (간평일구와 혼개일구, 보물 841호), 평면해시계(신법지평일구, 보물 840호)를 비롯하..

서울 공릉동 구 서울공과대학 본관

서울대 공과대학이 1970년대에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남은 건물을 활용하고 있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옛 서울산업대) 캠퍼스에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규모가 꽤 크고 내력이 있어 보이는 건물인 다산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제감점기시절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본관 건물로 만들어진 'ㅁ'자형 건물이다. 건물 가운데에는 정원인 중정을 형성하고 있고, 중앙에는 8층 높이의 타워를 만들고 있다. 건물 중앙 현관에는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는 권위적이고 일본군 사령부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전형적인 일제강점기의 관공서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많은 건축물들 중에서도 그 규모로는 몇손가락 안에 손꼽힐 정도로 규모가 큰 건축물이며,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건물이라는 점에서 한국 근대공업교..

가족주말농장(11월1주), 김장배추만 남아 있는 앙상한 풍경의 밭

4월에 시작한 주말농장이 어느덧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인 11월에 들어섰다. 올해는 의욕적으로 여러가지 작물들을 심어 봤는데 날씨가 워낙 좋지 않아서인지 작년보도 수확이 좋지 않았다. 겨울로 접어드는 시점인 11월에 들어서면서 추위가 한번 왔었는데 그 위력을 다시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올해도 한번의 추위로 배추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물들이 추위에 얼어 죽어버렸다. 그렇게 무성하게 자라던 잡초들마저 힘을 잃고 다 죽어버렸다. 한참동안 열릴것같았던 호박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계절이라는 것이 생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자연의 섭리가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한 주였다고 할 수 있다. 주말농장에 마지막으로 남은 작물인 김장배추. 실력부족으로 제대로 자라지는 못하고 있지만..

기타 2010.11.05

서울 공릉동 서울산업대학교 대륙관, 옛 서울공대 광산학과 교사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옛 서울산업대학교) 교정 남쪽에 위치한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대륙관이다. 당시 경성제국대학교 광산학과 교사로 세워진 건물로 현재는 이 학교 토목공학과에서 사용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적으로 대학건물은 단과대별로 건물을 사용하지만, 서울대는 학교별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전통은 아마도 경성제국대학 시절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이 건물은 광산학과에서 단독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광산학과라는 분야의 특성으로 인해 옛 서울공대 건물 중에도 가장 권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중앙에 본관이 있고, 양쪽에 실험실과 연구실이 있다. 강당처럼 생긴 양쪽의 건물은 원래 무도장과 강당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서울 고궁박물관] 조선의 궁궐

조선의 궁궐은 왕과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이자 정치와 행정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의 궁궐로는 법궁이자 북궐로 불린 경복궁과 가장 오랜기간동안 국왕이 머물렀던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 서궐인 경희궁, 남궐이라 할 수 있는 덕수궁이 있다. 궁궐은 크게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인 정전과 편전, 국왕과 왕비가 머물던 내전, 세자가 머물던 동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궐내각사를 비롯하여 많은 부속 전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경복궁 고궁박물관에는 많지는 않지만 궁궐과 관련된 여러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로 건물의 공사내력을 적은 상량문과 각종 건물에 내걸었던 현판, 화재를 예방하고자 하는 부적의 의미를 갖는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궁궐에 대한 이해는 박물관보다는 실제 궁궐의 ..

지역박물관 2010.11.05

서울 공릉동 구 서울공과대학 , 옛 서울대 전기전자관

서울 동북쪽 육군사관학교와 태릉이 있는 지역에 소재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옛 서울산업대학교) 교정에 있는 근대 건축물인 "공릉동 구 서울공과대학'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1975년 서울대 관악캠퍼스로 공과대학이 이전하기까지 사용했던 건물들을 인수받아 사용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옛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캠퍼스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인지 캠퍼스내에는 서울의 웬만한 대학보다도 교정이 넓고 아늑한 편이다. 서울대 공대의 전통이 있어서 그런지 캠퍼스에는 오래된 건물들과 키가 큰 수목이 있는 가로수길이 있어서 상당히 낭만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 그 중 근대건축물로 지정된 건물은 옛날에 서울대 전기.전자 공학관련 학과들이 있었던 건물로 이 건물에서 공부했던 학생들이 현재 한국의 산업을 이끌어가는 주역이..

[서울 고궁박물관] 조선의 국가의례 (길례,가례,빈례,군례,흉례)

조선에서 유교는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유교 사회에서 '예禮'는 사회질서와 국가의 권위를 규정짓는 사상적 기반이 되는 것으로 조선사회에서는 매우 중시되었다. 조선 왕실에서는 '예'를 구현하는국가적인 의례로서 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의 5가지를 오례라 하고 법과 통치이념으로서 규정하였다. 길례는 종묘와 사직에 제를 올리는 것으로 가장 중시된 의례이며, 가례는 결혼 등의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하는 의식을, 빈례는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을, 군례는 군대의 의식과 예절을, 흉례는 국장을 포한 상 중에 행하는 의식을 말한다. 조선의 국가 의례는 법률적 성격을 갖는 성종 때의 '국조오례의'에 상세히 정의되어 있으며, 그 세부적인 절차까지 세밀하게 운용되었다. 고궁박물관에는 조선의 오례에 대한 이해와 당시의 ..

지역박물관 2010.11.04

서울 봉은사, 조선 왕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는 종로의 조계사와 더불어 현 시대를 대표하는 도심 불교 사찰이다. 봉은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조선 9대 국왕인 성종의 능을 이 곳 강남지역에 조성하면서 원찰 역할을 할 작은 사찰인 견성사를 중창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봉은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걸 중 한명인 문정왕후가 선릉 옆에 있던 사찰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고양 서삼릉에 있던 중종의 정릉을 옮기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정왕후는 조선시대 불교를 크게 중흥시켰는데, 봉은사와 양주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고, 승과를 실시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문정왕후가 배출한 많은 인재들 중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이 임진왜란 당시 승병으로 전란을 극복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기..

전국 사찰 2010.11.02

[서울 고궁박물관] 조선시대 관인 (도장)으로 본 관직과 행정체계

조선시대 관직은 크게 출신에 따라서 문반.무반.잡직으로, 근무지에 따라 경관직.외관직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그 직위에 따라서 정1품에서 종9품까지 이루어진 18등급과 종6품 이상을 상.하로 나누어 총30등급의 품계가 있었다고 하며, 조회때 서는 위치에 따라서 당상관, 당하관, 참상관, 참하관으로 나눈다. 또한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 다양한 겸직제도를 운영했으며, 관직의 수가 5,000개 이상 된다고 한다. 고궁박물관에는 조선시대 행정체계와 관직의 운영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당시에 운영되었던 다양한 부서의 관인들을 전시하고 있다. 관인은 위조를 방지하고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주로 청동이나 황동으로 만들었으며, 그 품계에 따라서 크기와 재질이 법전인 '경국대전'에 정의되어 있다고 한다. 관인 외에도..

지역박물관 2010.11.02

[경복궁, 조선의 법궁] 궁궐 출입문인 북문 신무문, 서문 영추문, 동문 건춘문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출입하는 문으로는 정문격인 남쪽 광화문이 있고, 동쪽에는 건춘문, 서쪽에는 영추문, 북쪽에는 신무문이 있다. 현재는 광화문과 신무문을 통해서 경복궁을 출입할 수 있고, 동.서쪽의 건춘문과 영추문은 굳게 잠겨 있다. 그 중 신무문은 청와대 정문과 연결되는 문으로 최근에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다. 경복궁 전체를 한번 둘러보고 건청궁과 집옥재, 향원정 일대에서는 최근에 개방된 신무문을 통해서 잠깐 바깥으로 나가서 청와대 정문과 신무문 바깥 모습을 관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경복궁 출입문 중 정문인 광화문은 삼문의 형식에 2층 문루를 올려 놓고 있으며, 나머지 동.서.북쪽 출입문은 단문의 형식에 1층 문루를 올려놓고 있는 구조이다. 북경 자금성과 비교해보면 자금성 정문은 5개의 출입문이..

궁궐_종묘 2010.11.01

[서울 고궁박물관] 왕실의 기록인 국조보감, 선원록, 의궤

조선 왕조는 기록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많은 기록을 남겼던 나라이다. 특히 왕과 왕실의 거의 모든 것을 적고 있는 실록과 승정원일기, 의궤는 그 기록의 방대함과 세밀함에 의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조선시대 역사기록은 사관들이 작성한 사초를 근거로 해서 국왕의 사후에 작성한 실록과 왕명의 출납을 기록한 승정원일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 실록과 승정원일기는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다. 경복궁 고궁박물관에는 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전시하고 있지 않으며, 비정기적으로 발간되었던 국조보감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 궁중행사를 기록한 의궤중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국조보감은 역대왕들의 본받을만한 것을 모아서 정리한 것으로 조선후기 숙종~헌종 시대까지 집중적으로 발간되었다고 하며,..

지역박물관 2010.11.01

[경복궁, 조선의 법궁] 공목재, 영사재 등 태원전 부속 전각들

태원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건물이지만, 원래 목적은 조선 왕실에서 발생하는 국상을 위해서 세워졌다고 봐도 무방한 건물이다. 조선시대 국장이라는 것이 대상은 왕과 왕비라서 많지 않은 것 같지만, 국장 기관이 3년상에 이르기때문에 기존 궁궐전각을 이용할 경우 번거로운 점이 많고 국장기간동안 운영되는 관청들이 있었기때문에 많은 업무공간이 필요해서 경복궁 중건시에는 이 곳에 태원전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유로 해서 조선시대에는 경복궁과는 별도로 창덕궁을 두고 있었으며, 경복궁이 불타버린 조선후기에는 창덕궁 옆에 있던 창경궁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왕이나 왕비가 승하한 경우 국장의 사유가 발생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국장을 준비하는 임시관청인 도감을 설치하는 것이다...

궁궐_종묘 2010.10.31

[서울 고궁박물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보 (어진,금보,옥책)

경복궁에 위치한 고궁박물관은 조선시대 왕실을 상징하는 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왕실과 관련된 유물들은 주로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왕의 초상화인 어진, 국왕의 존호를 올릴때 상징물로 사용되는 도장인 금보와 옥책이 있다. 또한 왕의 행적과 궁중의 행사를 정리한 각종 의궤류와 행사 준비물이 있다. 조선시대 천문과학기술 유물들 또한 국왕의 권위와 관련되어 있기때문에 이 곳 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 중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로 어보를 들 수 있으며, 이는 왕권을 상징하는 예물로 왕과 왕비, 왕세자 등의 인장까지도 통칭한다고 한다. 이 어보들은 국장행사의 하나로 존호를 올릴 때 사용했다가 왕의 신주와 함꼐 종묘에 보관했다. 어책은 어보와 함께 올린는 것으로 해당인물의 업적을 칭송..

지역박물관 2010.10.31

[경복궁, 조선의 법궁] 태원전,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션던 건물

경복궁 제일 뒷편으로 걸어들어가면 새로이 단장한 일군의 건물군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셨던 태원전이다. 구한말 경복궁을 중건할 때 국왕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태원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 곳 태원전은 평상시에는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국장이 있을때 빈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보통 국왕이 승하했을때 시신을 모신 관은 빈전에 안치하면서 국장절차가 시작되며 왕릉을 조성하고 발인할 때까지는 5개월이 소요된다. 그 이후에는 신주를 삼년상 기간동안에 혼전에서 모시는데, 그 장소가 경복궁에선는 태안전이 그 역할을 한다. 실제로 고종이 이 태안전을 세운 이후에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한 기간은 많지 않았던 것 같고, 일제강점기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건물인 관..

궁궐_종묘 201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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