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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려대박물관] 충정공 민영환 선생 자결한 자리에 솟아난 혈죽과 유품들

고려대 박물관에는 개화기 선구적 지식인으로 충정공 민영환 선생과 서유견문록의 저자 유길준을 선정하여 이 분들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충정공 민영환선생의 유품으로는 대표적을 잘 알려진 선생이 자결한 자리에서 솟아난 혈죽과 '대한 이천만동포에게 남기는 글'이라는 유서가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역사책으로만 보았던 충정공의 여러 유품들을 보면서 구한말을 어려웠던 국가의 형편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유품들은 부인 박수영씨가 수습하여 간직해 오다가 후손들이 1962년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충정공 민영환 선생은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을 반대하면서 자결로서 순국한 분이다. 민영환 선생은 명성황후의 조카로서 구한말 권문세가로 등장한 민씨 집안에서 개방적이고 강직한..

지역박물관 2010.12.01

남원 광한루원 완월정, 60년대에 광한루 연못을 확장하면서 세운 정자

광한루원 남쪽편에 있는 수중 누각인 완월정은 조선시대에 조성한 광한루 정원에는 없었던 정자로 1960년대 남한루원을 관광지로 개발할 때 신축된 것이라 한다. 여러곳에서 설명한 것으로 보면 광한루원은 황희 정승이 남원에 있을때 처음 조성했고, 조선중기때 송강 정철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광한루원을 확장했으며, 현재의 모습은 60년대에 크게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광한루와 좀 떨어져 있는 완월정과 그 앞에 있는 연못은 아마도 이때 확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완월정은 그 이름의 유래가 옛 남원성 남문 문루인 완월루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며, 정자는 조선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정자나 누각의 모습과는 약간 다른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완월정은 달이 뜨는 방향인 동쪽을 향하고 있는 'ㅗ'형 2층 누각으로 ..

조선 관아 2010.12.01

펄떡이는 생선처럼 활력이 넘치는 소래포구 어시장

인천 소래포구는 각종 젓갈로도 매우 유명한 어시장이다. 소래염전에서 나는 소금과 서해안에서 잡은 새우를 합쳐서 새우젓을 만들고, 만든 새우젓을 수원과 인천사이를 왕래하는 수인선을 타고 경기도 각지에 새우젓과 소금을 팔면서 오늘날의 소래포구가 만들어 졌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소래포구는 수도권에서 싸고 싱싱한 수산물들을 맛 볼 수 있고, 생동감 넘치는 포구의 활기참을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소래포구 어시장에는 오래전부터 수도권 주민들이 애용하던 새우젓 시장이 형성되었던 곳으로 지금은 싱싱한 횟감과 조개류, 꽃게, 대하 등 각종 수산물을 파는 가게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원래는 작은 포구에 있던 어시장이지만 규모에 있어서는 인천 연안부두 어시장에 견주어 비슷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횟감용 생..

한국의 풍경 2010.11.30

[서울 고려대 박물관] 조선시대 생활용구의 문양과 상징

고려대 박물관에 전시된 내용 중 조선시대 생활모습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각종 생활용구들을 장식하고 있는 문양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조선시대 생활용구에 도안된 문양은 많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는 감상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과 기원을 담고 있다. 이런 문양들은 대체로 기복적인 내용으로 행복, 화목, 다남, 장수, 벽사, 출세, 부귀 등의 소망을 담고 있다. 이러한 문양들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온 이래로 생활속에 담겨 있는 신앙적인 요소를 지니면서 오늘날까지 발전.전승되고 있다. 담배합과 연적. 행복을 뜻하는 글자들이 문양화되어 있다. 지금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양들이다. 나전벼루집 행복은 개인의 행복에서부터 극락왕생과 태평성대를 이루기..

지역박물관 2010.11.30

남원 광한루원 방장정, 연못 가운데 섬에 세운 작은 정자

남원 광한루 누각 앞 연못에 있는 섬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꾸면진 오작교 옆에 있는 섬에 있는 작은 정자인 방장정이다. 섬 가운데 육각형 지붕을 얹어 놓은 작은 정자가 있고, 사방으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제각기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있는 풍경이다. 이 섬과 연못은 약간 도교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넌 송강 정철이 광한루 앞 연못에 삼신도를 조성한데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정자인 방장정은 옛날 송강 정철이 세운 정자는 아니고 60년대에 광한루원을 관장지로 조성할 때 세운 것이라 문화재로서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광한루원 연못과 인공섬에서 자란 수령이 상당히 되어 보이는 고목들과 함께 한국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송강 정철이 조성한 삼신도 중에서 서쪽편에 있는 이 섬은 특..

조선 관아 2010.11.30

서울 천장산 산책, 경종의 의릉과 옛 중앙정보부 강당이 있는 곳

천장산은 서울 동북쪽에 위치한 해발 141m의 조그마한 산이다. 이 곳에는 연산군이 폐비 윤씨의 묘를 조성하기도 했으며,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의 무덤이 있는 의릉이 있고, 남쪽으로는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수도인 한양과 가까운 곳이었지만, 왕릉이 있는 구역으로 관리해와서 그런지 천장산에는 민가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이 능역으로 각종 공공기관이 들어서서인지 주변에 경희대, 외대, 동덕여대 등 많은 대학들과 과학기술원, 산업연구원 등 공공연구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천장산은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지만 많이 알려진 곳은 의릉을 중심으로 한 옛 중앙정보부가 있었던 의릉 영역일 것이다. 의릉에 옛 중앙정보부가 자리하고 있어서 오랜 기간동안 일반인..

남원 광한루원 영주각, 인공 연못에 조성한 섬에 세운 누각

남원 광한루원은 보물로 지정된 누각인 광한루만이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규모가 큰 인공 연못과 누각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인공정원이다. 지리산에서 발원해서 남원성 남쪽을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개천의 물을 끌여 들여서 만든 조성한 정원이 남원 광한루원이며, 세종때 명재상인 황희 정승이 이 곳을 처음 조성했기때문에 후대에 많은 인사들이 정원을 크고 화려하게 꾸밀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원 광화루원에 조성한 인공 연못에는 여러개의 큰 섬이 있고, 섬들에는 작은 정자들을 만들어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중 영주각은 광한루 앞 연못에 조성된 섬 중에서 동쪽편 섬에 세운 누각이다. 선조때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정철 선생이 관찰사로 재직시 남원 광한루원을 확장할 때 만든..

조선 관아 2010.11.29

[맛집] 떡갈비로 유명한 담양의 고속도로 IC 입구에 위치한 원조제일숯불갈비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먹거리 중의 하나인 떡갈비가 유명한 담양의 떡갈비집을 들러 보았다. 담양에서 실제로 떡갈비를 처음 만들어 팔았던 곳은 담양읍내의 시장 부근인 것 같은데, 저녁시간에 별로 시간이 많지 않아서 고속도로 IC 인근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담양 떡갈비가 워낙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되어서 외곽의 식당 또한 맛에 있어서 차이는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찾아 본 식당이다. 떡갈비는 갈비살을 햄버그스테이크처럼 만들어서 내놓는 음식인데, 일반 갈비처럼 숯불에 구워먹는 것은 아니고, 조리된 음식을 접시에 담아서 내어 놓는 음식이다. 떡갈비라는 음식이 고기의 질에서 맛이 좌우되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담양지역에서 만든 것은 맛이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며, 이 식당에서 만든 떡갈비 또한 맛은 상당히..

맛집 2010.11.29

남원 광한루 월매의 집, 조선 시대 중상류층이 살던 집을 복원한 초가집

남원 광하루원 남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초가집으로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이 초가집의 이미지가 이몽룡이 광한루 춘향에게 반하여 두사람이 백년가약을 맺은 집과 비슷해서 춘향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월매집'이라고 하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내부에는 춘향전에 내용을 말해주듯이 향단이가 부엌일 하는 장면, 월매가 손님을 맞는 장면, 방자가 식사하는 장면을 재현해 놓고 있다. 초가로 만든 이 주택은 일반 서민들이 살았던 주택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전남 강진의 지주였던 영랑생가나 고창 읍성 앞에 있는 조선후기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 고택과 비슷한 규모로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던 중상류층이 살았던 저택과 비슷한 규모이다. 초가로 이루어진 본채는 '-'형으로 되어 있는데 부엌을 포한하여 앞면 5칸이나 ..

고택_정원 2010.11.29

[서울 고궁박물관] 궁중음악과 조선의 악기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궁중음악은 예악禮樂을 실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다. 예악은 유교사회에서 필수교양으로 예禮는 자연의 이치를 절차로 만들어 스스로 체득하게 하는 것이고, 악樂은 정조를 길러 감정의 융화를 도모하는 것이라 하여 조선사회에서는 도덕에 의한 이상 정치를 달성하는데 예악을 보조수단으로 크게 중시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 궁중음악은 조상에 제례를 올리는 종묘제례를 중심으로 한 제례음악과 조회나 연회때 연주하는 예식음악, 왕이 행차할 떄 연주하는 행차음으로 나눈다. 조선에서는 음악과 더불어 춤을 추는 가무 또한 크게 중시되어 각종 의궤나 문서 등에 이와 관련된 많은 기록들을 남겨 놓고 있다. 조선시대 궁중음악을 규정하는 법규에 준하는 문서로는 '악학궤범'을 들 수 있는데 궁중음악에 대해서 법전 ..

지역박물관 2010.11.28

남원 광한루, 한국을 대표하는 누각 중 하나 (보물 281호)

광한루는 조선 세종 때 명정승인 황희가 처음 세워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이 광한루에 올라 멀리 그네를 타고 있는 춘향이를 바라보는 장면에 등장하면서 크게 유명해진 누각이다. 누각은 사방이 트여있어 주변의 훌륭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주로 경복궁 경회루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누각이라 할 수 있다 . 누각은 주로 규모가 큰 고을의 관청에서 세운 것이 많으며,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평양 부벽루가 가장 잘 알려진 지방의 누각이다. 주로 지역을 찾은 고위 인사들의 접대를 위한 공식적인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많이 사용되던 곳이다. 남원 광한루는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대표적인 지방의 명승지로 이름을 날린 곳이다. 다른 지역의 ..

조선 관아 2010.11.28

남원성, 정유재란때 왜군과 큰 전투가 있었던 읍성 (사적298호)

정유재란 당시 남원전투는 당시 왜군이 전북 남원성을 공격해 조.명 연합군과 전투를 벌린 것으로 각지의 의병들과 군민들이 합세해 벌린 큰 전투였으며, 결국 왜군에 패해 모두 살했당했으며, 그당시 살해당한 관민 일만명의 무덤이 남원에 있는 만인의총이다. 당시 왜군은 칠전량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격파하고 육군도 구례를 함락시키고 남원성으로 총진격하였으며 왜군의 수가 오만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남원성은 경상도에서 호남지역을 거쳐서 서울로 북상할 수 있는 길목에 해당되기 때문에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3,000명이 파견되었고 각지제서 관군들과 의병들이 모여서 일만이 넘는 민.관이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5만이 넘는 왜군의 주력부대와의 싸움에서 작은 읍성으로는 지키기 어려웠기때문에 남원성에 있었던..

[서울 고궁박물관] 정조와 규장각 신하들이 꽃놀이하면서 지은 시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궁중 미술 관련 유물 중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정조대왕이 당대의 핵심관료이자 학자들이 규장각 관헌들과 창덕궁 후원에서 꽃놀이를 하면서 지은 시들이다. 1792년 봄의 '내원상화임자갱재축'과 1793년 봄의 '내원상화계축갱재축'에서 약 40명 정도의 신하들과 술을 마시고 꽃구경을 하면서 시를 읊고, 글을 쓰면서 신하들과의 우의를 다지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규장각 관헌과 그들의 자제들인데, 정조대왕이 살갑게 규장각 학자들을 대했음을 알 수 있다. 참석한 사람들의 이력을 보면 정조 사후에 몰락한 사람도 있고, 무난히 살았던 사람도 있고, 다양한 인생경로를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글들을 보면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글을 짓는..

지역박물관 2010.11.27

인천 소래포구, 김장철을 맞아 바빠진 새우젓 시장으로 유명한 서해안 포구

11월 김장철을 맞이하여 젓갈을 준비하러 소래포구를 찾았다. 서해안 염전 입구의 작은 포구인 소래포구는 어느덧 서해안을 대표하는 포구와 어시장으로 변했다. 그래도 10여년전까지는 시골포구처럼 자동차로 찾아갈려면 좁은 시골길을 어느정도 거쳐야만 했는데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있는 시장처럼 변했다. 그래도 검은빛의 갯벌과 작은 포구, 그 포구를 드나드는 작은 어선들, 북적이는 사람들과 어시장 상인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다. 얼마전까지 사람들이 걸어다니면 추억을 만들던 수인선 협궤열차 철교는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래포구는 일제강점기에 근처에 소래염전이 들어서면서 염전 입구에 작은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마을로 보인다. 그 이후에 소래포구에 수인선 협궤 ..

한국의 풍경 2010.11.26

[서울 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회화

조선왕실은 회화를 국가 통치에 활용하기 위해서 다양한 회화를 제작하였다. 현재 프랑스와 반환 문제로 이슈화되어 있는 조선왕조 의궤를 비롯하여 많은 왕실 기록문서에는 화려한 채색이 들어가 있는 그림들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중요한 역사적 기록문화이자 예술품으로서 가치가 상당히 높은 작품들이다. 조선왕조는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진 바대로 도화서라는 관청을 두어 왕실에 필요한 그림을 그렸으며, 국정의 중요 장면을 그림으로 남기도록 하였다. 특히 정조대에서는 다양한 궁중행사들을 화려하고 정밀하게 그린 각종 의궤를 상당히 많이 제작하여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데 활용하였다. 또한 국왕의 어진은 왕실 도화서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업무로 당대에서 가장 뛰어난 화원이 제작하고 이를 진전에 모셔서 철저하게 관리하였다고 한다..

지역박물관 2010.11.26

만인의총 (사적272호),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일만 남원군민이 묻힌곳

남원 만인의총은 정유재란때 남원성을 지키다 죽은 일만 남원군민과 군인들을 합장한 무덤으로 그 역사적 중요성때문에 사적으로 지적된 곳이다. 남원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전주를 통해서 서울로 연결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 막마지 무렵에 왜군의 총공세가 영남의 진주성에서 큰 싸움이 있었고, 전략적 요지인 남원성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 그 싸움에서 남원성은 완전히 불타버리고, 남원군민, 군인 등 일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사했다. 이때 남원의 큰 사찰인 만복사와 선원사 또한 불타버리고 없어졌다. 만인의총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죽은이들을 한곳에 묻고 그들을 추모하는 사당을 지은데서 유래한다. 광해군이 충렬사라는 사당이름을 지었고, 현재 위치에 있는 만인의총은 원래는 남원역 앞에 있..

[서울 고려대 박물관] 조선시대 의복, 문방구, 생활용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시대 양반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양반들이 입던 의복과 사랑방, 안방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생활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들로 당시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유물들은 전반적이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당시의 특권층이라 할 수 있는 양반사회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림으로는 궁중화원들이 채색화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반차행렬도와 일본에서 그린 조선통신사 행렬도가 전시되어 있는데, 다양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의복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외출복인 도포와 갓. 당시 특권층인 양반들이 입었던 옷이지만 수수해 보인다. 양반집 여인네들이 입었던 저고리와 치마 양바들이 집에서 쓰고 ..

지역박물관 2010.11.25

가족주말농장 (11월3주), 마지막으로 김장배추를 수확하다.

주말농장을 4월부터 시작해서 마무리하는 단계까지 왔다. 실제로는 올해는 변덕스러운 기후와 잦은 비로 인해서 그렇게 신통한 수확을 얻지 못해서 8월 이후로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번주는 올해의 마지막 수확인 김장배추를 뽑았다. 날씨가 추워진다고 해서 급하게 남아 있던 배추를 모두 뽑았다. 김장배추를 100포기 이상 심었던 것 같은데, 절반 정도밖에 자라지 못하고 그나마 자란것도 배추포기가 제대로 생기지 못해서 겨우 김장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농사란 것이 개인의 노력이 아주 중요하기는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자연환경의 극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올해를 돌이켜 보면 그나마 8월까지는 수확이 잘 되어서 토마토, 가지, 감자, 참외까지는 제대로 수확한 것 같은데, 여름에 비가 자..

기타 2010.11.25

남원 만복사지 석불입상 (보물 43호)

만복사 절터에 있는 남아 있는 이 불상은 만복사를 처음 지을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위 위에 부처가 서 있는 입상 형태의 불사으로 뒷편에는 광배를 두고 있다.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부드러운 옷자락을 묘사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자연스러운 면이 보인다. 이 불상은 입체감있게 조각한 것이 아니라 마애불상과 조각상의 중간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전면부만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뒷면에도 그림 형태로 간략하게 불상을 새겨 놓고 있다. 만복사는 고려시대에 창건한 평지사찰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 버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석탑, 당간지주, 석좌 등 석재로 만든 유물들이 일부 남아 있다. 조선전기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

남원 만복사지 석좌, 거대한 청동불상을 올려 놓았던 자리 (보물31호)

만복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남원성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던 아주 큰 사찰로 남원성 동쪽편의 선원사와 더불어 남원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큰 사찰이었다. 만인의총의 유적에서 알 수 있듯이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에서 왜군과 큰 전투가 있었고 수많은 수많은 관민이 죽었다. 이때 만복사도 함께 불타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보물 31호로 지정된 만복사지 석좌는 사찰 서쪽편에 있던 불전의 불상을 올려놓았던 석좌로 육각형으로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이 석좌는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상.중.하대를 조각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대에는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꽃을 장식하고 있는데 고려시대 유행한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상대 중앙에는 불상을 끼웠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다. 만복사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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