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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

서울 청량리 옛 명성황후 홍릉의 능역 안에 세워진 세종대왕기념관이다. 우리나라가 한참 경제개발을 준비하던 60년대말에 세워진 이 곳 세종대왕기념관이 세종대왕과 별로 관련이 없는 홍릉 능역에 세워진 것은 논리적으로는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주변이 70년대 경제개발의 브레인 역할을 하던 곳이기 때문인것으로 보인다. 왕릉이 있는 지역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국유지로 남아 있었고, 해방이후 서울 부근의 활용가능한 국유지인 능역에는 많은 관공서들이 들어섰었다. 그 중 홍릉능역은 70년대 경제개발의 브레인역할을 했던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연구원(KEIT) 등 국가 산업 및 기술정책을 주도하고 이끌었던 기관들이 많이 들어섰고, 지금도 대부분 그런 기..

한국의 풍경 2010.10.14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

봉화 닭실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천변마을과 함께 이중환이 '택리지'에 3대 명당지로 꼽은 마을이다. 봉화읍에서 약 10리 정도 떨어진 이 곳 닭실마을은 조선중기 문신 충재 권벌이 중종때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여 외가의 세거지였던 이 곳에 입향하면서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닭실마을의 명성에 비해서 오래된 고택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양반들이 모여살던 대부분이 깨끗하고 넓은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반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에서 제일 잘 알려진 곳으로 충재 권벌의 종가집 한편에 위치한 청암정이다. 청암정은 충재 권벌선생이 세운 정자로 거북모양같은 바위에 세워졌으며 주변에는 연못이 있다. 청암정에는 퇴계 이황선생을 비롯하여 당대의 학자들이 방문하여 학문을 교류했던 곳이다. 청암정은 봄..

조선 관아 2010.10.14

가족주말농장 (10월1주), 호박은 익었고, 배추는 살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올해 가을도 벌써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 10월에 들어섰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전국적으로 농작물 작황이 아주 좋지 않다고 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주말농장도 기후의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고추가 8월부터 병에 들어서 다 죽어버리고 나니 밭에 가서 할 일도 사실은 많지 않다. 9월 들어서 배추파동이 전국적으로 발생해서 걱정된 마음으로 배추를 심었었는데, 절반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다른 야채라도 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열무와 상추를 심었었는데, 이번주에는 싹이 돋아났다. 바쁜 시간에 틈을 내서 밭에 가보기는 했지만 특별히 할 일은 없었던 한 주였다. 가을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던 호박이 어느덧 어른 얼굴보다 크게 자랐다. 어떻게 먹을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기타 2010.10.13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국보194호), 각종 장신구

경주 황남대총은 북분과 남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피장자가 남성으로 추정되는 남분에서도 다량의 장신구가 발굴되었다. 남분에서 발굴된 장신구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국보 194호로 지정된 금목걸이다. 이 목걸이는 금사슬 4줄과 속이 빈 금구슬 3개를 교대로 연결하여 만든 것으로 옥을 사용하지 않고 전체를 금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남분에선 금목걸이 외에 금반지, 은반지, 유리구슬, 청동구슬, 다량의 곱은옥 등이 발굴되었으며, 북분에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장신구들이 발굴되었다. 발굴된 장신구들은 상당히 화려하고 세공기술이 섬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국보194호). '금의 나라' 신라를 대표하는 금제 장신구 중의 하나이다. 전체를 금으로만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중앙박물관 2010.10.12

세종대왕 옛 영릉 석물과 신도비

영릉은 세종대왕의 능으로 원래는 서울 내곡동 태종의 능인 헌릉 서쪽편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하여, 현재의 위치인 여주로 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주로 이장하면서 기존의 석물들은 무거워서 옮기기 힘들다고 하여 땅속에 묻었다고 하는데, 70년대에 그 석물과 옛 영릉 석실들이 발굴되어 현재는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옛 영릉은 '국조오례의'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능으로 현재의 영릉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 마당에 전시된 석물들은 영릉에 있었던 모든 석물들이 발굴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 남아 있다고 한다. 발굴된 석물은 무인석 2기, 문인석2기, 석양.석마 2기씩, 장명등, 망주석, 혼유석, 고석과 신도비가 있다. 청량리 옛 홍릉 능역에 속..

물시계, 자격루를 1/2로 축소한 조선시대 물시계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 앞에 전시된 조선시대 물시계이다. 세종때 만들어진 물시계인 자격루 1/2로 축소하여 만든것이라 한다. 이 물시계는 조선 중기 중종때 주조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 구성품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서 그런지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덕수궁에 전시된 자격루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작동원리도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물시계는 자격루에 비해서 작고 아담해 보인다. 부표가 설치된 물통이 2개가 있어서 하나가 작동하지 않더라도 계속 작동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물시계에 물을 공급해 주는 뒷편에 있는 큰 물통 큰 물통 앞에는 작은 2개의 물통이 있어서 부표가 설치된 물통에 물을 정밀하게 흘러보내는 역할을 한다. 부표가 설치되어서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물통. ..

수표, 청계천 수위를 측량하던 장치 (보물 838호)

서울 청량리 명성황후 홍릉이 있었던 자리에 조성된 영휘원 뒷편으로는 세종대왕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는 그리 크지 않은 건물로 약간을 낡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이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낮았던 60년대에 세워져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세종대왕 기념관 건물 앞에는 보물 838호 지정된 청계천 수위를 측정하던 장치인 수표가 서 있다. 수표는 조선 세종때 강우량을 측정하더 측우기와 함께 기상현상을 측정하던 시설이다. 세종때 만든 수표는 나무로 만들었으며, 촌.푼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수표는 청계천 수표교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성종때 만든 수표를 개량하여 영조때 만들어 설치한 것이라 한다. 청계천 수표교에 설치되어 있던 수표. 6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서울 영휘원(사적361호), 고종의 후비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소

영희원은 조선 26대 고종황제의 후비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소이다. 황귀비는 조선의 마지막 왕이라 할 수 영친왕을 낳았으며, 그녀의 위패는 경복궁 뒷편 칠궁에 모셔져 있다. 황귀비는 양정의숙, 진명여학교를 설립했고, 숙명여학교 설립에 거액을 기부하여 구한말 사학발전에 공헌하기도 했다. 원래 이곳은 명성황후의 홍릉이 부근에 있었고, 고종도 이 곳에 능을 조성할려고 했던 것 같은데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은 남양주에 위치하고 있다. 영휘원은 영친왕의 장남이자 영휘원 주인인 엄귀부의 장손인 이진의 묘소인 숭인원과 나란히 있고, 아들인 영친왕과 며느리인 이방자여사의 묘는 영원이라하여 남양주 홍릉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고종의 후비이자 구한말에 여러 사학 설립에 기여한 엄귀비의 묘소인 영휘원 능원 입구임을 알..

서울 숭인원 (사적361호), 명성황후 능인 홍릉이 있었던 자리.

서울 청량리 북쪽편에 위치한 숭인원은 원래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의 능이 홍릉이 있었던 자리이다. 1919년 고종이 죽으면서 남양주 금곡동에 고종의 홍릉이 조성되면서 이장하였다. 바로 옆에는 고종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의 묘소인 영희원이 있는데 이는 고종의 능을 생전이 이 곳에 조성할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홍릉이 이전되고난 빈자리에 영친왕의 맏아들인 이진의 묘소가 1922년에 조성되면서 숭인원으로 불리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이지역이 홍릉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주변에선 도심속의 작은 숲을 이루는 공간과 국가기관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숭인원은 고종의 아들이자 일제강점기에 마지막 왕이라 할 수 있는 영친왕의 맏아들인 이진의 묘소이다. 아마도 조선시대를 마감하는 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보인다. 출입..

서울 살곶이다리 (전곶교, 사적160호), 조선전기에 만들어진 가장 큰 다리

살곶이는 중량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한양대학교 동남쪽편 개울 부근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곳 살곶이 부근 뚝섬지역에 풀이 많아서 국가에서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었다고 하며, 기병들의 열병식이 이 곳에서 행하여졌다고 한다. 조선초 태종이 광나루에서 매사냥을 하고 살곶이에 있는 낙천정과 풍양이궁을 수시로 행차했기대문에 세종이 이 곳에 다리를 놓게 하였으나 완성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서울동쪽과 동남쪽지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주요 교통로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길이어서, 많은 사람의 민원에 의해서 성종때 이 다리를 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하천을 보면 강폭이 조금 있고, 물도 깊어 보이는데 배로 건너기도, 걸어서 건너기도 애매한 지형을 하고 있어 다리에 대한 수요가 많았던 것으로 보..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COEX), 강남의 번영을 상징하는 종합무역센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COEX는 1979년 처음 개관을 한 이래, 한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종합무역센터이다. 이 지역은 선정릉에 가까운 것으로 보아서는 원래 선정릉 능역에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그래서 이렇게 넓은 토지를 확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원래는 무역박람회를 위한 종합전시관으로 개관하였으며, 54층의 무역센터빌딩을 비롯하여 최근에 지은 아셈빌딩과 컨벤션센터까지 COEX를 구성하는 건물들이 계속확장되어 왔다. 초기에는 전시장만 있다가, 88올림픽을 즈음하여 무역센터빌딩,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 현대백화점, 공항터미널이 지어졌고,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개최하면서 북쪽에 컨벤션센터, 아셈빌딩, 코엑스인터콘티넨탈호텔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COEX를 ..

가족주말농장 (9월4주), 배추가 자리기 시작하는데.. 그 모양이 글쎄??

배추를 심은지 2주째가 되는 9월말이다. 올해는 김장배추가 작황이 좋지 않아서 전국적으로 배추파동이라고 할 정도로 배추가 잘 자라지 않았다. 사실 배추를 심을 때부터 배추모종시 시원찮았고, 그 이후로도 큰비가 여러번 왔던 것 같다. 걱정된 마음으로 큰 할일은 없었지만 밭으로 나왔더니 아니라 다를까 배추가 자라는 모습이 영 시원찮고, 1/3가량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이번주에는 크게 할일도 없고 해서 다른 것이라도 먹어보고자, 지난번에 심으려다 그만두었던 열무씨를 밭에 뿌렸다. 제때 자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작정 씨를 뿌려 보았다. 올해는 여름이 되기전까지는 작물들이 잘 자라는 것 같기도 하고, 나름 작년보다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서 잘 자랄줄 알았는데 여름을 지나면서, 고추에 병이 들기..

기타 2010.10.10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관모와 관제장식, 북분 은제 관식(보물625호), 남분 금제 관식(보물630호)

황남대총에서는 신라시대 관모와 관꾸미개가 여러점 출토되었다. 관모는 머리에 쓰는 작은 모자형태이고, 관꾸미개는 V자형태의 새날개 모양의 장식을 관모에 묶어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는 머리깔는 머리깔을 감싸도록 깊이 눌러쓰는 것인데 상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재료로 비단.말총.금동.대나무 등으로 다양하다. 신라시대 금동관모는 실제 사용되었다기 보다는 부장품으로서 장식적인 의미를 많이 갖는 것으로 추정된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로 재구성한 당시의 관모 착용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금제관꾸미개, 남분 (보물63호).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관꾸미개라 할 수 있다.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되었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

중앙박물관 2010.10.08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은관(보물631호), 금동관

삼국시대 고분에서는 금관을 비롯하여 금동관 등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금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신라의 고분에서는 특히 많이 출토되고 있다. 금관이 대표적인 신라의 관모이지만 은이나 금동관으로 만든 관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황남대총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금관, 금제관식, 금제허리띠, 은관, 관모 등 당시에 사용했던 대부분의 관모들이 출토되었다. 금관을 비롯한 관모는 일상용과 부장품용이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주로 부장용품으로 대부분 주술적인 의미를 담기 위해 화려하고 다양한 장식을 달고 있다. 그 중 신라금관에서는 나뭇가지 모양의 출(出)자 모양과 사슴뿔 모양이 많다고 한다. 황남대총 남분 은관.이 은관은 신라시대 관모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양식을 새털모양의 가지로 장식하고 있다. 경주시 황남..

중앙박물관 2010.10.08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북분 금관 (국보191호), 금제 허리띠 (국보192호), 남분 금제허리띠 (보물 629호)

황남대총에서는 천마총,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더불어 신라를 대표하는 금관과 금제허리띠가 출토되었다. 2점 모두 그 제작수법이 상당히 뛰어나고 보존 상태가 훌륭하기 때문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가 '금의 나라'라는 칭호를 받게 해주는 중요한 유물로 한국을 대표하는 금속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금제허리띠 또한 그 구성품이 상당히 많고 정교하고 하려하게 만들어졌으며 출토될 당시 상태가 아주 좋고, 당시의 착용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라고 한다. 신라의 금관은 그 제작형식에 있어서 북방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다수 학자들의 의견이고, 전세계적으로 출토된 금관은 모두 10여점이라고 하는데 그 중 한국에서 출토된 것이 8점이라고 한다. 신라 왕릉에 부장품으로 묻힌 금관은 실제 사용한 것이..

중앙박물관 2010.10.08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금으로 만든 장신구,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보물623호)

신라 왕릉에는 왕이 누렸던 모든 것을 넣었다고 하며, 물건 하나하나에 모두 왕의 지위에 맞게 정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왕의 지위에 걸맞게 많은 금세공품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그 수량이 엄청나기때문에 신라를 '금의 나라'라고 하기도 한다. 황남대총에서도 많은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금세공품들이 부장되었는데 그 중에 금으로 만든 장신구들이다. 장신구로는 금반지, 금팔찌, 금귀걸이, 금드리개 등이 있는데, 현재의 금세공품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상당히 화려하고 세밀한 것들이 출토되었다. 금반지와 금팔찌(북분, 보물 623호). 황남대총 북분 무덤 목곽에서 몸에 착용한채 발견된 것으로 장식이 없는 것 10개와 중앙아시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옥으로 장식한 팔찌 1개, 그리고 반지드들이 출토되었다. 경주시 황남..

중앙박물관 2010.10.07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중국, 일본에서 온 물품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은 신라에서 만든 것도 많지만, 실크로드를 거쳐 서역에서 온 물품, 중국과 일본열도에서 온 물품도 있다. 중국에서 온 물품은 그 특징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짙은 청색의 유리그룻, 은잔이 대표적이고 유약을 바른 흑갈색의 도자기는 중국 남조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곱은옥 재료인 일본열도에서만 나는 경옥과 조개류 등 물건을 만드는 재료가 많이 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쇠거울(북분)과 청동거울. 황남대총에서는 당시에 많이 볼 수 없는 쇠거울과 조문박국경이라는 청동거울이 출토되었는데 중국에서 들여온 것을 추정하고 있다. 유리그릇(북분). 짙은 청색을 띠는 유리그룻은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황남대총의 이 유리그릇은 서역에서 온 다른 유리제품과 함께 ..

중앙박물관 2010.10.07

선정릉 제사 준비를 하던 재실

선정과 정릉 중간에 위치한 재실은 두 왕릉의 재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원래는 선릉과 정릉에 각각 재실이 있었으나, 구한말에 통합되어 하나의 재실만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실은 왕릉 입구 낮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나 이 곳을 침수피해가 많은 곳이라서 언덕 위에 재실을 조성해 놓고 있다. 재실은 중앙에 제사에 참석한 왕이 휴식할 수 있는 사랑채같은 건물이 있고, 여러개의 방과 창고로 이루어진 행랑채가 담장을 이루고 있다. 숲손 언덕에 위치한 재실. 여러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행랑채와 사랑채처럼 생긴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재실은 제사준비를 하는 곳으로 실제 제사를 이 곳에서 지내지 않는다. 재실 중앙에 있는 건물. 앞면4칸의 건물로 왕이 왕릉에 제사를 지낼때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재실은 일반 민..

조선 관아 2010.10.06

서울 정릉, 서삼릉에서 옮겨온 중종의 능

강남 선정릉에 있는 중종대왕의 능인 정릉이다. 원래 중종의 능은 고양 서삼능에 있었으며, 그 당시에는 그 곳을 정릉으로 불렀다가 중종의 능이 이 곳으로 이장하면서 서삼능에는 장경왕후의 능만 남고 이름도 희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는 정능의 이관을 주도했던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의도였던 것으로 보이며, 문정왕후 자신은 이 곳 정릉에 묻힐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불교를 크게 중흥시킨 문정왕후는 중종과 자신의 내세를 위해서 원찰로서 봉은사를 보우대사와 함께 크게 일으켰는데, 실제로 문정왕후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서울 동쪽 동구릉 부근의 태릉에 묻혔다. 아마도 당시 중종의 능인 정릉의 이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던 것 같고, 지금도 정릉은 태조 이성계의 능과 함께 유일하고 ..

서울 선릉,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성종대왕 능

서울 강남구에 도심 한가운데 공원처럼 존재하고 있는 선정릉은 조선의 전성기를 이끈 성종대왕의 능인 선릉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능이 있는 곳이다. 선릉은 왕릉과 비릉이 다른 산등성이에 있는 동원이강의 형식으로 정현왕후의 능에는 둘레석인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있다. 선릉과 정릉이 있는 이 곳은 강남개발로 급격히 도심화되어 왕릉에 속한 영역의 대부분이 아파트, 빌딩, 주택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소나무를 비롯하여 많은 수목들이 들어선 도심속의 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강남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조선 성종대왕의 능인 선릉. 성종 재임시 완성한 국조오례의에 충실한 왕릉이라고 한다. 왕릉 입구임을 말해주는 홍살문 홍살문 옆에 왕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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