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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회화실] 조선시대 산수화, 진경산수화

조선시대 회화를 대표하는 분야로 자연을 그린 산수화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산수화는 삼국시대의 무덤벽화나 백제의 산수무늬가 그려진 벽돌 등에서도 나타나듯이 아주 오래전 부터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에도 산수화가 그려졌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지만 현재 회화로서 남아 있는 작품은 없어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산수화는 주로 조선시대에 그려진 작품들로 다른 그림과는 달리 문인화로서 전문화가인 도화서 화원 뿐만 아니라 사대부계층에서도 많이 그렸던 것으로 보이다. 이는 자연의 이치를 담은 마음속의 산수를 그리는 중국 남종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가 많이 그려졌는데, 18세기 사회가 안정되면서 금강산을 비롯하여..

중앙박물관 2012.08.16

광주 남한산성 관아 건물인 침괘정과 천흥사종이 걸려 있었던 종각

광주부가 있었던 광주부에는 행궁을 비롯하여 많은 관청들과 성벽을 관리하던 사찰과 큰 마을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없지고 관아건물로는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연무당과 연못인 지수당, 무기제작소로 알려져 있지만 관아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침괘정 정도만이 남아 있다. 조선 영조대에 지어진 침괘정은 문헌상 기록으로 무기제작소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건물의 형태는 온돌방과 마루바, 회랑 역할을 하는 툇마루로 구성되어 있는 집무실로 사용했던 관아 건물로 보인다. 아마도 부근에 무기를 제작하는 공방과 창고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한산성 행궁 앞 광장에는 산성내에 시간을 알려주는 종각이 설치되어 있는데, 원래 이곳에는 국보 280호로 지정된 천흥사 종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수도 ..

[중앙박물관 회화실] 풍속화와 인물화

산수화와 함께 조선시대 회화를 대표하는 분야로 풍속화를 들 수 있다. 풍속화는 사람들이 사는 살아가는 모습과 감정, 옷차림 등을 실감나게 묘사하여 조선시대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분야이다. 간략한 선으로 사람과 풍경을 묘사하고, 과감한 생략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묘사하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인 김홍도와 신윤복은 다른 그림들도 아주 잘 그렸던 가장 뛰어난 화가였지만 그들의 진면목은 그들이 그린 풍속도에서 잘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그린 그림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 표현의 수준이 상당히 높고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풍속화가 일반 대중들이 사는 모습을 잘 그렸다고 한다면, 초상화의 형태로 가장 많이 그려진 인물화..

중앙박물관 2012.08.14

[로마]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o di Contantino), 콜로세움 앞에 세워진 로마시대 개선문

로마 콜로세움과 팔라틴언덕 사이에 로마의 대표적인 개선문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o di Contantino)이다. 이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황제 즉위 10년에 원로원이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막센티우스 황제를 테베르강 근처 밀비안다리(Milvian Bridge)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개선문이 세워지면서 로마의 개선 행로가 바뀌었다고 하는데, 개선행로는 판테온부근의 면적이 약 2㎢에 이르는 공공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Campo Marzio에서 출발하여 전차경기장이 있었던 Circus Maximus를 지나서 이 개선문과 티트스 아치를 지나 카피톨리노 언덕을 거쳐 로마 포럼으로 들어오는 경로로 바뀌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대제라고 불리는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337년)은 ..

이탈리아(Italy) 2012.08.13

남한산성 행궁터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주장성 건물터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의 격전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볼 수 있는 남한산성 성벽을 비롯한 방어시설들은 병자호란을 대비하여 쌓기 시작하여 그 이후에 크게 보강한 것이다. 남한산성은 한강이남을 지킬수 있는 천혜의 요새로서 삼국시대부터 백제를 방어하기 했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남한산성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문헌상의 기록이나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와 투쟁에 들어간 시기이며 특히 문무왕 12년(672)은 당나라 병력 5만명이 평양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신라를 침입하려는 의도를 보인 시기였다고 한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당나라의 남하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쌓은 주장성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주장성은 당나라와의 전투에 대비하여 축조된 성으로 한강유역..

[로마] 티투스 아치(Arch fo Titus), 파리 개선문을 비롯한 후대 개선문의 모델이 된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

티투스 아치(Arch of Titus)로 잘 알려진 티투스황제 개선문은 로마시대 유적들이 남아 있는 콜로세움 서쪽편 Velian언덕에 세워진 기념물이다. 이 개선문은 서기82년 그의 사후와 황제를 계승한 그의 동생이 79년 예루살렘 정벌을 포함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개선문이다. 로마시대에 세워진 많은 개선문들 중에서도 이 개선문은 파리의 개선문을 포함하여 후대에 세워진 많은 개선문들의 모델이 되었던 기념물이다. 이 개선문은 높이 15.4m, 폭 13.5m로 하나의 아치형 출입문만으로 이루어진 문이다. 이 개선문은 19세기에 고대 유적들이 복때 처음으로 복원된 유적 중 하나이다. 티투스황제는 로마의 11번째 황제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이다.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에는 주로 팔레스타인의 유대..

이탈리아(Italy) 2012.08.12

광주 남한산성 행궁, 비상시 종묘와 사직 역할을 하는 좌전과 우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격전의 현장으로 조선후기에는 한양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적 거점으로 여겼기때문에 인조대 이후에 성벽을 쌓고 광주부 관아를 옮기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한산성에 행궁이 처음 설치된 것은 이곳에 산성을 크게 보강했던 인조3년이다. 조선시대에 전국 주요 거점에 행궁이 설치되었는데, 비상시 국왕이 피난하는 것을 전제로 지어진 남한산성 행궁에는 종묘와 사직을 옮길 수 있는 좌전과 우실이 유일하게 설치되어 있다.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없어져서 그 터만 남아 있던 것을 2012년에 행궁 건물의 복원을 완성하여 산성도시로서의 옛모습을 조금이나마 다시 보여주고 있다. 남한산성 행궁 뒷편에 설치된 좌전은 종묘의 위패를 비상시에 옮겨놓을 수 있는 건물이며, 우실은 ..

[로마] 로마포럼의 세베루스황제 개선문(Arch of Septimius Severus)

로마도심에 남아 있는 고대국가 로마의 유적지인 로마 포럼에서 카피톨리아 언덕 아래에 위치한 세베루스의 개선문(Arch of Septimius Severus)이다. 하얀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개선문은 기원후 203년에 세베루스 황제(Emperor Septimius Severus)와 두아들인 카라칼라(Caracalla)와 게타(Geta)의 파티아잔(Parthians) 원정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개선문이다. 이 개선문은 고대 로마포럼 광장에서 약간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것으로 3개의 아치형 출입문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개선문이다. 르네상스시대 이후 폐허화된 로마를 표현한 그림에서 땅속에 파묻힌 형태를 하고 있는 개선문이 이 개선문이다. 개선문의 아치형 출입문 앞에는 기단석위에 세워진 복합형 기둥..

이탈리아(Italy) 2012.08.11

[중앙박물관 회화실] 집자비석, 신라 김생을 비롯한 유명한 명필을 볼 수 있는 유물

예술로 승화된 서예를 이야기 할 때에 사람들은 많은 명필을 떠올릴 수 있다. 대표적인 중국의 명필로는 왕희지를 꼽을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명필 김생, 조선시대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중국의 왕희지가 쓴 글씨는 한자체 표준이라 할 정도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석봉 한호의 글씨체가 선조의 글씨 보급정책에 따라 '천자문'을 통해 우리생활 깊숙히 자라잡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한자 글씨는 그의 글씨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명필들의 글씨는 '집자'란 형태로 많이 남아 있다. '집자'란 필요한 글자를 선택하여 조화롭게 연결해서 문장을 만드는 것인데, 활자인쇄나 비석의 글씨등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

중앙박물관 2012.08.10

광주 남한산성 행궁(사적480호), 비상시 국왕이 머물수 있는 행궁이자 광주부 관아 건물

남한산성에 있는 옛 광주부 관아 건물이자 국왕이 임시로 머물수 있는 행궁이 설치된 사적 480호로 지정된 남한산성 행궁이다. 이 행궁은 비상시 국왕이 임시 거처로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 역할을 하는 좌전과 우실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강점기 이후 없어졌다가 최근에 옛 기록을 참조하여 복원하였다. 행궁은 국왕의 거처로 정전과 편전에 해당하는 하궐과 국왕이 머무는 내전에 해당하는 상궐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쪽편에 광주부 관아 건물인 좌승당과 광주유수의 숙소라 할 수 있는 일장각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왕을 수행한 인원들이 머물 수 있는 많은 행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강이남 일대를 다스렸던 큰 규모의 지방관청이 광주부 관아는 원래 남한산성 아래 하남시 일대에 있었으나 병자호란 이후 국방상..

[로마] 카피톨리아노 언덕(Capitonine hill)과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Vittorio Emanuele II Monument)

카피톨리아노 언덕(Capitonine hill)은 고대로마 유적지인 포로 로마노 뒷편에 위치한 언덕으로 고대 도시국가 로마를 형성했던 일곱 언덕 중 하나로 고대 이래로 로마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로마 최고의 신인 유피테르(제우스), 유노(헤라), 미네르바(아테나)를 모신 신전이 유피테르 신전이 있었던 곳으로 고대 로마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이곳에는 르네상스시대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사, 카피톨리아노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 중앙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시청사 앞에는 나일강을 의인화한 조각상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 언덕을 넘어가면 고대도시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와 연결된다. 카피톨리아노 언덕 앞쪽으로는 고..

이탈리아(Italy) 2012.08.10

[경희궁] 정전인 숭정전과 조정

경희궁은 원래 있었던 수많은 전각 중에서 정전영역에 해당되는 숭전전과 편전에 해당되는 자정전만이 현재 복원되어 있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은 광해군 때 건립된 건물로 원래의 건물 일제의 의해 개조되어 동국대에서 법당 건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증을 통해 복원한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후기에 정전으로서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경종, 정조, 헌종이 즉위하였다. 지금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많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국왕 즉위식이 있었고 궁궐로 사용되었던 곳이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서궐이라고 불렸던 경희궁은 조선시대 5대궁궐 중 하나로 임진왜란 직후인 광해군 때 창건되어 조선후기 동안 국왕이 거처하던 궁궐로서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원래의 경희궁은 정전인 숭전전을 ..

궁궐_종묘 2012.08.10

[중앙박물관 회화실] 서예,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

중앙박물관 2층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로서 서예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서예는 붓으로 선의 움직임, 변화, 힘 그리고 감정을 보여주며 사람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예술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학문과 함께 정신수양의 방도로 여겨왔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학문과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예술로서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서예는 중국에서 한자를 도입한 기원전 2세기 이래로 중국과 문화교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으며, 오랫동안 중국의 서예의 변화는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는 끊임없이 지적이 자극이 되어 왔으며, 우리 나름대로의 서예문화를 형성해 왔다. 서예로 명성을 떨친 사람은 신라의 김생에서부터 안평대군, ..

중앙박물관 2012.08.09

[맛집]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 가장 잘 알려진 부대찌개 명소

의정부 구도심에 위치한 부대찌개 거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부대찌개를 만들어 팔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의정부 경전철 중앙역 앞 골목길에 부대찌게 식당의 원조라고 많이 알려진 오뎅식당을 중심으로 저마다 자기들이 원조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전형적인 맛집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대체로 맛집 거리가 형성된 곳은 약간씩 맛은 다르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음식맛은 비슷한 편인 것으로 보인다. 부대찌게는 한국전쟁 이후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겨난 많은 음식 중 하나로 음식물 재료로 미군부대에서 많이 먹는 햄과 소시지 등을 김치 등과 함께 끓여 먹는 음식으로 전국적으로 미군부대가 있던 곳에서는 많이 생겨난 식당이지만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곳이 의정부라서 의정부부대찌개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70년대까..

맛집 2012.08.09

[로마] 판테온 앞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Macuteo)

로마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판테온신전 앞 광장에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로 정식명칭인 Macuteo이다. 높이 6.34m(분수대 포함 14.52m)로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인 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파라로 람세스2세가 이집트 카이로의 고대도시인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Ra 신전 앞에 세워두었던 1쌍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로마의 Sant Maria sopra Minerva 근처의 이시스신전 앞으로 옮겨졌다가 1711년 교황 클레멘스 11세에 의해 판테온 앞 광장을 장식하기 위해 Barigioni가 만든 분수위에 세워졌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신전 입구나 광장에 세워졌던 것으로 후대에 많이 세워졌던 기념비의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직사각형 형태의 기둥으..

이탈리아(Italy) 2012.08.09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홍릉, 영조가 자신의 무덤으로 터를 잡은 영조 비 정성왕후의 능

홍릉은 고양시에 위치한 서오릉에서 가장 후대에 조성된 능으로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 서씨의 능이다. 정성왕후는 영조가 연잉군시절에 결혼하여 66세에 죽었는데, 왕비시절에 선왕인 숙종과 경종의 부인을 잘 모시고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최씨를 모시는 사당인 육상궁을 세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왕자를 낳지 못했지만 영조와는 상당히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는 숙종과 왕비들의 능이 있는 서오릉에 자신의 능을 조성하여 숙종을 잇는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이곳에 정성왕후의 능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왕위를 계승한 정조는 사도세자를 죽게한 영조에 대한 원한이 있었고, 계비인 정순왕후 또한 영조와 같은 곳에 묻힐 의도가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 능을 조성하지 않고 구리의 동구릉에 영조의 능을 조성하여 그의 바램..

[로마] 판테온(Pantheon), 로마시대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거대한 돔

로마 도심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기념비적인 건축물 중에서도 후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건물인 판테온(Pantheon)이다. 이 신전은 고대 로마의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으로 현재의 건물은 125년 경 하드리아누스황제때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돔 형태의 구조물로 돔 내부의 지름과 바닥의 높이가 43.3m로 똑깥으며, 19세기까지도 세계최대의 돔구조물이었다. 판테온은 기원전 31년 집정관이 아그리파가 처음 건립하였으며, 기원후 80년 대화재로 불타버렸던 것을 125년경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재건하였다고 한다. 신전건물로 세워진 판테온은 특정한 신을 위해 세운 신전이 아니라 로마시대의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으로 세워졌다. 판테온은 로마시대의 다른 건축물과 달리 비교적..

이탈리아(Italy) 2012.08.08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익릉과 대빈묘,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과 장희빈의 묘

고양시 신도동에 위치한 서오릉 중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과 한쪽편 구석에 위치한 장희빈의 묘소이다. 숙종은 원비로 인경왕후 김씨, 계비로 인헌왕후와 인원왕후를 두었고, 경종을 낳은 장희빈과 동이로 유명해전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 세자나 세자빈 등은 원, 약간 격이 낮은 경우는 일반인처럼 묘라고 불렀는데, 경종을 낳은 희빈 장씨는 대빈묘라고 불렀으며, 영조를 낳은 숙빈최씨의 무덤도 원래는 소령묘였는데 영조의 노력끝에 소령원으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숙종과 왕비의 능을 배치한 것을 보면 당시의 정치상황이 상당히 많이 고려되어 있었는데, 당시 지배세력이었던 서인들의 입김이 많이 반영되어 인헌왕후는 숙종과 쌍분의 형태로 이루졌으며, 영조대까지 살았던 제2계..

[로마] 트레비분수(Fontana di Trevi),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로마의 명소

콜로세움, 성베드로대성당과 함께 고대도시 로마를 대표하는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인 트레비분수(Fontana di Trevi)는 로마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규모의 분수이다.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로마를 다시 찾아 올 수 있다는 전통을 많은 관광객들이 분수 앞에 앉아 등을 돌리고 동전을 던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면서 특히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이 곳 분수에는 하루에 3,000유로 정도의 동전이 쌓인다고 한다. 트레비분수는 로마에서 22km 떨어진 살로네샘에서 기원전 19세기에 세워진 아쿠아비르고(Aqua Virgo) 수로를 통해서 공급된다. 이 수로가 끝나나는 지점에는 세워진 고대 로마의 장군으로 조각상으로 유명한 아그리파가 세운 공중목..

이탈리아(Italy) 2012.08.06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경릉과 창릉, 세조의 두아들 덕종(추존)과 예종의 능

경기도 고양시 신도동에 소재한 서오릉은 예종의 창릉과 숙종의 명릉을 비롯하여 많은 조선왕실을 능원이 조성된 곳으로 태조의 능이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많은 능원이 있는 곳이다. 서오릉은 1457년(세조3)에 의경세자가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세조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길지로 추천된 이 곳에 안장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세조가 터를 잡은 곳으로 그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과 왕비의 능이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서오릉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경릉은 세조의 장남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추존)과 어머니로 인수대비로도 많이 불리는 소혜왕후의 능이다. 서오릉 안쪽에 위치한 창릉은 세조의 둘째아들로 왕위를 계승한 예종과 안순왕후의 능이다. 예종 또한 20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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