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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베드로광장 중앙에 우뚝 서 있는 오벨리스크(Obeliskos)

바티칸의 성베드로광장은 대성당 건물과 함께 카톨릭을 상징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이 광장은 17세기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명령으로 유명한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베르니니가 설계하였는데, 대성당 건물이 팔을 벌려 신도들을 맞이하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당대의 대도시 광장을 압도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웅장한 회랑으로 둘러싸인 이 광장의 중심에는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을 상징하는 돌이자 기념비라고 할 수 있는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오벨리스크는 끝이 가늘고 피라미드형을 한 사각형의 기둥으로 신왕국시대에 많이 만들어졌으며, 원래는 태양신과 관련된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로 파라오들의 업적을 찬양하는 기념비의 성격을 많이 가지게 되었으며, 시계가 없던 고대사회에서 해시계로서의 역할을 했..

이탈리아(Italy) 2012.08.04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명릉,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고양시 신도동에 위치한 서오릉(사적 198호)은 구리의 동구릉과 함께 조선왕실 능묘 중 가장 큰 규모로 세조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의 능인 경릉, 예종과 왕비의 능인 창릉, 숙종의 원비의 능인 익릉, 숙종과 계비의 능인 명릉, 영조 원비의 능인 홍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밖에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 등이 있다. 대체로 예종.성종대와 영조대에 조성된 왕릉이라 할 수 있다. 이 곳에 능지로 선택된 것은 1457년 세조의 장남(성종의 아버지로 덕종으로 추존)이 죽자 이곳을 세조가 답사한뒤 터를 잡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왕릉의 면적은 약 51만평에 이른다. 서오릉에 모셔진 5곳의 왕릉 중 동쪽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과 계비인 인현왕후 민씨,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

바티칸 성베드로광장(Piazza San Pietro), 교황이 많은 신도들 앞에 모습을 보이는 거대한 광장

로마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의 성베드로대성당 앞 광장은 30만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광장으로 크리스마스를 비롯하여 카톨릭의 중요한 행사에 교황이 군중에게 모습을 보이는 장소이다. 웅장한 돔이 올려진 성베드로대성당과 그 앞을 둘러싸고 있는 타원형의 회랑, 중앙의 오벨리스크와 분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바티칸을 상징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광장 서쪽에 성베드로대성당이 있고, 동쪽으로는 로마시내와 연결되는 화해의 길이라 불리는 넓은 대로가 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은 이 곳에 대성당을 세울때 같이 설계된 공간으로 르네상스시대의 조각가 베르니니가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명령으로 1656년에서 1667년까지 설계하였다. 광장 설계의 기본 개념은 쥬피터신전을 중심으로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로마시..

이탈리아(Italy) 2012.08.03

가족주말농장(7월3주), 장마가 끝나고 무성하게 자라는 작물과 잡초들

5월부터 시작된 오랜 가뭄은 7월에 들어서면서 내린 장맛비로 끝난 것 같다. 7월초에 시작해서 약 2주가량 계속된 장마도 지난주 태풍과 함께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된 것 같다. 이번 장마는 기간은 짧았지만 비는 꽤 많이 내렸던 것 같고, 장마가 끝나자 무더위가 시작되고 있다. 무더위와 함께 작물들도 눈에 띄게 무성해지기 시작하고 이에 함께 긴가뭄으로 힘을 써지 못하던 잡초들이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 탄저병 등으로 망쳤던 고추는 올해 농약을 뿌려주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초반에 무성하게 자라던 참외는 이번 장마를 보내면서 병이 돌았는지 잎이 말라버리고, 맺혔던 열매들이 썩어가는 현상이 생겨서 제대로 익지 못하고 있다. 토마토는 잘 자라기는 한데,..

기타 2012.08.02

남양주 봉선사,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에 위치한 봉선사는 500여년전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선왕의 위엄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있던 운악사라는 절을 크게 중창하고 봉선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원래 운학사는 고려초인 광종대에 세운 절로 세종대 7개 불교 종파를 선종과 교종으로 통합될 때 혁파되었다가 부근에 세조의 능인 광릉이 조성되면서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게 이 절을 크게 중창하여 원찰로 삼았다. 명종대에는 전국 교종을 대표하는 사찰로 경기도내 전사찰을 관창하기도 하였다고 하며, 당시 전국 승려들의 교학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과거시험인 승과가 이곳에서 열렸으며, 서산.사명대사 같은 고승들도 당시 이곳에서 승과에 응시하였다고 한다. 봉선사를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크게 중장할 당시에는 사찰 가람의 규모는 89칸..

전국 사찰 2012.08.02

[맛집] 마포 양지설렁탕, 마포에서 오래된 설렁탕집

서울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설렁탕으로 잘 알려진 식당 중 하나인 마포 양지설렁탕이다. 용산에서 출발하는 옛 경의선 철도변에 위치한 이 식당은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지만, 상당히 낡은 건물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어서 70~80년대 서울의 식당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식당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양지를 이용해서 설렁탕을 요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식당내부는 좁고 혼잡하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이 또한 오래된 서울의 식당분위기로 하나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설렁탕은 소의 여러 부위를 함께 넣어서 끓인 국으로 조선 역대 왕들이 선농단에서 제를 지내고 직접 쟁기로 밭을 가는 행사를 할 때 모여던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쇠뼈를 곤 국물에 밥을 말아낸 것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는 음식이다. ..

맛집 2012.07.30

남양주 광릉(사적 197호), 후대 왕릉의 모범이 된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

광릉수목원으로 더 잘 알려진 경기도 남양주시에 소재한 광릉은 조선 7대 세조와 왕비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광릉은 조선 왕릉의 표준을 제시한 능으로 세조의 유명에 따라서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받아들인 통일신라시대 이후 왕릉과 귀족들의 무덤에 사용하였던 석실과 십이지신상 등을 새겼던 병풍석을 없애서 왕릉조성에 들어가던 경비를 크게 줄였다고 한다. 왕릉을 수호하는 것을 상징하던 12지신상 대신에 난간동자석주를 새기고, 석실은 회격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능을 배치함에 있어서 정자각을 중심으로 왕과 왕비릉이 양쪽 언덕에 배치되는 동원이강의 형식이 처음 적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조선의 왕릉제도를 크게 바꾼 것으로 후대 왕릉 조성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광릉을 지키는 원찰로는 근처에 위치한 봉선사가 있다. ..

[경희궁(慶熙宮)] 흥화문(興化門)과 금천교

흥화문은 조선의 궁궐 중 가장 많은 수난을 받았던 경희궁의 정문이다. 경희궁은 일제에 의해 헐려서 없어지고 서울고등학교 교사로 사용되다 최근에 복원된 궁궐이다. 정문인 흥화문은 일제에 의해 이토히로부미의 사당인 박문사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한떄는 신라호텔이 있는 장충동으로 옮겨져서 호텔정문으로 사용되다 경희궁이 복원됨에 따라 현재의 장소에 옮겨졌다고 한다. 경희궁 앞으로는 서울 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고 광화문과는 아주 가까운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은 창덕궁을 비롯한 기존 궁궐의 정문이 2층 문루 형태로 되어 있는데 반해서 단층으로 지어졌다. 규모는 앞면 5칸에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광해군이 경덕궁을 세울때 공사중지를 주장하는 신하들을 설득하기 위해..

궁궐_종묘 2012.07.30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의 외관, 세계 카톨릭의 중심

성베드로대성당(San Pietro Basilica)라고도 불리는 로마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의 대성당은 세계 최대규모의 성당으로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한명이자, 초대 교황으로 여겨지는 성베드로의 무덤위에 세워진 바실리카형의 대성당이다. 르네상스 건축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 대성당의 건축에는 라파엘로, 브라만테,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마데르노 등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예술가이자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1506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626년에 완성된 웅장한 건축물이다. 대성당의 설계에는 라팔엘로, 브라만테, 미켈란젤로 등의 참여했으며, 그 중 미켈란젤로의 역할의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대성당은 직경 41.47m의 거대한 돔을 중심으로 10여개의 돔, 500개에 달하는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세 ..

이탈리아(Italy) 2012.07.29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 (보물 360호), 정형화된 통일신라 탑비

새롭게 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넓은 로비 공간을 경천사10층석탑과 함께 지키고 있는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이다. 제천의 월광사터에 있던 탑비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겨 놓아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비로 머리.몸.받침이 온전히 남아 있고, 비례에 있어서 안정감이 있는 탑비로 우리나라 문화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어서 박물관 중앙 로비에 전시된 것으로 보인다. 이탑비는 통일신라 후기 승려인 원랑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리돌을 얹어 통일신라 후기의 정형화된 탑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랑선사는 당나라에 11년간 유학한 후 월광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 탑비는 헌광왕이 '대보선광'이라는 탑명을 내리고 글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글..

이천 안흥사지 오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는 안흥사지 오층석탑이다. 경기도 이천의 안흥사터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 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서 석탑 구성 요소의 비례가 표준적인 석탑의 비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아서 조형미는 있어 보인다.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2층의 기단부는 1층은 낮고 2층은 높게 되어 있으며 모서리에 기둥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은 높게, 그 위로는 낮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수법이 많이 남아 있는 석탑이다. 안흥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말이나 고려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석탑의 크기도 크고, 구성요소간의 비율도 안정적이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Basilica Scanti Petri),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인 세계 최대의 성당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의 성베드로대성당(Basilica Scanti Petri)은 초대 교황이라 할 수 있는 성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이다. 이 성당은 카톨릭에서 으뜸인 성당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카톨릭에서 으뜸인 성당은 로마교구 주교좌 성당은 로마시내에 위치한 산조반니인라테라노성당이라고 한다. 이 곳은 초대교황인 성베드로의 무덤을 비롯하여 역대 교황들이 사후에 안치되는 곳이기에 카톨릭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다. 이 곳에는 카톨릭을 공인한 콘스탄니누스대제가 4세기에 건설한 대성당이 있었는데, 중세 세속왕들과의 대립속에서 교황의 아비뇽유수기 동안에 크게 황폐화되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촉발된 시기인 1506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625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성베드로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이탈리아(Italy) 2012.07.27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보물 358호), 석탑 형태로 만든 승려의 사리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보물 358호로 지정된 영전사지 보제존자탑이다. 이 사리탑은 고려말 승려인 보제존자의 사리탑으로 현재도 보제존자의 사리탑은 여주 신륵사 뒷동산에 석종형태로 만들어져 있지만, 특히하게 그의 제자들이 석탑형태로 사리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원주 영전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겼다고 한다. 고려말에 통일신라시대 양식이 두개의 탑 형식으로 세운 것도 특이하며, 아마도 우리나라 남아 있는 제대로 된 삼층석탑 중에서 가장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기단과 탑신의 구성요소들의 비율의 통일신라시대 양식과 비슷해서 얼핏 보기에도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옹선사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원주 천수사지 오층석탑과 삼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인 천수사지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다. 고려시대 석탑 중에서 많지 않은 쌍탑을 하고 있지만 5층석탑과 3층석탑이 1쌍을 이루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은 두개의 석탑이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통일신라시대부터 이어진 정형화된 가람배치를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경우로 고려초 대표적인 호족인 경기도 광주지역 호족들이 세운 하남 춘궁동사지에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 나란히 배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통일신라의 석탑과 비교해 볼때 그 규모가 작고 예술적인 미가 떨어져 보인다. 원래 원주 천수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현 위치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오층석탑은 기단은 남아 있지 않고 5층의 탑신만이 남아 있는데 2층 몸돌부터 그 높이가 급격히 낮..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보물 282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인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이다. 원래 여주 고달사 절터에 있던 것으로 받침돌에 있는 웅크린 사자가 인상적이다. 화강암에 새겨진 조각상으로도 상당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석상으로 통일신라의 예술성과 조각기술이 남아 있는 고려전기의 유물이다. 이 석등은 높이 2.4m로 원래는 불을 밝히는 화사석까지만 남아 있었으나, 2000년 실시한 고달사 절터 발굴조사에서 지붕돌이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상이 새겨진 직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2마리의 웅크린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받침돌에는 연꽃과 구름문양을 새겨 놓고 있으며, 화사석은 4면이 창으로 뚫린 형태를 하고 있다. 석등이 있었던 고달사는 여주 남한강변에서 북쪽 강원도 원조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으며, 국보..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 (보물 166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보물 166호로 지정된 홍제동 오층석탑이다. 원래 홍제동 사현사터에 있던 탑을 도심확장으로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의 위치에서 전시중인 문화재이다. 전체적으로 탑이 많이 훼손되어 원래 모습과는 많이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며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다. 이 석탑은 후대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이는 자연석을 기단으로 하여 그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형태로 기단이 없어서 어색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탑신 전체적으로 안정감있는 비례를 하고 있다. 1층몸돌에는 장식이 없고, 2층부터는 탑신 몸돌에 기둥과 문짝을 새겨 놓고 있다. 이 석탑을 세운 연대는 칠장사혜소국사비의 비문에 고려 정종 때인 1045년에 이 절이 창건되었다는 ..

로마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의 성벽

로마 교황청과 성베드로성당이 있는 바티칸은 오늘날 국제관계에 교황이 통치하는 독립된 국가로 볼 수 있으며, 현재의 영역은 1929년 이탈리아정보와 교황청간의 조약에 의해 확정되었다. 원래 교황의 통치영역은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중부지방이 756~1870년까지 교황령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하였으나, 민족주의 국가가 크게 대두되었던 1870년에 로마와 함께 대부분이 이탈리아에 합병되었다. 지금의 바티칸은 교황이 통치하는 신권국가로 세계 카톨릭교회의 중심지로 바티칸의 정식명칭은 Sancta Sedes(성좌)라고 한다. '바티칸'이라는 이름은 로마시대 바티칸 언덕(Mons Vaticanus)에서 유래했으며, 시스틴성당이 있는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성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성인들이 로마시대에..

이탈리아(Italy) 2012.07.25

북묘비, 관우 사당인 북묘에 세웠던 비석

중앙박물관 바깥에 전시되어 있는 북묘비이다. 구한말인 1883년 고종이 성균관이 있는 명륜동에 세웠던 중국 삼국시대 관우장군을 위해 세운 사당인 북묘에 세워졌던 비석이다. 지금까지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구한말 비석 양식을 하고 있다. 비석에 적힌 내용은 북묘를 세우게 된 내력등을 적고 있는데 고종임금이 직접 글을 짓고, 민영환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는 북묘비. 100년이 조금 넘은 비석으로 고종이 직접 글을 짓고, 을사늑약이 체결될때 자결한 민영환이 글씨를 썼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 민영환의 글씨로 글씨체가 상당한 단정하고 품격이 있다는 느낌이다. 북묘비, 1887년 이 비석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 관우를 기리기 위해, 조선 고종 20년(18..

김천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국보 99호),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했다는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국보 99호로 지정된 갈항사 삼층석탑이다. 경북 김천시 남면에 소재한 갈항사절터에 있던 두개의 탑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처했던 것을 경복궁 마당으로 옮겼다가 현재 중앙박물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진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네모서리와 각면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 몸달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동탑의 기단부에 통일신라시대 영묘사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글로 새겨져 있다. 이 탑에 모셔졌던 사리병과 법어 불경이 발견되었다. 이 석탑은 장식이 없고 약간은 정형화된듯하지만 석탑 각 부분의 비례가 뛰어나고, 당시의 석탑 양식이 잘 드러나 있어서 문화재로..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국보 100호), 고려 특유의 석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 중인 석탑 중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국보 100호로 지정된 문화재인 남계원칠층석탑이다. 원래는 경기도 개성 부근에 있던 석탑으로 탑신만이 경북궁에 옮겨졌다가 후에 기단부도 발굴되어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세운 것으로 전체적인 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화된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적으로 변화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 석탑에 비해서 1층기단은 약간 높아졌고, 2층 기단은 약간 낮아져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이 삼층석탑을 벗어나 고려시대 특유의 석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이라고 한다. 남계원칠층석탑은 2층의 기단부와 7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라석탑의 양식을 가지면서도, 고려 특유의 석탑 양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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