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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사천왕사지 (사적8호), 문무왕이 당나라를 물리치고자 낭산에 세웠던 사천왕사 절터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사적 8호로 지정된 사천왕사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처음 지은 사찰이다. 사천왕사는 679년(문무왕19)에 문무왕이 당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사천왕사가 위치한 곳은 신라인이 신성시여기던 경주 낭산 남쪽 끝 자락으로 경주에서 울산을 통해 일본과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선덕여왕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줄 것을 유언했다고 하며, 사천왕은 불교에서 수미산입구를 지키던 천왕들로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이 수미산임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고, 그 예언이 실현시켜준 사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사천왕사는 경덕왕 때 향가인‘도솔가’, ‘제망매가’를 지은 고승 월명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사천왕사 절은 없어지고 남북..

절터 2012.07.13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한국 석탑의 모범이 된 신라 석탑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으로 인도 산스크리트어 '스투파(Stupa)'에서 유래되었다. 스투파는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무덤을 뜻하는 것으로 원래는 진흙을 구워서 만든 반원형돔형태였다. 인도 아소카왕이 기존에 봉안되었던 사리를 분배하여 8만 4천기의 탑을 세우면서, 무덤의 성격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불교가 여러 경로를 통해 전파되면서 여러 지역에서 탑이 세웠졌는데 탑의 형태른 각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문화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에서는 벽돌로 쌓아 만든 전탑이, 한국에서는 돌을 다듬어서 만든 석탑이, 일본에서는 목탑이 많이 세워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목탑이 많이 세워졌으며, 사찰은 탑을 중심으로 건물을 배치하는 여러 형태를 가람배치를 보였다. ..

경주 안압지, 야경이 아름다운 옛 신라의 궁궐 후원 연못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처음 만든 안압지는 경복궁 경회루 연못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궁궐 연못이다. 주로 사신을 접대하거나 신하들과 연회를 즐길 목적으로 조성한 안압지는 서남쪽은 직선적인데 비해 동북쪽은 자연스러운 멋을 강조하여 들쭉날쭉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은 연못으로 동쪽에 무산 12봉을 상징하는 언덕을 조성해 놓고 연못에는 삼신도를 본 떠서 만든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조성되어 있다. 안압지에는크고 작은 동물들과 새들을 길렀다고 한다. 신라가 멸망한 후 건물잔해들을 연못에 버리고 폐허가 되어 연못에는 갈대밭에 기러기와 오리가 노니는 전형적인 옛 도읍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옛 신라의 영화를 생각하며 이곳을 안압지라 불렀다고 한다. 안압지는 의도적으로 ..

조선 관아 2012.07.11

[맛집] 한일관 을지로점, 대표적인 서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서울 을지로 SKT빌딩 뒷편에 위치한 한일관 을지로점이다. 원래 종로 피맛골에 있던 서울 음식을 대표하던 한일관이 이 곳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한일관은 일반적인 평가에 의하면 전형적인 서울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래전부터 유명인사들이 애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1939년에 종로 피맛골에서 처음 생긴 한일관의 음식은 서울의 특징을 잘 보여주듯이 음식이 맵거나 짜거나 자극적인 맛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으로 불고기, 육개장, 냉면 등이 맛있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종로 피맛골에 있던 한일관이 없어지면서 압구정동 한일관이 먼저 생겼고, 최근에 원래 있던 자리에서 가까운 이 곳에 새로 생긴것으로 보인다. 빌딩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서 옛 한일관에 비해서 규모도 작고, 고풍스러운 멋도..

맛집 2012.07.11

[경주박물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석조불상

불상은 부처의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좁은 의미로는 석가모니를 비롯한 여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을 말하지만, 대체로 보살상.신장상 등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불상이라 일컫는다. 원래 불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이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이나 보리시, 금강보좌 등이 중심이었으나 이집트와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지방과 인도의 마투라에서 처음 만들어져 대승불교의 전파경로를 통해 한국에 전해졌다. 사찰의 가람배치에 있어서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초기까지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을 중심으로 가람이 배치되었으나 후대에 들어서면서 탑보다는 불상을 보신 금당이 사찰의 중심이 되었다. 불상은 만든 재료에 따라서 석조불상, 목조불상, 철조불상, 금동불상 등이 있다.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인도나 서역에서는 진흙으로 빚어서 만든 ..

서울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삼일교까지 걷기

청계천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으로 이루어진 서울 도심 옛 한양도성을 이루는 분지의 물들이 모여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10.84km의 하천이다.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할때에는 자연하천을 유지하고 있어서 홍수가 나면 민가에 침수를 일으키고, 평소에는 생활하수가 고여있어서 매우 지저분하였다고 한다. 조선은 한양에 도읍을 정한뒤 수차례에 걸쳐서 청계천을 준설하는 토목공사를 하였는데, 3대 태종대에 처음 준설공사를 하였고, 조선후기 영조대에 대대적인 준설공사를 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뒤 고종대와 일제강점기에도 준설공사가 있었으며, 1960년대에는 청계천을 복개하여 복개도로와 고가도로를 건설하였다. 최근인 2002년에 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자, 고가도로와 복개도로를 철거하고 오..

한국의 풍경 2012.07.10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불법의 수호자, 사천왕.팔부중.금강역사.십이지신.사자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사찰 입구를 지키거나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에 새겨져 있는 사천왕, 금강역사, 팔부중, 사자 등을 볼 수 있다. 대체로 인도 고유의 신이었다가 불교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사천왕은 오늘날에서 사찰출입문인 천왕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존재로 원래는 부처님의 세상을 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신장으로 인도에서는 귀신 무리의 왕이었다가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된 존재이다. 불법의 세계인 수미산을 사방으로 지키는데, 동쪽은 지국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남쪽은 중장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 머물면서 불법의 세계를 지킨다고 알려져 있다. 팔부중은 사천왕 비슷한 존재로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인공연못 안압지

안압지는 통일신라시대 신라 궁궐의 후원 연못으로 백제 사비성의 궁낭지, 경복궁의 경회루 연못, 향원정 연못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록에는 문무왕 14년(674)에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짐승과 새를 길렀다고 한다. 연못은 동서 200m, 남북180m로 서남쪽은 직선형인데 반해 북동쪽은 들쭉날쭉한 곡선으로 되어 있으며 무산12봉을 상징하는 연덕을 조성해 놓고 있다. 또한 발해만 동쪽에 있다는 삼신도를 본떠서 만든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연못안에 배치되어 있다. 안입지는 신라가 멸망한 이후 동궐 건물들의 잔해들을 연못속에 버리고 폐허가 되어 연못에는 갈대밭만 남아 있어 기러기와 오리가 노는 곳이라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안압지라 불렀다고 한다. 안압지는 1975년..

지역박물관 2012.07.08

청계천 광통교, 종로와 남대문을 연결하는 도로 놓여 있었던 큰 다리

광통교는 원래 이름은 큰다리라는 뜻으로 대광통이었고 후대에는 광교로 불리웠다. 서울 종로에서 남대문으로 연결되는 도로에 놓여진 다리로 조선시대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들 중 가장 큰 다리였다고 한다. 이 다리는 조선 태조때 토교로 만들었다가 태종대에 큰홍수로 무너진 것을 석교로 다시 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복원된 광통교는 원래의 자리는 아니고, 상류방향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광통교는 종로와 남대문을 연결하는 큰 도로가 지나가고 있어 8차선은 큰 다리가 새롭게 놓여져 있다. 현재 광통교가 있는 곳은 청계천이 시작하는 청계광장과 가까운 곳으로 청계천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로 청계천을 이용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광통교를 축초하는데에는 조선 태조의 계비로 태종과..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통일신라의 생활용기, 토기와 벼루

통일신라시대에는 무덤은 불교가 도입된 이후 6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신라의 전통 매장방식지 돌무지덧널무덤양식이 없어지고 고구려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돌방무덤이 일반화되고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증가하면서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은 토기가 급격히 줄어들어 실제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는 현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의 토기는 신라의 토기를 기반으로 하여 고구려.백제의 문화가 융합되고 당나라의 발전된 도자기와 금속용기의 형태 및 문양이 토기에 반영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의 토기에는 그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다양한 문양들이 새겨졌는데, 사람이나 동.식물의 형상을 새긴 이전과는 달리 불교의 영향을 받은 추상적인 문향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런 문양은 토기표면에 여러가지 무늬를 새긴 새기내를 눌러 찍어..

지역박물관 2012.07.06

훈민정음 창제 이후 조선시대 한글의 사용 (박물관 전시 고서적과 문서)

1. 이두,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표현한 문자 우리나라에 한자가 수용된 이후 우리말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두, 향가, 향찰, 속자, 구결 등 다양한 형태로 방법들이 만들어졌는데, 보통 이를 통털어서 이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으로 삼국시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고려때에는 이서라는 형태로 하급관리들이 공문서나 관용문에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통 이두는 넓은 의미로 한자를 차용해서 음을 표기한 것을 통칭하며, 현재의 일본어 또한 이두와 비슷한 개념의 문자라 할 수 있다. 이두는 신라초기부터 사용되어 진 것으로 보이며 서동요, 제망매가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이두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신문왕때 설총이 기존의 이두사용법을 정..

[바티칸박물관] 시스티나성당(Cappella Sistina), 미켈란젤로의 걸작 <최후의 심판>과 천정벽화를 볼 수 있는 곳

미켈란젤로의 걸작 을 비롯하여 천장벽화가 그려진 바티칸박물간의 시스티나성당(Cappella Sistina)은 건축가 조반니 데 도르티의 설계로 1473년에 착공하여 1481년에 완공한 건물로 건축물 자체는 평범하지만 내부의 벽화와 천정화는 르네상스시대를 대표하는 걸작들이다. 이곳에는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눈이 가는 곳은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천정벽화와 출입문 위쪽에 그려진 일 것이다. 장면으로 유명한 천정벽화는 구약성서의 중요한 장면을 프레스코화로 재현한 9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다른 걸착인 은 단테의 에 일부 영감을 받아서 표현한 작품으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영혼, 천사들, 심판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웅장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마 이곳의 천정벽화를 감상하는..

해외 박물관 2012.07.05

경주 망월사, 배리삼릉이 있는 계곡 입구의 작은 사찰

신라의 불교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경주 남산 배리삼릉 등산로 부근에 위치한 작은 사찰인 망월사이다. 이 사찰은 보물 63호로 지정도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모셔진 곳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계종에 속해 있는 사찰은 아니고, 1963년에 창건된 '대한불교원효종' 총본원이라고 한다.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으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요사채 건물 몇동과 삼층석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이 곳에 석조여래삼존입상이 옮겨진 이후에 세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에 세워진 사찰로 조계종에 속해 있지 않아서 그런지 일반 사찰에 비해서 격식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천왕문이나 금강문 대신에 삼문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출입문을 두고 있고, 주불전인 대웅전도 간략하게 지어..

전국 사찰 2012.07.05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나무와 뼈로 만든 생활용품과 철제도구, 무기류

신라 궁궐의 후원이었던 안압지에서는 기와를 비롯한 건축부재들이 많이 출토되었고, 다양한 생활용기들과 불상들이 또한 많이 출토되었다. 안압지는 궁궐연못으로 바닥에 뻘이 형성되었기때문에 산소가 차단되어 다른 곳과는 달리 목재나 뼈로 만든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압지에서 운행하연 나룻배를 비롯하여 목재로 만든 빗과 같은 생활용품, 주령구라 불리는 놀이기구도 출토되었다. 이런 유물들은 대체로 사용중에 실수로 연못에 빠트린 것이거나 낡은 것을 연못에 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주령구는 당시 귀족들의 놀이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발굴당시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원품은 남아 있지 않고 발굴당시 사진을 토대로 복원한 것을 전시해 놓고 있다. 또한 안압지에서는 고분부장품에서 출토된 것들과는 ..

지역박물관 2012.07.05

가족주말농장 (6월5주), 계속되는 가뭄에도 감자를 수확하다.

5월부터 시작된 가뭄은 6월말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거의 2달간 비가 오지 않고 햇볕만 내리쬐는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행이 작물을 심은 밭에는 지하수 시설이 있어서 물을 직접 뿌려줄 수 있어서 다른 곳에 비해서 가뭄의 피해는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나는대로 밭에 물을 계속 뿌려주고 있다. 오랜 가뭄으로 물을 뿌려준 작물들은 그럭저럭 자라고 있으나, 주변의 잡초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자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고 일부는 말라죽고 있다. 이번주에는 제일 먼저 심었던 감자를 수확했는데 줄기와 잎이 무성해서 물을 많이 안뿌려 주어서 그런지 감자들이 제대로 크지는 못하고 조그만 감자들만 수확할 수 있었다. 다른 작물들도 물을 뿌려주고 있지만 물이 부족해서 그런지 꽃을 많이 피우지 못하고 열매들도 크게..

기타 2012.07.04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금동불상과 판불(보물 1475호)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는 신라 금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금속공예 기술과 고구려, 백제유민들에 의해 화려한 불교조각예술을 꽃피웠다고 할 수 있다. 석굴암 불상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 불교 조각은 서역의 간다라 미술의 사실적인 묘사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로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석탑을 중심으로 많은 불교조각예술품들을 남겨 놓고 있다. 불상은 부처의 상을 표현한 것을 말하지만 그 의미를 넓게 해석하여 보살상, 신장상 등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 불상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는데, 불교가 전파경로에 있었던 인도나 서역에서는 흙으로 빚어서 만든 소조불상을 많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을 거치면서 석조불상, 목조불상, 금속으로 만든 금동불상, 철조불상 등이 많이 만들어졌다. 신라 궁궐의 후원이..

지역박물관 2012.07.04

경주 배리삼릉(사적219호)과 경애왕릉(사적222호), 신라 마지막 박씨 왕들의 능

경주 배동 남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배리삼릉은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앞쪽에는 신라 8대 아달라왕, 가운데에 53대 신덕왕, 뒤쪽에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8대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700여년의 시기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외형의 봉분을 하고 있어서 그 신빙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곳이다. 가운데 신덕왕릉이라고 전해지는 무덤은 2차례 도굴을 당하여 내부 조사를 한 결과 통일신라 무덤양식인 굴식돌방무덤을 하고 있으며, 벽면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어서 벽화가 없는 경주의 신라고분에서 벽화의 흔적이 처음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진 경주 나정 부근의 경주남산 서쪽편 기슭 아래에는 일성왕릉, 지..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63호), 경주 남산에 흩어져 있던 석불들을 옮겨 놓은 삼존불상

경주시 배동 경주 남산 등산로 입구에 옮겨져 있는 보물 63호로 지정된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다. 원래 경주 남산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서 현재의 위치에 옮겨놓고 있다.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어린아이를 묘사하고 있으며, 조각수법이 투박하면서도 입체감이 있어 보인다. 왼쪽의 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오른쪽 보살상은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석불들은 일제강점기에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옮겼지만, 석불의 기본적인 양식이 같기 때문에 처음부터 삼존불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의 조각솜씨는 다른 불상에 비해서 투박하지만 종교적인 느낌이 강조되고 있는 7세기 신라의 불상조각을 대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오산이라고도 부르는 경주 남산은 신..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금속공예품과 곱돌공예품

신라는 내물왕대 이후 화려한 황금문화를 꽃피웠다. 당시에 조성된 고분들에서는 세계에서도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금.은제 장식품들이 출토되고 있다.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에는 부장품으로서 금속공예품은 만들어지 않았지만 금동불상, 범종, 석탑에서 발견된 각종 사리기 등 불교와 관련된 화려한 금속공예품들이 만들어졌다. 이들 유물들에서 신라와 통일신라 화려한 금속공예기술과 예술성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교관련 공예품을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었던 화려한 생활용품들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신라의 궁궐 후원이었던 안압지에서는 당시 궁궐에서 사용했던 많은 금속공예품들 출토되고 있다. 이들 공예품들은 건축의 장식에 사용하였던 금속장식품을 비롯하여, 의자를 비롯한 가구에 사용..

지역박물관 2012.07.03

경주 지마왕릉 (사적 221호), 신라 6대 지마왕의 능

신라는 시조 박혁거세 이후 박씨, 석씨, 김씨가 왕위를 돌아가며 계승하였으며, 내물왕대 이후 김씨의 왕위세습이 이어졌으며, 마지막 왕인 경순왕 이전인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55대 경애왕이 박씨로서 왕위에 올랐다. 신라의 왕들 중 김씨와 석씨 왕들은 경주 지역에 흩어져 있는 반면에 박씨로서 왕위를 계승한 왕들은 대부분 초기의 왕들은 박혁거세 왕릉이 있는 경주 오릉에, 그 이후 6대 지마왕 이후 일성왕, 아달라왕과 통일신라말 3명의 왕들의 무덤은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있는 경주 남산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포석정이 신라 왕실의 연회장소이기는 하지만 주변에 신라를 건국한 탄생설화가 있는 나정을 비롯하여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신라 지배계층 중 박씨들에게 의미있는 장소로 이와 관련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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