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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말농장(6월3주), 계속되는 가뭄에 조금 늦게 자라고 있는 작물들

올해 주말농장을 시작한지 1달반이 지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지하수가 있는 곳이라 작물에 물을 뿌려 줄 수 있어서 다른 곳에 비해서는 잘 자라는 편이지만, 그래도 지난해에 비해서 작물들이 잘 자라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5월까지는 물을 주는 것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6월까지 계속 비가 오지 않아서 나름 신경이 쓰인다. 작년같은 경우는 6월들어서 잡초를 뽑는 것이 주된 일이었으나, 올해는 잡초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어 신경이 쓰이지는 않지만, 쉬지 않고 물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고추는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히고는 있는데, 날씨가 가물어서 그런지 스스로 알아서 꽃을 많이 피우지는 않고 있다. 토마토는 순과 함께 잎을 너무 ..

기타 2012.07.02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의 생활용기

경주 안압지는 신라 궁궐의 별궁인 동궐 후원에 있었던 연못으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라의 유물들 중 상당수는 신라황금 문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내물왕대 이후에 조성된 고분들에 껴묻거리로 묻혀진 것들인데 반해서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실제 생활에 사용하던 것들이 연못바닫 진흙 뻘 속에 묻여 있다가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 금동그릇을 비롯하여 청동접시, 청동 숟가락 등 식생활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출토되어 당시 사람들이 생활모습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출토된 당시의 생활용기들 중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은데 이 유물들은 오늘날 사용하는 용기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 중 청동숟가락은 일본 나라의 정창원에서 발견된 청동숟가락과 외형상 큰 차..

지역박물관 2012.07.02

경주 포석정지 (사적 1호), 신라인들이 즐겼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장소

경주시 배동 남산 북서쪽 자락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 1호로 지정된 포석정이다. 이 곳은 신라 왕실의 별궁이 있었던 곳으로 왕실에서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고 한다. 정자를 비롯하여 별궁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연회를 즐기건 석조구조물만이 남아 있다. 화강석으로 만든 약 22m의 수로로 이루어진 이 구조물은 수로를 굴곡지게 하여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는 유상곡수연을 즐기던 시설이라고 한다. 원래 포석정에는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토하는 돌거북이 있었다고 하며, 이 물을 받는 원형석조가 남아 있다. 기록에는 9세기 헌강왕대에 왕이 포석정에 들러 유상곡수연을 즐겼다는 내용이 에 기록되어 있으며, 후삼국시대 경애왕이 이곳에서 연회를 즐기다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은 곳이라고 한다...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기와에서 보이는 다양한 동.식물 문양

통일신라시대 별궁이었던 동궁 후원에 있었던 연못인 안압지에서는 당시 궁궐에서 사용하였던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출토된 것이 기와를 비롯한 건축부재이다. 안압지에서는 약 2만4천여점의 벽돌과 기와가 출토되었다. 기와에는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암막새와 수막새 외에도 타원형 수막새, 곱새기와, 치미, 귀면과 같은 특수기와가 출토되었다. 특히 암.수막새에는 당시 건축이나 미술의 경향을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의 문양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 형태는 식물을 형상화한 연꽃무늬, 보상화무늬, 인동보상화무늬 등이 있다. 기와의 문양에는 식물문양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악귀를 쫓아내는 벽사의 기능을 갖은 다양한 동물문양도 만들어졌다. 대체로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사자, 용, 봉황, 새, 기린, 가릉..

지역박물관 2012.07.02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 (보물 909호)와 절터

남간사지는 경주시 탑동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 탄생신화가 있는 경주 나정에서 남산 북쪽편 남산신성이 있는 해목령으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남간부락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 절터이다. 이 절의 창건 연대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신라 애장왕때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절터가 있었던 자리에는 남간 마을이 들어서 있어서 그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고 당시 절에서 사용한 초석이나 축대 등을 민가건물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석조가 남아 있다. 절터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사찰입구임을 알려주는 보물 909호 지정된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같은 형태와 크기로 마주 서 있는 당간지주에는 아래 위에 둥근 구멍을 뚫었고 안쪽에 +자 모양의 홈을 판 것이 특징이다. 이..

절터 2012.06.29

경주 일성왕릉 (사적 173호), 남산 신성아래에 있는 신라 7대 일성왕의 무덤

경주시 탑동 남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7대 일성왕의 능이다. 일성왕릉은 신라초기에 조성된 왕릉으로 그 존재는 조선후기인 영조 6년(1730) 이후라고 한다. 신라시조 박혁거세를 비롯하여 초기 박씨로서 왕위에 올랐던 왕들의 능인 경주 오릉과 비슷한 성격으로 정확한 조성내력이 알려지지는 않았고 에 남산 해목령에 장사를 지냈다는 경애왕릉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일성왕은 신라 3대 유리왕의 맏아들로 북방의 말갈족과 충돌이 있었으며, 농업을 권장하고 백성들이 금은주옥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일성왕릉이 위치한 곳은 경주오릉에서 남쪽으로 1.5km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신라 6촌 중 돌산고허촌이 있었던 지역으로 보인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있는 경주 나정, 신라가 멸망할 ..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유물로 본 신라의 궁궐 건축

안압지는 신라의 궁궐이었던 월성 동쪽편에 있는 별궁에 있던 임해전지의 별칭이다. 이 곳에 궁궐을 짓고 연못을 조성한 것은 기록에 의하면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대에 별궁으로 지었다고 한다. 백제 무왕이 사비성에 조성한 궁남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도교적 형식이 많이 반영되어 궁궐건물인 동궁안에는 돌을 쌓아 산을 만들고 연못에서 세개의 섬을 만들었으며, 후원에는 꽃나무를 심고 오늘날 동물원처럼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궐인 경복궁의 경회루나 향원정, 창덕궁 후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으로 사신의 접대나 연회를 베풀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규모는 조선시대 궁궐에 비해서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안압지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대부분 실생활에 사용하던 ..

지역박물관 2012.06.29

경주 양산재, 신라를 건국한 6부촌장을 모신 사당

경주시 탑동 신라시조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있는 우물제사 유적인 경주 나정 안쪽에는 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하고 신라를 건국한 사로6촌의 촌장을 모신 사당인 양산재가 있다. 이 사당은 7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문화재로서 의미가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경주와 신라의 건국을 설명해주튼 장소라 할 수 있다. 양산재는 6부촌장을 모신 사당과 앞쪽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건물, 양산재를 관리하는 살림집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사당 건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지역은 경주 남산의 북쪽자락에 있는 남산신성 아래의 마을로 신라 사로 6촌 중 돌산고허촌이 있었던 지역으로 보인다. 주변에는 남간사 절터가 있으며, 남쪽으로 경주 포석정이 자리잡고 있다. 신라를 건국한 주체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로육촌은 알천 북쪽에 위치한 ..

경주 나정 (사적 245호), 신라 시조 박혁거세 탄생 설화가 있는 우물터

신라를 건국한 시조인 박혁거세왕의 탄생설화가 있는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사적 245호로 지정된 경주 나정이다. 최근에 발굴작업을 했고, 사적정비를 진행중이어서 현재는 빈터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에는 조선 순조대에 세워진 유허비를 비롯하여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건물석재들도 볼 수 있다. 우물은 고대 이래로 인간이 물을 얻을 수 있는 인공시설로 사람들은 이런 우물을 신성시하였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는 당시 사람들에게 신성시되었던 우물제사 유적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 우물들에는 토기와 기와, 동물의 뼈, 씨앗 등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우물들은 식수를 얻기 위한 우물이라기 보다는 우물제사를 위한 공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인들..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안압지 출토 목간 등에서 볼 수 있는 신라의 문자생활과 민속신앙

경주박물관 안압지관은 안압지에서 출토된 3만여점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유물 7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안압지는 신라 왕궁이었던 월성 동쪽편에 있던 동궁의 정원을 구성하고 있던 연못으로 동궁의 임해전에 딸린 연못이라하여 임해전지라고도 한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대에 연못을 파고 정원을 조성하였다고 하며, 이곳에는 동물원도 있었다고 한다. 1974년 이래로 오랜 기간동안 발굴조사를 벌였는데 신라을 대표하는 3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부장품으로서 만들어진 것인데 비해,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안압지가 연못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었던 까닭에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안압지가 있던 동궁..

지역박물관 2012.06.27

경주 서악서원, 김유신 장군과 최치원, 설총을 모신 서원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 장군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인 설총, 최치원을 모신 서원인 서악서원이다. 이 서원이 처음 세워진 것은 조선 명종때 경주 부윤 이정이 김유신을 모시기 위해 서원을 건립하였으며 지역 유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설총과 최치원도 함께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서원을 세울 때 퇴계 이황이 서악정사라 이름을 짓고 직접 글을 써 현판을 달았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건하였다고 한다. 인조대에 사액서원이 되었고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존속한 서원 중 하나이다. 서악서원이 위치한 서악동은 선두산 동쪽편 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경주를 남북으로 흐르는 형산강이 마을 앞으로 흐르고 있다. 주변에는 신라를 크게 중흥시..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 당나라 장안 사람들이 정신세계, 불상들

당나라는 이민족과 치열한 투쟁이 계속된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를 계승한 국가로 이전 시기의 왕조로 가장 중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와는 다른 성격을 보이는 왕조였다.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서역의 많은 문물들과 종교, 사상들이 전래되었고, 동시대 세계를 휩쓸었던 이슬람이 절정기를 이루던 시기이기도 하다. 남북조시대에 중국에 본격적으로 전해진 불교는 당나라때에 전성기를 이루며, 한나라 이후 노장사상이 민간신앙과 결합된 도교는 황실의 후원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또한 국가 정치체제의 중심인 유교 또한 학문과 정치의 중심으로 그 역할이 줄어들지 않았으며, 사회 체제로서 그 중심은 더욱 굳건해 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교, 불교, 도교 이외에도 서역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마니교, 이슬람교 등도 장안을..

지역박물관 2012.06.26

경주 영흥사 절터, 신라의 신성한 숲인 천경림에 세웠던 사찰인 칠처가람 중 하나

영흥사는 경주시 사정동 경주공업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신라의 사찰로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기던 숲인 천경림에 지었던 칠처가람 중 하나이다. 이 절은 최초의 비구니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삼국유사 기록에 법흥왕비가 머리를 깎고 중이되어 영흥사에 살다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법흥왕대에 있었던 사찰로 보인다.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것은 법흥왕 14년(527)으로 이차돈의 순교로 귀족들의 반발을 잠재웠기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이차돈은 신라인들이 신성시여기는 숲에 절을 지어서 귀족들이 반발했는데, 이후에 이들 천경림에 지은 숲을 칠처가람이라고 하며, 그 중 서쪽을 중요시해서 그런지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비롯하여 영흥사, 담엄사, 영묘사 등이 경주도심의 서쪽 형산강변에 자리잡고 있으며, 황룡사와..

절터 2012.06.26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 당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인 당삼채와 십이지신상

당삼채는 중국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성격을 지녔던 왕조인 당대(618~906년)에 만들어졌던 도기로 3가지 색상의 유약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도기에 녹색, 갈색, 황색, 백색 또는 코발트이 남색을 입혀서 칠한 것으로 그릇을 비롯한 생활용품과 무덤의 부장품이나 장식용으로 만든 남녀 인물상, 신상, 전설상의 동물, 말 등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진시황 무덤에서 발견된 토용이나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이형토기와 같은 용도로 죽은자가 사후세계로 가는 길에 동행하는 의미를 가진 부장품이 주된 용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귀족들이 취향이나 생활모습, 복식 등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당시 수도였던 장안이나 귀족들이 많이 살았던 낙양의 무덤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안녹산의 난 이후 당나라의 국제적 영향력이..

지역박물관 2012.06.25

경주 김유신장군묘(사적 21호), 삼국통일을 완성한 김유신장군의 무덤과 무덤둘레에 새겨진 십이지신상

경주 도심에서 형산강 서쪽편에 위치한 송화산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김유신 장군의 무덤이다. 신라 귀족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왕릉에 준하는 규모의 큰 무덤으로 지름 30m 크기로 둥근 형태의 봉분을 하고 있다. 봉분 아래에는 둘레돌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 난간석이 세워져 있다. 둘레석에는 12지신상을 조각하고 있는데 세련된 조각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봉분 앞에는 당나라 능묘제도를 받아들인 서구의 제단과 비슷한 형태의 상석이 놓여져 있다. 무덤의 전체적인 형태는 김유신장군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태종무열왕릉과 달리 성덕왕 이후 왕릉의 형태를 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후대에 보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덤의 봉분은 후대 당나라 능묘제도를 받아들였던 왕릉과 비슷하지만, 문.무인석을 비롯한 석상들은 세워져 ..

[맛집] 경주 원조콩국, 대릉원 주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

경주 여행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경주 대릉원 주변에는 많은 식당들이 들어서 있지만, 그 중 한곳을 고르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다. 경조원조콩국은 경주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대릉원에서 서쪽 경주 오릉이나 경주향교와 최부자집이 있는 교촌마을을 찾아갈 때 길모퉁이 있는 식당이다. 약간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잘 찾아가기는 쉽지 않지만 생각보다는 음식이 깨끗하고 맛은 괜찮은 편이다. 이 곳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식당이름처럼 콩을 재료로한 음식 위주로 차림표가 구성되어 있다. 경주에 비슷한 음식을 파는 곳이 많은 것으로 볼 때 불고기 쌈밥과 함께 오래전부터 경주에서는 이런 음식을 많이 팔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식당에서 파는 음식으로는 순두부, 콩국수, 생콩우거지탕이 있는데, 비슷한 규모의 식당 중에서는 맛..

맛집 2012.06.24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 당나라 시대 금.은으로 만든 화려한 금속세공품 그릇

중국 당왕조 사회의 국제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로 금과 은을 비롯한 금속제 생활용기들을 들 수 있다. 이전시기에도 청동으로 만든 동기를 비롯하여 금속제 용기들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는 제례의식과 관련된 의기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의 문화와 문물이 들어오면서 로마를 비롯하여 페르시아,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등에서 많이 만들어졌고 사용되었던 금속제 생활용품들이 당나라 장안의 상류층에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나라 등을 거쳐 실크로드 동단에 위치한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백제 말기의 부여나 신라에서 화려한 금은그릇 등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물왕대 이후 황금시기로 불리는 신라의 고분에서는 금관..

지역박물관 2012.06.24

경주 흥륜사지 (사적 15호),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얼굴무늬수막새가 출토된 영묘사 절터도 있었다고 알려진 신라 칠처가람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것은 법흥왕대인 527년이며, 당시 신라 귀족들의 반발로 이차돈의 순교를 통해 불교가 공인되었다. 당시 신라귀족들이 반발한 것은 이차돈이 당시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기던 숲인 천경림에 절을 지은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당시에 귀족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불교를 국가적인 종교로 받아들이기 위해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기던 숲에 세웠던 사찰을 신라 칠처가람이라고 하는데 경주 도심 동쪽편의 분황사와 황룡사, 서쪽편 형산강변에 위치한 담엄사, 영묘사, 영흥사, 흥륜사가 있고, 낭산자락에는 사천왕사가 있다. 당시 사람들에게 신앙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던 천경림에 절을 세움으로서 신라는 빠른 시일내에 불교국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 중 경주시 사정동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 무덤이 있는 경주..

절터 2012.06.24

경주 백률사와 굴불사지,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 계기가 되었던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사찰

백률사는 경주 동천동에 있는 사찰로 삼국시대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던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사찰이다. 당시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잘린 목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진 곳에 세운 절이다. 문헌에는 자추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후에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백률사에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불상인 국보 29호로 지정된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있었고, 통일신라 헌덕왕대에 이차돈을 추모하여 세운 비석도 있었다. 절의 규모는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된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건물은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사찰 주위에는 옛 건물에 쓰였던 건물 초석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백률사 아래에는 보물 121호로 지정된 석조사면불상이 남아 있는 굴불사 절터가 있다. 굴불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전국 사찰 2012.06.23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 당나라인의 예술과 풍류

당나라는 남북조시대를 통일한 수나라를 이어 618년 이연이 건국하여 907년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중국대륙을 통치한 왕조이다. 한나라와 함께 중국 역사상 이민족인이 아닌 한족 왕조로서 가장 번성했던 왕조이기도 하다. 당나라는 남북조 혼란기를 통일한 왕조로서 중국 한족 고유의 문화도 발전했지만, 이민족과의 적극적인 교류로 국제적인 성격을 가진 대표적인 왕조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제도, 문물, 사회체제 등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는 유교문화가 사회의 주류을 이루었던 송나라를 비롯하여 후대의 중국 왕조와는 달리 국제적이며 개방적인 성격을 많이 갖고 있었던 왕조로 남북조대에 처음 전래된 불교..

지역박물관 201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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