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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헌강왕릉(사적187호)와 정강왕릉(사적186호), 경주 남산 동쪽 통일신라 쇠퇴기 왕릉

경주 남산 동쪽편 통일전과 서출지 근처 북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헌강왕릉(사적187호)와 정강왕릉(사적 186호)이다. 당나라 능묘제도를 받아들여 웅장하면서도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던 괘릉 이후의 신라 왕릉과는 달리 소박한 느낌을 주는 통일신라 쇠퇴기 왕릉이다. 괘릉 이후에 정착되어가는 문인석, 무인석 등의 석물과 둘레석의 십이지신상, 난간석 등 왕릉을 구성하던 장식은 보이지 않고, 서구의 신전 제단같은 상석도 단순한 장방형 화강석 석단으로 바뀌어 있다. 봉분에는 단순하게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둘레석을 둘렀을 뿐이다. 외형에 있어서는 신라 전성기를 이끈 진흥왕릉과 비슷하며, 복고적인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진흥왕릉 부근의 문성왕릉이나 헌안왕릉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헌강왕은 신라..

[맛집] 경주 별채반 교동쌈밥, 대릉원 근처에 있는 잘 알려진 쌈밥집

경주 도심의 대표적인 역사유적지구인 대릉원으로 들어가는 큰 길에 위치한 식당인 별채반 교동쌈밥집이다. 어느때부터인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대릉원 주변 식당들은 대부분 쌈밥집으로 바뀌었는데, 그 중에서도 식당들이 밀집한 대릉원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집이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최근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서 이 곳을 다녀갔다고 크게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곳이다. 식당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대릉원 주변 식당에 비해서 맛은 좋은 것 같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 것으로 보인다. 식당에서는 여러 종류의 쌈밥과 6부촌 육개장, 곤달비 비빔밥이 있는데 경주에서는 맛이 괜찮은 것으로 보인다. 식당 앞에 신라고분들이 있어서 경주 특유의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맛집 2012.06.06

[부여박물관] 능산리 절터 출토유물에서 보여지는 백제의 대외교류

백제는 성왕대에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빈번하게 교류하면서 중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양나라 무제를 위한 대통사를 창건하였으며 유학에 정통한 학자와 장인,화가 등을 초빙하기도 하였으며, 불교경전 들을 얻어 오기도 했다.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능산리사지에는 당시 중국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 남조와 백제와의 교류가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대 이후에도 이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능산리 절터에서는 수당의 영향을 받은 흑갈유 벼루나 자기편을 비롯하야 남조에서 많이 사용한 호자, 서역과 북위에서 많이 만들어진 소조상을 비롯하여 서역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유리제품들도 출토되고 있다. 또한 능산리절터에서는 백제에서 사용된 항아리, 사발, 등잔,..

지역박물관 2012.06.05

경주 양동민속마을, 회재 이언적 종가집과 보물 411호로 지정된 별채 무첨당

한옥 건물 중 보물로 지정된 많지 않은 건물 중 하나인 보물 411호 경주 양동 무첨당이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종묘에 배향되었으며 경주 옥산서원에 모셔진 회재 이언적(1491~1553)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건물은 'ㄱ'자형을 하고 있으며, 앞면 5칸으로 3칸은 대청마루, 2칸은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누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건물로 종가집 본채의 사랑채와는 별개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독서 등을 할 수 있는 정자와 비슷한 성격의 사랑채이다. 대청에는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무첨당이 있는 이집은 회재 이언적의 부친이자 손소의 사위로 양동마을에 처음 들어온 이번이 살던 집으로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여주이씨의 종가집..

고택_정원 2012.06.05

경주 원원사지삼층석탑 (보물 1429호), 통일신라 밀교를 대표하는 원원사 절터에 남아 있는 두개의 탑

경주에서 동남쪽을 20여 km 떨어진 외동읍 모화리 동쪽 산에 위치한 통일신라 밀교의 중심지였던 원원사 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 1429호로 지정된 원원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정형화되어가던 삼층석탑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절터 가운데 두개의 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두개의 탑은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2단으로 기단부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많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석탑의 기단부에는 연화좌에 앉아 있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으며, 탑신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무덤 등에는 각 방위를 지키는 신장으로 십이지신상을 새겨 넣는 경우는 많지만 석탑 기단부에 십이지신상을 새긴것..

[부여박물관] 백제 창왕명석조사리감 (국보 288호), 능산리사지 출토 금속공예품과 소조상

국보 288호로 지정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은 백제 마지막 왕들의 고분이 있는 능산리 절터 목탑지에서 출토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사리감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창왕은 백제 27대 위덕왕을 일컫는 명칭이며, 그의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만든석으로 능산리사지 목탑지 심초석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리감에는 창왕의 여동생인 공주가 만들어 사리와 함께 봉안했다는 글씨가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서체인 예서풍의 글자로 적형 있다. 이 사리감은 백제 역사 연구에 중요한 금석문 자료로, 사리를 봉안한 연대와 공양자가 분명하게 적혀 있어 이 절의 창건연대와 이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의 제작연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능산리절터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목탑이 있던 터에서는..

지역박물관 2012.06.05

경주 양동민속마을, 18세기에 지어진 고택 대성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어진 경주 양동마을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된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모여사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는 여러 집안이 살았지만은 대체로 조선중기 중종대에 이 마을에 터를 잡은 손소의 후손들이 모여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형태의 한옥들을 볼 수 있다. 이 마을 가운데 여주 이씨 대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보물로 지정된 고택인 무첨당 안쪽에는 현재 남아 있는 고택들이 가장 많이 지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영조대에 지어진 대성헌이 있다. 이 집은 이언적의 11세손인 이능단이 18세기에 분가하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ㅁ'자형 주택을 하고 있으며, 손님들이 출입하는 길을 사랑채가 내려다 보고 있..

고택_정원 2012.06.04

원주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 (보물 190호), 통일신라 승탑의 형식이 잘남아 있는 고려전기 승탑

원주시 부론면 남한강과 가까운 내륙수운의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는 큰 절터인 거돈사 터에 남아 있던 보물 190호로 지정된 원공국사 승묘탑이다. 이 승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 집에 소장되어 있던 것으로 1948년 경복궁으로 옮긴 이래 현재는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의 모습은 바닥돌 없이 기단부와 탑신으로 구성된 8각형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하고 있는 승탑이다. 기단부는 팔각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가운데받침돌에는 팔부중상을 새겨놓고 있다. 팔각으로 이루어진 탑신부 몸돌에는 사천왕상과 문모양을 새겨 놓고 있으며, 지붕돌을 팔각형으로 기와지붕을 모방하여 새겨 놓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성요소간 비례가 뛰어나며 당시 목조건축물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경주 관문성(사적48호), 만리성이라 불렸던 왜(倭)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울산과의 경계에 쌓은 12km이르는 장성

경주와 울산을 연결하는 국도7호선을 중심으로 두도시의 경계가 되는 지점에 있었던 삼국시대 성벽인 관문성이다. 이 성은 왜구가 신라의 수도 경주에 침입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보기드문 장성(Wall)형태의 성벽이다. 경주시 외동읍 서쪽 해발 765m의 치술령 줄기 남쪽에서 시작해서 경주시 녹동리 마을과 해발 250m정도인 순금산 정상부 아래를 지나, 경주에서 울산 태화강으로 흘러드는 동천을 지나 외동읍 모화리 동쪽 산아래까지 길게 이어진 전체 12km 정도의 큰 규모의 성곽이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성덕대에 각간 원진이 39,262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한다. 성벽은 길이 40~50cm로 다듬은 돌을 5단 내지 6단으로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쌓았는데, 위로 쌓아 올리면서 ..

[부여박물관] 능산리사지 목간에 남겨진 이야기

책(冊)이라는 한자의 어원이 되는 목간은 종이가 발견되기 이전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문서로 폭 1cm, 길이 20~30cm 정도로 끈어로 묶어서 사용했는데, 지금의 책과 비슷한 크기라고 할 수있다. 목간은 춘추전국시대 이후 다양한 저서들이 적혀있는 오늘날의 책과 같은 용도로도 많이 사용되었지만, 실제로는 교역을 위한 영수증, 물품표, 교역내용의 기록한 장부 등의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한.중.일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에서 교역의 목적으로 한자를 도입하고, 이를 목간에 기록해 놓은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목재로 만들어진 목간은 물품표 등이 경제적인 목적으로 종이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동안 사용되었는데, 목재의 특성으로 우리나라에서 잘 부패되지 않는 연못, ..

지역박물관 2012.06.03

경주 양동민속마을, 전망좋은 언덕에 자리잡은 경산서당

경주 양동민속마을에서도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경산서당이다. 경산서당은 헌종대에 회재 이언적의 후손인 이의윤을 배향할 목적으로 세운 서당인데, 원래는 마을 뒷편 안계저수지 안에 있던 것을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조선후기 사설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서원은 대부분 처음에는 후대를 양성할 목적으로 세원 서당에서 출발하여 서원으로 바뀌고, 국왕으로부터 사액을 받는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경산서당이 세워진 조선후기는 전국각지에 서원이 난립하던 시기로, 국왕으로부터 사액을 받기가 쉽지가 않아서 서당의 형식을 계속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당을 제외하고는 건물규모나 배치는 서원과 큰 차이가 없다. 경산서당은 현재 강당, 동재,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왼쪽편에 관리사로 보이는..

[맛집] 경주 요석궁, 최부자집이 있는 교촌마을 입구의 오래된 고택에서 한정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

신라의 왕궁이었던 월성 서쪽편 옛 국학이 있었던 경주향교 주변에는 경주를 비롯하여 영남지방에서도 손꼽히는 부호였던 최부잣집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형성된 반촌마을인 교촌마을에는 최부잣집을 비롯하여 교동법주 등 내세울만한 것이 많은 마을이다. 교촌마을 최부자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동쪽편에는 오래된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유명한 한정식 식당인 요석궁이 있다. 원래 양반의 부호가 살던 저택이라 건물의 규모도 큰 편이며, 옛 고택과 그 옆으로 확장한 현대식 건물이 같이 있는 식당이다. 경주 요석궁에서 내는 요리는 경주 최부잣집 전통요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 마을에서 먹던 음식도 있게지만 일반적인 한정식집에서 제공하는 요리들과 최근에 개발하는 먹기 좋은 퓨전한식들도 많이 선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음식가격은 비싼편이..

맛집 2012.06.02

가족주말농장(5월4주), 고추.토마토.참외에 꽃이 피기 시작하다.

5월초에 여러가지 작물들을 심기 시작하여 2주가 흐르는 동안 대부분의 작물들을 다 심은 것 같은데, 아직도 몇고랑이 남아 있다. 제일 먼저 심었던 고추는 어느덧 자리를 잡아서 꽤 많이 자란 것 같고, 작은 꽃도 피기 시작하고 있다. 고추와 같은 고랑에 심었던 피망은 꽃이 빨리 피고, 몇몇은 조그많게 열매도 달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번주에는 고추가 흔들리지 말라고 고추대를 땅에 박고 끈으로 묶어주는 작업을 했다. 그나마 몇번을 해서 그런지 작업하기가 작년에 비해서 수월했다. 고추와 함께 꽤 많이 심었던 토마토도 이번주부터는 노란꽃이 매달리기 시작하고 있다. 고추와 마찬가지로 이번주에는 지지대를 땅에 박고, 토마토를 묶어 주었다. 작년에는 곁가지를 너무 많이 잘랐다고 잔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기타 2012.06.02

[부여박물관] 능산리사지 가람이야기, 공방지 출토 유물들

부여군 능산리 고분과 부여 나성 사이에 위치한 능산리 절터는 백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로 원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탑1금당의 전형적인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이 사찰은 다른 사찰과는 달리 뒷편 강당과 주변 건물들이 사당으로 먼저 세워지고 그 뒤에 목탑과 금당이 지어지면서 사찰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능산리 사지 절터 뒷편에는 강당건물과 함께 공방지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있는데, 이 곳은 원래 성왕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의 부속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절을 세운 위덕왕이 죽고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그 기능이 축소되면서, 공방건물로 바뀌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굴뚝을 설치하여 동광석을 제련하고 사찰에 필요한 각종 ..

지역박물관 2012.06.02

경주 양동민속마을, 천석꾼 부자가 살았던 큰 저택인 낙선당

하회마을과 함께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민속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손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양반들 집단주거지인 반촌이다. 이 마을에서 제일 안쪽으로는 조선중기 성종대 문신인 손소가 살았던 대종택인 서백당을 중심으로 손씨 후손들이 분가한 낙선당, 창은전사를 비롯하여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들을 여럿 볼 수 있다. 그 중 이 마을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낙선당은 이 마을 경주 손씨 대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서백당 안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집은 손소의 셋째 아들인 망재 손숙돈이 분가할 때 지은 저택이다. 낙선당이라는 저택의 이름은 병자호란때 순절한 낙선당 손종로의 호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저택은 문간채, '-'자형의 사..

고택_정원 2012.06.02

[부여박물관] 위덕왕과 능산리사지,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이 있는 능산리고분과 백제 나성 사이에 위치한 능산리사지는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된 절터이다. 백제는 사비성을 도읍으로 하던 시기에 많은 사찰들을 건립했지만 그 중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이다. 이 사찰은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지어졌다는 의견되 있지만, 대체로 백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원 원찰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이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여러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중국으로 부터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를 비롯하여, 문서에 해당하는 많은 목간들, 건축자..

지역박물관 2012.06.01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24호),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불교미술 걸작인 석굴사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국보24호로 지정된 경주 석굴암 석불이다. '석불사'라고 불린 이 석굴암은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이 불국사와 함께 건립한 것으로 전세의 부모를 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앞쪽은 사각형 전실, 본존불을 비로한 불상들이 모셔진 주신을 원형을 하고 있다. 아마도 동양의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형이라는 사상이 이 석굴을 조성할 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실에는 그 존재에 대해서 많은 의견이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천부상.보살상.나한상.거사상.사천왕상.인왕상.팔부신중상 등 불교에서 모셔지는 많은 부처,보사,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주실과 전실사이에는 복도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석굴암 본존불에 대해서 앉은 자세나 손갖춤..

전국 사찰 2012.06.01

[바티칸박물관] 비오-클레멘스박물관, 화려한 조각상과 화병들이 전시되어 있는 촛대의 방(Galleria dei Candelabri)

그리스.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수많은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비오-클레멘스박물관(Pio-Clentine Museum)의 여러 전시실 중 하나인 '촛대의 방(Galleria dei Candelabri)이다. 이 전시실은 바티칸의 도서관 복도에 위치해 있다. 전시실에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많은 조각상들과 화병, 촛대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별히 분류하기 곤란한 형태의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전시에 일관성은 없어 보인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풍요를 상징하는 아르테미스 석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부조상이 새겨진 화병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실은 19세기말 교황 레오13세의 지시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비오-클레멘스박물관(Museo Pio-Clentino)..

해외 박물관 2012.05.31

[부여박물관] 백제 성왕대의 대외교류, 남북조의 문물을 받아 왜倭에 전하다.

고대국가 이래로 한.중.일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한반도 서남부 해안을 장악하고 있던 백제는 삼한시대로 이래로 꾸준한 대외교류를 통해서 동아시아에서 국제적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 백제는 중국의 남조, 왜와 상당한 수준의 교류관계를 가조고 있었으며, 그 중간에 위치한 가야지역과도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북쪽의 고구려, 동쪽의 신라와는 대체로 적대적 또는 비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백제가 고구려의 압박을 받고, 신라와의 한가유역 쟁탈전에서 실패한 이후 수도를 사비로 옮기면서 중국,왜와의 관계는 더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부여로 수도를 옮긴 성왕은 중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남조의 양나로부터 많은 제도와 문물을 받아 들였으..

지역박물관 2012.05.31

경주 양동민속마을, 마을안쪽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경주손씨 대종택인 서백당과 주변 한옥들

양동민속마을은 영남지방 4대길지로 불리는 곳으로 지금도 양반들의 저택과 초가 160여호가 남아 있는 지주계층인 양반들이 살았던 반촌이다. 이 마을에 주민이 거주한 것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도 여러집안이 이마을에 거주했다고 한다. 지금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모여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주로 조선 중기 성종대 문신이 손소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손소는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던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으며, 중종대에 판서와 우참찬을 지낸 손중돈이 아들이고,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유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외손자이다. 이들은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들은 대부분 이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양동마을 제일 안쪽에는 이 마을 ..

고택_정원 201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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