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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박물관] 백제의 멸망과 의자왕, 후대 사람들이 본 백제와 부여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재위 641~660년)은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재위 초기인 642년에는 친히 신라를 공격하여 40여성 빼앗는 등 신라에 큰 타격으로 주었다.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신라와 당나라의 해상 교통로를 장악하는 등 내.외적으로 백제의 국력을 회복하는데 힘썼다. 만년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다가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성이 포위되자 웅진성으로 피신했다가 항복아여 태자와 함께 당나라에 압송되어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나.당연합군은 신라군이 육로로 김유신이 이끄는 5만명의 군대가 탄현을 넘어 황산벌에서 계백의 오천결사대를 격파했으며, 당나라의 소정방과 신라의 김인문이 이끄는 연합군이 금강수로를 이용하여 사비성을 함락하였다. 이후 당나라는 백제의..

지역박물관 2012.06.15

경주 한국콘도, 보문관광단지에서 오래된 숙박시설

경주에서 동해안 감포해변으로 연결되는 4번국도가 지나가는 토함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막아서 조성한 보문호수를 중심으로 조성된 보문관광단지에는 많은 위락시설과 숙박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총 200여만평 규모의 넓은 지역에 걸쳐서 조성된 보문관광단지는 1974년에 착공하여 1979년도에 완공되었다고 하며, 30여년 지난 지금은 당시 심었던 나무들이 크게 자라서 호수와 함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당시에 심은 벚나무들이 크게 자라서 봄에는 벚꽃의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문관광단지에는 조선호텔, 현대호텔 등 많은 호텔들과 콘도들이 들어서 있는데 그 중 하나인 한국콘도는 이 곳에서도 꽤 오래된 숙박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긴 콘도인 한국콘도는 전국의 유명 휴양지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한국의 풍경 2012.06.14

경주 황오동고분군, 발굴이 진행중인 대릉원 동쪽편 쪽샘지구 고분군

경주 황오동 고분군은 대릉원 동쪽편 주택가에 흩어져 있는 신라 귀족들의 묘역으로 쪽샘지구라 불린다. 1960년대에 주택과 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고분의 훼손이 심해져서 2002년부터 국가에서 주택를 비롯한 사유지들을 매입하고 2007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적석목관분 등 여러 형태의 고분 150여기 확인되고 있으며, 수천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낡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던 경주 쪽샘지구는 큰길 주변을 제외하고 상당수의 가옥들이 지금은 철거되어 약간 황량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곳에서는 예전부터 관리되어 왔던 큰 도로변 모통이와 경주빵으로 유명한 황남빵집 맞은편에 위치한 고분이 제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주택가 안쪽에 위치했던 고분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

경주 명활성 (사적47호), 경주와 동해안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지키던 산성

경주시 보문관광단지 입구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인 명활성은 남산성.선도산성.북형산성과 함께 경주를 방어하는 외곽의 주요 산성 중 하나로 주로 동해안과 경주를 연결해 주는 교통로인 4번국도가 경주시내로 들어오는 관문에 위치하고 있다. 토함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북천(알천)이 평지로 접어드는 입구이기도 하다. 명활성은 주로 동해안을 통해 접근해 오는 왜(倭)의 공격에 대비하여 쌓은 산성으로 이 성을 처음 쌓은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기록에는 실성왕 4년(405)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이전 시기부터 동해안을 통한 왜군의 침입이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내물왕의 아들을 왜(倭)에 인질로 보내고, 박제상 이야기가 전해지는 등 왜(倭)와 신라의 관계가 상당히..

[부여박물관] 백제의 무늬 전돌 (보물 343호), 산경치.용.봉황.연꽃.구름.괴수 등 여덟가지 무늬의 전돌

무늬벽돌(塼)은 오늘날 벽돌이나 타일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는 건축자재로 흙을 사각형, 직사각형, 마름모꼴 등의 형태로 바닥이나 벽면을 장식하는데 주로 사용했다. 무늬벽돌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 이후부터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고분이나 절터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바닥이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무늬벽돌에는 다양한 소재의 무늬들이 그려져 있는데 불교적인 소재인 연꽃이나 보상화무늬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무늬벽돌의 무늬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 무늬를 통해 당시의 회화 경향이나 문화의 전파 관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부여 규암면 외리 절터에서 파편을 포함하여 모두 140여점 출토된 보물 343호로 지정된 백제의 무..

지역박물관 2012.06.14

가족주말농장(6월1주), 비는 오지 않아서 약간 늦어 보이지만 꽃은 피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다.

밭에 작물을 심으면서 본격적으로 주말농장을 시작한지 벌써 1달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너무 많은 비로 꽃이 제대로 피지 못하고 탄저병 등이 많아서 어려웠는데, 올해는 한달 가까이 비가 제대로 오지 않고 있다. 비가 많이 오지 않고, 밭고랑에 비닐을 덮어 주어서 그런지 잡초는 생각보다 많이 생기지는 않고 있는 반면에 물이 부족해서 그런지 작물들 또한 자라는 속도가 느려 보인다. 다행히 밭에 지하수가 있어서 물을 뿌려줄 수 있어서 큰 걱정은 하고 있지는 않지만, 올해는 밭고랑에 물을 뿌려주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작물들을 심은지 1달이 지난 6월에 들어서는 작물들이 줄기를 잘 뻗어나가고 있으며, 꽃도 피기 시작하고 작은 열매도 조그맣게 달리기 시작하고 있다. 토마토는 여러 차례 순을 잘라서 그런지 한..

기타 2012.06.14

경주 첨성대 (국보 31호),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삼국시대 신라의 천문대

첨성대는 하늘의 별을 관측하기 위해 높은 쌓은 대(臺)를 일컫는 말이면서, 국보 31호로 지정된 경주시 인왕동 역사유적지구에 남아 있는 신라의 첨성대를 특정하기도 한다. 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것으로 고대 이래로 국가나 집단을 운영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로 국가의 길흉을 점치기 위하여 별의 움직임이나 특별한 현상을 관측하는 것과 시간과 날짜를 정하는 역법을 만들거나 그 오차를 줄이기 위함이다. 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것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매일 한번씩 회전하는 별자리를 관측하여 시간과 방위를 측정하는 것과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의 움직임,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혜성, 지구로 떨어지는 별똥별, 태양의 흑점 변화,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하늘에 별이 사라지는 항성의 폭발 등이 있다.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이를 ..

경주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 (보물 168호), 보문단지 앞 마을 절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삼층석탑

경주시 천군동 마을 농경지 가운데 남아 있는 보물 168호로 지정된 경주 천군동 동.서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가람배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형적인 '두 개의 탑' 모습을 하고 있는 삼층석탑이다. 원래는 들판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39년에 목원한 것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삼층석탑 형식을 하고 있다. 현재 동탑은 기단과 탑신만 남아 있고, 서탑에는 머리돌 장식이 일부 남아 있다. 머리장식이 남아 있는 서탑의 높이가 7.7m로 전성기 석탑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두개의 탑은 같은 양식을 하고 있는데, 2층의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석가탑과 마찬가지라 기단부와 탑신 몸돌에 특할한 장식을 하고 있지 않으며, 탑신 몸돌 모퉁이에 기둥을 새겨 놓..

[부여박물관] 백제 사비 시대의 불교 예술, 금동불상

중국 동진을 통해 백제체 불교가 처음 소개된 것은 침류왕때이지만, 실제로 불교가 크게 융성한 것은 백제 부흥을 꿈꾸던 성왕대로 중국 남조 양나라의 무제의 영향을 받아서 중국으로부터 기술자 등을 지원받아 도읍을 사비성으로 옮기면서 정림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을 세웠다. 이런 경향은 그의 아들인 위덕왕과 무왕, 의자왕때까지 이어졌으며, 이런 경향은 일본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특히 백제의 불교는 예술과 외교적인 측면에서 많은 족적을 남겨 놓고 있는데 신라의 금동불상인 반가사유상, 일본의 반가사유상, 신라의 황룡사 목탑, 석가탑, 일본 나라의 동대사를 비롯한 많은 불교 건축에 백제의 영향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일본의 사찰건축 전문회사 또한 이 당시부터 존재했던 백제의 장인..

지역박물관 2012.06.13

경주 천관사지(사적 340호), 김유신장군이 천관녀를 위해 세웠다는 천관사 절터

경주시 교동에 위치한 사적 340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절터인 경주 천관사지이다. 천관사는 삼국통일에 큰 역할을 한 김유신 장군과 기생 천관의 전설이 얽혀 있는 곳으로 농경지 가운데 석탑의 기단석 등이 논 가운데 남아 있던 곳이라고 한다. 오랜기간동안 농경지로 사용된 곳이라 건물터 등을 확인할 수 없어 전체적인 사찰의 규모나 가람의 배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천관사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도당산 서쪽기슭이라고 하며 김유신이 사랑하던 기생 천관의 집이 있던 곳에 삼국통일 이후에 천관사라는 절을 세웠다고 한다. 절터는 경주 오릉 동쪽편 들판 한 가운데 있으며 북쪽으로 경주의 궁성이었던 월성 남쪽을 흐르던 남천이 흘러가고 있다. 김유신의 집터로 알려진 재매정에서 남쪽으로 500여m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

절터 2012.06.12

통일신라 전성기를 이끌었던 신문왕릉(사적 181호)과 통일신라말 혼란기를 보낸 효공왕릉(사적 183호)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김정명)은 문무왕의 맏아들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이 귀족들을 제압하고 통일이후 사회안정의 기반을 마련한 왕이다. 또한 최고교육기관인 국학을 창설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문화를 증진하는 정책을 펼쳐 설총, 강수 같은 대학자를 배출하였다. 대체로 고려의 광종이나 조선의 태종에 비유되는 왕으로 귀족세력을 탄압하고 과감한 정치적 숙청을 단행하여 전제왕권을 확립하였다고 한다. 문무왕릉이 있는 동해에서 만파식적을 가져왔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여러차례 일어난 반란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신문왕대에는 9주와 주.군.현을 정비하는 등 지방통치를 위한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관리에게 지급되던 녹읍폐지하여 관리들의 경제력 확대를 억제시켰다. 신문왕릉은 경주의 동남쪽에 있는 낭산의 남쪽 끝에 위..

[부여박물관] 신라와의 전쟁과 익산경영, 왕궁리유적지 출토 유물

전북 익산시 왕궁리에는 국보 289호로 지정된 왕궁리 5층석탑을 중심으로 옛 절터가 남아 있다. 이 절터를 발굴 조사한 결과 사찰건물터와 함께 궁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건물터와 주변에 성벽터가 발견되어 이 곳이 백제 무왕이 미륵사 건립과 함께 백제 왕궁을 조성했다는 것을 추정하게 해 주고 있다. 왕궁리 절터에는 무왕이 조성한 왕궁지와 후대의 사찰 유적이 같이 남아 있는데 후대의 궁궐과 마찬가지로 앞쪽에는 정전을 중심으로 한 의례적인 공간이, 뒷쪽으로는 생활공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절터에서는 중앙정부가 있는 곳이란 의미의 '수부'명 기와가 발견되어 이 곳이 왕궁으로 조성한 곳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한 관북리유적지 등에서 출토된 당시의 행정관제를 나타내는 글씨가 찍힌 기와들이 왕궁리유적지에서..

지역박물관 2012.06.11

경주 능지탑지,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을 화장했던 장소에 세웠다는 능지탑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서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겼던 장소 중 하나인 경주 낭산 서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능지탑지이다. 이 곳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능지탑이라 불리웠던 구조물의 일부가 남아 있다. 원래 이 탑이 있던 자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화장했던 장소라고 한다. 원래는 5층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옛터에 남아 있던 석재들을 모아서 기단부를 복원하고 탑신부분은 확인할 수 없어서 일부만 추정해서 복원해 놓고 있다고 한다. 능지탑지가 자리잡고 있는 경주 낭산은 경주 도삼 동남쪽 넓은 벌판 한가운데에 길게 누에처러 누워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낭산에는 남쪽언덕에는 선덕여왕릉이 있고 그 아래에 문무왕을 추도하기 위해 세운 사천왕사가 있다. 북쪽에는 삼국시대에 신라의 신성한 숲..

경주 양동민속마을,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저택 관가정(보물 442호)

양동민속마을에서도 입지면에서나 건축형태에 있어서 가장 좋아 보이는 보물 442호로 지정된 관가정이다. 조선 중기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아들이 손중돈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 형산강과 기계천이 흐르는 안강평야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저택이다. 기본적으로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면서도, 왼쪽으로는 누마루가, 오른쪽으로는 살림집이 확장된 형태를 하고 있다. 마당과 넓은 벌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채는 정자형태의 대청마루 2칸과 온돌방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5칸 규모로 가운데 3칸을 대청마루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쪽에 방들과 대청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안채의 방들도 바깥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문간채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으며, 창문을 열면..

고택_정원 2012.06.08

경주 원원사지(사적46호), 통일신라 밀교의 중심이 되었던 사찰터

사적 46호로 지정된 원원사지는 신라의 수도 경주의 남쪽 관문성 안쪽 경주 도심에서 20여km 정도 떨어진 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이다. 지금은 보물로 지정된 2개의 3층석탑과 부도만 남아 있고, 후대에 새로 지어진 사찰인 원원사가 절터 앞쪽에 자리잡고 있다. 절터에는 금당이 있었던 자리와 건물 기둥을 세웠던 주춧돌만 몇개 남아 있다. 사찰의 형태는 산중턱에 터를 조성하고 탑과 건물을 세운 형태로 선종 계열의 사찰인 설악산 자락에 자리잡은 양양 진전사지, 선림원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주고 있는 절터이다. 탑의 형태 또한 기단부에 8부중상이나 12지신상을 부조로 새겨 놓고 있는데, 이런 탑의 형태는 9세기경에 유행했다고 한다. 원원사지는 전통적인 쌍탑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부조상으로 장식하는 전..

절터 2012.06.08

[부여 박물관] 백제 중흥을 꿈꾼 서동요 주인공 백제 무왕

성왕이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긴 이래로 백제는 약 100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존재했었느데, 성왕, 위덕왕, 무왕, 의자왕 재위기간이 대부분으로 그 중 서동요 설화로 잘 알려진 무왕이 재위 기간 40여년으로 가장 길었다고 할 수 있다. 무왕대에는 신라와 자주 충돌하였며,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수나라.당나라와 교류하였다. 무왕대에는 신라 공격에 자주 군대를 동원하고 미륵사나 궁궐 남쪽 연못(궁남지)를 파는 토목공사를 많이 일으녀 국력이 많이 소모되어 백제 패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제 무왕과 관려된 유적으로는 삼국사기에 무왕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왕흥사가 있는데, 이 사찰은 최근에 출토된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출토된 청동사리함에 이 사찰이 위덕왕대에 577년에 세워졌다고 하며, 죽은 그의 아들을..

지역박물관 2012.06.08

경주 양동민속마을, 전형적인 마을서당인 강학당

경주 양동민속마을 입구에서 동쪽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이 마을 여주이씨 집안의 서당인 강학당이다. 마을입구를 오가는 사람들과 넓은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ㄱ'자형으로 앞면 4칸으로 어린학생들이 공부하던 넓은 대청마루 2칸과 양쪽에 온돌방을 1칸씩 두고 있는 구조이며, 건물 왼쪽에 어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대청마루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장판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작은 방이 있다. 서당은 삼국시대 이래로 지방의 호족들이 후세들을 교유시키기 위해서 세운 사립교육기관을 통칭하며, 당나라에서 유학과 문물 등을 많이 받아들였던 통일신라 이후 각처에서 성행하였다고 한다. 대체로 서당은 공립교육기관인 향교나 성균관에 들어가기 전 공부를 하던 마을단위의 ..

경주 남산동 동.서삼층석탑(보물 124호), 형식이 다른 두개의 탑이 세워져 있는 절터

경주 남산 동쪽 서출지 남쪽편에는 불국사처럼 형식이 다른 두개의 탑이 세워져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가 끝나가는 9세경에 세워진 보물 124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모전석탑 형식의 동탑과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 형식을 하고 있는 서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두개의 석탑 배치 등으로 볼 때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사찰이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남산사 또는 양피사 등이 부근에 있었다는 후대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부근에는 경주 외각의 오래된 저수지인 서출지와 통일신라 쇠퇴기의 왕릉인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이 있다. 동탑은 탑신은 일반 석탑과 비슷해 보이지만, 기단부가 3칸의 큰 육면체돌을 벽돌처럼 쌓아서 만든 것으로 진흥왕릉 아래에 있는 서악동삼층석탑과 ..

[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국보287호), 백제를 대표하는 문화재

삼국시대 백제를 대표하는 화려한 유물인 국보 287호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이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대에 크게 유행한 박산향로의 일종으로 백제 마지막 왕들이 묻혀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이 향로는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받침, 사실감 있게 묘사된 연잎으로 장식하고있는 향로 몸통,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박산을 묘사한 몸체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뚜껑의 정상부에는 한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향로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향로에서 피워 올린 연기가 박산 주위에서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을 연출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산형태의 뚜껑에는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바위, 나무 등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어 중국의 영..

지역박물관 2012.06.06

경주 양동민속마을,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자인 심수정

경주 양동민속마을에는 10여개의 정자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심수정이다. 회재 이언적의 동생 이언팔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오랜 기간동안 마을 서당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건물은 종가집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고 있으며, 'ㄱ'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에 누마루를 달아내여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누마루는 2칸 규모로 1칸은 난간이 있는 정자 형태로, 1칸으로 문이 있는 방으로 되어 있다. 심수정은 이언팔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철종대에 불탄 것을 일제강점기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누마루를 비롯하여 전체적인 건물형태에 있어서 구한말에 유행했던 건물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자 앞에는 서당으로 ..

고택_정원 201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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