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전체 글 3936

공주 중동성당, 붉은 벽돌을 쌓아서 만든 고딕양식의 성당

공주시 옛 도심 언덕 위에 자리한 천주교 공주 중동성당이다. 1930년대에 세워진 이성당은 서양 중세 때 유행하던 고딕건축 양식 건물로 성당건축물로서는 평이한 외관을 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목조건축물에서 현대건축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성당 건축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붉은 벽돌로 쌓은 외관에서는 벽돌의 질감과 느낌이 잘 드러나 있으며, 아치형 창문과 현관 출입문의 아치는 하늘로 솟아 오르는 느낌을 주는 중세 고딕양식 성당의 건축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본당 건물 옆에는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붉은 벽돌로 지은 사제관이 있다. 이 사제관은 일제 강점기에 많이 지어졌던 서구식 주택처럼 지은 2층 건물로 단순하면서도 본당건물과 일체감을 주고 있다. 이 성당은 건물규모는 그리 크지 않..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가옥

공주시 중학동 산중턱에 세워진 공주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주택건물이다. 이 건물은 1921년 미국 감리교 소속 선교사 사택으로 지어진 주거용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3층 건물로 반지하로 지어진 지하층을 비롯하여 지붕층까지 다양하게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도시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거용 건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서양식 주택이다. 근대건축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어서 등록문화재 2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선교사 사택은 공주지역 주택가에서 약간 떨어진 산 중턱에 세워져 있어서, 전망이 상당히 훌륭하다. 주택 앞쪽으로는 옛 공주시의 중심지인 충청감영과 충남도청이 있었던 자리인 봉황산 자락 아래의 공주사대부고를 중심으로 공주 도심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북서쪽으로 무녕왕..

[중앙박물관 고구려실] 고구려인의 일상과 불교

고구려는 오녀산성이 있는 환인성에서 성읍국가로 출발해서, 압록강 중류지역에 있는 길림성 지안시에 위치한 국내성, 마지막으로 대동강 유역의 평양성으로 수도를 이전했다. 그래서 고구려 유적은 대부분 압록강 중류의 지안시, 북한의 평양일대에 분포하고 있기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유물이나 유적을 실제로 보기는 힘든 형편이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유물들은 고구려 전성기때 한국유역에 남아 있는 여러 산성들에서 조금이나마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며, 신라에서 가져간 고구려 물건들이 경주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북방민족과 긴장관계에 있었던 고구려는 산성을 비롯하여 성곽을 쌓는 기술이 발달하였으며, 지배계층은 주로 성곽 안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지역에 있는 고구려 궁궐인 안악궁은 역사이래로 가장 규모가..

중앙박물관 2011.04.15

공주 포정사문루와 옛 충청감영터

충청감영은 충청도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으로 원래 청주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부터 공주로 옮겼으며, 공산성을 비롯하여 여러 장소로 옮겼다가 숙종때인 1603년 이후부터 현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가 있는 자리에서 200년동안 있었다고 한다. 구한말 공주감영에는 49동 481칸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에 도청이 들어서면서 상당수 건물들이 없어지고, 충청관찰사가 근무하던 선화당과 구한말에 지어진 공주목 동헌, 그리고 정문인 포정사 문루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포정사문루는 조선시대 공주에 있었던 충청감영 정문이다. 아래층에는 큰 문을 달아서 감영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2층은 누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까지 공주사대부고 정문으로 사용했던 것을 공주군청으로 옮겨졌다가 199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조선 관아 2011.04.14

공주목 동헌, 공주목사가 근무하던 건물

공주 웅진동 공주박물관 입구로 옮겨진 옛 조선시대 공주감영 건물 중 공주목사가 근무하던 동헌 건물이다. 조선시대 공주는 충청관찰사가 근무하던 감영이 있던 고을이며, 보통은 충청감사가 공주목사를 겸임했다고 한다. 공주목은 금강 중하류지역인 공주, 부여, 서천 등의 지역을 관장하고던 고을로 현재의 대전광역시 또한 공주목에 속해있었다고 한다. 공주는 금강수운, 한양과 호남지역 간 내륙 교통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교통의 요지로 일제강점기에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교통의 중심지가 대전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충남도청 소재기이기도 하였다. 공주목사가 근무하던 건물인 동헌은 동학농민전쟁 이후 일어난 갑오개혁 이후에 세워진 건물로 건물규모로 볼 때는 목사가 근무하던 동헌건물 중에는 작게 지은 건물..

조선 관아 2011.04.14

[중앙박물관 고구려실] 고구려의 무덤, 금동관

기원전 2세기 이전에 성읍국가에서 출발한 고구려는 부여에서 남하한 주몽세력에 의해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으며 점차 주변지역을 아우르면서 삼국 가운데에서 제일먼저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고구려는 환인성 오녀산성에서 출발하여, 압록강 중류에 지안시에 위치한 국내성을 근거지를 수도로 하다가 대동강 일대에 있던 낙랑군을 몰아내고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유적지는 압록강 유역의 요녕성 환인현과 길림성 집안시에 도성, 무덤, 비석 등이 많이 남아 있으며, 마지막 도읍지인 평양성 일대에도 다양한 벽화가 그려진 고분들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비록 지금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상당한 수준의 유물과 유적들을 남겨놓고 있다. 특히 지안시 일대의 유적들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중앙박물관 2011.04.14

공주 충청감영 선화당, 충청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건물

조선시대 관찰사가 근무하던 감영은 관할지역내 모든 행정, 사법업무를 총괄하던 곳으로 주 건물인 선화당을 비롯하여 많은 부속건물들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남아 있는 감영 건물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선화당은 관찰사가 근무하던 주 건물로 모든 감영에 선화당이라는 동일한 이름의 편액이 걸려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선화당 건물로는 대구, 원주, 공주와 북한 함경남도 함흥에 선화당 건물이 남아 있다. 전주의 선화당은 최근에 복원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주시 웅진동 공주박물관 입구에 복원된 충청관찰사가 근무하던 공주감영 선화당은 순조33년에 지어진 건물로 공주감영 옛터인 공주사대부고 교정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다른 곳으로 옮겨져 박물관 전시실로 사용하다가 1992년에 현재의 위치로 ..

조선 관아 2011.04.14

공주향교, 충청감영에서 운영하던 향교

옛 충청감영과 공주목이 있었던 공주의 공식 교유기관인 공주향교이다. 옛 감영이 있던 공주사대부고에서 금강방면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주택가 위치하고 있다. 금강 중류에 위치한 백제의 옛 수도인 공주는 조선시대 충청도의 중심지이자 금강 수운, 호남지역과 서울간의 교통로에 위치한 아주 큰 고을이자, 충청도 관찰사사 근무하던 충청감영이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공주라는 큰 고을에 위치한 공주향교는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작았다. 나주향교나 전주향교는 그 규모에 있어서 한양의 성균관에 비길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이 곳 공주향교는 웬만한 군현에 소재한 향교와 비슷한 규모로 보인다. 공주향교는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뒷쪽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다. 유생들이 ..

[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삼한의 대외교류

한반도 남부지역에 존재했던 삼한은 그 세력의 기원이 고조선내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세력들이 남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한반도 남부에서도 중국, 일본과의 해상교역로에 많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의 동전, 청동거울 등 교역과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유물이 출토되었던 지역은 경남 사천의 늑도, 제주도, 여천 거문도, 창원 다호리, 김해 양동리, 대구 만촌동, 울산 하대리 등 남해안 해상교통의 요지나 큰 강이 있는 지역이다. 특히, 창원 다호리에서는 붓과 손칼이 출토되는 등 문자를 사용하고 상당히 높은 문화수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은 중원, 오르도스, 왜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는 철을 낙랑과 왜로 수출하였고, 실제로 남부지방의 여러 유적에서 ..

중앙박물관 2011.04.11

공주 우금치 전적지(사적 387호), 동학혁명 최대의 격전지

조선시대 호남지역에서 논산, 부여를 거쳐서 서울로 연결되는 육로가 금강변 충청감영이 있었던 공주 시내에 들어오기 직전에 있는 마지막 고개가 우금치로 동학농민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이다. 동학혁명당시 정부와 체결된 전주확약이 지켜지지 않자, 동학 농민군은 2차봉기를 일으키고 전봉군이 이끄는 4천명의 농민군은 논산에서 손병휘가 이끄는 북접군과 합류하여 2만여명의 군세로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로 진격했다. 호남지역에서 공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렸으나 관군의 우세한 화력에 밀려 크게 패퇴하였다. 지금 우금치 전적지에는 당시를 기념하기 위년 기념탑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우금치 전투를 기념할만 것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게다가 우금치전적기념..

근현대유적 2011.04.11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기차역

코르도바는 세비야와 함께 스페인 동남부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지역의 중심이 되는 도시로 스페인 고속열차인 AVE가 이른 시기에 도입된 도시이다. 코르도바를 지나가는 AVE철도는 마드리드와 세비야을 연결해 주는 스페인의 첫번째 고속철도 노선이라 한다. 코르도바에서 마드리드까지는 약 1시간 5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코르도바에서 세비야까지는 40분정도이며 1시간에 1~2대 정도 AVE철도가 운행되기때문에 교통은 매우 편리한 도시이다. 코르도바 기차역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메스키타와 알카사르가 위치한 구도심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고 있으며, 90년대 고속철도 건설과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유럽의 기차역에 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로 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나라 KTX..

스페인(Spain) 2011.04.11

[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삼한의 토기, 고대인과 새

삼한의 토기는 기존의 제작 기술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어 만들어졌는데 가마에서 구워서 단단해진 경질무문토기와 단단하게 두드리는 두드림기법이 적용된 타날문 토기가 있는데 단단해서 실용성이 좋은 경질무문토기의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현재 출토되는 토기는 실생활에서 쓰던 토기와 무덤에 부장품으로 만든 토기가 있는데 약간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삼한에는 이 시기의 종교적 성격을 같는 새모양을 하고 있는 토기가 많이 출토되는데 이는 조령신앙과 관련되어 있으며, 한반도를 많이 찾아오는 철새인 오리모양의 토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고대인과 새 고대사람들은 새가 봄철에 곡식의 씨앗을 가져다주거나 죽은 이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조령신앙을 믿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새를 형상화한 ..

중앙박물관 2011.04.10

남산골한옥마을,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안채

이 집은 제기동에 있던 순종의 장인이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이 1906년 동궁 계비로 책봉되어 창덕궁으로 들어갈때 즈음에 지은 재실이라고 한다. 이 재실을 주로 순종이 제사지낼때 사용했던 재실이라고 하는데, 국왕이 윤택영의 집에 제사를 지내러 올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근처에 있었든 명성황후의 능이었던 홍릉에 들릴때 사용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한옥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등지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건물 뒷편에 사당이 있다. 구한말 채무왕으로 악명높았던 윤택영이 동궁 계비 간택을 위한 로비 목적으로 이 건물을 지은 것으로 보이며, 돈을 물쓰듯이 썼던 윤택영이 상당히 크고 화려하게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형이 첩을 위해서 지었던 옥인동 윤씨가옥과 나란히 한옥마을을 지..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도심속 Alfaros 호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코르도바 구도심에 위치한 Alfaros 호텔이다. 처음 이 곳을 예약하고나서 구글 어스와 스트리트뷰를 통해서 확인해보니, 좁은 골목길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라서 약간 걱정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중세에 만들어진 건물과는 다르지만, 오래된 도시인 코르도바의 구도심을 형성하고 있는 4층높이의 골목길에 있는 건물이지만, 사실은 코로도바에서 자동차와 버스가 달릴 수 있는 넓은 길에 위치하고 있다. 코르도바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건물들의 내부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는 호텔이다. 호텔내부는 밖에서 보는 외관과는 달리 상당히 넓고 깨끗하게 실내 장식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여러동의 건물들을 연결해서 호텔을 만든 것으로 보이며, 지내기에는 꽤나 쾌적한 곳이었다. 건물 가운데..

스페인(Spain) 2011.04.10

[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삼한의 무기와 도구, 철기문화의 발전

한반도 남쪽 지역에 존재했던 삼한은 중국, 일본과 주요 해상교통로에 있었으며, 고조선 멸망 이후 남하한 세력들의 우수한 기술과 지식 등으로 인해서 상당한 문화 수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의 철기문화가 도입된 삼한은 향상된 생산력으로 사회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전단계에 이르런 것으로 보인다. 삼한의 철기는 초기에는 주조로 만든 호미, 괭이 등 농기구가 대부분이었으나, 점차 철기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무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삼한에서는 아주 발달된 한국형 동검이 출토되기는 하지만, 청동검은 지배계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의기로서 역할을 했을 뿐인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철제무기가 발전하면서 무기로서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어 사회 갈들을 해결하는 무력의 중요성이 ..

중앙박물관 2011.04.09

남산골 한옥마을 옥인동 윤씨가옥

옥인동 윤씨가옥은 원래는 조선 마지막 왕비인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황후의 일가이자 친일파인 윤덕영이 1910년대에 인왕산 아래 종루구 옥인동에 조성한 별장형식의 건물인 '벽수산장'의 일부인 것으로 밝혀졌다. 벽수산장은 친일파 윤덕영이 청휘각터를 비롯한 주위의 여러 별창터를 조성해서 만든 호화판 별장으로 그 면적이 2만평에 달했다고 한다. 이집은 친일파 윤덕영이 첩을 위해서 지은 건물로 일반적인 양반가옥과는 다른 약간은 폐쇄적인 분위기를 주는 집이다. 이집은 1910년대에 지어졌기때문에 건물을 지은 연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첩이 살았던 집이라 그런지 집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건물이 폐허처럼 변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주변에는 폐허로 변해서 없어진 친일파 부호의 ..

고택_정원 2011.04.09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도심 거리 풍경

코르도바는 스페인 동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을 흐르는 과달키비를 강을 끼고 있는 도시로 인구는 약 30만명 정도이다. 이 도시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그 이전에 카르타고의 도시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코르도바는 서칼리프라 칭하던 이슬람 왕조가 수도로 정하면서 크게 융성하였고, 중세에는 이 곳의 인구가 50만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당대 세계 최대의 도시 중 하나였다. 중세 도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의 코르도바는 중세 이슬람 왕조 시절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였다는 전통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스페인의 도시 중에서도 학교와 문화가 발달된 교육도시로 여겨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달키비르강을 끼고 있는 이 도시는 강변에 위치한 메스키타와 알카..

스페인(Spain) 2011.04.09

가족주말농장(4월1주), 첫번째로 감자를 심다.

지난해 주말농장을 하고 남아있던 말라버린 풀들과 비닐 등을 제거하고 주말농장을 할 준비를 시작한 지 3주가 지났다. 경기도 지역 대부분의 농촌처럼 제일 먼저 밭을 갈고 감자를 심었다. 물론 밭을 가는 일은 주위에 아는 사람이 트랙트로 지난주에 했었다. 4월이지만 아직 날씨가 따듯하지 않아서 이 지역에서는 감자 외에는 심을 작물이 거의 없었다. 감자는 그리 필요하지는 않지만, 가을 배추를 심을 자리에 봄동안 감자를 심는 것의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감자 외에도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그 안에 상추, 열무, 얼가리를 심었다. 비닐하우스는 물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주말농장으로는 그리 적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단 심어놓기는 했다. 봄 동안에는 하우스에서 자란 야채를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해..

기타 2011.04.09

[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동예,옥저, 삼한의 유물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할 무렵 한반도 북쪽과 만주 지역에는 부여가 고대국가로서 존재하고 있었고, 동해안 지역에는 동예와 옥저가 있었다. 부여는 북만주 지린성 일대에 있었던 고대국가로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의 원류가 되는 국가로서 우리나라 고대 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국가이다. 부여의 남쪽에 존재했던 동예와 옥저는 통일된 정치체제를 구축하지는 못하고 연맹체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던 국가로 대부분의 기간동안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국가이다. 북쪽에는 부여가 있었다면 남쪽에는 진국에 이어서 삼한이 오랜 기간동안 존속하였다. 호남지역의 마한, 경남지역의 변한, 경북 지역의 진한으로 구성된 삼한은 고조선의 세력교체시 이동한 세력들이 근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한과 변한은 중..

중앙박물관 2011.04.08

남산골 한옥마을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도시화에 잘 적응한 서울 한옥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그 규모가 제일 작아보이는 오위장 김춘영 가옥이다. 이집은 수제비로 유명한 삼청동 식당가에 있었던 집이라고 하면 오랜 기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전통 가옥으로 남산골 한옥마을이 조성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 저택은 사랑채, 안채,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으면서도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조화롭게 잘 꾸며진 양반집 주택이다. 이 저택에는 2개의 출입문이 있는데 하나는 문간채를 통해서 안채로 들어가며, 다른 하나는 사랑채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일반적인 한옥과는 달리 도시에 자리잡은 한옥이라서 2개의 대문이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좁은 공간에서 'ㄱ'자형으로 꺽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집의 사랑채는 중간에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한칸씩..

고택_정원 2011.04.0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