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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보물 464호)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위치한 흥법사는 에 신라때 세워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찰이다. 이 곳에는 염거화상탑, 진공대사부도, 진공대사탑비와 삼층석탑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의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만이 남아 있다. 고려를 건국하던 시기에 주로 활동한 진공대사와 관련된 사찰이며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후 중건되지 않고 폐사지로 변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흥법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 46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얹어놓은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을 계승한 전형적인 고려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후기부터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삼층석탑으로 기단과 몸돌간의 비례에 있어서 조형미가 뛰어나 보이지는 않고, 3층으로 세원짐 몸돌의 높이가 낮아서 웅장한 느낌을 주지..

한국민속촌 한옥, 북부지방 민가 (중소지주계층 가옥)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북부지방 민가이다. 안채와 문간채, 사랑채, 광채, 별채로 이루어진 규모가 큰 가옥이다. 전체적으로 초가을 얹은 '-'자형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추운 북부지방의 가옥이라서 그런지 대청마루나 툇마루를 거의 두고 있지 않으며, 많은 수의 방을 두고 있다. 이 가옥은 또한 농기구나 곡식 등으로 보관하기 위한 광을 많이 두고 있으며, 작은 방만 3칸이 있는 별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대가족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가옥의 규모로 봐서는 농업경영에 기반하여 상당한 경제력이 있는 중소지주계층의 가옥으로 생각된다. 북부지방 민가 이 가옥은 북부지방의 가옥을 복원한 것으로 일곱채의 집이 특이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민가이다. 안채와 문간채, 사랑채, 광채의 4동을 기본으로 튼..

고택_정원 2011.05.07

포천 청성사와 채산사, 최치원과 최익현을 모신 사당

구한말 유학자로 일제에 항거하다 대마도에 유배되어 세상을 떠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출신지역이 포천인 관계로 포천시 신북면에는 그를 기리는 사당인 채산사가 마을 뒷편 언덕에 세워져 있다. 구한말 대표적인 유학자인 이항로의 제자로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부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현재의 사당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7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며, 일제강점기 이후에 사당이 세워진 많지 않은 인물 중 한사람이다. 그의 사당 뒷편으로는 경주최씨의 시조라 일컫어도 무방한 통일신라시대 유학자인 최치원 선생을 모신 사당이 청성사가 있는데, 이는 아마도 이 지역에 경주최씨 집안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채산사 사당 출입문이 삼문. 오래된 사당으로 보이지만 일제강점기가 끝나 1947년..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꾸미개

경상도 지역에서 분포하고 있는 많은 가야의 고분들에서는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고분들에 대한 발굴작업은 일제강점기에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일본인들에 의해 상당히 많은 부장품들이 밀반출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으며, 상당수의 유물들은 국립김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가야의 상형토기, 철제무기와 더불어 무덤의 부장품으로 많이 묻혀 있던 유물이 금.은.옥으로 만든 꾸미개이다. 가야의 꾸미개로는 많지는 않지만 금동관이 있고, 귀걸이.팔찌.목걸이 등도 많이 출토되고 있다. 가야의 관은 신라의 것과는 다르게 풀꽃모양의 세움장식을 하고 있으며, 왕이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귀족계층에서 사용한 것인지는 알려지고 있지는 않는 것으..

중앙박물관 2011.05.06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801호), 응진전, 조사전

공주 마곡사는 주불전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을 앞쪽에 두고 뒤쪽 언덕에는 석가여래불을 모신 대웅보전을 별도로 두고 있는 점이 특이다. 대웅보전은 중앙에 석가여래불을 두고,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는 전형적인 사찰의 불전이다. 보통 웬만한 규모의 사찰에는 대웅보전만을 두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수행을 중요시하는 마곡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불전으로 부처의 제자들을 모신 웅진전과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전을 두고 있다. 사찰을 찾는 신도들을 중시하는 사찰에서 많이 두고 있는 관음전을 경내에 두고 있지 않다. 조선중기인 효종때 세원진 마곡사 대웅보전은 외관상 2층 건물 형태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지 않은 건물형태로 인근에 있는 부여 무량사 극락전과..

가족주말농장(4월3주), 감자와 열무에 싹이 돋다.

4월은 경기도 지역에서는 아직 주말농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다. 서울만해도 4월에는 개나리, 벚꽃, 목련꽃이 벌써 피고 지는 계절이지만, 서울 주변지역은 아직 농사철이 아닌것 같다. 주변을 둘러봐도 특별히 작물을 심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기는 힘들고 부지런한 사람들만 밭을 깨끗하게 갈아 놓고 있다. 지난 4월첫주에는 올해 주말농장의 시작으로 감자를 심었는데, 2주가 지난 이번 주에는 벌써 감자에서 싹이 돋아나 있었다. 비닐하우스에는 열무와 상추를 심었는데, 물을 열심히 주지 않아서 그런지 잘 자라지는 않고 있다. 그래도 늦으나마 조금씩 싹을 돋우고 있어서 새로룬 한해가 시작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주변의 논들도 모내기를 위해서 트랙트로 갈어 엎어놓고 있다. 서울보다 약간 추워서 그런지 앵두나무와 배..

기타 2011.05.05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민가 (지주계층 가옥)

한국민속촌에 전시된 한옥 중 '남부지방 민가'로 이름 붙여진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한옥이다. 이 한옥은 호남지방 주택 형식인 '-'자형의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다. 살림집인 안채는 앞면 6칸에 옆면 3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안채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안채와 사랑채가 한 건물이 있는 구조이며,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서쪽편에는 부엌과 안방이 있고, 동쪽편에는 사랑방이 있다. 바깥채 또한 앞면 6칸규모이며, 문간과 광, 외양간, 머슴이 살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평야지대인 호남지방에서 농업경영으로 상당한 경제력이 있었던 중농이상의 지주계층이 살던 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에는 상당한 고가의 자산인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 있고, 농사일을 하던 머슴을 두고 있었으며, 안방이나..

고택_정원 2011.05.05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소농가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전통 가옥 중 남부지방 소농가이다. 3칸을 겨우 넘는 일(-)자형 주택으로 농민들이 살았던 작은 집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붕은 초가를 얹고 있으면 '-'자집이라서 크지 않아 보이지만, 앞면이 4칸에 옆면이 2칸반으로 한옥 중에서는 작지 않은 규모이다. 건물 오른편에는 툇마루가 있는 사랑방과 건넌방이 있고, 사랑방과 안방을 벽면과 마루로 분리하는 등 격식을 갖추고 있는 주택이다. 부엌의 규모 또한 상당히 큰편으로 식구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주택은 건물이 크고 격식을 갖춘 것으로 봐서는 몰락한 양반이나 자영농을 하는 경제력을 갖춘 농민의 주택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의 건물에는 없으나 이 집에 광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광, 외양간, 문간방이 있는 별채와 같이 있는 것..

고택_정원 2011.05.03

포천 금현리 지석묘, 북방식 고인돌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지배층의 무덤인 지석묘이다. 흔히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지석묘는 한반도와 요서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무덤의 형태로 청동기 시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보통 강이나 넓은 벌판, 바닷가와 가까운 지역에 많이 남아 있는 지석묘는 북방계통의 탁자식과 남방계통의 바둑판식이 있다. 포천시는 의정부와 경계가 되는 광릉부근부터 북쪽의 한탄강 지류가 흐르는 지역까지는 경기 북부지역에서는 상당히 넓은 벌판이 있는 풍요로운 지역으로 한반도 북부 동해안과 금강산으로 가는 중요한 육상교통로 중의 하나였다. 금현리 지석묘가 있는 가산면은 옛 포천의 중심지이자, 고구려 산성인 반월산성에서 남쪽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북방세력과 남방세력이 만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금현리 고인돌은 ..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철생산과 대외교류

고조선 시대 삼한 중 변한지역이었던 가야는 철생산이 많았던 지역이었으며, 일본.중국과 해상교통로의 주요한 위치에 있었기때문에 다른 지역과 무역거래가 상당히 많았던 지역이다. 이런 지리적인 잇점과 당시 철생산이 많았던 지역적인 특성으로 가야는 상당한 경제력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야지역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당히 크고 많은 고분들을 남겨놓고 있으며, 그 고분들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부장품들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중국.일본과의 해상교류의 거점이기도 한 금관가야 지역의 근거지인 김해 대성동 고분과 창원 다호리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수준높은 청동기와 철기 문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대외 교류와 관련된 많은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가야 연맹체가 성립된 이후에는 지역에서 생..

중앙박물관 2011.05.02

포천 인평대군 묘 및 신도비, 치제문비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에 위치하고 있는 인조의 셋째아들이며 효종의 동생인 인평대군의 묘이다. 인평대군은 병자호란 후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갔다고 돌아왔으며, 효종때에는 4차에 걸쳐서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 병자호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헌신을 한 인물이다. 왕자의 신분이지만 묘역은 규모있게 잘 정비되어 있고, 지금까지도 묘역에 재실과 관리인이 남아 있다. 서예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학문도 깊었다. 묘역 앞쪽에는 거북이수에 몸돌을 올려놓은 잘 만들어진 신도비가 있고, 옆쪽 비각에는 효종,숙종,영조,정조.순조의 글씨가 새겨진 치제문비가 있다. 그 중 비각안에 있는 치제문비는 2기가 있는데 1기는 효종의 지은 제문과 그 후에 숙종이 직접 짓고 쓴 제문이 새겨져 있다. 또한 다른 한쪽은 정조때 영..

공주 마곡사 주불전인 대광보전 (802호), 조선후기에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

마곡사 경내에는 주불전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과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 있고, 서쪽편에 웅진전과 조사당을 보조적인 성격의 불전으로 두고 있다. 마곡사는 충남지역 조계종 산하 사찰들을 관장하는 규모가 큰 사찰로 선종 사찰의 성격이 강한 곳이기도 한다. 또한 합천 해인사와 함께 대광보전을 주불전으로 삼고 있는 많지 않은 사찰 중의 하나이다. 마곡사 대광보전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19세기초에 중건한 사찰건물로 보물 802호로 지정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이 대광보전은 건축연대가 오래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외관이 장대하면서 화려하여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건물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화려한 외관이 특징인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철제 무기

한반도 동남쪽 낙동강 중하류에 위치한 가야는 고대국가로 오랜기간동안 존재해왔으며, 연맹체국가로서 김해지역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등 여러지역에 근거지를 두었고, 지배계층의 고분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기때문에 오늘날 상당히 많은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주로 고분의 부장품으로 묻어둔 유물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의 사후세계관을 반영하는 많은 토기류와 철제무기, 장신구 등이 있다. 가야지역은 고조선시대 이래로 중국.한반도.일본과의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을 기반을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배계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철제무기류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상당한 수준의 금속가공기술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

중앙박물관 2011.04.30

포천 화산서원, 백사 이항복을 모신 서원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나즈막한 화봉산 아래에 위치한 화산서원이다. 이 서원은 조선중기의 명신 백사 이항복의 기리기 위해서 건립한 서원으로 숙종때 국왕으로부터 편액을 받은 사액서원이다. 서원 인근에 이항복 선생의 묘가 있으며, 서울출신인 백사 이항복의 집안에서 아마도 가산면 일대에 근거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사 이항복의 후손들은 조선시대에 많은 정승들을 배출한 집안으로 유명하며 이시영, 이회영 등 많은 인물들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많은 기여를 했었다. 현재의 화산서원은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17년 지방유림들이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뒷쪽에 사당이 있고 앞쪽에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있으며, 강당은 두고 있지 않다. 화산서원이 있는 포천시 기산면은 조선시대 금강산 유람..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대가

용인 한국민속촌에 전시된 한옥 중 '남부지방 대가'로 이름 붙여진 한옥이다. 이 가옥은 호남지방의 가옥을 옮겨온 것이라고 하며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 저택은 구한말인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전통적인 한옥의 모습에서 약간 벗어나,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다양한 모습으로 세련되게 꾸며놓은 저택이다. 이런 형태의 건축은 구한말에 많이 나타나는데 가장 오랜기간 동안 국왕이 사용했던 궁궐 건물인 창덕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사랑채에 누마루를 두고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서 툇마루를 많이 만들어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민속촌에 전시된 이 저택은 구한말 대토지를 소유한 호남지역 갑부들의 저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건축물의 형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건물은 'ㄷ'자형의 안채와 'ㄱ..

고택_정원 2011.04.28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보물799호),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고려말 석탑

마곡사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서 주불전인 대광보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서면 고려말에 세워진 오층석탑을 볼 수 있다. 이 석탑은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서 세워진 탑으로 다보탑이라고도 부른다. 이 오층석탑은 높은 이중 기단 위에 오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으며 탑의 끝부문에는 라마탑과 비슷한 장식을 세워놓고 있다. 경천사탑, 원각사탑과 함께 원나라 탑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마곡사오층석탑은 통일신라나 고려초에 만들어진 석탑에 비해서 각 구성요소들의 비례가 안정적이지 못하며, 조각수법 또한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2층으로 쌓은 기단부는 전체 탑을 받치고 있는데 안정감이 많이 떨어지며, 5층으로 쌓은 탑신의 몸돌에는 부서, 보살 등을 조각해 놓고 있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머리장식은 라마탑..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의 무늬벽돌(보물343호)과 기와, 산수문전을 비롯한 8종류 그림이 새겨진 벽돌

삼국시대 건축을 대표하는 유물이자 회화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부여 외리 절터에서 출토된 여덟 종류의 무늬벽돌이다. 보물 343호로 지정된 이 네모모양의 벽돌은 크기가 일정하고, 네 귀의 측면에 홈이 파여 있어서 서로 연결하여 고정시킬 수 있다. 벽돌에 새겨진 무늬들은 회화성이매우 뛰어나 당시의 예술과 건축, 종교와 사상적인 측면까지 살펴 볼 수 있다. 산수문전.산수봉황문전,연대귀문전.반용문전.와운문전.연화문전의 8매로 이루어진 벽돌에 새겨진 그림은 사비기 백제인을 사로잡았던 도교적인 풍경이 잘 그려져 있으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도깨비 그림 또한 벽돌에 새겨져 있다. 무늬벽돌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여덟 종류의 무늬벽돌이다. 네모모양의 벽돌은 크기가 일정하고, 네 귀의 측면에 홈이 파여..

중앙박물관 2011.04.28

포천 용연서원, 한음 이덕형을 모신 서원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자리잡고 있는 용연서원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유명한 조선중기 문신 한음 이덕형을 모신 사원이다. 이 서원은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중요 서원 중의 하나이다. 현재의 서원건물은 강당과 사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서원이다. 원래는 동재.서재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전쟁때 소실되어 사당만 남아 있던 것을 1986년도에 강당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를 전해줄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포천시에는 용연서원과 화산서원이 있으며, 포천시 가산면에 위치한 화산서원은 오성이라고도 불렸던 백사 이항복을 모신 서원으로 용연서원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조선시대 금강산으로 가는..

포천향교, 옛 포천현 관아 공립교육기관

경기도 북부지역에 위치한 포천시는 조선시대 포천현과 영평군이 합쳐서 이루어진 지역이다. 현 포천시의 북쪽은 영평군, 남쪽은 포천현이었다고 한다. 양주와 가평 사이의 넓은 평지에 위치한 포천현은 조선시대 금강산과 관동팔경 유람을 떠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유명인사들이 많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도 포천에는 2곳의 서원이 남아 있다. 포천향교가 위치한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는 고구려가 쌓은 산성인 반월산성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포천현 관아가 소재하고 있었던 지역이다. 포천현 관아 건물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포천향교만이 이 지역에 관아소재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포천향교는 고려초에 세워진 향교로 설립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에 중건한 것..

[공주 마곡사] 강당인 흥성루, 요사채인 매화당과 수선사

공주 마곡사 출입문인 해탈문과 천왕문 옆으로는 이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영산전을 중심으로 조용한 분위기의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주불전인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있는 경내와는 별도로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이 곳에는 건물규모가 상당히 큰 요사채인 매화당과 오래된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수선사, 사찰을 찾는 사람이 잠시 앉아서 쉬거나 설법을 듣는 장소인 강당이 자리잡고 있다. 마곡사의 가람배치에서 특이한 점은 주불전이 있는 경내에도 심검당을 비롯하여 여러채의 요사채가 있는데, 사찰 바깥쪽에 별도로 요사채가 있다는 점이다. 사찰연혁등을 찾아 보면 승려들의 수행공간이라는 매화당과 수선사는 지금은 낡아서 상당히 오래된 건물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런 내용들을 참조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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