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전체 글 3936

한국민속촌 한옥, 강원도 너와집과 굴피귀틀집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한옥 중 강원도 산간지역 주민들이 살았던 주택의 형태인 너와집과 굴피귀틀집이다. 너와집은 너와를 얹은 지붕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초가집과 구조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주택이다. 너와는 산간지역에서 흔한 목재를 판자형태로 가공한 것으로 부엌에서 나온 연기가 판자로된 천장을 감싸서 방의 보온과 방부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조선시대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하여 방과 외양간이 연결되어 있다. 너와집은 어느정도 농지가 있는 마을에 있었던 주택의 구조라고 하면 굴피귀틀집은 강원도 화전민들이 살았던 주택으로 통나무를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들고 그 위에 나무껍질을 얹어서 지붕을 만든 집이다. 이런 주택의 형태는 오늘날까지 강원도 산간지역에 그 모습이..

고택_정원 2011.05.29

고성 대진항과 초도해수욕장, 동해안 최북단 항구

고성군 현내면에 위치하고 있는 대진항은 동해안 휴전선 남쪽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어항이다. 동해안 항구 중에는 큰 편에 속하는 항구이다. 이 항구는 1920년 어항으로 축조되었다고 하며 동해안에서 많이 잡혔던 명태 등을 잡는 항구로 일제강점기에는 부설되었던 철도와 함께 어항으로서 크게 번성했었다고 한다. 동해안의 다른 항구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도루묵이나 문어 등을 잡으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최북단 항구로서 시설이 많이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대진항 북쪽으로는 금강산 육로가 연결된 통일전망대가 있고, 남쪽으로는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석호인 화진포 호수가 있다. 또한 대진항의 등대는 동해안 최북단의 등대로 조업중인 선박들이 북방어로한게선..

한국의 풍경 2011.05.29

[중앙박물관 신라실] 불교와 사찰건축

신라는 당시 동아시아의 보편적 사상인 불교를 받아들여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불교가 받아들여진 이후 신라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대표적인 현상이 크고 화려한 고분을 조성하는 대신에 전국적으로 불교 사찰을 건축하게 되었다.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는 경주의 신성한 천경림을 베어낸 자리에 세웠는데, 귀족들의 반대로 이차돈의 순교 이후 진흥왕 때에 완성되었으며, 신라 최대의 사찰인 황룡사는 선덕여왕 때 궁궐이 들어설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국립 중앙박물관에는 불교 건축과 관련된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지는 않으며, 신라 사찰 건축과 관련된 유물들은 경주박물관에 많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신라 불교 건축과 관련하여 황룡사 등에서 출토된 수막새와 암막새 몇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불교 ..

중앙박물관 2011.05.29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민가 (중농계층)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남부지방 민가이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주계층의 가옥과는 달리 광을 많이 두고 있지는 않다. '-'자형으로 되어 있는 안채는 앞면이 5칸 정도로 큰 규모이나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지 않다. 안채 뒷편에 사랑방을 두고 있다. 사랑채는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으며 2개의 방과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설명에는 사랑채로 되어 있는데 독립된 가족이 살 수 있는 별채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이 많지 않고, 외양간이나 농기구 등이 많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경제력이 있었던 중농이상의 계층은 아니고 식구가 많은 평범한 계층이 살았던 주택으로 보인다. 남부지방 민가, 19세기 양식 일자형을 기본으로 한 안채는 부엌에 딸린 부엌방을 약간 달아내어서 변화를 보였다..

고택_정원 2011.05.28

제천 수산 지곡리 고가, 청풍문화재단지 한옥

제천 청풍문화재 단지에 소재한 수산 지곡리 고가이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옛 청풍면 지역의 관아 건물을 중심으로 수몰지역에 있던 여러채의 고가들을 옮겨 복원해 놓고 있는 곳이다. 청풍도호부 동헌과 한벽루가 문화재 단지를 대표하고 있지만, 이 곳에 옮겨 놓은 고가들 또한 수몰지역을 대표하는 한옥 건물로서 남한강 일대에 살았던 옛 사람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수산 지곡리 고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수산면 지곡리에 있었던 한옥이다. 집의 규모는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자존심이 높았던 선비계층이 살았던 한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가옥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ㄱ'자형으로 지어진 안채만이 팔작기와집이며, 사랑채와 행랑채는 초가를 얹은 '-'자형 건..

고택_정원 2011.05.28

고성 금강산 건봉사, 조선시대 전국 4대 사찰

고성 건봉사는 휴전선 부근 금강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전국 4대 사찰의 하나로 세자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원찰로 지정한 사찰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때 아도화상이 처음 창건했다고 하며,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는 고려말과 조선초에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무학대사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나옹선사가 크게 중수하면서 건봉사라고 개명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사찰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이나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금강산 유람길에 위치하고 있고, 왕실에서 후원을 받던 양주 회암사와 연관이 되고 있어서 왕실 인사들이 많이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조는 이 곳을 친히 방문하여 왕실관 관련된 원..

전국 사찰 2011.05.27

고성 건봉사 불이문, 들어가는 길

건봉사는 조선시대 전국 4대사찰의 하나로 신라 법흥왕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며, 실질적으로 고려말엽 나옹화상이 중수하고 건봉사로 개명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세조가 건봉사를 원찰로 삼고,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일본이 통도사에서 가져간 부처님의 사리를 돌려 받아서 이 곳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건봉사는 동해안 지역을 관장하는 큰 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전각대부분이 불타버리고 불이문만 남았다고 한다. 건봉사 불이문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지 않은 유일한 건축물이다. 사찰 출입문으로 건봉사는 1920년에 건립된 것으로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찰의 불이문이나 천왕문과는 달리 산문이 일주문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돌기둥에 사찰을 수호하는 의미로 금강저가 음각되어 있어서 사..

제천 청풍 금병헌, 청풍도호부 동헌 건물

충북 제천시 청풍문화재단지에 위치한 옛 청풍도호부 동헌 건물인 금병헌이다. 청풍면은 지금은 제천시에 속한 작은 행정구역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종3품인 부사가 고을 수령으로 있던 규모가 큰 고을이었다. 청풍은 충주, 단양과 함께 삼국시대 이래로 한강유역을 관리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 세조때 군으로 지정되었다가 조선후기 현종 때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한강조운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영남지역과 한양을 오가는 교통로의 중요성이 커졌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헌 건물인 금병헌은 조선 숙종때 처음 지은 건물을 여러차례에 걸쳐서 중수되었다고 하며,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인 1900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의 외관이나 여러 형태로 볼때에도 구한말에 많이 지어진 한옥..

조선 관아 2011.05.25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문화의 확산

삼국시대를 이야기 할 때 지방에 대해서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고, 그 유물들은 그리 많이 남아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신라에서도 지방통치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보은의 삼년산성, 여주의 파사산성, 파주의 칠중성 등 남한강 유역을 비롯한 주요 교통로에 쌓은 견고한 산성이나 진흥왕 순수비나 각종 비석에서 지방통치에 대한 여러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산성 이외에는 지방통치와 관련된 유물로는 경주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산성을 쌓을 때 지역별로 축성책임을 할당하면서 이를 기록으로 남긴 남산신성비에서도 지방의 이름들이 등장하며,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에서도 각 지역의 조세납부와 관련된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지방통치와 관련하여 많지는 않지만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박물관 2011.05.24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민가 (고리백정 집)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남부지방 민가이다. 이 가옥은 외형으로 봐서는 'ㄱ'자형 안채와 '-'자형 아래채로 구성되어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주택이어서 중농계층에서 살았던 가옥으로 보인다. 한국민속촌 설명에 의하면 버들공예을 주업으로 하는 가옥으로 공방과 창고로 쓰이는 방이 많다고 한다. 조선시대 버들공예를 주업으로 살던 사람들은 천민계층으로 '고리백정'이라고 불렀으며, 유명한 의정 임꺽정의 직업 또한 고리백정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천민인 백정들의 경제적으로는 실제로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가옥의 규모로 봐서는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설명이 맞는지 의구심이 갖게도 하지만, 원래 버들공예를 하던 고리백정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집을 쉽게 지을 수..

고택_정원 2011.05.24

제천 청풍 금남루, 청풍도호부 관아 아문

제천 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진 옛 청풍도호부 관아 아문인 금남루이다. 조선 순조때인 19세기초에 세워진 관아 아문으로 건물의 내력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앞면 3칸 규모의 문루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2층의 문루를 올려 놓고 있다. 청풍도호부 관아 건물 중 동헌과 함께 남아 있는 건물로 웅장하거나 특색이 있는 문루는 아니고 평범한 느낌을 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문루 바깥쪽에는 '도호부절제아문'이라는 현판이 있고, 안쪽에는 '금남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청풍도호부 부사나 이 곳을 방문한 인사들이 관아내 고을 풍경을 살펴보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아문이다. 청풍도호부 관아 아문인 금남루. 문루 바깥쪽에는 '도호부절제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난간을 그리 튼튼하게 만들어 놓지 않고 있으..

조선 관아 2011.05.24

고성 건봉사 능파교(보물 1336호), 홍예가 아름다운 돌다리

고성 건봉사는 금강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조선시대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조선 세조가 직접 방문하여 원찰로 지정한 사찰로 왕실과 관련이 많은 사찰이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금강산 유람길에 있었던 명소이자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한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돌려받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던 건봉사 전각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리고 지금은 옛 사찰의 흔적으로 불이문과 능파교만이 남아 있다. 보물 1336호로 지정된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아치형 돌다리인 홍교로 불이문 옆 능파교신창기비에 적혀 있는 기록에 의하면 숙종 30년인 1707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산중 계곡을 건너기 위해 설치된 다..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농가 (중농계층 가옥)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남부지방 농가이다. 'ㄱ'자형으로 된 안채와, '-'형의 사랑채, 헛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옥의 구조로 볼 때 선비계층이 살던 집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경제력을 갖춘 중농계층에서 살던 집으로 보인다. 남부지방 농가로서는 드물게 안채를 'ㄱ'자형으로 만들었는데, 19세기에 지어진 가옥으로 서울 지방 한옥의 모습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물의 배치가 안채를 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집안 행사에 필요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한 양반 가옥과는 달리 생활의 편리함을 강조한 주택으로 보인다. '-'자형으로 만든 사랑채는 서재 역할을 했던 양반집 사랑채와는 달리 가내수공업에 필요한 작업공간 용도로 꾸며진 것으로 보인다. 남부지방 농가 남부지방 농가로서는 매우 드물게 '..

고택_정원 2011.05.23

[중앙박물관 신라실] 문자로 보는 신라,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국보 3호)

신라는 6세기에 국가체제를 갖추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고구려와의 경쟁에서 조금씩 이기면서 진흥왕때는 영토가 한강유역과 함경도 동해안 일대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 기간 신라는 율령을 제정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기간에 국가로서의 모습은 신라가 남겨놓은 여러 흔적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문자를 새겨놓은 비석들이다. 특히, 진흥왕 순수비와 단양 적성비는 진흥왕이 화장된 영토를 순수하면서 기념으로 새겨놓은 비석들로 당시의 관직체제, 인물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의 영역을 보여주는 유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진흥왕순수비 이외에도 신라는 국가정책 등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글자를 새겨놓은 비석을 많이 활용했는데, 그 내용은 법의 시행, 국왕..

중앙박물관 2011.05.22

제천 청풍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보물 546호로 지정된 제천 물태리석조여래입상이다. 이 불상은 원래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읍리에 있었던 불상인데,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서민적인 모습의 미륵불상들과는 달리 통일신라 불상의 세련되면서도 힘이 있는 조각수법이 남아 있는 불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 형식적의 주름 등의로 볼 때 통일신라 불상 조각수법의 영향이 남아 있는 고려초기의 불상이라고 한다. 삼국시대 이래 영남지방의 관문격인 죽령길에 위치해 있었던 청풍지역의 번성했던 과거를 잘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주요 교통로나 경관이 좋았던 지역에는 큰 사찰들이 많이 있었는데, 청풍 지역에는 큰 사찰이 보이..

고성 육송정 홍교(보물 1337호), 대표적인 조선시대 아치형 돌다리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에 위치한 보물 1337호로 지정된 육송정 홍교는 아치형으로 쌓은 대표적인 조선시대 돌다리이다.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 경계에 위치한 다리는 조선시대 강릉 이북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던 간성군 관아에서 조선시대 4대 사찰이었던 금강산 건봉사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립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비슷한 형태의 다리인 건봉사와 홍파교와 비슷한 시기인 조선 숙종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다리는 금강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을 건너는 다리로 길이 12.3m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석축을 쌓아 만든 홍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로의 폭은 약 2m 정로로 우마차 1대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이다. 육송정 홍교가 있는 ..

제천 청풍 응청각, 한벽루와 함께 있는 작은 정자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소재한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작은 정자인 응청각이다. 원래는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읍리에 있었던 것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관아에서 운영하던 누각인 한벽루 옆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응청각 또한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방이 개방되어 있어서 관아에서 주최하던 각종 연회에 이용되었던 한벽루와는 달리 응청각은 조선시대 중요 교통로에 위치해 있었던 청풍도호부를 방문하는 VIP급 인사들이 묵었던 숙소로 보인다. 비슷한 형태의 정자들을 강릉 경포대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응청각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집으로 온돌시설은 없고,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2층 누각에 마루방을 두고 있다. 겨울에는 추워서 사용하기 힘들었을 것..

조선 관아 2011.05.20

고성 진부령(해발 526m), 백두대간을 넘는 남한 최북단 고갯길

진부령은 해발 526m로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 사이를 이어주는 남한에서 최북단에 위치한 백두대간을 넘는 고갯길이다. 진부령은 옛부터 강릉의 대관령, 북한 지역의 추가령과 함께 백두대간을 오가는 3대 고갯길로 여겨졌으며, 고갯길은 약 60km 이다. 진부령은 높이가 500m가 넘는 험준한 고갯길이지만, 백두대간을 넘는 고갯길 중에서는 거리도 길지 않으며, 그렇게 험하지 않은 고갯길이다. 조선시대 금강산 유람을 떠났던 사람들 중에서 제일 먼저 서울로 돌아오가자 했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길로 고성군 남쪽에 있는 큰 고을이었던 간성군 관아가 있던 마을에서 출발해서 하루 정도를 걸으면, 백담사가 있는 용대리에 도착했을 수 있는 거리이다. 조선시대 간성군에서 서울로 가는 길로는 진부령을 넘어서, 인제를..

한국의 풍경 2011.05.20

한국민속촌 한옥, 중부지방 농가 (선비계층 가옥)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중부지방 농가이다. 바깥쪽에 'ㄱ'자형 사랑채를 배치하고 안쪽에 'ㄱ'자형 안채를 마주 배치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ㅁ'자형 건물 배치를 보이고 있다. 건물 동쪽편에는 별채를 따로 두고 있어서 초가지붕을 하고 있지만 상당히 규모가 큰 가옥이다. 이 건물은 농가로 이름 붙여졌지만, 지역에서 상당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선비계층이 살았던 집으로 보고 있다. 안채에는 조상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방으로 상청을 별도로 두고 있다. 이 가옥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쪽으로 사랑채를 두고 있어서 집주인이 주변사람들과 교류하기 쉬운 개방적인 가옥구조를 하고 있는데, 남양주 한강변에 위치한 다산 정약용이 살았던 집인 여유당과 약간 비슷한 구조이다. 가옥내부에는 여러개의 창고와 농기구, 방..

고택_정원 2011.05.20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의 토기, 신라 유물 걸작 '말 탄 사람 토기(기마인물형토기)'

신라의 토기는 항아리, 굽다리접시, 그릇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 인상적인 부분은 동물.배.수레 등을 본 떠 만든 상형토기라 할 수 있다. 토기는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것도 많아보이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토기 중 상당수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묻혀진 것이 많다. 신라의 토기 겉면에는 무늬를 새기거나 토우 등을 붙여서 꾸미기도 하는데 이들 토우들은 신라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이나 동물이 형태를 간략하면서도 특징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어서 현대적인 관점에서 그 묘사가 뛰어난 점이 많아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토기들 중 그 작품성이 상당히 뛰어난 국보 91호로 지정된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말탄 사람 토기(기마인물형)'가 있다. 이 토기는 간략하면서 중요한 특징들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중앙박물관 2011.05.1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