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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289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신분제도, 호적, 족보, 노비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기본이 되는 신분제도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국가에서 관장하는 대표적인 신분제도로는 호적제도를 들 수 이쓸 것이다. 호적은 아마도 국가가 형성된 이래로 조세와 병역 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으로서 안정기에는 정기적인 호구조사를 통해서 호적 제도가 유지되었지만, 혼란기에는 은익호구의 발생, 양민의 노비화 등으로 인해서 관리가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관리하던 호적과는 달리 족보는 양반계층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관리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 양민들은 족보나 호적제도에 의해서 관리되었다면 노비는 토지와 같은 유형의 재산으로 분류되어 목록으로 관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호적. 고려시대에 작성된 것으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이 호적은 조선..

중앙박물관 2010.02.01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법치와 정치

조선은 유교사상을 구현한 성문화된 법전인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법치국가이자, 왕을 중심으로 한 유교국가이기도 했다. 중앙박물관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법전인 성종때 만든 '경국대전'과 마지막 법전인 '대전회통'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관료제 국가인 조선을 대표하는 제도인 과거제도 유물들과 각종 공신임을 증명해주는 교지들도 전시하고 있다. 조선시대는 현재와 멀지 않은 시대임에도 불국하고 전해지는 유물은 많다고 볼 수 없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전해지는 유물은 조상들의 과거합경증인 교지와 공신임을 말해주는 교지일 것이다. 얼마전 공주박물관에서 전시한 공주지역 명가 유물 전시회에 전시된 유물의 상당수 이런 종류의 교지였다.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물 중의 하나인 조선왕조실록 또한 조선시대 정치의 모습을..

중앙박물관 2010.01.31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국가의례

조선은 유교국가로 왕실과 국가에서 주관하는 많은 의례가 있었고, 이 것들이 국가경영에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국가를 다스리는 법인 경국대전과 같은 법전만큼의 이런 의례절차를 정리한 국조오례의 등도 중요하게 여겼으며, 기록의 나라답게 행사에 대한 많은 결보 보고서를 의궤와 같은 형태로 남겨 놓고 있다. 그 중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가져간 의궤도 이런 행사 결과를 정리한 내용 중의 하나라고 한다. 사직단친향병풍, 사직단에서 왕이 제사 지내는 절차 등을 기록한 병풍(복제품). 종묘 제사와 함께 국가에서 진행하는 가장 큰 행사라 할 수 있다. 사직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 서울 사직단에 왕이 직접제사 지내는 절차 등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병풍이다. 사직단은 서울과 전국의 큰 고을에 설치되었다. 서울에 ..

중앙박물관 2010.01.30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우리의 글, 한글

조선초 세종대왕이 정인지 등의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이룬 한글 창제는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자, 현 실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어도 있고, 만주어,몽골어 등 많은 글자들이 주변국가에서 존재해왔지만 독창적이 표기 방법과 음운 체제를 가지고 있어서 한글의 의미는 아주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그 내용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것 이었기에 수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훈민정음(복제품), 해례본으로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학자들과 세종대왕의 서문있다. 원본은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세종 26년에 백성에게 반포한 책이다. 세종..

중앙박물관 2010.01.30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왕궁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지금의 서울은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줄곧 서울을 수도로 하였으며, 한양 도성안에는 북궐인 경복궁, 동궐인 창덕궁, 창경궁, 서궐인 경희궁과 지금은 덕수궁으로 불리는 구한말 역사 현장인 경운궁이 있었다. 그 중 창덕궁을 비롯한 동궐은 태종이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그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경복궁은 임진왜란때에 불타버린것을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국력을 총 동원하여 복원한 궁굴이다. 서울을 조선왕조 500년 동안 도읍이었으며, 임진왜란 등의 전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왕의 권위가 높았던 까닭에 일본 교토에 비해서 궁궐의 규모나 수량에 있어서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중국 북경자금성과 비교해서는 작지만 유교 법도에 따른 동아시아 국가의 궁궐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

중앙박물관 2010.01.30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의 국제 교류

통일신라는 일본, 당나라를 비롯하여 서역국가와 뱃길을 통한 무역이 왕성하였고, 많은 승려와 학자들이 중국 유학을 다녀옴에 따라 많은 문물의 교류가 있었다. 특히 장보고가 청해진을 운영하는 시기에는 한.중.일 뱃길을 중심으로 세계와 많은 교류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익산 미륵사지, 황해도 평산 등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국제교류를 보여주는 많은 유물이 발굴되고 있으며, 특히 차문화가 널리 퍼진 시기이기도 한다. 당시 차문화를 보여 주는 유물로 차를 가는 다연. 차주전자와 찻잔, 경북 성주 풍로와 녹유 바리 당나라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 뼈단지와 백자 그릇 마찬가지로 당나라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 목걸이, 울릉도 가위, 발걸이, 청동거울, 남자상. 당을 비롯한 외국과의 문물교류 흔적..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 신라의 문자와 지방

신라는 통일직후 전국의 지방조직을 주군현체제로 완성하였고, 지방 말단 행정조직으로 촌을 설치하였다. 신라의 지방에 대한 지배는 촌주의 협력아래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후에 지방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지방에서 출토되는 기와 등에는 많은 문작가 적혀 있으며, 상당히 수준 높은 문화를 누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천 신라비. 경남 사천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로 대규모 불교행사와 관련된 비석이라고 한다. 이 비는 대규모 국가적 불교행사와 관련하여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앞뒤 양면에 글을 새겼는데, '天천'자는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에 만든 문자를 사용하였다. 산술이라는 글귀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이 시기 신라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 중국과의 교류를 알 수 있다. 사라와초 암기와..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 왕경에서의 생활, 관료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왕경을 지방과 구분하였으며,도시 구조도 정비하고, 정비된 왕경을 둘러싼 산성을 축조하였다. 신라는 또한 삼국시대 당나라를 다녀온 김춘추과 당나라의 복식과 제도를 신라에 도입한 이래 다양한 율령과 제도를 정비하여 관료제를 국축하였으며, 토용에서의 복식과, 기와와 각종 생활용구에 적힌 글씨로 관료제 사회에 대한 흔적을 많이 남겨 놓고 있다.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은 경주 안압지 연못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의례적인 면이 많지만, 안압지 출토 유물은 실제 사용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라 토용. 여인상과 문관상. 토용을 ㄴ흙으로 사람이나 동물을 본떠 만든 것으로 당시의 복식을 잘 묘사하고 있다. 관료제와 토용 삼국 통일 이후에 새로운 국가 운영을 위..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의 불교문화

통일신라는 화엄종과 법상종 등의 종파를 중심으로 초기에 발전했다가 후기에 들어서는 선종계통 중심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불교는 호국불교의 개념이 많았다고 볼 수 있드며, 불교조각은 당나라 불교 조각과 삼국시대 조각특징이 결합하여 얼굴이 셈세하고 세밀해졌다. 초기에는 아미타불, 석가여래 조각상이 많았으나 후대에는 약사불, 비로자나불이 유행했다고 한다. 팔부중상 부조, 경주 당엄사터 출토 팔부중은 석가모니 설법장소에 모여 감화를 받은 여러 무리 가운데 하늘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闥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를 가리키는 용어로 팔부신장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본래 인간이 아니라 인도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적 존재 또는 강력한 힘을 지진 존재였는데 불교가..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 무덤의 십이지상

십이지는 현재 우리의 생활에 사용되고있는 방위와 시간을 나타내고 있는 12동물을 말한다. 처음에는 무덤에 안에 인형처럼 생긴 십이지용을 넣다가 후대에는 무덤을 둘러싸는 형태로 바뀌어서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를 갖게되었다. 가장 유명한 십이지상은 경주 김유신 장군 무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12지상 일 것이다. 김유신 장군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십이지신상. 곱돌을 갈아서 만들었다. 현재 김유신 장군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십이지신상. 화강석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다. 어느 것이 원래 있던 것인지??? 초기에 무덤안에 넣었던 것로 보이는 십이지용(뱀,말) 경주 성덕왕릉에 있던 십이지신 석상. 신라 이후 왕릉의 표본이 되었던 경주 괘릉. 무덤 주변에 십이지신상으로 장식하고 있다. 십이지는 방위와 시간을 맡은..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진흥왕의 영토확장,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신라 진흥왕은 고구려.백제.가야를 공격하여 영토를 함경도 지역가지 확장시켰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창녕,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 단양적성 등지에 비를 세웠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북한산 비봉에 있던 진흥왕 순수비를 옮겨와 전시해 놓고 있다. 또한 법흥왕때에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 질서를 세웠는데 그 흔적들이 영일 냉수리 신라비나 울진 봉평 신라비에 남아 있다. 북한산 비봉 진흥왕 순수비를 비롯하여 황초령 순수비 등을 보존하기 위해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많은 노력이 담겨 있고 그 흔적으로 북한지역 황초령 비각에 그의 글씨가 현판에 적혀 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전시중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북한산 비봉. 진흥왕 순수비가 있던 자리에는 복제품이 서 있다. 진흥왕은 창녕.북한산.황초령.마운령.단양적성..

중앙박물관 2010.01.06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 토기의 장식, 토우

신라 토기에는 간단한 무늬를 새기거나 토우 등을 붙여 장식하기도 한다. 토우는 인간의 출산에서 죽음까지의 생활을 간략하게 묘사하거나, 다양한 동물들을 만들어서 붙여 놓았는데, 생략을 통한 간략한 묘사가 뛰어나다. 무늬를 새겨 넣을 경우 기하학적 무늬나 말, 사람 등을 새겨 넣기도 한다. 신라의 토우에는 신라인의 생활 모습이 꾸밈없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랑, 출산, 음악, 춤, 죽음까지 다양한 형태의 인간 모습을 간략하면서도 특징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다. 토우에는 많은 동물이 등장하고 있다. 꾸밈없이 간략한 모습을 보여주는 목항아리. 표면에 여러 무늬가 새겨져 있다. 원무늬가 그려진 합 부리달린 단지 새무늬 단지. 작은 단지위에 새, 국화, 짐승얼굴 등 여러가지 무늬가 새겨져 있다. 서로 마주 보..

중앙박물관 2010.01.06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무기, 말갖춤

삼국시대 신라의 무기는 백제나 가야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주로 고분에서는 용,봉황 등으로 장식한 고리자루칼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이며, 실제 전투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권위의 상징으로 무덤에 부장품으로 많이 묻힌 것 같다. 신라의 말갖춤은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말탄 사람 토기'에 그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고리자루칼. 소유자의 사회적 신분과 권위의 상징물이다.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것은 새끼칼 6자루와 몸체 등 7개의 칼로 이루어진 특이한 형태이다 신라의 투겁창과 물미 활과 화살촉. 신라의 무기는 투겁창, 칼, 화살촉 등의 공격용과 갑옷, 투구 등 방어용이 있다. 이 가운데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금이나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고리자루칼은 무기로서의 용도뿐 아니라 권위를 상징하..

중앙박물관 2010.01.06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토기, 토우 붙은 목항아리

신라를 대표하는 토기로 만든 목항아리와 여러 무늬가 새겨진 목항아리들이다. 그 중 토우가 붙은 목항아리는 일반적으로 2점의 항아리를 말하는데 하나는 계림로 30호 출토항아로 개구리.새.거북.사람 등의 토우를 장식한 것으로 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노동동 11호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뱀,사람, 개구리 토우가 붙어 있는 것으로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신라인의 신앙과 감정표현을 잘 묘사한 것으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토우가 붙은 목항아리. 항아리의 목 부분에 개구리의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 성기를 드러낸 남자 토우가 붙어 있다. 뱀과 성기를 드러낸 남자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성기를 드러낸 남자 토우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 국립 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다른 1..

중앙박물관 2010.01.05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대표 토기, 말탄 사람 토기 (도제기마인물상)

신라를 대표하는 토기로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한 쌍의 말탄 사람 토기와 배 모양의 토기이다. 말탄 사람 토기는 주인상과 하인상으로 이루어졌으며, 무덤에 부장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두가지 유물 모두 죽은자의 영혼을 육지와 물길을 통해서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주술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말탄 사람 토기는 당시의 복장, 마구 등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어 고대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는 유물이다. 두가지 유물 모두 상당히 슬픈 느낌을 주고 있다. 말 탄 사람 토기. 주인의 모습이다. 말 등에 둥근 깔때기와 가슴에는 액체를 따를 수 있는 긴 대통이 있고 속이 비어 주전자와 같다. 말 탄 사람 토기. 머리에 띠를 두르고 어깨에 짐을 메었으며 오른손에는 방울을 들고 있다. 방울을 흔들며..

중앙박물관 2010.01.05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금속그릇

신라시대에 사용한 금.은.청동.철 등 금속으로 만든 그릇들이다. 당시에는 흙으로 구워 만든 토기와 같이 사용되었다. 금속 그릇은 권위나 신분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죽을때 무덤에 같이 묻히는 부장품으로 사용되었다. 사발이다 굽다리접시 같은 작은 그릇은 금.금동.은으로 만들고, 합.초두.항아리 등은 추로 청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릇의 밑바닥이나 뚜껑에는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나 연호와 같은 글자를 새기기도 하였다. 굽다리접시. 흙을 구워서 만든 굽다리접시 토기와 비슷한 모양이다. 금동으로 만든 사발 뚜껑이 있는 그룻인 합 청동그릇 청동국자. 청동으로 만든 초두. 제례의식에 사용되는 것으로 중국과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유물이다.

중앙박물관 2010.01.05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와 실크로드

신라는 중국,일본과 교역을 하면서 서로 교류를 했을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를 통해서 서아시아와 로마와의 교역의 흔적을 많이 남겨 놓고 있다. 지중에서 산출되는 유리제품을 포함하여 재료나 제작기법에서도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서역에서 수입된 물품들은 상당히 귀하게 여겨졌고, 그래서 많은 고분에서 수입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리병. 지중해 로마에서 수입된 제품이다. 금실을 감아 수리한 흔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매우 귀한 물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병은 연녹색을 띤 얇은 유리제품으로 타원형의 계란 모양이다. 물을 따르기 편하게 끝을 새 주둥이 모양으로 좁게 오므렸다. 가느다란 목과 얇고 넓게 퍼진 나팔형 받침은 페르시아 계통의 용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

중앙박물관 2010.01.05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꾸미개, 금관.금허리띠와 금제관식.관모

신라는 천년 가까이 국가를 유지해왔던 나라로 경주에 수많은 고분을 남겨놓고 있다. 신라는 금을 이용한 많은 유물들을 남겨 놓고 있는데 주로 꾸미개의 형태로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형태는 금관으로 천마총을 비롯하여 여러 고분에서 화려한 금관이 출토되었으며, 그 외에 관모, 관꾸미개(관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 다향한 형태의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이런 꾸미개들은 천마총, 금관총, 황남대총에서 많이 출토되었으며 그외의 고분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황남대총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신라를 대표하는 유물인 금관. 유명한 금관총이나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아니고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것이다. 금관과 하나의 세..

중앙박물관 2010.01.05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가야의 대외교류

가야는 일본과 중국간의 해상교류에 있어서 중간점에 위치하고 있어, 삼한시대 이래로 한.중.일 삼국간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대가야인 고령지역에는 당시에 많은 철이 산출되어 이를 낙랑과 일본으로 수출하여 부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 시대의 늑도나 다호리 유적, 삼국시대의 가야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상당히 세련되었으며, 그 중에서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수입한 물건들도 많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솥, 거울, 방패꾸미개, 적갈색토기 등은 가야와 주변 국가와의 국제적인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방패꾸미개. 바람개비모양으로 나무나 가죽으로 된 방패에 붙인 것이다. 뒷면에는 방패에 매달기 위한 고리가 있다. 청동 방울. 속이 빈 둥근 동 속에 청동 또는 철로된 작은 구슬이 들어 있어..

중앙박물관 2010.01.04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가야의 꾸미개, 금동관

삼국시대에 존재했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가야에도 금동관, 귀걸이, 팔찌, 반지, 목걸이 같은 꾸미개들이 존재했다. 주로 가야연맹체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유리나 수정 등으로 만든 것은 작은 무덤에서도 출토된다. 가야의 관은 관테와 풀꽃모양의 세움장이 있는 것이 특징이 있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서 뛰어나 보이지는 않느다. 가야의 관. 굵은 관테와 세움장식으로 구성된다. 관테와 풀꽃모양 세움장식이 있는 형태로 나뭇가지모양 장식의 신라 금관과는 다르다. 관테의 위아래에는 점무늬와 점줄문살무늬가 새겨져 있고 둥근 달개가 달리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가야의 귀걸이. 귀걸이. 고리와 연결장식.드리개로 구성되며 가느다란 고리가 특징이다. 연결장식은 공모양과 사슬 형태로 이은 것이 있고, 드리개는 나뭇잎 모양..

중앙박물관 201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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