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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적성향교, 적성현 관아에서 설치한 중등교육기관

파주 적성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조선시대 적성현 관아에서 설립한 중등교육기관이다. 향교는 삼국시대 군사요충지였던 칠중성 아래 위치하고 있다. 적성향교는 한국전쟁때 소실되었던 것을 1975년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만 복원되었고,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는 복원되지 않았다. 파주시 적성면 일대는 삼국시대 고구려가 칠중현을 설치하였고, 신라에는 중성, 고려때부터 적성이라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동쪽으로 마전군, 서쪽으로 장단부와 파주, 남쪽으로 양주와 경계를 하고 있다. 이 지역은 북쪽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남쪽 감악산을 비롯하여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역이다. 주변 지역이 넓지는 않지만..

진천 김유신 장군 탄생지 (사적 414호)

충북 진천군 상계리에 위치한 김유신 장군 탄생지이다. 이곳은 진천군 소재지 서쪽 만뢰산 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진출하면서 가야출신으로 큰 공을 세웠던 김유신일가가 자리를 잡았던 곳으로 넓은 평야지역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천안과 진천 사이의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진천지역 태수를 지냈던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이 집무를 보던 곳으로 조선시대 관아와는 달리 군사 주둔지 성격을 갖고 있는 지역으로 지금도 주변에는 마을이 거의 없다. 김유신 장군 유적지에는 실질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고, 탄생지 뒷편 태령산성 정상부에 탯줄을 보관했다는 태실이 남아 있다. 태실은 원형으로 3단의 석축을 쌓고 그위에 흙을 덮은 형태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태실의 형태라고 한다. 탄..

안성 청룡사 대웅전(보물824호)

안성 청룡사 주불전인 대웅전(보물824호)이다. 조선 선조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건물의 형태나 건축수법으로 볼 때 조선후기에 크게 중수하면서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4칸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처마는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건물 기둥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목을 사용하고 있어,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이 있다. 안성 서운산 자락에 위치한 청룡사는 고려시대(원종6)인 1265년에 처음 세워진 사찰로 고려말 이름난 고승인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면서 청룡사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원찰이었다고 한다. 또한 1900년대부터는 남사당패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하며, 부근에 지금도 남사당마을 등이 있다고..

안성 석남사 영산전(보물823호), 조선초기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불전

안성시 서운산(해발547m) 북쪽편 자락에 자리잡은 석남사 영산전(보물823호)이다. 건물 규모는 앞면3칸.옆면2칸이지만 건물 규모는 작은 편이다. 이 건물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붕을 팔작지붕을 하고 있고,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초기에서 중기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불전은 석가모니불과 생애를 그린 팔상도를 모신 영산전이지만, 지금은 명부전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석남사는 신라 문무왕대에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고려 광종의 아들 혜거국사가 크게 중건하는 등 안성 일대에서는 중요한 사찰로 여겨졌다. 임진왜란 때 사찰 대부분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현재는 대웅전과 영산전만 남아 작은..

천안 천흥사지 5층석탑(보물 354호), 고려전기 양식을 잘 보여주는 석탑

천안시 성거읍 천흥사 절터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오층석탑(보물354호)이다. 지대석 위에 2층기단을 놓고 그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부는 1층은 낮게, 2층은 높게 만들었다. 윗층 기단은 각 면마다 1개씩 4개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되어있으며 1층 기단은 높게,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높이가 줄어든다. 통일신라 말기 석탑이 작고 정형화된 형식인데 반해 웅장하면서 전체적인 비례에 있어 조형미가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을 연상시키고 있는 석탑이다. 천흥사는 천안 성거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찰이었다. 천흥사종(국보280호)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성종대..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국보7호), 교통의 요지에 세워졌던 절터의 흔적

천안시 성환읍 대흥리 1번국도 도로변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비석인 봉선홍경사 갈기비(국보7호)이다. 비석이 세워진 곳은 서울과 호남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던 봉선홍경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절터이다. 봉선홍경사는 고려 초인 1021년(현정12)에 세워진 사찰이다. 당시 이지역은 교통의 요지이지만 마을이 없고 주변에 습지가 많아 도적이 자주 출몰했기때문에 여행객의 안전을 위하여 현종이 절과 숙소인 원(院)을 세웠다고 한다. 봉선홍경사 갈비는 사찰이 세워진 뒤 5년후에 세워졌다. . 갈비(碣碑)는 보통 석비보다 규모가 작고 간략화된 것을 말하지만, 이 비석은 머릿돌, 몸돌, 거북받침돌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석비의 형식을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의 머리는 어룡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머..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404호), 비문이 없는 석비

충북 진천읍 연곡리 만뢰산 아래 연곡계곡에 남아 있는 연곡리석비(보물404호). 전체 높이 3.6m로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이수)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비석이다. 비몸에는 글자가 없어 '백비(白碑)'라 불렸다. 처음부터 비문을 새기지 않았는지 지워져 버린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머릿돌에는 아홉마리의 용을 새겼는데 표현이 사실적이고 조각수법도 뛰어나다. 거북받침돌의 머리부분이 손실되었는데 말의 머리와 비슷해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나 조각수법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곡리석비는 원래 계곡에 비석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보탑사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 세워졌다. 지금은 보탑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어 이 사찰과 관련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탑사와는 무관한 석비이다. 부근..

진천 대한성공회 진천성당

충북 진천군 진천읍 남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성공회 진천성당이다. 대한성공회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19세기말 서구열강과 함께 한국에 전래되었다. 대표적인 교회로 덕수궁 옆 영국대사관과 함께 있는 서울교구 주교좌성당과 강화도의 성당이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초에 세워진 성공회 성당은 다른 개신교와는 달리 한옥의 형태를 응용하여 토착화한 형태의 교회건물이 많이 세워졌다. 진천 성공회 성당은 충북지역 선교의 거점으로 1908년 한옥 건물 형태로 처음 세워졌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3년에 신축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동쪽에 출입구를, 서쪽에 제단을 둔 직사각형 형태로 앞면 4칸, 옆면 8칸 규모이다. 내부에는 2개의 열주에 의해 신자석인 네이브(Nave)와 회랑의 성격을..

진천 이상설 생가,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초가삼간

진천읍소재지에 멀지 않은 들판에 위치한 이상설 생가이다. 이성설은 구한말 관료이자 독립운동가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한 3인 중 한명이다. 진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신학문을 배운 후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이준, 이위종과 함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펼쳤다. 진천군 산척리 마을에 남아 있는 생가는 일제강점기 이후 무너진 것으로 복원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3칸, 측면2칸의 작은 초가집이다. 이상설은 구한말 신학문을 배우고 과거에 급제했던 것으로 볼 때 신분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생가는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초가집이다. ..

고택_정원 2014.06.16

진천 농다리, 자연석으로 교각을 쌓은 전통 돌다리

진천 농다리는 진천읍을 지나 청원군을 거쳐 금강에 합류하는 미호천(세금천)을 건너는 오래된 돌다리이다. 다리가 있는 진천군 구곡리 마을은 상산임씨의 세거지로 이 다리는 고려 고종때 권신이었던 임연이 놓았다고 전해지는 다리라고 전한다. 자연석을 축대처럼 쌓아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장대석을 상판으로 올려놓은 구조로 그 형태는 일반적이 돌다리와 비슷하나 자연석을 이용해서 쌓아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다리는 길이 93.6m, 너비 3.6m이다. 교각 사이의 폭은 80cm 정도이며, 원래는 28칸의 교각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24칸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자연석으로 쌓은 교각은 양끝을 뾰족하게 하여 물이 잘 흐르게 하고 있다. 천년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보수하면서 사용해 왔다고 하며, 웬만한 장마에도 무너지지..

[중국 취푸(曲阜)] 공부(孔俯), 별채에 해당하는 화청(花厅)과 후원(後苑)

취푸(곡부,曲阜,Qufu) 공부(孔府)는 연성공이라는 작위를 받은 공자 직계 후손이 사는 공간으로 중국 관아와 대저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공부는 궁궐의 건물배치와 거의 비슷하게 전면부에는 연성공이 공적인 업무를 보는 관아건물들이, 뒷편에는 살림집이 배치되어 있다. 안채에 해당하는 살림집인 전상방(前上房), 전당루(后堂楼), 후당루(后堂楼)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동쪽편에는 연성공 일가들이 사용하는 건물들이, 서쪽에는 별당에 해당하는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궁궐과 마찬가지로 안채 뒷편에는 가족들의 휴식공간으로 넓은 정원을 꾸며 놓고 있다. 공부(孔府)의 별당에 해당하는 건물을 화청(花厅)이라고 한다. 화청은 여러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당에는 정원을 꾸며놓고 있다. 주로 멀리서 공묘를 ..

중국(China) 2014.06.11

[중국 취푸(曲阜)] 공부(孔俯), 가족들이 거처하는 전상방(前上房), 후당루(后堂楼), 후동루(后东楼), 후서루(后西楼)

취푸(곡부,曲阜,Qufu) 공부(孔府)는 공자의 사당인 공묘(孔廟)와 묘역인 공림(孔林)을 관리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공자의 직계후손이 사는 저택이다. 공부는 궁궐처럼 앞쪽에 공자 가문의 종손인 연성공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건물들과 사랑채에 해당하는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고, 뒷쪽에 연성공 일가가 거주하는 안채에 해당하는 건물들이 배치되었다. 두 영역은 담장과 출입문으로 분리되어 있다. 또한 동쪽편은 공씨가문 일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서쪽은 연성공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사랑채나 별당과 비슷한 성격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공부(孔府)에서 연성공 가족들이 거처하는 안채에 해당하는 공간은 크게 연성공 집안 대소사를 치를 수 있는 공간인 전상방(前上房),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공간인 전당..

중국(China) 2014.06.10

[중국 취푸(曲阜)] 공부(孔俯), 서재인 홍악헌, 손님을 접견하는 충서당과 안회당

취푸(곡부,曲阜,Qufu) 공부(孔府)는 공자의 사당인 공묘(孔廟)와 묘역인 공림(孔林)을 관리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공자의 직계후손이 사는 저택이다. 공자 가문의 종손은 송나라때 연성공(衍圣公)이라는 제후의 지위를 받고, 공부에서 생활하며 공식적인 업무를 보았다. 공부는 역대 왕조의 후원을 받아 그 규모가 확장되어 왔다. 오늘날 공부는 480여개의 방이 있는 152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궁궐처럼 앞쪽에는 연성공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과 사랑채 역할을 하고 있으며, 뒷쪽에는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공부(孔府)중앙에는 연성공이 국왕의 칙사를 맞이하는 공간인 대당(大堂), 공식적인 업무공간인 이당(二堂), 가족과 집안일에 관한 업무를 처리하는 삼당(三堂)이 배치되어 있다. 그 왼..

중국(China) 2014.05.27

[중국 취푸(曲阜)] 공부(孔俯), 공자 종손 연성공(衍圣公)의 집무공간인 대당(大堂), 이당(二堂), 삼당(三堂)과 육청(六厅)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 수도 취푸(곡부,曲阜,Qufu)에는 공자와 관련된 유적들이 여러곳 있다.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국자감과 함께 가장 큰 규모와 역사성을 자랑하는 취푸 공묘(孔廟)에는 공자의 직계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저택인 공부(孔府)가 있다. 공자의 후손들은 역대 왕조의 후원을 받아왔고 송나라 이후 공자의 장손은 연성공(衍圣公) 지위를 부여받았다. 연성공은 공자의 사당과 묘역을 관리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역할과 함께 세금을 걷고 곡부지역을 다스리는 제후의 지위였다. 공부(孔府)는 1038년에 공묘 근처에 세워졌으며, 1377년 중건 때 공묘 인근으로 옮겨졌다. 명나라때인 홍치16년(1503) 대규모로 확장되면서 총 560실의 방을 갖춘 오늘날 공부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 공묘와 같이 중앙에 ..

중국(China) 2014.05.23

[중국 칭다오(Qingdao] 홍콩반점이라 불리는 식당 (香港老飯店, Hongkong old restaurant)

중국 칭다오 신도심에 위치한 중국 요리 식당인 '香港老飯店(Hongkong old restaurant)'으로 홍콩반점이라 부른다. 1980년대 이후 칭다오시가 산업화되면서 도시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는 5.4광장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식당으로 전통적인 중국식당이라기보다는 홍콩이나 대만의 중국 식당과 비슷한 곳이다. 딤섬을 비롯하여 한국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중국 요리들이 많은편이며, 닭머리 요리를 비롯하여 산동지방 특유의 중국요리도 같이 접할 수 있다. 인구 870만명의 거대도시로 산동성지방의 관문역할을 하는 항구도시이다. 산동지방의 관문역할을 하는 항구도시로 20세기초까지 독일 조차지였기때문에 독일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또한 광동성, 상해지역과 함께 중국에서 산업화가 일찍 시작되었기때문에 중국내에서도..

중국(China) 2014.05.20

서울 아차산(해발 287m),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역사탐방로

아차산(해발 287m)은 용마산과 함께 서울 동부지역과 경기도 구리시를 경계짓는 산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난 곳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큰 산맥인 광주산맥의 한줄기가 수락산(해발638m)을 거쳐서 한강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특히, 한강이남 한성백제 수도였던 위레성 주변 한강유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워커일 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아차산은 서울 동부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근교산이다. 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여러곳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코스는 남쪽 산자락 아래 아차산성 입구이다. 해발 300m가 되지 않는 나즈막한 동산으로 걷기에 수월하면서 능선을 따라서 펼치지는 경치가 일품이다. 아차산은 도심..

한국의 풍경 2014.05.16

평창 봉평,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일대는 소설가 이효석이 태어나고 자란곳으로 그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이기도 한 곳이다. 소설의 주요 무대인 봉평장터 일대는 전형적인 강원도 시골 장터 및 읍소재지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봉평장터는 백두대간의 한줄기인 중앙산맥의 흥정산(해발 1,279m)에서 발원하여 봉평일대를 흐르는 흥정천의 맑은 개울과 부근의 메밀밭, 수수밭 등 강원도 고유의 산골마을 풍경을 느껴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방이 고립되어 있는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양두구미재, 북쪽으로 운두령, 동쪽으로 대관령/진부령 등 해발 약 1,000미터 내외의 높은 고개를 넘어야만 타지역으로 갈 수 있고, 봉평장 앞을 흐르는 흥정천이 속사천과 합류하여 평창강이 되면서 강원도 산골을 구비구비 흘러 한강으로 올 수 있..

한국의 풍경 2014.05.08

태기산 양구두미재(해발980m), 횡성 둔내와 평창 봉평을 연결하는 6번국도 고갯길

태기산 양구두미재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의 경계가 되는 고갯길이다. 해발 980m로 영동고속도로와 함께 한반도 중부지방을 동.서로 관통하는 6번국도에서도 가장 높은 고갯길이다. 양구두미재와 태기산은 동쪽으로는 오대산이 있는 백두대간까지 높고 험한 산들이 있어지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영서지방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실제로 양구두미재는 6번국도가 지나가는 고갯길이지만 실제로는 많이 이용하지 않았던 길이라고 한다. 고갯길에는 경찰전적비 주위로 작은 휴식공간과 송신소가 위치하고 있다. 양구두미재 북쪽으로는 태기산(해발 1,261m)이 있으며, 능선으로 따라서 최근세 세워진 풍력발전소 풍차가 늘어서 있다. 동쪽으로 계곡 건너편에 피닉스파크 스키장 정상 휴가소가..

한국의 풍경 2014.05.04

서울 아차산(해발 287m), 등산로 입구에서 고구려정까지

아차산은 구리시와 서울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해발 287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용마산.망우산과 연결된 북쪽을 제외하고는 막힘이 없이 뚫려 있어 경치가 좋은 산이다. 이 곳은 삼국시대 한성백제의 수도였던 풍납토성.몽촌토성 일대와 한강유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중량천 일대에 말을 키우는 목장을 조성했기때문에 아차산 일대에는 사냥터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해방이후 주변에 아차산공원.용마공원 등 도시공원과 아차산성 아래 워커힐 호텔이 조성되었다. 아차산은 서울 동부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도시공원으로 아차산.용마산.망우산이 연계되어 쉬우면서도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등산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차산 등산은 여러 곳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아차산성 아래에..

한국의 풍경 2014.05.01

서울 효창공원(사적330호), 백범 김구선생과 독립운동가 묘역이 있는 도심공원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선생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해방이후 귀국하면서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묘역을 이곳에 마련하고, 이후 임정요인 중 이동녕.차이석.조성환 선생의 묘역도 조성되었다. 이후 백범 김구선생이 돌아가신 후 그가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이곳에 그의 묘역이 마련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가 묘역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 이후 독립운동가의 묘역은 더 이상 조성되지 않았고, 현재는 안중근 의사를 위한 가묘가 삼의사 묘역에 마련되어 있다. 효창공원은 도심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찾는 곳으로 독립운동가 묘역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묘역의 격이 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시민들과 가까운..

한국의 풍경 201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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