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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129

경주 백률사와 굴불사지,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 계기가 되었던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사찰

백률사는 경주 동천동에 있는 사찰로 삼국시대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던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사찰이다. 당시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잘린 목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진 곳에 세운 절이다. 문헌에는 자추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후에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백률사에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불상인 국보 29호로 지정된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있었고, 통일신라 헌덕왕대에 이차돈을 추모하여 세운 비석도 있었다. 절의 규모는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된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건물은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사찰 주위에는 옛 건물에 쓰였던 건물 초석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백률사 아래에는 보물 121호로 지정된 석조사면불상이 남아 있는 굴불사 절터가 있다. 굴불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전국 사찰 2012.06.23

[부여박물관] 위덕왕과 능산리사지,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이 있는 능산리고분과 백제 나성 사이에 위치한 능산리사지는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된 절터이다. 백제는 사비성을 도읍으로 하던 시기에 많은 사찰들을 건립했지만 그 중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이다. 이 사찰은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지어졌다는 의견되 있지만, 대체로 백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원 원찰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이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여러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중국으로 부터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를 비롯하여, 문서에 해당하는 많은 목간들, 건축자..

지역박물관 2012.06.01

부여 백제문화단지, 능산리절터에 있던 사찰을 재현해 놓은 능사

능산리사지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소재한 백제의 마지막 왕릉이 있는 능산라고분군 옆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성 도성인 부여나성 바깥쪽에 자리잡고 있는 고분으로 다른 왕릉들과 마찬가지로 백제의 큰 위협이었던 신라를 비롯한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주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능산리사지는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능사로 이 곳에서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이 출토되었다. 절은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는 1탑, 1금당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사찰의 규모는 황룡사나 익산 미륵사에 비해서 작은 편으로 선왕들의 명복을 비는 원찰 또는 능사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사찰이라고 할 수..

김포 문수사, 문수산성에 있는 작은 사찰

한강하구와 강화로 들어가는 뱃길을 지키기 위해 세운 문수산성이 있는 문수산 중턱에 있는 작은 사찰인 문수사이다. 이 사찰은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사찰은 주불전인 비로전과 요사채만 있는 암자같은 작은 규모의 사찰로 광해군대와 순조대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문수산성을 크게 개축했던 순조대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산성을 지키는 승병들이 머무는 사찰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수사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문수산성 성곽길을 통해서 올라가거나, 김포시 월곶면소재지에서 산길을 통해 정상부 부근에 있는 암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어서 일반 사찰에 비해 들어가는 길이 험한 편이다. 사찰에는 5층석탑의 잔해와 사찰 서쪽편 언덕에 풍담대사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문수..

전국 사찰 2012.05.09

남한산성 장경사, 산성을 쌓고 지키던 승병들어 거처하던 사찰

병자호란에 대비하면서 조선은 한강이남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였던 남한산성을 크게 개축하면서, 전국의 많은 승병들을 동원하였다. 이 때 벽암각성선사가 조선8도의 도총섭이 되어 승려를 지위하여 남한산성을 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에도 남한산성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 받았다. 남한산성내에는 이때 동원된 승려들을 위해 9개의 사찰이 지어졌다고 하며, 산성내 중심지에 위치한 개원사가 그 중심이 되는 사찰이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에 세워진 9개의 사찰 중 현재는 본영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는 개원사를 비롯하여 망월사, 장경사가 현재까지 남아 있는데, 이 사찰들은 대부분 남한산성 방어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남쪽편 검단산 방향과 외성인 봉암성과 한봉성이 있는 망월봉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그..

전국 사찰 2012.04.25

안양 안양사, 중초사(안양사) 옛 절터 뒷편에 세워진 사찰

안양사는 신라 효공왕 4년(900)에 고려 태조가 삼성산 자락 아래에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로 안양시 지명의 유래가 되었던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안양사는 고려시대 큰 사찰이었던 안양사는 아니고, 한국전쟁 이후 새로 지은 건물들이라고 한다. 실제 안양사는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위치한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중초사지(안양사지) 옛 절터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안양사는 옛 안양사에 소속되었던 작은 암자가 있었던 장소이거나 안양사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새로 건립된 사찰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왕조와 관련된 무학대사가 수도했다는 조선시대 최대의 사찰이었던 양주 회암사와 비슷한 경우로 보인다. 고려시대 안양사는 이 지역의 지명 유래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통요지에 위치한 상당히..

전국 사찰 2012.03.30

강화 전등사 극락암, 향로전을 비롯한 요사채들

전등사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사찰인 까닭에 전통과 역사에 비해서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은편이다. 부처를 모시는 불전으로는 석가모니를 모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를 모시는 약사전, 최근에 많이 볼 수 있는 크게 지어진 지장보살을 모시는 명부전이 있다. 불전들은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면서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편이다. 주위의 우거진 수목들과 잘 어울리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불전에 비해서 사찰에서 수행하는 승려들과 이 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머무는 요사채는 꽤 규모가 크고 많은 편인데, 대체로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왕실과 관련이 되어 있고, 정족산 사고가 있어 이 사찰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라 요사채를 많이 두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최근에도 템플스테이 등을 위해서 ..

강화 전등사 대조루, 사찰로 들어가는 출입문 겸 강당

강화 전등사 출입문 역할은 하는 대조루는 사찰에서 불이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누각이다. 전등사는 정족산성내에서 정족산사고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등 조선시대 국가와 관련된 전통사찰이 전체 영역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과는 달리 일주문, 천왕문, 금강문 등의 출입문을 두지 않고 누각인 대조루가 그 역할을 했다. 전등사 대조루는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잠시 쉬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만든 건물로 대웅전와 같은 방향을 하고 있지 않고, 지금은 수목이 우거져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 염하라고 불리는 강화해협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건물이 세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1932년에 크게 수리를 하였다고 하면, 유리문이 달려 있는 등 당시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

논산 관촉사, 고려초 지방호족 문화를 대표하는 은진미륵이 세워진 사찰

관촉사는 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고려초를 대표하는 '은진미륵'으로 잘 알려진 국내에서 가장 큰 불상 중 하나인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이 사찰은 968년(광종19) 혜명이 창건하였으며, 미륵보살입상과 관련하여 여러 설화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사찰은 낮은 야산이지만 넓은 평야지대 중심에 위치하여 사방이 내려다 보이는 반야산 중턱에 축대를 쌓아서 조성한 부지 위에 세워져 있다. 관촉사라는 이름은 미륵보살상의 이마에서 나오는 빛이 촛불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사찰내 문화재로는 은진미륵 외에서 불상에 걸맞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보물 232호로 지정된 관촉사 석등과 오층석탑, 배례석, 석문, 사적비 등이 있다. 사찰의 내력에 비해서 불전들은 오래된 것은 없고 ..

전국 사찰 2012.02.27

논산 쌍계사, 많은 민간전설을 간직한 논산지역을 대표하는 사찰

논산 쌍계사는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불명산에 있는 사찰로 보물 408호로 지정된 대웅전이 있다. 이 사찰은 고려초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세운 혜명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사찰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지만, 대웅전과 사찰부지의 규모로 볼 때 큰 규모의 사찰로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사찰이었던 것 같다.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나 석탑등은 없고 사찰입구에 오래된 부도군과 쌍계사 중건비가 남아 있다. 중건비의 내용으로 볼 때 현재의 사찰은 조선후기인 1739년(영조15)에 그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 사찰은 공식적인 기록보다는 이 지역 서민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 사찰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편이고, 명산이 위치한 사찰이 아니..

전국 사찰 2012.02.25

논산 개태사,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창건한 사찰

개태사는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사찰로 936년(태조19)에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태조 왕건이 후백제 신검에게 항복받은 황산에 개태사라는 이름으로 절을 창건하였다. 개태사는 초기에는 태조왕건의 영정이 봉안되고 주요 제사를 주관하는 등 중요한 사찰이었으나, 고려 수도인 개경과 거리가 떨어져 있었던 까닭에 주목을 받지 못하고 조금씩 쇠퇴하였다. 조선 전기 세종대에 잠시 중흥기를 가졌지만 그 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폐허가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개태사는 태조 왕건이 창건한 개태사와는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김광영이란 여승이 옛절터에 묻혀 있던 삼존석불을 찾아내 그 자리에 절의 세운 것이라 한다. 현재 사찰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며, 한..

전국 사찰 2012.02.22

오대산 월정사,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들

월정사는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상원사와 함께 오대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 곳을 다녀가고, 오대산 사고를 설치하는 등 왕실과 관련된 원찰의 기능을 갖고 있는 사찰이다. 월정사의 오랜 역사에 비해서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 버렸기때문에 현재의 전각들은 대부분 그 이후에 중수되어 팔각구층석탑을 제외하면 고풍스러운 멋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찰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 중수되기 시작한 월정사에는 적광전을 비롯하여 부처를 모신 불전을 여럿 두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불전보다는 승려가 수행하는 공간인 승방이나 사찰을 방문한 사람들이 잠시 묵을 수 있는 요사채들을 많이 두고 있다. 이는 월정사가 위치한 장소가 민가가 있는 마을과 거리가 떨어..

오대산 월정사, 수광전을 비롯한 불전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소재한 월정사는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오대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월정사에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팔각구층석탑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세조를 비롯한 왕실의 비호를 받고 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사고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등 원찰의 성격을 갖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월정사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불교계에서 비중이 큰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당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어 건축물로서 내력이 있는 불전이나 요사채건물은 없고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에 중건되어 불전이나 요사채에서 오래된 사찰로서의 느낌은 주지 못하고 있다. 월정사 주불전인 적광전 뒷편으로는 4동 불전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안쪽에 있는 것이 이름난 큰 산에 자리잡은 사찰에서 많이 ..

하얀 눈으로 덮힌 월정사 전나무숲길

오대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고찰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이 사찰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오대천 옆 숲길을 따라 이어진 전나무숲길을 들 수 있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은 소나무숲길이 있는 우리나라의 다른 숲길과는 달리 전나무가 심어져 있다. 평균 수령 80년이 넘는 약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1km에 이르는 숲길을 이루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말 나옹선사가 월정사에서 공양을 드리고 있는데 소나무에 쌓여있던 눈이 그릇으로 떨어져 공양을 망쳐서 산신령이 소나무대신 전나무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이 길을 걸으면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 개울과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전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과 일체가 된다는 느낌을 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숲길 중 하나이다. 오대산 월정사..

전국 사찰 2011.12.31

오대산 월정사, 주불전인 적광전

오대산 월정사는 643년(선덕여왕12)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작은 암자의 형태로 유지되다가 이후에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월정사는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방문하고 이 곳에 오대산 사고를 두는 등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원찰 기능을 했던 사찰이기도 하다. 고려초기에 세워진 팔각구층석탑을 제외하고는 사찰전각들은 여러차례의 화재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서 문화재로서 내력이 있는 불전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월정사는 주불전인 석가모니불을 모신 적광전을 비롯하여 많은 불전과 요사채를 두고 있는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이다. 월정사의 주불전은 적광전으로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신 불전이다. 원래 이 곳에는 일곱부처를 모신 칠불전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국보 48호),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탑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기슭에 위치한 월정사는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사리와 대장경일부를 가지고 돌아와 통도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알려진 오래된 고찰이다. 오대산 깊은 산중에 위치해 있지만 국보 48호인 팔각구층석탑과 그 앞에 있는 보물 139호인 석조보살좌상을 제외하고 전각들은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렸기때문에 오래된 건물은 남아 있지 았다. 불교와 관련있는 오대산이라는 이름과 함께 문수보살이 머무는 땅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 사찰은 조선초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영향으로 이곳에 오대산사고를 설치하고 상원사를 중창하는 등 왕실관 관련이 있는 원찰의 기능을 했던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초에 세워진 석탑으로 8각모양의 2단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석탑으로 경..

강화 교동도 화개사, 고려때 창건된 작은 사찰

강화 교동도의 주산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개산은 해발 269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이 섬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서해에서 한강으로 들어가는 뱃길과 북녁땅 연백평야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오고, 사방이 뚫려있어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매우 수려한 산이다. 이 화개산은 한강을 지키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광개토대왕이 한성에 도읍을 하고 있던 백제를 제압하기 위해 점령하여 산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화개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있는 화개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오래된 사찰로 서울 조계사의 말사로서 나름 내력이 있는 사찰이다. 고려말 목은 이색이 이 절에 머물렀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이 절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는 않지만, 교동도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이..

전국 사찰 2011.11.10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보물 1527호)을 모시고 있는 작은 암자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억정사 옛 절터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보물 1527호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 작은 암자인 백운암이 있다. 현재는 법주사의 말사 중 하나로 구한말인 고종 23년에 무당이었다고 공을 세워 벼슬을 얻었던 파평윤씨가 세웠다고 알려진 작은 사찰이다. 사찰은 불전인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로 이루어진 작은 암자로 명승지가 아니라서 찾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백운암에 주존볼로 모시고 있는 철조여래좌상은 원래부터 이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 사찰로 옮겨진 내력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억정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불상은 높이 87cm 정도의 크지 않은 철조불상으로 전체적으로는 8세기 통일신라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나 그 제작 수법이나 조..

전국 사찰 2011.10.28

경주 불국사 석조(보물 1523호), 아직도 방문객의 목을 축여주고 있는 석조

불국사 앞 마당에서 청운교.백운교와 연화교.칠보교를 감상하다가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대웅전으로 올라가기전에 잠시 목을 축이던 샘물을 받아 먹었던 석조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보물 1523호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것을 인식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석조는 보통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해 보이는 석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국사 석조는 원형인 백제의 석조와는 달리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의 석조다. 일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으며 내부 바닥면에는 화려한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토함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서 불국사를 찾는 모든이에게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 불국사 석조.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만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불국사..

경주 불국사 다보탑 (국보20호), 석가탑과 함께 '2개의 탑'을 연상시키는 통일신라 석탑의 걸작

불국사를 대표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석가탑과 다보탑일 것이다. 많은 전란등으로 불국사가 타버렸을 때도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었기 때문에 불국사는 계속 재건되어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황룡사의 목탑이 불타버렸을때 그 복구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 황룡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불국사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중심으로 언제나 예전같이 재건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불국사 마당에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면 그림,사진,동전 속에서 볼때의 약간 왜소함에 비해 실물의 크기에 감탄을 하게된다. 이 두개의 탑을 중심으로 불국사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 같다. 국보 20호로 지정된 다보탑은 석가탑과 함께 대웅전 경내에 나란히 서 있는 '2개의 탑'이라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석탑으로 높이 10.34m의 대형 석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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