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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140

공주 마곡사, 요사채인 심검당과 고방 (템플스테이 하는 곳)

차령산맥 남쪽 태화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마곡사는 640년 자장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졌으며, 실제로 마곡사의 역사는 고려중기 불교 결사운동을 이끌고 오늘날 조계종을 만든 보조국사 지눌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력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마곡사의 성격은 선종계열로 수행을 중시하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승보사찰이라는 순천 송광사와 비슷한 느낌이다. 마곡사는 수행을 중시하는 사찰답게, 주변에 수행을 할 수 있는 많은 부속암자를 두고 있으며, 경내 한쪽편에는 불전으로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을 두고 있다. 또한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다른 사찰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는데, 사찰입구 영산전 주변으로 큰 규모의 요사채 건물인 매화당과 수선사를 두고 있다. 사찰경내에는 ..

공주 마곡사, 영산전(보물 800호)과 명부전

공주 마곡사는 경내 중간에 개천이 흐르고 있는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개천 바깥쪽으로는 영산전을 중심으로 매화당을 비롯한 승려들이 수행하는 장소로 보이는 요사채와 강당이 있고, 대광보전과 대웅전이 있는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설명에 의하면 바깥쪽은 승려들의 수행공간의 성격을 가지며 안쪽은 부처님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마곡사 해탈문 옆쪽 수행공간의 중심이되는 건물로 이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영산전이 있다. 이 불전에는 여래불상과 함께 천개의 작은 불상이 있어서 천불전이라고도 불린다. 17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앞면 5칸의 작지 않은 규모이지만 문살이나 단청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지는 않다. 이 영산전은 현판은 조선시대 세조가 이곳을 방문..

[공주 마곡사] 천왕문과 해탈문

차령산맥 남쪽 공주에 위치하고 있는 마곡사는 충남 내류지역을 관장하고 있는 큰 사찰로 수행을 중시했던 내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사찰체험을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이른 시기에 시작했던 사찰이기도 하다. 마곡사가 있는 태화산 자락에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많은 암자들이 있으며, 마곡사 입구에는 개천으로 분리되어 있는 듯한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수행공간이 별도로 있다. 마곡사는 사찰규모에 걸맞게 출입문으로 해탈문과 천왕문을 두고 있다. 해탈문과 천왕문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양식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의 사찰에는 계단을 오르게 되어 있는 반면에 마곡사는 평지를 지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마곡사 해탈문 내부에는 금강역사상과 보현, 문수동자상을 모시고 있는데, 이런 경우 금강문이라고 부..

양양 낙산사, 우리나라 3대 기도처로 관동팔경 중 하나인 사찰

양양 낙산사는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로 불리는 사찰이다.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관음보상을 만나서 이 절을 창건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사찰이다. 강릉 경포대와 함께 관동팔경 중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사찰은 실제 기록으로는 858년에 승려 범일에 의해서 크게 중건된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지만, 몽골과 전쟁, 임진왜란, 한국전쟁 등 여러차례의 화재로 전각들이 소실되었기때문에 실제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건물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2005년 4월에 일어난 산불로 보물로 지정되었던 낙산사 동종을 비롯하여 전각대부분이 소실되어서 지금의 사찰은 대부분 그때의 산불 이후에 새로 중건된 건물이다. 낙산사를 대표하는 곳으로는 1977년에 오..

전국 사찰 2011.02.22

부여 만수산 무량사,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위치한 무량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사찰경내에 있는 가장 유서깊은 문화재인 무량사오층석탑은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미루어볼때 통일신라말기에서 고려전기에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찰에는 현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불전의 형태인 2층으로 이루어진 극락전을 주불전으로 해서 여러동의 작은 불전들이 있다. 무량사 극락전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금산사 미륵전과 함께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금당인 장륙전의 형태가 남아 있는 많지 않은 불전 중의 하나이다. 부여 무량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현재의 규모로 중창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조선전기 천재이자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이..

전국 사찰 2011.02.20

순천 송광사, 승보사찰로 불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수행도량

전남 순천시 조계산에 자리잡고 있는 송광사는 한국 선종을 대표하는 수행도량으로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사찰 로 불리우는 사찰이다. 그 중 수행을 중시하는 승보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송광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길상사라는 조그만 사찰이었지만, 1200년 무인집권기에 일어난 전국적인 불교개혁 운동의 하나로 보조국사사 수행결사인 정혜결사의 중심지를 이 곳으로 옮김으로서 송광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연유로해서 송광사에는 다른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석탑이나 석불같은 조형미가 뛰어난 통일신라시대 불교 예술품들은 많지 않아 보이며, 대부분의 문화재는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국사전을 비롯하여 고려후기 불교관련 유물과 유적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편이다. 송광사의 ..

전국 사찰 2011.02.18

예산 덕숭산 수덕사, 2010년 초겨울 풍경

충남 예산군 덕숭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수덕사는 내포평야를 비롯하여 충남 서해안 지역을 관장하는 조계종의 중심 사찰이다. 이 사찰은 삼국시대 백제 침류왕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사찰의 내력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수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의 하나인 대웅전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찰을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특이하게 내력이 있는 건물이나 탑, 불상 등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덕사의 가람배치는 영주 부석사의 가람배치와 비슷하지만, 실제로 많은 불전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덕사가 오늘날 이 지역에 중심이 된 것은 조선시대 말 경허라는 승려가 크게 선풍을 일으키고 그의 제제인 만공의 현재의 사찰규모로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수덕사가 조선시대말에 크..

전국 사찰 2011.02.16

부여 무량사 요사채와 김시습 초상 (보물 1479호)

부여 무량사는 부여군 서쪽편에 위치한 만수산에 있는 오래된 사찰로서 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당대의 천재로 유명했던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냈던 곳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상으로는 이 곳이 홍산현이었기때문에 홍산 무량사로 많이 알려져 있던 곳이다. 무량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이지만 대부분의 전각들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렸다고 하며, 현재의 전각들은 그 이후에 중건된 것들이라고 한다.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이라서 후대의 유생들에 의해서 우대를 받아서 그런지 무량사 중불전인 극락전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많은 사찰들의 전각들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그 모습도 삼국시대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량사는 주불전이 크기는 하지만, 승려들이 수양을 하는 수도 도량으로서의 ..

순천 송광사, 강당인 사자루와 요사채인 임경당

스님이 보물이라는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는 고려말 보조국사가 선종의 중심으로 잡은 이후 사찰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수행 중심의 사찰답게 가람의 배치에는 특별한 격식을 두고 있지 않아 보인다. 단지, 자연에 순응해서 적절한 땅에 건물을 세우고 불전과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송광사는 우리나라 3대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중심불전을 제외하고는 큰 불전을 두고 있지 않는 반면에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요사채는 다수의 건물을 두고 있다. 옛날 사진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요사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전각수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송광사의 가람배치에서 자연 환경에 적절히 순응하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강당인 사자루를 들 수 있다. 보통 사찰에서 강당은 대웅전 들어가는 길에 큰 문루 형태로 ..

순천 조계산 송광사, 사찰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산책길

송광사는 전남 순천 조계산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보조국사가 이 곳을 수행결사를 이 곳으로 정한 이래로 대표적인 선종 사찰로 발전하였으며 스님이 보물이라는 승보사찰로 불린다.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함꼐 우리나라 3대 사찰로 꼽히는 절이다. 송광사는 조계산 자락 서쪽편에 위치한 사찰로 주변이 댐건설로 인해 수몰되어 마을과 평야가 많지는 않아 보이지만 옛부터 조계사라는 대형사찰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의 농지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으로 보는 옛날 조계사의 규모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들어지만, 지금도 사찰입구가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다. 사찰입구 매표소에서 사찰까지는 계곡을 따라서 있는 산책길로 10여분을 걸어올라가면 사찰을 만날 수 있다. 전국 명산에 위치한 많은 사찰들은 사찰입구까지 다들 ..

전국 사찰 2010.12.03

남원 선원사, 도선국사가 남원의 번영을 바라며 지은 사찰

남원 도심에 동쪽편에 위치한 선원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지역민들은 이 사찰을 남원의 번영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는 사찰이다. 지금은 도심에 위치한 조그만 사찰이지만, 남원 서쪽편의 만복사와 함께 그 규모가 상당히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원래의 사찰을 정유재란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오직 철불만 남았다고 한다. 현재의 사찰은 조선후기 영조때 남원부사가 지역의 신도계와 협의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하였다고 한다. 사찰은 철불을 모신 약사전과 중심불전인 대웅전, 민간신앙과 관련되 칠성각으로 이루어졌으며, 아주 작은 규모로 복원이 되어 있다. 만복사지와 함께 고려시대 사찰형태인 도심 가까운 곳에 위치한 평지사찰이다. 남원도심 동쪽편 입구에 위치한 선원사는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사상에 따라..

전국 사찰 2010.11.24

서울 봉은사, 조선 왕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는 종로의 조계사와 더불어 현 시대를 대표하는 도심 불교 사찰이다. 봉은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조선 9대 국왕인 성종의 능을 이 곳 강남지역에 조성하면서 원찰 역할을 할 작은 사찰인 견성사를 중창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봉은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걸 중 한명인 문정왕후가 선릉 옆에 있던 사찰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고양 서삼릉에 있던 중종의 정릉을 옮기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정왕후는 조선시대 불교를 크게 중흥시켰는데, 봉은사와 양주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고, 승과를 실시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문정왕후가 배출한 많은 인재들 중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이 임진왜란 당시 승병으로 전란을 극복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기..

전국 사찰 2010.11.02

경주 황룡사지, 찬란한 통일 신라 문화를 과시했던 흔적

신라의 수도 경주에는 많은 화려한 당시의 유적지와 유물들이 남아 있지만 많은 것들은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사라진 많은 것들 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 경주에 황룡사가 아직도 남아 있었더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현재 기준으로도 20층 가까운 높이의 황룡사 구층목탑은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서 없어져 버리지기 전까지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황룡사 금당이라던가 목탑의 형태는 지금도 일본 나라의 사찰들에 그 형태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그 사찰의 모습으로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황룡사를 보면서 당시 사람들은 고대 사람들이 피라미드나 바빌로니아의 하늘 정원 등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1. 황룡사 중문, 남문, 회랑 터 백제 ..

절터 2010.10.05

[서울 봉은사] 요사채인 선불당

봉은사 선불당은 대웅전 앞 마당 동쪽편에 위치한 한옥 건물인데, 전통적인 사찰에서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형태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도들이 잠시 머물면서 교법을 닦는 곳이라고 한다. 봉은사는 1939년 화재로 인해 대부분의 전각들이 그 이후에 세워진 건물로, 형태에 있어서 일제강점기의 한옥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요사채인 심검당이 있었다고 한다. 봉은사 출입문을 지나서 조금 걸어올라오면 정면 강당 오른편에 큰 한옥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봉은사 선방인 선불당이다. 전통적인 한옥건물과는 약간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 서울지역 한옥주택같은 건물이다. 건물규모는 앞면 8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로 지었는데, 전통적인 예법과는 거리가 있는 듯 하다. 대웅전 옆으로 스님들의 요사채가 있는데 ..

경주 감은사지, 문무대왕의 호국 정신이 담긴

경주 불국사에서 토함산 고개를 넘어 동해안으로 한참을 달리면 해안가 농지가 있는 벌판 언덕에 두개의 거대한 탑이 우뚝 서 있는 감은자지를 볼 수 있습니다. 감은사지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대왕과 관련된 사찰로 문무대왕의 무덤인 동해안의 조그만 암초인 대왕암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무대왕을 기려서 그 아들이 신문왕이 세운 사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회랑으로 둘러쳐 있는 두개의 탑, 금당 그리고 강당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당시의 평지 사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감은사 본당 출입구인 중문터와 양쪽편의 회랑이 있던 자리입니다. 발굴된 주춧돌을 제 위치에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감은사 회랑의 주춧돌입니다. 감은사 본당인 금당터입니다. 감은사 두개의 탑 뒷쪽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감은사 지하에..

절터 2010.10.01

경주 분황사지, 황룡사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시대 고찰

경주 분황사지는 신라시대 경주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던 황룡사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입니다. 지금은 모전석탑인 분황사지석탑을 중심으로 근래에 세운 보광전이라는 불전 하나만 있는 아주 아담한 사찰이지만 신라시대에는 아주 큰 사찰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분황사지 남쪽에는 당시 절터 발굴작업이 진행중에 있으며 분황사 남쪽으로는 옛날 황룡사지가 있었던 장소가 넓은 벌판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경주 구황동에 자리잡고 있는 분황사의 외관입니다. 분황사지석탑을 중심으로 분황사에 심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분황사는 황룡사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분황사에서 걸어서 황룡사지를 갈 수 있습니다. 분황사 당간지주로 추정되는 경주구황동당간지주입니다. 이 당간지주는 별다른 장식..

절터 2010.10.01

양주 천보산 회암사, 무학대사 수도했던 옛 회암사 절터 뒷편에 있는 사찰

양주 회암사는 고려시대 인도이 승려 지공선사가 처음 지었으며, 나옹선사와 무학대사가 수도했으며, 태조 이성계가 머물기도 했던 회암사 옛 절터 뒷편에 위치한 크지 않은 사찰이다. 현재의 사찰을 중건한 것이 언제인지는 설명이 없어서 잘 알 수 없고, 그 위치는 옛 회암사를 창건하고 크게 부흥시킨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 세분의 사리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회암사는 대웅전, 조사당, 삼성각 그리고 강당이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 크게 융성했던 회암사 옛절터에 비하면 약간은 초라한 느낌을 주고 있다. 사찰 건물 또한 그 역사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원래의 회암사는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함께 이 곳에 머물렀으며, 성종때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가 절을 크게 넓혔으며, 명..

전국 사찰 2010.09.30

경주 토함산 불국사, 통일신라 김대성이 불국의 세계를 구현한 사찰

불국사는 누구나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다녀 온 곳 일 것입니다. 수학여행 때에는 친구들과 떠들면서 관람하느라 대부분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특히 석가탑과 다보탑의 크기를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불국사를 방문했을 때 제일 놀라는 부분이 석가탑과 다보탑이 이렇게 큰 탑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대부분 경주나 불국사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불국사는 아주 아름답고 웅장한 절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불국사를 능가하는 절은 없을 것이고,  불국사 경내에는 볼 것도 많고 역사적 의미도 매우 풍부한 곳이다.경주 불국사와 우리나라 문화를 대표하는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불국사 대웅전으로 오르는 33계단인 청운교.백운교로 언제 보아도 웅장한 멋을 느끼게 해주는 곳..

전국 사찰 2010.09.12

합천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있는 법보사찰

합천 가야산 해인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말대장경판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송광사, 통도사와 더불어 법보사찰로 3대 사찰 중의 하나로 불리는 사찰이다. 해인사는 의상대사가 세운 화엄10찰 중의 하나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전국의 유명한 사찰 중의 하나로 불리었다. 화엄사는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할 때 큰 공을 세워 화엄사상을 크게 떨쳤다고 한다. 당시에 죽은 승려와 주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세운 길상탑이 해인사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조선초 강화 선원사에 있던 고려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겨오면서 법보사찰로서 그 이름이 크게 아려지게 되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을 중심으로 사찰이 유지되었던 까닭에 불전이나 석탑처럼 가시적인 ..

전국 사찰 2010.09.12

구례 화엄사,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화엄사상의 중심 사찰

전남 구례에 자리잡고 있는 지리산 화엄사는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찰이다. 화엄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있으나, 황룡사지에서 발굴된 발문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때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건립되었다고 하며, 오랜 세월동안 불교 화엄사상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구례는 섬진강변에서 가장 넓은 평지가 있는 곳으로 명산과, 강, 들판이 모두 있는 곳이다. 구례 화엄사를 찾아가는 길은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길인 성삼재를 오르는 길목에서 옆으로 조금 빠져 나가면 된다. 사찰의 규모가 크기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여름에는 계곡에 발을 담그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화엄사에서 자동차로 한참을 오르면 높은 고개인 성삼재와 노고단을 볼 수가 있..

전국 사찰 201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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