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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97

서울 아차산(해발 287m),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역사탐방로

아차산(해발 287m)은 용마산과 함께 서울 동부지역과 경기도 구리시를 경계짓는 산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난 곳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큰 산맥인 광주산맥의 한줄기가 수락산(해발638m)을 거쳐서 한강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특히, 한강이남 한성백제 수도였던 위레성 주변 한강유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워커일 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아차산은 서울 동부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근교산이다. 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여러곳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코스는 남쪽 산자락 아래 아차산성 입구이다. 해발 300m가 되지 않는 나즈막한 동산으로 걷기에 수월하면서 능선을 따라서 펼치지는 경치가 일품이다. 아차산은 도심..

한국의 풍경 2014.05.16

평창 봉평,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일대는 소설가 이효석이 태어나고 자란곳으로 그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이기도 한 곳이다. 소설의 주요 무대인 봉평장터 일대는 전형적인 강원도 시골 장터 및 읍소재지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봉평장터는 백두대간의 한줄기인 중앙산맥의 흥정산(해발 1,279m)에서 발원하여 봉평일대를 흐르는 흥정천의 맑은 개울과 부근의 메밀밭, 수수밭 등 강원도 고유의 산골마을 풍경을 느껴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방이 고립되어 있는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양두구미재, 북쪽으로 운두령, 동쪽으로 대관령/진부령 등 해발 약 1,000미터 내외의 높은 고개를 넘어야만 타지역으로 갈 수 있고, 봉평장 앞을 흐르는 흥정천이 속사천과 합류하여 평창강이 되면서 강원도 산골을 구비구비 흘러 한강으로 올 수 있..

한국의 풍경 2014.05.08

태기산 양구두미재(해발980m), 횡성 둔내와 평창 봉평을 연결하는 6번국도 고갯길

태기산 양구두미재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의 경계가 되는 고갯길이다. 해발 980m로 영동고속도로와 함께 한반도 중부지방을 동.서로 관통하는 6번국도에서도 가장 높은 고갯길이다. 양구두미재와 태기산은 동쪽으로는 오대산이 있는 백두대간까지 높고 험한 산들이 있어지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영서지방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실제로 양구두미재는 6번국도가 지나가는 고갯길이지만 실제로는 많이 이용하지 않았던 길이라고 한다. 고갯길에는 경찰전적비 주위로 작은 휴식공간과 송신소가 위치하고 있다. 양구두미재 북쪽으로는 태기산(해발 1,261m)이 있으며, 능선으로 따라서 최근세 세워진 풍력발전소 풍차가 늘어서 있다. 동쪽으로 계곡 건너편에 피닉스파크 스키장 정상 휴가소가..

한국의 풍경 2014.05.04

서울 아차산(해발 287m), 등산로 입구에서 고구려정까지

아차산은 구리시와 서울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해발 287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용마산.망우산과 연결된 북쪽을 제외하고는 막힘이 없이 뚫려 있어 경치가 좋은 산이다. 이 곳은 삼국시대 한성백제의 수도였던 풍납토성.몽촌토성 일대와 한강유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중량천 일대에 말을 키우는 목장을 조성했기때문에 아차산 일대에는 사냥터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해방이후 주변에 아차산공원.용마공원 등 도시공원과 아차산성 아래 워커힐 호텔이 조성되었다. 아차산은 서울 동부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도시공원으로 아차산.용마산.망우산이 연계되어 쉬우면서도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등산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차산 등산은 여러 곳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아차산성 아래에..

한국의 풍경 2014.05.01

서울 효창공원(사적330호), 백범 김구선생과 독립운동가 묘역이 있는 도심공원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선생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해방이후 귀국하면서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묘역을 이곳에 마련하고, 이후 임정요인 중 이동녕.차이석.조성환 선생의 묘역도 조성되었다. 이후 백범 김구선생이 돌아가신 후 그가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이곳에 그의 묘역이 마련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가 묘역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 이후 독립운동가의 묘역은 더 이상 조성되지 않았고, 현재는 안중근 의사를 위한 가묘가 삼의사 묘역에 마련되어 있다. 효창공원은 도심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찾는 곳으로 독립운동가 묘역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묘역의 격이 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시민들과 가까운..

한국의 풍경 2014.04.28

광주 개원사, 남한산성 승병을 총지휘하는 본영사찰

남한산성 남장대가 있는 능선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 사찰인 개원사이다. 지금 볼 수 있는 개원사는 규모가 크지 않고 문화재도 거의 없어 전통이 없어 보이는 사찰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 승군들의 본영으로 전국의 사찰들을 규찰하는 조선불교의 총본산이었던 사찰이다. 병자호란에 대비하여 조정에서는 전국에서 승려들을 동원하여 남한산성 축성 임무를 맏겼다. 이때 승려들의 숙소와 수행을 의한 공간으로 10개의 사찰을 신축하였는데, 개원사는 산성내 승군들을 총지휘하는 본영사찰이었다. 개원사는 병자호란때 창건된 이래로 남한산성 방어와 유지보수에 승려들이 큰 역할을 했던 까닭에 개원사는 구한말 갑오경장으로 승병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크게 번창하였다. 그러나 을사늑약과 군대해산 때 일제가 사찰에서 보관하던 무기를 수..

전국 사찰 2014.04.24

서울 홍난파가옥, 서울성곽 언덕에 남아 있는 근대 서양식 주택

홍난파가옥은 을 작곡한 홍난파가 1935년부터 1941년까지 6년간 살았던 집이다. 원래는 1930년 독일인 선교사가 지은 주택이라고 한다. 서울성곽 바깥쪽 언덕에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지은 지하1층, 지상1층의 단독주택으로 외관상 2층주택처럼 보인다.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편이며, 마당도 비교적 좁지만 언덕에 위치하고 전망이 매우 뛰어나다. 홍난파는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여러 작품들을 작곡했다고 한다. 서울 교남동 골목길로 알려진 경희동 서쪽편 인왕산 자락은 도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산이 가깝고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독일영사관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독일인 거주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교남동 일대가 재개발로 주택들이 대부분 허물어지고 언덕에 홍난파 가옥을 비롯하여 일부만 남아..

서울 양천고성지(사적 372), 삼국시대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하구를 지키던 산성

양천고성지(사적 372호)는 조선시대 양천현 관아가 있던 강서구 가양동에 궁산(해발 74m) 정상에 남아 있넌 산성터이다. 행주산성과 함께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한 중요한 요새로서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천고성이 있는 궁산은 안양천과 한강이 합류되는 지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요한 요새였다. 성은 궁산 정상에 길이 200m 정도의 성벽을 쌓은 테뫼식산산성으로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양천고성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문헌에 남아 있으며,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이 성에 머물렀다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서 크게 이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궁산이 있는 양천현은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현령을 지냈던 곳으로 정선은 궁산에 올라 한강 경치를 감상하면서 여러 작품을 남..

서울 용마산 보루(사적455호), 고구려군이 아차산 일대에 쌓은 보루

아차산보루군은 삼국시대 한강유역 패권을 다투던 5~6세기에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던 풍납토성, 몽촌토성 지역을 압박하기 위해 고구려군이 쌓았던 소규모 군사요새로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적지이기도 한다. 현재까지 아차산보루, 용마산보루, 시루봉보루, 수락산보루, 망우산 보루 등 17여개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10여개가 고구려군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용마산보루는 아차선 능선 북쪽의 4보루 북쪽 능선에서 시작하여 용마산 일대 능선에 쌓은 보루를 말하며 용마산 정상을 비롯하여 7곳의 보루가 확인되었다. 보루는 주로 중랑천 일대 넓은 평야지대를 감시.장악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이며 정상부 부근 능선에 3곳, 평지와 가까운 낮은 곳에 4곳의 보루가 확인되었다. 용마산보루에서는 고구려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연..

서울 아차산보루(사적455호), 고구려군이 쌓은 보루를 복원한 아차산4보루

한성백제 왕성이었던 풍납토성 북쪽 아차산 능선을 따라서 고구려군이 세웠던 보루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4보루이다. 등산로를 따라 발굴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다른 보루와는 달리 4보루는 시범적으로 고구려군이 쌓았던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하고 있다. 아차산4보루는 둘레 249m로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석축을 쌓은 방어시설이다. 조선후기 강화도 일대에 쌓은 돈대와 비슷한 성격이지만, 여장이나 총구 등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성벽 위에 목책을 설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벽 안쪽 건물터에는 온돌, 배수로, 저수조 등이 있었으며, 투구.창.도끼같은 무기와 낫.쇠스랑같은 농기도, 말갖춤이 발굴되었다. 아마도 군사들이 주변에 둔전을 경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차산보루(사적455호)는 삼국시대 고구..

서울 아차산 보루(사적455호), 고구려가 한성백제를 장악하기 위해 쌓은 요새 (1,3,5보루)

서울 아차산 보루(사적455호)는 서울과 구리시의 경계가 되는 아차산 일대에 있는 17여개의 보루를 말하며, 그중 일부를 제외하고은 고구려가 쌓았다고 한다. 아차산 보루군은 5세가 한강유역을 진출한 고구려가 한성백제의 왕성 위례성을 장악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아차산과 용마산, 수락산 능선을 중심을 중랑천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보루(堡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에 군사들이 주둔할 수 있도록 쌓은 요새로 조선후기에 강화도 일대와 남한산성 등에서 볼 수 있는 돈대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가 보루를 쌓은 지점은 홍련봉이나 구의동 보루처럼 평지와 가까운 낮은 언덕에 쌓은 것도 있으며, 아차산이나 용마산 보루처럼 능선에 쌓은 것도 있다. 대부분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던 위례성을 ..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구한말 조선왕실의 지원으로 설립된 여성교육기관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자대학교이다. 이화여대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자대학으로 이화여대가 외국선교사가 설립한 반면, 숙명여대는 조선왕실의 후원을 받아 설립된 민족교육기관이었다. 캠퍼스는 1934년 설립당시부터 있었던 제1캠퍼스, 1980년대에 준공된 이과대학캠퍼스, 2000년대에 준공된 제2창학캠퍼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9개의 단과대학, 3개 독립학부, 일반대학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재학생인 1만65명이라고 한다. 역사가 오래되기는 했지만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학교의 부지는 넓지 않은편이며, 캠퍼스 건물 또한 대부분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는 유서깊은 건물은 없다. 숙명여대는 1905년 고종의 계비이자 영친왕의 어머니인 순헌왕귀비의 지원으로 설립된 민족여성교육기관이었던 명신여학..

한국의 풍경 2014.04.11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와 임정요인(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묘역

일제가 도심공원으로 조성한 효창공원에는 해방 이후 귀국한 백범 김구선생이 항일투쟁을 하다 목숨을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해방되던 시기에 돌아가신 임시정부 주요 인사였던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의 묘역을 마련하면서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백범 자신도 1949년 흉탄에 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묻혔다. 이곳은 원래 정조의 맏아들로 어린나이에 죽은 문효세자의 능역인 효창원이었던 것으로 구한말까지 상거래이 중심지였던 마포나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넓은 능역이 남아 있었던 곳이다. 효창공원을 들어서면 정면에 이곳에 처음 묘역을 조성한 삼의사 묘역이 있고, 동쪽편 언덕에는 임정요인의 묘역이, 서쪽편 언덕에는 마지막으로 조성한 백범 묘역과 백범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백범 묘역 아..

서울 효창공원, 백범 김구선생 묘역

효창공원에 위치한 백범 김구선생 묘역이다. 김구선생은 일제강점기에 공원이 되었던 효창공원에 해방을 맞이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소를 이장하였고, 본인도 1949년 흉탄에 쓰러진 후 삼의사와 함께 이곳에 묻혔다. 이런 연유로 효창공원은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자리매김하였으나,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효창경기장이 들어서고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에 묻히지 못하게 됨으로써 도심공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면에서 약간 아쉬운점이 있기는 하지만, 국립현충원과 달리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심공원에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백범 선생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002년에 백범 김구선생의 생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된 백범기념관이 묘역부근에 세워졌다. 효창공원..

서울 효창운동장, 60년대 축구전용경기장으로 지어졌던 아마추어 축구의 요람

효창운동장은 독립운동가 묘역이 있던 효창공원에 축구전용경기장으로 세워진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절인 1956년 독립운동가 묘역이었던 이곳에 운동장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으나 여론의 반대로 실천되지 못하다가 1959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하면서 축구경기장으로 지었다고 한다. 건물로 지어진 일반경기장과는 달리 언덕을 깎아서 경기장을 조성했다. 원래는 천연잔듸구장이었으나, 관리비용문제 등으로 지금은 인조잔듸가 깔려 있다. 최초의 축구전용경기장이지만 지금은 낙후된 경기시설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곳으로 학생들을 비롯하여 아마추어 축구경기가 주로 열리는 곳이다. 효창공원은 정조의 맏아들로 어린나이에 요절한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이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도 도심 가까운 곳에 넓은 능역을 확..

한국의 풍경 2014.04.08

서울 와룡묘, 남산 아래 자리잡은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

남산공원 북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와룡묘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선조대에 와룡묘를 짓게 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남산 와룡묘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와룡묘는 구한말 고종의 후궁으로 숙명여학교, 진명여학교 등을 설립하는 등 큰 엄귀비가 처음 세워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사당은 192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34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관우를 모신 사당인 동묘가 중국 전통 사당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와룡묘에는 단군사당, 삼성각 등 민속신앙 요소가 강한 사당들을 같이 모시고 있어 민속신앙과 결부되어 한국적인 사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와룡당이라 부르는 무당들이 치성을 드리는 장소와 비슷한 성격을..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와 남산 드라마센터

서울 남산1호터널 입구 주변에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드라마센터, 교통방송, 적십자사 등의 공공기관과 학교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구한말 조선을 강점하기 위해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통감부를 세웠던 장소로 경복궁으로 이전하기까지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곳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으로 서울 도심 명동과 충무로가 가까운 이 지역에 주거지가 들어서지 않고 많은 공공기관들이 자리잡고 있다. 드라마센터는 60년대 미국의 지원으로 연기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공연장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장이라기보다는 방송국 부속시설 역할을 했던 곳으로 보이며, 연기자들 양성하기 위한 연극아카데미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KBS가 여의도로 이전한 70년대 이후에는 서울예술전문대학으로 바뀌었으며, 지금은 대학은 안산으로 이전하고 공..

한국의 풍경 2014.04.03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관저로 사용한 옛 경남도지사 공관

부산 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왔던 이승만 전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이 건물은 1926년 경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오면서 도지사 공관으로 지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면서 업무를 보았던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대통령이 떠난 후에는 다시 경남도지사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한 1983년 이후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내부에는 이승만 전대통령이 사용했던 기물들과 서류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서양식 주택으로 지어졌지만 내부 구조는 일본식 주택의 특징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2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외부인이 출입하는 현관과 내실로 출입하는 현관을 뒷편에 따로 두고 있으며, 건물 앞쪽 정원은 가족들..

부산 옛 경남도청,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사용되었던 건물

부산시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에 남아 있는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때인 1925년 경남도청 청사로 처음 지은 건물로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정부청사로 사용하였다.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하다가 부산지방법원, 부산지방검찰청 등으로 사용해 왔다. 2007년에 동아대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원래의 건물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주변에 학교 건물들이 들어섰다. 건물은 원래 '-'자형 건물이었는데 1960년대 도청 건물을 증축하면서 'ㅁ', '日'자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대부분의 공공건물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현관에 포치(Porch)가 돌출되어 있어 자동차를 세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양쪽 측면에도 돌출된 출입문을 두고 있다. 이 건..

부산 보수동 책방거리, 좁은 골목길 사이로 진열된 낡은 책들이 만들고 있는 색다른 풍경

보수동 책방거리는 국제시장, 부평시장 등과 함께 부산 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명소이다. 이곳은 개항 이후 근대도시로 모습을 갖춘 부산에서도 중심가에 해당하는 곳으로 행정중심지였던 옛 경남도청에서 부산항까지 이어지는 대로인 대청로에 자리잡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 도심지로 일본인 거주지역이었던 곳이 해방이후 국제시장에 있던 많은 노점상들 중 하나였던 헌책방들이 한국전쟁으로 피난왔던 많은 학교들이 보수산, 영주산 일대에 자리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학생들을 상대로 헌책을 팔고 사면서 책방거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고 급격한 인구의 도시집중이 심화되었던 60~7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지금도 헌책방들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도서거래의 대부분이 인터넷으로 거래되면서, 대부분의 서..

한국의 풍경 201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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