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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97

[아스완 필레신전 (Philea Temple)] 이시스신전 큰 안뜰과 제2탑문

필레 이시스 신전의 본당이라고 할 수 있는 신전 건물의 입구 역할을 하는 것이 제2탑문이다. 필레신전은 이전에 지어졌던 룩소르 신전이나 카르나크 신전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은데 비해 비교적 세밀함을 보여주고 있다. 제2탑문을 들어서면 원기둥들과 거룩한 성소가 자리잡고 있다. 제2탑문. 여기에는 이시스여신과 그의 아들인 호루스(유아)신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편에는 이시스여신과 오시리스신이 등장하고 있다. 이 부조벽화의 그림을 쪼아서 훼손시켜 놓고 있는데, 비잔틴 시절 기독교인들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제2탑문의 전체적인 모습. 왼편으로 하토르의 기둥들이 떠 받들고 있는 마미시가 보인다. 하토르의 기둥들이 떠받들고 있는 호루스신이 태어났다고 알려진 마미시이다.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 마미시..

이집트(Egypt) 2010.01.20

[아스완 필레신전 (Philea Temple)] 마미시 ('아들신'의 탄생 신전)

필레의 이시스신전 제1탑문 좌측의 작은 통로를 통해서 들어가면 이시스가 호루스를 낳은 곳이라고 알려진 마미시에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는 여러 종교적인 부조벽화들이 있고 입구 천정에는 우리에 앰블럼 등으로 많이 알려진 독수리 들이 그려진 것이 인상적이다. 입구 천장에 그려진 독수리상. 이 그림은 로마시대의 독수리부터 시작하여 중세 기사들의 문장, 미국 여러기관의 문장, 독일 나찌가 애용했던 문장, 그리고 수많은 기업 앰블럼에 사용되는 그림이다. 내부에 새겨진 부조벽화. 크놈신이 아기의 '카'를 만드는 장면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오시리스 신이 이시스 여신에게 뭔가를 주고 있늠 모습을 그린 부조벽화 내부 천정에 있는 독수리를 그린 부조. 옆에는 하토르의 기둥이 보이는데 헬레니즘 양식인 코린트식 기..

이집트(Egypt) 2010.01.20

[아스완 필레신전 (Philea Temple)] 제1탑문

필레신전에서 실질적인 이시스신전의 입구 역할을 하는 제1탑문이다. 카라나크 신전 이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이집트 신전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 필레신전이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카르나크나 룩소르 신전에서 만들어진 신전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입구와 벽면에 많은 신화 내용을 보여주는 부조 벽화가 많아졌다는 것이 약간 발전된 모습이다. 필레신전 선착장에서 주랑들이 있는 광장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필레신전의 제1탑문. 제1탑문부터 사실상 이시스신전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제1탑문 위쪽의 부조 벽화. 오시리스신과 머리에 뿔 장식을 한 이시스 여신이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후대에 세워진 신전이라서 그런지 뿔장식이 원래의 이시스 여신의 뿔 장식이 아니라 하토로 여..

이집트(Egypt) 2010.01.20

[아스완 필레신전(Philea Temple)] 신전 앞 주랑(회랑)의 벽화들

필레신전 앞 주랑 안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들이다. 필레신전에 그려진 벽화 그림들은 신왕국 시절 신전인 카르나크 신전에 비해 현대의 그림들과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 파를레마이오스왕조 시대에 만든 벽화로 그리스 그림의 특징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레신전 제1탑문 앞 회랑 기둥 안쪽 벽면에는 부조형태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시스여신과 오시리스신, 호루스신과 파라오의 관계를 그림과 글로써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부조벽화 그림들이 이전의 카르나크나 룩소르 신전보다도 좀더 세련되어 졌지만, 카르나크 신전이 건설되던 람세스2세와 플롤레마이오스 왕조 간에는 세대가 천년 가까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된 모습이 많지 않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오시리스신, 이시스여신, 호루스신이 등장하..

이집트(Egypt) 2010.01.20

[아스완 필레신전 (Philea Temple)] 신전 앞 회랑의 기둥과 천정의 부조들

필레신전의 제1탑문 앞 주랑의 기둥들과 천정에 그려져 있는 부조들이다. 그림은 그리스 왕조인 프롤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그린 그림들이라 그리스 풍으로 그려져 있다. 신왕국시절의 신전인 룩소르나 카르나크 신전의 경우 파피루스 모양을 본떠서 기둥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 신전은 헬레니즘 신전 양식인 코린트양식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이집트 룩소르의 신전 양식을 사용한 것 같은데 헬레니즘적인 요소가 많은 신전이다. 이 곳 회랑은 신왕국시절에 세워진 신전에는 없는 구조로 보이며, 현재 불국사의 경내 회랑, 경복궁, 자금성 등 동양 궁궐의 법전 주위에 이런 회랑이 형성되어 있다. 필레신전 탑문 앞에 있는 원기둥이 있는 주랑(회랑)은 기둥과 벽, 천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회랑의 각 벽면과..

이집트(Egypt) 2010.01.20

[아스완 필레신전 (Philea Temple)] 신전 앞 원기둥이 들어선 주랑

필레신전의 정문 격인 제1탑문을 들어서기 전에 만날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바티칸 성당, 불국사, 경복궁 등 많은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기본적인 구조인 전형적인 회랑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필레신전이 헬레니즘 문화의 전성기를 이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에 세워진 신전답게 고대 이집트 신왕국의 신전과는 달리 정형화되어 있다는 느낌과 그리스 건축물을 연상시킨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 곳의 기둥에는 많은 그림과 기록들이 적혀 있다. 정면에는 필레신전의 제1탑문이 자리하고 있고, 양쪽으로 기둥들이 있는 회랑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가운데는 행사를 위해선 광장 형태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신전은 후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때 세워진 신전이라 그런지 입굿의 숫양 스핑크스 등 많은 부분이 기존의 카르나크 신전..

이집트(Egypt) 2010.01.20

[아스완 필레신전 (Philea Temple)] 넥타네보1세의 닫집

배를 타고 도착하게 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건물이자 유적은 넥타네보1세의 닫집이라고 한다. (사실은 신전에 찾아 갔을 때는 알지 못했지만 책에 그렇게 적혀있어서 알게된 내용임.) 아마 예전에 선착장 입구에 있으면서, 방문객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입구쪽에 있는 작은 독립된 건물의 흔적이 넥타네보1세의 닫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니까 여행을 가면 안내판을 열심히 읽어야 제대로 된 내용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닫집: 기둥에 의해 지지되며 특히 독립구조로 주변의 벽과 분리되어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 용어는 스페인어 baldaquin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성스럽게 수를 놓은 비단재료'를 뜻하는데, 바그다드에서 수입되어 제단이나 문간 위에 캐노피처럼 매달려 있었다. 훗날 닫집이 ..

이집트(Egypt) 2010.01.20

[아스완 필레신전 (Philae Temple)] 신전으로 들어가는 뱃길

아스완에 자리잡고 있는 필레신전은 아스완 로우댐으로 조성된 호수 내의 작은 섬에 자리잡고 있는 이시스(Isis)신을 모신고 있는 신전이다. 필레 신전은 원래 이름이 이시스(Isis)신전이었으나, 필레 신전에 자리잡고 있다해서 필레신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필레신전이 자리잡고 있는 섬은 필레섬이 아니라 아스완 로우댐의 건설로 필레섬이 수몰되자 근처의 좀 더 높은 아길리카 섬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예부터 필레신전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며 지금도 그것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집트 아스완하이댐 아래에 있는 필레신전은 이시스여신을 위한 신전으로 원래 위치인 필레섬에서 이 곳 아길리카 섬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아부심벨과 함께 유전 복원기술의 집결체라 할 수 있다. 필레신전이 있는 섬에..

이집트(Egypt) 2010.01.20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의 국제 교류

통일신라는 일본, 당나라를 비롯하여 서역국가와 뱃길을 통한 무역이 왕성하였고, 많은 승려와 학자들이 중국 유학을 다녀옴에 따라 많은 문물의 교류가 있었다. 특히 장보고가 청해진을 운영하는 시기에는 한.중.일 뱃길을 중심으로 세계와 많은 교류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익산 미륵사지, 황해도 평산 등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국제교류를 보여주는 많은 유물이 발굴되고 있으며, 특히 차문화가 널리 퍼진 시기이기도 한다. 당시 차문화를 보여 주는 유물로 차를 가는 다연. 차주전자와 찻잔, 경북 성주 풍로와 녹유 바리 당나라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 뼈단지와 백자 그릇 마찬가지로 당나라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 목걸이, 울릉도 가위, 발걸이, 청동거울, 남자상. 당을 비롯한 외국과의 문물교류 흔적..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 신라의 문자와 지방

신라는 통일직후 전국의 지방조직을 주군현체제로 완성하였고, 지방 말단 행정조직으로 촌을 설치하였다. 신라의 지방에 대한 지배는 촌주의 협력아래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후에 지방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지방에서 출토되는 기와 등에는 많은 문작가 적혀 있으며, 상당히 수준 높은 문화를 누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천 신라비. 경남 사천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로 대규모 불교행사와 관련된 비석이라고 한다. 이 비는 대규모 국가적 불교행사와 관련하여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앞뒤 양면에 글을 새겼는데, '天천'자는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에 만든 문자를 사용하였다. 산술이라는 글귀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이 시기 신라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 중국과의 교류를 알 수 있다. 사라와초 암기와..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 왕경에서의 생활, 관료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왕경을 지방과 구분하였으며,도시 구조도 정비하고, 정비된 왕경을 둘러싼 산성을 축조하였다. 신라는 또한 삼국시대 당나라를 다녀온 김춘추과 당나라의 복식과 제도를 신라에 도입한 이래 다양한 율령과 제도를 정비하여 관료제를 국축하였으며, 토용에서의 복식과, 기와와 각종 생활용구에 적힌 글씨로 관료제 사회에 대한 흔적을 많이 남겨 놓고 있다.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은 경주 안압지 연못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의례적인 면이 많지만, 안압지 출토 유물은 실제 사용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라 토용. 여인상과 문관상. 토용을 ㄴ흙으로 사람이나 동물을 본떠 만든 것으로 당시의 복식을 잘 묘사하고 있다. 관료제와 토용 삼국 통일 이후에 새로운 국가 운영을 위..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의 불교문화

통일신라는 화엄종과 법상종 등의 종파를 중심으로 초기에 발전했다가 후기에 들어서는 선종계통 중심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불교는 호국불교의 개념이 많았다고 볼 수 있드며, 불교조각은 당나라 불교 조각과 삼국시대 조각특징이 결합하여 얼굴이 셈세하고 세밀해졌다. 초기에는 아미타불, 석가여래 조각상이 많았으나 후대에는 약사불, 비로자나불이 유행했다고 한다. 팔부중상 부조, 경주 당엄사터 출토 팔부중은 석가모니 설법장소에 모여 감화를 받은 여러 무리 가운데 하늘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闥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를 가리키는 용어로 팔부신장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본래 인간이 아니라 인도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적 존재 또는 강력한 힘을 지진 존재였는데 불교가..

중앙박물관 2010.01.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 무덤의 십이지상

십이지는 현재 우리의 생활에 사용되고있는 방위와 시간을 나타내고 있는 12동물을 말한다. 처음에는 무덤에 안에 인형처럼 생긴 십이지용을 넣다가 후대에는 무덤을 둘러싸는 형태로 바뀌어서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를 갖게되었다. 가장 유명한 십이지상은 경주 김유신 장군 무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12지상 일 것이다. 김유신 장군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십이지신상. 곱돌을 갈아서 만들었다. 현재 김유신 장군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십이지신상. 화강석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다. 어느 것이 원래 있던 것인지??? 초기에 무덤안에 넣었던 것로 보이는 십이지용(뱀,말) 경주 성덕왕릉에 있던 십이지신 석상. 신라 이후 왕릉의 표본이 되었던 경주 괘릉. 무덤 주변에 십이지신상으로 장식하고 있다. 십이지는 방위와 시간을 맡은..

중앙박물관 2010.01.16

서울 이태원 이슬람성원 (서울중앙성원,모스크)

서울에서도 대표적이자, 전통적인 외국인 거리인 이태원 중심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슬람사원이다. 공식명칭은 서울 중앙 서원이라고 한다. 70년대에 정부에서 부지를 제공하고, 이슬람 국가들에서 자금을 지원하여 지은 곳이라고 한다. 이태원 언덕에 지은 이 건물은 위치에서부터 전형적인 이슬람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고 있으며, 이슬람 국가의 사원(모스크)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고 웅장한 느낌을 많이 주고 있지는 않지만, 국내에 거주하는 많은 이슬람국가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가는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집트에서 이슬람 사원의 가장 큰 특징인 끊임없이 아주 큰 소리로 코란읽는 소리를 방송해 주는 것으로,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러웠는데 서울의 경는 그런 소리가 없어서 아주 조용한 분위기이..

여주 파사산성 - 이포나루가 있던 이포대교 주변 남한강 풍경

여주 파사산성이 있는 남한강 지역은 강원지역과 경기도를 연결해 주던 이포나루가 있던 곳이다. 이포나루는 서울 마포, 광나루, 여주 신륵사 부근 조포나루와 함께 한강의 4대 나루터였던 곳으로 1991년 이포대교가 생기기 전까지 나룻배가 운행되던 곳이다. 이 곳에서 배가 출발하면 서울까지 하룻만에 도착할 수 있기때문에 물산의 집산지로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런 내륙수운의 중요한 거점을 관리하기 위해서 조선시대까지 이 곳에 파사산성을 유지할려고 애를 쓴 것 같다. 지금은 철도와 도로의 발달로 한적한 시골같은 분위기이지만 예전에는 상당히 번창하지 않았을까 생각드는 곳이다. 파사산성에서 내려다 본 이포대교와 그 주변 풍경.이포나루터가 있던 곳에 지금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파사산성 정상오르는 ..

한국의 풍경 2010.01.15

나주 영산강 영산포 풍경, 흑산도 홍어 집산지였던 포구

나주 영산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영산포는 한강의 마포, 금강의 강경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대의 내륙포구 중의 하나로서 흑산도 홍어를 비롯하여 서해안에서 잡힌 수산물을 내륙으로 연결해 주었던 포구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전남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쌀을 수탈해 가던 곳이었다. 한국인이 살던 나주읍과는 달리 이 곳 영산포에는 일제강점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그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영산강 하구둑이 생긴이후로는 배가 드나덜던 포구의 영화는 사라지고 쓸쓸한 시골 소읍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곳이다. 호남선에서 규모가 큰 철도역 중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없어진 영산포역과 포구를 연결해 주는 다리. 영산산강 북쪽 영산포역이 있는 곳. 영산대교에서 영산포구가 있던 곳으로 가는 표시가 있다. 지금 영산포는 ..

한국의 풍경 2010.01.15

공주지역 공산성 부근 금강변

금강 중류 지역에 위치한 공주는 선사시대 주거지인 석장리유적지가 발굴되었듯이 구석기 시대이래 인류가 살아왔던 곳으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번째 수도였던 곳이다. 공산성은 백제 두번째 수도인 웅진성이 존재했던 장소로 추정되며, 금강 북쪽으로 차령산맥아래 넓은 벌판이 있고 금강상류쪽으로는 신행정수도인 연기지역이, 금강 하류쪽으로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부여)이 자리잡고 있는 교통의 요지로 조선시대에는 강을 이용한 조운의 중심지이자, 호남에서 서울로 향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원래의 공주는 금강 남쪽 공산성 주변을 지칭한다. 전북에서 발원한 금강이 제대로 된 큰 강이 되는 지점이 이 곳 공주부근이기도 하다. 공주에서 가장 오래된 금강교. 철교 형태로 생긴 다리로 오랜 기간동안 이 부근에서 금강을..

한국의 풍경 2010.01.15

단양 온달산성 올라가는 길, 남한강 풍경

온달산성은 단양 영춘면 남한강 남쪽 성산위에 자리잡고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라가 쌓은 산성인지, 고구려가 쌓은 산성인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구려 온달장군과는 연결되어 있는 유적지이다. 온달산성은 남한강 남쪽에 위치한 산 정상부에 쌓은 산성이라 경치가 상당히 휼륭하고 깊은 산중을 흐르는 남한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북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산성이라 신라에게 필요했던 산성이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곳이다. 강건너편 언덕이 고구려에게 필요했던 곳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온달산성에서 내려다 본 남한강. 건너편 언덕이 온달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고구려가 이곳에서 진지를 구축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남한강을 경계로 고구려, 신라군이 대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한..

한국의 풍경 2010.01.15

단양 적성산성, 남한강 풍경

적성산성은 단양적성비가 있는 남한강변 단양휴게소 뒷산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시대 산성으로 북동쪽 일부만 남아 있는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고속도로 서울방향 휴게소에서 걸어서 올라갈 수 있어서 접근이 매우 용이하고 산성내에 국보로 지정된 단양 신라적성비가 있고, 산성에 올라서면 남한강 전경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소백산맥에서 몇 안되는 중요한 통로인 죽령고개가 멀리 보인다. 단양 적성산성 성벽위에서 내려다 본 남한강. 이 부근은 원래 단양읍이 있던 지역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었다고 한다. 단양 적성산성에서 본 남한강 상류방향. 남한강 하류 방향. 멀리 중앙고속도로 터널이 보인다. 적성산성에서 본 소백산과 죽령고개 적성산성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복원된 적성산성. 지금도 복원공사가 진행중이..

한국의 풍경 2010.01.15

단양 도담삼봉, 단양팔경 중 첫번째

단양팔경 중 첫번째로 손 꼽히는 도담상봉이다. 남한강 중간에 3개의 봉우리가 섬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맑은 가을하늘 아래 남한강에 비친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며, 보름달이 비친 모습은 더욱 아름다울 것 같다. 조선 개국 공신인 삼봉 정도전의 호에 담겨 있어서 더욱 유명한 도담삼봉은 장군봉, 처봉, 첩봉의 3개 봉우리가 있으며 가운데 장군봉에는 작은 정자가 자리잡고 있다. 남한강 중간에 자리잡은 도담삼봉. 도담삼봉 중 가운데 위치한 장군봉. 장군봉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도담삼봉 좌.우에 위치한 처봉과 첩봉. 도담상봉이 있는 남한강 상류쪽. 남한강변 언덕에 있는 작은 정자 도담삼봉을 운행하는 작은 유람선 남한강변을 따라서 단양읍내로 들어가는 국도 도담상봉 주변을 운행하는 유람선...

한국의 풍경 201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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