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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조선의 법궁] 동궁 자선당,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

경복궁 사정전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어 동궁으로 불리는 자선당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99년에 복원한 건물로 동궁 전체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자선당과 비현각만 복원되었다. 동궁은 국왕이 아닌 까닭에 전(殿)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 아니라 당(堂)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자선당은 앞면7칸의 건물로 서쪽에 세자와 세자비의 침실인 2칸의 방이 있고, 동쪽에 가구들과 물건을 보관하던 곳으로 보이는 2칸의 방이 있다. 동궁은 규모가 크지 않고 소박한 분위기를 하고 있으며, 자선당 추녀마루에는 잡상을 하고 있다. 경복궁 동궁의 중심 건물인 자선당. 앞면 7칸, 옆면 3칸으로 이루어졌다. 경복궁 자선당 편액 경복궁 자선당 서쪽편 방. 침실겸 거실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복..

궁궐_종묘 2010.09.07

[경복궁, 조선의 법궁] 동궁 비현각, 왕세자가 공부하던 곳

경복궁 사정전 동쪽편에는 왕세자의 거처인 동궁이 있다. 동궁은 크게 생활공간이 자선당과 세자가 업무를 보고 공부를 하던 비현각이 있다. 그 중 비현각은 왕세자가 공부를 하던 곳으로 앞면 6칸의 독립된 건물로 가운데에 3칸의 마루가 동쪽 1칸 방, 서쪽에 2칸 방으로 이루져 있다. 자선당 추녀마루에는 잡상을 두는 반면 비현각에는 추녀마루를 두고 있지 않다. 비현각은 행각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왕세자의 교육업무를 맡은 춘방과 경호를 맡은 계방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동궁에서도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비현각. 최근에 복원한 건물이다. 비현각 편액 앞면 3칸으로 이루어진 마루 앞면 2칸으로 이루어지 비현각 오른쪽 방. 왕세가 주로 거처하던 장소로 보인다. 앞면 1칸으로 이루어진 동쪽편 방. 책등을 보관하던 방으..

궁궐_종묘 2010.09.07

[경복궁, 조선의 법궁] 동궁 행각들, 출입문

경복궁에서 왕세자 부부가 거처하던 장소인 동궁은 자선당과 비선각, 그리고 부속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근정전과 사정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동궁이라 불린다. 동궁은 근정전과 사정전 동쪽 출입문과 연결되어 있으며, 동궁 북쪽에는 할머니인 대비가 거처하는 대비전이 있어, 항상 대비가 동궁전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동궁전 출입문들은 국왕이나 왕비의 처소와는 달리 출입문에 솟을대문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추녀마루의 잡상은 왕세자가 처소인 자선당에만 있다. 동궁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숭덕문. 삼문 형식을 취하지 않고 있으며, 솟을 대문으로 되어 있다. 동궁에서 정면에 있는 출입문은 양성문으로 편전인 사정전, 내전인 강녕전과 중궁전인 교태전과 대비전인 자경전으로 연결되는 출입문이고, 서쪽편은 근..

궁궐_종묘 2010.09.07

경복궁을 흐르는 물길 外

경복궁을 흐르는 물길은 제일 북쪽 집옥재 부근에서 시작해서 경회루를 거쳐 근정문 앞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궁궐의 물길은 법도에 따라 흐르게 되어 있다고 한다. 궁궐을 흐르는 물길을 따라서 국왕이 사는 영역과 외부를 경계짓고 있으며 금천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영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복궁 내 물길이 시작되는 지점인 향원정 아래쪽 물길 경복궁 경회루 옆을 흐르는 물길. 다리도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경복궁 근정문 앞으로 흘러서 지나가며 이 곳에 금천교가 있다. 인위적으로 물길을 근정전 앞으로 돌려 놓고 있다. 경복궁에서 필요한 장들을 보관하는 장독대인 장고 아직 발굴 복원되지 않은 함화당과 집경당입니다. 경복궁 복원 계획입니다. 아직도 복원해야 할 곳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경복궁 내 한국의 전기 발상지 표..

궁궐_종묘 2010.09.06

경복궁 추녀마루 끝의 잡상들 (손오공과 삼장법사 행렬)

경복궁의 각 건물마다 추녀마루 끝에는 손오공과 삼장법사 행렬을 묘사한 잡상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살(煞)을 막아주는 의미로 장식을 하였다고 한다. 잡상은 종묘 제도와 건축 관련 용어로 정전 지붕위에 설치한 각종 동물 모양의 조각상으로 잡귀와 요괴들이 건물에 범접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일반 건축물에는 잡상을 설치할 수 없고 궁궐과 같은 정전과 성문 등에만 잡상을 설치할 수 있었다. 경복궁 근정전 추녀마루 끝의 손오공과 삼장법사 행렬 경복궁 근정문 위의 잡상 경복궁 강녕전의 잡상들 경복궁 흠경각과 함원전 주위의 잡상들 경복궁 아미산 입구의 잡상들

궁궐_종묘 2010.09.06

[경복궁] 동십자각, 경복궁을 지키는 동쪽편 망루

경복궁 남동쪽 도로변에 홀로 서 있는 동십자각은 서십자각과 함께 경복궁의 동.서를 지키는 망루로서 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서십자각은 없어지고 동십자각은 도로에 홀로 남아 마치 원래부터 길거리에 있던 것 처럼 보인다. 북경 자금성과는 달리 경복궁은 성으로서의 방어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은 궁궐 그 자체만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 동십자각은 많지 않은 경복궁 방어 시설 중의 하나이다. 지금은 대로변에서 서 있으며, 서울이 오래된 고도임을 말해주고 있는 여러 문화재 중의 하나이다. 경복궁 동십자각은 앞면, 옆면이 모두 3칸으로 성벽으로 돌로 쌓은 기단부 위에 누각을 올려 놓고 있다. 경복궁 동십자각 상단부 누각 동십자각 기단부. 망루에는 계단이 있어야 하는데 아마도 없어진 것 같다. 측면에서 본 경..

궁궐_종묘 2010.09.06

[서울 광화문광장]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와 비전(碑殿), 조선 마지막 건축물

서울 광화문광장 사거리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교보문고 바로 옆에 있는 비석과 비전(碑殿)이다. 서울과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교보문과와 함께 있는 이 건물을 보지 않은 사람을 거의 없을 것이지만, 워낙 대로변에 있고, 예전에는 광화문 사거리에는 건널목이 없었던 까닭에 멀리서 눈으로 보기만 했지,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여기에 있는 비석은 고종이 즉위 4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정식명칭은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라고 하며, 이 비석을 보호하고 있는 건물을 비전(碑殿)이라고 명칭하며 궁궐 건물과 같은 위상을 갖는다. 이 비전은 조선시대 마지막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궁궐 건물의 격식에 맞게 돌난간 등 여러 가지 상징물들로 장식하고 있다..

궁궐_종묘 2010.09.06

[경복궁, 조선의 법궁] 원형 복원을 위해 수리중인 광화문 주변 풍경

광화문은 경복궁 정문으로 북경 천안문처럼 수도 서울과 경복궁과 더불어 왕권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광화문은 왕이 거처하는 궁궐 건물들 중에서 일반 백성들이 실제로 가까이 볼 수 있었던 건물이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보아왔던 광화문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광화문을 60년대에 복원한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이었다. 최근에 경복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광화문 제모습에 가깝게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래 상량식이 있었고, 2010년 말에 복원사업이 완료된다고 하니 가까운 시일내에 제 모습을 갖춘 광화문을 볼 수 있게 된다니 기대되는 바가 있다. 문화재에 일견식이 있는 유흥준씨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직시 복원계획에 관여한 것으로 보여 원형복원에 대한 기대감을 높혀 준다. 광화문 복원작업 현장. 광화문 모형이 그려져..

궁궐_종묘 2010.09.06

서울 창경궁, 대비가 거처하던 궁궐

창경궁은 조선 세종때 태종이 거처하던 곳에서 유래하여 성종 때 대비들을 모시기 위해 본격적으로 조성된 궁궐이다. 그후 임진왜란때 경복궁, 창덕궁이 불타고 왕이 임시로 거처함에 따라 궁궐로서 본격적으로 기능을 했다고 한다. 주로 대비와 후궁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일제시대때 동물원, 식물원이 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창경궁은 대비가 거처하는 궁궐이라는 격식에 따라 궁궐중 유일하게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왕의 즉위식 등 행사도 많이 치렀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 창경궁 내부는 동물원, 식물원을 철거함에 따라 많은 공간이 공터와 같은 상태로 남아 있어 타 궁궐에 비해 넓어 보이기도 한다. ※ 창경궁 탐방 1. 흥화문과 옥천교 2. 명정문, 명정전 앞 마당, 품계석, 회랑 3.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 4. 숭문당,..

궁궐_종묘 2010.09.06

함춘원지, 서울대학교 병원 안에 있는 조선시대 궁궐 정원

함춘원은 조선시대 궁궐 정원이었던 곳으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인 대한의원을 세움으로써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변한 곳이다. 지금은 함춘원 유적은 사도세자의 사당이 있었던 경모궁 건물터와 출입문인 함춘문만이 남아 있어 이 곳이 함춘원 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넓은 궁궐 정원터였던 이 곳 함춘원지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흔적인 함춘문. 삼문의 형태로된 사당 출입문으로 경모궁 신문이 정식 명칭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본관 건물 뒷쪽편에 위치한 함춘원지. 대학건물들로 둘러져 있다.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경모궁 신문. 삼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측면에서 본 경모궁 신문(함춘문) 사도세자 사당인 경모궁 건물터. 사도세자 위패가 종묘로 옮겨감에 따라 관리가 소흘해져서 건물이..

궁궐_종묘 2010.09.06

동국대박물관, 불교공예

불교공예품은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많은 금속공예품 중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사리엄장구와 불전에 공양을 드릴때 사용하는 공양구, 범종을 비롯한 범음구, 승려들이 소지하던 정병 등이 있다. 동국대박물관에는 국보 176인 청화백자송죽문호와 보물 741호로 지정된 민애대왕 석탑사리호를 비롯하여 대표적인 불교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분류방식은 중앙박물관과 비슷한 것 같다. 그 중 국보인 청화백자송죽문호는 귀한 것이라 그런지 박물관에는 전시하지 않고 있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많은 불교공예품들은 개인이 소장한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사리함은 국립박물관에서 주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애대왕 석탑사리호(통일신라, 863년, 보물741호). 통일신라때 만들어진 사리항아리로 몸통에 새겨진 글자로 보..

지역박물관 2010.09.06

동국대박물관, 불교조각

동국대박물관에는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기와 형태의 불교 조각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된 불교조각들은 대부분 불상들이지만, 부처의 제자들인 나한상과 동자상들도 있다. 불상을 만드는 재료에 따라 석조불상, 금동불상, 목조불상 등이 있는데, 조선시대 이후에는 주로 목조불상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불교조각 중 불상들을 보면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그 조각 기술이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퇴보되거나 정형화되어 간다는 느낌을 주고 있으며, 현재에 와서 새로이 만들어진 불상들조차도 석굴암 불상을 비롯하여 옛날의 불상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석조여래좌상. 대표적인 불상의 모습으로 연화대좌에 앉아 있다. 옛절터에는 대좌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석조여래입상 석탑부조신장상 금동여래입상(통일신라) 납석..

지역박물관 2010.09.06

종묘(宗廟), 조선 유교(儒敎) 이념이 고스란히 구현된 곳

서울 종묘는 서울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숲이자 문화유산인 동시에 종묘 앞 거리는 오래전부터 서울의 좋지 않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종묘는 동양의 유교 정신이 가장 적절하게 구현된 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묘의 모든 것은 유교식 절차에 따라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종묘의 구성 요소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종묘의 정전(正殿)으로 역대 국왕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종묘에서 특이한 곳은 아마도 입구에 있는 공민왕 신당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그만 규모이지만 고려의 국왕을 종묘에 모시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뜻이 아닌가 생각됩니다.종묘의 정전(正殿)은 역대 국왕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현..

궁궐_종묘 2010.09.03

서울 소공동 환구단(원구단),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

조선말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부활된 환구단은 원래 제천행사를 하는 곳으로 조선초 유교가 국가의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없어졌던 것이라 한다. 중국 북경의 천단공원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 데,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부실한 면이 많아 보이는 유적이다. 구한말에 만들어진 것이라 역사적으로는 큰 의미를 찾기 힘들고, 그 원형도 일제에 의해서 훼손되어서 지금은 도심속에 숨어 있는 작은 정원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소공동 조선호텔에 부속된 시설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유물로 구한말 조선의 국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환구단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황궁우. 팔각형에 3층 건물로 1899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우리나라 궁궐건물을 응용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황궁우를 오르는 계단과 1층. 황궁우 팔각 지..

궁궐_종묘 2010.09.03

서울 선농단, 농사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왕이 직접 친경을 하던 곳

서울 제기동에는 사직단과 함께 조선시대에 중히 여기던 선농단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은 왕이 고대 중국의 제왕으로 농업의 신으로 통하는 신농씨와 후직씨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친경을 하던 곳이다. 이 곳에서 제를 끝내면 소를 잡아서 가마솥에 끓여서 농부들과 구경나온 노인에게 나누어 주었던 설렁탕의 유래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왕의 친경지는 종암초등학교로 변했고, 선농단도 작은 제단과 향나무들만 남아 있는 큰 볼거리는 없는 유적으로 변했지만, 조선시대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 철학을 잘 보여주는 유적지이다. 이 선농단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설치한 지극히 유교적인 장소로 선농단에 심어진 오래된 수령의 향나무는 중국 북경 문묘의 향나무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향나무가 숲을..

궁궐_종묘 2010.09.03

선잠단지, 누에신(잠신)에 제사를 지내던 곳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선잠단지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행하는 의례중 하나인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잠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단으로, 지금의 모습은 작은 제단과 뽕나무로 이루어져서 크게 눈에 띄는 유적지는 아니다. 하지만 누에치기는 조선시대에 국가 재정과 경제를 위해서 아주 중요한 것으로 그 장소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잠신의 신위를 현재의 사직단으로 옮겼다고 한다. 성북동 주택가 입구에 위치한 선잠단지. 약 200평 정도 규모로 크지는 않고, 원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단을 마련해 놓고 있다. 현재는 누에신의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겼기때문에 터만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복원해 놓은 잠사단 제단 선잠단지 입구의 홍살문. 입구는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선잠단지 답게 뽕나..

궁궐_종묘 2010.09.03

[서울 사직단(社稷壇)]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 제를 올리는 제단

서울 도성의 서쪽에 자라잡고 있는 사직단이다. 토지의 신에 제를 올리는 사단(社壇)은 동쪽, 곡식의 신에 제를 올리는 직단(稷壇)은 서쪽에 설치되어 있다. 사직단은 내부에 담장이 설치되어 있고 사방으로 신문(神門)이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는 삼도로 연결되어 있다. 사직의 국가를 의미하는 말고 동일시 될 정도로 중요하느 의미를 가지며 사직단은 국가의 구성요소 중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사직단은 유교 법도에 따라 장식이 없이 아주 소박하게 설치되어 있는 관계로 문화재와 같은 유형적인 유물을 많이 남기지 않고 있다.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입니다. 사직단은 특별한 장식물이나 화려한 조경 같은 것은 거의 없고 단순하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 사직단을 출입하는 정문. 삼문..

궁궐_종묘 2010.09.03

[서울 사직단 (社稷壇)] 사직단 출입문과 담장

종묘와 함께 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경복궁의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사직단이다. 일제에 의해 한때는 그 이름이 격하되어 사직공원이라고 불리던 장소이다. 사직은 조선의 정신세계에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유적으로 사직단 성격의 특성으로 인해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구성요소는 없지만 의미는 아주 중요한 장소이다. 지금도 사직단 내부로는 출입을 할 수 없고 외부에서 담 너머로 봐야 하는 유적지이다. 사직단은 담장으로 둘러쌓여 있고 사방으로 출입문이 있으며 그 중에 동쪽인 경복궁 방향으로 난 출입문이 삼도로 사직단과 연결되어 있어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직단 정문을 들어서면 담장과 어린이 도서관을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사직단의 동쪽편 담장으로 사직단의 동.서.남.북..

궁궐_종묘 2010.09.03

[서울 사직단] 정문(社稷壇 正門, 보물 177호)과 사직서 터

사직단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의 정신세계를 아우러는 중대한 두개 축 중에 하나이다.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아주 중요한 유적지이지만 종묘와는 달리 이해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은 관계로 일제에 의해서 공원으로 격하된 장소이다. 사직단 정문은 규모의 크기나 형태의 화려함이 없어서 소흘히 지나치기 쉽지만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로 유교의 격식에 맞게 단정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게 만든 정문이다. 광화문에서 서쪽으로 가는 도로변에 있는 사직단의 정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평범한 문으로 보이지만 임진왜란 후 지은 사직단의 정문으로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조선의 정신체계를 이루는 두개 축 중에 하나로 아주 신성시 되던 장소입니다. 지금도 사직단 정문은 특별한 감흥없이 지나치기..

궁궐_종묘 2010.09.03

[서울 종묘(宗廟)] 정전(正殿), 역대 국왕의 신주를 모신 건물

종묘의 정전(正殿)은 역대 국왕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현재 종묘에는19위의 왕의 신위가 모셔져 있으며 신실 한 칸에는 한분의 왕과 그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국가에 큰 업적을 남긴 왕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고 정의되어 있지만 그것은 조선중기에 정리가 되어서 업적이 적은 왕과 왕비의 신전은 양녕전으로 옮겨졌으나 조선후기 국왕들은 정전에 그대로 모셔져 있습니다. 단일 건축물(물론 한옥형태)로는 세계적으로 가장 길다고 하는데 신위가 늘어날 때마다 감실을 증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묘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정전(正殿)은 한옥으로서 단일 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건물이라고 합니다. 정전에는 역대 조선 국왕의 신주를 모시고 있습니다. 정면에서 본 종묘 정전입니다. 삼도가 계단 아래에..

궁궐_종묘 201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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