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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해미읍성] 돈대와 성벽

해미읍성은 순천의 낙안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해미읍성과 낙안읍성은 그 구조와 성을 쌓은 목적이 매우 유사하며, 해안에서 들어오는 왜구의 기습에 대비한 모습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읍성은 대규모로 침입하는 적들에 대항하여 오랜 기간 농성을 할 수 없는 구조이며, 왜구와 같이 노략질을 목적으로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적에 대항하여 2~3일 정도 농성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래서 해미읍성은 성벽의 높이가 높지 않고, 조총이 없던 시절에 활용한 성으로 성벽위와 돈대에 흉벽을 설치하지 않고 있다. 물론 국가적인 반란의 거점이 될 수 없도록 주위에 해자도 설치하지 않고 있다. 해미읍성에는 돈대가 2곳 설치되어 있는데 서해안 바닷가를 향한 남서쪽 방향에만 2개의 돈대가 설치되어 있다. ..

[서산 해미읍성] 복원된 성문인 동문, 서문

해미읍성이 60년대에 정비될때 복원된 성문인 동문과 서문이다. 오래전에 복원되서 그런지 고증을 거치지 않고 현대적인 석재로 복원해서 성문의 옛스러움이 없어 보인다. 서문에는 지성루(枳城樓)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데 아마도 해미읍성 성벽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성곽방어에 이용했다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성루에는 흉벽 등의 방어시설은 없고 단순히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돈대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 서문. 복원된 부분이 주위의 성벽과 잘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인 석자재를 사용했다. '지성루(枳城樓)'라고 적힌 서문 성루 편액, 탱자를 성벽밖에 심었다는 유래와 관련된 명칭으로 보인다. 해미읍성 내부에서 본 서문. 지금은 서문을 통해서 해미읍성 외부를 출입할 수 있다. 해미읍성 성벽에서 본 ..

[서산 해미읍성] 진남문(鎭南門), 읍성의 정문

서산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鎭南門)이다. 60년대 해미읍성이 복원될때 남아있던 유일한 성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은 뒤로는 수덕사, 개심사 등이 있는 가야산 산자락이 있고, 앞으로는 서산지역의 넓은 평야가 펼쳐진 곳으로, 조선시대까지 연안 해상 교통의 중심인 태안반도를 관장하던 군사적 중심지였다. 해미읍성은 평지에 쌓은 전형적인 읍성으로 만주지역으로 부터 들어오는 북방기마부대를 중심으로한 대규모 군사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시설은 아니고, 고려시대에서 조선중기까지 우리나라를 괴롭혔던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은 읍성이다. 그래서인지 성문에는 옹성이 없는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산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 단순히 왜구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서 지은 읍성이기 때문에 옹성이 없고, 성문이 ..

서산 개심사, 홀로 떨어져 있는 명부전

개심사 경내 남쪽 바깥에 자리잡고 있는 명부전이다. 조선 인조때 만들어진 건물로 우리나라 여러 사찰에 있는 많은 명부전이나 지장전 중에서도 오래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명부전은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10왕와 지장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기능을 하고 있어, 관음전과 함께 찾는 사람이 많은 불전 중의 하나이다. 개심사 남쪽편 축대위에 세워진 명부전. 홀로 외로이 떨어져 있어서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명부전 편액. 내부에 지방보살 불상이 보인다. 다양한 방향에서 본 명부전. 절의 기록에 의하면 개심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진덕여왕 5년(651)과 의자왕 14년(654)은 다른 해에 해당한다. 개심사 경내에는 보..

서산 개심사, 주불전인 대웅전

개심사 중심불전인 대웅전이다. 앞면 3칸 규모의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개심사는 터를 넓게 잡지 않아서 사찰 규모가 아담해 보이고 경내에 불전은 대웅전 하나뿐이고 바깥쪽에 명부전을 두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공포가 기둥사이에 있는 다포계 건축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개심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처마 아래를 보면 기둥에만 공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둥사이에도 공포를 두어 지붕을 받치는 다포계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개심사 대웅전 편액 개심사 경내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그 앞에 작은 탑이 있는 아담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또한 대웅전은 낮은 축대위에 있고 정면에서 올라가는 계단을 설치하지 않았다. 절의 기록에 의하면 개심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되어 ..

[서산 개심사(開心寺)] 오층석탑, 당간지주

개심사 대웅전 경내 마당 한가운데 있는 오층석탑이다. 아마도 고려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보이는데, 사찰의 명성에 비해서 이 오층석탑은 모양이 단순하며, 예술적인 미(美)가 부족해 보인다. 석탑의 크기도 작고, 조각수법이나, 석탑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간의 비례 등이 다른 석탑에 비해서 많이 떨어져 보이며, 그래서인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것 같다. 개심사 오층석탑. 낡은 모양새가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첫눈에 보기에도 격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이층으로 쌓은 기단부. 뭔가를 조각해 놓기는 한것 같은데 솜씨도 많이 떨어지고 몸들 측면의 마모되어 거의 인식하기 힘들다. 오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상륜부. 장식이 거의 없어 보인다. 오층석탑 옆에 있는 당간지주 여러 방향에서 본 개심사 오층석탑

[서산 개심사(開心寺)] 심검당과 무량수각,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서산 개심사는 불전은 대웅전과 명부전만 있는데 비해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채는 심검당, 무량수각을 비롯하여 일반 주택같은 건물 여러동이 있다. 아마도 스님들도 있지만, 이 곳에 잠시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심검당은 조선 성종때 지은 건물이라 하며 상당히 오래된 건물이지만 사찰 건물같지 않고 여러동의 건물들이 붙이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무량수각은 원래 불전이었던 건물을 요사채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서산 개심사 요채채인 심건당. 전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은 이 건물이 원래의 건물로 보이고 왼쪽으로 여러동의 건물의 덧붙힌 것으로 보인다. 심검당 앞으로는 툇마루가 있어 사람사는 분위기를 주고 있다. 심검당 옆으로 이어진 건물. 비뚤비뚤한 나무로 기둥을 사용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서산 개심사(開心寺)] 강당 누각인 안양루, 출입문인 해탈문

개심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잠시 걸터 앉아서 쉴 수 있는 강당 누각인 안양루이다. 개심사 건물의 특징인 곧고 바른 나무기둥이 아닌 비뚤비뚤한 나무를 사용해서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는 건물이다. 건물의 내력이 오래된 것 같지는 않지만 낡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개심사는 규모가 크지 않아서 강당 건물 앞 경내도 석탑을 중심으로 약간 협소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강당인 안양루에는 법고와 목어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 서산 개심사 강당인 안양루. 정면5칸.측면3칸의 건물이지만 협소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개심사 경내 바깥쪽에서 본 안양루. 경내에서 보는 모습과는 다른 분위기를 주고 있다. 개심사 안양루 내.외부에 걸린 개심사 편액 측면에서 본 개심사 안양루. 개심사에는 출입문이 천왕문이 없고, 안양루 누..

[서산 개심사(開心寺)] 범종각과 범종, 연못

개심사 일주문에서 숲속길을 걸어 언덕에 오르면 첫번째로 보이는 개심사의 모습은 연못과 범종각이다. 범종각은 건물이 크지는 않지만, 축대위에 뛰어 나온 듯한 건물 배치로 인해 아래에서 보면 상당히 크고, 웅장해 보인다. 일반적인 사찰에서는 범종각이 중앙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강당으로 쓰이는 누각이 정면을 차지하는 것이 보통인데 비해서 개심사는 법고와 목어는 뒷쪽편 강당에 있고 범종각이 사찰 정면의 가장 웅장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서산 개심사 경내에 들어서면 보이는 광경인 범종각. 곧지 않고 약간 비뚤한 나무기둥을 사용해서 그런지 정겨운 느낌을 주고 있다. 서산 개심사 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 중간에 나무다리를 놓아 연못을 지나서 몸을 깨끗히 하고 경내로 들어갈 것을 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산 개심사, 절을 찾아가는 숲속길

서산 개심사는 가야산 자락인 상왕산에서 해가 지는 서해를 바라보고 있는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개심사 들어가는 길은 도로를 걸어서 들어가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일주문에서 도로를 약간 걷다가, 한적한 숲속길을 따라서 걸어 올라가게 되어 있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작은 산길을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숲의 기운을 받아서 몸과 마음이 깨끗해 진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개심사 일주문을 지나서 숲속으로 난 도로를 걷는 것은 다른 사찰과 비슷하다. 숲속 도로가 끝나는 지점. 일주문에서 5분쯤 걸어서 들어간 것 같다. 큰 사찰 중에서 개심사만의 특징적인 숲속길. 숲속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걸어서 올라간다. 숲속으로 난 돌계단 길을 걸으면서 숲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 숲속길을 걸어서 올라오면 개심사 범종..

전국 사찰 2009.11.01

[서산 개심사(開心寺)] 일주문, 입구 풍경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서산IC와 해미IC 사이에 있는 구릉에 넓은 초지가 있다. 김종필씨가 세운 '삼화목장'이 오늘에 이른 '농협가축개량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드문 넓은 초지이다. 이 목장을 지나서 국도를 따라서 한참을 들어가면 서산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사찰인 개심사를 만날수 있다. 개심사는 지금은 상당히 유명한 사찰이지만 규모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요사체, 명부전이 있는 소규모 사찰로 수덕사의 말사라 한다. 상왕산 개심사 정문인 일주문. 개심사에는 천왕문과 금강문 같은 출입문이 없는 소규모의 사찰이다. 하지만 최근에 만들어서 그런지 일주문이 상당히 크고 웅장하다. 목조로 지은 개심사 일주문. '상왕산 개심사(象王山開心寺)'라고 적힌 편액이 걸려있다. 오래된 목조건축물처럼 보이는 것이 아주..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상

오랫만에 시간이 나서 오래전부터 한번 가 보고자 마음을 먹고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보기 위해 서산을 방문했다. 햇볕이 좋은 한적한 가을날에 이 곳을 방문하니 가야산 계곡의 아름다운 단풍이 우리를 맏아 주었다. 예전에 이 곳을 왔다가 사람이 많고 주차할 장소가 마땅하지 않아 포기했던 기억이 있던 곳이다. 전 문화재청장 유흥준 선생이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극찬을 했던 장소인 이 곳은 한적할 때 찾아가니 그 극찬이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장소이다. 책에서는 마애석불이 비각안에 있어 이 곳을 관리하던 아저씨가 조명을 비춰주면서 설명했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보호각이 제거하고니 석굴암 보호각을 봤을 때의 실망감은 전혀 없었고 자연스러운 햇빛에 노출되어서 다양한 모습 마애석불을 모습을..

[서산 보원사지] 석조(石槽), 보원사 규모를 짐작케 하는 통일신라시대 유물

서산 보원마을 보원사지 당간지주와 함께 절터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석조유물이다. 약 4톤을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로 보원사의 규모를 짐작케 해 준다. 화강암을 파서 만든 직사각형 형태로 단순한 구조를 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사용했던 일반적인 석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원사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식수를 저장하기 위한 용기인 석조(石槽). 4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다양한 방향에서 본 석조 석조 내부. 물을 빼는 작은 배수구가 있다. 보원사 금당터와 오층석탑이 있는 곳들 들어가기전 냇가에 위치하고 있는 석조 승서산 보원사터에 위치한 석조이다. 보원사는 고란사라고도 하며 사찰에 대한 역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959년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상이 발견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던 곳이..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석불이 있는 골짜기에 자리잡은 보원마을에 위치한 절터인 보원사지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당간지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지만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웅장한 멋을 지니고 있다. 장식은 거의 없으며 기둥의 윗부분을 둥글게 깍아놓아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한때 1,000명 이상의 승려가 기거했다는 것으로 알려진 보원사지. 그 입구에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 보원사지 당간지주. 뒷쪽으로 보원사지 5층석탑과 절터 발굴현장이 보인다. 측면에서 본 보원사지 당간지주 보원사지 절터 발굴현장에서 바라본 당간지주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

아름다운 길 - 현충사 앞 은행나무 가로수 길, 충남 아산

충남 아산의 이순신 장군 유적지인 현충사 가는길이다. 아마도 광화문 은행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심어진 것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은행나무 가로수길로 곡교천변에 자리잡고 있는 옛 국도길인데 햇빛을 잘 받고 현충사를 다녀가는 고위층들이 많다보니 평소에 가수로를 열심히 가꾸어서 그런지 나무가 굵고 울창하다. 여행을 하다 여러 국도길을 잘 살펴보면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곳 상당수가 대통령이 자주 방문하는 장소 주변이 많다. 은행나무가 하늘을 덮는 도로는 별로 많지 않은데 이 곳 현충사 가는길은 은행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아산 한가운데를 흐르는 곡교천변에 아름다운 은행나무길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은행나무 가로수는 큰길에서 현충사까지만 울창하다. 같은 곡교천변 국도인데 약간만 벗어나면 은행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있..

한국의 풍경 2009.10.28

중국 만리장성 노룡두(老龍頭) - 발해만 바닷가 해신묘(海神廟)와 정자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노룡두 입해석성 돈대에 올라서면 정면으로는 넓은 발해만 바다가 보이가 동쪽 만리장성 바깥쪽으로는 해안을 따라 이어진 장성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발해만 해안 백사장이 보인다. 발해만 해안 백사장 중간에는 바다를 향한 정자와 사당같은 건물이 보이는데 바다신을 모신 사당인 해신묘(海神廟)라 하며 그 끝에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런 광경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으로 유럽의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발해만 바닷가에 건설한 바다신을 모신 사당인 해신묘. 그 끝에는 작은 정자가 있어 바다를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해신묘 긑에 위치한 작은 정자. 잡상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 황제와 연결된 사당으로 보인다. 백사장에 위에 건설된 해신묘는 바..

중국(China) 2009.10.28

중국 만리장성 노룡두(老龍頭) - 발해만 해안에서 본 만리장성

노룡두는 만리장성이 동쪽에서 시작되는 지점으로 발해만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노룡도 만리장성 돈대에서 다시 성벽을 따라서 걸어올라와 등해루가 있는 곳에서 계단을 따라서 내려오면 만리장성 안쪽 발해만 해안가를 거닐 수 있다. 지금 이 곳 해안가는 노륭두에서 해안가에 만들어진 해신묘의 아름다운 정자까지 공원화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즐기고 있다. 발해만 해안 백사장에서 본 만리장성이 동쪽에서 시작하는 지점인 노룡두. 노룡두에서 본 발해만 해안가를 따라서 쌓은 만리장성 바깥쪽 성벽 만리장성 안쪽 해안가로 내려가는 길 만리장성 안쪽에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마차 모형이 있다. 만리장성을 왕래하던 마차의 모습이라고 한다. 네마리의 말이 마차를 끌고 있다. 해안가로 내려가는 길에서 본 노룡두 만리장성 등해루..

중국(China) 2009.10.28

중국 만리장성 노룡두(老龍頭) - 바다로 들어가는 늙은 용의 머리를 닮은 만리장성 첫번째 돈대

만리에 걸쳐서 이어진 기나긴 장성인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발해만 바닷가에 설치된 첫번째 돈대이다. 이 돈대가 발해만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늙은 용의 머리같다고 해서 이 곳을 '노룡두(老龍頭)'라고 부른다. 돈대를 나와서 성벽에 올라서면 넓은 발해만 바다가 눈앞에 보이고, 성벽위에는 이 곳이 만리장성이 시작하는 지점이라는 여러가지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곳 발해만에서 시작한 만리장성이 서역으로 가는 고비사막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보여주는 기념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해만 해안가를 가로막고 있는 만리장성 첫번째 돈대. 마치 늙은 용이 발해만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 하여 '노룡두'라 불린다. 만리장성 첫번째 돈대. 벽돌로 쌓아 올린 수많은 만리장성의 돈대들과 비슷한..

중국(China) 2009.10.28

중국 만리장성 노룡두(老龍頭) - 등해루(登海樓) 성루와 성벽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발해만 노룡두를 지키는 영해성에서 중심이 되는 성루인 등해루(登海樓)이다. 이층 목조 건물인 이 등해루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만리장성이 바다인 발해만과 만나는 지점인 용이 바다로 들어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노륭두가 눈 앞에 들어오고 우리나나 서해바다가 대륙가 만나는 지점인 발해만 넓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평상시 이 곳 바다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 것으로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발해만과 노륭두를 내려볼 수 있는 영해성 중심 성루인 등해루(登海樓). 이층 건물로 황제를 상징하는 잡상들이 처마에 있다. 영해성 내부에서 보이는 이증 목조건물인 영해루. 중국에서는 벽돌로 누각을 쌓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 곳 등해루는 발해만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 목조건물로 누각을 쌓..

중국(China) 2009.10.26

중국 만리장성 노룡두(老龍頭) - 영해성(寧海城) 성문

중국 만리장성이 동쪽끝에서 시작하는 지점은 노룡두(老龍頭)라고 불리며 늙은 용이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같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노룡두는 천하제일관이 있는 산해관에서 남쪽으로 수km 떨어진 발해만 해안가에 위치한 성벽으로 이 곳 성의 명칭은 영해성(寧海城)이라고 성문 편액에 적혀 있다. 영해성 성문은 노륭두를 들어가는 출입문 역할을 하며, 매표소가 이곳에 있다. 만리장성이 시작하는 지점인 노룡두 출입구 역할을 하는 영해성 성문. 산해관에서 5km 정도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한 노룡두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면, 읍성 형태의 성곽과 성문이 보인다. 노룡두를 둘러싸고 있는 읍성 형태의 성은 영해성이라고 불리며, 벽돌로 성을 쌓은 전성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영해성(寧海城)'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영해성..

중국(China) 20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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